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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146강, 147강), 묵시세계, 은사 160315강의이사야

유튜브(146강, 147강), 묵시세계, 은사 160315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146강

147강

이미아(IP:122.♡.169.34)

16-03-20 01:54

146강-YouTube강의(묵시세계)160315-이 근호 목사

제 146강, 제목은 ‘묵시세계’입니다. 묵시세계라 하는 것은 보통 이 사회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묵시세계란 뭘까? 묵시세계의 반대말이 역사세계라고 합니다. 역사세계의 반대말이 있다는 것, 역사 바깥에 뭐가 있다는 것,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역사라 하는 것은 바깥에 나갈 수가 없고, 그냥 하루하루 살다보면 과거 있고, 그 다음에 그 과거가 현재가 되도록 밀어내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이게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들의 시간 의식이며, 시간이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누가복음 17장에 보게 되면 바로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와 동일한 입장을 갖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니까, 그들이 정작 궁금했던 것을 언급하는 대목이 누가복음 17장 20절에 보면 나옵니다. 그 대목을 읽어보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옵니까?” 오늘날 우리도 궁금해 하는 질문과 동일한 질문을 한 겁니다. 언제 오는가를 왜 묻는가? 그때 올쯤 되어서 미리 대비하려고 묻겠죠. 지금은 자기들 보기에도 하늘나라는 분명히 아니라고 여기는 겁니다. 세상에 불의가 많고, 세상에 범죄가 날뛰면서, 그리고 살기 힘든 자연환경, 기근, 가뭄, 태풍, 이런 것이 있는데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이런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이 예수님한테 한 질문은 우리가 그 당시, 예수님 당시에 함께 있었다면 우리도 동일하게, 아니 제일 먼저 꼭 질문하고 싶은 질문일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예수님께 기대하는 답변은 이런 것일 겁니다. “5년 뒤에 온다. 10년 뒤에 온다. 2개월 뒤에 온다. 1주일 뒤에 온다.” 라는 식의 답변을 우리는 기대하게 돼요.

왜 우리가 그런 답변을 기대하느냐 하면, 아까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역사라는 안에 있기 때문에, 역사 바깥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까지 시간적인 쪼갬과 스케줄에 따라서 며칠 지나면 온다고 하는 답변이 우리한테는 이해가 되죠.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을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2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절,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고 언급을 하셨습니다.

지금 질문은 뭐냐 하면 “언제 옵니까?” 라는 질문을 바리새인들이 했어요.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하는 그 환경을 이렇게 풀이해주시는 거예요. 너희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되면 너희들은 너희들 눈으로 아, 하늘나라가 왔다. 또는 안 왔다. 왔다, 안 왔다를 확인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우리한테는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너희들이 그 질문을 나한테 했다고 하시는 겁니다.

하늘나라가 왔다, 안 왔다 하는 것을 본인들이 이미 파악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문제는 우리가 기대하는 하늘나라가 언제 옵니까? 라는 식으로 바리새인들이 물은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질문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가 왔어도 너희들은 그걸 알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너희들이라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질문을 할 때 자기들은 하늘나라가 오는 정도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질문을 했는데, 주님께서는 너희들이 하나님 나라가 와도 모르게 되어 있는 그런 인간이라고 되받아 치시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 만나면 우리가 하고 싶은 질문인데, 따라서 답변도 그 당시 바리새인들에게만 답변한 것이라고 여기지 말고, 지금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같은 답변을 했다고 했을 때에 도대체 우리는 어떤 면을 수정해야 될까요?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우리가 판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너희 안에 있다고 했을 때에 시간적으로 질문했던 사람들은 “너희 안에” 앞에 뭘 붙여서 이해하느냐 하면 “이미 우리 안에 있다.” 그냥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여기 왔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옳은 생각인지를 다시 한 번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해야 돼요. 우리가 하늘나라가 온 것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라는 말을 붙여서 하늘나라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알기 쉽게 말해서 예수님 보시기에는 너희들이 하늘나라가 있다 할지라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너희에게, 인간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자, 그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는 그냥 조용히 곱게 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상상하고 생각한 하나님 나라와 전쟁을 하고 투쟁을 하고 분쟁을 일으키면서 현재 우리 속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 시편 110편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이것은 뭐냐 다윗이 예언하기를 장차 오실 메시아는 일을 하실 때에 싸움하는 분으로서 이 땅에서 활동하신다는 겁니다. 싸움을 하게 되면 싸움의 대상이 있을 것이고 그 대상은 “주의 원수” 시편 110편 1절에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원수죠.

그러면 예수님의 원수라는 것을, 예수님이 왔을 때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원수를 그들은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인간들은 자신에게 해코지하는 자신의 원수, 자신의 말을 가로막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그런 것을 자신의 적, 자신의 원수로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그리고 우리가 이 바리새인이 하는 질문과 생각이 오늘날 우리와 동일한 질문과 생각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볼 때, 하나님 나라가 궁금하다고 해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가 궁금한 마음이 들고 거기에 맞게 주님께서 답변을 하셨을 때에, 하늘나라를 궁금해 하는 것과 거기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 아울러서 우리가 주님의 원수 노릇을 하면서 천국은 천국대로 가고 싶어 하는 욕구와 욕망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하늘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면, ‘하늘나라가 이미 와버렸네.’ 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미 와버렸다고 생각할 때에, 마태복음 21장부터 쭉 나오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고 하시면서, 바로 이 세상이 멸망하는 예언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쭉 언급을 합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이게 누가복음 21장 25에서부터 뒤에 계속 나옵니다.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 인자의 날이 올 것이다.” 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을 보면서 ‘아, 예수님께서는 이미 오셨는데 그 실체는 마지막까지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아요. 그래서 신학자들이 이걸 오해하기를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고 아직 마지막은 남아 있다. ‘이미’ ‘아직’이라는 두 단어로 하늘나라를 묘사하느라고 애를 씁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은 약속이라는, 그 속에는 묵시적인 요소가 들어있어서 시간적인 상황에 있는 우리가 그 묵시를 알아챌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스스로 활동을 하게 되면, 시간 속에 있는 우리 자체가 사실은 주님의 원수 안에 사로잡혀 있다는 그런 쪽으로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오게 되면 시간 속에 매여 있는 우리 자신 때문에 성경 말씀을 전부 다 우리가 오해했다는 것을 성령을 통해서 뒤늦게 알게 되는 겁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이야기를,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이유가 우리의 지혜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주님의 원수 편에서 함께, 한통속으로 그런 식으로 이 세상을 보고 주님의 생각을 해석하고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묵시로, 항상 묵시적인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겁니다.

이미아(IP:122.♡.169.34)

16-03-20 01:59

147강-YouTube강의(은사)160315-이 근호 목사

제 147강, 제목은 ‘은사’입니다. 은사라는 말은 쉬운 말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실 때에 그걸 어떻게 주느냐, 성령을 통해서 선물을 준다는 겁니다. 보통 이 세상에서 선물 받을 때는 사람이 사람에게 선물을 주죠.

근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는 어떤 특정 사람에 따라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게 됩니다. 그 선물을 주게 되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죠. ‘내가 선물을 받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성령이 주신 선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성령을 통해서 주시기 때문에, 그걸 ‘성령을 받았다.’ 라고 할 때 주의해야 됩니다. 내가 여기 있는데, 하나님의 선물 받기 전에도 나였는데, 선물 받은 후에도 나다. 이렇게 돼버리면 보통 인간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에게 선물 줄 때하고 똑같이 돼버리죠.

어떤 사람이 나한테 선물을 줄 때, 그 선물을 주고 난 뒤에도, 선물 받은 내가 선물 받기 전의 나하고 똑같은 인간이죠. 그거는 분명한 사실이죠. 그런데 성경은 달라요. 어떻게 다르냐면,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실 때 성령을 통해서 주시기 때문에, 성령 속에 함께 성령이 담고 있는 그 취지와 더불어서 선물이 오는 겁니다.

그러면 선물의 취지가 뭔지 우리가 알아야 되는데,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영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그 성령 말고,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일이 완료되고 난 뒤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우리 인간에게 주실 때, 그때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거든요.

은사, 그 선물 안에 내용이 뭐냐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은 인간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그 의미가 거기에 포함이 되어 있어요.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의미, 취지가 성령을 통해서 은사로,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면 받는 우리가 ‘내가 받았다.’가 아니라, 나를 죄인 되게 하신 작업에 내가 이제 휩싸이게 되었다. 말려들었다. 그런 쪽으로 은사가 받아져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했더니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셨다.’ 이게 은사가 아니고, 은사라 하는 것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십자가 지신 그 의의가 우리와 만나서, 이제 우리를 가지고 예수님이 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해서 남은 세상에 교회 안에서나 또는 바깥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은사를 주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의 되풀이, 또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반복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긴긴 말을 짧게 하면, 예수님의 은사를 받게 되면 ‘나는 없다.’ ‘나는 없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없다고 할 때 그 나는 뭐냐 하면 내가 생각했던 그 나는 이제는 없고 주님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나가 은사를 통해서 드디어 내 속에서 확인되고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이런 이야기 했어요. 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근데 그 모든 것이라는 것은 본인이 기대한 모든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을 시키니까, 주님께서 일을 시키고 또 함께하신 그것의 모든 것입니다.

내가 예상한 모든 것이 아니고, 왜? 왜 내가 예상한 모든 것을 들어주지 않느냐 하면 나는 없기 때문에 내가 기대한 모든 것은 다 묵살이 됩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묵살됨으로써 계속해서 ‘나는 없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죄인이라서 내 뜻대로 들어주게 되면 하늘나라에 지장을 주게 된다.’ 그런 취지가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성령이 왔다는 것은 예수님만 의인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의인을 죽이게 된 죄인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꾸 티내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의 은사가 오게 되면 은근슬쩍 우리는 그 은사가지고 뭔가 나름대로 갖고 있던 포부와 비전과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 은사라는 성령의 힘을 이용하려고 덤벼들겠죠.

바로 그 덤벼드는 그 속성이 예수님을 진즉에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사탄적인 속성이 내 안에 있음이 더 주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가 오게 되면 항상 나는 죄인이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죄인중이 괴수다. 그리고 이런 나를 십자가로만 구원했기에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사, 또 감사, 찬양, 고마움을 드릴 뿐이다. 이것이 은사 받고 난 뒤에 나오는 열매가 되겠습니다.

따라서 그 은사에 대해서 로마서 12장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절,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은사가 오게 되면, 그 은사의 기능은 인간들이 갖고 있는 죄를 들추어내어서, 십자가와의 만남을 주선해서, 이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또는 예수 안에서 어떻게 의롭게 되어서 거룩하게 되었는가를, 새삼스럽게 그걸 보여주면서 피조물 입에서 영광을 받고 주님이 찬양받는 그 목적이 있거든요. 있다면, 은사가 오기 전에 인간들은 자신의 잘남과 자기 의를 고수하게 되어 있어요.

근데 그 고수할 때, 어떻게 자기 잘남을 아느냐 하면 남들과 비교하면서 그렇게 알게 돼요. 저 사람은 저렇게 잘 됐는데 나는 어느 정도냐? 저 사람은 얼마를 가졌는데 나는 이것뿐이냐? 그 사람보다 못하면 화가 나고. 그 사람보다 잘나면 우쭐대고. 그것이 인간의 단체, 집단에서 그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죠.

그런데 그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게 되면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게 돼요. 그 믿음의 분량이 뭐냐 하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주께서 일을 하기 위해서 이런 은사를 줬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누구하고 비교하거나 대조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되죠. 이것은 뭐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에 합당한 것이 되는 겁니다.

남들은 기도를 두 시간해도 지치지 않는데 나는 3분만해도 지친다, 이것을 열등의식 갖거나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3분하는 것마저도 주께서 하게 하신 일인 것을 자기가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고 부자가 되고, 근데 나는 예수 믿는데 갈수록 점점 더 사건이 일어나서 있는 돈도 날리게 됐을 때에 거기서 짜증내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어요.

왜? 내가 살아가는 자체가 믿음의 분량대로 주신 성령의 활동영역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성령의 은사는 항상 나라는 것이 애초부터 없고 주님에 의해서 다루어지는 그 나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나올 때, 이거 성령의 은사 받은 거죠.

로마서 12장 6절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이 말은 뭐냐 하면 “달라도 상관없지?” 라고 우리에게 묻는 겁니다. “믿음의 분량이 달라도 니 상관없지? 감사할거지?” 어떤 사람은 부자 되는 은사가 있고 나는 가난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 때문에 니 삐지거나 화내거나 안 할 거지?” 라고 묻는 식으로 이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일이면 가르치는 일로,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자로, 구제하는 자면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면 부지런함으로, 이게 어떤 일을 하던 간에, 이게 한 몸이기 때문에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라 이 말입니다.

그 한 몸이 뭐냐, 우리 안에 주님만 계시지, 우리는 아예 없는 존재로 다루어진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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