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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 의존교회160108a,b (십자가와 부활)―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디모데후서

서울 의존교회160108a,b (십자가와 부활)―이 근호 목사

이름 : 김창길(IP:118.91.121.36)

서울 의존교회160108a (십자가와 부활)―이 근호 목사

디모데후서 2장 14절부터 하겠습니다.

디모데에게 편지한 속에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들이 교회들 마다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디모데의 편지을 통해서 뭔가 복음을 정립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오케이 하고 동의할 거예요. 그러나 그게 동의를 했다고 해서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가 분명히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했음 에도 불구하고 돌아서게 되면 자기가 알았던 복음에 대해서 복음과 대치되는 의견들이 여기 저기서 막 쏟아지게 되어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 쏟아지게 될 수도 있겠지만 복음을 알았던 본인 각 개인이 세월이 가면, 시간이 지나 가면 나는 전에 20대에 복음을 이렇게 알았는데 30대에는 이렇게 안다. 그러면 40대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50대에는 어떻게 바뀔지 개인적으로도 복음은 늘 바뀌고 그리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내세울 때에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이 과연 제대로 된 정답인가 라고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은 던져 졌는데 해석이 너무 구구하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것을 누구한테 물어봐야겠어요? 그래서 바로 사도가 그것 때문에 있는 겁니다. 사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의 나타난 일꾼이 사도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의 일꾼, 그렇게 되려면 그 사도의 의견은 개인적인 의견이라 하면 안돼요.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사적인 자기 의견을 내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만은 별개로 쳐야 된다 이 말입니다. 사도는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고 숨겨진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사도가 있는 겁니다.

그 사도가 주님사이의 관계에 성령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사도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에게 접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구약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선지자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지 못한 이유는 거짓선지자들도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게 문제가 된 거예요.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상설교 마지막 대목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거짓선지자를 삼가라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라 그런 뜻이거든요. 무슨 수로 구분합니까? 자기 구미에 맞으면, 자기에게 동의 하게 되면 참된 선지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입니까? 원래 그렇게 되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기준인데 내 의견과 일치되면 참된 선지자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많아요.

복음이 뭐냐 하면 죄인을 용서해서 구원하여 영생 주는 것이 복음이잖아요. 복음의 시작이 뭐로 시작하고 있습니까? 죄인이라 말이죠. 죄인을 건져서 의인되게 하는 것이 복음인데 출발점이 죄인이라 하면 죄인이 생각하고 죄인이 믿고 죄인이 희망하고 죄인이 사랑하는 그것은 죄 아닐 수가 없죠. 그것마저 죄이죠. 그러면 죄인이 구원받겠다고 판단하고 저 사람은 거짓 선지자야! 참된 선지자야! 하고 판단하는 것은 그것도 뭐가 됩니까? 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에 선지자들을 많이 보냈지만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달라질게 없습니다. 원래 이렇게 이야기해야 맞아요. 뭐냐 하면 선지자의 말을 들으라고 보낸 게 아니고 원래 들어 먹지 않을 족속인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를 보냈다고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구약의 선지자에게 하나님과의 관련성은 바로 성신이 임했기 때문에 선지자 노릇을 한다고 그렇게 되어 있죠.

사무엘도 그렇고 다윗도 마찬가지로 성신이 임했죠. 그런데 신약에 오게 되면 성신이 임한 것이 아니고 성령이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한번 정리해 봅시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활동하시는가! 보이는 자기 백성을 통해서 활동한다. 그 보이는 자기 백성과 보이지 않는 주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이어졌는가? 성령을 통해서 이어졌다. 그러면 성령을 통해서 이어진 사람의 말에 대해서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느냐? 동의 할 수 있느냐? 동의 안 된다. 왜? 그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동의가 될 수 없다. 동의한다고 해도 수상하고 동의 안한다고 하는 것이 원래 정상이고 동의하겠다는 것이 더 수상해요.

죄인인 주제에 무슨 동의가 되겠습니까? 동의한다는 그 말은 죄에서 빠지는 거예요? 그렇지 않죠. 인간에서 나오는 것이 죄라면 나는 선지자의 말을 곧이듣고 나는 믿습니다. 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죄가 될 수밖에 없어요. 아예 죄가 아닌 것이 나올 것이라고 처음부터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선지자 이야기도 소용없네요? 맞죠. 믿어도 수상하고 안 믿어도 수상하고 믿어도 가짜고 안 믿어도 가짜고, 요한일서에서 그것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령을 받은 자 만이 선지자의 말을 듣는다고 되어 있어요.

복음을 전하는 사도도 죄인이고 그리고 선지자가 들어있는 그 상황에 들어있는 모든 사람들도 죄인인데 선지자의 말을 주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니고 의리의 관계나 또는 동조, 공감, 납득 이런 관계가 아니고 오직 누가 개입을 합니까? 성령이 개입을 하죠. 그러면 성령은 누구의 영입니까? 예수님의 영이죠. 그러면 선지자 보고 전하라 해 놓고 예수님이 빠지는 것이 아니고 전하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전하는 그 현장에 누가 개입을 합니까? 전하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이 친히 성령 안에서 관여하는 겁니다.

어떤 상태에서? 완성된 상태에서 관여하죠. 한번 잘해 봐라! 이게 아니고 완제품으로 개입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너는 이미 구원받았기에 선지자, 사도를 통해서 이 복음이 복음으로 이해가 반드시 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와 동시에 무엇을 알 수 있느냐 하면 너는 성령을 받지 않았기에 내가 하는 복음을 왜곡하게 되어 있다. 이것도 성령의 개입, 또는 주님의 영의 개입으로 필히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것을 제가 양발 차기라고 했죠.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이 등장했다. 그것은 무엇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느냐 하면 축복과 저주가 등장했다. 이렇게 바꿔서 이야기가 돼요. 왜냐하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전에 사람들은 축복과 저주를 그 사람들은 일체 생각을 안 한 겁니까? 나름대로 생각을 했겠습니까? 나름대로 생각을 했죠.

안 믿는 사람들 정월 초하루, 1월1일에 비는 것 보세요. 나름대로의 복과 저주가 다 있다니까요. 인간들에게 나름대로의 복과 저주가 있는데 거기에 아브라함이 등장을 하게 되니까 제가 처음에 강의 할 때 했잖아요. 인간들은 뭐다? 죄인이죠. 죄인이 생각하고 있는 복과 저주는 잘못되었죠. 어떤 의미에서 저주라고 하는 것이 복이고 복이라고 하는 것이 저주가 될 수가 있어요.

그들 속에 누가 끼어들었습니까? 아브라함이 끼어들었잖아요. 그러면 자연적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브라함과 다른 사람들은 충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 된 자와 죄인 되었다가 주님에 의해서 의인된 아브라함과 상충되겠죠.

어쨌든 지금 까지 제가 이야기한 것은 이 세상은 뭐와 뭐로 분류된다? 축복과 저주로 분류된다. 저주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필히 저주가 나타나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또 디모데가 복음을 전하는데 필히 누가 등장해야 돼요?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실명을 거론했습니다. 후00 빌00이 아닙니다. 실명을 거론해서 이런 사람이 암 세포와 같이

독소, 독약 같은 존재로서 복음을 갉아먹는 짓을 하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 보기에는 이런 사람이 없었으면 참 교회가 얼마나 깨끗하냐!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지금 까지 강의 한 내용을 보면 그러면 안 되죠. 축복을 언급할 때는 반드시 뭐가 따라와야 됩니까? 저주가 따라와야 됩니다. 그러면 복음은 내가 원하는 것이 복음이 아니고 축복받을 자인지 저주 받을 자인지 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축복과 저주를 갈음하는 기준이 뭐냐에 대해서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고 이해하는가? 그게 본인의 저주와 축복을 결정하는 겁니다.

축복과 저주는 어차피 둘로 나누어져요. 무슨 기준으로 나눌 것이냐? 그러면 목사님, 그 기준은 뭡니까? 그것은 저한테 물어볼 것이 아니죠. 여기 후메내오와 빌레도에게 물어야 돼요. 왜? 이 사람들에게 내신 기준이 사도 바울이 보기에 저주받아 합당한 기준이 되겠죠. 그러면 18절에 보면 “진리에 관하여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 갔다”부활이 이미 지나 갔다는 겁니다. 이제부터 한번 생각 해 봅시다. 성경에 부활이 이미 지나 갔다는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후메내오는 디모데전서 1장에도 문제 있는 인간이라고 나왔고 빌레도는 처음 나오는데 그 부활이 이미 지나 갔다는 것을 디모데나 사도 바울의 개입이나 편지가 빠져 있는데 상태에서 인간들끼리 모였을 때 부활이 이미 지나 갔다는 것에 대해서 그게 아니라고 강력하게 그게 아니라고 나설 수 있는 권위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그것도 뭐 너의 좋은 하나의 의견일 수도 있고”이렇게 되겠죠.

보이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서 나타난 것은 사도죠. 사도가 디모데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럴 때 사도가 보내는 것은 이미 인간들은 뭘 해도 죄가 되니까 죄가 된다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축복과 저주의 기준을 결정짓죠.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부활은 이미 지나 갔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면 부활이 이미 지나 간 것을 믿으면 복 있는 사람이고 부활이 지나 간 것을 모르면 저주받을 사람이라고 그들이 주장하겠죠. 그렇잖아요.

그러면 후메내오가 빌레도가 그런 주장을 하는 이것이 “나는 주님 앞에 죄인이야!”라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하겠죠. 부활이 이미 지나 갔어! 나는 주님 앞에 당당해! 라고 주장할 때 본인이 옳다고 주장한 것을 이것은 내가 분명히 거짓말 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자가당착입니다. 서로 반대가 되는 이야기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에서 나올 수가 없어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내가 옳다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게 무슨 말이 됩니까?

내가 옳거든 그런데 거짓말로 알아라!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왜 하나? 이게 뭔데? 이거 물이야! 그러면 끝나는 것을 가지고 이것은 물이라고 내가 이야기한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거짓일수 있어!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왜 갔다가 붙입니까? 그럴 필요 없잖아요.

내가 물이라면 물이야! 이게 솔직한 생각이지. 내가 겸손 해 한다고 내가 옳을 수 있고 하는 그런 쓸데없는 소리 다 빼고 이게 뭔데? 그거 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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