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은사
고린도전서 13:1-3 사랑의 은사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아닌’ 항목을 사랑과 견주면서 나열합니다. 사랑이 빠져 버린 은사는 은사라고 말할 수 없다 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는 성도가 사모하거나 흠모할 대상이 아닙니다. 여기서 성도는 고유한 자립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사랑의 은사에 억매여 살아가야 될 운명자입니다. 사랑의 은사의 특징은 강렬하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죽음이 인간의 모든 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것처럼 사랑도 그러합니다. 구약 아가 8:6에 보면,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랑을 죽음에 비유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사랑은 결코 인간들이 사전에 애착을 갖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은사로서의 사랑은 곧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 더불어 이 세상에서 장렬하게 죽게 되는 그런 상황을 근거로 제시된 능력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죽이는데 선뜻 나설 위인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인간은 어떤 식으로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에게 특별한 구원상의 의미를 부가해주시는 겁니다. 즉 ‘그냥 죽는 개죽음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미리 예수님의 죽음 속에서 움직이는 자로서 성도를 규정하고 이끌게 되면, 더 이상 성도에게는 개인적 책임을 묻는 실패는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만약에 성도는 ‘사랑의 은사’를 자기가 단독적으로 살고자하는 일반 이방인들의 의식으로 움직인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닌’ 항목들에 애착을 갖게 될 것입니다. 즉 방언과 천사의 지식과 산을 옮길만한 믿음과 목숨까지 내어놓는 장렬한 순교자상을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보다 멋있는 죽음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인간의 입장에서 규정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삶조차도 사랑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라는 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 죽음 안에서 밖으로 다시는 나갈 수 없는 입장입니다. 사랑의 증거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