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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80. 행 19:1-7 (성령을 받았느냐) - 이근호 목사 사도행전 설교자유게시판사도행전

80. 행 19:1-7 (성령을 받았느냐) - 이근호 목사 사도행전 설교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80. 행 19:1-7 (성령을 받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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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 19: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행 19: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행 19: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 19: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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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목숨보다 더 귀한 것 !!

초대교회 시대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자기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런 초대교회 시절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의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다윗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게 되면, 그들의 하나님과의 교제가 장난이 아니라는 말이죠. 하나님 알기, 혹은 하나님 믿기, 그런 식의 취미생활이 아닌데, 그들은 때에 따라서 끼니를 먹는 것보다도, 그런 자기들의 생존문제보다도 하나님의 명령을 더 염두에 두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신앙인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죠. 일반 사람들에게는 최종적으로 가장 귀한 것이 자기 목숨인데,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에게 붙잡힌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목숨보다도 더 귀한 것이 신앙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진리임을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보여준다는 말이죠.

사도바울이 대구에 나타났다 !!

오늘 본문을 보면 에베소 교회에 사도바울이 전도하려고 왔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묘동이 거기와 5킬로미터 정도 떨어졌다고 하면, 우리가 만사를 제쳐놓고 사도바울의 설교를 들을 용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 남아도는 것이 아니고, 정말로 자기가 하는 일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는데도 말이죠.

지금 대구시내에서 사도바울이 집회를 하는데, 그런데 자기는 스케줄이 꽉 짜여져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하던 일들을 모두 다 제쳐두고 사도바울의 전하는 복음을 듣기 위해서 집회가 열리는 것으로 가겠느냐는 말이죠.

그러니까 "답답하면 자기가 와서 전해주면 되지, 이렇게 바쁜 나를 불러?" 라고 하면서 배짱을 부릴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반가운 마음에 "내가 누구이며, 인생이란 무엇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라고 하면서, 자기 생명보다 더 궁금한 것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한 해답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 대구시내에 나타났다고 하면서, 그 집회에 간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참석을 했는데, 그런데 그 사도바울이 대뜸 뭐라고 물어보는고 하니까, "당신은 성령을 받았어?"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질문이 없는데 말이죠. 그건 제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고, 실제로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는 겁니다.

(행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당신은 성령을 받았어?

에베소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대구에 와도 당연히 그렇게 한다는 말이죠. 저처럼 "어서 오세요. 여기 앞자리에 앉으세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ㅋㅋ), "당신은 성령을 받았어?" 라고, 그렇게 추궁하듯이 질문을 던지는데, 그것은 바로 사도바울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오늘 2006년도 수능시험의 경향이 발표되었는데, 그 수능시험의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서 단 한 문제만을 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은 성령을 받았어?" 라고 하는, 즉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했던 질문이라는 것이죠. "2006번 학생, 성령을 받았어?" 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뜸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그야말로 기절초풍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당신, 재산이 많아? 통장은 몇 개나 있어?" 라는 것을 묻는 게 아니라, "당신, 학교는 어디를 나왔어? 교회는 어디를 다니는데? 그리고 신랑은 무엇을 하고, 또 자식은 몇 명이나 되는데?" 라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성령을 받았어?" 라고, 그렇게 묻는다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이 세상은 성령을 받은 사람과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으로, 그렇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눠진다는 말이죠. 그리고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 어떤 경우라도 하늘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채로 인생을 끝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기가 그 어떤 짓을 한다고 해도, 그 성령을 다시 회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한 번 주어진 성령을, "더러워서 더 이상은 도저히 안 되겠다" 라고 하면서 다시 빼앗아 가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보증금' 이라는 말이죠. 물론 이 세상은 아무리 보증금을 걸고 해도 계약이 파기되는 것이 다반사인데, 하나님은 그런 세상의 거래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증금으로 성령을 그 사람 속에 넣었다고 하면, 그 보증금이 곧 구원의 확정날짜라는 말이죠. 즉 "구원이 확정되었다" 라고 하는 최종판결이란 겁니다. 이런 점을 다 알고 있는 사도바울이 "당신은 성령을 받았어?" 라고 묻는 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질문을 지금 우리에게 동일하게 던지고 있다는 겁니다.

육사출신의 부교역자 !!

제가 과거에 대구에서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심방을 하게 되었는데, 조그마한 슈퍼를 하고 어느 집에 갔다는 겁니다. 그때 저는 마치 육사출신처럼 배운대로만 하는 시절이었는데, 육사출신이 정말로 그렇게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ㅋㅋ). 그래서 그 집에 심방을 가서는 신학교에서 배운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대로 그렇게 곧이곧대로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설교를 하면서 "집사님은 영생을 받았습니까?" 라고 물었는데, 생명이 무엇인지를 아느냐고 말이죠. 그러자 그분이 안색이 변하더라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분이 시골에서 대구에 와서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힘들게 조그마한 슈퍼를 차렸다고 하면, 교회에서 심방을 와서 "영생을 받았습니까?" 라고, 그 따위 소리를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왼쪽에는 부귀이고, 오른쪽에는 장수입니다" 라고 하는, 그런 잠언서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용기를 북돋아주던지 해야 하는데, 그렇게 축복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만 육사출신이 되어서 "영생을 받았습니까?" 라고 곧이곧대로 해버리니, 아마 성경공부를 하자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고 성경말씀을 전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만 인상이 달라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 다음부터는 교회에서 만나가기가 힘들었는데, 물론 그 당시에는 왜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는지 저는 잘 몰랐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그때 서울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열심히 다닌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출석하는 정도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도 육사출신이 있어서, 우리 어머니에게 와서 그런 식으로 했다는 말이죠(ㅋㅋ).

그 교회의 부교역자가 와서는 구역예배를 드리자고 했는데, 그때 어머니는 옷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당장에 먹고 살기 위해서 옷을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데, 그런데 예배를 드리자고 한다는 말이죠. 물론 그 취지는 좋지만, 즉 일주일에 예배를 한 번 드리는 것으로는 말씀이 부족하니, 구역예배라도 드리고 해야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조금 달랐는데, 교회에서 와서 덕담을 해주고 축복을 해주는 것은 좋지만, "이 동네의 모든 손님들이 이 가게로 다 오게 해주세요" 라고 말이죠. 그러면 듣는 누님은 참 기분이 좋은데, 말하는 동생도 기분이 좋고 말이죠. 그런데 성경을 펴놓고 예배를 드리고 하는 것은 영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는 겁니다. 제가 나중에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서, 슈퍼를 하시던 그분 생각이 났다는 것이죠. "아하, 그때 그분도 그랬겠구나" 라고 말이죠.

다시, 당신은 성령을 받았어?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당신은 성령을 받았어?" 라고, 마치 다그치듯이 질문을 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갈 자가 없다" 라고 하는 이 명확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하는 겁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은 육사출신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이 말씀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밀어 부친다는 겁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성령을 받았습니까?" 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서 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고 하니, "만약에 내가 성령을 받지 못했으면 어떻게 하지?" 라고 하는, 그런 염려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죠.

"예수님을 믿습니까?" 라고 하면, "예, 믿습니다. 죽어도 오늘밤에 낙원에 갑니다" 라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질문이 그것이 아니라, "당신은 성령을 받았어?" 라고 나오니, 사실은 그게 같은 질문인데 말이죠. 그런데 그 질문을 받으니 온 몸에 힘이 그만 다 빠지고 만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성령을 받은 기억이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자기가 앞으로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해도, 그 모든 것이 다 헛것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교회에 다닌 자기나 다니지 않은 사람이나 지옥에 가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죠. 그래서 걱정이 늘어지고 만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성령을 받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라는 것을 물어서, 자기가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그것을 체크하기에 바쁘다는 말이죠.

악령을 받은 자라면 !!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고 하니, 악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그것을 먼저 정리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 모습을 살펴보면 되는데, 우리가 과거에 지독하게 예수님에 대해서 반발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친구로 여기지도 않고, 교회에 가는 사람에게 골탕만 먹이든 시절을 말이죠.

예수님을 알기는 알지만 나쁜 짓을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사실 어떻게 보면 그런 사람은 구원을 받은 자라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 예수님에게 아예 관심조차도 없는, 눈만 뜨면 프로야구만 신경을 쓰고, 그래서 자기가 응원하던 팀이 지면 열을 받아서 잠도 잘 오지 않는 말이죠. 그리고 친구가 교회에 간다고 하면, 다른 곳에 놀러 가지고 하면서 불러내고 한다는 겁니다.

"야, 지금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교회에서 이게 무슨 짓이고? 경기구경이나 가자. 아가씨도 소개시켜줄게" 라고 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전도에서 바깥으로 불러낸다는 말이죠.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나 달콤하고 고소하던 시절,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험담이나 하고 마구 골려먹는 재미, 그런 재미로 살았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보라는 겁니다. 누가 그런 능력을 주셨느냐는 말이죠.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거듭날 수 없다 !!

다시 말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도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핵심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아무리 노력하고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살아도, 아무리 그렇게 노력해도 거듭날 수 없고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이죠. 그것을 외치는 것이 바로 성경말씀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당신, 착하게 살았어?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았어?" 라고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당신, 성령을 받았어?" 라고 묻고 있다는 겁니다. 성령을 받은 것과 착하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동네인데, 성령은 예수님과 관련된 동네라는 말이죠.

세례요한의 물세례가 인간의 한계 !!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가 무엇인고 하니,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것인데, 즉 세례요한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잠수해서, "나는 죄인입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그것을 좀 이야기해주세요" 라고 하는 것, 거기까지라는 겁니다. 그 정도는 우리 인간이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모피 옷을 입고 야생 꿀인 석청을 먹으면서 살았는데, 구약에 의하면 마지막에 엘리야가 온다고 했다는 말이죠. 그 엘리야가 바로 광야의 노숙자 복장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붙잡히지 않고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은 채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마치 타잔과도 같다고 할까요? 그렇게 하나님과 독자적으로 일대 일로 교류를 하면서 신비에 쌓인 존재로서 활동을 했는데, 그 중의 대표자가 바로 엘리야라는 겁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선지자 시대는 엘리야부터라고 할 수가 있는데, 율법의 시대는 모세고 말이죠. 그래서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자로서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서, 그렇게 세 분이 하늘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보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엘리야가 그런 복장을 하고 그런 인생을 산다는 것은, 엘리야가 자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장차 오실, 그게 약 800년 뒤가 되는데 말이죠. 그 예수님의 능력이 미리 엘리야에게 덮쳐서 엘리야로 하여금 그런 길을 가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세례요한도 역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니, 이 세례요한이 엘리야라고 하는 말들이 나돈다는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나면 마지막 때라고 했으니, 자기 모습에 대해서 돌이켜보게 된다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 모습을 따지게 되면 어떻게 죄가 아닌 것이 없는데, 그러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는 말이죠.

끙끙 앓는 인간들 !!

그렇게 따지고 보면 완벽한 사람은 전혀 없는데, 그런 완벽을 추구하면 우울증에 걸리고 정신병에 걸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옥상에 뛰어내리기도 하고 말이죠. 어떤 사람은 길에서 우연히 동창생을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집에 가서 이틀 동안이나 끙끙 앓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말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 것을 좋게 보면 자기의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마귀의 시험에 빠진 것이죠. 우리 인간이 언제 그렇지 않고 제대로 하는 경우가 있었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마귀가 사람을 가지고 노는데, 그야말로 꼼짝도 못하고 만들고 벌벌 떨게 만든다는 말이죠.

"그때 내가 그렇게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데" 라고 하는데, 그러면 다른 행동을 하면 그게 잘난 것이 되느냐는 겁니다.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고 말을 했어도 그것을 잊어버릴 줄을 알아야 하는데, 다음에 만나서 잘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사람은 그때그때 다르다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나타나서 "이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하면서, 그 당시 선지자들과 사람들을 모두다 까버렸는데, "이놈들이 어디서 천당에 가려고 나에게 온단 말인가!" 라는 것이죠. 그 카리스마는 욘사마인 배용준 이상인데, 완전히 '뽕' 간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고 하니, 세례요한에게 우르르 몰려가서는 물 속으로 들어가고 한다는 말이죠.

예수님과 세례요한 !!

그런데 그것까지는 인간이 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 현장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뭐라고 하십니까? "세례요한아, 나에게 세례를 주어라" 라고 하는데, 그러자 세례요한이 뭐라고 합니까?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당신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자 예수님은 "니가 나에게 세례를 주어야 우리가 합력해서 의를 이룬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마 3: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마 3: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지금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죄 속에 살아왔었습니다" 라고 하는 자기의 죄인 됨을, 그렇게 죄 속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내가 죄인입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닌데, 문제는 하나님의 완벽한 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의는 의의 세례가 와야만 한다는 말이죠.

세례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물을 확 부어버리는 바께스라고 보면 된다는 겁니다. 죄의 바께스를 뒤집어쓰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그래서 물을 죄로 보고 그렇게 물 속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지금 물 속에 있듯이 그렇게 죄 속에서 살았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자기가 죄 속에 파묻혀서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아이쿠, 착하다" 라고 해서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면, 이제는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고 하니, 누군가 완벽한 의로운 분이 오셔서 의의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지금 자기가 죄를 뒤집어쓰고 있듯이 그렇게 의를 뒤집어써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모르는데, 자기가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기에 바쁘지 예수님을 찾고 말고 할 겨를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은 그것을 알았는데, 그게 세례요한이라는 말이죠. 물론 그도 처음에는 몰랐었지만,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아하, 이분이 바로 의의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구나" 라고 하는 것을 말이죠.

제가 지금 자꾸 죄와 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성령을 받았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순복음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방언을 하고 뜨거운 것을 생각해서,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나는 그런 성령은 받지를 못했는데, 그러면 지옥에 가는가?" 라고 하면서 걱정이 늘어질까 싶어서,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원래 세례라고 하는 것은, 특히 물세례는 현재 자기의 위치에 죄 속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물 속에 빠져죽어도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곧 세례라는 겁니다. 그러니 외부에서 바께스로 퍼부어 주어야 우리의 정체가 발각된다는 것이죠. 마치 엑스레이를 찍듯이 노출이 된다는 말이죠.

성령세례를 고대케 하는 물세례 !!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옴으로서, "아하 우리는 물에 빠져죽어도 당연한 죄인이구나" 라는 것을 알려주는데, 그것이 물세례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죄를 뒤집어썼듯이 앞으로는 의가 와서, 그 의를 뒤집어쓰게 된다는 겁니다. 마치 여름에 샤워를 하듯이 말이죠. 그것은 그분이 해주시는데, 바로 그 순간을 물세례를 받으면서 고대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세례는 놀랍게도 성령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바께스로 물을 붓듯이 부었는가?" 라는 것인데, 그것이 믿어진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겁니다. 성령세례는 성령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데, 성령님은 얼마나 겸손한지 성령 자신을 앞장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앞장 세워서 일을 하시는데, 그 자체를 두고 성령세례라고 한다는 말이죠.

성령세례를 받을 자들이기에 !!

사도바울은 그 당시에 주님의 계시를 받아서, 아볼로와 에베소에 있는 12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세례를 받을 자들이라는 것을 이미 알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알고 물었다는 것이죠. "너희들, 성령세례를 받을래? 말래? 아니면 말고" 라고 하는 게 아니고 말이죠.

다시 말해서, 이 12명의 사람들은 물세례가 아닌 성령세례가 주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하는 대상자들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라고 질문을 했다는 겁니다. 즉 "당신들은 성령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죠.

(행 19: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우리가 이것을 놓치게 되면 무슨 현상이 벌어지는고 하니, 사실 그것은 방언도 아니고 괴상한 소리이지만, 그렇게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자기의 부하로 만든다는 겁니다. "김 집사, 성령세례를 받았어? 내가 안수를 해줄까?" 라고, 그게 목사의 카리스마라고 하면서, 이 땅에서 자기를 높이기 위한 수법으로 동원을 시킨다는 말이죠.

오늘날 교회에서 "사도가 안수를 해서 성령세례를 받는 것을 봤지? 그게 사도행전 19장에 나오잖아. 오늘날은 목사가 바로 그 사도인데, 그러니 목사가 안수를 하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어" 라고 가르치는데, 하지만 그것은 무서운 악마의 장난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안수를 하고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그것은 사도의 이름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을 주었다는 겁니다. 사도는 폼만 잡고, 주기로 작정된 12명에게 예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는 말이죠. 그러니 사도는 미리 그것을 알아서, 알려주는 역할이라는 말이죠.

(행 19: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 19: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왜 병원의 대기실에 가면, 간호사가 아무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대기하고 있는 사람을 순서대로 부른다는 겁니다. 병원바깥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게 아니고 말이죠. 그렇게 사도바울은 자기에게 온 사람은 반드시 그 다음 절차로 물세례뿐만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주기로 작정된 자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입에서 "성령세례를 받았습니까?" 라는 질문이 나오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 질문이 나왔다는 것은, 그것은 곧 "당신들만이 성령세례를 받을 대상자입니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데, 제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해야하는고 하니, 순복음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순 엉터리 복음인데 말이죠.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을 믿는 것은 1차 통과이고, 그 다음에는 목사에게 안수를 받아서 성령세례를 받고, 그렇게 받게 되면 그 특징이 방언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작되고 연출된 방언을 해서 남들에게 자기가 성령세례를 받은 것을 과시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전파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구름 같이 끌어 모으니, 장로교에서도 그게 괜찮겠다 싶어서 따라한다는 겁니다. 사태가 그러하니, 이 성령세례를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땅, 땅, 땅 !!

이제 말씀을 맺겠는데, 세례라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세례요한의 물세레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죄밖에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의를, 과거에 죄를 뒤집어썼듯이 이제는 그 의를 뒤집어쓰게 됨으로서, 그렇게 의를 풍성하게 받아서 그 의로서 구원된 자라는 것을 확정을 받았다는 것을, 그것을 '땅, 땅, 땅' 증표하는 것이 바로 성령세례라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방언과 예언은 복음에 관한 것인데, 아직 성경이 확장되기 전이니 말이죠. 그러니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나도 옛날에는 교회에 가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그 예수님의 의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입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 자가 바로 구원받은 자라는 말이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전에는 우리가 주님의 일을 훼방하고 도망쳤던 자들인데, 그런데 이제는 죄인이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서, 그 의로 인해서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것을 고맙게 여기고, 그리고 구원에 확정된 자가 되었음을 감사히 여기게 하옵소서. 그러니 날마다 주님만 자랑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6,02,15 정리함 - 녹취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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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3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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