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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49강-YouTube강의(생각의 발전)160405-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가복음

149강-YouTube강의(생각의 발전)160405-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69.34)

149강-YouTube강의(생각의 발전)160405-이 근호 목사

제 149강, 제목은 ‘생각의 발전’입니다. 예수님에게 열 두 제자가 있습니다. 열 두 제자가 있었는데 열 두 제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자기들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과 접근하고 합치된다고 오해를 한 점에서 그들은 동일했습니다. 그들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3년 동안이나 배웠으니까, 그 배움이 어디에 가겠느냐, 나의 배움이 지식의 발달로 해서 나는 저 멀리의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오해를 한 겁니다.

그 오해한 고백의 대표자가 누구냐 하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 따라다니고 주님과 함께 능력을 행했던 그러한 대단한 업적을 잊을 수가 없어서 예수님께서 고난 받는다고 하니까 아주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호위무사 되겠습니다. 제 목숨 하나 바쳐서 주님 건지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주님 우리가 남이가? 주님과 우리가 하나인데, 주님이 그렇게 다치도록 방치할 우리들이 아닙니다. 그만큼 은혜 받았으면 우리도 슬슬 해야죠.”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이 열 두 제자가 자꾸 오해를 해요. 어떤 오해를 하느냐 하면 주님께서는 그 노선이 둘로 점점 갈수록 각도가 벌어지는데, 그들은 벌어짐을 눈치를 못 채고 갈수록 한 지점으로 모아진다고 거꾸로 오해를 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전에는 그냥 어떤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치는데 동참을 시켰지만 점차 갈수록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데 있어서 예수님은 해내는데 제자들은 못하는 경우들을 자주자주 유발시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겁니다. 예수님이 없었을 때 어떤 귀신 들린 자가 있는데 제자들보고 하라하니까 제자들이 아무리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백날 해도 귀신이 나가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그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가 불만이 늘어진 거예요. “어떻게 예수님은 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못합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귀신 들린 자의 아버지가 볼 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같이 한통속으로 다니면서도 그 사이에 어떤 갭이 생기고, 어떤 벌어짐, 균열, 이걸 제자들은 모르고 제 삼자는 알아먹어요. 아, 예수님하고 같이 붙어 다닌다고 생각이 같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붙어 다니면 다닐수록 오해의 폭만 커진다는 사실을 제 삼자의 눈에서는 그게 밝혀지고 발견되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꾸짖었는데, 이러한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돼요. 자기로서는 전에 보다 기도 열심히 하고 교회 꼬박꼬박 다니니까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생각의 발전, 믿음이 그만큼 더 성숙했다고 생각하는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더 발전시켜서 구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갭을 벌어지게 하면서 구원합니다.

사람들은 이걸 몰라요. 스승이고 제자니까 점점 곁에 가서 점점 많은 것을 배우게 되면 그 폭이 줄어든다고 착각들을 해요. 그러나 주님 생각은 “제자들아! 너희들이 뭘 놓치고 있느냐? 너희들이 처음 자리를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괜찮은 자리에서 이제는 지식만 자꾸 쌓이게 되면 주님과의 간격이 좁아진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들은 처음 자리가 괜찮은 자리라고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시는 그 자리는 제자들이 놓치고 있고 잃어버리고 있던, 제자들의 원래의 자리에 제자들은 안 가고 있고 주님 홀로 그 자리를 가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제자들은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 가고 있는데, 주님은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제자들이 떠났다는 그 지옥의 자리를 주님은 점점 찾아가고 계시는 겁니다.

제자들은 오해하기를 이제 예수 믿고 난 뒤에는 더 착해졌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 보기에는 그 착해졌다가 뭘 가리느냐, 난 처음부터 불가능한 죄인인 것을, 의로울 수 없는, 의로울 가능성이 전혀 없는, 왜 원초적으로 우리는 죄만 짓는가, 그 자리를, 예수님 홀로 그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에게 어떤 복음으로 전해야 합니까? “교회 나오세요. 비로소 여러분들은 구원될 수 없는 원초적인 죄인입니다.” 그것을 더 알려고 교회가야 되는데, 교회 가서 뭐하느냐,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하니까 ‘죄인이니까 어릴 때 죄를 지었지. 아, 지난 몇 년 전에 죄 지었잖아.’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용서되었습니다.” ‘아, 그 문제는 십자가로 해결되었고.’ “목사님. 그러면 앞으로 뭘 할까요?” “여러분들은 구원되었으니까 이제부터 착한 일만 해서 주의 형상을 본받아서 더욱더 거룩에, 거룩을 정진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만 남아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거는 이미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이 했던 짓이에요. 그 바리새인들이 똑같은 사고방식이 누구냐, 열 두 제자들입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자가 누굽니까? 주동자가 누굽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라고 했어요. 그들의 사고방식과 동일한 사고방식을 누가 갖고 있느냐, 열 두 제자가 갖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열 두 제자의 차이는 큰 차이가 아니에요.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우리가 알아서 지켜서 의롭게 된다는 거고, 제자들은 바닥은 괜찮았으니까 이제는 예수님께 추가적으로 주어지는 정보, 바리새인에게 못 들었던 새로운 추가적인 정보를 우리가 확보하게 되면, 소유하게 되면, 그 소유된 나의 지식이, 나의 생각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천국에 골인한다는 사고방식. 이 둘 다 사고방식 모두가 뭘 놓쳤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둘 다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이게 모른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십자가 없이 구원된다는 생각은 한결같아요.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에요. 똑같아요. 바리새인들이 갔던 길을 똑같이 반복합니다. 교회들이.

귀신 쫓아낸 것이 능력일까요? 아니면 십자가 믿는 것이 능력일까요? 지금 마가복음 9장에서 이 복음 가지고 예수님께서 그걸 가르치는 거예요. 너희들이 왜 귀신을 못 쫓아내느냐? 그걸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가 그렇게 나무래고. 정작 예수님께서 이야기하는 것은 너희들이 귀신을 쫓아냈냐, 못 쫓아냈냐, 그걸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31절에 보면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32절, “그러나 제자들이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본래의 자기 자리가 구원이 안 되는 자리에 우리가 출생한 겁니다. 근데 구원이 안 되는 자리인데, 자꾸 인간은 구원될 것이라고, 예수님 덕분에 구원이 된다는 희망을 가지는 자체가 구원이 안 되는 이유에 포함이 되어 있어요. 우리가 왜 구원이 안 되느냐? ‘잘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 ‘나도 죽으면 천당 가겠지.’ 라는 생각 자체가 이게 잘못된 구원으로 이끄는 겁니다.

처음부터 구원될 고난도 없고, 그런 자격도 안 되고, 그런 입장도 안 되는 겁니다. 구원은 애초부터 인간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어요. 구원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 자기만의 일이에요. 예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 그게 구원입니다. 구원인데, 주님이 자기만의 구원을 이제는 구원이 안 되는 자에게, 자기만 갖고 있는 구원을, 그 범주에 성령을 통해서 끌어당기시는 겁니다.

끌어당기게 되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어? 이거 내가 받을 구원 아닌데? 이건 주님만 받을 구원인데? 아! 이게 은혜구나! 천국은 내가 갈 곳이 아닌데? 주님만 사셔야 되고 가셔야 될 천국에, 강제로 질질 끌려서 아무 행함도 없이 공짜로 거기에 혜택과 효력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뭘 회고해야 되는가, 바로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 생각만 한다고 깨닫지 못하는 그런 입장에서 주께서는 그걸 묻거나 따지지 않고 그걸 추궁하시는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너는 너의 구원에 대해서 몰랐던 자인데 주께서 구원해주시고 성령이 찾아오심으로, 아, 구원이라는 것은 주님의 일방적인 처신이었구나! 일방적 조치였다는 사실을 성령을 통해서 알게 되죠.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고 난 뒤가 아니라 내가 원래 구원받은 자리가 가장 감사가 크게 나오고, 은혜를 가장 많이 아는 지점은 본래에 구원될 수 없는 자라는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경우에만 오직 주님만 자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생각의 발전이고, 그 발전의 혜택을 우리가 받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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