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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60304b 울산강의-출애굽기 36장 : 말 건넴자유게시판출애굽기

20160304b 울산강의-출애굽기 36장 : 말 건넴

이름 : 한윤범(IP:14.39.134.85)

20160304b 울산강의-출애굽기 36장 : 말 건넴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시간에 말씀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고자 한 것은 표적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표적은 만드는 종사자도 보고도 몰랐다는 말을 계속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성막 만들고 법궤를 왜 만드느냐 말이죠. 그게 자신의 구원의 기쁨으로 만들었으면 자기 아이디어에서 나온 겁니다. 하나님이 뭘 좋아하실까? 미역국을 좋아하실까? 미역국 끓어드려야지. 이렇게 되면 본인이 의미를 알고 하나님, 저한테 미역국이 맛있는데 주님도 잡사보세요, 라고 드린 셈이 돼요.

이게 토속종교잖아요. 모든 종교가 그렇지요. 사람에게 귀한 것들을 놓잖아요. 요새 제사상에 피자 올라오고 햄버거 올라오는 이유가 제사 빨리 끝내고 자기가 먹고자 하는 거거든요. 우리가 이미 이해하고 납득이 되는 중요한 이유를 우리가 좋은데 우리가 좋으니까 하나님도 기쁘게 받으시겠지. 받으소서, 하고 드리는 거예요.

지금 이 사람들이 법궤 만들고 성막 만들면 하나님께서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은 우리도 성막 만드는데 기분 좋기 때문에 하나님과 한 뜻이 되리라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걸 표적으로 사용하시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 건넴으로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증거가 있어야 될 것 아니에요. 이건 인간들이 자기 구원을 담아놓는 그릇으로 사용하기에 아무 쓸모없는 것들이 성막이고 법궤고 성막에 있는 모든 기구들이에요.

만약에 오년 전에 어느 기도원에서 소나무 뿌리 뽑다가 은혜 받았다면 그 뿌리를 기념수로 심어놓잖아요. 우리는 법궤와 성막을 그런 식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양으로 홍해를 건너 와서 공작시간에 만든 이 귀한 것을 귀히 간직하세. 하지만 에스겔이나 예레미야에 보면 그 성막, 성전, 법궤 불타버립니다. 없애버립니다. 그건 그림자고 실체가 아니란 거죠. 그리고 그것이 불타버릴 이유가 있어요. 표적을 보고도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들었던 놋 뱀도 같이 불태워지고 심지어 기드온이 승리하고 난 뒤에 기념물 삼아 금으로 만든 에봇도 없앤 것은 이스라엘이 음란하게 섬겼다는 거예요. 그런 걸 음란하게 섬겼다는 말은 인간은 자기가 구원받을 것을 티내는 기념물들을 수집하고 만들어서 본인의 역사와 가치를 하늘나라, 저쪽 세계까지 가고자 시도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뭐냐? 십자가의 실상을 생각해봅시다. 십자가가 여기 있을 때 사람들은 십자가 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한 거예요. 십자가 통고하고 나면 뭐가 있는지 궁금한 거예요. 천국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만 십자가 뒤가 뭐로 구성돼 있느냐 하면, 십자가 앞에 있는 것으로 구성돼있어요. 이게 바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십자가에 행한 대로 갚는 사건만 십자가 뒤에 남겨져 있어요. 심판이 있단 말이죠.

십자가 뒤에 심판이 있어요. 심판의 기준은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에 대한 견해, 태도, 의견들로 결정되는 겁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십자가를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게 바로 지옥 갈 사고방식이란 말이죠. 십자가는 못 믿게 돼있는 게 십자가에요. 내가 십자가를 믿겠다는 말은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표적이 납득이 되고 이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거예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오늘 강의가 어려워지는데 할 수 없지요. 이해해주시고 어려운 것도 해야지요.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변화산 이야기 나옵니다. 저쪽은 예수님, 모세, 엘리야 세 명, 이쪽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 3:3으로 변화산에서 만나지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베드로가 하는 말이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오해했습니다. 이것도 표적인데 표적은 반드시 오해를 유발하게 돼있어요. 왜? 주님은 표적으로 시비 거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말을 건넴인데 그것은 우리를 파괴시키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생각을 거꾸로 트리기 위해서 오시거든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반기고 뽀뽀하고 얼싸안으면 구원되는지 아는데 반대입니다. 주께서 시비 걸기 위해서 말씀 준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말이 건너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게 되고 언약 중에 최고의 언약이 바로 새 언약, 십자가의 피를 얼굴에 튀기는 거예요. 이 피를 보고 주제 파악을 하라고 튀기는 거란 말이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세 번씩 확인받잖아요. 예수님 죽고 난 뒤에.

그럴 때 여기 변화산에서 궁금한 게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과 대화를 한 거예요. 십자가 뒤의 모습과 십자가 앞의 모습을 반복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는 중이에요. 가만있는 게 아니고 뭔가 이야기를 하더란 말이죠. 이야기한 것이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별세에 대해서 언급했다고 나오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안 나오지만 예수님이 산에서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산 밑에 내려와서 제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막9:9)고 돼있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핵심을 잡았어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게 무엇일까, 라고 돼있어요. 제자들이 웅성웅성. 우리가 이 말 들으면 뭘 생각합니까?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제대로 성령 받아서 표적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우리가 진즉에 죽은 자라는 말로 받아들여야 돼요. 예수님이 죽은 데서 살아났다는 그걸 통해서 그게 표적이니까 죽을 자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니고 우리가 죽어 마땅하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표적을 이해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그 대화를 했어요. 우리는 진즉에 죽어 마땅한데 주께서 우리 대신 죽지 않습니까? 그 별세가 언제인지 그걸 물은 거예요. 예수님께서 답변하기를 산에서 내려가면 곧 실시할게. 이런 이야기 했을 거예요. 모세와 엘리야와 했던 말 건네는 테마가 그대로 산 밑에 내려와서 질주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표적이거든요. 그게 하나님이 우리한테 말 건넴이란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거든요. 예수님이 나귀 하나 몰고 오너라, 할 때 제자들이 나귀를 몰고 왔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법궤 만드는데 금가락지가 필요하다. 금가락지 빼드리는 거예요. 성막 만드는데 일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목수가 필요하다. 목수 브살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손 기술 있는 사람들이 하면 되잖아요. 열두 제자가 그런 일을 한 사람이란 말이죠.

그런데 하면서도 결국은 다 도망갔지요. 왜 도망갔습니까? 주님은 같이 죽자고 열두 명 모았는데 제자들은 걸음아, 날 살리라고 살기 위해서 다 도망가 버렸지요. 사실은 그렇게 해서 표적은 오직 예수님과 인간이 합쳐서 표적이 아니고 다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말 건네주십니다. 그러니까 네 실력이라면 내가 너에게 찾아가도 너는 도망치고 내뺄 위인이 너야, 라고 말을 건네시면서 우리를 구원해내시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표적이란 결국 아까 일번, 사람들이 뭘 만든다. 이번,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뭘 하신다. 결국 우리 같은 죄인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게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이런 분이란 걸 드러내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죄인으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번에서 이번, 삼번으로 내려갔는데 표적이 되게 되면, 삼번에서 이미 죄인인 걸 안 사람은 이번을 경유해서 일번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천막을 만들었지요. 천막을 왜 만듭니까? 사도 바울이 천막을 만들어서 구원받았어요? 아니지요. 이미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인 줄 알고 죄인 입장에서 천막을 만드는 거예요. 자비량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가 벤츠를 타든지 아파트를 열 채 갖고 있든지 호화 요트를 갖고 여행을 하든지 뭘 하든지 관계없이 내가 죄인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주께서 나에게 말 건넨 사실이 되는 겁니다. 그런 사실 같으면 좀 견딜만하지요. 지지리 못나서 죄인이라 하는 것보다 풍족하게 살면서 “주여, 저 쓰레기입니다.” 그것도 괜찮지요.

수요일에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벤츠 타시기 바랍니다. 저 쓰레기 같은 벤츠 또 타야 되나. 이런 식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타도 쓰레기고 경운긴데, 이런 마음으로 타시기 바랍니다. 첫째 아들에 이어서 둘째 아들이 또 사법고시 합격했네. 저 쓰레기 같은 인간, 뭐 되려고 저 길로 가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란 말이죠. 그게 표적이니까. 아들이 시험에 합격한 게 표적이에요. 주께서 우리에게 말 건네는 표적. 우리는 삼번부터 올라가야 돼요. 우리는 죄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죄인 되도록 아들로 하여금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는 이번을 거쳐서 결국 일번은 뭐냐? 내 아들이 판사 일을 행한다는, 사람이 재판을 만든다. 그 일에 종사하는 거예요.

어디서 뭘 하며 어떻게 살든지 관계없어요. 결국 내가 표적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표적인데 그리스도 몸에 합쳐 지체가 되면 우리는 뭘 해도 우리 자신은 주님을 증거하는 표적이 되는 겁니다. 이번에 아들이 사법고시 합격했다면서? 그것도 쓰레기라고 할 때는 그들은 내 아들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내 입을 통해서 분명히 우리 아들은 쓰레기라는 말을 건네받음에도 불구하고 그쪽은 그 표적의 의미를 알아요, 몰라요? 모르지요. 그게 전도입니다. 전도하기 참 쉽지요. 땅을 사놨는데 열 배 올랐어요. 저 쓰레기 같은 땅 어떻게 처분할지 몰라. 이게 선교라니까. 그냥 살아가면 선교가 돼요. 삶 자체가 선교가 돼요. 전도고. 어차피 주께서 날 통해서 말 건네주거든요.

디오게네스란 철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좀 별나요. 이 사람은 대낮에 등불 들고 번잡한 거리를 헤맵니다. 사람 찾습니다! 어디 사람 있으면 알려주세요, 라고 외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후대 철학자들이 분석했어요. 인간 같은 인간을 자기가 찾겠다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나를 찾습니다. 진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나에게 말 건네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등불을 어두운 내 쪽에 비췄던 거예요. 조명을 비춥니다. 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내가 있으니 누가 나에 대해서 일러줄 말이 있고 내가 누군지 알려줄 말이 있다면 오셔서 내가 누군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그리스 철학이에요. 네 자신을 알라. 문제는 던져놨는데 아무도 답변이 없었어요. 왜 그럴까요? 본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답변인 것을 그들은 그걸 문제로 오인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되지? 이게 답인지. 어떻게 살면 되느냐고 불만과 걱정거리가 나오도록 주께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자기에게 자기가 절망하도록. 왜? 절망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뭐냐? 나는 절망 안 해야 돼. 절망 안 할 때 내 욕망은 만족스럽다고 하잖아요. 절망하지 않으면 만족스럽습니까? 인간은 자기가 뭘 잃어버렸는지 몰라요. 욕망은 잃어버린 걸 지향하고 찾아가는데 도대체 뭘 잃어버렸는지 모른다니까요. 그러니까 골프 쳐보고 테니스도 치다가 이런 직업, 저런 사업, 온갖 것 다 해보지만 욕망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고 계속 다른 데로 얼굴 돌리고. 그것 아니거든요. 그것 말고. 난 어떡하면 좋아. 죽을 때까지 해봐야 내가 뭘 원하는지 뭘 잃어버렸는지 몰라요. 그러나 성도는 압니다. 그게 바로 주께서 하신 표적이란 것, 이 땅에 성도로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마땅하다는 것, 나 아닌 주님이라는 고백이 나오도록 주께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자, 이번 시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해봅시다. 8절 봅시다. “일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열 폭 앙장으로 성막을 지었으니 곧 가늘게 꼰 배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 다음에 뭐라고 돼있지요? “그룹들을 무늬 놓아”

보통 커튼이나 벽지에는 인간 세계에서 익히 정이 가는 무늬들로 수놓아 있습니다. 여자들이 십자수 놓는다든지 반복해서 수놓을 때 테마가 익히 아는 문양이죠. 그런데 성막의 문양이 뭡니까? 그룹, 천사란 말이죠.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하면, 성취성을 이야기해요. 이미 완성, 성취됨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러면 굉장히 쉬워져요. 성취된 것은 따로 마련돼 있는데 성막 자체가 모였다. 표적이었다. 표적 속에 이미 성취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는 겁니다.

지금 백성들은 그것도 모르고 수놓으라니까 무조건 수놓았는데 하나님이 시킨 대로 수놓는다고 그 사람이 구원되는 게 아니에요. 표적에서 진짜 진리를 뽑아낼 줄 알아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백날 수놓고 지옥 가는 수가 있단 말이죠. 지금 뽑아낸 의미를 제가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는 겁니다. 그룹이 성취성 또 완성이에요. 언약 완성. 천사가 새겨져있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손은 소용이 없다. 나는 죄인을 필요로 하지 죄인의 도움이 필요치 않은 거예요.

한번 물어봅시다. 아벨이 양 새끼로 제사 드려서 구원받았습니까? 아니면 십자가로 피로 구원받은 겁니까? 십자가 피로 구원받았죠. 그렇다면 아벨의 제사는 아벨의 양 새끼 받은 걸로 끝나지 않고 양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쳐야 되느냐 하면, 아벨은 사람 몸이고 양 새끼는 양의 몸이죠. 양의 몸의 의미가 어디까지 번져가야 되느냐? 양을 바친 아벨의 몸까지 바쳐서 아벨의 몸이 제물이 될 때 그 기능은 마감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양을 바친 게 아니고 아벨은 예수님 안에서 자기 몸을 바치도록 주변 상황이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렇게 몰아가신 거예요.

가인 또는 가인들(가인의 복수) 그들은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죄를 다스리는 일을 하죠. 그 죄를 다스리는 일을 하면 할수록 그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거저 건져주시는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 쓰고 죄를 다스리는 착한 짓하고자 하는 자들에 의해서 오해받아 살해당하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일어나겠지요. 수요일 설교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아벨이 본인 구원에 한 게 뭐냔 말이죠. 한 게 없지요. 아벨이 온전한 제사 드리기 위해서 자기 몸을 바치는데 자살했습니까? 형한테 맞아 죽었지요. 그러면 아벨이 온전한 제사 드리는데 자기를 때려죽이는 형이 도움이 된 거예요. 스데반 집사가 평소에 갖고 있던 스데반의 본질은 누가 도와줬느냐 하면 짱돌 들고 덤벼들었던 유대인들 때문에 스데반이 품고 있던 성령충만의 내용이 드러난 겁니다. 주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용서해달라고 하지요.

제가 첫째 시간에 뭐라 했습니까? 성도 자체가 표적이죠. 이 표적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성도 아닌 자들의 막강한 도움이 필요한 거예요. 이단들이 필요하고 마귀 들린 자들이 필요하고 복음 모르는 자들이 필요하고.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속에 죄를 착함으로 극복하려는 것입니다. 살인강도도 돈 벌면(?) 도망치면서 거지한테 동냥할 줄 알아요. 금은방에서 보석을 훔쳐 나오면서 불쌍한 사람 있으면 금시계 하나 던져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요.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자기 가치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지 않고 자기 판단과 선택은 오직 하나밖에 없어요. 아직도 나는 가치 있다. 그게 모든 인간의 선택을 결정짓는 동기에요.

내가 나의 가치를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식으로 행동에 나서고 생각하게 돼있어요. 선을 많이 해서 죄를 다스리겠다는 거예요. 그 원리는 선악을 알고 있는 인간에게 주께서 추가적으로 창세기 4장에서 가인에게 너는 죄를 다스려야 된다는 숙제를 줬지요. 그런데 착한 일하면 죄가 없어집니까? 그게 인간의 딜레마에요. 착한 일하면 할수록 없던 죄가 자꾸 발생돼요. 죄 항목이 늘어나요.

예를 들면 기도를 안 하면 죄고 기도하면 의가 되겠지요. 기도하게 되면 기도하면서 새롭게 늘어나는 조항이 있어요. 꿇어앉아서 해야 되느냐, 양반다리로 해야 되느냐? 꿇어앉아서 하면 선인 것 같고 양반다리로 하면 악인 것 같아요. 그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꿇어앉을 때 손을 모을 것인가, 손을 펼 것인가? 손을 모아야지. 소녀의 기도도 있으니까. 옥색 드레스 입고, 오늘도 무사히. 문제는 깍지 낄 때 결혼반지 뺄 것이냐, 하는 새로운 조항이 생겨요.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가인에게 개입했기 때문에 그래요. 아무리 선을 행해봐라. 선을 행하는 순간 네가 예상치 못한 다스려야 될 죄가 또 발생시켜지는 하나님의 방식, 누가 당해낼까요? 아무도 당해낼 위인이 없어요. never. nobody. 아무도 없어요. 누가 그걸 당해냅니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마귀를 사용하시는 방식이에요. 마귀는 반드시 너는 가치 있어. 네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지 마라. 네가 그런 행동하면 안 되잖아요. 너는 의로워야 되잖아요. 이게 마귀의 목소리에요. 마귀는 누구의 지배 아래 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준 법칙, 너는 죄를 다스리지 않으면 너는 끝까지 추궁 받을 거야. 지옥 가서 추궁당할 거야. 그 원리원칙 아래 이미 인간은 갇혀버렸어요. 이제는 큰일 났어. 빼도 박도 못해요. 날마다 착해야 돼요. 변명해야 되고 자기를 옹호해야 되고 자기 의를 사수해야 되고. 무슨 수로 나옵니까?

그래도 하나님 형상을 본받으면 되잖아요. 에베소서 5장에 나오잖아요. 주의 형상을 본받으라고. 본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라고 했을 때 인간이 어떤 행동할 때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신 분에게 행동하게 돼있거든요. 가인에게 말 건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4장 1절에 여호와로 말미암아 가인이 태어났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말을 건넬 때는 이미 여호와가 천사를 통해서 완성을 봤잖아요. 그러면 여호와가 이 땅에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거룩한 모습이었어요? 십자가에 죽는 모습이었지요. 결국 정리해보면, 십자가 죽으신 분 앞에서 마귀에 속한 인간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여, 나를 다스리기 위해서 이 정도로 착하게 살았다고 말하겠지요.

그런 말을 베드로가 한 거예요. 나는 저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나름대로 애를 썼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 베드로를 어디로 몰아넣습니까? 아무리 해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배반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가 뭡니까? 누구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 당신보다도 내 가치가 우선이라는 거예요.

정말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가면 갈수록 느끼는 게 그 점이에요. 까놓고 말해서 내 가치를 위해서 예수님을 도용하고 이용한 거예요. 내 가치를 포기하기에는 내가 너무 아까워. 우리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래도 십자가 나는 알잖아. 그러나 그 십자가 아는 것은 내가 이 정도로 악하다는 것으로 출발해야 표적의 의미가 완성이 되는데 내 가치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 십자가 이용하면 전혀 표적을 이해 못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십자가는 그냥 곁다리라. 없으나 있으나 그만인. 그냥 부록이에요. 다급한 것도 아니고 시급한 일도 아니란 거죠. 내가 다급하고 시급하니까. 내 가치 유지하니까.

수요일에 그런 이야기했지요. 리포터로 마이크 들이대고 묻고 싶은 게 뭐냐 하면, 당신의 인생 가운데 어떤 걸 만회하기 위해서 이 교회에 오셨습니까? 인간의 행동은 자기 가치를 만회하는 노림수 없이는 그 행동 안 하게 돼있어요. 모든 행동은 단 시간에 잃어버린 구겨진 자존심을 교회 가서 주님께 기도해서 빨리 보상받고 원상복귀하려는 시도로 온단 말이죠.

그게 왜 그러냐? 결핍 때문에 생긴 거예요.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만 인간이 에덴동산 나오면서 뭘 잃어버렸어요. 뭘 잃어버렸는지 아직도 몰라요. 주님께서 이야기해줍니다. 그룹, 그룹이 천사인데 완성, 하나님께서 인간 손 빌리지 않고 성령과 천사, 묵시적 존재를 통해서 완성시키는 그 무엇 안에 잃어버린 게 들어있어요. 그게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게 처음에 창조할 때 우리의 형상대로 만들었잖아요. 그 형상이 누구냐? 골로새서 1장에서 바로 예수님이 형상이에요. 쉽게 말해서 본래 있는 예수님 안에 있던 자리를 잃어버린 거예요. 주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거예요.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사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표적을 통해서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잃어버린 자기 양입니다. 내가 온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지요. 잃어버린 양은 언약이 투입돼야 되고 언약 안에는 그룹, 천사가 새겨져 있어요. 천사가 새겨져 있다는 말은, 네가 구원되거든 네가 구원되는데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바쳐서 뭘 하느냐? 그룹이 새겨져 있는 성막을 만들어요. 그러면 그 성막의 주인공이 누굽니까? 인간은 빠져야 되는 겁니다. 만들기는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통해서 만들었지요. 만들었지만 그것조차도 행한 것이 안 돼요. 그룹이 새겨진 성막을 만듦으로써 성막은 자동적으로 자체적인 기능에 나서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아, 너는 가만있어. 죄인 주제에 어디서 완성도에 끼어들어. 끼지 마, 하고 발로 차는 작업이 계속되는 겁니다.

시편 89편 1절부터 읽어볼게요.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여호와란 언약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누누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들은 몰라요. 이스라엘만 아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이 당하면서 아는 하나님이에요. 그들이 귀에 들었던 여호와가 아니고 실제로 그들에게 말 건네 온 십계명으로 성막 만들기로, 그리고 징계하는 식으로 그들 인생을 관장했던 그 하나님을 말합니다. 언약이란 지키는 게 아니고 언약이 지키기 이전에 이미 우리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거예요. 그 증거가 뭐냐? 모든 게 우리 뜻대로 안 됩니다. 띠 띠고 원치 않는 길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놓고 인자하심이라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인지.

“주의 성실하심” 성실히 기도해봤어요? 응답 안 됩니다. 그게 주님의 성실이에요.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상대하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 뜻대로 안 해줍니다. 원리상 간단합니다. 우린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 뜻대로 안 해줘요.

인터넷 보면 저에 대해서 비난한 글이 있어요. 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이근호 목사의 주장은 인간은 죄인이란 거다. 그런데 이근호 목사의 잘못은 뭘 해도 죄라는 그게 잘못이다. 그러면 제가 뭐라고 반박하겠습니까? 인간은 죄인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그 말은 맞지요. 그럼 당신이 날 비난하는 것은 죄입니까, 아닙니까? 그 사람 할 말 없지요. 인간은 죄인이라는 순간 더 이상 죄도 있지만 의도 나온다는 소리를 해선 돼요, 안 돼요? 안 되는데 그 말이 나오지요. 그게 바로 죄에요. 내가 이야기한. 인간은 전적 죄인이 아니고 의롭게 할 수 있다는 그게 성경에 있더라 하는 게 바로 주께서 고대했던 죄에요. 그 음흉한 죄를 나는 죄인입니다. 부족합니다. 이걸로 가린 거예요. 위장한 거예요.

바리새인들이 고난 받을 때 취지가 뭡니까? 부족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고난 받았잖아요. 주께선 역설적으로 나갔지요. 술 먹으러 가자. 왜 그렇게 행동하십니까?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나는 죄인 부르러 왔다. 다시 말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은 아무도 새 부대가 아니에요. 새 술이 마련돼야 새 부대가 알아보는데 그 새 술 마련은 예수님 본인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예수님 외에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몇 년 전입니다만 당당뉴스인지 그 인간이 그런 이야기할 때 자기 말은 자기가 스스로 부정하는 거예요. 인간은 죄인 맞다.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착한 일해야지. 이런 논조에요. 앞에 있는 죄인이란 결국 꼼수 쓴 건데 주님이여, 죄인이라 이야기하니까 저 착하지요? 이런 셈이 돼버려요. 그게 바로 바리새인을 몰라서 그래요. 바리새인이 그런 짓한 사람이에요. 부족합니다, 부족합니다. 죄인이면 바짝 마른 뼈다귀기 때문에 구원이란 말이 입에서 나와선 안 돼요. 바짝 뼈다귀를 개가 물어가도 아무 소리하지 말아야지. 구원해달라는 소리가 왜 튀어나옵니까? 그런 소리 나오면 안 돼요.

사울이란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 잡아 죽이면 구원받을 거야. 그런 계산을 예단을 내릴 수 없었어요. 그냥 무작정 했는데 누가 말을 건넸잖아요. 사울이, “주여, 누구십니까?” 먼저 말을 건네줘야 돼요. 그때 주님의 답변이, 주님이 자기 일로 회수해버립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예수님이 사실은 사울에게 말을 건넨 게 아니고 예수님이 본인에게 한 거예요. 거기에 사울이 말려든 겁니다. 그래서 사울은 예수님의 증인 된 거예요.

그게 일번에서 이번, 삼번이 아니고 삼번에 가버리면 일번을 해도 주의 일이 되고. 벤츠 모는 것도 주의 일이 되는 거예요. 벤츠 모는 주의 일 해보세요. 사우나에 있어도 주의 일이 되거든요. 이걸 버리고 나쁜 일이고 하는 그건 지가 골라낼 문제가 나이에요. 처음부터 죄인이라면 뭘 해도 죄인 되니 이게 바로 천사가 완성하고 성령께서 완성한 그것이 덮치니까 내가 내 구원에 손톱만큼도 보탠 것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삶을 통해서 남한테 발산하게 되는데 이걸 성령이 임하면 네가 주의 증인 되리라.

그래서 아까 히브리서 6장 4절에 한 번 비췸을 얻고 열심히 일하지만 일번이 아니고 이번이죠. 하지만 삼번이 안 되면 이번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저주받은 거예요. 이번에서 삼번은 인간의 힘으로 안 됩니다. “그래, 십자가 알아야지.” 이렇게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이미 출발자체가 삼번부터 출발한 자는 이런 자들과 구별되기 위해서 한번 비췸을 얻고 해서, 십자가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거예요. 아무리 성령의 일을 하더라도 십자가 모르게 되면 그것은 타락이라는 의미에서 히브리서 6장 4절이 된 겁니다.

그리고 십자가 안다는 것은 내가 아는 게 아니고 내가 주님의 표적 안에 이미 포함이 된 내 자체가 답이란 사실, 내 자체가 이 땅에 표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 성령을 통해서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그룹들의 무늬를 놓았는데 그룹은 완성이죠. 결국 이렇게 성막이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다가올 세계가 이미 중첩돼있지요.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세상 끝 날에 있을 그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놀랍게도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동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이스라엘 민족이 맞닥뜨려야 될 모든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꼭 필요한 상황들이 주어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물이 없다. 양식도 없다. 이건 어떤 경우에는 별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모세가 시내 산 올라갔습니다. 양식이나 음료수 가져갔습니까? 올라갔더니만 양식 있었어요? 없었지요. 이 말은 주께서 완성된 세계에서는 지상에 필요한 오곡백과가 필요 없다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밥 먹는 이유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하는 거죠. 그러면 우리의 목숨은 하늘나라에서 필요 없는 거예요. 우리 목숨이 필요 없으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죽은 자가 돼야 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오곡백과 농사짓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밀가루 한 되에 얼마냐고 물으면 안 돼요. 왜냐? 목숨이 없으니까. 목숨에 필요한 것도 없어야 되지요. 하늘라에는 목숨 대신 생명이 있지요. 이 생명은 어디서 온 거예요? 예수님 생명 얻기 위해서 하늘나라에서 텃밭 가꿨습니까? 주님의 목숨은 어디서 왔는가? 십자가 이전 앞에 이 땅에서 가져온 거예요. 이 땅의 죄를 언약대로 했더니만 의가 되고 생명이 된 거예요. 하늘나라는 농사지을 필요 없이 십자가의 은혜, 용서하심만 있으면 목숨은 없는데 생명은 있어요. 이게 성도한테는 성령을 통해서 미리 당겨서 중첩이 됐단 말이죠.

우리교회에 의사분이 있는데 평소의 행동은 굉장히 정의로워요. 잘못된 것은 양보도 없고 타협도 없는 분이에요. 그런데 그분이 자꾸 병원을 옮겨요. 불안, 불안해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뭘 요구합니까? 이러면 네 목숨 보장해줄게. 보험도 그렇고. 하여튼 이 세상에서 돈이 왜 있느냐 하면, 우리 목숨을 보장하기 위해서 있는 거예요. 존 로크가 그런 이야기했는가, 곡식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돈을 가지고 있는 게 낫다. 곡식은 썩지만 돈은 안 썩는다. 그 당시 돈은 금이거든요. 금속은 오래 가잖아요. 모든 상품을 돈으로 바꿔야 된다. 그래야 소유하기 좋다. 일리 있는 말이에요. 그래서 돈으로 다 바꿨잖아요. 돈도 녹슬면 다른 것으로 바꾸든지 하여튼 재물로 바꾸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내 말만 들으면 네 목숨 부지할 돈 줄게, 했을 때 특히 사도 바울에게 돈 줄게 성령 달라고 한 사람 있지요. 이게 그 중앙에 뭘 포기 못하겠다는 말입니까? 목숨을 포기 못하겠다는 거예요. 이 목숨을 그대로 천국까지 가져가겠다는 뜻이거든요. 천국에 대해서 얼마나 큰 오해인지 천국은 십자가로 가로막아서 목숨은 못 가져가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대부분 사람들이지만) 목숨을 다시 살리려 하는 겁니다. 그 목숨을 살리게 되면 하늘나라에서 주님께 영광 못 돌려요.

왜냐하면 그동안 내 목숨 살렸던 마누라 목숨도 같이 신경 써줘야 돼요. 그동안 내 빨래 해주고 단추 떨어졌을 때 달아주고 다리미 질해준 그걸 개 무시하면 안 되잖아요. 천국 가서. 그러나 천국 가서 그것 개 무시해야 돼요. 왜? 그걸 해봐야 내 목숨 부지하는 데 도움 줬는데 생명 주시는 것은 천사와 성령,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 잃음으로 그 대가로 우리가 생명을 얻기 때문에 천국은 주님께만 면류관 던지지 지 마누라 앞에 면류관 던지는 이런 짓하면 안 됩니다.

그럼 마누라 무시할까요? 아니지요. 마누라 사랑이 희생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부부는 장차올 천국의 모델로 서로 사랑해주고 하는 겁니다. 그저 무상으로 서로 예뻐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저 주께서 교회를 보호하는 그 사랑을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받아내야 되거든요. 여자가 남편으로부터 받아낼 것은 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라도 큰 거지만 보호입니다. 끝까지 보호해야 돼요.

그래서 부부 간에 싸움할 때 남자들은 논리로 따지는데 논리를 따지더라도 여자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더라도 날 지켜줄 거야, 날 예뻐해 줄 거야, 그런 뜻으로 이야기하는데 남자는 가만있어봐. 이렇게 따지는 것은 여자의 본심을 이해 못해서 그래요. 내 입에서 무슨 되지도 않은 소리가 나오더라도 감싸줄 수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이게 보호거든요. 강자가 약한 자를 보호해야 되니까. 그것 때문에 부부가 있단 말이죠. 부부는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 사랑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거예요. 물론 성도한테만 해당되는 거예요.

지금 4월 2일, 9일 주례 있어서 주례사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어떤 컨셉을 잡아야 될지. 또 복음 전하지 않으면, 김을수 집사님 왜 주례에 복음 안 들어갔느냐고 시비 걸 게 뻔하고.

결론 맺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표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몰라요. 목숨에 연연하기 때문에 주께서 주시는 것은 천사를 수놓으면 구원은 내 소관이 아니구나. 주님이 거저 주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수놓아 될 텐데 나는 천사의 수놓았다. 그 수, 내가 바친 거다. 이건 아니거든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시키되 내가 원치 않는 길로 가게 만듭니다. 내가 했다고 할 까봐 내가 이만큼 보탰다는 말 나올까 싶어서 모든 일을 우리 뜻대로 하지 않게 하시는 겁니다.

그걸 통해서 우리는 삼번부터 출발합시다. 주여, 내가 뭘 해도 쓰레기입니다. 이 쓰레기를 주께서 백성 만드는 작업에 있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보다 더 낮은 쓰레기(빌2:8) 십자가에 죽기까지 쓰레기 됐는데 그 십자가와 함께 가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게 바로 성도의 고백입니다. 무슨 쓰레기가 돈 많은 쓰레기가 있는지 하여튼 그것도 맞아요. 돈 많더라도 십자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목숨이 무서워도 마귀의 종노릇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우리는 생명보다 목숨에 먼저 손이 갔습니다. 이제는 목숨은 생명의 표상인 것을 생명이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을 남한테 증거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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