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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2 - 망신살강의잠언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2 - 망신살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2 - 망신살

16,03,2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잠언서는 삶의 지혜다 !!

우리가 잠언서를 계속해서 공부해오고 있는데, 정리를 해보면, "잠언서는 지혜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앞에 글자를 하나 더 붙이면 '삶의 지혜' 라는 것이다. 삶의 지혜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해결책이 여기 잠언서 속에 있다는 말이다. 즉 "잠언서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인데, 어떤 지혜인고 하니 삶의 지혜인데, 그러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해결책은 잠언서에 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잠언서는 성경에 들어있는데,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는가? 성경을 펴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세상에서 유력한 사람을 만나서 아부를 하면서 자문을 구하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성경에 해답이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성경은 자기가 천당에 가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자기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그게 잠언서를 거쳐서 온다는 사실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은 말씀을 거쳐서 오기 때문에, 세상적인 해결책은 해결책이 아니라 더욱 더 궁지에 몰아넣는다는 말이다. 고린전서 3장 21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라고 하는데, 그렇게 만물이 돌아가고 있는 모든 움직임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하나의 구심으로 해서 모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고전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강의를 다시 하겠는데, "잠언서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인데, 어떤 지혜인고 하니 삶의 지혜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 지혜를 통해서 풀려고 하지 않고 세상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미 모든 해결책이 다 들어있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들어있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이 세상의 움직임이 성경말씀대로 움직이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절망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이 성경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노선과 빗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노선을 같이 타고 가면 되는데, 그 노선에 있으면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수긍이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만 엉뚱한 것에 신경을 쓰다가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경은 죽어서 천당에 가는데 필요한 책이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라고 말이다.

분명하게 성경말씀 때문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데, 그런데 자기 때문에 이 세상이 돌아간다고 여기는, 그렇게 두 개의 다른 노선을 생각한 게 되고 만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해결책을 성경에서 찾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지금 자기 노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부동산이 오르지 않는다" 라고 하면, 우리는 그것은 성경말씀과는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데, 부동산값이 오르지 않아서 팔기도 그렇고 사기도 그렇고 고민이라고 하면, 하지만 그것은 이미 성경에 해답이 나와있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다는 표정들인데, 아이가 자라는데, 몸이 자꾸만 아프고 자폐증 같기도 하다면, 그 해답이 이미 성경에 나와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은 성경의 범위 안에서 일어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동산과 성경이 무슨 관계가 있는고 하니, 이런 것은 목사고시를 칠 때 시험문제로 하면 좋은데 말이다. 가게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하면, 그 해결책이 이미 다 나와있다는 것이다.

그게 교재 159페이지에 보면 나와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거기에 잠언서의 성경구절이 몇 군데 나오는데, 24장 11절과 22장 9절을 찾아보자.

(잠 24: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잠 22: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해결책이 되는가?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잠언서가 지혜라고 했는데, 이 지혜가 어떤 지혜인고 하니, 삶의 지혜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데, 다른 말로 하면 그게 '현실' 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현실과 무관한 성경구절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현실을,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것을 현실로 보지 말고, 말씀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현실로 보자는 말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부동산이 오르는지 오르지 않는지, 혹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지 마는지, 장사가 잘 되는지 안 되는지, 그런 것을 모아서 현실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당신의 마음은 선한 쪽을 지향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여기 잠언서는 뭐라고 하는가? 22장에 보면,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라고 하는데, 그러면 여기서 뭐라고 할 수 있는고 하니, 부동산의 경우에, "부동산 장사를 하는 당신은 선한 눈, 즉 선한 마음을 가졌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 해결책과 연결되는 질문이 된다는 것이다. 즉 "부동산이 오르든 내리든 당신의 마음은 선한 쪽을 지향하고 있습니까?" 라고 말이다.

설령 아이가 아프다가 삼일 뒤에 죽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여전히 당신의 마음은 선한 쪽을 향하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 것, 그런 질문을 던지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부동산이 폭락하고, 또한 아이가 아픈 사태를 하나님 쪽에서 일으켰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지혜에 합당한 분, 온 몸에 해답을 둘둘 감고 오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솔로몬 당시에 남방 여왕이 지혜를 찾기 위해서 그를 찾아왔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솔로몬 이야기를 자기에게 적용시킨다는 말이다. 즉 "솔로몬 때에 지혜를 얻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것처럼, 지금 이 시대는 나를 찾는 자가 없구나"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그러니 진리가 무엇인지는, 이 세상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우리의 만남이 있고, 아이는 아프고 장사는 안 되고, 그리고 기차는 달리고,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그러다가 그만 불시착을 해서 사람들이 죽고 말이다. 왜 그런 일들이 생기는고 하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야기를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세대가 악하기 때문인데,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렇게 부추기고 의도적으로 하신다는 말이다.

◈ 선악자체를 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인간 !!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선악자체를 선으로 볼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가 선한 마음을 가졌다고 자부하는데, 하지만 성경에서 선악과는 독자적으로 있는 게 아니라, 선악과나무의 모습은 반드시 생명나무와 결부해서 그 선악과가 어떤 나무인지가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그래서 선악자체를 선으로 본다고 하면, 그런 인간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추방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더럽다. 그만 꺼져라!" 라는 것인데, 그러면 선악을 안다는 것이 왜 더럽고 세속적이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되느냐는 말이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 세상의 부동산과 그 모든 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기 아이가 아프고, 또한 총선을 치르고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 인간은 왜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자격이 없는가?" 라고 하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선을 추구하면서도 왜 선한 인간이 될 수 없는지,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이런 일들이 지금 이렇게 일어나게 하신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공통적으로 들이닥치고 우리에게도 찾아온다는 것이다.

◈ '나' 라는 것을 독자적으로 유지하게 되면 !!

그래서 제가 여러 번 강조했지만, '나'로부터 출발하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이야기한 '우리' 라는 것, 즉 인간전체를 하나님은 동일하게 보신다는 것을 우리가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를 똑같은 존재로 보신다"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도토리 키재기' 라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키를 재도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이고, 그리고 다람쥐에게는 동일한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나' 라는 것을 자꾸만 독자적으로 유지하게 되면, 자꾸만 자기의 의미만이 의미이고 남의 의미는 의미가 아니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담의 자손을 동일하게 보시는데, 즉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는 것이다. 모두 죄인밖에 없다는 것으로, 그렇게 동일하게 취급하신다는 말이다.

◈ '하나님의 이름'과 '사람의 이름' !!

그렇게 동일하게 취급하시면서, 그것을 '사람의 이름' 이라고 하는데, 즉 "너희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여겨도 내가 보기에는 그냥 사람일뿐이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집어넣어서, 성도에게는 이 하나님의 이름에 의해서 사람의 이름이 박탈을 당하고 교체가 되도록 하는 작업을 하시는데, 그것을 지혜를 통해서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지혜가 있다고 여기는 자들은 다 나와라.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지혜는 어디서 나온 지혜인고 하니, 선악과를 따먹은 벌로 인해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먹지 못하게 추방된, 그런 의미가 너희들 속에 꽉 차있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 두려움 없는 사랑 !!

나라가 아무리 어려워도 사랑하는 연인들끼리는 행복한데, 지금 조국이 망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의 그 사랑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1944년에 유럽 폴란드에 두 개의 적이 생겼는데, 하나는 쫓겨가는 독일군이 폴란드를 공격한다는 말이다. 그때가 2차대전 막바지인데, 그들이 1939년에 폴란드를 점령했지만 이제 도망을 가면서 학살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폴란드를 해방시킨다고 하면서 쳐들어온 군대가 러시아인데, 그렇다고 그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러니 폴란드는 여기에 치고 저기에 치고 했다는 말이다. 침략군도 학대하고, 그리고 해방군도 학대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두 연인의 사랑은 계속해서 유지가 되었다고 하면, 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고 고귀한 사랑으로 보이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폴란드가 그렇게 두 번이나 공격을 당하도록, 독일과 러시아가 번갈아 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누가 하셨는가? 하나님이 하셨는데, 무엇으로 말인가? 하나님의 지혜로 하셨다는 것이다. 삶의 지혜로 말이다. 잠언서를 하면서 그 삶이 방향성이 있다고 했는데, 그 방향성은 우리가 전쟁의 난리에 있던지 말던지 간에,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잠언서 24장 11절에 보면,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 이것을 폴란드 전쟁에 그대로 적용시켜보자는 것이다. 애인과 사귀던 말던 간에 이 전쟁도 주님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믿는 사람은, 전쟁이 터지던 말던, 애인과 헤어지던 말던, 거기에 상관없이 복된 사람이라는 말이다.

제가 이렇게 예를 들었으니, 이것을 여러분의 인생에 적용을 시켜보라는 것이다. 제가 말한 취지를 잘 알았지 싶은데, 아브라함이 그런 전쟁통에 있었다는 말이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여러 나라들이 전쟁 중에 있었는데, 두 패로 나뉘어서 말이다. 그렇게 '4:5'로 싸웠다는 것이다.

(창 14:1)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창 14: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 아브라함이 가는 발걸음 발걸음마다 !!

그런 와중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던 소돔이 속한 5개국 연합군이 그만 상대방 연합군에게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롯이 적들에게 잡혀갔는데, 그래서 조카 롯을 구하려고 할 수 없이 아브라함이 나섰다는 것이다. 말이 국가지 요즘 같으면 그냥 동네라고 봐도 무방한데,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것은 창세기 19장이고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는 동시에, 아브라함이 가는 발걸음마다, 그가 가는 환경에서, 별 의미가 없어 보이던 소돔과 고모라가, 그 마을이 결부가 되면서, 15장에 있었던 일로 인해서 19장에 오면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져서, 그때부터 지구상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그만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아간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사건은,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전도를 하면서 뭐라고 하시는가?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소돔과 고모라가 당한 심판보다 더 심한 벌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의 입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다시 거론된다는 말이다.

(마 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마 11:21)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마 1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그러니 인간은 자기가 태어나서 사는 그 짧은 시간은 좁은 구역이 전부라고 여기는데, 물론 그것이 개인으로 보면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동일한 시선까지 우리가 격을 높여서 가게 되면, "모든 인간은 도토리 키재기처럼, 니가 나는 동네든 내가 사는 동네든, 그 어느 동네에도 하나님의 사건과 연루되지 않은 것은 전혀 없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폴란드의 경우에도 아브라함이 전쟁한 것과 같이 보자는 말이다. 그래야 말씀이 현실 속에서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소돔과 고모라가 제일 살기 좋은 땅이라고 여겨서 서로 차지하겠다고 전쟁을 하는데, 여기에 아브라함이 등장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

무슨 말인고 하니까,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면서, 그게 창세기 17장에 나오는데, 즉 15장과 19장 사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거기에 누가 개입했는고 하니, 약속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것이다. 그 여호와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창 17:1)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창 17: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창 17: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창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 너는 지금 무엇을 지향하는가?

그러니까 부동산값이 떨어지고, 아이가 아프고, 장사가 안 되고,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이름이 개입되지 않은 곳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유발시켰는데, 도대체 왜 그렇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니가 지금 무엇을 지향하는가?" 라는 것이다.

자기가 부동산을 샀는데 그 값이 내려가면 당연히 답답한데,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인가? 그것은 바로 '나' 라고 하는 개인적 의미를 탈피하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다시 한 번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적용이라는 것이다.

결혼해서 힘들게 아이를 낳아서 6개월만에 그만 잃어버리고, 그리고 사업을 하다가 그만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서 왕창 다 말아먹었다고 할지라도, 자기에게 하늘나라의 시민권이 있다고 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잠언서 24장에서 이야기하는 선한 마음이고, 그것이 곧 예수님이 가셨던 길이라는 말이다.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하박국 선지자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라고 하는데, 그런데 옛날에는 농경시대이기 때문에,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달린 다른 곳에 취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도, 아니 파견직이라도 자동차 공장에 취직이 안 된다는 말이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농경시대에는 땅에서 난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게 최후의 목숨을 연명하는 시대인데,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박국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주의 이름에 의해서 점령을 당한 모습 !!

우리는 자꾸만 해결책을 찾아달라고 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 해결책을 주시는 당사자, 즉 "내가 나를 보는 의미와 하나님께서 나를 보는 의미와 틀린다" 라는 것을 우리가 항상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매일같이 염려와 걱정 속에서 그 대안을 요구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던지 간에,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이고 오케이였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그 어떤 행동을 했던지 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예'가 되고, '아니오'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인데, 이런 안목은 어디서 생기는가? 그것은 바로 독자적인 '나' 라는 의미를 떠나서, 하나님이 보시는 안목에 접근하니 그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에 의해서 점령을 당한 모습, 그게 바로 자기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잠시 어제오후 설교를 !!

어제 오후에 했던 설교를 여기서 잠깐만 언급하면, 끝나고 나니 아쉬운 점이 남아서 말이다. "말씀은 예수님에게 집중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진멸을 당해도 마땅한 이방인으로 여긴다" 라고 했는데, 물론 기억이 감감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진멸을 받아도 마땅한 이 경계선을 두고 이스라엘은 어떠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너희들, 보이지? 저 이방 민족들이 보이지? 저것들은 소도 돼지고 간에 모두 진멸을 당해야 한다" 라고 하면, 이쪽에서는 "야호, 신난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다시 하나님께서는 "신날 것 없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이스라엘의 내부에 그들과 동일한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서 진멸을 당하지 않는데, 진작에 진멸을 당해야 하지만 말이다.

◈ 진멸은, 사랑을 받은 흔적 !!

이 진멸이 왜 중요한고 하니, 이게 바로 사랑을 받은 흔적인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한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진멸을 당해야 마땅합니다" 라는 생각도 없이, 하나님의 주권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것은 신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그렇게 이렇게 뭔가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내가 이것을 알아서 어떻게 천당에 갈까?" 라고 싶어서 하는 것인데, 하지만 그렇게 나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가 진멸을 당해야 마땅한 대상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다는 말이다.

◈ 이웃사랑은, '예수님의 영광된 몸'으로까지 !!

그러면 여기서 제가 무엇이 미진하다고 여겼는고 하니까, 주님에게 "제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했을 때, 모든 것을 다 주님에게 일임하고, 즉 "너는 손을 떼라.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연자 맷돌의 밧줄을 다 끊고 말이다.

그렇게 해놓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시는고 하니, 이웃사랑을 하시는데, 그런데 여기서 뭔가가 빠진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웃사랑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셨는데, 여기 '네 몸'이 누구인가? 그것이 예수님에게 흡수가 되면, 예수님의 영광된 몸이 된다는 것이다. 즉 부활의 몸이라는 말이다.

(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러니 진멸을 당해야하는 쓰레기와 같은 우리 인간을, 그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고 하니까, 예수님의 몸이 부활해서 된 영광된 몸, 바로 그 몸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이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해야만 하는 예수님의 자기 숙제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웃을 예수님의 영광된 몸으로 전환시킬 때까지 주의 일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말인가? 삶의 지혜서 통해서, 어떻게 말인가? 현실을 통해서, 어떻게 말인가? 이 세상을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 당신은 너무 합니다 ♬

그러니 모든 것은 주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는 없는데, 그런데 우리가 왜 절망하는가? "주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 너무 하십니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김수희가 "너무 합니다. 당신은 너무 합니다 ♬" 라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말이다(ㅋㅋ). 자기 의미에 대해 흠집을 내지 말아달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런 의미를 가지는데 수 십년이 걸렸으니, 그게 얼마나 아까운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부자가 농사가 잘 되어서 창고를 지으면서 뭐라고 하는가? "이제 평생을 먹고 살아도 되겠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는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너의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러니 하나님은 작전을 어떻게 벌이시는고 하니, 창고를 지을 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창고를 짓고 난 다음에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일군들에게 임금을 다 주고,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준공식을 마치고 난 다음에 그만 데리고 가신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식을 잘 키웠다고 해도, 엄마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욥처럼 모든 것을 다 빼앗기더라도, 즉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지를 우리에게 물으신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아무도 그런 마음이 없는데 말이다.

◈ 끝까지 주의 이름으로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잠언서마저도 홀라당 가지고 가버리는데, 우리에게 들이밀어서 안 되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안 되지? 그러니 까불지마" 라고 하시면서 가지고 가버리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께서 가지고 가심으로서, 자기의 이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뀌는데,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자기 이름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이름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아닌 주님의 기도의 응답으로 우리가 이만큼 살아왔고, 앞으로 천국에 갈 때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그 이름의 성과로서, 그 결과물로서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끝까지 주의 이름 이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데, 이것은 영지주의도 아닌데, 저를 보고 자꾸 영지주의라고 공격을 하는데 말이다. 그런 말을 붙일 필요도 없고, 이게 성경전체의 내용이고 복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쪽에서 성령을 받아서 뭔가를 지키겠다고 한다고 하면, 그 마음이 심히 수상한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내 방식대로 하면 안 되니 말씀을 지켜서 내가 원하는 것을 획득해보겠다" 라고 하는 것인데, 그런 시커먼 흑심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 맛살이 아닌, '망신살' !!

그런데 이러한 흑심은 처음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무엇이 있고 난 다음에 생기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그게 '무슨 살' 인데 말이다. 주부라고 하면 얼른 생각나는 것이 맛살이나 조갯살뿐이지 싶은데 말이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이 이것인데, 그게 역마살인가? 그것이 바로 '망신살' 이라는 것이다(ㅋㅋ).

이게 뻗치게 되면 동창회고 뭐고 아무 곳에도 나가지 못하는데, 이런 망신살이 뻗치면 자살까지도 한다는 것이다. 자기 아이를 4년 전에 죽인 것이 그만 들통이 나서 엄마가 자살을 했다고 오늘 뉴스에 나왔는데, 물론 이게 죄책감이기도 하지만 역시 망신살이라는 것이다.

요즘 이렇게 자기 자식을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끔찍한 사건이 매일 같이 터져 나오는데, 물론 과거에도 있었지만 모르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 엄마는 그만 찜통에다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그럴 때는 대부분이 번개탄을 사용하는데, 찜통이나 번개탄이 전혀 그런 용도가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그런 망신살이 있으니, 죽기 전에 교회에 와서 기도해서 빨리 회복하려고 하는데, 그게 바로 흑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끝까지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다" 라는 것으로서, 그것은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채로 버티겠다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서 말이다. 즉 "나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그래도 버티겠다. 어쩔래?"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심어놓으신 것은, 사람을 상대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악마를 체포하기 위함인데 말이다. 그러면 악마가 분명히 인간을 유혹할 것인데, 왜냐하면 인간을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그런데 그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에, 악마는 인간을 하나님의 대행자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인간을 건드리면 하나님의 인상을 찌그러질 것이 분명할 것이고, 마귀는 바로 그것을 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지 말라는 것을 결부시켜서 유혹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마귀의 유혹을 당해질 인간이 없는데, 인간은 그런 유혹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 하나님께서 마귀를 왜 만들었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마귀를 왜 만들었는가? 그것이 지난 수요일에 한 설교였는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십자가 의미를 드높이기 위해서, 그 십자가 사건의 주동자를 따로 고안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귀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런 마귀를 왜 만들었느냐는 것에 대한 해답은, 신이 존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2000년 신학이 이런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신학이 자꾸만 하나님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교회를 키우기 위해서 그랬다는 말이다.

교회는 사람들이 납득이 되어야 모이는데,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읍시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아하, 하나님은 나처럼 살아있구나. 그러면 살아있는 하나님을 믿어야지" 라고 나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신자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 신자 같은 불신자 !!

지금 여기에 무엇이 빠졌는고 하니, 이것은 이방종교들이 다 하고 있는 것인데, 자기 존재의 의미를 하나님이 키워줄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보는 것은,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심보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즉 마귀의 유혹에 빠졌다는 말이다. 그러니 불신자보다 더 못한데, 신자라고 하면서도 불신자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불신자면서도 신자라고 우기니까 마귀는 이용해먹기가 딱 좋은데 말이다. 신자가 되어서 예수까지 믿으니까, 이제는 착한 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만 남았는데, 그런데 그것이 통 채로 불신자의 모습이란 것을 자기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마저 진멸을 당해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 니 속에는 괴물이 들어있어 !!

주님께서는 '나' 라는 존재의 의미를 후벼파는데, 그것을 위해서 주님은 이 현실을, 즉 부동산값이 떨어지고 아이가 아프고 장사가 안 되고 하고,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미를 팽창시키고자하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아직도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악마의 횡포라는 말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가서, "거울을 보면 니가 예뻐 보이지? 하지만 니 속에는 괴물이 들어있어" 라고 하시는데, 괴물이 자기의 예쁜 얼굴 뒤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 예쁜 얼굴을 마스크로 삼아서, 그 가면 뒤에서 흑심을 품고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악마는 바깥에 있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데, 종으로 부려먹는다는 것이다. "제대로 똑바로 해.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망신살이 뻗치게 될 거야" 라고 말이다. 이 '망신살'을 오늘강의의 제목으로 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인간은 배후에서 악마가 시키는 대로 꼼짝도 하지 못하고 하게 되는데, 망신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하나님의 아들자랑 !!

이런 전체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 이름을 빛내는 것인데,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모든 현실이 누구의 이름이라는 것인가? 하나님의 이름,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이 땅에 실체로 왔으니 그것이 곧 주의 이름인데, 즉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십자가의 공로를 빛내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마감시킨 작업,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그 '다 이루었음'을 자랑질하기 위해서, 성도로 하여금 이 땅에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사건들이 벌어지게 하신다는 것이다.

(방금 목사님의 어머니가 도착하신 것 같음) 요즘 말년의 우리 어머니를 보게 되면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울어도 명량하자" 라는 것인데, 그렇게 진멸을 당해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정작 자기 자신을 명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는 망신살을 당해" 라고 하면서도 웃자는 말이다. 즉 "누가 너를 정죄하더냐? - 아무도 없나이다" 라고 하는 능력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된다면, 남들이 보기에 인생이 망했다고 하는데, 정작 자기는 웃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웃고 있는 것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 윤동주의 '서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자기의 의로움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과는 말이다. 어제 뭐라고 했는가? 마귀에게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했는데, "그래,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하게 되면 마귀가 왔다가도 재미가 없어서 그냥 가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 살을 찌우자 !!

부산에 이창섭 목사님에 계시는데, 그분이 터럭을 몰고 다니시는데, 지금까지 자기가 100만KM를 탔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엄청난 거리인데, 보통 사람들은 일년에 2만KM 정도를 타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 정도를 타려고 하면 사람의 몸이 얼마나 망가지겠느냐는 것이다.

그분이 그런 간증 아닌 간증을 중국집에서 하면서, 그렇게 100만KM를 타는 동안 사고가 두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사고가 나서 운전석으로 뭔가 치고 들어왔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작별을 고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분이 몸무게가 백키로가 훨씬 넘는데, 그 엄청난 뱃살이 에어백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간증의 핵심은 "살을 찌우자"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ㅋㅋ).

그런데 그 목사님은 그런 일을 당하면서 웃고 있는데, 그 목사님은 평소에 표정도 그렇지만 말이다. 그 큰 덩치에 애교가 있는 얼굴인데, 물론 웃는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웃음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것이 아닌데, 자기에게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게 자기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아마 지금도 화물차를 몰고서 부산에서 경기도 용인을 왔다갔다하지 싶은데, 그 '100만KM' 라는 것은 목사님의 인생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지금이 50대 중반이니 자기의 모든 청춘이 그 100만KM에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200만KM가 되고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웃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도 명랑하게 말이다.

(녹취 구 - 목사님, 그 천진난만한 웃음 주위에 이제는 주름도 제법 생겼겠네요. 그동안 연락이 없어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군요. 저도 인천에 온지 벌써 10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는데, 보고 싶군요.)

그러니 자기에게서 손을 떼야하는 것이지, 물론 운전대에서 손을 떼면 안 되고 말이다(ㅋㅋ).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면, 즉 '나' 라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뽐내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하면, 그것은 생명나무열매를 따먹을 수 없는 이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생명나무의 세계에서 쫓겨나서 저주받은 바깥 세계로 나올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여기서 교재 159페이지에 있는 잠언서 3장 27절과 28절을 살펴보자.

(잠 3: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잠 3: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 나는 왕 바리새인이었다 !!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한다면, 그런데 우리에게는 반드시 이것을 마중 나가는 배후세력이 있는데, 그게 바리새인이라는 말이다. 2년 전에 아마존에서 20년 동안 사역하시다가 암으로 돌아가신 선교사님이 계신데, 우리교회에도 엠프도 기증하셨는데 말이다. 최근에 그분에 관한 책이 두란노 서원에서 나왔는데, 그 제목이 '나는 왕 바리새인이었다' 라는 것이다. 아직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말이다.

이것을 풀이하면, 방금 우리가 본 잠언서 3장 27절과 28절과 관련해서 말이다. 지금까지 제가 강의한 것에 의하면, 현실은 지혜로 만들었기에 지혜 덩어리인데, 그 지혜는 무슨 지혜인고 하니, 삶의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해결책은 성경책에 다 있는데, 왜냐하면 현실이라는 것 자체가 성경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서 고린도전서 3장의 말씀을 언급했는데,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너희 것이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성경말씀의 범위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전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고전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렇다고 하면, 여기서 잠언서 3장 27절과 28절의 말씀이 우리에게 온다고 하면,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 라고 말이다.

그렇게 말씀이 왔다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의 배후세력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마중을 나가는데, 그래서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라고 하면, "그렇지. 나는 베풀 힘이 있지. 하나님을 믿으니 말이야" 라고 하기 마련인데, 우리의 배후세력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배후세력은 '나' 라는 것을 그만 독자적 의미로 고정을 시키고 마는데, 즉 "니가 잘 되어야만 하나님도 잘 된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자기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시도인데, 하지만 우리의 이름은 어떠한가? 우리에게 침공을 한 예수의 이름에 의해서 교체가 되어야하고 삭제를 당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배후세력은 그것을 싫어한다는 말이다.

◈ 이재용 회장님, 당신은 망하는 자입니다 !!

그것을 하기 전에 먼저 고린도후서 4절 3절을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라고 하는데, 이것이 설명되어야만 잠언서 3장이 설명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망하는 자들'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인 이건희 회장으로 보면, 그분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니까, 그 아들인 이재용으로 보면, 그에게 복음이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고후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러면 삼성의 이재용 회장이 과연 자기가 망하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겠는가? 지금 자기 때문에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가족들까지 합치면 백만 명은 족히 되지 싶은데, 그 정도로 자기가 우리나라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데, 그러니 자기가 왜 망하느냐는 것이다. 그 근거를 대보라는 나온다는 말이다.

◈ 내가 죄인인 근거를 대라 !!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왜 화를 내는고 하니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다는 말이, "내가 죄인인 근거를 대라"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죄인인 근거를 이야기해주면 되는가? 그러면 안 되는데, 왜 그러한가? 이게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 말이다.

◈ 인간은, 선악구조 안에 있기에 !!

왜냐하면, 자기가 말을 할 때는 그게 예수님의 의미가 아니라, 자기 잘남의 의미가 배후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을 보고 죄인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즉 자기에게 의미를 두는 선악의 구조 안에서, "이래서 나는 개떡이고 나쁜 놈이다" 라는 점을 설명해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어디 안에서 말인가? 선악구조 안에서 말이다. 그러니 그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 선악구조 안에서는, 자기가 선한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여기니, 아무리 이야기해도 뭐라고 하는가? "그러면 고치면 되지 뭐. 반성하면 되지 뭐" 라고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술을 먹지 않으면 되지 뭐. 바람을 피우지 않으면 되지 뭐"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자체 조정이 되기 때문에, 망하는 자가 되지 않는데, 즉 죄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은 무엇인고 하니까, 선악과를 따먹은 자는 무슨 나무는 안 된다는 것인가? 생명나무의 열매는 따먹을 수 없다고 하는, 그 생명나무 쪽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신다는 것이다. 이게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말이다.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라고 하니, 떡을 먹고 배부른 자들이 깜짝 놀란다는 것이다. "당신이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냐?" 라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자기를 생명의 떡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곧 생명나무의 열매라는 것인데, 그래서 그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예수님께서 창세기 3장과 관련을 지어서 요한복음 6장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는 말이다.

(요 6: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따라온 사람들은 무엇인고 하니, 생명나무와 상관이 없이 선악을 알았으니, 즉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선하고, 믿지 않는 것은 악하니, 자기들이 예수님을 믿는 선을 행하면, 자기에게는 그것이 선한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가 이야기하는 바로 독자적인 의미인데, 자기 이름 안에서만 움직이는 독자적인 의미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를 여러분도 이제는 알았지 싶은데, 사람들이 독자적인 의미에 갇혀있기에 복음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성령을 받지 않아서 말이다. 성령이 오지 않으니까 자기가 알아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데, 자기가 죽어서 어디로 갈지 모르니 다급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보험을 들 듯이 무엇을 하나 걸쳐놓는데, 요즘 종편에 보면 보험광고를 얼마나 많이 하는데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서 평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말씀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주여,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되면 저는 망신살입니다" 라고 하면서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독자적인 의미 안에서 자기가 스스로 나갈 수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 꼬라지하고는?

그런 독자적인 의미를 확대시킨 것을 두고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그것을 '현실' 이라고 하는데, 혹은 '세상'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더 어렵게 말하면 '역사'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심코 뭐라고 하는가? "세상이 돌아가는 꼬락서니하고는?" 라고 하는데, 그때 말하는 그 세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 누락된 세상인가? 주의 이름이 빠진 세상이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야 마땅하다고 하는, 그런 일방적인 우김, 말도 안 되는 우김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뭐라고 하는가? "UN이 돌아가는 꼬락서니하고는?" 라고 했는데, 그것이 말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폭탄을 만들든 무엇을 하든, 왜 간섭을 하느냐는 것이다. 자기들은 마음대로 만들면서 말이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핵폭탄의 양이 얼마나 엄청난데, 미국에 비하면 자기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것인데,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왜 그렇게 시비를 거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김정은이 보는 세상이고 현실인데, 그러니 그것을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 울면서 명랑해 !!

예를 들어서, 집안식구가 4명이라고 하면 4명이 모두 다 다른데, 그 중에서 울면서도 명량한 사람이 최고인데 말이다(ㅋㅋ). 울면서도 명랑하다는 것은 제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고 하니, '아이 다섯' 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여자 주인공이 차를 그만 부수어서 유치장이 들어갔는데, 보통 사람들은 유치장에 가면 잠을 자지 못하는데, 걱정이 되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쿨쿨 잠만 잘 자는데, 그래서 거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본다는 것이다. "도대체 별이 몇 개야?" 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밥도 잘 먹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이 이야기를 하면 우는데, 그러니 울 때는 우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즐겁게 잘 지낸다는 것이다. 그것을 합치면 "울면서 명랑하다" 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울어도 별로 오래 가지 않는데, 그때그때 다르다는 말이다(ㅋㅋ).

◈ 복음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

그리고 고린도후서 4장에서, "복음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웠다" 라고 하는 것은, 돈과 권력과 지위와 상관없이 복음은 그런 것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학력은 어떻고, 아이큐는 어떻고, 그런 것을 모두 무시한다는 말이다. 왜 무시하는가? 주께서는 그 모든 것을 도토리 키재기하는 것으로 여겨서, '사람의 이름' 이라는 한 의미 속에 다 담아버렸다는 것이다.

(고후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아담의 족속이면서, 즉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 라는 것인데, 그러니 독자적으로 잘난 척을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복음을 제시하는데, 즉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수 없는 인간들에게 생명나무가 알아서 오신다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는 예수님의 자기 숙제, 아버지에게 받은 예수님의 자기 숙제를 제대로 완수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서 진멸시키는 솜씨를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즉 "너 같은 뼈다귀도 구원이 된다" 라는 것인데, 그게 바로 복음이란 말이다.

◈ 너희들이 영지주의다 !!

저를 보고 자꾸 영지주의라고 공격을 하는데, 이것은 영지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영지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영지주의가 그렇게 복음을 제대로 알았는지 싶어서 영지주의가 무엇인지 살펴보니, 전혀 그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말해서 "니가 알아서 구원을 받아라" 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자기들이 영지주의인데, 아닌 척을 하면서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저에게 덤탱이를 씌우는 것인데, 물론 주님이 다 알아서 처리를 하시겠지만 말이다.

◈ 마귀는, 실체가 아니기에 기능으로만 !!

그리고 여기 4절에 보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귀가 무엇인고 하니까, "목사님, 마귀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라고 한다면, 마귀는 실체가 아니기에 기능으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기능으로 나타날 때 그것이 마귀의 기능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고 하니, 십자가의 복음으로 모든 것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마귀의 기능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마귀가 드러난 현장은 어떠해야 하는고 하니, 마귀가 마귀로서 자기 정체를 밝히게 되는 기회는 복음을 전하는 현장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요?

그러니 자기들은 십자가의 복음도 모르는 마귀의 집단이면서도, 그런 마귀의 능력 안에서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을 받는 사람은, 어느 교회를 가든, 그 어느 장소를 가든 말이다.

심지어 절에 가도 그곳을 복음전파의 장으로 만드는데, 그게 전도고 선교라는 말이다. 그래서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꽂은 자리에서 주님이 해내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선교사가 따로 있는가? 복음을 아는 사람이 선교사이고, 그 사람이 있는 곳이 선교의 현장이라는 말이다.

◈ 로마에 도착한 사도바울 !!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런데 로마에는 누가 있었는가? 사도바울 이전에 이미 성도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복음을 전했는데,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그들이 성도가 맞고 또한 그들이 전한 것이 과연 복음이 맞는지, 그리고 그것을 들은 로마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이 과연 믿음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갔다는 것이다. 즉 "내가 전한 복음과 너희들이 받았던 복음을 비교해 보라" 라는 것인데, 즉 사도의 권위로 간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사도가 하나밖에 없는 교회의 기초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사도의 말은 요한계시록에서 끝나고 마는데, 그 다음부터는 사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성경을 들고 가면서, 그 핵심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즉 복음을 가지고 성경전체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죽음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 라는 것은, 그것은 성경전체의 핵심을 두고 말한다는 것이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나는 선을 베풀 능력이 있어 !!

다시 교재 159페이지로 돌아와서, 여기에 잠언서 3장 27절과 28절의 말씀이 있는데, 이렇게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라고 했다면, 이것을 받게 되면 인간은 어느 의미에 들어있다고 했는가?

독자적인 자기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잘 되어야하고 망신살을 당하면 안 된다" 라는, 그 자기 의미를 누가 구축해주었는가? 마귀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귀가 이 말씀이 온다면 마중을 나가겠는가? 나가지 않겠는가? 당연히 나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라고 하면, "암 그렇지. 나는 선을 베풀 능력이 있고 말고" 라고 하고, 또한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라고 하면, "당연하지 내가 아끼면 안 되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보니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당장 주어라" 라고 하면,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오늘 주면 되잖아" 라고, 그렇게 딱 계산이 나온다는 것이다.

(잠 3: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잠 3: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이게 무엇인고 하니, 아까 두란노 서원에서 나온 책제목이 뭐라고 했는가? '나는 왕 바리새인이었다' 라는 것인데, 바로 왕 바리새인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 자기의 독자적인 의미를 확대시켜서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가? 이왕 가는 것 하늘까지 도달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 우리는 예수님을 봤다 !!

그러면 여기에 무엇이 빠졌는가? 예수님의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인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열 제자가 모여있었을 때, 예수님은 문도 열지 않고 그냥 들어오셨는데, 그때 그 현장에는 도마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시고 난 뒤에, 뒤늦게 왔는데 말이다.

그러자 열 제자가 무엇이라고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봤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도마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는데, 그러면 그 나타난 예수님을 보고 도마가 믿었는가? 그게 아닌데, 보고도 믿지를 못했다는 말이다.

◈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 !!

그러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예수님이 도마의 손을 잡고 자기 옆구리에 넣어서 확인을 시켜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고서 믿었는데 말이다. 도마는 구멍난 거기에 손을 넣었는데, 그러니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죽었다' 라고 하는 말이다. 죽을 뻔한 것이 아니라, 물론 죽은 척도 아니고 말이다. 정말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도마가 믿은 것은 정말 놀라운 것인데, 왜냐하면 죽지도 않은 산 자가 죽음 이후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 그야말로 쇼킹한 일이라는 말이다. 충격적인데, 꿈에서 환상을 본 것이 아닌데, 손가락을 넣어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산 자의 손가락이 죽은 자의 흔적과 접촉이 가능했는데, 이것은 주님의 중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요 20: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 중계를 반복하기 위해서 오신 영이 있는데, 그 영을 '성령'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령은 항상 "너는 이미 죽었고, 진짜로 산 것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나의 살아있는 이 몸 안에 니가 같이 있기 때문에, 너는 죽었지만 내 몸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라는 것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잠시 이근호 과학 선생님을 모시고 !!

이게 과연 영지주의인가? 그러면 도마도 영지주의인가? 사람들은 왜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고 하니, 그동안 축적된 모든 의미가 자기만 납득이 되는 자기 선악체제의 범위 안에서, 그렇게 자기가 납득이 되는 것만 골라서, 그것을 자기 의미로 싸서 모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싸서 모으고 하다보니, 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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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