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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예수님의 왕 됨을 원치 않는 원수들묻고답하기-

예수님의 왕 됨을 싫어하는 원수 일명 달란트 비유 ( 열므나 비유 눅 19장, 세가지 비유 마25장)지난 시간에 삭개오가 뽕나무를 습격한 아이디어는 바로 창세 전에 계획된 주님의 아이디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매국노 삭개오가 그런 행동을 안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텐데, 그런 행동을 함으로 인해 반발 세력이 생기더라는 겁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님이 그의 보호자로 나서시는 이유 때문에 우리들은 용납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우리보다 월등한 자가 믿음을 나타내면 칭찬해주고 우리 노력으로 따라잡기를 하면 되지만 우리보다 못난 자가 그런 믿음을 행동을 유발했을때에는 우리는 그까짓꺼 당연히 우리는 한다고들 접근합니다. 그까짓거 우리도 하는데 왜 우리는 왜 안받아주냐? 불공평하지 않느냐? 바로 그런 입장에 놓임으로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처럼, 아벨을 죽인 가인의 입장과 다를바 없는 죄의 소원 앞에 놓이는 입장이 됩니다.여기서 믿음을 표출할 것입니까? 아니면 긍휼을 표출할 것입니까? 우리는 당연히 믿음을 표출해야 한다고들 합니다만, 그런 유대인들 앞에서 전혀 낯설은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믿음에 의해 표출됩니다. 매국노 삭개오를 영접한 예수님, 그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수님, 율법의 노리개로 전락된 소경을 눈뜨게 하신 예수님, 정작 소경이 아닌자가 차라리 소경이었더면 빛을 볼터인데 못보게 되었음을 선언한 예수님, 현장에서 간음하여 붙잡힌 창녀를 용서한 예수님, 오히려 진짜 창녀들은 돌을 던지려 했던 자들이기에 그들의 부끄러움이 드러나자 돌을 들수가 없었던 자들이 더러운 자들이었음을 밝히는 예수님, 귀신들린자를 고치심으로 돼지떼 속에 들어갈 것을 요청한 마귀를 허락한 예수님, 정작 돼지 떼가 먹고 살 것을 유지해주는데 그것을 망친 예수님을 쫏아냄으로 정작 마귀 세력에 길들여진자는 아주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당연시하는 자들임을 밝히시는 예수님.예수님을 원치 않아서 배격하고 쫏아낸 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믿음, 자신들의 행함, 자신들의 선택, 자신들의 언약(약속), 자신들의 선민, 자신들만의 구원, 자신들만의 부활을 근거로해서 예수님을 쫏아내었습니다.이것은 오늘날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지금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왜 예수님은 그 거대한 인간들의 믿음 바벨탑 앞에서 초라한 예수님의 믿음을 들고 등장하시는 것일까요? 왜 좀 멋진 자들이 아닌 일관되게 무시당하는 스스로도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자들로만 모으셔서 이스라엘로 삼으셔서 저 하나님의 백성에게 무모한 전쟁을 벌리시는 것일까요?왜 예수님은 오늘날 거대한 파워를 자랑하는 한국교회 바벨탑을 향하여,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고 도전을 하시는 것일까요?너무 어리석어 보이질 않습니까?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에게서 짖밟히고 있는 잃어버린 자기 양을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거대한 한국교회에게서 조롱당하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하나님은 구원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왕 됨을 원치 않는 원수들인 것입니다.그 내용이 오늘 비유 속에 나타납니다. 오늘 배울 비유는 바로 일명 열 므나 비유, 즉 게으른 종과 충성된 종 비유, 일명 열처녀 비유 즉,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 비유, 일명 달란트 비유 즉, 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 비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과 염소 비유입니다.즉 4가지 이 비유들 속의 인물들이 두 패로 나누어지는데 한쪽은 주인이 타국에 갔으니 이제 주인이 올때까지는 주인은 지금 여기 없다 라는 생각으로 일관하던 자들이고, 또 한쪽은 주인이 타지에 있더라도 주인은 늘 옆에서 함께함에 일관된 모습으로 주인에게 하듯 하였더라 라는 겁니다. 즉 누가 임마누엘 곧 주님이 누구와 함께 하는가입니다. 함께 하시는 쪽이 긍휼의 대상이고, 함께 하시지 않는 쪽이 진노의 그릇이다는 겁니다.(롬 9장)(출 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그럼 어떻게 밝혀냅니까? 이미 이 지상에서 판결 납니다만 우리는 알 권한이 없음 또한 명심해야겠지요.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새창조 하시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창조 앞에 빛과 어둠이 두 갈래로 드러납니다.그 창조는 은혜성을 보여주며, 긍휼과 자비 용서로 나타납니다. 그 빛의 믿음에 거부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드러납니다. 빛의 자녀는 분명 자신들이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빛의 속성을 드러내며, 어둠의 자녀들은 자신들이 무진장 일한 것이 많고 믿음의 행동들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의 속성을 그대로 다 폭로 당하는 쪽으로 드러납니다. 일명 달란트 비유, 곧 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있든 없든 늘 주인 앞에서의 모습으로 일관한 자들이 충성된 종이고, 게으른 종은 주인이 없기에 독자적인 행동을 표출했음으로 어둠의 자녀의 속성을 일방적으로 지적하는 주인의 선언에서 느닷없이 왕 됨을 원치 않음을 들추어 냅니다. 남겼다는 것을 목적으로 이 비유로 사기를 치는 자들이 많은데 정작 목적은 왕 됨을 원치 않음에 있습니다. 오히려 주인을 두려워 하여 벌벌 떨며 차라리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요? 요즘 같은 시대에 아무리 자본이 있어도 밑빠진 경제시장에 물을 아무리 부어본들 무엇 하겠습니까? 은행도 부도나는 판국에? 차라리 원금 그대로 집구석에 묻어두는 것이 제일 아닌가요? 무리한 투자, 무모한 사업 펼쳐 부도나는 것이 더 확률상 위험성이 높지요. 남는 것이 목적이라면 현대의 경제관에선 다른 계산법이 저마다의 환경에 따라 다 달라집니다. 어쩌면 남기는 것이 목적이면 묻어두는 것도 또 하나의 지혜이겠지요.그래서 장사하는 사람, 돈을 만져본 자들에겐 이 비유는 졸지 못하고 모든 신경을 써서 듣게 되는 비유이므로 사기꾼들은 그 자기유익 쫏는 자의 심리를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그래서 이 비유는 거의 대부분 오해하는 비유입니다. 즉 함정에 다 빠진거지요. 바로 어던 자들이 다 빠지라고 비유를 던진 겁니까? 바로 게으른 종과 같은 자들이 다 빠지도록 되어 있는 비유라는 겁니다. 그럼 이 비유를 밝혀버리면 저들이 알 것 아닙니까? 알려줘도 무슨 말인줄 모릅니다. 이미 그들에게 자리 잡은 믿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은 자기 백성을 반드시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건져내시듯, 지옥 갈 자를 반드시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보내십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직접 하십니다. 천국에 올 리가 없습니다.일명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왕 됨을 원치 않으므로 종들의 행동 여부에 따른 결정이 아니라, 주인의 결정에 따른 의미를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주인은 왜 그런 결정을 하실까요? 주인의 일관된 결정은 오히려 우리 입장에선 반대입니다.누가 슬기로운 처녀일까요? 주인이 왔을 때 준비하면 되지 구지 오지도 않았는데 미련스럽게 준비 할 이유가 있나요? 그런데 주님의 시각에선 가치가 전도 됩니다.자 누가 더 무모한 종일까요? 뭘 남길려고 하다가 차라리 잃어버리는 도박과 같은 경제활동에서 어차피 돌려줄꺼면 내 것도 아닐바에 원금 그대로 주면 잃지도 않고 얼마나 좋나요? 참 지혜롭지 않나요? 차라리 돌려줘야할 입장이면 적극적 투자 보단 소극적인 투자가 이 어려운 경제를 해쳐나아가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무모하게 투자해서 부도나거나 다 잃어버렸다면 남기는 것은 둘째 치고 원금도 사라질 것 아닙니까? 어차피 돌려주고 나의 것이 아닐바에 원금 그대로 주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겁니다. 누가 어리석나요? 남겨서 다행이지 잃어버렸다면 주인의 결정은 분명 달라졌을 겁니다. 다행. 더 모르도록 다행. 다행.자 누가 더 양 같을 까요? 주님이 목마르든 말든 열심히 이웃을 위해 헌신 봉사한 그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이 너무 바쁘다 보니 딱 한분 주님만 못 돌보아 줬을 뿐 모든 이웃을 그냥 못본채 넘어가는 유대인이 아니거늘 왜 이들은 염소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오히려 자기 몸 하나 간수 못해서 남 도와주기는커녕, 예수님 마저도 변변치 않게 제대로 대접한 적 없거늘 예수님은 혼자 일방적으로 나에게 물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줬다고 예수님 혼자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리십니다.이 4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인간이 선으로 여긴 것을 예수님은 악으로, 인간이 악으로 여긴 것을 예수님은 선으로 혼자 선언해 버리셨다는 겁니다. 종말의 비유란 이렇게 모든 가치판단이 전도 거꾸로 됨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왜 선이 악이 되고, 왜 악이 선이 될까요? 즉 기존의 앞에서 판단해 오던 그 기준들이 예수님에 의해 새롭게 조명된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새로 창조해 버리시고, 선을 악으로 선언해 버리시는 겁니다. 이유는 기존의 선이라고 주장하던 것들이 참 선이신 예수님을 몰라보았고, 오히려 그들 선에게서 악이라고 정죄 받던 자들이 선하신 목자 예수님을 알아보고 선을 바라보았다는 겁니다. 즉 그들이 진짜로 선해서가 아니라 비록 악한 죄인이지만 선한 예수님이 누구였는가를 보았고, 비록 예수님도 칭찬한 바리새인의 자칭 선이지만 예수님 앞에서 그 선함도 무의미함을 절대 손 놓지 못한 자를 악으로 보시는 겁니다. 바리새인인 사울이 예수님의 일방적인 선한 행하심 때문에 지독한 자기선함을 손놓고 똥으로 여겼음을 예수님의 믿음이 오고서야 알게된 자기믿음이 박살이 남으로 받은 선물인 겁니다.자 이제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삭개오는 재산 반 토색한 것 4배를 내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믿음의 표현이 아니라, 예수님이 일방적인 용서에 저절로 그 파장으로 손아귀에 쥔 것에 대한 포기입니다. 얼마나 바보인가요? 얼마나 융통성 없는가요? 얼마나 미련하지 않나요? 예수님이 함게 해주는 것은 함게 해주는 것이고, 같이 밥 한기 먹은게 뭐 대단한 것이라고, 대단한 삭개오도 아닌데, 누가 환영해줄 이 아무도 없는데, 누가 매국노의 돈을 선하다고 누가 받아줄것인가요? 재산 다 내놓더라도 안받는 유대인의 철저한 자기거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계산 하나 통밥으로 굴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다 내뱉어버리는 주서담을수 없는 저 고백은 누구로부터 온 것일까요?예수님이 심으시고 예수님이 받으십니다. 어떤 누구도 환영하는 이 없는 그 고백을 예수님 혼자 좋아라 받아들이십니다. 그런 더러운 재산 좀 바친다고 아브라함 자손 될 것 같으면 지나개나 다 아브라함 자손이 되기에 유대인이 기뻐 환영할 일일까요? 그런데 예수님 혼자 아무도 원치 않는 삭개오의 아브라함 자손됨을 선언해 버리십니다. 누가 분명 찝찝할까요? 누가 분명 가인의 행동 일부직전 일까요? 바로 우리가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눅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예수님!!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항상 팔을 어긋나게 선언하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선 줄로 늘 착각하는 우리, 넘어질까 두려워 할 필요 없는 우리 믿음에 빠진 이 어리석은 자들이 바로 다름 아닌 우리요, 우리가 원수이며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들임을 보게 됩니다. 그저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제발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심각한 죄악이 우리 속에 늘 가득함을 보시고 고쳐 주시옵소서. 우리의 죄를 씻기는 것은 예수님의 피 밖에 없음을 알게 하시옵소서. 오로지 십자가의 피만 증거 하도록 간섭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의 비유 곧 열 므나 비유는 구약의 가나안 12 정탐꾼의 이야기랑 일맥되군요 아 이제 알았넹 10명은 생지옥을 2명은 생천국을 두 시각이 서로 대립 되지요. 분명 메뚜기 같기에 저들에게 죽임을 당할텐데 라는 염려는 게으른 종의 합리적인 처사이고, 충성된 종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머리싸움으로 보호자 싸움으로 보고있는 융통성 없는 그저 왕만 머리만 보호자만 바라보고 밥이다 라고 한 주장과 같군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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