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행 21:1-4 (사도의 여정) - 이근호 목사 사도행전 설교
88. 행 21:1-4 (사도의 여정) - 이근호 목사 사도행전 설교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88. 행 21:1-4 (사도의 여정)
------------------------------------------
(행 21:1)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행 21: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행 21: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행 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
주여, 죄에서 용서하여주옵소서 !!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윤리와 도덕적인 면의 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날마다 인도해주시는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을 두고서 죄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망각하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그 정신을 엉뚱한 것에 팔고 있다는 말이죠.
주님께서는 지금도 햇빛을 주시고 비도 내려주시는데, 공중에 나는 참새를 키우듯이 우리를 키우시고, 또한 우리의 일일이 발걸음도 세신다는 겁니다. 그런 주님의 은혜와 은총에 대해서, 거기에 감사하지 못하고 반응이 전혀 없을 때, 그것을 죄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주여, 죄에서 용서하여주옵소서" 라고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큰 죄를 지어서 용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왜 나는 매일같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해서, 왜 그것을 매일같이 시시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못된 인간인지, 그것을 통촉해주옵소서" 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겁니다.
도대체 '나' 라는 것이 왜 이렇게 아둔하고 바보같이 정신도 못 차리고 하는지를, 그리고 왜 주님의 그 크신 은혜를 날마다 바라보지 못하는지, 거기에 대해서 용서를 구한다는 말이죠. 그런 기도야말로 진정으로 죄를 제대로 아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앞으로 !!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사도바울이 갔었던 복잡한 지명들이 나오는데, 물론 우리가 일일이 알 필요는 없겠지만, 사도바울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계속해서 진격하고 있다는 말이죠. "앞으로, 앞으로" 라는 아이들 노래도 있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의 발걸음만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발걸음도 역시 인도하시는데, 우리도 지명을 대면서 10년 전에는 어디를 살았고 5년 전에는 어디를 살았는지, 그렇게 살았던 곳을 이야기해보면, 우리가 가는 곳도 역시 사도바울이 갔던 곳처럼 주님의 은혜의 덩어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루스더라' 라는 곳에서 앉은뱅이를 고쳤는데, 그래서 대환영을 받았다는 말이죠. 그런데 평소에 사도바울에 대해서 악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이, 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자들인데 말이죠. 그들이 그만 달려들어서 사도바울을 거의 초죽음으로 만들고 말았는데, 그것이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나온다는 말이죠.
(행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행 14:20)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행 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하늘나라와 환난 !!
그런 일을 당하자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하늘나라에 가려고 하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만 한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사도바울은 핍박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처럼 "하나님, 나에게 무슨 은혜라도 제대로 준 적이 있습니까?" 라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비록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는 환난이 계속해서 온다고 해도,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면, 여기에서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말이죠. "하늘나라에 가려고 하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한다" 라는 것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능력은 나에게 주어진 환난보다 더 세다"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제가 지금 말을 가지고 여러분을 속이는 것이 아닌데,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은 여러 차례 환난을 겪는다" 라고 하는 것은, "비록 환난이 온다고 해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주님의 은혜를 취소시킬 수는 없다" 라는, 그런 뜻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취소가 되지 않는지, 그것을 사도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이래도 주님의 은혜는 취소가 되지 않고 계속해서 되더라. 계속해서 계속해서 말이야" 라는 것인데, 그런 과정들을 보여주는 것이 사도행전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기껏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라고 하는 것인데, 혹은 "내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는데, 물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이야기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반대로 그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으면 자기는 당당하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면 발걸음도 인도하시는 그 주님의 은혜는 도대체 어디서 찾느냐는 겁니다. 날마다 햇빛과 공기를 주시는 그 은혜는 어디서 찾느냐는 말이죠. 바로 그런 것을 놓쳐버리는 것이 죄인데, 그렇게 진짜 죄는 전혀 모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면에서의 죄를 가지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라고 나온다고 하면, 그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고백과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 !!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바울이 얼마나 긴긴 여정을 겪었는지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흔히 '4차 전도여행' 이라고 하는데, 4차례에 걸쳐서 했다는 겁니다. 1차 전도여행은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시작하게 되는데, 일단 '구브로' 라는 섬으로 가서, 그리고는 터키와 그 일대를 돌아다닌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온다는 말이죠.
그 커다란 섬에 가면 '바보' 라는 지역이 있는데, 거기서 남자무당인 박수무당을 만나서 완전히 장님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렇게 전도여행의 시작은 제법 괜찮았는데, 그리고 터키 지방으로 갔다는 말이죠. 거기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라는 곳인데, 여기서 우리는 안디옥이라는 지역이 두 군데임을 알아두어야 하는데, 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를 한다는 말이죠.
(행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행 13:14)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다윗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 !!
그 설교내용이 사도행전 13장 17절부터 나오는데, 다윗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을 비교하면서 설교를 한다는 겁니다. 요약을 하면, "다윗은 율법을 지켜도 죽었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죽고 난 다음에 부활했다. 그러니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라는 겁니다. 다윗이 율법을 믿고 그대로 행한다고 했지만 죽었다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율법을 행해봐야 결국 돌아오는 것은 죽음밖에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다윗이, 그가 율법으로 인해서 죽으면서도 발견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다윗이 예언하기를, "장차 오실 분이 나를 긍휼히 여겨서, 그 의로 인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지, 내가 제사를 잘 지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겁니다. 다윗의 그 예언대로 과연 메시야가 오셨고, 또한 바로 그분이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냐는 말이죠.
(행 13: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행 13: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행 13: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행 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행 13: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행 13: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행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행 13: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행 13: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KBS 9시 뉴스입니다 !!
저는 이 사도바울의 설교를 들으면서 KBS뉴스와 비교를 해보는데, 그 뉴스를 아무리 살펴봐도, 거기에 어디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영생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느냐는 겁니다. 그저 국회의원이 어떻고, 청와대가 어떻고, 그런 시시한 것들뿐이라는 말이죠. "황우석 교수, 드디어 배아줄기세포에서 획기적 성과를 거두다" 라고 하는, 그런 것들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을 믿으면 그 순간부터 부활의 은혜를 받게 되는데, 그 영생이라는 것은 하나의 햇빛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영원한 생명으로 관리를 받게 되는데, 그런 소식은 없더라는 말이죠. 그래서 목사로서 우려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교회 교인들이 살아가는 게 너무 바쁘다보니, 이런 점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를 걱정해본다는 겁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이 한 바탕 일을 벌리고 나서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혼 줄이 났는데, '루스더라'에서는 거의 사도바울이 죽게 되었는데, 아니 죽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바깥에 버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음날 깨어나서 '더베' 라는 곳에 가서 숨을 좀 돌리고서는 "하늘나라에 가려고 하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한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처음에 사도바울이 여행을 시작하면서 박수무당을 만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그 사람을 장님으로 만들고 할 때는 참 잘나가고 좋았는데,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설교를 하고 혼 줄이 나고는, "하늘나라에 가려고 하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만 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죠.
2차 여행은, 삐친 바나바 대신에 실라를 데리고 !!
그래서 이제 다시 전도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처음에 같이 갔던 바나바가 그만 삐쳐서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이죠. 바나바가 자기 조카를 데리고 가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결국 같이 가지 못하고, 2차 전도여행은 '실라' 라는 사람과 같이 가게 된다는 겁니다. 왜 가려는고 하니, 처음에 갔던 곳에 자기들이 복음을 전한 것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가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먼저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사도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오순절 날에 성령에 의해서 사람들이 우르르 모였다가 우르르 흩어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물론 12사도가 전한 복음을 듣고 흩어졌다는 것이죠.
사도바울은, 이미 세워진 교회에 !!
그러면서 그들이 무엇을 알았는고 하니, 죽었다고 소문이 난 예수라는 사형수가, 그분에게 자기들이 그만 일을 잘못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서는 40일 동안 자기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그런 은닉된 장소에서 만났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그분이 뭐라고 하셨는고 하니, "장차 내가 구름을 타고 다시 온다" 라고 하셨는데, 그런 소문이 확 퍼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가 중요한데,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아도 작살난 인생이다" 라는 이야기가 퍼졌는데, 그리고 "구약의 메시야는 장차 구름을 타고서 오시는데, 그런데 그분이 이미 일차적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한 번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라고 하는 것도 역시 퍼지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초대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자" 라는 것인데, 그런 즐거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교회에 사도바울이 갔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전도여행을 한 것은 십자가 사건이 있고 30년 이후인데, 그러니 이미 교회들이 있었다는 말이죠.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가라 !!
그렇게 1차 전도여행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에는 요즘의 이란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인도, 중국, 한국, 일본까지도 오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죠. 그런데 밤중에 환상으로 마게도냐 사람이 한 사람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한다는 겁니다. 마게도냐는 지금의 그리스 위쪽을 말하는데, 쉽게 유럽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사도바울은 아시아로 가려고 했는데, 그 방향을 바꾸어 유럽으로 가게 되었다는 말이죠. 저는 그것을 보면서, "성도의 일과는 주님이 아침에 주신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물론 일상적인 일과는 있겠지만, 복음과 관련된 것은 그때그때 다르다는 겁니다.
(행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행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행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행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행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한양 전후서 !!
아무튼 사도바울이 그런 환상을 보고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기뻤지 싶은데, 그래서 마게도냐 지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 어떤 도시들이 있었는고 하니,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이 있었다는 겁니다. 만약에 그때 그쪽으로 가지 않고 아시아로 해서 한국까지 왔다고 하면, 아마 신약성경의 제목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지 싶은데 말이죠.
그렇게 해서 건너간 곳이 빌립보 지역인데, 거기서 자주색 옷감을 파는 '루디아' 라는 여자를 만나서 세례를 주고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귀신과 한 바탕 붙어서 이겼는데, 그런데 귀신이 나가고 나니 그만 귀신이 들린 사람을 고용해서 무당짓을 하는 그 주인이 장사가 되지 않으니, 그가 사도바울을 고발해서 그만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를 괴롭히려고 따라다니던 유대인들의 동조가 있었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갑자기 감옥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난리가 났다는 겁니다. 그러니 간수는 당연히 죄수들이 탈출한 줄로만 알았는데, 옥문이 열리면 도망을 가는 것이 당연하니 말이죠.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도망을 가지 않았는데,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간수는 지레짐작으로 도망을 간 줄로 알고, 그 당시에는 죄수들이 도망을 가면 그 죄 값을 자기가 대신 치러야하니, 그래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겁니다.
그러자 "멈춰라 이놈아, 우리는 도망가지 않았다" 라고 해서, "그러면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하니,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스토리가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구절이 요즘도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다는 말이죠.
(행 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 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행 16: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행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행 16: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빌립보에서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 데살로니가로 가게 되었는데, 이게 2차 전도여행인데, 거기에는 '베뢰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아주 고상하고 품위가 있는, 이렇게 수요예배에 나오신 분들처럼 말이죠(ㅋㅋ).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배우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들을 보면서, 영생을 받기로 작정된 자들은 따로 있음을 느낀다는 겁니다. 왜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라고 기억이 나죠?
(행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리고 난 다음에는 고린도로 가는데, 거기에는 사도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라는 부부와 같이 천막장사를 하면서, 그렇게 같이 벌이를 하면서 말씀을 전하게 되는데, 아마도 고린도 교회의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말이죠.
(행 18: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행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행 18: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그 다음에는 에베소로 넘어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러면서 2차 전도여행을 거의 다 마치고는,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 에베소에서 '디모데' 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를 동역자이자 제자로 삼아서 에베소 교회를 맡긴다는 말이죠.
그러면 3차 전도여행은 무엇인고 하니, 에베소 교회에서 자기가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래서 다시 에베소 지역으로 건너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유명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유두고' 라는 청년이 그만 삼층에서 말씀을 듣다가 떨어져서 죽게 되었다는 겁니다. 아마 잠이 많은 분들은 뜨끔하지 싶은데 말이죠(ㅋㅋ).
성경말씀을 밤새도록 전하니까 한 밤중에 그만 졸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러자 사도바울이 그 청년을 살려내었고, 그러면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하면서 같이 있었다는 겁니다. 제일 오래 머물렀는데 말이죠. 물론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에베소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고, 2차 여행을 했던 곳을 다시금 둘러보는 형태라는 겁니다.
뜨거운 안녕 !!
지난 시간에 한 것이 바로 다시 방문한 에베소 교회를 떠나는 장면인데, 그래서 서로 끌어 앉고 입을 맞추고 울고불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사도바울이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합니다" 라고 하니 더욱 더 그러한데, 3년 동안이나 같이 있으면서 얼마나 정이 많이 들었겠느냐는 것이죠. 핍박을 받은 가운데 같이 위로하면서 말이죠.
(행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행 20:34)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행 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행 20: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행 20: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그리고 난 다음에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것도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어 들어간다는 말이죠. 제가 왜 그런 표현을 하는고 하니, 예루살렘은 마치 사자굴과 같다는 겁니다. 이것은 죽으려고 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죠. 사도바울이 다른 지역에 있을 때도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그렇게 받았는데, 예루살렘에 가면 오죽하겠느냐는 겁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안식처가 없다 !!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사도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한다" 라고 했는데, 그리고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나의 목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 말을 결합시키게 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이 세상에는 영원한 안식처가 없다" 라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도 나오지만, 사도바울이 두로에 왔을 때 거기에 있던 제자들이, 사도바울이 그렇게 사자굴에 죽으려고 들어간다고 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모두가 다 말렸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말린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말렸다는 것이죠.
(행 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다음 시간에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사도바울의 허리띠를 가지고 자기의 손과 발을 묶으면서, 그렇게 사도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잡히게 된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한다는 말이죠.
(행 21: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행 21: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원초적인 죽음을 경험하려는 사도바울 !!
그런데 우리가 이 사도행전을 다 읽어보게 되면 참으로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사도바울이 죽음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 정말 무서운 말을 내뱉고 있는데 말이죠. 진짜 죽음이 무엇인지, 그것을 경험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그런 전도여행을 여러 차례 하면서, 무당의 눈을 멀게 하고, 또한 죽은 자를 살리는 놀라운 일도 하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기대했던 그 이상의 기적도 베풀었지만, 그리고 자기가 얻어맞아서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면서 바깥에 내다버리는, 그런 일들도 경험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바울이 경험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일시적인 기적이나 일시적인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그런 차원이 아니라, 도대체 이 세상이 왜 지옥인지, 이 세상이 왜 죽음의 세계인지, 그러한 죽음의 본질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려고 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진짜 악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래서 그 악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악의 진원지로 스스로 들어간다는 말이죠. 물론 '스스로' 라는 표현은 좀 어폐가 있는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간단히 "사도바울이 지금부터 죽음을 본다" 라고 하고 싶은데, 전에는 죽음을 만났다고 하면, 이제는 죽음의 정체를 파악해낼 수 있는, 그러한 경험에 들어가고자 한다는 말이죠. 그 죽음의 정체가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들의 원초적 공격성인데, 그것이 죽음의 원천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에 대한 이유가 없는 질투와 미움, 그것이 지옥에서 올라오는 아우성이고 함성이라는 것이죠. 악마가 외고 있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이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십자가에서 생긴 효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그것에 대한 악마의 전면적인 공세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무슨 질병에 걸리든지 하면 병원에 가서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효과를 보는데, 그렇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그냥 집에서 효과를 본다고 하면, 아마 병원을 운영하는 사람은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화를 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인정해주기 어렵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나서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구원을 받는지 말든지 하는 것이지, 자기는 그냥 가만히 있는데 예수님이 직접 찾아와서 데리고 가는, 그런 식의 구원은 우리 인간들은, 특히 유대인들은 그것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이제는 진검승부다 !!
그래서 사도바울이 주장한 "살아계신 주님의 은총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과, 유대인들이 주장한 "하나님의 법을 준수함으로서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는, 이런 두 가지가 대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뚜벅뚜벅 결투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즉 "이제는 진검승부다. 칼을 뽑아라" 라는 겁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들이 "오너라. 기다라고 있었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니가 저기 아시아 저쪽에서, 그리고 마게도냐 쪽에서 거기서 거기서 그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훼손하면서 좀 놀았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안다. 어서 오너라. 한 판 붙자"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마게도냐는 요즘 말로 하면 그리스와 터키 쪽인데 말이죠.
이근호 목사님을 아세요?
오늘 낮에 어느 집사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어떤 분이 자기를 보고 뭐라고 하는고 하니, 자기가 이근호 목사를 안다고 하니, 그분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우리 목사님이 그 목사님은 이상한 목사라고 하는데, 그래서 노회에서도 잘렸고, 그리고 헌금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라고 묻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저를 언급하면 그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꼭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제가 이야기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다른 것은 다 치우고 유독 헌금에 대해서는 집고 넘어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는 헌금만 하지 않는 사람들만 오는지 몰라도, 사실은 제가 헌금을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전혀 아닌데 말이죠(ㅋㅋ).
로마로 가야 하리라 !!
아무튼 사도바울에 대한 소문이 퍼졌는데, "십일조나 안식일이나, 그런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죽음의 원천과 사도바울이 드디어 최후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그래서 저쪽에서 죽이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바울은 죽는 것이 아니라 체포가 되어서 4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게 로마로 가는 것인데 말이죠.
그러니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그 사건이 그대로 송치가 되어서, 예루살렘에서 굳어진 대결, 즉 "율법의 행함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인가?" 라는 그 대결, 그것이 그대로 진공포장이 되어서 지중해를 건너서 로마로 가게 되는데, 지중해의 그 엄청난 풍랑에서도 살아남아서 말이죠. 그렇게 해서 로마에 가서 그 핵폭탄이 터지게 되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로마서라는 겁니다.
(녹취자 - 그런데 목사님, 로마서는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거의 마칠 때, 사도행전 20장 3절에 나오듯이, 고린도에서 3개월을 머무는 동안에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오직 믿음으로 !!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제갈공명도 울고 갈 고차원적인 작전이었는데, 그 작전에 동원된 사람이 사도바울이고 말이죠. 즉 "행함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되었는데,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서 된 것이다. 또한 이제 그 약속이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서 등장했다" 라는 겁니다. 그게 로마서에서 말하는 복음이라는 말이죠.
그렇다고 하면, 오늘날 제2, 제3의 사도바울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게 너무나 확실한 스토리인데, 지금도 햇빛을 주시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순간순간 깨닫게 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중심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았으니,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이렇게 미리 이런 말씀을 지나가게 하셨다는 말이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을 이길 무기가 우리 앞에 과연 있습니까? 그게 복음이어야 하는데, 그 복음의 진수가 우리에게 십자가의 용서하심으로, 그래서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어서 구원을 받은 줄 압니다. 그렇게 우리가 천국백성이 되었는데, 그 은혜에 대해서 언제나 반응하면서, 감사하는 삶의 발자국을 남기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6,02,24 정리함 - 녹취 구
첨부파일 : acts2005(81~90)hwp.zip (187.0K), Down:16
관리자(IP:175.♡.141.237)
16-02-27 10:04
구득영 목사님 사도행전 녹취는 [성경강해 - 신약 -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구득영(IP:203.♡.97.152)
16-02-28 19:04
그것은 아마 이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나서 작성한 것으로 같은데,
내용이 조금 요약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설교내용이 너무 좋아서 녹취해서 다시 올리는 겁니다.
분량이 두 배 정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