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1 - 바른 죄인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1 - 바른 죄인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51 - 바른 죄인
16,03,0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천국에서 살다가 오신 분 !!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교회에 오는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하는데, 그러면 천국을 미리 알면 된다는 것이다. 죽어서 가는 곳이 전부가 천국이 아닌데, 그게 지옥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천국을 미리 알면 되는데, 그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들의 생각은 이제 좀 버리고, 천국에서 사시다가 오신 분이 우리에게 알려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에서 살다가 오신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고 하니, 아무도 모르니 살지도 않았으면서 살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천국에서 살다가 오신 분은 유일한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죽었다가 하나님에 의해서 다시 살아나면, 그분만이 유일하게 천국에서 살다가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석가모니는 일단 탈락인데, 공자나 소크라테스 등도 물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을 믿고 동화사와 같은 곳에 가서 비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데 말이다. 천국에서 살다가 오신 분은 예수님뿐인데, 오직 그분만이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주 간단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분은 인정해주지 않는가? 목수의 아들이라서 그러한가? 이것은 오늘날 우리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예수님의 가족들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천국에서 살다가 왔다는 말인가? 같은 인간이야" 라고 했다는 말이다.
◈ 성령에 의해서 태어났다 !!
그래서 마태복음에 보면, 이번 수련회를 이 마태복음을 하려고 하는데 말이다. 여기에 보면, 초장부터 뭐라고 하는고 하니,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서 "성령에 의해서 태어났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육에서 태어난 보통 인간과 차별화를 하는 것인데, 즉 "육에서 태어난 인간은 믿지 말라" 라고 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래서 믿음은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인데, 왜냐하면 육에서 태어났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자기를 믿지 않고 성령에 의해서 태어나신 분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제 오후시간에 히브리서 7장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다" 라고 했다는 말이다. 뭔가 땅에서 뿌리가 잘린 듯한 느낌을 주는데, 없다는 것이다.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
그런데 모든 것이 없는 그분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은, 아주 논리를 비약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너희들은, 이 땅과 함께 몰살당할 각오를 하라" 라는 것이다. 3절에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라고 하면서, 24절에 보면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는 것이다.
(히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히 7: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히 7: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
(히 7: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 아무 것도 아닌 너희들 !!
이렇게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는 분이 영원히 살아서 제사장 역할을 한다고 하면, 그러면 우리는 무엇인가?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고, 족보도 있을지 몰라도, 영원히 살아있지 않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자신을 너무 좋게 보면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 인간들끼리 비교하면 자기가 최고인 줄 알지만,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과 비교하면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야 마땅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살다가 죽으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미리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좀 알자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자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의 소식을 전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고 예수님만이 영광을 받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신다는 것이다.
◈ 다시 정리하면 !!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것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오는데, 그러면 "천국은 이렇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 안 되고, 그런 이야기를 듣는 우리 자신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것과 병행해서, "천국은 이렇다" 라고 이해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에게 천국 이야기를 해주어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런 천국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래서 "그 정도의 천국이라면 나는 별로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스스로 천국을 판단하는데, 그래서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오늘 교재를 158페이지부터 하는데, 그 중간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잠시 교재를 살펴보자.
** 또한 마태복음 22장 7절에 보면, 임금님의 혼인잔치 초대를 거절한 자들에 대한 형벌이 나와있습니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라고 하는데, 그러니 철저한 보복이 가차없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자기 지혜를 사랑하는데,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님만 사랑해요.
(마 22: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22: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 22: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마 22: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마 22: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마 22: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 22: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마 22: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 22: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마 22: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마 22: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마 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천국은 어떤 임금과 같으니 !!
여기 2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라고 하는데, 이렇게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천국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 라고 나오는데, 즉 "천국이 얼마나 좋은 동네인가?" 라는 것을 우리는 듣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고 여기니 말이다.
보통 아파트를 새로 구입하게 되면 뭐라고 하는가? "방은 몇 개이고, 화장실은 몇 개이고, 또 부엌의 구조는 어떻다" 라고 나오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가 이번에 아파트를 샀는데, 그것이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 라고 하게 되면 듣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하지만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은 당연히 "인테리어는 어떻게 되어있고, 또한 보일러도 바깥에서 끄면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최신 홈오토시스템이 어떻게 설치되어있고" 라고 하는, 그런 소리를 듣기 원했다는 것이다. 물론 배는 좀 아프지만 말이다(ㅋㅋ).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우리 아파트에 어떤 노인네가 사는데, 그 사람의 아들이 어떻고" 라고 하게 되면,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국이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 우리의 선입관은 "내가 사는데 얼마나 쾌적한 환경인가?" 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데, 자기가 가서 살 천국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를 말이다.
◈ 다른 천국 !!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라고 하니, 그러니 우리가 평소에 기대하던 천국과는 어떠한가? 누가 답변을 해주면 좋겠는데,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방금 제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답변을 해버렸는데, 혹시나 '같습니다' 라는 대답이 나올까 봐서 말이다(ㅋㅋ).
이것이 다른데, 그렇다면 왜 다른가? "당신들이 기대하지 못한 세계입니다" 라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태복음 22장의 이런 내용이나, 그리고 13장도 그러한데, 그것을 빼놓고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라고 설교시간에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어쩔 수가 없어서 말이다.
아마 그런 설교를 들으면서 "왜 자꾸만 다르다고 하지? '천국은 좋습니다. 천국은 참 멋진 곳입니다. 우리 힘을 합쳐서 갑시다' 라고 하면 참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한 분들도 있지 싶은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마태복음 22장에도 나오듯이, 우리의 심판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천국이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즉 우리를 향한 심판이라는 것이다.
◈ 천국과 철저한 보복 !!
2절에서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 임금이 어떤 임금인가? 7절에 보면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라고 되어있는데, 그러니 철저한 보복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게 교재에도 나와있고 말이다.
예수님께서 천국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우리는 내심 "천국은 좋다. 참 멋진 곳이다. 우리 같이 들어가자" 라는 것을 기대했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은 어떤 임금과도 같으니"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천국까지 만든 임금이니 성품이 참 자비로울 것이다" 라고 기대를 하는데,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소개한 그 임금의 성질이 어떠한고 하니까, 한 성깔을 하신다는 말이다. 철저한 보복,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천국을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롯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구원을 어떤 것인가?" 라고 묻는다고 하면, 롯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말이다. 그러면 롯은 "하나님의 구원을 참 자비롭습니다" 라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사람인데, 거기에서 롯은 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느꼈겠는가? 롯이 그냥 가만히 잘 있는데,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와서 "이리 오세요" 라고 해서 구원을 받았는가? 마치 호텔의 종업원이 서비스를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 왜 뒤돌아보면 안 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야말로 한 바탕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심지어 구원을 받는데 조건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만약에 뒤를 돌아보면 어떻게 되는가? 목은 뒤로 돌리도록 되어있는데 말이다.
이 이야기를 하니 또 생각이 나는데, 한 번은 버스를 탔는데 할머니들이 너무 떠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할머니들이라서 말도 못하고 인상만 쓰고 있는데, 그래서 제가 또 평소 실력을 발휘해서 좀 조용히 해달라고 했더니만, 한 할머니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입이 이렇게 달려있는데 왜 말도 못하게 하노?"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ㅋㅋ).
아무튼 목은 뒤로 돌리도록 되어있는데, 목디스크 환자가 아니면 말이다. 그러니 천국과 지옥을 자기가 알아서 가면 안 되느냐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철학자들의 주장인데,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어서 그 의지대로 하면 되는데, 천국도 자기가 알아서 결정해서 가면 된다는 것이다. 자기 미래이니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 심판에 기초한 지혜 !!
그런데 천국을 만드신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이게 어디서 까불어?" 라고 하시는데, 그런 엉터리 천국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분노해서 동네를 불사르고 하는 처절한 보복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심판에 근거한 내용을 두고 '지혜' 라고 하는데, 그러니 지혜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라는 것을 아울러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이게 바로 복음이라는 말이다.
교회에 오기 전에는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가겠지" 라고 했는데, 그런데 교회에 오면 지혜를 알아서, 우리의 상식이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상식과 반하는, 상식의 입장에서는 터무니없이 틀어지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가운데 비로소 천국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 천국은 이미 'GO' !!
그러니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본질을 꿰뚫어보게 하는데, 그런 가운데 이미 천국은 시작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천국의 시작은 자기가 그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그것을 알아가는 것으로 천국은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 목표를 품지 말라 !!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 칠판에 문장을 하나 쓰겠는데, 너무 긴장은 하지 마시고(ㅋㅋ), "목표를 품지 말라!" 라는 것이다. 어디에 말인가? 자기 마음에 말이다. 즉 마음에 목표를 품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에 목표를 품게 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마귀의 표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목표를 원하고 또한 그것을 위해서 다른 것을 양보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엄마의 경우에, 자식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자식이 잘 되게 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 그 엄마는 자식을 잘 되게 하겠다는 목표로 인해 남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것을 계속 거부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식이 잘 되고 나면 거기에 대한 반드시 대가가 찾아오는데, 자기의 그 하나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남들에게 너무 많은 피해를 주었다는 말이다.
◈ 내 사위의 여자 !!
예를 들어서, 딸이 있는데 결혼을 해서 자식을 둘 낳고, 그만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위는 너무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위를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고, 사위도 자기 부모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물론 아이들도 외손자들이지만 친손자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위는 선을 보면 안 되는데, 설령 본다고 해도 반드시 자기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그리고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기가 데리고 있겠다는 것이다.
다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표정들인데(ㅋㅋ), 아무튼 왜 그러한 생각이 들겠는가? 그것은 자기가 그 사위와 아이들을 위해서 그동안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제쳐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저쪽 집안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아니, 아이가 성이 정씨인데?"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 우리는 비밀이 너무 많아 !!
그것을 보면서 제가 무엇을 느꼈는고 하니, 물론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조마조마했다는 것은,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 "저 여자만 허락하신다면 벌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라는 식인데, 임재범의 '고해' 라는 노래가사인데 말이다. 매일같이 "저 여자만 허락하소서"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하나 노리게 되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데, 그것은 곧 제대로 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러니 계속해서 마귀가 시험을 한다는 말이다. "그래, 너의 목적을 위해서 이것도 포기하고, 그런 나쁜 짓도 해야지. 그러니 좀 참아야해. 너의 목적을 내가 도와줄게" 라고 하면서 마귀가 부추기는데, 자기는 그런 짓을 하면서 그게 실패로 끝나고 들킬까 싶어서 불안해서 떨고 말이다.
그러니 나중에 보면 성공을 해도 너무 비밀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뇌물도 바쳐야하고, 그렇게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자기 딸을 재벌 집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면서 어떻게 하고 하는데, 아무튼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드라마가 여러 개 섞여서 정신이 없는데 말이다(ㅋㅋ).
그러니까 이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은, 자기가 하나의 목적에 집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그 추구하는 집착이 예수님이 아닌데, 이 땅에서의 자기 욕망의 이상화인데, 즉 자기 욕망이 이상적으로 달성되는 순간을 놓치기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런 심보로 천국까지 바라니, 즉 "내가 천국에 갈 수만 있다면 어떤 일도 다 하겠어" 라는 것인데, 이게 바로 마귀가 만들어준 천국코스라는 것이다.
◈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
그러니 여러분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천국에 가기 위해서 말이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무엇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필히 마귀의 시험이라는 것이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끊어야하고, 또 무엇을 열심히 해야하고, 그게 교회봉사든 그 무엇이든, 그런 것을 일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 마귀가 뒤에서 부추기고 있는데, 그러면 결국 미치고 만다는 것이다.
울산강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지 싶은데, 교회에 나올 때 목적을 가지로 나오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여, 제가 이것 때문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열심히 잘 다니겠습니다. 헌금도 하고 기도도 할 테니, 제발 이 소원만은 들어주세요" 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이용해먹는 마귀의 술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록 그런 마음으로 교회에 왔더라도, 복음을 듣고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을, 그런 노래도 있는데 말이다. 정말로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것을 알기까지 여러분도 돌고 돌아서 여기에 왔지 싶은데, 그동안 얼마나 마귀에게 놀아났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마귀에게 넘어간 이유가 다 있는데, 교회에 나올 때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마귀는 바로 그것을 노리는데, 즉 "내가 먼저 교회에 나가서 남편도 구원하고 자식도 구원하고" 라고 하면서, 주님이 하실 목적을 가지고 건방지게도 자기가 알아서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열심히 해서 이루게 되면, 그러면 자기가 믿음이 좋아서, 즉 자기가 위대해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기도해서 낫게 하겠다" 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 성경공부도 그만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가정의 행복이라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게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만 삐쳐서 교회도 나오지 않고 말이다. 그저 자기 자식이 잘되겠다고 교회에 나오는데, 그게 아니면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서 나오고, 하지만 전혀 그게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천국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그 무엇을 해도 우리의 마음자체가 이미 완전히 썩어졌기 때문에, 그런 썩은 마음에서 도대체 무엇이 나오겠느냐는 것이다. 이게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태복음 6장 22절과 13절에 나오는데 말이다.
◈ 예수님의 산상설교 !!
5장의 팔복부터 시작해서 6장과 7장을 소위 '산상설교' 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산 위에서 설교를 하셨다고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등산을 가서 하신 게 아니라, 언덕 정도로 보면 되는데 말이다.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여기 3절의 '심령'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자들에게 천국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의 현재와 미래는 천국이라는 말이다. 이 산성설교를 우리가 들어보면, 이것은 우리보고 돈을 벌라는 것도 아니고, 물론 대통령이 되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6장 22절과 23절에 나오는데 말이다.
(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 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 너희들은 마음이 어두워서 안 돼 !!
이게 무슨 의미인가? 자기 마음이 어두우면, 자기가 하는 그 어떤 이야기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산상설교는 우리가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밝은 자들에게나 이것이 성사가 될 이야기라는 말이다. 마음이 밝은 자들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하고 나서 곧장 하늘로 올라가신 게 아니라, 어디로 가셨는가? 십자가를 거쳐서 하늘로 가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그러면 주님이 경유하신 그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가? "의인은 없나나 하나도 없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이 산상설교에 맞추어서 제가 번역하게 되면, "마음이 밝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라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죄인이라서 그러한데, 그러면 몇 퍼센트의 죄인인가? 그것을 두고 로마서에서는 "의인은 없나나 하나도 없다" 라고 하는데 말이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 다음인데, 왜 그렇게 의인이 하나도 없느냐는 것이다.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
우리의 마음이 원래 그러한데, 우리가 특별히 나쁜 짓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서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그게 누구인가? 아담에게서 물려받았다는 말이다. 즉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라는 것인데, 그러니 그 뒤는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복음이 얼마나 간단하냐는 말이다.
(롬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무리 "저는 마음속으로 간음을 했습니다. 몰래 물건을 훔쳤습니다" 라고 해도, 주님은 "나는 너에게 그것을 묻는 게 아니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우리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똑같은 아담의 바구니에 담겨있으니까, 이것은 어떻게 자기가 노력한다고 해서 고쳐질 마음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절에 가서 제 아무리 간절하게 천 번의 절을 하고 백일 기도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마음은 그냥 죽을 때까지 그대로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데, 물론 고물인 상태로 말이다. 그렇게 가지고 가면 고맙게도 그 고물을 신제품으로 바꾸어주는 분이 계시는데, 그것은 바로 단 한 사람의 순종하심, 즉 예수님의 의로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복음인데, 그러니 주님이 왜 천국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너희들은 천국을 모른다. 왜냐하면, 너희들의 마음이 썩었다는 것을 모르면서, '나는 이 마음을 가지고 천국에 갈래' 라고 하고 있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천국에 가서 깽판을 칠 일이 있는가? 천국에 가서 멱살을 잡고 자기 잘났다고 싸울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천국은 "너나 나나 똑같다" 라는 것인데, 주님은 그런 작업을 시작하셨는데, 그러니 우리는 벌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인간들에게 천국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들만 모아서 천국에 데리고 가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 이 세상은 콩나물 통과 같아서 !!
그 작업은 어제 낮 시간에 이야기한 것처럼, 콩나물은 물을 주면 크는데, 옛날에는 집에서 어머니가 그렇게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어머니가 참석하지 않았는데, 마실 나들이를 할 때가 되었는데 말이다. 저도 콩나물에 물을 준 기억이 나는데, 다른 것은 주지 않고 물만 주어도 콩나물은 자란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참 신기했는데, 물론 지금은 그 이유를 아는데,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임을 말이다(ㅋㅋ).
그렇게 주님은 자기가 직접 자라게 해서, 그런 자들을 자기 손으로 뽑아서 천국에 데리고 가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은 주님이 키우시는 콩나물 통과도 같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친히 키워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천국으로 간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주님께서 친히 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라고 하는 고백, 그 고백이 바로 전도이고 선교라는 말이다. 그러니 괜히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 말고, 주님께서 하게 하셔서 한 것이니, 자기의 공로나 업적을 챙기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아들의 혼인잔치 !!
다시 마태복음 22장으로 돌아와서,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했는데, 그게 어떤 임금인가? 화를 내는 임금인데, 그것도 보복을 심하게 하시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화를 내는 임금과 같이 살 마음이 있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여기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지라는 말이다.
그러니 천국은 자기만 잘 되는 곳이 아니라, 이미 임금님이 있는데, 그 임금은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임금님이 왜 화를 내었는가? 그 이유가 상당히 흥미로운데 말이다. 여기서 임금님은 하나님이고 아들은 예수님인데, 그러니 예수님의 혼인잔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천국은 달리 이야기하면, '아들의 혼인잔치'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4월 2일에 결혼식을 공항에서 한다고 해서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그냥 버스를 타고 가면 되니 말이다. 그런 혼인잔치를 열었다는 것은, 지금 아버지는 아들이 행한 것에 대해서 하객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아들, 참 잘했어. 그렇지?" 라고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으는데, 그러니 거기에 참석한 자들은 그 임금님의 취지를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임금님의 아들은 최고입니다" 라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 오직 한 분에게만 집중된 마음으로 !!
그런 마음이 하나로 되어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결혼식에 참석해서 계속해서 시계를 보면서 빨리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지금 바빠서 도저히 안 되겠는데, 어서 결혼식을 빨리 끝을 내주지. 또 주례사는 왜 이렇게 길지?"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흩어진 마음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아까 마태복음 6장의 말씀을 관련을 지어서, 거기서는 마음이 밝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여기서 정리가 된다는 말이다. 마음이 밝다는 것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런 깨끗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오직 한 분에게만 집중된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마음이 밝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온 마음이고, 예수님이 행하신 그 사랑과 은혜가 넘치게 된 마음인데, 그게 비로소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 용서하심에 고마워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밝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땅에서 어떤 행위를 해도 그게 선행이 되고 의가 된다는 말이다. 즉 착함이 된다는 것이다.
◈ 바른 죄인 !!
어제 낮 예배시간에 이종성 장로님이 기도하는 가운데서 제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나왔는데, 물론 제가 그런 의미로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아무튼 그런 단어가 튀어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바른 죄인' 이라고, 장로님은 자기가 기도시간에 사용했는지 미처 모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죄인인데 바른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듣는 순간 기도를 하다가 눈이 번쩍 떠졌는데 말이다(ㅋㅋ).
"제대로 죄인인 것을 알아라" 라는 의미인데, 그런데 말 자체는 서로 앞뒤가 맞지를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니가 죄인임을 제대로 파악하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무엇인가?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말씀만 골라서 하셔서, "그래도 나도 착한 구석이 좀 있어" 라고 하는 엉터리 죄인이 아니라, 자기에게는 전혀 그런 것이 없음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바른 죄인, 바로 그것이란 말이다.
오늘 강의제목으로 이것이 적당하지 싶은데, 그런 바른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만을 지향하고 바라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인데, "니가 기도를 하던 헌금을 하던 봉사를 하던 전도를 하던 설교를 하던 무엇을 하던, 나는 그것을 보고 너를 구원하지 않는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을 하시는가?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세워서, 그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만 혼인잔치를 벌려버린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는 전혀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니 4월 2일에 공항에서 열리는 예식장에 참석하라는 것이다(ㅋㅋ).
그런데 임금님이 왜 화를 내는고 하니, 사람들이 하는 말이 "도저히 바빠서 갈 수가 없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 아니고 바쁜 이유가 다 있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또 어떤 사람은 장사를 하러가고, 그리고는 그렇게 잔치에 오라고 한 임금님의 종들을 잡아서 그만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 대댕끼는 대로 !!
그러자 임금님이 화를 내면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종들에게 말하기를, 혼인잔치가 준비되었지만 오라고 한 사람들은 여기에 합당치 않으니까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다 데리고 오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종들이 길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오니까, 그 혼인잔치 자리에 손님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혼인잔치에 참석한 자들은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아무나 다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경상도 말로 '대댕끼는 대로' 라고 하는데, 이게 일본말인가? (ㅋㅋ) 아무튼 그렇게 닥치는 대로 데리고 왔다는 말이다. 만나는 족족 그렇게 다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 주최측에서 제공한 예복을 입는 것이, 곧 '성령세례' !!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는데, 주최측에서 제공한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임금님의 아들인 신랑의 격에 맞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로 옷을 입어야 한다고, 그게 갈라디아서 3장에 나오는데, 그것을 '성령세례' 라고 하는데 말이다.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입던 그 옷을 이제는 우리도 입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 그 옷을 입었는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데 하늘에서 비둘기 같이 성령이 오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받은 성령의 옷이라는 말이다.
그 옷을 우리도 받게 되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옷을 입었으니 말이다. 직업과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긴긴 이야기를 한 마디로 "아무 것도 하지 말라" 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교재 158페이지에서는 '심판에 기초한 지혜' 라고 했고 말이다.
◈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여기서 약간 어려운 질문을 하겠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구원을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것이다. 자기는 주님이 시키는 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이런 질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편안하다가 갑자기 불안해지는 분위기인데(ㅋㅋ),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강의 제목을 '바른 죄인' 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바른 죄인이 된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일을 하신 결과물로 보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가 여기에 있고,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게 바른 죄인이라고 하면, "내가 바른 죄인이 되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라고 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결과물이 아닌, "내가 뭔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라는 행동을 한 결과물, 즉 자기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짝퉁이라는 말이다.
자기는 은근히 천국에 가지고 싶어서 "그래, 나는 이근호 목사님의 말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나중에 주님이 천국에 넣어주시겠지" 라고 한다면,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노리는 자기의 결과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괜히 엉뚱한 사람을 걸고넘어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ㅋㅋ).
◈ 예수님이 알아서 하세요. 저는 쓰레기입니다 !!
그러니 '바른 죄인' 이라고 하는 것은, 그 마음이 밝다고 했는데, 그러니 그 마음이 오직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로 채워지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이 알아서 하세요. 저는 쓰레기입니다" 라는 것인데, 그게 바로 바른 죄인이라는 말이다. 그리고는 주님만 바라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그게 교재 158페이지에 나오는데, 거기에 로마서 9장이 언급되어있는데 말이다. 요즘 대구강의시간에 참석하는 분들이 연세가 점점 높아져서 성경을 빨리 찾는다는 게 부담이 되지 싶은데, 많이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전에는 무조건 많이 하려고 서두르고 했는데, 이제 철이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ㅋㅋ).
로마서 9장 19절에서 21절을 보자.
(롬 9: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롬 9: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 지옥에 가는 자도,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
이 말씀으로 우리는 우리의 주제파악을 할 수가 있는데 말이다. 20절에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라고 하는데, 즉 피조물인 주제에 감히 어떻게 창조주에게 따지겠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21절에 보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진흙을 재료로 해서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곧 결과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지옥에 가는 인간은 누구의 작품인가? 당연히 주님의 작품인데, 그래서 주님은 자기가 만든 작품을 알아서 지옥에 보내는데, 그런데 왜 지옥에 가는 인간이 삿대질을 하면서 하나님께 따지느냐는 말이다. 그게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인간은 주제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로마서 11장 36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어떤 인간이 지옥에 간다고 하면,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 사람은 그렇게 지옥에 보내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래서 그 사람은 "하나님이여, 영광을 받으소서" 라고 하면서 지옥에 가야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댓글을 달면 안 되는데, 자기가 지옥에 가도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면, 당연히 지옥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백을 누가 하는고 하니, 로마서 9장 3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하고 있다는 말이다.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
벌써 2년이 지났는데, 미국의 갓쉽펠로우 교회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 본문으로 시작을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본분을 읽자마자 앞에 있는 사람이 아멘을 해서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ㅋㅋ).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라고 하는데, 그것을 사도바울 자신이 원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영광이 된다면 자기는 저주를 받아서 끊어진다고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는 기꺼이 그러한 저주를 받아서 지옥에 가겠습니다" 라고, 바른 죄인의 자리에서 그런 고백을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은 자라는 말이다. 구원은 그렇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모든 계획이, 자기는 떠나고 그 빈자리에 그 계획이 차지하고 있어서, 떠난 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하는 모든 짓이 자기만 챙기는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바른 죄인' 이라는 것인데, 주님께서는 그런 바른 죄인으로 만들어가면서, 그 공로는 누가 받으시는고 하니, 주님의 자기 순종에 의한 주님의 자기 공로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바른 죄인을 통해서 받으시고, 그러면서 천국에서 같이 산다는 말이다.
◈ 하나님께 바치면 복을 받아요 !!
특히 여기 로마서 11장 35절에서 뭐라고 하는가?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라고 하는데, 이것을 쉽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즉 "주님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누가 먼저 주어서 그 대가를 챙길 수 있겠는가?"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원칙을 주님은 결코 주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니가 나에게 잘해주면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 라는 원칙을 주님은 결코 세운 적이 없는데, 그것은 오히려 마귀가 좋아하는 원칙이라는 것이다. 마귀가 교회를 통해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하나님께 바치면 복을 받아요" 라고 말이다.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마귀가 왜 그렇게 하는고 하니, 아까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다. 교인들이 교회에 나오면서 노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뭔가 자기의 소원만 달성하기 위해서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마귀는 얼씨구나 하면서 "니가 소원을 이루고 싶지? 그러면 십일조를 해라. 그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서로 짝자쿵이 맞았다는 말이다.
여러분, 지금 이 한국 땅이 무려 그 역사가 반만년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수없이 많은 시간을 아버지의 아들로, 또 그 아버지의 아들로,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져오면서, 그들이 그냥 산 것이 아니라 다들 종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 땅에서 정성을 다하면 복을 받는다" 라는 것인데, 불교가 들어와도 그것으로 변질이 되었고, 기독교가 들어와도 그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무엇인고 하니, 복음이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진짜 천국이 어떤 곳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물론 다들 퉁겨서 나가겠지만 말이다.
◈ 딸랑 딸랑, 어세 오세요 !!
교회가 많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자가 많다고 착각하면 안 되는데, 중요한 것은 십자가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지, 교회가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런데 무슨 가게든지 간에 사람을 좋게 해야 손님이 모여드는데, 그러니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핀트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손님을 보고 싫은 소리를 하면 다시는 오지 않는데, 살살 달래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교회에 손님들이 왜 오는가? 자기 가치를 인정해달라는 것인데, 그러한 사람들에게 뭐라고 해야하겠는가?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교회에서도 그런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말이다.
그래서 젊은애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사람을 좋게 해주는 곳이 아니기에 말이다. 그러니 군대는 아무나 보내면 안 되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놈들만 골라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제대로 된 조국이겠는가? 결코 천국이 아니라는 말이다.
계속해서 로마서 9장을 보겠는데, 21절에서 23절을 보자.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 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 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 !!
여기에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이 있는데, 이렇게 차이가 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토기장이가 말이다. 이게 구약에서부터 나오는데, 하나는 '야곱' 이고, 다른 하나는 '에서' 라는 것이다. 이게 서로 쌍둥이라는 점을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데, 부모가 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같은 부모에게서 나와도 그 운명은 어떻다는 말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 시간을 거꾸로 해서 보면 !!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은데, 시간적으로 보면 "아빠와 엄마가 동침해서 쌍둥이를 낳았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즉 한 부모 밑에서 같은 형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여기지 말고, 형인 에서는 지옥에 가고 동생인 야곱은 천국에 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부모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올라가 보자는 말이다.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이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아빠와 엄마는 이들이 형제인 줄 알지만, 사실은 도저히 형제가 될 수 없는 두 존재가 한 곳에 모여있다는 말이다.
◈ 구원이 곧 심판의 기능 !!
이런 현상을 제가 왜 이야기하는고 하니, 예수님의 경우를 한 번 보자는 것이다. 예수님이 믿는 자들에게는 분명히 구원자이지만,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만 심판주가 되고 만다는 말이다. 그러니 구원이 곧 심판의 기능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에 갈 이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만 지옥에 갈 기준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구원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심판주라는 것도 우리가 같이 병행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 여호와 하나님에게 망한 이스라엘 !!
이게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다 나타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을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그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가? 두 동강이 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망하고 말았는데, 그러면 누구 손에 망했는가? 자기들이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게 참 신기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내치는가? 그것은 시간을 이렇게 거꾸로 해서 보면 된다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가는 것이 정상적인 시간으로 보는데, 그런데 우리는 이제부터 그것을 비정상으로 보자는 말이다. 자연스러운 것은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비난했던 것이 정상으로 다가오고 말이다.
◈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는 피조물들 !!
예를 들어서, 나무, 풀, 바위, 해, 달, 별, 개, 말, 소, 그리고 인간 등등, 이런 것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다 정상으로 보이는데, 그런데 여기 로마서 9장을 보면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성인데, 성경은 그것들이 전부 썩어져가고 있다고 한다는 말이다.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예를 들어서, 갑자기 정전이 되면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이 어떻게 되는가? 모두 다 부패하고 썩어져 가는데, 마찬가지로 지금 지구가 그만 정전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말았는데, 나중에 불바다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은 장차 불심판을 받을 소돔과 고모라라는 것이다.
◈ 반드시, 필히, 백 프로, 망한다 !!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에서 뭐라고 하시는가? 앞으로 닥쳐올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보다도 견디기가 쉽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참 무서운 말씀인데 말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21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어디 피할 곳도 없이 포괄적으로 불심판이 내리는데, 온 지구상에 심판이 임한다는 말이다.
(마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눅 21: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그런 쪽에서 여기를 봐야 정상이지, 지금 주후 2,000년이 지나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사람들은 뭐라고 하는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비정상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썩어져가고 있는데, 반드시 불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사도바울이 다급하게 로마까지 갔는데, 거기에서 죽기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다는 말이다.
◈ 없어져 버린 일곱 교회 !!
터기 남쪽에 보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한 바퀴를 돌면 340KM라고 하는데 말이다.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인데 말이다. 각 교회가 약 40, 50KM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있는데, 그렇다고 지금처럼 예배당 건물이 있다기보다는 가정에서 모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 교회들이 정상적으로 보이는데,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칭찬을 받은 교회도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촛대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교회에 그런 촛대가 있다고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교회에 촛대가 어디에 있는가? 교회는 그때그때마다 발생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발생이 되려면 터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 언제나 새롭게 발생되는 교회 !!
저는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저의 몸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분이 울산의 이능우 집사님인데, 밥을 먹다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목사님이 전에는 여기 목이 벌겋게 되어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저는 그것을 전혀 몰랐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제 몸의 상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다 없어질 몸인데 말이다.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게 바로 발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터전은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벌겋게 될 수밖에는 요인인데, 지금은 그게 없어졌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들이 먹어야 하는 로열젤리를 빼앗아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말이다(ㅋㅋ).
아무튼 이 '발생' 이라는 것은, 몸에는 이런 것이 나면 '발진' 이라고 하지 싶은데, 아무튼 교회가 그렇게 발생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를 부순다는 게 의미가 없는데, 왜냐하면 주께서 발생시키는 것을, 즉 하나님이 만든 것을 사람이 부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순다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해서 부수어지면 애초부터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 목적이 없는 교회 !!
어떤 목적, 즉 "나는 반드시 우리교회를 만들고 말리라" 라고 하게 되면, 온갖 귀신들이 다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교회가 대부분인데, "몇 명이 모인다. 어떤 공동체다" 라는 것이 있어야 최초 설립자의 자존심이 살아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서로 비교하면서 기를 죽이고 하는데, 개척교회를 하는 분들에게는 이런 큰 시험이라는 것이다.
"전에는 그래도 20명이 모였는데, 복음을 전하니 10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라고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하지만 그것은 교회가 제대로 새로 시작하는 것이란 말이다. 2천명이 모이던 교회라도 상관이 없는데, 그들이 다 나가도 교회는 새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강도사나 목사가 만드는 게 아니라, 주님이 친히 복음을 가지고 만드신다는 말이다.
그러면 자기가 주의 종이면 시키는 대로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에 방해를 놓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명이 모였는데, 이제 10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은 일종의 방해질이라는 말이다. 자기는 복음만 전하고 맡기면 되는데, 그래서 다 떠나고 없으면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 떠나는 자도 복음을 외치면서 !!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떠나라고 하지 말고, 떠나면 괜찮은 사람이 남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 꼼수는 '워치만 니' 쪽에서 하는 짓인데, "복음을 전하면 거듭난 사람만 남는다" 라는 식인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목사님, 그것은 복음이지 않습니까?" 라고 하면서, 떠나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목사님, 그렇게 이야기하면 십자가뿐인데, 우리가 그 십자가만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미안하지만 저는 떠나겠습니다" 라고 복음을 외치면서 떠날 경우에, 물론 그 사람은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복음만을 외친다는 불만으로 인해서 떠난다고 하면, 제대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발생된 교회의 소속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 강의의 제목처럼 '바른 죄인'은 누구의 몫인고 하니, 주님의 몫이라는 것이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이제 교재 159페이지를 보자.
** 성도는 지혜를 운반하는 운반체입니다.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는 겁니다.
◈ 성도는 지혜를 운반하는 운반체 !!
여기에 "성도는 지혜를 운반하는 운반체이다" 라고 하는데, 이 운반체를 다른 말로 쉽게 '매개체' 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중보자와는 다른 개념인데, 중보자는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운반체라는 말이다. 그렇게 운반체라고 언급하는 이유가 그 뒤에 나오는데, 즉 "그저 받았으니 그저 준다" 라는 것이다.
돈을 주라는 말이 아닌데, 돈은 그저 받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노동을 해야 받는데, 그러니 이게 "돈을 주어서 예수를 믿게 하라" 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인데, "니가 그저 받은 것을 그저 주어라"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그저 받은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저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
◈ Why Me?
이제 조금 어려워지는데, 우리가 성령을 그저 받았는데,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그저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은사, 즉 선물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그저 받을 때 우리가 얌전하게 받았는가? 아니면 주님에게 따지고 원망하면서 불평하는 현상들이 일어났는가? 따지고 원망하게 되는데, "제발 나를 곱게 놔두세요" 라는 것이다. 즉 "Why Me?" 라는 말이다.
제가 제대로 구사하는 유일한 영어문장인데(ㅋㅋ),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라는 것인데, 도망을 치다가 걸려서 멱살이 붙잡혀서 끌려오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뭐라고 하는가? "나는 어떤 의도와 목적이 없이는 결코 행동하지 않는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나가도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그게 딱딱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찾아오시면, 저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하지만,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기에 !!
그게 바로 그저 받은 것이 있어서 그렇게 나오는데, 참 신기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아담의 죄가 없이 처음부터 마음이 깨끗했다고 하면, 그래서 그저 받았으면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나올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자기가 노리는 게 있었는데, "나는 이 정도는 되어야해"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주님이 막상 주시는 것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누가복음 11장을 보겠는데, 9절부터 13절까지 누가 읽어보세요.
(눅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