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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02. 행 28:23-29 (로마에서) - 이근호 목사님 사도행전 설교(ALL)자유게시판사도행전

102. 행 28:23-29 (로마에서) - 이근호 목사님 사도행전 설교(ALL)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02. 행 28:23-29 (로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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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행 28: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행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행 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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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이라면 어떻게 목회를 했을까?

여러분, 사도바울이 목회를 했을 때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그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사도바울이라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사도인데, 예수님께서 직접 택하신, 물론 다른 분도 주님이 택하셨는데, 그런 사도바울이 우리교회에 왔다고 하면, 과연 어떤 방식으로 목회를 했겠느냐는 겁니다. 저는 그게 참 궁금했는데, 여러분의 표정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오늘날 목사들이 목회를 하는 유형이 각지각색이기에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줄로 알지만, "각각의 받은 은사대로 하면 됩니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어떤 목사님은 "나는 집을 짓은 은사로 한다" 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목수를 하면 되지 굳이 목사가 될 필요는 없다는 말이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

사도바울이 어떻게 목회를 했는지, 여러분도 사실 그것이 궁금했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 정답이 오늘 본문에 나와있다는 겁니다. 그는 어떻게 했는고 하니, 강론을 했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신문을 들고 한 것이 아니라, 28절에 보면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행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무슨 말인고 하니,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신약이 없었으니 구약성경으로 강론을 했다는 것인데, 즉 구약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로 강론했는데, 그렇게 목회를 했다는 말이죠.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메시야임을, 그분이 최종적인 구원자임을 말해주는 목회를 했는데, 그렇게 목회를 한 것이 모여서 오늘날 신약성경이 되었다는 겁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수님 이야기로 시작해서 끝 !!

그러니 우리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보면서 무엇만 끄집어내면 되는고 하니,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임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도 합당하고 사도바울에게도 합당하다는 말이죠. 그게 참된 교회이고 성도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다른 것을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사도바울은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수님 이야기로 시작해서 예수님 이야기로 끝을 내었다는 말이죠.

성도의 존재라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높이는데 있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니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속에서 각자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자극을 받아서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는 처음부터 아예 없었는데, 어떤 특정한 이유로 인해서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말이죠.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라는 것을 찬양하고 증거하기 위해서, 그래서 특별히 우리에게 일어난 현상이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믿음이라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6절에 보면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행 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도바울 !!

여기서 설교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이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했다고 했는데, 그게 그의 목회라고 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방금 읽은 26절,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27절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이사야서 6장 9절과 10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그것을 여기서 인용하고 있다는 말이죠.

(사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의 이 말씀을 가지고 사도바울이 증거하려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되돌아가는 사람들조차도 예수님께서 살아있다는 증거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살아있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래서 일부러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도록 하셨다는 말이죠.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조차도 예언될 일 !!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취지를 아셔야 하는데, 구약성경을 통해서 예수님 이야기를 할 때, 여기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수님 이야기를 해주세요. 우리가 알아먹겠습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사도바울이 구약을 가지고 예수님을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잘 알아듣자" 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의 생각은 무엇인고 하니, "내가 이제부터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수님 이야기를 할텐데, 구약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진짜로 옳으며, 구약은 당연히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그것을 알아듣는 것조차도 구약에서 예언된 예수님의 일이다" 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게 되어야 지금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취지에 합당하다는 말이죠.

종교는, 지상 최대의 사기극 !!

이것이 어려운데, "사도바울님, 멋지게 강론해주세요. 제가 믿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바가 없는데, 그것은 하나의 종교인데, 하지만 종교는 지상 최대의 사기극이라는 겁니다. 기독교든 천주교든 사기라는 말이죠. 사기도 이런 사기가 있는데, 물론 우무머리는 악마이고, 여기에 모든 인류가 다 동원되었다는 겁니다. 마귀가 전 인류를 동원해서 희대의 사기극을 벌렸는데, 그것이 바로 종교라는 말이죠. 그게 기독교이고 천주교라는 겁니다.

오직 예언된 대로만 !!

하지만 사도바울에게는 '종교 만들기' 라는 것은 전혀 없는데, 그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냥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구약성경에 예언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냐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이 될 사람은 예수님이 그냥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이 되어있는 것이고, 그렇게 성경말씀에 예언된 대로 실행을 하다가보니 저와 여러분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쏟아지고 주어졌다는 말이죠.

물론 여기에 대해서 반대할 분들이 많지 싶은데, "이 목사야, 그것은 니가 성경말씀을 곡해한 것이다. 니가 귀신에 씌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믿음은 그게 아니고,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만 베풀어주신다고 하면 누구나 자기 속에 있는 믿음을 발생시키게 되어있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오늘 본문말씀을 전혀 믿지 않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선입관이 말씀을 성취성을 거부할 수 없어 !!

오늘 본문 26절에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하는데, 이 말씀은 아무라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데, 이 말씀을 우리 인간의 선입관으로 무효화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죠. 자기의 종교적 경험으로 말씀의 성취성을 거부하면 말이죠.

인간은 죄를 짓고 난 다음에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그것을 사도행전 2장에서는 '방언' 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특이하고 특수하다는 겁니다. 알아듣지를 못하는데, 동일한 한국말을 가지고 설교를 해도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말이죠.

이 인간도 결국 죄인이었구나 !!

김달원 목사님이 이번에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 장례식을 인도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하셨는데, "장례식에서 돌아가신 분을 추켜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어긋난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것은 자기의 죄 값으로 죽었는데, 그런 죄인에게 위대한 면이 있는 것처럼 하면 곤란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인데, 그러니 장례식에서 영광을 받으실 분은 따로 있고, 돌아가신 분이 차지하면 안 됩니다" 라고, 그렇게 설교를 하셨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들는지는 모르겠지만, 복음을 아는 사람들만 알아듣고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는 말이죠. 그러니 장례식은 "이 인간도 결국 죄인이었구나" 라는 것인데, 그것을 확인하고 털어 버리는 것이 장례식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살아있는 증거가 여기서 확인되고 있다는 말이죠. 즉 "지금 예수님이 살아있으니 이런 사람도 믿어서 구원을 받잖아" 라는 겁니다.

그러니 믿는 그 사람이 영광을 받고 존경을 받는, 그런 식으로 장례식이 진행되면 안 된다는 말이죠. 그런 취지로 김달원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물론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이 대부분인데, 하지만 그렇게 알아듣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찬양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 현상을 사도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현장에서 확인했는데, 즉 "어떤 사람은 믿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아서 돌아간 사람도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24절에 나오는데 말이죠. 그럴 때 사도바울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잊지 않고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행 28: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행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내가 여기에 왜 있는가?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사도바울에게, 즉 사도바울이 성령으로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고 돌아간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러면 왜 사도바울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신 겁니까? 그러면 괜히 하나님도 그렇고 사도바울이 헛수고만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죠.

여러분, 이 세상에는 우리가 놀랄만한 일이 참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이 여기에 이렇게 나타나있다는 것인데, '나' 라는 존재가 말이죠. 즉 "내가 여기에 왜 있는가?" 라는 겁니다.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 왜 여기에 이렇게 살아서 존재해 있냐는 말이죠.

주님은 언제나 말씀의 실현차원에서 !!

그것은 모두에게 다 해당이 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사도행전을 끝내면서, 감동을 받던 말던 오늘이 마지막 시간인데 말이죠. 사도행전을 끝내면서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는고 하니, 항상 주님께서 먼저 말씀을 던져놓고는, 그 말씀을 실현하는 차원에서 뭔가 사람들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아무튼 그렇게 느꼈다고 치고(ㅋㅋ), 왜 우리가 어렸을 때에 놀았던 놀이 중에서 그런 것이 있잖아요. 땅에다가 선을 그어놓고는, 돌을 거기에 던지고는 거기에 한 발을 들고 가서 그 돌을 잡고는 또 다시 돌을 던진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곳으로 또 한 발을 들고 다시 뛰어간다는 말이죠. 그것을 반복해서 하는데, 어떻게 기억이 나십니까?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물론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만,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고 하니, 자기 백성을 마치 하나의 조각돌로 여겨서, 저만치 던져놓고 그곳으로 가셔서 구원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구원된 사람은 엉뚱하게,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라고 하고 있는데, 어느 새 주님께서는 가까이 와서는 그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진척되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흐름인데, 그 예가 사도행전 26장에도 나오는데 말이죠. 16절에서 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행 26: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행 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앞으로 너처럼, 영적으로 눈을 뜨는 자들이 생길 것이다 !!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의 사울이나 지금 우리의 눈이 감겼다는 본다는 말이죠. 그런데 사도라는 머슴을 사용해서, 지금 사울의 눈이 감겼는데 하나님께서 그 눈을 뜨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느끼게 하시는고 하니, "누가 감긴 눈을 뜨게 하셨지? 아하, 주님께서 내 눈을 뜨게 하셨구나" 라는 일이 일어나게 하는데, 그런데 그런 일을 먼저 눈을 뜬 사울에게 그 일을 시켰다는 겁니다.

물론 그 당시에 사울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자기는 이제 앞이 보이지 않는 소경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사울이 소경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소경은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는데, 그런데 '아나니아' 라는 사람이 찾아와서는 안수를 하고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의 똑같은 영적인 현상들이, 물론 자기는 육적으로 눈을 뜬 것이지만, 이것은 영적으로 어두운 눈을 가진 자가 환한 눈을 가진다는 것을, 그것을 사도바울을 시작으로 해서 이제는 그런 현상들이 사도바울이 가는 곳마다 군데군데 터지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리로 사도행전 27장 24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뭐라고 하는고 하니,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도바울이 미리 준비한 것이 전혀 아닌데, 사도바울의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그것을 통보해준다는 말이죠.

(행 27: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행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리고 드디어 28장에 보면, 사도바울은 과연 로마에 오게 되었는데, 그가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로마에 왔던지 간에 왔다는 말이죠. 사도바울은 로마에서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서 약속하신 그 구원자임을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는 겁니다.

(행 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이 세상은 장기판 !!

제가 방금 약 5분 동안 이야기한 것을 하나로 요약하면, "이 세상은 일종의 장기판이다" 라는 겁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빨간색이라면, 그런 빨간색과 파란색을 구분하는, 즉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파란색인 초나라이고, 반면에 알아듣는 사람은 빨간색인 한나라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시간이 아무리 흘러가도, 2,000년을 가던 3,000년을 가던 간에 역시 동일한 장기판이란 말이죠. 그것을 '지평(地坪)' 이라고 하는데, 즉 동일한 판을 짜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개판인데,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개판으로 보지 않고, 추수를 하는 타작마당으로 간주해서, 주님의 편과 악마의 편을, 그것을 오직 택한 자들을 통해서 편가름을 한다는 말이죠. 이 세상은 그런 장기판이라는 겁니다.

물론 악마가 호락호락하지 않는데, 이 지상에서 희대의 사기극을 벌렸는데, 종교를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거짓 선지자를 내세워서 주님의 복음을 저지한다는 말이죠. 그들 종교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해서 구원하는 게 아니라, 창세 전에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여부는 사람의 자기 능력에 여하에 달려있다는 겁니다. 그런 종교를 막대한 자금력으로, 물론 우리교회와는 상관이 없는데, 이 지구상을 그야말로, 즉 장기판을 완전히 시퍼렇게 초나라의 색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이 항복을 하겠습니까? 주님은 수사반장인데, 그래서 자기의 팀원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말이죠. 그렇게 성도들을 보내서 "그게 아니야. 만약에 인간의 행동여하에 따라서 구원이 된다고 하면, 예수님이 미리 던진 조약돌은, 즉 미리 던진 말씀은 그만 무색케 되고 만다는 겁니다. 이사야서 6장의 이 말씀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이죠.

(사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십자가라는 걸림돌을 내포해야 !!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고 하는 말씀을 슬쩍 밀어내고 무시하고는, "인간의 행동여하에 달렸다" 라고 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는데, 오히려 사도바울은 이 대목을 전면에 내세워서 전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감추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그래도 남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하면 뭔가 불편하고 거리끼는 게 없어야 하는데, 그런데 사도바울은 의도적으로, 사실은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하니, 십자가라는 걸림돌을 가지고 이 땅에서 최종적으로 사라진 분이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은 반드시 십자가라는 걸림돌을, 그 걸림돌을 내포한 예수님이어야 진짜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소위 치유와 위로의 목회를 한다고 하면서 그 십자가라는 걸림돌을 치워버린다고 하면, 그래서 껍데기만 남은 예수를 내민다고 하면, 그것은 교회를 아예 지옥의 불바다로 만드는 꼴이라는 것이죠.

잠시 영화 이야기를 하면 !!

물론 여러분이 믿기 힘들겠지만 저는 영화를 거의 안 보는데(ㅋㅋ),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십자가라는 걸림돌이 들어있는 영화는 단 한 편도 구경하지를 못했다는 겁니다. 잘 모르기는 해도 아마 그런 영화를 만들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흥행에 그만 실패할 가능성이 99프로라는 말이죠.

왜 그런고 하니, 인간들의 내면에는 '종교 만들기' 라는 것이 들었는데, 이 종교 만들기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기 노력여부에 따라서 스스로 거룩을 생산해낼 수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고 위신이고 최후의 자존심과 같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런 우리 인간 속에 있는 정보, 코드, 그런 내용물과 맞아떨어져야만 영화가 비로소 재미가 있고 카타르시스가 해소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영화는 "인간의 능력은 이렇게 무한하다" 라는 것에 대해서 박수를 치면서 호응을 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대박이 난다는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상영관에 제대로 걸리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잠시 영화 이야기를 해보면, 보통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는 겁니다. 일단 주인공이 온갖 어려움을 다 겪게 되는데, 하지만 이 주인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겁니다. 덕도 있고 지혜도 있고 의리도 있고 자비도 있고, 그야말로 우리 인간이 원하는 것은 다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최고의 속성을 한 몸에 다 품고 있는 소위 영웅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 영웅이 그 어떤 어려운 환경이라도 딛고 우뚝 서게 되면 사람들은 그야말로 기립박수를 보내는데, 왜냐하면 "나도 저 주인공처럼 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즉 자기도 그 주인공을 닮을 수 있다는 말이죠.

인간은 서로 닮고자 애쓰는 동물 !!

저는 이번에 아버님 장례식을 치르면서 무엇을 느꼈는고 하니, 인간은 서로 닮고자 애쓰는 동물이라는 것이죠. 사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고 하니, 인간은 특이하게 되지 않으려고 하는데, 좁은 길로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지 말이죠. 남들과 같이 비슷한 유니폼이라도 입고 남들과 같이 어울려서, 그것을 '사회성' 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렇게 서로 한 통속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끼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닮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다수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종교도 닮고, 생활양식도 닮으려고 한다는 것이죠. 그 사람이 돈을 좋아하고 자기도 돈을 좋아하고 말이죠. 그렇게 같이 닮으려고 하지, 일부러 튀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종교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종교도 전염성이 있어서 어떤 집안에서 누가 한 사람이 그 종교를 믿으면 모두가 그쪽으로 쏠린다는 겁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다수결로 간다는 말이죠. 즉 특이하지 않기를 소원한다는 겁니다.

인간의 본심은 자기 행함으로 천국도 따내려고 하는 것인데, 그게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인데 말이죠.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것이 아니고, 십자가라는 걸림돌을 가지고 "너희들이 알기는 무엇을 안단 말인가? 개뿔을 알아. 하나님은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 라고 하면서 들이박으니, 누가 그 사도바울을 좋아하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돌아가지 않고, "그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무슨 수로 천당을 가겠습니까? 주님의 은혜가 임하지 아니고는 저는 천당에 가지 못합니다" 라고 하면서, 그 소리가 달콤하게 믿어지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어느 것이 신기합니까?

예수님은 나보다 먼저 계신 분 !!

성경은 정상을 이야기하는데, 무엇이 정상이라는 겁니까?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 라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데 그것을 뚫고 사도바울이 전한 이 말씀이 믿어진다고 하면,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자기가 있기 전부터, 창세 전부터 예정된 것이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다 만들어졌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 예수님이 당연히 자기보다 먼저인데, 그것이 믿어진다고 하면 장례식에서 죽은 자를 높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살아있는 인간이던 죽어있는 인간이던 간에 그 어떤 인간보다도 먼저 있다고 하는 것, 그게 요한복음 1장에 나온다는 말이죠. 즉 "먼저 말씀이 계시고, 그 말씀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다" 라는 겁니다. 빛이 먼저 있었고, 그 빛의 사람들이 생겼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먼저 계시고, 그 다음에 피조물이 있다는 겁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교회는, 사도행전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

제가 지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물론 사람들은 믿지를 않지만 말이죠. 하나님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인간이라는 겁니다. 이런 당연한 것을 사람들은 왜 믿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존심 때문에 그러한데, 그래서 이 세상은 바로 장기판과도 같다는 겁니다.

과연 누구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자존심을 꺾어버리고, 위신도 뭉개버리고, 체면도 무시하고, 그저 주님의 사람으로 뽑혔는지를, 당첨이 되었는지를,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 사도행전이 쓰여졌다는 말이죠. 이제 사도행전을 끝내면서, 이러한 사도행전의 정신이 여전히 우리교회에도 살아있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창세 전에,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는 예수님을 겨냥해서 이미 예정이 되어있었고, 천국에 들어갈 백성으로 이미 모든 작업을 다 하셨다는 것이 믿어지고, 또한 그것이 너무나도 고마움으로 다가옵니다.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 나를 구원하셨다" 라고 하는 당연한 사실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이 세상에, 우리가 특이하게 홀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남기신 7,000명이 또 있는 줄 아오니, 주님이 활동하시는 이상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서, 이 추수 마당에서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자유함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6,03,09 정리함 - 녹취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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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질 때 사도행전 녹취를 시작했는데,
마치고 보니 봄이 오고 있네요.
이제는 봄이 오는 것도 나이를 먹는 것이라 별로 반갑지 않은데,
하지만 그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네요.
봄이 오던 여름이 오던,
나이를 먹든 돈까스를 먹든,
언제나 사도바울과 함께 하신 주님,
결국은 로마로 데리고 가서 임무를 무사히 마치게 하셨군요.
그 주님의 손길을 느끼기를 감히 소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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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