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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142강, 143강), 통치와 선지자 , 운명 160121강의미가

유튜브(142강, 143강), 통치와 선지자 , 운명 160121

이름 : 이근호(IP:117.55.161.65)

142강

143강

이미아(IP:122.♡.169.34)

16-01-23 23:56

142강-YouTube강의(통치와 선지자)160121-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142강, 제목은 ‘통치와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있는 이유는 기존의 있는 모든 국가의 대표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있습니다. 현재 이방 나라에 많은 국가가 있지만 왜 이런 국가가 하나님 앞에 어떤 태도와 평가를 받는지를 스스로 몰라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국가를 세웠으면 그게 정당한줄 아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국가는 기존의 모든 국가를 대표해서 하나님과 직접 만나는 그러한 위치에 있습니다. 국가가 뭐냐 하는 것은 우리가 국가 세웠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한테 가서 이스라엘 국가가 하나님 앞에 어떤 식으로 평가를 받았는가, 그걸 통해서 정답이 이스라엘 속에 있습니다.

그럼 이스라엘 국가는 변천 과정을 보면, 원래 다윗이 이스라엘 국가를 세웠고, 그 다음에 솔로몬 때에 왔고 그 다음에 국가가 둘로 쪼개집니다. 둘로 쪼개지는데 북쪽과 남쪽이 차이가 납니다. 북쪽은 뭐냐 하면 모세에 의해서, 모세 율법에 의해서 국가가 세워진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북쪽이고, 남쪽은 뭐냐 하면 모세 율법은 물론이고 그 후에 유다 자손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추가적인 약속이 거기다가 또 첨부가 됩니다.

첨부가 되면서 모세 율법에서 했던 내용이 성취를 보는 데는 다윗에게 주신 언약이 성취를 보면서 유다나라라는 것이 이 땅에 나타납니다. 그러면 다윗 언약이 주어진 것과 언약이 주어지지 않는 것에 차이점이 뭐냐, 그 차이점은 북쪽 이스라엘이 어떻게 국가를 운영했는가에서 알 수 있고 모세 율법에다가 추가적으로 다윗 언약이 주어졌을 때는 어떤 식의 국가가 되는 것은 남쪽 유다나라가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가 두 개의 차이점이 난다는 것이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냐, 아니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냐 라고 꼭 따질 때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모든 국가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의 국가인줄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스라엘을 통해서 북쪽과 남쪽이 구분됨으로 말미암아 그 구분된 성격이 오늘날 전 세계의 국가에 공히 적용이 다 되는 겁니다. 어떻게 적용되는가, 모든 국가 속에 있더라도 그 국가 속에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거기에 삽입돼있고 거기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요 형태가 바로 남쪽 유다나라가 미리 보여주는 셈이 됩니다.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면 북쪽나라나 남쪽나라나 인간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모두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가짜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가짜나라라는 것은 왕이 있고 왕의 통치를 받아서 거기에 인간들과 신이 접합할 수 있는 선지자를 만들었고. 이것은 북쪽도 마찬가지고 남쪽도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밑에 백성들이 있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다들 남쪽이나 북쪽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실패한다면 처음부터 북쪽, 남쪽을 구분할 의의가 없지 않느냐, 그런 의미가 없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남쪽나라에 다윗 언약이 있다고 했죠? 있으므로 말미암아 특이한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그건 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언약을 충실히 수행하셔서 마땅히 망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망하지 않는 나라가 유다나라가 보여주는 셈이 되겠습니다. 그럼 북쪽나라는? 북쪽나라는 그냥 자기들 행세한대로 망해버리는 나라가 북쪽나라입니다. 이름이 이스라엘이고 남쪽은 유다나라가 되는 겁니다.

북쪽나라는 다윗나라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우리에게는 모세율법이 있고 우리가 율법을 잘 지키면 우리를 지켜준다는 그게 모토가 된 나라가 북쪽나라이고. 남쪽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윗이라는 왕을 주어서 그 왕에 의해서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과 관계 맺는다는 그것을 보여주는 나라가 남쪽나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북쪽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율법이 있어서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는다는 나라가 북쪽나라이고 반면에 남쪽나라는 하나님께서 율법 준 것에 추가적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이라는 왕을 주셔서 왕을 통해서 율법이 완성되고 완성된 왕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나라가 남쪽나라 유다나라입니다.

그러면 유다나라 왕이 제대로 했는가?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면 다윗 언약을 준 의의가 없지 않느냐? 맞습니다. 유다나라가 다윗 언약을 지켜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다윗 언약이, 하나님께서 자생적으로 효과를 발휘해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가 주어지는 그런 구조가 유다나라입니다.

이거는 장차 이 모든 세상 나라에 다윗 언약의 자손,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그 나라가 일본이든, 필리핀이든, 어떤 나라가 되던 간에 그 속에 예수를 믿는 사람 같으면 예수님의 구원의 효과로 천국 백성이 된다는 그 원칙을 유다나라가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3장은 남쪽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북쪽나라 이야기입니다. 근데 북쪽나라 이야기인데, 여기 13장 1절에 보면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그러니까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이 말은 다윗 언약에 영향을 갖고 있는 선지자가 북쪽나라에 갔을 때 북쪽나라의 정신과 남쪽나라의 정신이 어떻게 차이 나고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충돌되는지를 열왕기상 13장은 보여주는 겁니다.

남쪽나라 선지자가 북쪽의 왕을 만납니다. 왕을 만나는데, 이 북쪽나라 여로보암 왕은 자기가 가짜인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인들 인정하겠습니까? 자기나라인데. 근데 남쪽나라 선지자가 대번 하는 말이 “여로보암 왕이여, 당신 수하에 있는 모든 선지자들은 대대로 전부다 결국은 가짜인 것을 들통내기 위해서 당신이 있는 벧엘에 세운 이 제단에서 요시야라는, 다윗 집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분향하는 산당제사장들을 제사할 것입니다. 거기서 통째로 불살라 죽일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을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왕이 없죠. 월급 받고 일하는 자기 부하, 선지자보고 욕하는 것은 곧 자기에게 욕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대번에 화가 나서 그 선지자보고 “이게 어디서 굴러온 사람이야?” 하고 잡았죠. 잡았는데, 손을 내밀었는데 손이 다시 원상복귀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왕이 다급해져 생각을 바꿔서 은혜입기를 간절히 기도해요.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사자, 선지자가 기도해서 다시 원상 복귀해줬습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이 선지자 이야기가 소문이 났습니다. 무서운 예언을 했다. 그렇게 하니까 북쪽에 있는 어떤 가짜 선지자인데, 벧엘에 있는 늙은 선지자가 이 소문을 듣고 내가 그 사람을 와서 만나야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만나서 자기가 가짜임을 유감없이 발휘하죠. 이렇게 이야기해요. “나도 선지자인데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계시를 받았느냐, 당신과 함께 물마시고 떡 먹고 당신을 대접하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근데 이미 남쪽에 있는 선지자가 이미 이런 가짜가 올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니가 그런 예언을 하고 후딱 다시 집으로 와야 한다. 만약에 북쪽에 가서 물을 마시고 떡을 얻어먹으면 안 된다.” 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했는데, 이 남쪽 선지자가 순진하게 나도 분명히 진짜 하나님의 계시 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인줄 오해를 해가지고 같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줄 알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제가 대접을 받을게요.” 해서 대접을 받았는데, 오다가 이 남쪽선지자가 죽어요. 사자에 물려 죽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그걸 발견해서 대접했던 늙은 선지자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소식을 전할 때 늙은 가짜선지자가 큰 회개를 하게 됩니다. 뭐냐, 나는 국가 속에 예속된 선지자인데, 저 남쪽선지자는 국가에 예속되지 않고 그야말로 직접 하나님과 통하는 진짜 선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남쪽선지자가 용감하게 그러한 유혹을 뿌리쳐야 되는데, 뿌리치지 않은 것은 문제입니다만, 이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직접 사자에게 물려 죽였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선지자의 죽음이야말로, 그 죽음, 하나님에 의한 죽음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약속이 어느 나라를 통해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가를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그 사실이 예수님만이 진짜 하나님과 통하는 유일한 메시아라는 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참된 성도는 세상의 권력에 쫄거나 굴복하지 말고, 세상 어떤 혈연관계에 쫄지 말고 직접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십자가 죽음이 나의 죽음인 것을, 그걸 믿을 때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 선지자 노릇을 당당히 하고 있는 참된 선지자입니다.

이미아(IP:122.♡.169.34)

16-01-24 00:03

143강-YouTube강의(운명)160121-이 근호 목사

제 143강, 제목은 ‘운명’입니다. 보통 운명이라 하는 것은 신이 정했다. 이렇게 이야기하죠. 이거는 모든 종교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럼 신이 정했으면 어떻게 하는가, 거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난감해해요. 신이, 하나님이 정한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했는지..뭐 누가 알겠어요? 아는 사람 아무도 없죠.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내 운명을 정해놓았을 때, 하나님의 보따리에 뭐가 들어있는지를 우리가 모른다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이 운명을 정했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지 맘대로, 지 멋대로, 그냥 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놓고 신의 운명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제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을, 뜻을 아는 사람이 맞나? 하는 겁니다.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특히 성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운명을 창세전부터 이미 정해놓았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정해놓은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 정해진 것이 그 사람의 실생활 속에서 어떤 식으로 표출되고 표현되는 것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알려주십니다.

그 한 가지 예가 창세기 27장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의 운명을 언급을 하면서 먼저 알아야 될 것은 운명이 다 같은 운명이 아니고 두 패로 나누어지는 운명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인구가 60억이 된다면 그 60억 개의 운명이 아니고 두 개의 운명으로 패가 갈립니다. 한쪽은 저주받아야 될 운명이고 한쪽은 복 받아야 될 운명입니다.

그냥 저주받는 운명이 아니고 저주받아야 될 운명이고, 복 받는 운명이 아니고 복 받아야 될 운명입니다. 그러면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구든지 “나는 저주받을 편에 서지 않고 복 받을 편에 서고 싶어요.” 할 것입니다. 괜한 욕심들이 발동들을 하죠. 그런데 복과 저주를 우리 쪽에서 선택을 한다면 이거는 운명이라는 말이, 이거는 쓸데없는 말이 되고 맙니다.

어떤 정도냐 하면 “니가 복 받고자 노력해도 허허! 너는 저주받아야 돼!” 이게 바로 운명이 운명답게 되는 것이고. “나는 나쁜 짓해서 저주받을 거야.” 해도 “아니야. 너는 복 받아야 해!” 라고 해야 운명이 운명다운 겁니다.

아버지 이삭이 야곱과 에서, 두 아들에게 하나의 이벤트를 벌리죠.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가져오는 선착순입니다. 먼저 가져온 아들에게 내가 축복을 하고, 그것도 독점적으로 다 먹습니다. 몽땅 다 가게 만드는 그런 이벤트를 벌렸습니다. 원래 그 이벤트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된 거죠. 나누어주지를 않습니다. 복을 반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다 가져가는 거예요.

그렇게 했을 때에 두 아들은 이것을 알아요. 이게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단순히 요 시합이 시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게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우리 운명이 이 시합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뉘앙스를 들어보면 이거는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큰 아들 되는 에서에게 모든 복을 밀어주는, 출제문제가 이쪽에 유리하도록, 백퍼센트 큰 아들 쪽으로 가도록 그러한 문제를 준 거죠.

그러니까 큰 아들은 이거는 시험이 형식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나의 모든 복은 니가 가져야 돼.’ 이미 확정된 그것을 그냥 형식으로 별미 갖다 바치라고 하는 것으로, 다 이미 일이 결정된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한 겁니다. 이런 운명이 자기가 바뀌리라고 그렇게 생각을 안 했죠.

누가 무리수를 두느냐 하면 동생이, 이미 아버지의 마음은 형에게 가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동생이 무리수를 둡니다. 이 축복을 자기가 가로채겠다는 희한한 발상을 합니다. 이미 조건은 별미를 갖다 바쳐라. 근데 이 별미 갖다 바친다고 복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버지의 마음은 굳어졌어요. 형한테. 그래서 아버지는 별미를 주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니가 형 맞나? 아니면 동생이냐? 그걸 확인해서 복을 거기다 쏟아 부으려고 한 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지금 눈이 어두워서 목소리만 듣고, 청각으로만 그걸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동생 야곱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눈이 어두운 그 약점을 이용해서 형처럼 꾸며야 되죠. 운명 자체를 가로채는 겁니다. 운명을 가로챈다는 말이 참 이상한 말이죠. 이미 결정 난 것을 어떻게 그걸 가로챌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여기서 바로 세상 종교가 말하는 운명론과 하나님이 말하는 예정과 여기서 차이가 나는 겁니다.

어떻게 차이가 나느냐, 인간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신이 이미 정해주기를 인간들은 이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 기대자체가 사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마귀 적입니다. 왜 마귀 적이냐, 무조건 나한테 좋은 패가 와야 되고 무조건 내가 잘돼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그러한 운명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정론이라 할 때, 대부분의 예정론이 다 엉터리고 잘못된 이유고, 그 예정론하면서 “나는 반드시 구원되기로 예정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예정론을 언급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거는 하나님의 예정론하고, 복음적인 예정론 하고는 전혀 맞지를 않고 상관없는 예정론입니다.

진짜 야곱의 구원받는 운명은 자기 속에 있는 그 더러운 욕망이 그대로 노출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정해진 운명은 우리의 죄를 끄집어내는 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는 겁니다.

십자가가 뭐냐, 성도의 팔자와 운명이 거기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 안에 우리는 뭐냐, 죄인의 모습으로 거기에 가담되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나는 마땅히 구원되어야 하고, 나는 마땅히 잘난 사람이고, 나는 마땅히 의인이고, 나는 마땅히 남보다 착해서 하나님께서 천국 보낼 것이라는 그것을 죄라고 여기면 되는데, 누구나 그런 게 있어요.

있는 걸 인정하면, 이게 바로 지옥 갈 죄라고 인정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고 그 위에다가 십자가 플러스 나를 매치하게 되면(십자가+나) 구원받는다는 이런 자기의 에서 같은 종교적인 속성으로 구원을 언급하니까 이게 바로 지옥 갈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교회가면서도 지옥가고, 복음이야기하면서 지옥가고, 십자가 이야기하면서 지옥 가는 이유가 그 전제부터가 야곱적인 전제가 아니고 에서적인 전제, ‘신은 나를 사랑할거야.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런 전제가 자기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다.” 분명히 예수님보고 이야기를 했건만, 나보고 이야기한 것으로 처음부터 성경 볼 때 그런 식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성경을 봅니다. 그러니 내가 터 잡은 운명에다가 주께서 숟가락 하나만 얹어서 구원만 하게 되면 그 운명은 천국 가는 운명이라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는데, 그거는 인간의 타고난 종교성이고 마귀가 심어준 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정, 운명을 이야기하면서 왜 에서를 야곱 앞에 깔아놓을까요? 바로 현재 우리 마음속에 에서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연결 짓고 하나님과 접촉하려는 그러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을 배치해놓은 것입니다. 더구나 축복을 준다는 그 이삭이 전적으로 야곱편이 아니고, 야곱은 아예 축복 꿈도 못 꿔요.

전부다 큰 아들에게 밀어줬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익히 안다면, 하나님의 진짜 예정은 우리로 하여금 전적으로 우리를 죄인 만들고 너 같은 인간은 천국을 엄두도 못 내고 지옥가야 마땅하다는 그 사실을 우리 속에 집어넣음으로 말미암아 그 사실을 영원히 유지하는 그것이 생명의 핵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죄인인 것이 밝혀지기 때문에. 우리 안에 십자가 안에서 죄인인 것을 영원히 유지하는 한 우리는 영생 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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