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강-YouTube강의(우연과 필연)160405-이 근호 목사
148강-YouTube강의(우연과 필연)160405-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69.34)
148강-YouTube강의(우연과 필연)160405-이 근호 목사
제 148강, 제목은 ‘우연과 필연’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생각할 때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기 때문에 이거는 필수적으로 그렇게 세상은 돌아간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 때는 계획대로 만들어 놨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자기 뜻대로 안 될 경우에는, ‘아, 세상이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경우에 우리는 거기서 뭘 느끼느냐 하면 ‘나도 그냥 우연한 존재가 아닌가? 내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 다 깨어지지 않는가?’ 하는 불안감이 생겨나죠.
그렇게 불안감이 생겨나면 사람은 가만히 있지를 않아요. 뭐냐 하면 어떻게 하든지 주의 뜻을 알아서, 기어이 주의 뜻을 미리 알아채서 실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세상의 정답을 파악해서 그 정답을 이용하려고 시도하게 될 겁니다. 성경 말씀을 보게 되면, 자기 위주로 성경 말씀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 모든 인간의 특징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마태복음 25장 3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절,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절,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이 대목을 딱 보는 순간, 보는 사람 거의 전부 다 오른편에 가서 천국가고 싶어 하지 왼편에 가서 지옥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는 이야기가 예수님한테는 절대적이고 필연적이라면 이제는 그 필연적인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맙니다.
그러면 그 예수님이 하는 필연적인 것을 내 것으로 만들면, 예수님의 필연이 나의 필연으로 전환되고 그렇게 되면 나는 오른편에 서서 천국 가는 사람이 된다. 오른편에 선 양이 될 수 있고 천국 가는데 성공한다. 근데 만약에 이 필연적인 것을 내가 모르게 된다면 나는 왼편에 선 염소가 되어 지옥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일찍 간파해서 예수님이 알고 있는 그 필연적인 원칙을 나의 원칙으로 삼아버리면 나는 구원에 드디어 성공한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그리 생각하는 것이 착오입니다.
왜 착오냐 하면 그 뒤에 계속 읽어보면 35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절,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누가요? 오른편에 선 양들은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이 대목만 딱 보게 되면 예수님이 하신 그 필연적인 계획을 이제는 나의 계획으로 가져오면 되죠. 어떻게? 예수님이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면 되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면 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면 되고, 벗었을 때 옷 입혀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 예수님이 생각하는, 천국 가는 그 필연적인 절차에, 원칙에 내가 가담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계속 보게 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누가요? 천국 가는 주님의 오른편에 서 있는 양들이 하는 말이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저는 그렇게 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주님한테 그렇게 한 적이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이 성경을 보면서 어떻게 하든 천국 가려고, 예수님의 필연이 나의 필연이 되고 싶어서 “주여, 뭘 하면 됩니까? 아, 이렇게 대접하면 되고 섬기면 되지요?” 라고 그 원칙을 나의 필연으로 전환시켰는데, 막상 그 뒤에 이야기를 보니까 정작 천국 가는 사람은 자기가 그런 적이 없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나는 우연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주께서 나를 우연적으로 천국가게 했지, 내가 이거하고 저거하고 요거하고 해서, 내가 딱 원칙 알아채가지고 그 식대로 해서 드디어 나는 천국에 성공했음! 이러지를 않았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필연적인 존재가 되어야 해요? 우연적인 존재가 되어야 해요?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이래 돼버리면 그건 우연적 존재거든요. 필연은 주님이 갖고 있고, 주님에 의해서 우리가 우연적 존재가 된다면, 그러면 우리가 천국 가려면 우연에다가 자기를 맡겨야 되는데, 우연에 자기를 맡긴다는 말은 결국은 아무것도, 무엇을 해도 의미 없는 것이 돼요. 요걸 하면 필연적으로 반드시 천국 간다가 되어야 하는데, 우연적 존재가 돼버리면 이걸 해도 천국 갈지, 안 갈지, 장담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다가 돼버려요. 그러면 우리의 노림수는 다 깨지는 겁니다.
자, 우리가 우연적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필연적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이 본문을 보면서 어려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할 때 염소는 왼편에 양은 오른편에 심판한다는 그 대목을 보는 순간, 우리가 ‘나는 오른편에 가서 천국 갈래.’ 라는 마음을 이미 성경 보면서, 그 마음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한 이것이 탈이 되고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하는 이야기를 예수님한테 맡기지 아니하고 “저 반드시 넣어줘야 해요.” 라는 자기의 기대치와 자기의 욕구가 성경 말씀에 섞어 넣은 이것이 탈이 난 겁니다. 자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가, 임금님이 그렇게 한다고 했거든요. 임금님이 천국 갈 양과 지옥 갈 염소를 그렇게 나눈다 했습니다. 그 임금님은 우리가 생각한 임금님이 아니고, 마지막 때 임금으로 우리에게 드러날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우연하게 드러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임금님은 이렇게 할 것이라는 그 필연적인 원칙과 절차를 고수하게 되면 그 원칙에 포함 안 되는 엉뚱한 곳에서 이 말씀에 해당되는 임금님이 불쑥 튀어나와버립니다. 그러면 그 불쑥 튀어나오신 분이 마지막 때만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와요. 평소에 살아가는데.
평소에 살아갈 때 모든 인간은 자기 잘된 쪽으로, 자기 위주로, 자기의 필연성을 고집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내 좋아라고 해야 돼! 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그러한 입장에서 불쑥불쑥 우연으로 출몰하신 분이 장차 오실 임금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돼야 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필연이 깨져야 해요. 나는 나를 위해서 반드시 세상에 있어야 된다는 그 고집이 스스로 무너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 때문에, 누구의 필연성 때문에 지금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그 관계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 관계성을 예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가 되어야 해요. 지극히 작은 자라는 말은 세상 돌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는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지극히 작은 자에요. 세상은 날 위해서 있어야 돼! 이러면 우리는 지극히 큰 자가 돼버립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 총선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당이 되어야 해! 이러면 우리가 자꾸 커져요. 점점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점점 커져버립니다.
내 소리가 커지고, 내 활동을 누가 알아주기를 원할 때, 내 존재의 존재감은 점점 더 팽창되고 확장되고, 세상은 왜 나를 힘들게 하는 거야? 주님은 뭘 하시는 거야? 날 안 도와주고? 이러면 그만큼 자기 목소리도 커지고 자기 존재감도 커지는 겁니다. 이것은 지극히 큰 자이지 결코 지극히 작은 자가 아닙니다. 주께서는 세상을 필연적으로 돌아가게 하시는데, 어떻게 돌아가게 하시는가, 우리를 아주 작은 자로 만들어버려요. 심지어 겨자씨보다 더 작게 만들어버려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무것도 아닌 티끌 같은 존재로 만드시는 그 분이 일찍 오신 임금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심판해요. 나중에 그 분을 만나시거든 이렇게 하세요.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저는 지극히 작은 자, 제가 뭘 어떻게 했다고요? 뭘 마실 것을 드렸다고요? 제가 베풀 그런 여력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작은 자로 살아왔더랬습니다.” 라는 고백.
그것은 일찍부터 임금님이, 임금님의 원칙만이 필연적이고 그 임금님 앞에서 우리는 그냥 있다 없어지는 우연적인 존재인 것을 앞당겨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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