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강-YouTube강의(통치와 집착)160301-이 근호 목사
144강-YouTube강의(통치와 집착)160301-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69.34)
144강-YouTube강의(통치와 집착)160301-이 근호 목사
제 144강, 제목은 ‘통치와 집착’입니다. 통치와 집착이라고 할 때, 집착은 개인용도입니다. 개인이 어디 대상을 잡을 때 그렇게 하는데, 통치라는 것은 집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통치할 다수의 대상을 혼자서 지배할 때 그걸 통치라고 하는 겁니다. 통치와 집착이라는 것은 언뜻 들으면 이거는 일반 백성들한테는 해당되지 않고, 특수한 사람에게, 왕이나 통치자에게만 해당되는 그런 현상이라, 이렇게 보이는데요.
이 통치와 집착이 십자가 복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떻게 관련이 있느냐 하면 그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도 마찬가지고 그들은 왕으로부터 통치받기 때문에 자기는 권세가 없고 권력이 없다고 그렇게 오해들을 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왕은 그냥 통치하고 우리는 통치 받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 통치 방법에 각자 본인들이 집착해 있다는 사실은 그 열 두 제자들도 차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했죠. 그때 베드로가 뭐 예수님을 부인했다, 예수님을 저주했다, 할 때에 베드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예수님을 그렇게 거부하고 저주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거는 베드로가 통치 받는다고 해서 이게 면제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통치한 것에 대해서 본인이 호응해 준 셈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나를 통치하고 내가 속한 사회를 통치할 때, 그것을 통치 받는 자들이 은근히 호응을 해주고 좋아들 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 말은 곧 뭐냐 하면 사람은 통치자가 안 되더라도 그 통치 방식에 대해서 흠뻑 젖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흠뻑 젖어 든 것이 뭐로 이어지는가, 자신의 세상보기, 자신의 세상읽기, 또는 세상에 대한 이해, 세상관에 완전히 거기에 흠뻑 빠져있다고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한 구절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구절은 신약성경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27장 19절의 말씀인데,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요 대목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아내가 남편이 예수님을 재판한다는 소식을 듣고, 꿈은 누가 꿨느냐, 본디오 빌라도 아내가 꿨는데, 상당히 심하게 꿈을 꿨는가 봅니다. 그 꿈을 보면 굉장히 어지러워서 기분이 좋지 않는 꿈을 꿨어요. 그러니까 아내가 자기가 꾼 꿈과 남편이 재판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성을 지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제발 그 사람 좀 풀어주라고.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어젯밤에 잠자는데 힘들었다고, 이거는 그냥 정말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이상한 꿈을 꿨으니까 당신이 지금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습니다.”라는 그 대목을 아내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언급을 하는 겁니다.
왜 이 아내가 자기 남편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그건 제가 처음에 시작할 때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통치라 하는 것은 한 사람이 다수를 지배하는 방식이죠. 그래서 이 통치에 대해서 지배받는 사람들은 관여할 수 없고, 그 한 사람, 자기 남편입니다. 본디오 빌라도인 자기 남편한테 압력을 가하게 되면 예수님도 족쇄에서 풀려나와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자,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십자가 믿으면 구원받는다.” 라고 하지요. 근데 십자가 믿으면, 어디 나무막대기 믿으면 구원받겠어요? 십자가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뜻이 뭐냐 이 말이죠. 사람들은 뭘 빼놓는가 하느냐 하면 십자가 사건에 권력이 둘러쳐 있다는 사실을 빼고 내가 개인적으로 십자가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그 당시에 오늘 마태복음 27장 19절에 나오는 십자가는 뭐냐, 그 십자가 사건 이전에 무엇으로 둘러 쳐져있겠습니까? 바로 우리가 평소에 익숙해진 권력, 통치체제가 둘러 쳐있는 그런 십자가란 말이죠. 그러면 십자가를 믿으려면 그 권력체를 누가 뚫어야 한다? 우리 쪽에서 그걸 뚫고 그걸 째서, ‘나는 본디오 빌라도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해도 나는 개의치 않겠어.’ 뚫고 무엇을 받아들인다?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말입니다. 베드로도 실패했는데. 우리가 그 권력체를 째고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방금 제가 읽었던 마태복음 27장 19절은 분명히 신약입니다. 그러면 구약은 무엇으로 되어 있습니까? 구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라는 의미는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개인적으로 결단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그들은 이미 애굽 바로 왕이라는 통치체제 안에 갇혀있는 입장이라 이 말입니다. 갇혀있는 입장에서 ‘나 이제 바로 말 안 들을래. 나는 모세 말을 듣고 나는 나갈 거야.’ 라고 했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단 한명도 없었어요.
권력을 깨는 방법은 열 가지 재앙이었고, 그 열 가지 재앙을 실시하신 분은 어떤 분이냐, 바로 왕을 힘들게 하신 사람입니다. 그럼 마태복음 27장 19절을 보면 지금 본디오 빌라도를 누가 힘들게 하느냐, 마누라가 잔소리하고 있는 거죠. 근데 본디오 빌라도 마누라가 잔소리 할 때 마누라가 그냥 지어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마누라가 지금 누구한테 휘둘리고 있는 겁니다.
본디오 빌라도 부인은 그게 누군 인지 모르겠어요. 근데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다만 지금 본디오 빌라도 부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체포당한 사건과 자기 밤에 잠을 못자게 하는, 감히 본디오 빌라도 부인의 잠을 못 이루게 하는 그 분과 관련성이 있다고 봤고, 본디오 빌라도는 그걸 약간 참조를 할 뿐이지만 본인은 그거에 동의를 하지 않았죠. 결국은 자기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를 뚫어야 하느냐 하면은, 우리는 나 혼자라고 하거든요. 보통 현대인들은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한다 이 말이죠. 그거는 거짓말입니다.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못해요. 자기 아내 잔소리에 시달리는데 무슨 자기 맘대로 합니까? 보이지 않는 갑이 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있고 보이지 않는 통치자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만 보느냐 하면 이거는 우리 사장님 어떻고, 우리 과장님이 어떻고, 우리 기관장이어서 나는 할 수 없다고 이렇게 하는데,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거든요.
본디오 빌라도 부인이 누구한테 시달립니까? 자기는 여자로서 그 당시 최고 높은 여자인데. 이거는 중간에 본인 의사도 없이 강압적으로 잠을 못자고 힘들게 만들어버렸어요. 그러면 잠을 못자고 힘들게 만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 지어 자기 남편에게 조언을 한 겁니다. 그 사람 풀어주라고.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들은 뭐냐 하면 그 보이지 않는 권력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고 그걸 뭘로 계산하느냐 하면 내 친척이, 또는 내 기관장이, 또 국민 같으면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자꾸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모든 원인이 다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합니다. 그들은 허수아비입니다. 허수아비에요. 달리 이야기해서 우리가 어젯밤에 잠을 푹 주무셨습니까? 보이지 않는 권력이 우리를 잠자게 했어요. 항상 우리는 핑계를 뭐 우리 집안에 남편이 문제다, 아내가 문제다, 또 기관장이 문제고, 사장님이 문제고, 우리 과장님이 문제라고 하는데, 베드로도 맨 그런 식이었어요. 눈에 보이는 권력을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는데, 오늘 본문은 권력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우리가 주님을 체포해도 더 센 분이 주님과 관련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구원된 것은, 세상 권력 다 오라고 하세요. 세상 권력, 뭐 부교역자 같으면 당회장, 어떤 인간, 신학생 같으면 총장, 어떤 거라 할지라도 더 센 분이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데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말을 달리하겠습니다. 그 분이 우리 앞에 십자가를 들이대게 하신 거예요. 그 분이 십자가로 마중을 나오신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믿지 않으면 안 되도록 보이지 않는 권력이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아는 순간 십자가 안에서 세상에 어떤 모든 것도 허수아비로 간주할 책임이 우리한테 있는 겁니다.
구약에서 바로 모세가, 모세로 하여금 일하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 모세 대신 십자가를 앞장 세워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믿게 했다면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뭘 느껴야 하느냐 하면 세상 권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복음 증거 하는 현장에서 고백을 해야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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