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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요한복음 9장 22절(가락-출교)160301b-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요한복음 9장 22절(가락-출교)160301b-이 근호 목사

이름 : 충성모(IP:61.77.84.230)

요한복음 9장 22절(가락-출교)160301b-이 근호 목사

둘째시간 시작해봅시다. 법을 예수님이 다 가져간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지금 23절부터 쭉 보고 있는데 바리새인들이 일방적으로 “네가 인정하는 예수는 우리가 보기에는 죄인인 줄을 몰랐느냐?”라고 기존의 법에서 유대인들이 이야기하지요.

“너 지금 예수님 만났다면서? 그 예수 이단이야. 몰랐어? 우리는 이미 결정했어.”그러니까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 출교될까봐 벌벌 떨고 있는 거에요. 지난 시간에 했는데 벌써 다 잊어버렸지요. 출교가 왜 무섭다고 했습니까?

나의 사람됨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주변이 나를 인간으로 대접해줄 때에만 내가 사람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정말 초라한 같으면 “욕해라.”가 되겠는데 사람은 그렇게 대범한 자들이 아니에요.

누가 나를 욕하게 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난리나요. “내가 뭐가 잘못됐는데, 뭐?” 이렇게 돼요. 그러니까 그 소경되었다가 눈 뜬 사람이 “나는 모르겠고”라고 피해버립니다.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25절)

자, 이제부터 아주 어렵습니다. 이것은 제가 설명을 꼭 하고 싶어요. “내가 아는 것은 그분으로 인하여 내가 눈을 뜨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입니다.”라고 했지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어떻게 눈을 떴느냐고 묻고 싶겠지요. 이게 아주 중요해요.

자, 소경이 있고 그 옆에 한 집단, 판사들, 검사들, 변호사들이 우르르 와가지고 “너는 이단이다. 너 죽인다.”라고 한다 이 말이지요. “야, 너 예수와 같이 있었다면서? 너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예수 때문에 네가 소경이 되었다면서?”라고 하니까 “나는 그 사람이 죄인인지는 모르겠고 다만 아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내가 소경이 되었다가 이제는 본다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결과물이지요. 그러면 원인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지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그 예수가 어떤 식으로 해서 네가 눈을 떴느냐를 물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 소경은 이 중간에 있는 과정에 대해서 압니까 모릅니까? 몰라요.

오늘날 교회에 이게 중요해요. 금식기도를 해서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거든요. 철야를 했다고 해서 성령이 온 게 아니다 이 말이지요. 십일조를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게 아니에요. 주일 성수 한다고 천당에 가는 게 아니거든요.

몸을 바치고 돈 바친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게 아니다 이 말이지요. 그런데 왜 십일조를 해야 되고 주일 성수를 해야 되고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하는 겁니까? 구원을 못 받아서 그래요. 구원을 받은 적이 없어서 그래요.

잘 보이면 행여나 두 번째, 세 번째 혹시나 좋은 기회가 오지나 않을까 하는 겁니다. 그것은 구원을 못 받았다는 그 티를 가리기 위해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새로운 법을 자기한테 짊어지운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원합니까? 교인들이 원해요. 교인들이 원하면 목사는 장단을 맞춰주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이거 원하지요? 목사님 어떻게 하면 구원 받고 복 받습니까? 그 방법을 원하잖아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이거 하시고 철야 하시면 방언 터집니다.”

방언이야 기도 열심히 하면 터지게 되어 있어요. “목사님 이렇게 하니까 성령 받은 거 맞지요?”라고 나오는 거에요. 그런데 믿지도 않는 둘이 같은 질서를 이루다 보니까 둘 다 서로 신자라고 치하하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젊은 분들에게 술 좀 먹지 말라고 해요. 왜 술을 먹지 말라고 하느냐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지난 주일날 결혼하신 박집사님이라는 분이 오셨길래 그 새댁을 붙들고 남편이 있는 데서 남편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내가 길게 설명했어요.

일단 결혼을 했으면 남편의 경제권을 다 뺏어버려야 된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돈이 없으면 남편의 동선이 파악이 돼요. 용돈을 주게 되면 남편은 있는 용돈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멀리 뛰지를 못해요. 어디서 뭘 하는가가 다 파악이 된다고요.

두 번째는 술을 못 먹게 하라고 했어요. 술을 먹으면 사람이 허풍을 떨게 되어 있어요. “나 이렇게 잘 나가.”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면 분위기로 봐서 이 사람이 보증을 서게 되어 있어요. 사직서 내고 직장 때려치우고 투자하고 사업하게 되어 있다고요.

‘나 이 정도로 죽을 남자가 아니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뿌리라도 잘라야지.’라고 하면서 사기꾼한테 넘어가게 되어 있어요. 본인 주제 파악을 못하고 사업을 벌여가지고 몽땅 다 날리게 되어 있어요.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어린 자식한테 담배가 안 좋아요. “아버지도 피웠는데?” 이렇게 되면 건강에 안 좋아요. 마약 같아서요. 냄새도 나고 꽁초를 버리게 되면 사회적 공익에 해롭고요.

그래서 그 세 가지를 남편이 옆 방 10cm 거리에 있는데 이야기했거든요. 이야기를 해도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새댁이 벌써 가져갔어요. 경제권을 다 뺏어가 버렸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 얘기로 빠졌지요?

구원 받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지요.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구원의 모든 방법이 저 소경이 눈 뜨는 데에는 적용이 안 되네요. 그들이 알고 있는 천국에 가는 방법을 그 소경에게 아무리 적용해도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화가 나는 거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메타니즘(절차)에서 벗어나 버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단인지 아닌지 판정내리는 기준 자체를 자기들이 소유할 수가 없어요. 자기 손아귀에 쥘 수가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누가 아는가 하면 소경이 알아요. 당신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질책할 수 있는지 그 기준을 나는 모르겠고 다만 나는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뭡니까? 나는 어떻게 해서 구원(성령) 받았는지 모르겠다.입니다.

왜요? 성령을 바람같이 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내가 오라고 해서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고 바람아 멈추어다오라고 해서 구원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모르겠고”라고만 하면 돼요. 방언을 어떻게 하는지 나는 모르겠고 다만 지금 구원 받았다는 사실이 믿어진다면 그뿐이에요. 그뿐이에요.

내가 교회를 옮겨서 구원 받는 것도 아니고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에요. 복음을 들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아야 돼요. 그러니까 이러면 돼요. “내가 복음을 잘 들었기 때문에..”라고 한다면 몇 시간 듣는 것이 잘입니까?

질적인 문제를 양적으로 규정할 수가 없어요. 두부를 한 박스 사는 것은 되는데 사랑 한 박스를 어떻게 삽니까? 요즘 시세가 어느 정도 됩니까? 이게 안 되거든요. 믿음, 의라고 하는 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육체적인, 물질적인 인간의 육으로 행동을 똑바로 한다고 해서 그 질이 양에 담기는 게 아닙니다. 그냥 결과물이에요.

그것을 우리는 주께서 하셨다고 합니다. 왜?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차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하셨다는 말은 내 쪽에서 새삼스럽게 손댈 것이 있다 없다? 손댈 게 없어요. 공식 하나를 제가 적겠습니다. 용서는 죄를 유발한다. 용서 받고 난 뒤에 죄를 덜 짓는 게 아니고 본격적으로 죄가 나타나기 사작합니다.

용서를 받기 전에는 본인이 본인을 구원해야 돼요. 그래서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서 성화되어가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경우에만 구원이 돼요. 본인이 나서야 돼요. 본인이 주체가 되어가지고 말씀을 읽되 그냥 말씀만 읽으면 안 되고 실천에 옮겨야 되고 묵상만 해서는 안 돼요. 묵상해서 그걸 현실적으로 구체화시켜줘야 돼요.

자기가 원인이 되어서 나온 어떤 결실물들이 있어야 돼요. 술을 끊든지 담배를 끊든지 회개를 한다든지 뭔가가 있어야 돼요. 그런데 그 방법은 이미 누구의 레이다에 걸려들었습니까? 예수님을 평가한 유대인들이 이미 다 가르친 것이고 그 동안 구약을 가지고 사람들이 그렇게 해왔던 거에요.

그걸 묻는 거에요. “네가 어떻게 되었느냐?” 소경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나는 모르겠고 다만 눈을 떴다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이 나한테 어떤 작업을 했는지는 나는 모르겠고 주님이 와서 나았다는 그것만 저는 이야기할 뿐입니다.” 하니, 유대인들이 “네가 예수님과 한 패냐?”라고 합니다.

자꾸 한 패냐고 하는데 한 패이기 때문에 소경이 눈을 뜬 것은 아니잖아요. “주님은 저하고 한 패입니다.”라고 하니까 눈을 뜨게 해줬습니까? 아니지요. 한 패도 아닌데 눈을 뜨게 해줬잖아요. 꼭 우리 같아요. 예수님이 오셔서 믿음을 지키기 전에 예수님이 우리와 한 패입니까?

한 패가 어딨어요? 자기 편밖에 없지, 무슨 한 패가 있어요. 26절에 봅시다.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네가 무엇을 하였기에 눈을 떴느냐고 묻는 거에요.

그러니까 거기 27절에 말하기를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다시 말해 “내가 이미 일러줬잖아요. 나는 결과물이라고요.” 그렇게 일러도 못 듣는 거에요. 소통이 안 돼요.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니이까” “답답합니다. 직접 당신들이 제자들까지 만나보세요.”

라고 하니까 28절에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라고 하거든요. 이 소경이 속으로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러면 나를 눈 뜨게 하든지..’ 왜? 자기들 원칙에서는 거룩한 안식일을 우회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주어지는 법이 없다는 거에요.

그런데 소경은 뭡니까? ‘그것은 네 생각이고 안식일 법을 안 지켜도(안식일 법을 안 지켰다는 것은 모든 법을 안 지킨 거지요.) 성경이 이렇게 두껍고 여기에 나오는 그 많은 법을 하나도 안 지켜도(사실은 하나도 못 지킨 거지요.), 어떤 것도 안 지켜도 구원이 된다는 것을 왜 못 믿습니까? 나를 보고 믿어야지요.’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쪽에서는 ‘법을 안 지키면서 구원을 받는 그런 법은 없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소경이 하는 말이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나는 한 것도 없는데 소경에서 눈을 떴습니다.’ 지금 그 논쟁이에요. 들어보니 굉장히 쉽지요? 그런데 이것을 기존교회에 적용을 시키면 이것이 문제가 되어 버려요.

구원을 받는 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러면 성경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는 뭘 해야 됩니까? 1.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2. 복을 받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뭘 해야 된다. 몇 번입니까? 맨날 2번만 정답인 것은 아니지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지요.

왜 그러냐 하면 이미 구원을 받을 때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구원해주겠다는 그 원리가 장착되어 있지요. 그런데 구원 받을 때 법을 안 지켜도 구원이 된다면 구원 받은 자에게는 모든 법을 누가 몽땅 가져갔다는 말이에요?

우리한테 주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홀로 가져가셔 가지고 홀로 법을 지켜서 그 효력, 효과가 우리한테 일방적으로 제시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복을 받을 만한 남아있는 그런 계명이 있어요 없어요? 홀라당 다 가져가서 우리에게는 없는 거에요.

뭘 개코나 지켜야 복을 받고 벌을 받는데 이건 뭐 죄를 짓고 싶어도 어길 계명이 없는데 무슨 죄를 지어요? 그러니까 죄를 지어야 저주를 받으므로 저주를 받을 일이 없다 이 말입니다. 또 복을 안 받고 싶어도 이미 주께서 제시한 효력 아래에 복을 주기로 작정된 자이기 때문에 “아이고, 제발 복 그만 주세요.”라고 말린다고 해서 안 올 복이 아니에요.

추석이나 설이 되면 우리 김중우 집사님이 주소를 아는 사람에게 택배를 보내줘요. 아무리 들어도 모르는 우리들끼리만 아는 비밀입니다. 그런데 그 택배가 올 때 “도로 가져가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지요. 왜? 요청해서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오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김중우 집사님 선물뿐만이 아니고 구원도 그래요. 이미 하늘의 복이 내 기뻐하는 자에게 내가 기뻐해서 신부에게 드레스를 주겠다는 거에요. 요한계시록 21장에 화려한 신랑의 격에 맞는 신부의 격에 맞춘 화려한 영광을 주겠다는데 우리가 거부할 잽이 됩니까 안 됩니까? 거부할 자격이 안 돼요.

강도가 “오늘 밤에 저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멘트를 안 한다고 해서 지옥가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거기에서 주고받고 역할을 한 거에요. ‘아, 구원은 일방적이구나.’ 그리고 일방적으로 구원했을 때 ‘그리스도에게 모든 주도권이 넘어간다는 고백이 입에서 나오는구나.’를 표현한 거지요.

30절에 봅시다.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쉽게 말해서 “솔직하게 당신 무식하지?”에요. 그리고 이상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무식한 인간이 무식한 주제에 눈을 뜨게 한 우리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이러쿵저러쿵 평가를 했다는 거에요.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박하겠습니까? 아까 반박했지요. “어떤 기적도 안식일을 위반해서 오는 기적은 가짜고 마귀적이다.”라는 식으로 하겠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 소경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한 거에요. 왜냐하면 자기가 처음부터 눈을 뜨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왔습니까? 아니지요.

그는 행인1이에요. 길을 가는 중이었는데 붙잡힌 거에요. 그리고 그냥 눈을 뜬 거에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주님한테 이용을 당한 거지요. 숨겨진 주님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는 그냥 가던 길을 가면 되는데 멱살을 잡혀가지고 그냥 끌려온 거에요. 여기서 하나 정리합시다.

소경은 메시야 기능의 증인이 되는 겁니다. 무슨 기능이냐 하면은 이 소경은 사회적으로 벌거벗은 생명,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요한복음 9장 2절에서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 사람이 소경된 것은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 죄 때문입니까 아예 죄인이라고 단정짓고 한 거에요.

그 말의 뜻은 “예수님 우리는 소경이 아니니까 지금 저주 받지 않고 복 받은 것 맞지요?” 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예수님을 모르기는 똑같아요. 그러면서도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우리가 바로 이런 저런 경우를 다 겪고 있다는 것을 요한복음 9장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구원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해요 저렇게 해요?”라는 식으로 다 생각하는 거에요. 31절 봅시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이 말은 소경이 예수님을 변호하는 거에요.

32~34절에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라고 되어 있지요.

추방을 통해서 메시야의 증인의 기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경이 눈 뜨고 그 다음부터는 빠이빠이 했습니까? 소경이 눈을 뜨면 그 역할이 다한 것이 아니라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을 통해서 주변에서 갑자기 시비를 걸지요. 시비를 거는 상황이 벌어지는 그것이 십자가를 질 때 예수님이 당하는 상황을 선취(미리 앞당김)해서 예고편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기준으로 해서 이 소경은 십자가 이전의 예고편을 보여줬다면 십자가 이후에 구원 받은 사람은 이와 같은 경우처럼 우리를 통해서 이 세대에 보여줍니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구원 받았다는 이 소리밖에 안 했는데 “네가 아마츄어가 되어가지고 이 총신 나온 나를 가르치느냐?” 이렇게 나온다니까요.

“너 그런 식으로 하면 교회 되겠어? 네가 구원 받은 것은 좋은데 헌금도 안 하고 예배 참석도 안 해버리면 교회는 누가 운영하고 교회 형광등하고 모든 비용, 내 월급과 건물 관리비는 어디에서 나오는데? 너도 머리가 있거든 생각을 해봐라. 구원 받았는데 헌금도 안 하고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

“교회 꼬라지 좋다. 너 같은 인간들만 있어서 예배 드리고 다 도망가버리면 청소는 누가 하는데? 여럿이 있으면 돈 쓰는데 돈 낸 적 있나?”라고 나올 때 여러분은 뭐라고 답변해야 돼요? 실컷 배워도 소용이 없다니까요. 답변도 못해요. “푼돈 드릴까요.”라고 할까요, “아, 예수 믿었으니까 값은 해야 되겠군요.”라고 이야기할까요,“예수 믿었으니까 티는 내야 되겠군요.”라고 이야기할까요.

“교회가 있어도 구원이 안 되는데 왜 그런 걸 합니까?”라고 해야 돼요. 교회가 유지되어도 교회가 유지되기 때문에 구원이 생기는 겁니까? 지금 소경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아니잖아요. “교회를 만들었더니만 구원이 되더라.” 지금 이게 아니지요. 뭐라고 했습니까?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구원 되었잖아요.

그러면 구원 앞에는 항상 뭐가 있어야 돼요? 어떤 문제도 무엇으로 번역해야 돼요? 이게 아무것도 아님으로 번역해야 돼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래서 헌금을 안 한다가 아니라 헌금을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담겨서 헌금해야 된다? ‘이 헌금하는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해야 되고 헌금을 받는 교회측도 “여러분이 헌금했는데 이 헌금한 것이 개뿔도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된다 이 말입니다.

교회 나오는 것도 복잡해요. 이런 이야기까지 붙여야 되니까요. 자식이 어느 날 복음을 듣고 나더니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자식이 하는 말이 “아버지 나는 아무것도 안 해서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하면 아버지께서 “밥 먹지 마라.”라고 합니까? “그래? 밥 먹어라.” 그런데 자식은 이미 알아요.

내가 밥을 먹는다고 해서 구원 되는 것이 아니고 젓가락질을 바르게 한다고 해서 구원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저는 60이 넘었는데 아직도 젓가락질을 못하는데 이거 해서 구원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온 가족이 화기애애한 거에요.

아버지는 월급을 타도 “얘얘, 월급 좇지 마. 월급으로 네가 구원 받는 게 아니야.” 이러면서 내니까 전부 다 자기 부인이 되는 가정, 참 이상적인 가정이지요. “여보, 철 바뀐다. 나 백화점에서 옷 하나 살게.”라고 하니까 남편이 하는 말이 “그래, 옷 사도 구원하고 상관 없으니까 옷 사.” “여보, 이왕에 옷 사는 김에 다른 것도 하나 살게. 이거 사도 구원하고 상관 없으니까 살게.” 얼마나 화기애애합니까?

왜 그렇게 못 살아요. 왜? 전에 이야기하기를 자유란 내 행동에 어떤 선택도 책임지지 않는 게 자유라고 했지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용서 받은 자에게는 뭐가 나오기 때문이에요? 비로서 네가 모르는 네가 모르는 네 자리가 어떠한 자리였다는 것을 용서 받고 난 뒤에 이제는 다시 찾아가는 거에요.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그래야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 용서 받고 난 뒤에 이 주전버리를 먹든 안 먹든 상관없이 구원이라는 말은 마음대로 이것을 먹음에 대하여 선택이나 책임을 안 져도 되는 거에요. 여기에 일본 방사능이 있다고 해도 “있어? 그럼 먹고 싶어. 방사능 맛도 한 번 볼까?” 이래가지고 죽어도 괜찮아요. 왜? 죽어도 그것과 구원하고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에요.

내 행동에 대해서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구원 받지 않은 상태라면 늘 조마조마 해요. ‘내가 마음속으로 또 잘못된 생각을 했는데 이것 때문에 자식한테 영향이 미쳐서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는 게 아닌가, 내가 바보같이 새벽기도할 시간에 다른 짓을 해가지고 아버지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라고 하면서 거기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게 바로 기존의 세계에서 이러이러한 존재가 될 때 너는 아버지다워라고 하는 평판이 이미 내 속에 나의 법으로 담겨 있었고 우리는 그 내가 만든 나의 잘남의 법에서 출교될까봐 우리는 날마다 노심초사 두려워하고 있는 거에요.

요한복음 8장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라고 했는데 말뿐이에요. 성경에 단어와 문장만 나왔지 우리는 자유를 구경도 못했어요. 북한 사람이 남쪽으로 오는 게 자유가 아니에요. 북한 사람은 북한에서 그냥 사는 게 자유에요. 북한 사람이 남쪽이 신앙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핑계입니다.

자본의 맛을 보겠다는 자유겠지요. 주님은 33살밖에 안 살았잖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한 40년 살면 됐지 남은 여생을 거기서 살다가 왜 기어내려와가지고 저러나 모르겠어요. 여기 34절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이것을 통해서 이미 그 당시 신학을 우리가 정립할 수 있어요.

소경이 된 것, 특히 날 때부터 소경이 된 것은 분명히 본인의 죄는 아니에요. 이것은 부모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부모의 죄 때문에 죄가 저주를 받아서 온다는 것은 가문의 저주이지요. 가문의 저주는 근거가 출애굽기 20장에 나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겨버리면 그 죄가 삼사대까지 이른다”라고 했어요.

사무엘상 2장에 보면 엘리(아버지)가 한 잘못으로 인하여 자식들에게 죄가 일어나고 그 죄로 인하여 그 뒤에 엘리 가문이 작살이 나버립니다. 아들이 패가망신해버리지요.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가문을 살리기 위해서 나부터 똑바로 해야 내 후손들이 잘되는 구나.’라고 생각하겠지요. 이게 벌벌 떠는 거에요. 이게 아직도 나는 쓰레기가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구약에는 잘하면 복을 받고 못하면 저주를 받는 조건부를 뒀지만 신약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어요. 이 말은 이스라엘이 이미 망한 이유를 찾아봐라 이 말이지요. 잘해보려고 시도했던 그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을 네가 몰랐잖아. 죄를 안 짓고자 하는 그것이 죄가 된다는 그 사실을 이스라엘은 알겠지요. 망한 사람은 알겠지요. 망해도 모르지만 하여튼 다른 사람은 그걸 몰랐어요.

잘하겠다는 말은 그 선입견이 뭐에요? 아직도 나는 쓸 만하다는 뜻이에요. 60이 안 되었는가? 그런데 이 사람이 쓸 만해버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하면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죄를 지어도 아주 조상 대대로 죄를 지었다고 우리가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내가 나한테 적용시키는 판정을 그 소경에게 그대로 적용시켜 버리면 내가 본의 아니게 그 사람을 나보다 못한 2급 시민, 나보다 더 저주 받아야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그 사람을 바라볼 때에 ‘아이고, 저 소경은 안 되었네.’라고 하지 않고 ‘도대체 저 인간은 무슨 죄를 지어서 저렇게 소경이 되었는가?’ 하면서 그 사람의 신상털기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당신 한 번 털어볼까요?

서울대학에 합격하면 착합니까?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사람들 신상 털고 그냥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의 신상 털면 거기에 차이가 나는 거에요? 경제적으로 말고 질적으로요. 차이없어요. 35절 봅시다.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이 사람이 증인이 되지요. 그러면 유대인들이 그 소경을 쫓아냈다는 말을 달리 이야기해서 예수님의 결과물을 그 시대의 공동체에서 추방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오실 메시야의 증인입니다.

예수님이 당했던 것 아까 히브리서 13장에 그분이 성문 밖에 추방당하잖아요. 추방당하는 그 지점이 하늘과 접선(콘택트)되는 지점이지요. 예수님은 추방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여, 내 때가 되었군요. 스케줄 상 성경대로 나는 죽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는 스케줄이 있고 스케줄대로 쫙쫙 맞추어서 지킬 때만 지키는 거에요. 소득의 1/10을 드린다고 해서 십일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정 지키고 싶으면 억지지만 이렇게 하세요. ‘주여 십일조 낼까요 말까요 낼까요 말까요 때가 되매 냈습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데 미리 아는 때는 주님만 아시고 성도의 때는요 지나가고 난 뒤에 늘 후회하면서 다시 확인되는 게 때에요. ‘울면서 후회하네.’ 늘 울면서 후회하듯이 ‘아, 내가 잘난 체를 했구나. 내 힘으로 신앙생활 했다고 내가 착각을 했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에 35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좀 힘든데요 힘들어도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힘들어요. 35절에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했거든요.

이것에 대해 설명을 필히 해야 됩니다. 인자가 뭐냐? 지난 낮설교인가 제가 정리해드렸지요. 다시 한 번 정리합시다.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란 구약의 말씀대로 등장해야 될 인물을 말합니다. 구약의 말씀이니까 이것을 두 자로 하면 이걸 언약이라고 합니다. 언약대로 등장해야 될 존재를 인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인자라는 말을 누구에게만 씁니까? 예수님 본인만 썼지요. 그러면 예수님을 빼놓고는 인자가 아닙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빼놓고 아무도 구약을 몽땅 다 완성시킬 위인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자라는 말이 여러 군데에 나오지만 대표적으로 다니엘 7장에 나오지요.

인자는 처음에 하나님의 보좌와 함께 있다가 파견 근무하듯이 하늘에 있다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지요. 내려오는 그 과정이 중요합니다. 내려오실 때 인자로서 내려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의 인자로서 오시는 거에요. 그래서 누가 메시야냐 할 때에 자기 호칭을 뭐라고 붙이느냐를 보고 네가 알아채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뜻이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를 내가 지어낸 게 아니고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예수님께서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어요. 그러면 구름을 타고 온다는 예언은 어디에 나옵니까? 다니엘 7장에 나오잖아요. 그때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내가 구름 타고 온다가 아니라 자기를 뭐라고 합니까?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한다면 너희들이 그렇게 (다니엘 7장에서) 기다리던 메시야가 이미 구름을 타기 이전부터 먼저 뭐로 온 거에요? 인자로서 온 거에요. 지금 제 말 이해하시겠습니까? 인자라고 온 거에요.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올라가잖아요. 구름을 타고 올라갈 때 옆에서 멍청히 보니까 천사들이 뭐라고 얘기해요? 왜 자꾸 하늘을 쳐다보느냐?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실 분이라고 하지요. 그러면 이것은 어디와 연결을 시키라는 말입니까? 다니엘 7장과 연결시키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다니엘 7장과 연결시킨다는 말은 예수님이 달랑 구름을 타고 오는 게 아니고 다니엘서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전부 다 동반해서 와르르 쏟아지듯이 다시 오시는 거에요. 그래서 다시 오신다는 말은 새삼스럽게 오시는 것이 아니고 원래 지상에 있을 때에 인자 됨을 다 못 보여준 거에요. 어디에 가려있기 때문에요?

육신에 의해서 그 영광됨을 못 보여줬다가 이제는 그 주님께서 다니엘의 예언대로 그 육신의 몸이 영광된 몸으로 바뀌어지게 되면 그때 그 영광스러운 몸으로 이 땅에 다시 등장하는 거에요. 그러면 십자가 믿고 또 재림을 믿는 게 아니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이 바로 그분인 거에요.

십자가 지신 그분이 오시는 거에요. 그래서 복음(구원)의 내용은 재림도 아니고 부활도 아니에요. 뭐냐하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왜? 십자가에서 바로 인간과 매치되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부활했는데 너는 부활 못했지? 약 오르지? 나는 재림하는데 너는 재림도 안 되지?’ 이게 아니고 ‘나는 너를 대신해서 네 죄를 가져오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바로 모두 다 이루었다.’ 그야말로 요한복음 식으로 다 이루었다의 핵심 부분이 됩니다.

그래서 이게 제 말이 아니고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복음이란 것은 뭐냐? 그리스도가 죽은 것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한다. 십자가가 복음이에요. 십자가 그 다음에 부활이 복음이 아니고 재림이 복음이 아니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십자가는 안다고 집어치워버리고 그냥 재림이 온다고 흰 소복 맞춰가지고 1992년 10월 18일에 온다고 높은 산에 올라가는데 생각해보세요.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말은 우리를 뭘로 본다는 말입니까?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죽은 자잖아요. 죽은 자는 기다릴 게 없어요. 죽은 자는 왜 기다릴 게 없느냐 하면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물을 마셔야지 이야기가 돼요. 오전에 써먹은 건데 우리 이명직 강도사님 참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컵이 있고 다 먹고 남은 곶감 씨가 있어요. 자꾸 우리는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거에요. 예수를 믿으면 곶감 씨,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거에요. 왜? 성경말씀에 그게 법이니까요. 예수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자꾸 믿으려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보는 게 아니고 우리는 이미 권력 속에 있다고 했지요. 곶감 씨를 컵 속에 집어넣어 버려요. 그러면 이 사람은 이미 아담의 죄 속에 놓여있다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게 뭐가 돼요? 아담이 벌여놓은(전파한) 또 다른 죄의 양상이에요. 구원 받고자 하는 게 죄에요.

구원 받고자 해서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 아까 한 것을 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묻겠습니다. 소경이 어떻게 해서 눈을 떴습니까? 아무것도 한 게 없다니까요. ‘나 소경 되어야지 그래서 우리 아버지 팔자를 고쳐야지.’ 이래서 구원 받은 게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한 게 없음을 계속해서 말하기 위해서 구원 된 거에요.

그냥 지나갔다니까요. 내 뜻도 없어요. 그냥 걸려든 거에요. 그런 것처럼 지금은 아담(컵) 안이 아니고 예수님(다른 컵) 안에 들어가버리니까 우리가 보여요 안 보여요? 컵에다가 써야 돼요. 오늘 컵 버렸어요.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거에요. 보고도 몰라요? 보고도 안 믿어지지요.

그리스도 안에 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이 안에서 그 환경 때문에 의가 되어버려요. 환경 때문에요. 그런데 이 사람을 끌어내가지고 백날 착한 일을 해봐야 이미 그리스도 밖은 죄가 되어 버린다니까요. 헌금을 하든 기도를 하든 전도를 하든 선교사를 보내든 죄가 돼요.

그러면 죄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본인은 죄, 의라는 게 성립이 안 돼요. 왜? 안에서는 예수님이 하는 일로 의가 되는 거에요. 예수님 때문에 의가 되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 때문에 의가 되는 일은 없어요. 그런 법은 성경에 없어요.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법은 없어요.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이 소경처럼 내가 예수 안에 있는 그 결과물임을 내가 믿게 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믿는 것이 아니고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까 나한테는 묻지 마세요. 왜 자꾸 나한테 묻습니까 이런 퉁명스러움으로 이야기가 나와야 돼요.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자꾸 나한테 헌금했다고 하는데 저는 헌금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헌금하게 하셨습니다.” “아이구 성도님은 겸손하게도..” ‘겸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겸손한 게 아니고..” “그래도 성도님은 어젯밤에 10만원 봉투에 넣었잖아요.” “글세 봉투에 돈을 넣게 하는 마음도 내 마음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다니까요. 요한복음 9장처럼. 나는 주께서 벌이고 있는 일의 결과물이라니까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듣는 그쪽에서 기분이 나빠서 “주님이 당신 안방에 계셔서 자꾸 귀신처럼 왔다갔다 합니까?” “어느 방에 계시는지 나도 모르는데 다만 내가 주와 함께 있다는 게 믿어지는 결과물로 있을 뿐입니다. 어떤 메카니즘으로 안방에 있다가 부엌에 가셨는지 나는 모르겠고 다만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렇게 조져놨다는 것이 안 믿어지는 것이 정상인데 그것이 믿어지는 것을 나에게 따지지 마세요.”라고 하는 거에요.

그 보이지 않는 주님께서 37절에 나타납니다.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주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38절에 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했는데 비로소 믿는 게 아니고 “이미 그 동안 믿어왔던 것이 주께서 중심이 되어서 나에게 이런 결과를 야기시킨 것이 맞지요 내가 그것에 동의합니다.”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하는 말이 우리 둘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는(물론 고스톱이라는 말은 안 나오지만) 겁니다. 왜? 우리 둘이 역할극을 하고 연극을 했다는 겁니다. 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요거 하고 마치겠습니다. 아까 그 출교 이야기를 합시다. 그 당시에 법이 가득 차 있는 세상, 유대인 세계에서 소경은 어떻게 소경이 되었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의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소경이 된 것 맞지요? 그러면 그들의 이론에 의하면 소경은 죄인이고 저주 받은 것이 맞습니다. 맞지요?

그러면 거기에서 눈을 뜬 사람은 누구 때문에 쫓겨났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그 사람은 죄인 취급을 받았고 쫓겨났지요. 그 쫓겨난 공간에 지금 누구와 함께 있어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저쪽을 쳐다보고 있지요. 홍해를 건너와 놓고 애굽을 쳐다보는 관점이에요. 홍해를 건너가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고 이미 홍해를 건너와 놓고 보지요.

그러면 소경이라는 한 단어가 상황이 다르면 정 반대되는, 대충돌 되는 다른 개념으로 서로 대립이 되겠지요. 같은 소경인데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주님 쪽에서는 뭡니까? 저쪽이 주님을 모르기 때문에 소경이 되게 하는 거에요.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벌을 받으면 하나님께 저주 받은 소경이 된다는 말이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제 질문입니다. 그들의 말에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서 소경이 된다는 말이 맞아요 틀려요? 오늘 강의 허사다. 맞아요 틀려요? 이게 맞는 이야기라니까요. 죄를 지으면 저주 받아서 소경이 됩니다. 그런데 소경이라는 그 컨셉이 뭐가 됩니까? 주님이 봐서 눈을 뜬 너희들이 소경이다. 왜냐? 그래야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것을 보고 뭐라고 하면 됩니까? “주여 소경이 여기 왔습니다.”라고 하면 돼요. 간단하게 구원을 받아 놓고 “주여 제가 바로 눈 뜬 소경입니다.”라고 하면 돼요. “몰랐었더랬습니다.” 행함으로 십일조 하고 주일을 성수함으로써 그게 예배이고 교회가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어야 되는데 자꾸 한 게 생각이 납니다.

예수 믿고 난 뒤에 티를 내야 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에베소서에 나온 것처럼 구원 받았느냐 이제는 서로 용서하라 이것 해야 구원이 유지될 줄로 알았습니다. 이게 바로 구원 받지도 못했으면서 구원된 티를 낸 것인데 그 이유는 남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인정하는 신도, 그들이 인정하는 성도로서 계속 지속하려는 나의 이 마귀적 습성 때문에 그들과 한 통속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지요. 오늘 강의 제목은 뭐로 하면 좋겠습니까? 계속 하다 보니 생각이 안 나가지고.. 제가 지어낼 게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일방적으로 하신 일에 대해서 우리들은 결과물일 뿐인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결과물이기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뭘 해도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인 것을 증거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요한복음 9장 22절b.hwp (61.0K), Dow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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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3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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