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사(20160402토) - 전도서 7:13-14 - 이 근호 목사
주례사(20160402토) - 전도서 7:13-14 - 이 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125.136.25.28)
주례사(20160402토) - 전도서 7:13-14 - 이 근호 목사
성경말씀 전도서 7장 13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전도서 7:13-14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결혼이라는 것은 남녀가 만나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바른 가정과 행복한 가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그냥 결혼하기 전에 남녀가 만나는 것은 자기들의 고집과 자기가 살아온 환경을 그냥 유지하면 돼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것은 그게 아니에요. 자기가 살아왔던 그 방식에 집착하고 그것을 지탱하려고 한다면 올바른 가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엄청난 양보와 그리고 자기를 비워내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감내해야 되고, 자기로 인해서 생기지 않은 일인데 상대방 배우자를 위해서 생긴 일도 자기가 감수해야 돼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의 가정이 된다는 것, 남녀가 만나서 결혼이 된다는 것은 마치 이 땅에 새로 태어난 그 순간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옳은 가정,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다시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 결혼식 이것이 이제 시작이거든요. 결혼식으로서 모든 가정의 행복이 전부가 아니에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가정 내에서 두 분이 변해야 됩니다. 사람이 달라져야 됩니다.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늘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일사각오적인 마음가짐이 되지 아니하면 사람이 옛 습관을 쥐는 버릇 때문에 그 버릇 그대로 버티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의 만남을 통해서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알았던 모든 것은 이제 버리고 상대방을 통해서 내가 다시 거듭나야 돼요. 새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그 가정은 뭐가 되는가? 안식처가 돼요. 기존의 안식처는 뭐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가 입히고 먹이신 그 태어난 가정이 나의 안식처였다면 이제는 부모도 떠나고 모든 일가친척보다도 뭐가 우선되어야 되는가? 바로 처음 만났던 그 상대방이 나의 새로운 짝이 되어서 거기서 둘만의 새로운 안식처를 이제 만들어가야 돼요.
안식처를 만든다는 것은 없는데서 있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처럼 창조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창조의 힘은, 옛날 내가 편안하게 살던, 혼자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 혼자서 멋대로 했던 그것을 전부 다 처리해야 되고 그것을 버려야 돼요. 포기를 해줘야 돼요. 포기할 때 혼자 힘으로 안 되거든요. 그래서 상대방이 있는 겁니다. 상대방을 통해서, 둘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만나서 결혼했는데 막상 살아보니까 달라도 너무 달라요. 평생 살아왔던 가정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너무 달라요.
그러니까 그 때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옛날 안식처를 그리워하면서 그쪽으로 자꾸 되돌아가려는 어린애 같은, 퇴행하는 어린애 같은 버릇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뭐가 됩니까? 나 하나보고 결혼했는데, 새로운 안식처를 만들고자 각오해서 결혼했는데 옛날 버릇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 그 옛날 안식처가 우리의 미래를,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이제 부모는 늙어 가시고 주변 친구들도 각자 가정이 다 있는데, 이제는 사나죽으나 우리끼리 해결해야 될 문제인데, 그런 문제에 있어서 양보 없이, 희생 없이, 자기를 낮춤이 없이, 포기 없이 어떻게 제 2의 안식처를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렇게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뭔가 일이 잘 되고 기쁠 때는 ‘이것은 내가 잘해서 그렇다.’라는 생각을 옛날에는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포기해야 됩니다. ‘왜 이렇게 행복하지? 왜 이렇게 기쁘지? 아, 이것은 그 원인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정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그냥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구나.’ 그래서 나로 인하여 기뻐하고, 잘난 체하고,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 자기 자랑하는 그것이 옛날 전의 버릇이라면, 지금은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은혜로 주시고, 공짜로 주시고, 아무것도 그만한 가치 있는 일을 안했는데 하나님께서 행복을 주셨다.’는 것, 항상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는 그런 식으로 하게 되면, 점점 더 마음이 낮아집니다.
둘이 결혼을 했습니다. 대화를 합니다. 서로가 고집이 있어요.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잘 되었어.” “아니야. 나 때문에 잘 되었어.” 둘이 다 서로 원인을 고집하게 되면 그것은 제 2의 안식처가 아니고 옛날 혼자 살던 시절로 되돌아가 버려요. 그러면 둘 다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못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 둘 다 그렇게 마음을 하나님 쪽에서 원인을 찾게 되면 절로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 안식처가 되는 겁니다.
두 번째 그것만 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생각하라는 말은 아직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옛날 버릇을 여전히 처리하지 않고 옛날 고집을 그대로 끌고 왔다는 겁니다. 생각하라는 그 말은 뭔가 바꿔야 되는데, 바꾸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참에 다시 바꿔야 된다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수시로 어려움과 힘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자, 그렇게 두 개를 하나님께서 병행하신다고 했거든요. 두 개를 병행하게 되면 어떤 혜택이 주어지느냐 하면, 제 3의 안식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영원한 안식처에요. 그 영원한 안식처는 뭐냐? 우리가 행해서 누리는 곳이 아니고 전부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서만 가득 찬 세계가 천국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에게 매일같이 햇빛과 공기를 주시고, 심장을 뛰게 하시고, 발걸음을 세시고, 머리카락도 지켜주시고 보호하신 그 세계가 영원한 안식처에요.
인간이 살면서 행복한 가정 만드는 것, 그거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그것은 한시적이에요. 나중에 나이 많이 들고 정신없으면 싸우기 마련이고, 여러 가지 문제로 다투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마다 ‘그래, 이 눈에 보이는 가정이 전부가 아니야. 다른 천국, 영원한 안식처가 있어.’라는 것을 생각하고, 염두에 두고 그 쪽 나라에 가려면 가정에서부터 깨어져서 새롭게 또 거듭나야 되고 천국 갈만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그것을 위하여 말도 안 되는 두 사람, 남녀가 만난 거예요. 티격태격 하면서 고집은 고집대로 부스러기처럼 내려앉고, 그동안 남아 있던, ‘나는 잘났다.’ 하는 것, ‘나는 가치 있다.’ 하는 것, 다 쓰레기처럼 내려놓고 서로 못난 사람끼리, 제 3의 안식처를 위하여 미리 사람 바뀌라고 주께서 이렇게 못난 두 사람 붙여줬다는 것, 이것이 바로 결혼의 의미입니다.
살아가면서 이 세상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천국을 생각하고, 행복한 일이 있을 때는 천국에서 선물이 주어졌다고 늘 마음을 낮추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연인지 결정적인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서로 몰랐던 남녀지만 천국을 위해서 미리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깨어질 수 있는 것은 깨어지게 하시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감사케 하옵소서. 그래서 주께서 친히 간섭하시는 귀한 행복한 가정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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