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01a 울산강의-출애굽기 36장 : 만남과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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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한윤범(IP:14.39.134.85)
20160401a 울산강의-출애굽기 36장 : 만남과 연결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36장부터 39장까지 쭉 갑니다. 26장에서 28장 내용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하나님의 성소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출애굽이란 애굽에서 나오는 건데 나오면 그냥 나오지 성소를 만들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성소를 안 만들고 애굽에서 나와서 바로 천국갈 수는 없겠습니까? 꼭 뭘 만들어야 되겠어요? 천국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인데 애굽에서 나와서 그냥 가면 되지 않느냐? 보통 교회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애굽에서 나와서 천국 갑시다. 그냥 빈손으로? 세상 것은 하늘나라에 못 들어가니까 그냥 빈털터리로 들어가면 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소를 만들라고 했단 말이죠. 그럼 만들어진 것으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 땅에서 공작시간이 있어서 너희들이 천국 올 때 그냥 오지 말고 뭘 하나 만들어서 천국 오라고 하나님께서 지시했어요? 뭘 들고 가야 됩니까? 아니죠. 어차피 놔두고 가야 되잖아요. 놔두고 갈 것을 왜 만들라고 이야기했느냐? 거기에 대해서 제가 지난달에 언급했습니다. 한 달이나 지났으니 무슨 소리했는지 모르겠지요.
그건 뭐냐? 성소를 만드는 게 아니고 인간을 만드는 거예요. 성소를 만들면서 인간 자체가 다른 인간으로 바꿔지는 방편으로 그러한 계기로써 성소를 만들라고 한 겁니다. 어차피 아무것도 못 들어가요. 천국 갈 때는 죽어서 가는 사람이 뭘 들고 가요? 그런데 인간 바꿔져야 됩니다. 그걸 사도 바울은 옛사람이 새 사람으로 바꿔진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옛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새 사람 된 사람만이 알아요. 그냥 보통 사람은 옛이고 샛이고 몰라요. 새사람 됐을 경우만 옛사람을 아는데 옛사람과 새사람이 어떤 차이가 나느냐 하면, 옛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넘어서는 방법이 인간에겐 없습니다.
옛사람과 새 사람으로 가는 길에 이쪽 선 말고 따로 나가서 이걸 바라봐서 이건 옛사람이고 새 사람이라는 특정한 지역은 없습니다. 옛사람에서 이것은 죄니까 새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니까 죄에서 씻음 받아서 의로운 사람이 돼야지, 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이 생각하는 새 사람은 바로 옛사람에 해당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옛사람에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구나. 새 사람 되면 죄를 적게 짓든지 안 짓게 되겠지. 그게 바로 옛사람과 연결돼있는 새 사람입니다. 그 아이디어는 옛사람을 밑천으로 해서 만들어낸 새 사람입니다. 이것 가짜입니다. 이것을 종교라고 하지요. 또는 도 닦기.
인간에게는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 거룩하게 살고 성경에서 바르게 살라고 해서 바르게 살아봤자 그것은 여전히 자기 자신을 자기가 다루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새 사람은 인간에게는 없어요. 왜 없느냐 하면, 인간은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새 사람이 아니에요. 인간 입장에서 질적인 차이를 논한다는 것은 아마 괴물일 거예요. 질적으로 자기와 전혀 다른 인간이라면 외계인 정도 쯤 될 때 “저게 괴물이야, 인간이야?” 할 때 그 괴물은 제대로 새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통점이 없으니까.
새 사람은 언제 등장하느냐 하면, 말씀이 육신이 될 때 새 사람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는데 그렇게 될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수준이 돼야 되느냐 하면, 바둑돌이 있고 바둑판이 있는데 아침에 가보니까 그게 사람 돼있는 거예요. 그 정도 될 때 새 사람이라 할 수 있어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새 사람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밖에 없고 예수님 안에서 인간을 볼 때 예수님 빼놓고 다 옛사람입니다. 비로소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옛사람과 새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바라볼 때 모든 사람은 옛사람밖에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영이 옛사람 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 사람은 성령을 받아서 새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옛사람과 새 사람이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새 사람 되신 예수님이 인간 속에 왔을 때 사람들이 새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적 없어요. 목수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같아도 너무 같아. dna가 똑같아. 어딜 봐서 새 사람입니까? 새 사람 티가 안 나는데요?
세례요한이 탄생할 때 아버지 사가랴의 부인이 나이 많아서 아기를 못 낳아요. 그런데 성령이 약속해서 아기를 낳거든요. 그래서 세례요한이 태어났습니다. 그 세례요한이 보기에 마치 새 사람처럼 보이는데 헤롯 왕 입장에서는 세례요한을 보통 사람과 똑같이 봤지요. 특이하긴 했지만 광야에서 낙타 털옷 입는 그 정도 수준이지 다를 바 없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는데 그 새사람을 둘로 나누자는 말이죠. 제 이야기가. 어떻게 나누느냐? 인간들이 상상하는 새사람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새사람과 나눠야 한다는 거예요. 인간들이 상상하는 새사람은 착한 사람, 거룩한 사람, 경건한 사람, 정말 태도가 돌변한 사람, 술 먹다 술 끊은 사람, 담배피우다 담배 끊은 사람, 교회 안 나오다 교회 나온 사람, 전도 안 하다 전도 열심히 한 사람, 그걸로 새사람이라 해요.
인간들이 상상하는 새사람을 조직신학에서는 거듭났다고 해요. 다시 태어났다. 교회마다 남한테 기죽기 싫어하잖아요. 맨날 묻는 게 “목사님, 저 거듭났습니까? 저 새사람 됐습니까? 중생했습니까?” 중생하고 남은 것은 성화 남았습니다. 중생에서 성화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 자기를 사람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오늘 출애굽기 36장 이야기하면서 바로 이 점을 우리가 생각해봐야 돼요. 천국 갈 때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가요. 그럼 그냥 천국 보내시면 되는데 왜 이스라엘 사람 나라로 성소를 만들라, 제사장 복장을 만들라, 번제단 만들라, 금향단 만들라, 언약궤 만들어라, 진설병, 등대 만들고. 성소 만들고, 지성소 만들고. 그냥 천국으로 보내면 될 것 아닙니까? 왜 자꾸 그걸 만들라고 하느냐 말이죠. 만들어봐야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가 어려울 때는 미리 쉽게 결론짓는 방법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진 것에 의해서 인간은 구원이 가로막힌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36장에 보면 성소를 만들잖아요. 36장 8절에, “일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열 폭 앙장으로 성막을 지었으니 곧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들을 무늬 놓아 짜서 지은 것이라 매 폭의 장은 이십팔 규빗, 광은 사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여”
들어봐도 무슨 말이지도 모르겠고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짜증나는 식으로 계속 전개되고 있어요. 띄어쓰기도 팍팍하면 눈이라도 덜 피곤하지 읽으란 말인지, 읽기 싫으면 때려치우란 말인지 복잡하게 돼있어요. 하여튼 친절을 베풀지 않아요. 읽는 즐거움을 허락하지 않아요. 읽는 재미 같은 것을 주지 않아요. 왜냐? 본다고 네가 아느냐 이 말이에요.
지금 여기 오홀리압과 브살렐이 실제로 성막 만들었잖아요. 사람이 만들었다는 말은 오늘날 우리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사람이 만든 그것이 인간의 구원을 방해가 되고 장애가 돼요. 인간은 예배당 지을 수 있지요. 예배당 지은 그것이 구원을 방해한다니까요. 사람이 뭔가 자기 손으로 만들게 되면 거기에 의미를 두게 마련이거든요. 의미를 둔다는 말은, 자기가 만들기 전에는 별 의미 안 두다가 하나님 지시로 만들게 되면 자기가 손수 만든 것 빼고 구원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요.
구약에 십일조 있었습니다. 신약에는 십일조가 없어요. 그런데 목사들이 십일조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오십년 동안 한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십일조 하지 말라고 했을 때 기분이 좋겠습니까? 기분이 찝찝하지요. 그동안 십일조를 안 빼고 했기 때문에. 자기가 십일조 했다는 그것이 자기 구원에 장애가 되고 방해가 되는 겁니다. 십일조 빼놓고 구원을 본인이 수용을 못해요. 왜냐하면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뻔히 눈앞에 있는데 그걸 왜 비켜 가요.
교회 앞자리에 앉으면 은혜 받습니다. 그래서 삼십년 동안 앞자리에 앉았다고 칩시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으라고 하면 이상하게 찝찝해요. 앞자리에 앉아야 은혜 받는 것 같아. 뒷자리에 앉아도 천국 가는데 지장 없습니다. 장담할게요. 뒷자리에 가도 구원받는데 전혀 지장 없어요. 그런데 뒷자리에 가기 싫어해요. 앙금이 남아 있어요. 내 구원을 내 스스로 방해하는 요소가 내 속에 앙금처럼 찌꺼기가 남아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은 왜 반대로 하느냐? 반대로 한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거든요.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나아서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일부러 왜 반대하느냐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인하여 구원을 성사시키는 너의 모든 예상을 포기하라. 그게 바로 옛사람이에요. 옛사람은 예수님 빼놓다 다 옛사람입니다. 그러면 새사람은 말씀이 육신 된 분이 새사람이에요. 이 말은 곧 무슨 뜻이냐 하면, 어느 누구도 스스로 노력해서 자기가 자기를 설득하고 애쓴다고 해서 말씀이 육신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아까 예를 든 것처럼 내가 바둑판을 사서 바둑돌 놓고 아침에 보니까 여기에 어떤 도인이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다. 이런 경우는 없단 말이죠. 내일 아침 되도 바둑판과 바둑알 그대로 있듯이 사람이 아닌 이상은 물건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 물건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만들라고 했습니다. 성소라 하지만 따지면 물건입니다. 물체잖아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물체가 어디 갑니까? 물체가 사람 됩니까? 안 되는 걸 되신 분이 말씀이 육신 되신 예수님이라니까요. 이건 터무니없는 거죠. 우리 보기에 터무니없는 황당한 일이 예수님한테 일어난 거예요.
예수님은 본인을 성전이라 했어요.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46년 동안 지은 성전이 있다. 헐어라. 내가 사흘 만에 지을게. 나중에 보니까 자기 몸으로 성전이라 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야기할 때는 몰랐는데 예수님 죽고 부활하고 난 뒤에 그 사실을 알았단 말이에요. 나중에 알았다는 말은, 그동안 내가 내 쪽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분이다, 저런 분이다, 라는 생각하는 모든 것은 나란 이름의 옛사람의 연장에 불과하지 내가 예수님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존중하고 존대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내가 새사람 되는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옛사람이 새사람 되는 것은 단절뿐입니다.
지난 수요일 설교지요. 제가 손가락 세 개 제시해서 하나를 꺾은 것 기억나십니까? 한쪽은 가인의 계열, 한쪽은 아벨의 계열. 아담과 하와가 아기를 몇 명 낳았느냐 하면, 여호와와 관련해서? 하와가 남편과 동침했음에도 여호와와 동침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생긴 자식이 세 명이죠. 가인, 아벨, 그리고 셋이잖아요. 하나님께서 가인에서 셋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고 중간에 아벨을 가인에 의해서 죽였지요. 손가락 셋 있었는데 하나를 꺾어버리면 가인에서 아벨 계통으로 넘어가는 다리라든지 연결고리가 있어요? 없어요. 이걸 주일 낮 설교에서 복선이라 했어요.
주일 낮 설교 듣고 어떤 분이 저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요. “복음 듣는데 속이 울렁거립니다.” 나쁘게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감사하다면서 했는데, “단선에서 복선으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요?” 이게 죽어도 안 돼요. 아마 단선에서 죽으면 복선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단선의 연장선에 불과합니다. 죽고 난 뒤에 좋은데 가겠지. 이것도 옛사람의 연결고리에요. 단선에서 복선으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교단체에서 지상, 하늘나라 해놓고 십자가 그려놨을 때 대학생들이 뭘 생각합니까? 굉장히 쉬운 거예요. 십자가로 타박타박 걸어서 천당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호주 시드니에 하버브리지라는 유명한 다리가 있답니다. 애들은 그 다리 건너고 싶어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천국도 다리가 있어서 주님 등에 올라타서 건너가면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오늘 성막 만들기 또는 방주 만들기에 해당되는 겁니다. 만들었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옛사람에 영원히 갇혀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 되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뭘 자랑하느냐 하면, 너희 조상들은 성막 안 만들었지. 우리 조상 모세가 지시해서 성막 만들었다. 너희 집 정수기에 얼음 나오느냐? 이런 식으로. 우리 집에는 성막 있다, 성전 있다. 성전 있다가 그들의 구원을 방해한 거예요. 성전 있으면 뭐 합니까? 성전이 방해하는데. 성전은 그냥 만들어놓고 끝나는 게 아니죠. 성전을 관리하잖아요. 지금도 성지순례하고 성전 구경하러 가잖아요. 골드 돔이라 해서 이슬람이 차지하고 있지만. 또 통곡의 벽에 가서 울고불고 하고.
만들었기에 그들은 자기의 분수를 아는 계시가 시작되는 겁니다. 시킨 데로 만들 수 있다는 그것이 스스로 꾐에 빠지는 계시를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만드신 겁니다. 천국은 손으로 만들어서 가는 데가 아닙니다. 만드나, 안 만드나 처음부터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할 때는 만든 그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면서 사라진 그 현장에 없다고 여겼던 새로운 흔적이 등장할 때 그 흔적이 인간이 해놓은 그것이 사라짐으로 비로소 등장하는 그 무엇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성전이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살린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죽는다고 구원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 손에 의해서 그것도 하나님의 구원을 자부하는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한 그 메시아가 죽어야 그 죽음이 우리를 구원해요. 그냥 예수님이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의 존재가 구원한다는 것은 이천년 신학이 거짓말한 거예요. 그러나 진짜는 십자가만이 우릴 구원해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지, 그냥 예수 존재가 우릴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도리어 인간은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처음부터 건너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이제는 들통 나게 돼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게 구원의 전부가 아니죠. 방주 들어가 봐야 튀어나왔죠. 튀어나온 것이 천국입니까? 아니잖아요. 지금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다 다른 데 사는 게 아니고 인간들이 옹기종기 사는 이 땅에 가는 것이 아니고 그건 여호와증인이고, 주님 가신 곳에 가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려면 옛사람으로는 못 가요. 새사람으로 바꿔져야 됩니다. 바뀌는 방법은 없어요. 새사람으로 바뀌는 방법이나 능력이 우리로서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껏 만들어봐야 옛사람의 반복에 불과하니까 새사람 되신 분이 옛사람으로 새사람 만드는 그 작업이, 인간이 만드는 작업과 겹쳐져야 돼요. 단선에 또 하나의 단선, 복선이 되지요. 두 개의 다른 시간 층이 겹쳐져야 돼요.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그 작업을 무의미하게 하는 또 다른 작용이 만드는 작업 가운데 계속 일어나줘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한 작업이 출애굽기 36장부터 39장까지 인간에게 손수 만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니까 만들어봅시다. 어차피 구원될 것은 아니지만. 성소를 만들려면 일단 부동산, 땅이 있어야 되겠지요. 땅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성소가 사람의 아이디어라면 하나님을 상상해요. 상상한 하나님을 잘 모시기 위해서 건물의 설계를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잘 만들기 위해서 멋진 아이디어를 공모하겠지요.
이스라엘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한 하나님이 아니고 찾아오신 하나님이잖아요. 이것은 연속적인 만남이 이뤄져야 돼요. 그래서 성소가 만남의 장소에요. 기거한다는 것은 일단은 만나야 돼요. 나중에 성전에 기거하지 성막에는 기거하진 않아요. 그럼 성막의 주 기능은 거주하는데 있는 게 아니고 만남에 있겠지요.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어떤 게 필요하지요? 우선 차 소리가 적게 들려야 되고, 여름엔 에어컨 있어야 되고, 겨울엔 히터 있으면 되겠고, 푹신푹신한 소파 몇 개 놔두면 되겠지요. 그렇다면 이 건물에 유리창 멋지게 하고 소파 들여놓고 에어컨하고 벽난로 만들어놓으면 하나님이 여기에 찾아오시겠습니까? 내가 인간이가? 너희들끼리 친목회, 동우회 하듯이 내가 찾아오나? 내가 어떻게 이런 데서 만나? 그러면 인간이 뭐라고 하겠어요?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와 만나는지 설계도를 제시하면 우리가 시키는 대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겠지요.
그러면 백날 만들어봐야 만약에 하나님께서 삐져서 안 온다하면 문제가 돼요. 그럼 어떻게 돼야 됩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유지가 된 경우가 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단체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기 이전에 단독으로 그 대표자가 하나님과 만남이 실제로 성사되더라. 그런 사례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게 시내 산꼭대기에서 있었어요. 그래서 성소와 성막의 구조는 바로 위에서부터 시내 산에서 내려오는 거예요.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도록 이미 배치나 시스템이 갖춰진 설계도면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겁니다. 그런데 거주가 아니고 그냥 만남입니다.
거주가 아니고 만남이라고 강조하는 뜻이 뭡니까? 성막은 이동성이 있어요. 거주라면 고정돼야 되는데 몽골의 유목민처럼 맨날 텐트 치듯이. 몽골에 가면 게르 있지요. 요새 그 시설이 너무 잘됐답니다. 요새는 유목생활인지 캠핑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잘 됐답니다. 어딜 가도 <태양의 후예>나 한국드라마 다 볼 수 있답니다.
이동성인 이유가 지상에서는 주님도 머물지 않고, 이 말은 내 백성도 이 땅에서는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을 요소를 표현해주는 장치가 성막 안에 장치로 갖춰져야 됩니다. 텐트 칠 때 꼽는 팩을 백 개 박았다 빼고 하면서 또 이동하는 겁니다. 그럼 여기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겁니다. 어떤 루트를 통해서 가느냐? 적들이 있는 곳만 골라가게 되면 거기에 천국이 있습니다. 그럼 적들이 어디 있느냐? 적은 그때마다 만들어져요. 다시 말해서 성막은 전쟁용입니다. 의도적으로 전쟁을 만들어요. 그 전쟁을 통과 못하고 이기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새사람이 될 수 없는 겁니다.
그 전쟁은 어떤 전쟁이냐? 새사람이 됐느냐, 안 됐느냐, 확인하는 전쟁입니다. 그럼 어떤 종류의 적들과 싸워야 새사람인지 헌 사람인지 알 수 있느냐? 아까 이야기했듯이 말씀이 육신 된 분이 새사람이라 했지요. 따라서 신약에서 예수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갑자기 난데없이 돌발 사태로 계속해서 쉬지 않고 등장하는 주님의 적들이 있어요. 말씀의 적.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을 마귀가 싫어하잖아요.
그걸 언약(구약은 언약입니다)에 들어가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원수가 이스라엘 앞길을 막아요. 그 적들의 특징이 언약이 아니고 비 언약적입니다. 비언약적인 민족이 뭘 갖고 나오느냐? 칼과 활과 병거와 많은 숫자로 나와요. 여기에 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기는 칼, 활, 말, 이런 걸 들고 나가면 언약 대 비 언약의 싸움이 아니고 비 언약 대 비 언약의 싸움으로 승리하나, 패배하나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이 땅에서 장소 이동한 것뿐이지 주님 계신 나라로 합류하는 전쟁은 아니란 말이죠. 하여튼 복잡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전혀 무기가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유발시켜 비 언약 대 언약의 싸움으로 의도적으로 몰아가십니다. 비 언약은 칼과 활이라 치고 그럼 언약의 무기는 뭐냐? 뭔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언약의 무기는 사건의 반복이에요. 모세 같은 경우에 지팡이를 쳐다보면 모세를 쳐다보면 이기게 돼있어요. 사실은 이겼다는 말은 어폐가 있고요, 이미 이기게 돼있는 싸움을 확인 차원에서 그런 거예요.
제가 십자가마을에 글 올렸지요. 의존교회가 있던 홀이 재개발되어 예배당 자체가 없어요. 목사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이미아 성도님이 서글픔인지 회한인지 모르지만 쓴 글을 봤습니다. 옛날에 좋았던 과거가 생각난다고. 뭔가 떠나면 아프잖아요. 기대하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예배당이 미어터져서 교인 중에 재벌이 있어서 30억 정도 흔쾌히 내서 옆에다 고딕 건물지어서 옮겨가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고 거덜 났어요. 예배당이 날아가 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댓글 달았지요. 주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이름이 의존교회거든요. 언제까지 의존하는지 보자. 이래도 의존하는지 보자.
이렇게 이야기했듯이 주께서 전쟁할 때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걸 하면, 내가 만들 수 있는 언약이나 성전, 내가 할 수 있는 걸 의지하면 그것은 그냥 이 땅에서 이 땅으로 수평 이동뿐이지 구원은 안 됩니다. 옛사람이 솜씨 발휘하는 것으로 천국에 넣어주지 않아요. 옛사람의 한계가 드러나요. 옛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곳에 가고 있다는 것, 옛사람으로선 들어갈 수 없는 그곳에 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가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바뀌어져야 돼요. 내가 나 된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식으로 내가 지금 가고 있다는 것을 새로운 내 주체 내용으로 채워져야 된다 이 말이죠. 그것은 바로 주님과 싸웠던 원수를 앞당겨서(구약이니까 이스라엘 백성으로선) 그들로 체험케 하는 겁니다. 그게 주의 이름만 의지하는 거예요. 주의 이름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들어있어요.
이것은 전쟁의 문제가 아니고 이름의 문제고 하나님의 의의 문제라. 의가 바로 말씀이 완성된 걸 의라 해요. 착한 걸 의라 하지 않아요. 선을 의라 하지 않습니다. 의란 언약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상태를 의라고 하는 겁니다. 분명히 이렇게 정리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딴 이야기하면, 참.
성소와 성막은 주님과 함께 만남이에요. 만남은 거주하는 것이 고정된 게 아닙니다. 어디로 떠나야 돼요. 어디로 갈 것이냐, 어떻게 갈 것이냐, 어느 경로를 통해서, 어떤 루트를 통해서? 그것은 적들이 찾아올 거예요. 찾아온 적들 속에 있어요. 하나님의 의는 죄 속에 있어요. 구원은 어디 있느냐? 반복된 실패 속에 구원이 있어요. 늘 우리는 구원에 반복적으로 실패해요. 헌금하면 은혜 더 줄줄 알고, 전도하면 복 줄줄 알고. 그게 실패로 끝나야 돼요. 헌금하고 기대했다는 것은 옛사람이 꿈꾸던 허망한 꿈에 불과합니다. 열심히 교회 봉사하면 자식이 잘된다. 그런 식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래서 만드는 성소 안에는 만남이어야 되고, 두 번째는 고정적이 아니고 이동해야 되고, 세 번째는 전쟁에 승리하는 요소가 그 안에 장착돼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만남, 두 번째는 이동성, 세 번째는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승리하는 요소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는 성소 안에 제사가 이뤄지고 지성소에서 피를 바르죠. 결국 이 의란 피 흘렸은즉 사함을 얻느니라. 이 의는 인간이 알지도 못한 죄마저 이미 완료적으로(완료적입니다!) 깨끗하게 씻겼다는 것을 전쟁하면서 확인해주는 거예요. 이미 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함을 십자가 이후에 우리가 평생 살면서 매일 일상 가운데 확인하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이동하는 성전이 되는 겁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이 주와 만남의 장소고, 우리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고, 가고 있는데 방향은 어디냐? 매일같이 우리에게 무엇이 찾아옵니까? “네가 뭘 해야 잘될 것 아니냐, 네가 이렇게 해야 장래가 있어, 네가 이런 식으로 해서 뭐가 잘되겠어?” 계속해서 자기 행함에 의미와 가치를 두게 만드는 그 불안한 전쟁을 우리로 치르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를 늘 보지 않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냐? 사실은 제목을 이것으로 하려고 하는데, 악행. 악행이 뭐냐? 십자가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악행이에요. 왜? 예수님의 적과 한 패가 되기 때문에. 어떻게? 내가 만들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계속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새벽마다 이렇게 목사가 되어 기도하니까 교인들이 복 받을 걸. 그게 악행이에요. 그 목사는 자기가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구원을 스스로 훼방하고 있고 장애요소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야 되는데 옛사람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동원시켜요. 기도도 잘하고, 전도도 잘하고, 설교도 잘하고, 강의도 잘하고, 목회도 잘하고. 나처럼 훌륭한 목사가 어디 있느냐? 그게 자기 구원을 방해하는 거예요. 자기가 만들어낸 구원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단 터를 잡게 하시고 그 다음에 여기서 큐빗이라 하는데 1큐빗이 46센티미터 쯤 되는데 c라고 할게요. 100큐빗, 46미터. 이쪽은 50큐빗, 22.4미터 쯤 되고, 동쪽에 9.1미터의 문을 내요. 빈 터에. 여기다가 놋으로 울타리를 만들어요. 그리고 세마포로 둘러쳐요. 세마포 길이가 300큐빗. 울타리 밑에 놋으로 받침을 만들고. 전부 다 이동성이에요. 이것 20개, 이것 10개, 이것 6개.
그리고 입구에 번제단을 만들어요. 3c로 제물을 태우는 걸 만들어요. 들어오자마자 연기 피우면서 제물을 태웁니다. 그리고 물두멍이라 해서 세숫대야를 만듭니다. 여기 20큐빗, 10큐빗, 10큐빗이라 해서 앞을 성소라 하고 뒤쪽을 지성소라 합니다. 휘장이 셋이 있어요. 성막 뜰 문에 휘장1, 그 다음에 성소 들어가는 휘장2, 지성소 들어가는 휘장3, 이게 마지막 휘장입니다.
성소에 들어가게 되면 이쪽에 진설병이라 해서 떡을 열두 개 놓습니다. 금으로 턱을 만들어서 대접, 잔, 물 담는 병, 접시도 만들고. 이 앞에서는 가지가 일곱 나온 대를 만들어서 등대를 둡니다. 등대관리하려고 하면 불똥 집어내는 집게도 필요하고 하겠지요. 번제단에는 제물 잡으려면 고기를 거는 갈고리도 필요하고, 재 떠내는 삽도 필요하고 각가지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이걸 어떻게 만드느냐? 무너지면 안 되니까 조각목으로 10큐빗에 넓이 1.5로 두 개를 한 조로 다섯 개를 만들어요. 총 20개에 금박을 입혀서 금고리를 달아서 띠를 꿰게 하죠. 중간에 가로막을 걸 두르고. 여기는 놋기둥이 네 개, 금기둥이 다섯 개에 휘장을 둘러서 튼튼하게 만들어요.
그럼 여기는 붕 뜨잖아요. 사막에도 비 오고 바람 불고 하니까 뭘 덮습니다. 네 겹으로 덮어요. 처음에는 홍색, 자색, 가는 실로 만들어서 천사 수를 놓아 첫 번째로 덮습니다. 열 폭 짜리를 만드는데 5폭+5폭, 오십 개의 금 고리로 연결시켜서 열 폭을 만들어요. 백 개의 팩에 고정시킵니다. 밑에서 보면 천사의 그림이 있을 거예요. 두 번째는 흰 염소 털로 하는데 크기가 30큐빗*4큐빗, 처음(28큐빗*4큐빗)보다 더 커요. 세 번째는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덮어요. 네 번째는 해달의 가죽. 이러면 어지간한 바깥 온도와 관계없이 내부 온도가 유지가 되겠지요. 이렇게 해서 안정이 되는 겁니다.
10분 쉬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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