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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60216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0-리꾀르자유게시판로마서

20160216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0-리꾀르

이름 : 한윤범(IP:221.147.126.24)

20160216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0-리꾀르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아까 의지적인 것과 비의지적인 것을 나눴지요. 비의지적인 것은 본성이라고 할 수 있고 의지적인 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폴 리꾀르는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언급하면서 몸의 본성 자체가 자유를 발휘할 때 오류가 발생된다는 겁니다. 이걸 제가 다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악에 의해서 해석된다는 것을 하도 복잡하기 때문에 미리 쉽게 여러분이 아시라고 악에 의해서 해석된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가게 되면 거부반응 일어나니까 차근차근 그 당시 철학들을 종합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기 생각을 가미해서.

인간이 오류가 발생될 때 그 오류를 그냥 묵과하지 않아요. 그걸 넘어서려고 하지요. 오류가 있는 이것을 인간은 초월로 대처해요. 본성과 자유가 있는데 이 자유는 그냥 자유가 아니고 오류가 있는 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인간은 자유적인 의지, 행동을 하게 돼있다고 돼요. 오류를 초월하고자 하는 여기서 반성이 생기고 이 반성을 해석학이라고 합니다. 이제 윤곽이 좀 나오지요.

숨어있는 무의식, 혼돈이 바깥으로 나오면서 제가 분명히 해석한다 했지요. 상징이 나오지요. 상징은 그냥 두면 안 돼요. 그걸 해석하지요. 해석하면서 뭘 하느냐? 반성하면서 나오지요. 지금 폴 리꾀르가 해석이 맞는지 따지는 게 아닙니다. 해석한다고 하는 거예요. 실은 해석한다고 느껴지겠지만 악에 의해서 오류 있게 해석되어진 것이라고 본 거예요. 상당히 복음적이죠. 어떻습니까?

성경을 해석할 때 우리는 부족하다. 누구나 이야기해요. 그전에 신학 다 마찬가지. 우리는 부족하다. 인간은 신이 아니고 유한한 존재다. 누가 이야기 못해. 옛날부터 다 있었던 이야기인데. 심지어 기독교 오기 전에 그리스 철학에 다 있는데. 스토아 철학, 에피쿠로스 철학에서도 인간은 유한하다. 감히 무한에 대들다니 겸손하자. 겸손한 게 스토아철학이고 불교에요. 그걸 복음이라고 말하면 안 돼요.

지금 폴 리꾀르가 불교라든지, 스토아철학, 에피쿠로스철학, 에피쿠로스철학이 부족하다고 하는 목적이 있어요. 인간은 평정심을 유지해야 행복하다는 겁니다. 너무 과한 욕심 내지 말고 너무 나대지 말고 살면 행복해진다. 복음 아닌 그리스철학, 헬라철학에는 목적이 있어요. 인간의 행복이 최고에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목적은 행복이에요. 최고의 선은 행복이에요. 누구 행복이겠습니까? 나의 행복이죠.

이 소리를 폴 리꾀르가 들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네가 성경을 알아, 네가 신화를 알아, 네가 혼돈을 알아? 네가 행복을 추구한다는 자체가 행복하다는 말입니까? 불행하다는 이야기에요. 불행한 것을 일시적으로 행복하게 되면 그게 행복의 끝이에요? 갑자기 결핍을 느끼지요. 그때 인간은 뭘 하느냐? 자신이 행복했다고 봤는데 얼마 안 가서 시들해지고 지루해지고 권태를 느끼고 행복을 못 느끼는 것은 뭔가 오류가 있다. 행복은 아직도 미진한 거야. 나의 행복을 마저 채워야 돼, 라는 이것을 폴 리꾀르는 반성이라 하고 해석이라 한단 말이죠. 자기는 해석되어지면서 해석되어진다는 것을 감추고 맨날 자신의 욕망을 맞추기 위해서 그냥 해석하는, 해석한다는 것은 스스로 반성한다는 겁니다. 반성은 칸트의 철학에서 나왔어요.

칸트의 철학에서는 주체 안에서 감성과 오성이 분리돼있어요. 감성과 오성이란 말은 칸트는 안다는 겁니다. 뭔가 인간 속에 욕망이 있고 그리고 현실은 안정된 것을 원하고, 이게 안 맞아요. 내가 착하기를 원하지만 내 속에 악이 있어서 날마다 악이 이기는구나.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칸트가 이미 알고 있어요. 기독교국가니까. 칸트가 성경박사거든요. 그러니까 이후의 모든 탁월한 신학자들이 칸트를 베끼잖아요. 칸트의 윤리를 배운다고요. 인간은 목적 없이 착해야 된다. 따지지 말고 대가없이 까닭 없이 무조건 착해야 돼. 왜? 인간 속에 하나님 형상이 있기 때문에. 이게 칸트 철학입니다. 완전히 개혁주의신학이에요.

폴 리꾀르에 의하면, 반성한다 했지요. 뭔가 감성은 죄 짓고 싶은데 실제는 죄 짓지 말아야 되고, 이게 주체 내에서 분열을 일으켜요. 갈등을 일으키는 겁니다. 갈등을 일으키면 불행하잖아요. 인간은 불행해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아요. 갈등을 해소하는 것을 화해라고 해요. 새 생명 운동하는 사람들이 화해를 굉장히 많이 이야기하죠. 교인들에게 여러분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고. 하나님과 화해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행복해질 겁니다. 이건 칸트철학이죠.

칸트가 아주 예리하게 이야기했어요. 칸트철학의 시작은 인간의 이성에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이성비판이거든요. 오성과 감정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갈등이 생기지요. 어디에서? 주체 안에서. 인간의 주체란 늘 분열되고 갈등을 일으킨다는 겁니다. 이게 인간의 유한한 존재의 한계라는 거죠. 그런데 이걸 어떻게 외우느냐? 이게 바로 순수 상상력이에요. 근원적 상상력으로.

이걸 나중에 프로이트나 라캉에 오면 자아가 돼요. 거울단계, 상상계. 인간은 한시도 상상을 멈출 때가 없어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순간도 상상을 중지하는 법이 없습니다. 화장실에 가든지, 목욕하든지, 길을 가든지, 버스를 기다리든지 항상 상상해요. 버스 정류장에 가자마자 내가 타야 될 버스가 빨리 오는 것을 상상하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폴 리꾀르에 의하면, 인간은 두려움을 그냥 방치하지 않아요. 상상을 통해서 두려움을 해소하고 화해해야 되니까. 내가 힘들면 안 되니까. 내 자체 내에서 상상력이 발동해서 매우는 거예요. 이걸 이미 칸트가 이야기한 거예요.

칸트는 그 상상력마저 행복할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숭고의 세계, 숭고함이 경외함이에요. 경외는 선지자들이 하나님 영광을 볼 때 나타나는 그 모습이에요.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사도 요한이 주님의 영광된 모습을 보고 엎드려 죽은 자처럼 됐지요. 그게 경외함, 숭고함. 그런데 칸트의 경외함, 숭고함이 종교적일 뿐만 아니고 실제 모든 일상에서도 느낀다는 겁니다. 어떻게?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섰을 때, 넓은 거대한 대지를 바라볼 때, 그리고 황금빛을 발산하는 막 지는 노을 볼 때 왈칵 눈물이 쏟아지죠. 그걸 포착해서 메를로-뽕띠, 마르셀은 몸의 현상학이라 했고, 그걸 마르셀은 화신론, 내가 몸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몸이 발산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사실은 몸이 나의 전부라고 본 겁니다.

그러면 이 몸은 결국 상징이 돼요. 그 상징은 해석돼야 될 상징이 되겠지요. 해석은 누가 하느냐? 내가 하는 게 아니고 해석되어진 해석을 내가 해석한 걸로 여기는 겁니다. 폴 리꾀르의 결론은 그거에요. 악이 있다는 걸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그는 목사답게 이야기합니다. 구원되는 순간 악의 전부는 밝혀진다. 회고적으로 회상하듯이. 내가 구원되지 않으면 악의 전부는 보이지 않는다. 네가 악에서부터 인간이 상징화된다는 것을 어느 근거에서 이야기하느냐? 폴 리꾀르는 이야기합니다. 네가 구원되지 않아서 그걸 이해 못하지. 이게 폴 리꾀르의 철학이에요.

우리가 남아있는 게 뭐냐 하면, 그 상징을 해석하는 것만 남아있겠지요. 상징을 해석하는데 세 가지 방식으로. 상징은 인간은 태어나면서 하는 언어는 그냥 언어가 아니고 죄악 된 고백이 언어가 될 때 상징어라 합니다. ‘상징어+상징어’가 신화가 돼요. 이 신화를 해석할 때 어떻게 하느냐? 몸이 처해있는 몸은 이 신화에 휘둘리니까 그 교류, 관계에 의해서 해석이 나오는 겁니다. 이 의미에서 폴 리꾀르는 현상학을 그대로 받아들여요.

현상학에서 의식이란 의지의 지향성이라 하는데, 이것은 몇 가지 기능이 있어요. ①대상화하고 ②통합하고 ③관계 맺고 ④구상하고, 이것이 후설의 현상학에서 의식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폴 리꾀르와 차이점은 뭐냐? 현상학에서는 의식이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폴 리꾀르의 해석학에서는 몸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몸이 모든 걸 대상화하고 통합하고 관계 맺고 구상하고. 사람을 만날 때 저 사람이 누구지? 그 다음에 저 사람과 내가 생각이 같을까? 통합이죠. 앞으로 어떻게 지내지? 관계죠.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구상하죠. 모든 걸 규정하고 평가하죠.

그러니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후설의 현상학이 등장할 때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니까. 너무 완벽해서. 더 설명할 게 없어요. 기존에 있는 모든 것도 내 의식의 산물에 불과하다. 끝. 내가 의식하매 그는 나와 관계 맺었고 구상되었고 통합되었고 나의 대상화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이의 있나? 이의 없다. 와~ 그게 진리네. 후설의 현상학에 철학자들의 놀란 겁니다.

신이 있다. 예수가 있다. 그건 뭡니까? 누가 만든 거예요? 후설의 현상학에 보면, 내가 그러고 싶은 거예요. 내가 아니고 내 의식이. 나는 우선이 아니에요. 의식에서 나중에 ‘나’가 나오기 때문에. 내 의식이 신을 믿고 싶은데, 그럼 예수를 믿어볼까? 대상화시키고, 예수를 만나면 하나가 되면 얼마나 좋겠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건 요한복음 16장에 나오는 이야기 아닙니까. 내가 너와 우리가 하나가 된다. 통합. 주님과 나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이건 관계지요. 그 다음에 주님은 어떤 분이라고 고백해야지. 이건 예수님은 주님이라고 구상하지요.

그러니까 현상학으로 보면, 우리가 성경에서 무슨 소리해도 그건 내 의식의 이미지에 불과한 거예요. 폴 리꾀르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게 의식이 아니고 몸에서 나온 거예요. 그런데 그 몸은 어떤 몸입니까? 감추어진 본성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그쪽에서 해석하는데 폴 리꾀르는 목사니까 거기에 그게 오류가 있는 걸 집어넣었지요. 그 오류를 악이라 한다 이 말이죠.

이게 남은 문제는 오류 있는 해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 내막이 어떻게 되는지 그것만 남아있는 겁니다. 그걸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딱 세 가지에요. 부정, 더러운 것. 두 번째 부정에서 더 나가면 죄가 되고, 세 번째가 죄과가 됩니다. 죄 이전에 부정이 있어요. 부정이란 거룩한 것과 더러움을 구분하는 것. 쉬운 우리말로 하면 오염된 것, 흠집 난 것. 이건 바로 폴 리꾀르가 목사니까 성경을 근거로 했어요.

구약에 보면, 죄보다 먼저 있는 것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 지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만 신화가 아니고 모든 인류에게 공히 주어진 것으로 보는데 그게 어디에 근거하느냐 하면,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들고 하신 말씀이 금기에 대해서 나오죠. 금지가 되겠죠. 선악과 과실을 먹지 말라는 금지죠. 금지하고 등장한 존재가 누구죠? 인간이었습니까? 금지를 주목하고 금지를 겨냥하여 시비 걸며 나온 게 바로 뱀이죠. 그 뱀은 신약성경에서 옛 뱀이고 마귀죠. 마귀는 상징 이전의 존재잖아요. 본성. 그게 자연세계에 나오면 뱀이라는 상징이 되죠. 존재만 되는 게 아니고 그 법칙도 마찬가지요. 내가 따먹지 말라 했잖아. 금지를 건드리면 이건 더러움이 되는 거예요.

아까 비의지적인 것에 탄생, 죽음, 무의식, 초월, 죄도 포함돼요. 이런 것들이 인간보다 먼저 있는 겁니다. 먼저 있다는 말은 탄생해야 될 이유에 대해서 인간은 모른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죽는 이유에 대해서 죽을 인간을 왜 만들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모르는데 창세기 2장에 보면 나오지요.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죽지요. 그러니까 선악과를 따먹는 죄 이전에 죄가 죄 될 수밖에 없었던 금지조항이 먼저 있었던 겁니다. 그걸 부정이라 합니다. 그 흔적이 지금도 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어부가 고기를 잡는데 이상하게 고기가 안 잡혀. 고기 안 잡히는 이유를 대는데, 자기 아내가 부정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고기가 안 잡힌다는 겁니다. 고기가 안 잡히는 현상, 상징에 대해서 그 어부는 해석을 한 거예요. 해석을 함으로서 본인은 뭘 장착하느냐 하면, 아까 대상, 통합, 관계, 구상 또는 구성. 고기가 안 잡히는 이유는 아내가 간음했기 때문이라는 현상학적이지만 나한테는 해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벌써 어부 이전에 죄, 금기가 있기 때문에 해석되어진 존재가 어부가 되는 거예요. 그게 주체가 된다 말이에요. 그게 자아가 되고.

금기라는 것은 인간이 죄 이전에 설치한 하나님의 그물망 속에 태어난 겁니다. 그래서 보통 교회에서 불만 있는 사람이, 선악과 따먹으면 죽는다고 하지 말고 아예 선악과 안 심으면 어떠냐? 그것도 본인의 해석이죠. 그런데 그 사람이 어디에 말려들었어요? 진짜 선악과 관심 없어야 되는데 이미 관심을 가진 거예요. 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거예요. 어디 그런 신이 다 있어. 난 그런 신 안 믿겠어. 그런 신을 안 믿겠다는 자체가 나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뭐로부터 늘 해석되어진다는 티를 낸 셈이 된다 이 말이죠.

아무리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돈을 그렇게 많아도 마지막 때 내가 죽으면 어디 가는데? 신부 붙들고 묻는 거예요. 그러니까 폴 리꾀르 말이 맞잖아요. 돈 벌 때 설탕 만들고 할 때는 관심 없어요. 죽을 때 되니까 묻는 거예요. 신화에 대해서 상징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죽으면 어디가? 신부 붙들고 묻는 거예요. 똑같은 인간인데 해답을 알겠어요. 신부가 교회밖에 모르는데 무슨 해답이 있겠습니까.

폴 리꾀르는 말합니다. 죽어서 그러기 전부터 이미 그 사람은 나름대로 자본주의사회를 보면서 해석을 해온 거예요. 그런데 그 해석이 자본주의사회를 통해서 해석했지요. 자본주의사회는 돈을 원한다. 돈 있어야 인간 대접 받으니까. 그 사람은 평소에 자본주의사회라는 상징을 상징으로 보지 않고 현실 자체로 본 거예요. 자본주의사회, 이게 눈에 보이는 다라는 겁니다. 폴 리꾀르는 말합니다. 그러니까 현대사회는 비복음적이고 비기독교적이고 악마적이지. 내가 이야기할게. 인간은 너희들의 자본경제구조, 이것 말고 숨겨진 비밀이 있고 인간의 본성을 따로 있다. 네가 자유를 논해? 그 자유는 오류가 있다. 오류 있는 자유로 어떻게 하면 돈 벌까, 여기에 매진한 거다.

따라서 나는 철학자로서, 신학자로서, 목사로서 이야기한다. 신화를 상징을 우리는 상징에 불과한 존재인 것을 다시 말해서 우리는 가짜며 우리는 진짜로부터 해석되어진 가짜일 뿐인 것을 명심하라. 이게 폴 리꾀르가 목사로서 외치고 싶은 내용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냥 기도하세요. 돈 법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옛날 그 당시에 그래서 교회가 운영이 된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폴 리꾀르가 기존 교회에 화를 내고 있는 겁니다. 유럽 자체가 기독교 나라니까 화를 내고 있는 거예요.

그 다음에 두 번째, 부정에서 죄로 옮겨집니다. 인격적 신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계약, 언약이 등장해요. 폴 리꾀르의 주장입니다. 더러움과 깨끗함이 드디어 이스라엘에서 계약이 되면, 여자가 아들을 낳았을 때는 33일 동안 경도가 더럽다가도 딸을 낳으면 66일 동안 더럽다. 이게 문장화 되죠. 법률화되죠. 이게 부정에서 죄로 넘어온 겁니다.

문자화 되고 법률화됐다는 말은 무슨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에요? 이게 죄라고 지적하는 동시에 뒷면에 보면, 이 죄는 이렇게 해야 씻어진다는 것도 같이 세트로 갖추어진 거지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회복할 수 있는 화해할 수 있는 다시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문자적으로 규정지으면서도 혜택,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을 제공한다고 본 거죠.

죄로 옮겨놓는 것을 폴 리꾀르는 속죄라고 봤어요. 지난 낮 설교에서 속죄를 뭐라고 설명했습니까? 출애굽기 33장 이야기했지요. 모세가 하나님과 직접 만났을 때 뭔가 덮었지요. 덮기 전에 나는 은혜 줄 자에서 은혜 주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긴다고 하시면서 덮어줬잖아요. 나중에 덮어줌이 언약궤가 돼요. 언약궤 뚜껑을 속죄소라 하는데 속죄소는 물체지요. 아카시아 나무에 금박 입힌 겁니다. 그 위에 천사가 마주본 모형물이 조각돼있고. 이건 상징물이잖아요. 상징물의 취지가 덮어준다는 거예요. 속죄소 만든 이야기가 출애굽기 37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33장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독대해요. 그걸 히브리서 9장에서 뭐냐? 실체는 저기에 있고 이 땅에 있는 것은 모형이고 그림자다. 모형과 그림자를 폴 리꾀르는 상징으로 보는 거예요. 상징 아닌 게 없다는 거죠. 그 말은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의미가 종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자유를 발휘하지만 자유를 자유 되게 하는 본성이 있고 그 본성과 자유는 이미 인간에서 오류 된 채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걸 복음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고 날 때부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그런 뜻이에요. 처음부터 우리는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난다는 그 이야기입니다. 그걸 철학적 용어로, 일방적 용어로 바꾼 거예요.

쉽게 갑시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를 믿는다는 자체가 우리가 보기에는 착한 일 한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것이 오류 있는 나를 양산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내가 그 다음부터 의인되는 게 아니고 예수 믿는다는 그 죄를 나한테 더 추가한 셈이 돼요. 어째서 그러냐 하면, 진짜 구원을 받으면 악에 대해서 전부를 아니까 만약에 구원받았다고 우기면서 예수 믿는 것은 착하다고 하면 어떻게 돼요? 전체 악이 아니고 예수 믿는 것은 착함과 예수 안 믿으면 악함을 본인이 그걸 대상화하고 통합시키고 관계 맺고 규정하겠지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예수 믿고 난 뒤에 죄를 지었다. 죄 지었다는 것이 욕을 했다든지, 차 추월했다든지 사소한 것이라도 마음속으로 돈을 좀 사랑했다. 이런 것을 했을 때 그 사람은 뭘 생각하겠어요? 옛날 돈을 사랑하지 않을 때를 선으로 보고, 돈을 사랑할 때를 악으로 보겠지요. 평소에 그 사람은 구원 다 받은 거예요. 왜냐하면 나중에 이 상징물이 몸이 아프다든지 치매 걸린다든지 나이 들면 실수를 많이 해요. 한 번 할 때나 실수지 두 번하면 실수가 아니에요. 이건 타고난 본성이 돼버립니다.

참 희한한 것이 평생 교회에 산 권사들이나 목사가 누가 건드리면 욕이 나온다는 거예요. 치매 걸리면. 그 욕 어디서 배웠어요? 욕도 아주 구체적인 욕을 해요. 기승전결 된 욕, 정돈된 욕이 나와요. 욱해서 하는 욕이 아니고 중2들이 하는 욕이 나온다니까. 담벼락에 여기서 오줌 둔 인간은, 하면서 나오는 욕 있잖아요. 교회에서 새벽제단 쌓으면서 평생 엎드려 기도한 사람 입에서 나온다니까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가 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래야 복 받으니까. 자기가 선해야 나중에 자식들이 복 받으니까. 얼마나 자기 종족 위주에요. 다윈 말이 맞잖아요. 자기 종족밖에 몰라요. 프로이트 말이 맞아요. 지 새끼밖에 모른다니까. 지금 폴 리꾀르는 그것까지 치고 있는 겁니다. 네가 어느 시점에서 네 마음대로 스톱해서 선과 악을 논하느냐 이 말입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네가 구원받게 되면 회상적으로 처음부터 우리는 뭘 해도 죄였다는 드러나는 거예요. 이게 폴 리꾀르의 사상이에요.

그렇다면 구약에서 율법을 줬잖아. 율법을 준 것은, 이미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오염된 거예요. 오염된 존재를 문장으로 법률화시켜서 구체적으로 확실히 주지시키는 거예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더 죄 되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으로 죄라고 죽이면 그만이잖아요. 부정일 때는 죽이면 그만이에요. 그럴 일 없겠지만 아내가 간음해서 고기가 안 잡힌다. 그럼 고기가 안 잡힌 것으로 끝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예를 들면, 아내가 부정한 짓을 해서 고기 하나도 못 잡았다. 여기에 어부야, 어부야, 네가 왜 고민하느냐? 누가 인격적 모습으로(신인동형설) 나타났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한다? 그 죄를 속죄하고 옮겨주겠다는 하나님 자신의 의사를 제시한 것으로 폴 리꾀르는 보고 있습니다. 인격적인 교류, 그게 바로 계약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계약이 점차 이스라엘 민족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처음에는 집단적인 계약인데 개인적이고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계약으로 굳어진다는 겁니다. 이건 에스겔에 보면 나오지요. 성경 봅시다. 출애굽기 20장 5절을 읽어보세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만약에 우상에게 절하면 삼사 대까지 벌하지요. 증조할아버지가 우상을 섬기면 그 벌이 삼대니까 적어도 증손자까지 내려가지요. 이게 초판기 계약에 의하면 본인이 죄 안 져도 아버지 죄 진 것이 본인에게 내려간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 된 자가 지나갈 때 제자들이, 저 소경이 날 때부터 소경된 것은 자기 죄 때문입니까? 조상의 죄 때문에 그렇지요. 조상의 죄는 출애굽기 20장을 말하고, 자기 죄는 에스겔에서 이야기합니다. 부모가 죄 짓더라도 그 자식에게 벌을 주지 않겠다. 계약이 일관성 없게 바뀌어요. 앞에 출애굽기 20장을 무효가 되는 거예요?

물론 폴 리꾀르는 그걸 설명하지 않아요. 초반에서 집단적이었는데 나중에는 개인이 된다.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신약에 가면 모든 법은 인간에 내면화되고 정신 화된다는 겁니다. 그건 에스겔이나 예레미야에 보면 새 언약 시대에는 율법과 말씀이 마음밖에 있다가 새 언약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온다고 돼 있잖아요. 히브리서 10장에 나옵니다. 이게 새 언약이에요. 폴 리꾀르는 그걸 설명하는 겁니다.

여기서 폴 리꾀르 이야기를 계속 해보겠습니다. 일번에서 이번으로 가면서 일번이 무효화 되지 않고 이번의 입장에서 일번을 다시 설명한다는 겁니다. 이걸 폴 리꾀르는 신화의 순환, 돌고 도는 것. 어떻게 예를 들 수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계약 안에 우상이 등장하죠. 우상숭배는 일번 단계가 아니고 이번 단계에 등장한다는 겁니다. 출애굽기 20장에 있잖아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이사야에서 우상을 무라고 해요. 바로 무가 일번이에요. 부정, 무.

순환이란 뭔 뜻이냐 하면, 순환을 함으로써 네가 이 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가 아니라 그 무에 의해서 해석되어진다는 거죠. 제가 오늘 강의하면서 제일 먼저 이야기했지요. 인간은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무에 의해서, 부정에 의해서, 오염에 의해서, 악에 의해서, 죄에 대해서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신화의 순환으로 폴 리꾀르가 설명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야기 다 끝났네. 더 이상 뭐가 남아있어? 남아있다는 거예요. 죄과. 일번은 부정, 이번은 죄, 삼번은 죄과. 순환 논리에 의해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여자가 딸을 낳으면 정결의 기간이 늘어나고 아들을 낳으면 반으로 된다는 말은, 인간의 부정적인 것이 율법 안에 포함돼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약이 구체화 되게 되면 덩달아 일번, 원초적인 부정과 무의 세계가 펼쳐지는 거예요. 곧 인간은 무에 의해서 해석되어지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 다음에 세 번째 죄과에요. 죄는 인격적인 관계로 성립되지만, 이사야 6장에서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이런 게 인격적 관계에요. 죄과는 양의 관계에요. 죄는 죄되 죄의 많고 적음이 정해지는 겁니다. 갑자기 개혁주의적인 신학이 생각나지요. 같은 죄인이라고 많이 진 죄인이 있고 적게 진 죄인이 있지요. 그러면 죄를 많이 진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바르게 살게 되면 인간이 개과천선해서 그 다음부터 안 짓든지 적게 짓겠지요. 담배 피고 술 먹다가 교회 나와 은혜 받고 난 뒤에는 술, 담배를 끊겠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살겠지요. 이걸 죄과의 차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고 폴 리꾀르는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걸 어떤 근거가 있느냐? 구약에 율법이라든지 제사법이 있는 이유가, 항상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거예요. 네가 이런 죄를 지었지만 여기서 개과천선하고 회개를 하고 앞으로 이렇게 살게 되면 너한테 유보되었던 복을 허락해줄게.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산다? 자기의 죄과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살게 돼있다는 겁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돼있지요. 묵상을 왜 합니까? 아무 성과도 없으면 묵상하겠어요? 묵상했으면 한 만큼 성과가 나야 되잖아요. 이게 죄과를 줄이는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거예요. 흔히 이걸 개혁주의에서는 자범죄, 고범죄라고 나와요. 원죄는 해결됐지만 고범죄, 자범죄는 남아있다는 거죠. 그것을 줄여나가는 쪽으로 주께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게 부정에서 죄, 죄에서 죄과. 그래서 죄과 쯤 되면 그 다음부터 죄라는 것은 하마르티아, 목적물에서 벗어낫다. 남자가 흘릴 것은 눈물만 아닙니다. 화장실에 붙여놓은 것 있잖아요. 똑바로 오줌 누란 말이죠. 제대로 조준해서 하라 하듯이 하나님께서 인간이 살 도리, 성도가 가야 될 도리를 제시했기 때문에 제시한 대로 하라. 만약 안 하게 되면 어떻게 되죠? 하나님께서 똑바로 하라고 징계를 내리죠. 벌칙을 내리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라고 희망을 주고 회복을 주고 이게 종말론적으로 마지막 때가 되면 이런 혜택을 준다는 것이 하나님이 준비한 신화 속에 이미 들어있다는 겁니다.

폴 리꾀르가 이런 이야기했을 때 기독교 신자들은 좋아한다고 치고, 만약에 불교신자라든지 교회를 싫어한다든지 교회 안 나가는 사람들은 여기서 무슨 반박을 하겠습니까? 네가 이야기하는 것은 성경이라는 신화이야기잖아, 라고 반박하겠지요. 그 반박을 대비해서 폴 리꾀르는 기독교 외에 모든 종교의 신화를 조사한 거예요. 조사해보니까 전부 다 이런 혼돈의 순환, 신화의 순환이 예외 없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어요.

예를 들면 자연의 탄생 이전에 신의 탄생부터 먼저 나온다는 것, 그리고 신이 인간적인 모습을 띤다는 것, 신인동형설이죠. 그 다음에 급작스러운 격변, 개벽, 대순진리회, 그것도 불교에서 나왔지만 신화잖아요. 마지막 종말, 탄생, 죄,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폴 리꾀르가 성경만 두고 이야기한 게 아니고 모든 데 적용되는 이야기를 자기가 했다고 하는 겁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성경은 하나의 사례가 될 뿐이고. 자기는 성경을 전파하는 게 아니고 인간 자체가 뭔지 이야기하고 있다는 거예요. 목사 입장이 아니라 철학자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때 철학이 되거든요.

강의를 맺고자 합니다. 폴 리꾀르가 주장한 것을 보게 되면, 오류가 있고 그 오류는 주체 내에 불균형을 일으킨다. 갈등을 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인간들이 뭔가 놓친 게 있다. 뭘 놓쳤느냐? 신화가 주는 상징을 놓쳤다. 상징은 그냥 상징으로 풀지 말고 해석을 통해서 반성을 통해서 상징을 이해해야 된다. 상징은 그 자체가 가짜란 의미가 있다. 그럼 진짜는 뭐냐? 상징이 있기 전에 먼저 있었다. 그게 뭔데? 어떻게 아는데? 지금 우리가 주체에 분열을 일으키고 오류가 있다는 것, 뭘 해도 오류가 생기고 뭘 해도 미흡하다는 것은 인간이 처음부터 오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세계는 뭐냐? 오류 있다는 말은 오류 없는 다른 세계에 비해서 인간은 오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죽어야 되고 인간은 무의식에 시달려야 되고 갈등이 있어야 되고 그걸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서 종교를 만들어서 초월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런 것들은 사실은 원초적인 무의식에 의해서 본성에 의해서 새삼 해석돼야 된다는 것이 바로 폴 리꾀르의 주장입니다.

자, 이제 늘 있었던 절차입니다. 복음적으로 봤을 때 이 철학의 문제점은 뭡니까? 무엇이 빠졌느냐고 묻는 겁니다. 지금 폴 리꾀르는 목회자고 철학자지만 존재에 대해서 언급하지요.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언급 못하고 있어요. 십자가 사건을 언급하려면 필히 십자가 사건 입장에서 구약, 다시 말해서 옛 언약이 설명돼야 되지요. 이게 뭐냐 하면, 베드로전서 봅시다. 1장 8절에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 베드로 사도의 입장에서 모든 성경은 누구 이야기입니까? 인간의 갈등은 어떻게 하고 인간은 어떻게 불균형을 깨달아서 구원으로 회복될 수 있는지 그 문제가 아니죠. 그냥 예수님 이야기에요. 인간을 자기를 증거하라고 한 게 아닙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존재입니까, 사건입니까? 여기 나오잖아요. 10절을 봅시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

이게 바로 사도가 알고 있는 복음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에서 피 뿌림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에요. 베드로전서에서 사도는 십자가 피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존재가 아니라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사도 바울이 목숨 바쳐서 외쳤던 것은 십자가 사건이에요. 히브리서 1장에서 세상은 무너져야 된다. 왜? 십자가 사건의 의의를 위해서. 요한계시록에서도 마찬가지고. 모든 것이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두 증인이 죽은 장소가 뭡니까? 소돔과 고모라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지요. 현재 여기 부산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가 될 수 있어요. 십자가 사건, 성령의 사건이 일어나면 이 장소가 해운대가 아니고 십자가 못 박힌 장소에요. 공간 개념, 시간 개념 자체가 예수님 십자가 사건 때문에 주님의 해석이 우리에게 덮치는 겁니다.

그래서 폴 리꾀르는 십자가를 언급해야 되는데 사람들이 무엇에 미흡한지, 무엇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는지 목회적 입장에서 특히 그들의 죄과라든지 회복이야기 나온다는 것은 기존의 개혁주의신학을 답습한 것밖에 안 되잖아요. 개혁주의신학조차도 죄라는 사실을 본인은 못 밝히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인간 존재 이전을 알면 구원받습니까? 방금 했던 이걸 알면 구원받습니까? 구원은 십자가 피의 능력으로 구원받지 십자가 피를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 아니거든요. 내가 뭘 믿고 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폴 리꾀르가 한 말 중에서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구원을 받게 되면 죄를 알게 된다. 그 말은 맞아요. 그러나 구원을 받는 그게 뭔지 이야기 안 해요. 기독교 들어오면 구원받는 게 아니잖아요. 십자가와 관련된 그게 바로 고린도전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던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지혜로도 어리석고 심지어 부끄러울 정도의 내용이란 말이죠. 그런데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것은 성령을 받은 사람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고, 주님처럼. 우리는 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복음만이 유일한 구원의 능력인 것을 우리는 감사하죠. 그게 우리 존재의 이유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십자가의 증인으로써 살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사오니 성령께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린 일을 복음의 일을 증거한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160216b 부산강의.hwp (34.5K), Dow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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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3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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