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강-YouTube강의(은사)160315-이 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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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미아(IP:122.43.169.34)
147강-YouTube강의(은사)160315-이 근호 목사
제 147강, 제목은 ‘은사’입니다. 은사라는 말은 쉬운 말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실 때에 그걸 어떻게 주느냐, 성령을 통해서 선물을 준다는 겁니다. 보통 이 세상에서 선물 받을 때는 사람이 사람에게 선물을 주죠.
근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는 어떤 특정 사람에 따라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게 됩니다. 그 선물을 주게 되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죠. ‘내가 선물을 받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성령이 주신 선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성령을 통해서 주시기 때문에, 그걸 ‘성령을 받았다.’ 라고 할 때 주의해야 됩니다. 내가 여기 있는데, 하나님의 선물 받기 전에도 나였는데, 선물 받은 후에도 나다. 이렇게 돼버리면 보통 인간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에게 선물 줄 때하고 똑같이 돼버리죠.
어떤 사람이 나한테 선물을 줄 때, 그 선물을 주고 난 뒤에도, 선물 받은 내가 선물 받기 전의 나하고 똑같은 인간이죠. 그거는 분명한 사실이죠. 그런데 성경은 달라요. 어떻게 다르냐면,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실 때 성령을 통해서 주시기 때문에, 성령 속에 함께 성령이 담고 있는 그 취지와 더불어서 선물이 오는 겁니다.
그러면 선물의 취지가 뭔지 우리가 알아야 되는데,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영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그 성령 말고,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일이 완료되고 난 뒤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우리 인간에게 주실 때, 그때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거든요.
은사, 그 선물 안에 내용이 뭐냐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은 인간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그 의미가 거기에 포함이 되어 있어요.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의미, 취지가 성령을 통해서 은사로,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면 받는 우리가 ‘내가 받았다.’가 아니라, 나를 죄인 되게 하신 작업에 내가 이제 휩싸이게 되었다. 말려들었다. 그런 쪽으로 은사가 받아져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했더니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셨다.’ 이게 은사가 아니고, 은사라 하는 것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십자가 지신 그 의의가 우리와 만나서, 이제 우리를 가지고 예수님이 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해서 남은 세상에 교회 안에서나 또는 바깥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은사를 주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의 되풀이, 또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반복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긴긴 말을 짧게 하면, 예수님의 은사를 받게 되면 ‘나는 없다.’ ‘나는 없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없다고 할 때 그 나는 뭐냐 하면 내가 생각했던 그 나는 이제는 없고 주님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나가 은사를 통해서 드디어 내 속에서 확인되고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이런 이야기 했어요. 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근데 그 모든 것이라는 것은 본인이 기대한 모든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을 시키니까, 주님께서 일을 시키고 또 함께하신 그것의 모든 것입니다.
내가 예상한 모든 것이 아니고, 왜? 왜 내가 예상한 모든 것을 들어주지 않느냐 하면 나는 없기 때문에 내가 기대한 모든 것은 다 묵살이 됩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묵살됨으로써 계속해서 ‘나는 없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죄인이라서 내 뜻대로 들어주게 되면 하늘나라에 지장을 주게 된다.’ 그런 취지가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성령이 왔다는 것은 예수님만 의인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의인을 죽이게 된 죄인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꾸 티내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의 은사가 오게 되면 은근슬쩍 우리는 그 은사가지고 뭔가 나름대로 갖고 있던 포부와 비전과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 은사라는 성령의 힘을 이용하려고 덤벼들겠죠.
바로 그 덤벼드는 그 속성이 예수님을 진즉에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사탄적인 속성이 내 안에 있음이 더 주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가 오게 되면 항상 나는 죄인이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죄인중이 괴수다. 그리고 이런 나를 십자가로만 구원했기에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사, 또 감사, 찬양, 고마움을 드릴 뿐이다. 이것이 은사 받고 난 뒤에 나오는 열매가 되겠습니다.
따라서 그 은사에 대해서 로마서 12장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절,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은사가 오게 되면, 그 은사의 기능은 인간들이 갖고 있는 죄를 들추어내어서, 십자가와의 만남을 주선해서, 이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또는 예수 안에서 어떻게 의롭게 되어서 거룩하게 되었는가를, 새삼스럽게 그걸 보여주면서 피조물 입에서 영광을 받고 주님이 찬양받는 그 목적이 있거든요. 있다면, 은사가 오기 전에 인간들은 자신의 잘남과 자기 의를 고수하게 되어 있어요.
근데 그 고수할 때, 어떻게 자기 잘남을 아느냐 하면 남들과 비교하면서 그렇게 알게 돼요. 저 사람은 저렇게 잘 됐는데 나는 어느 정도냐? 저 사람은 얼마를 가졌는데 나는 이것뿐이냐? 그 사람보다 못하면 화가 나고. 그 사람보다 잘나면 우쭐대고. 그것이 인간의 단체, 집단에서 그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죠.
그런데 그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게 되면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게 돼요. 그 믿음의 분량이 뭐냐 하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주께서 일을 하기 위해서 이런 은사를 줬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누구하고 비교하거나 대조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되죠. 이것은 뭐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에 합당한 것이 되는 겁니다.
남들은 기도를 두 시간해도 지치지 않는데 나는 3분만해도 지친다, 이것을 열등의식 갖거나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3분하는 것마저도 주께서 하게 하신 일인 것을 자기가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고 부자가 되고, 근데 나는 예수 믿는데 갈수록 점점 더 사건이 일어나서 있는 돈도 날리게 됐을 때에 거기서 짜증내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어요.
왜? 내가 살아가는 자체가 믿음의 분량대로 주신 성령의 활동영역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성령의 은사는 항상 나라는 것이 애초부터 없고 주님에 의해서 다루어지는 그 나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나올 때, 이거 성령의 은사 받은 거죠.
로마서 12장 6절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이 말은 뭐냐 하면 “달라도 상관없지?” 라고 우리에게 묻는 겁니다. “믿음의 분량이 달라도 니 상관없지? 감사할거지?” 어떤 사람은 부자 되는 은사가 있고 나는 가난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 때문에 니 삐지거나 화내거나 안 할 거지?” 라고 묻는 식으로 이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일이면 가르치는 일로,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자로, 구제하는 자면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면 부지런함으로, 이게 어떤 일을 하던 간에, 이게 한 몸이기 때문에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라 이 말입니다.
그 한 몸이 뭐냐, 우리 안에 주님만 계시지, 우리는 아예 없는 존재로 다루어진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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