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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30강-창 4장 16-21절(가인의 세상)160316-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창세기

30강-창 4장 16-21절(가인의 세상)160316-이 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125.136.25.28)

30강-창 4장 16-21절(가인의 세상)160316-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4장 16-21절입니다. 구약성경 5페이지입니다.

창 4:16-21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오늘 본문을 보면 흔하디흔한 족보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우린 눈에 보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족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창세기 2장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약속했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고 그들은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창세기 2장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 그리고 창세기 5장에 가면 아담의 자손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었더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창세기 2장, 3장의 그 죽음과 창세기 5장의 죽음, 그 틈 사이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어떤 속성을 지녔는가? 죽음과 죽음 사이에서 어떤 속성을 가졌기에 그들은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을 창세기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두 개의 죽음 이야기 사이에서 죽음이 실제로 일어나는 그 속성, 죽어야 될 이유, 기능, 활동, 이런 것들이 창세기 4장에 나오는데 그 죽음의 기능과 속성들이 오늘날 세상이라고 부르는, 현실이라고 부르는 바로 이것입니다.

아벨이 죽고 난 뒤에 가인만 남아 있는 이 세상, 가인만 남아 있다는 것은 가인 외에는 인간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관여하는 사람은 가인밖에 없어요. 그리고 인간 세상은 인간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다 배치되고 배정받아 움직입니다. 인간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여호와께서 관여한 법칙과 원칙대로만 움직이게 되어 있어요. 그 관여한 법칙과 원칙을 수용하는, 그걸 받게 되는 자가 가인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그 뒤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대변자가 되고 하나의 모델이 되어버려요.

가인은 그냥 모델이 아니고 하나님의 원칙을 짊어지고 있는 모델인데 그 짊어지는 것이 뭐냐? 1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이것이 여호와하나님께서 가인을 만나서 제공했고 가인은 그것을 받아서 대대로 이어지는 인간현실 속에서 이 속성을 계속 퍼트리고 번지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세계에 주신 일종의 법이 되겠습니다.

가인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지요. 왜 가인을 건드리지 말아야 되는가? 가인이 동생을 죽였으니 가인을 죽여야 되는데 왜 가인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가? 막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따라서 가인의 세계는 어떤 기능이 있는데 에덴동산과 인간세계를 연계 짓고 에덴동산에 갈 수 없는 차단막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이냐, 그렇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너는 가인에게 허락한 그 법적인 권력체제를 뚫어서 생명나무, 에덴동산으로 갈 수 없는 위치, 그런 처지와 형편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천국 가고 싶어요? 하지만 가지를 못합니다. 왜냐? 이 강력한 차단막, 이 차단막은 가인이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그런 속성을 줬습니다. 그 속성을 줬고 가인의 후손들은 계속 그 속성을 전수받아서 인간현실, 인간사회라는 것을 형성하게 되는 겁니다. 인간사회형성은 어떤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모델이 되는 것 외에는 다 삭제시키는 원칙을 적용합니다. 가인이 모델이 되고 그 가인이라는 모델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전부 다 제거가 되는 식으로 이 세상은 움직이게 되어 있어요.

가인이라는 아버지가 여호와께 받았던 그 법 말고 그 법과 위배되는 다른 법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다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그런 활동을 하면서 그 가인의 후손들은 가인의 후손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되는 겁니다. 가인의 후손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가인에게 준 그 법을 계속해서 전달, 전달하는, 가인의 법의 되풀이, 반복하는 기능이 되어야만 비로소 존재의미가 있는 그런 인간들의 집합, 그게 오늘날 인간세계입니다. 아버지를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버지를 왜 건드리지 말아야 되는가? 여호와께서 아버지에게 법을 줬기 때문에, 가인을 건드리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는다는 그 법이 계속해서 이어져 가는 겁니다. 그러면 가인은 왜 그런 법을 받았는가? 가인이 받은 그 원칙은 뭐냐? 용서 없는 세계를 이루라는 겁니다. 시작부터가 처벌이 되고, 시작부터가 징벌이 되고, 시작부터가 땅에서 핏 소리가 올라오는 그 처벌에 해당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 가인 이후에 모든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이 공통된 법입니다.

아버지가 받았던 그 처벌을 네가 되풀이하고 반복하라는 그 말입니다. 못 알아듣는 척 하지 마세요.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요. 시편 51편에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했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가인이 받았던 그 죄를 반복하는 그런 역할과 기능을 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 살아있는 겁니다. 모든 인류가 다 그래요. 예외는 없습니다. 설교 다시 합시다. 모르는 눈빛들을 하고 있으니 제가 진도를 나갈 수가 없지요. 창세기 2장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으리라, 했잖아요. 그 죽으리라, 가 창세가 5장에 보면 아담의 자손은 죽었더라, 죽었더라, 계속 반복돼요.

왜 죽어야 되느냐, 하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죽어야 되느냐, 하는 겁니다. 창세기 2장에서 선악과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했지만 아담이 농약이라도 마신 것같이 게거품 물고 죽은 것 아니거든요. 선악과 먹자 말자 헉, 하면서 탁자 위에 엎어지면서 죽거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가인은 선악과 따먹고 930년 살았습니다. 창세기 5장 5절에 나와요. “먹는 날에는” 여기서 날은 하루 24시간인데, 하루 가기 전에 죽어야 되는데 먹는 그 날이 왜 그리 길어요? 930년 동안 그는 계속 살았습니다. 930년 동안 뭐 했는가? 도대체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 따먹는 날에는 죽어야 되는가에 대한 이유를 하나님께 아벨을 통해서 증명해낸 겁니다.

인간이 죽을 때 이유가 있어요. 가인이라는 인간을 그냥 뒀으면 살인을 하지도 않았고, 동생을 죽이지도 않았고, 가인의 후예라는 부정적평가도 받지 않았어요. 이게 다 누구덕분이냐 하면, 다 여호와께서 개입해서 그래요.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한 그 취지, 그것은 하나님 본인만 안다고요. 본인만 아는 것을 가인의 후예를 통해서 퍼트리겠다는 겁니다. “가인의 후예들아!” 다른 말로 “인간들아! 너희는 스스로 가인의 자손을 이루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에덴동산으로 갈 수 없는 차단막 같은 공동체를 이 땅에 형성하라.” 그 말입니다.

그게 권력이에요. 그게 이 세상의 우리가 보는 권력입니다. 그 권력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아버지의 이름자체가 법이 되는 거예요. 가인자체가 모델이 돼요. 가인이 왜 모델이 될 그런 자격이 있는가? 가인이 인물이 잘났나? 장 동건인가? 알랭들롱인가요? 잘나서 모델이 된 겁니까? 가인이 모델이 된 이유는 하나님이 택한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모델이 된 겁니다. 죽여서 여호와로부터 저주를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저주를 온 몸에 품었기에 그 뒤에 모든 인류는 용서받을 수 없고 긍휼 받을 자격이 안 되는 자손들이 마구마구 이 세상을 정복해 나가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과 창세기 5장 사이에서 인류가 왜 죽는가가 창세기 3장, 4장을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거예요. 신이 떠난 세계입니다. 신이 떠난 세계에서 신의 자리를 누가 차지하는가? 하나님께서 “가인아! 네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지.”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시킨 거예요. “네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왜? 네가 아벨을 죽였잖아. 네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하나님이 인정한 자를 죽였잖아. 네 자식들이 이렇게 평가 해줘야 장차 모든 인류가 십자가에 대해서 도전하고 십자가에 대드는 존재인 것을 가인이 너부터 출발하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있던 그 자리에 가인이 자기 이름으로 있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 모든 인간은 아버지 이름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손상되지 않고, 그 명예가 훼손되지 않고, 아버지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겁니다. 주일 낮 예배가 열 한 시인데 제가 갑자기 미쳤는지 “9시 40분에 합니다.” 이렇게 하게 되면 “목사님은 무슨 근거로 갑자기 그렇게 합니까?” 제가 또 “9시 42분 50초에 합시다.” 이렇게 하면 전부 다 시계 들고 와서 따지면서 “무슨 근거로 얼토당토하지 않게 그렇게 합니까?” 할 때 제가 되묻는 거예요. “왜 9시 42분 50초는 안됩니까?” 한다면 “줄곧 열 한 시에 해 왔잖아요.” 줄곧! 줄곧! 전통적으로 줄곧 해 온 거예요. 그 줄곧, 그것의 끝이 어딘데? 그게 바로 가인인 거예요.

가인은 누구입니까? 용서받을 수 없는 자에요. 용서받지 못할 자, 영화 제목 같아요. 용서받지 못할 자이기 때문에 인류의 대표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용서받지 못할 자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본인들이 권력을 유지해서 자기들의 삶을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구심점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 구심점은 뭐냐? 바로 아버지, 처음 아버지, 가인의 이름으로. 그렇게 뭉쳐야 되는 거예요. 왜? 왜 가인의 이름인가? 하나님께 가인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으니까.

가인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은 “내가 지상에 내린 처벌을 인간이 취소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벌 내리면 그냥 고스란히 벌 받으라는 말이지요. 쓸데없는 객기를 부리면서 “저 여자만 허락하신다면 모든 벌을 받겠습니다.” 이런 ‘고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태어나면서부터 전부 다 이미 법이 있고 그 법 안에 풍덩 빠진 채로 법속에서 태어나는데 그 법은 뭐냐? 최초아버지에게 형성된 상황, 그런 경향 속에, 그런 정서적 환경 속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구심점은 바로 아버지에요. 이걸 가지고 저는 혈연관계라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서는 혈연관계라고 하지만 사도바울 편지에서는 이걸 ‘육’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지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요한복음 3장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는 말은, 육한테는, 우리한테는 사실은 소용없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 에덴의 동쪽이거든요. 에덴의 동쪽은 차단막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교회 나오고, 가족이 다 나와서 성경연구해도 육만 건드리면 가인의 속성이 유감없이 폭발합니다.

“왜 우리 집안 건드리십니까?” 우리 집안!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건드리십니까? 내 동생 왜 건드립니까? 언니를 왜 건드리며 아버지를 왜 건드립니까?” 모든 드라마의 내용은 뭐냐? 내 혈육 건드렸다고 복수하는 내용이에요. 모든 드라마가 그래요. 모든 드라마의 내용은 혈육 건드렸다고 복수하는 겁니다. 한 그런 것이 없어요. 출생의 비밀이 어쩌고저쩌고, 전부 다 내 혈육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여기서 한마디 할게요. 그래야만 합니다. 그걸 달리 이야기할게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했어요. 제가 단연코 덧붙여서 이야기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평생 그렇게 사십시오, 끝! 설교 끝! 천국의 차단막을 무시하지 마세요. 우리는 천국의 차단막을 헤쳐 나갈 능력도 없을뿐더러 더 놀라운 사실은 헤쳐 나갈 마음도 없어요. 내 혈육, 내 동생, 내 언니, 내 조카, 내 아버지만 잘되면 그것이 천국인줄 알고 있어요. 우리는 스스로 자기형제 자매를 미워할 의사부터가 성립이 되지를 않습니다.

전도서 7장에 참 무서운 이야기가 나와요. 혼인집에 가지 말고 장례식장에 가라는 이야기.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 구절로 주례사 했다가는 결혼식 엉망 되지 싶어요. 잔치 집에 가지 말고 초상집에 가라는 거예요. 왜? 잔치 집에 가서 좋다고 축하하는 그것이 너한테 안 맞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가인에게 준 처벌이 반복되고 지속되는 이 상황, 인간현실에서 어떻게 태어나도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품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결혼식에서 잠시잠간 기뻐하는 것, 부케 던지고 받는 그런 것, 축가하고, 이런 것은 전혀 우리 본색과 동떨어진 거예요.

네 주제를 알려면 장례식장에 가라는 것. 요새는 장례식장에 가도 소용도 없습니다만. 장례식의 그 죽음이 너와 같은 동질의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그게 아버지고 혈육이라는 말이지요. 지난주일 낮 설교에 했잖아요.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그 말씀. 방금 제가 한 이야기가 여호와하나님께서 의도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의도한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왜 이 땅에 그런 것을 퍼트렸는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의도해서 가인을 살려줘서, 가인의 자식들이 번창해서, 용서받지 못하고 스스로 신인 양 육이 전부고 이 현실이 전부에요. 이 역사가 전부고 이 역사 외에는 없어요. 역사가 전부지 역사 바깥의 묵시세계는 상상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 역사세계가 전부인데 왜 주께서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깔아놓았는가? 그 세계에 여호와가 직접 개입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성경전체이야기를 방금 다 한 거예요. 영화제 할 때 붉은 카펫 깔고 배우들이 지나가잖아요. 영화배우들을 스타라고 하는데 나는 아무리 봐도 전혀 별 같은 느낌이 안 드는데 스타들 앞에 레드카펫을 깔잖아요. 주께서 먼저 쫙 깔아놔요. 뭘? 저주와 처벌, 심판을 깔아놔요. 그게 인간들이 에덴으로 갈 수 없는 차단막이거든요.

그러니까 천국은 가지도 못하고 나름대로 종교들, 온갖 것을 다 만들어내요. 여기 21절에 보면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여기에 음악까지 나옵니다. 앞에는 목축, 산업이 나오고요, 그 앞에 성, 이것은 도시지요. 도시에 이름이 있는데 도시의 이름이 에녹이지만 에녹은 그냥 에녹이 아니에요. 가인과 어떤 관계의 에녹이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에녹이 스타트가 아니에요. 에녹은 어디서 나왔는가? 가인. 가인은 누구인가? 여호와와 직접 맞닥뜨린 분, 여호와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은 분.

주께서 그 심판과 저주를 깔아놓고, 인간들은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영어로 all, 그게 전부인 줄 알고 그 안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그것 가지고 콩닥콩닥 한다는 말이지요. 그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주님 보시기에 그게 어두움이고 주님이 그 카펫에 들어온 거예요. 들어오니까 웬 낯선 사내냐, 해서 예수님을 공격하는데 그 공격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정작 얻고자 하는 것, 부각시키고자, 노출시키고자 하는 그 속성이 나옵니다.

그게 뭐냐? 인간현실자체가 어두움의 권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마태, 마가, 누가, 죽 보시면서 어떤 관점에서 봐야 되는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성경 처음 볼 때,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누굴 믿어야 되고, 내가 믿는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데 급급해서 성경 봤어요. 그렇게 성경 볼 때 진도 잘 나가요. 소설이나 만화 볼 때처럼 진도 빨리 나가요. 한글로 되어 있겠다, 죽 읽어나가면서 ‘아, 예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구나.’ 예수님에 관한 소설 보듯이 죽 나갔어요.

그런데 지금 다시 보세요. 마태복음 2장 16절에 보면,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라고 되어 있다고요.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갑자기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을 빌미로 해서 예수님색출작전에 나서게 됩니다. 온 세상이 똘똘 뭉친 권력이 되어서 예수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두 살 먹은 애까지 다 죽은 거예요. 그들은 아무 죄가 없어요.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그 일시적 계기로 인하여 두 살 밑의 애들 다 죽어버리니까 엄마들이 얼마나 통곡합니까?

헤롯을 원망하겠어요, 예수님을 원망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원망하지요. 지금 북한의 김정은이 핵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산다고 선전해대니까 북한 주민들은 어렵더라도 김정은을 원망하지 않고 미국을 원망하고 이 남조선을 원망해요. 북한은 자기들끼리는 혈연관계거든요. 그게 가인의 이름으로 똘똘 뭉쳐있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자연사가 인간사가 되어버려요. 그 인간사가 바로 제 2의 자연이 돼요. 그러면 우리는 뭐냐?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 이렇게 혈육, 가족과 함께 사는 이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상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인상을 갖게 되면 우리 앞에 누가 “예수를 원하는가, 너의 조카를 원하는가?” 하면 대번 “조카를 원합니다.” 이렇게 되지요. “둘 중 한 사람이 살아야 된다면 예수를 살려줄까, 조카를 살려줄까?” 들어보나마나 조카지요. 왜? 나하고 혈연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게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베드로, 네가 잡혀죽을래, 예수를 부인할래?” 예수님을 부인하지요. 이미 바깥에 있는 해와 달과 별만 자연이 아닙니다. 그 자연이 가인의 법에 의해서, 가인이 여호와께 받은 법에 의해서 제 2의 자연, 천성이 되어서 이 현실을 내 육이 사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해석을 하게 되고 나를 위한 자연으로 수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새 비가 왜 안 오는지 모르겠다.” 또는 “비가 왜 이렇게 자주 오지?” 그 이야기가 무슨 말입니까? 비올 때는 인간보고 물어봐야 돼요? 왜 그런 불평을 하느냐 하면, 내 안의 자연을 평온하게 하기 위해서 제 때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줘야 합당하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아벨을 잊어버린, 십자가를 잃어버린, 스스로 자생해서 스스로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용서받지 못할 자들의 집단이 되는 겁니다. 저주받은 그 저주의 모습들이 바로 그 모습이에요. 놀라운 사실은 그게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그게 그렇게 자연스러워요.

이 자연스러움을 확 긁어버리는 거예요. 날카로운 것으로 확, 긁어버리면 흠집이 나잖아요. 그렇게 찢듯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22장 53절에 보면,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라고 되어 있어요. 그리고 두 구절을 더 말씀드리면, 누가복음 13장 32-34절,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여기 헤롯이 등장합니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헤롯보고 여우라고 했어요.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현재 주어진 인간의 시간을 자기 입장에 맞추어서 원, 투, 쓰리, 이렇게 봐요. 오늘, 내일, 모레로 봅니다. 인간의 시간론, 역사를 완전히 무시해 버려요. 인간은 자기가 갖고 있는 공간과 시간을 자연스러움으로 봅니다. 인간 역사자체도 억지가 아니고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너나 나나 누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내일 뭐 먹지? 한 달 뒤에 뭐하지?’ 너무나 자연스러워요. “내년에 너 뭐할 건데?” 너무나 자연스러워요. 그런데 그 시간계산법은 주님한테는 통하지 않습니다. 주님 빼놓고 하는 거예요. 아벨 빼놓고 가인끼리 논할 때는 그냥 무구한 역사입니다. 애국가 가사가 어떻게 됩니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어지간히도 오래 가려고. 하나님도 아니에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그 다음에 뭐냐? “만세!” 오랫동안 누린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루, 이틀, 사흘, 끝났어요.

그쪽 세계는 내추럴 한 것이 아니에요. 검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악마가 지배하는데 악마의 모델은 가인입니다. 왜?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튕겨져 나왔거든요. 누구처럼? 이 뱀처럼. 그래서 그 전체를 뭐라고 하는가? 뱀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뱀의 후손들은 법으로 자체적으로 자기질서를 유지해야 되는데 그 원칙도 여호와께서 개입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죄를 앞에 두고 “네가 이 죄를 다스려야 된다.” 하는 거예요. 네가 그런 재주를 한 번 피워보라는 겁니다.

죄를 다스린다고 그렇게 애쓰는 와중에서 가인은 동생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죄를 다스리기 위한 그 힘겨운 노력, 그렇게 해서 내가 신 앞에서도 숙제를 해냈다는 것을 우기고 싶은 생리, 그러한 속성이 오늘날 혈연관계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겁니다. 매일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뭐냐? ‘죄를 이겨야지.’ 이게 내추럴, 자연스러운 거예요. ‘죄를 이겨야지. 나쁜 짓 하지 말고 죄를 이겨야 복을 받지.’

세상에,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 나와서 복 받아봐야 그게 복이겠습니까? 그게 지옥이지요. 지옥에서 착해봐야 ……, 몰라요 또, 지옥 중에서도 편한 자리가 있는가요? 지옥에도 전방이 있고 후방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한복음 12장 31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신이 떠난 자리, 하나님이 떠난 자리에 있던 그 지도자, 지도자란 법을 만드는 자, 법을 집행하는 자거든요. 그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여러분이 성경 볼 때 어떻게 봤습니까? 예수님 대충 알아보려고 왔지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예수님을 우리가 안다는 것은 이 세상을 포기하고, 가족을 포기하고, 이 세상을 훌쩍, 속히 떠난다는 마음가짐이 되지 아니하면 성경 제대로 모르는 거예요. 백독을 봐도 몰라요. 그냥 발이 들썩들썩 해야 돼요. 떠나고 싶어서. 속 안 좋을 때 화장실 멀리 있을 때의 그 기분, 예가 좀 더럽습니다만, 빨리 막 가고 싶어요. 빨리 떠나고 싶어요.

가만 생각하니 적절한 예네요. 여기 있는 것이 더 초조해요. 도대체 언제까지 이 땅에서 벌 받을 거예요. 그것도 주님께서 육에 대해 주신 그 징벌을 언제까지 받을 겁니까? 뭐? 60은 아직 젊어서 못 간다고요? 70은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빨리 가, 빨리! 저 세상이 부를 때 후딱 가버려요. 그렇게 보니까 예수님 말씀가운데 혈연관계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모든 내용이 다 거기에 있어요. “육에서 빠져나와라.” 그 한마디로 끝나는 겁니다.

예수님 설교하실 때 예수님 모친과 형제들이 왔거든요. 제자들이 아부하듯이 “주님, 가족이 왔네요.” 하니까 “누가 나의 패밀리냐? 누가 나의 가족이냐 너희들 보기에 내 가족으로 보이느냐? 내가 보기에는 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내 가족이다.” 세상에서 자연스럽다는 것은 이미 그 토대가 처벌받은 가인의 품성, 성격, 가인의 모습, 성질, 그것을 제 2의 천성, 제 2의 자연으로 그저 양육 받고 쇠뇌 받은 거예요. 이 땅에서 울고불고 가슴치고, 전부 다 뭐와 관련되어 있는지 압니까? 주님하고 관련된 것이 아니에요. 전부 다 자기 새끼하고 관련되어 있습니다. 행복도 자식하고 관련되어 있고, 울어도 자식하고 관련되어 있고, “아이고 내 새끼, 요거 예쁜 거…….” 막 흔들고, 예쁘다고. 동영상 보내오고.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이 백 마리가 있는데 숫자가 99 대 1일이에요. 그런데 99가 그냥 99가 아니고 ‘회개할 것 없는 자’입니다. 회개할 것이 없는 자, 무슨 말이냐 하면, 그냥 사는 대로 즐겁게 사는 자, 그 말입니다. ‘회개할 것이 없는 자.’

그 뒤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로 보면, 아버지하나님의 그 나라가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 내가 태어난 곳을 전부로 아는 자가 99마리의 양인데 이 양은 회개할 것이 없는 자, 앞에 붙어 있는 형용사가 ‘회개할 것이 없는’, 회개를 모르는 자,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것이 편하다고 우기는 자입니다. 그런데 양 한 마리는 잃어버렸다가 예수님에 의해서 찾아요. 어떤 인간도 이 차단막, 가인의 세계, 그 권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생명나무가 직접 그 가인의 차단막을 뚫고 들어와요. 유성이 막 대기권을 뚫고 안으로 들어오듯이. 유성이 들어오면 불이 붙잖아요. 뚫고 들어와서 자기 양을 데려가면서, 데려가는 예수님 자신의 행위를 보고 예수님 자신이 만족하고 기뻐하는 거예요. 그냥 멱살 잡혀 올라가는데 주님께서는 연신 기쁜 거예요. “어쩌다 이렇게 건짐 받았지?” 우리가 뭘 로 건짐 받아요? 생각도 없었는데. 주님이 스스로 건져놓고 그냥 우리보고 예쁘대요. 주님이 자신의 사랑을 담아놓고 그 사랑을 다시 회수하면서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겁니다. 그 능력은 뚫어야 되니까 뚫기 위해서 주께서는 이 저주, 포괄적으로 심판받아야 할 자리에 오셔서 아버지의 심판을 우리 대신 미리 받아서, 우리는 통과할 때 그 가이드 때문에 아무 저주도 없이, 심판도 없이, 주와 함께 강도가 되었던 세리가 되었던 그냥 천국으로 갑니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요한복음 5장에서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정신대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돼서 지금도 하고 있는데 제목이 <귀향>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거예요. 신발공장가는 줄로만 알았던 그 소녀들을 다 데려갔거든요. 그런데 일본이 전쟁에서 지게 되었거든요. 남아 있는 정신대를 처리하기 위해서 구덩이를 파서 죽 집어넣고 불살라 버렸어요. 본국에 있던 무당 딸도 거기 갔던 모양인데 무당입장에서는 몸은 불살라져도 영혼은 있을 거잖아요. 그 영혼이 나비가 되어서 귀향한다는 내용입니다. 보지는 않았습니다.

무당이 딸의 영혼을 데려오기 위한 그 굿하는 것, 그게 다른 말로 한 맺힘이잖아요. 그 한 맺힘이 무당에게만 있습니까? 다 우리한테 있는 겁니다. 고향, 고향을 떠나지 못해요. 그게 우리의 출생지고 출생지로 돌아가는 우리의 그 귀소본능, 그것이 우리의 기억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니 육으로 난 것은 육으로 삽시다. 살아서 우리 몸을 통해서 내 힘으로는 절대로 이 층층이 쌓여 있는 가인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마음껏 죽을 때까지 증거 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 가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 때문에, 예수님의 일방적 사랑이 침투해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데려감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가도록 되는 거예요.

따라서 천국 가면서, 이것은 순전히 여호와의 공로, 주님의 공로입니다. 이 땅에 산다는 것이 처벌이고 심판인 것은 나중에 천국 가보면 알지요. 부동산 구입했다, 새 차 샀다, 이렇고 한 때 좋아했지만 천국 가면 어느 정도 좋은가? 너무 좋아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고 고린도후서 12장에 나와 있어요. 3장에도 나와 있지요.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 좋은 곳에서 주님과 함께 기거하게 되는 거예요. 해와 같이 빛나잖아요. 빛 좀 냅시다. 내자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니지만.

주께서 이렇게 해와 같이 빛내기 위해서 ……, 해와 같이 빛나는데 쌍 커플 수술 같은 것 필요 없어요. 해처럼 빛나는데 어딜 손댑니까? 그 세계를 예수님께서 이렇게 시범조로 보여줬으니 이제 우리의 모델은 가인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가인이 아니고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개입하셔서 선악과 생명나무의 가치를 비로소 저희에게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저 내 행복만 되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십자가를 잊어버린 가인의 속성이고, 어느새 우리가 거기에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우리 몸을 통해서 증거 하게 하시는 주의 일인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30강-창 4장 16-21절(가인의 세상)160316-이 근호 목사.hwp (64.0K), Dow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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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