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요한계시록:생명의 신호 제1강 [연대기속의 주체]
2016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요한계시록:생명의 신호 제1강 [연대기속의 주체]
이름 : 한윤범(IP:221.147.126.24)
2016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요한계시록:생명의 신호 제1강 [연대기속의 주체]
(강의:이근호 목사)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희들을 잊지 않고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말씀 안에 모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우리 속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성령께서 재촉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해야 될 게 요한계시록인데 요한계시록에서 이걸 잊어주세요. 성경에는 나와 있는데 우리 삶에는 요한계시록이 없는 삶을 삽니다. 요한계시록 의식해서 살다가는 빌어먹기 십상이거든요. 요한계시록뿐만 아니고 성경을 생각하다가는 세상 못 삽니다. 우리는 본성이 나를 내가 살리는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한가할 때만 보는 책, 하지만 바쁠 때는 제일 순위로 멀리하는 책이 성경이 되는 거예요. 성경 중에도 특히 요한계시록은 근처에도 가기 싫어합니다. 봐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게 오해에요. 요한계시록은 봐도 모르고 딴 것은 안 것 같고, 사실은 그것이 잘못인데. 다른 것도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인데 안다고 우기고 싶어 해요. 마태복음 같은 것.
그 이유가 요한계시록은 환상입니다. 역사 속에 살다보니까 환상은 잊어집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디 있느냐 하면, 역사와 환상이 만나는 그 지점, 이걸 집합에서 교집합(intersect)이라 했어요. 합치면 합집합(union)이 되는데 교차되는 지점에 요한계시록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느냐 하면, 원래 환상의 뜻은 ‘없다’에요. 없는 거예요. 우리가 아는 전체에 환상은 없는 겁니다. 환상은 그냥 꿈속에서나 재주 없이 잠시 나왔다가 눈 뜨면 다시 깔끔하게 현실로 돌아가요. 환상을 벗 삼아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전부입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의 체가 다듬어지고 주체가 나오는 겁니다.
역사는 연대기로 돼있어요. 연대는 순서대로 되는 거예요. 사당-방배-서초-교대(3호선 환승)-강남-역삼-선릉(분당선 환승)-삼성(무역센터)-종합운동장-신천-잠실, 제가 늘 가는 코스에요. 이렇게 순서대로 가는 게 연대기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이 연대기 속에 살았고 연대기 속에서 자기 자아, 주체가 뭔지 규정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 세상의 연대기가 대충 어떤 게 있는지 소개해드리면, 소개 끝나고 난 뒤에 그게 전부라는 느낌이 올 거예요. 여러분이 교양으로 생각하고 들어보세요.
B.C.3300 이집트문명, 2500 인더스문명, 1750 함무라비 법전, 1200 페니키아에서 알파벳발명, 1100 중국의 주나라, 776 최초의 올림픽, 492 페르시아 전쟁, 431 펠로폰네소스 전쟁(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이겨놓고 자기들끼리 주도권 싸움한 것), 334 알렉산더가 터키 지방, 동쪽 오리엔트를 완전히 정복했지요. 221 진시황제 진나라, 218 제2차 포에니 전쟁, 146 로마제국, 27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황제가 돼요. 4 예수님 탄생.
A.D.105 채륜이 종이 발명, 306년 콘스탄티누스가 황제에 즉위, 375 게르만 민족 침범, 392 테오도시우스 기독교를 국교로 정해버려요. 475 서로마 제국 멸망, 486 프랑크 왕국 성립, 500 힌두교 창시, 610 마호멧 이슬람 창시, 690 일본에서 천황제 실시, 870 메르센 조약에 의해서 프랑스, 독일, 이태리의 근본 뿌리 시작, 1000 송나라에서 화약과 나침반을 발명, 1077 카노사의 굴욕(앙리4세와 그레고리우스7세가 붙어서 앙리4세가 눈밭에 꿇어앉은 굴욕을 당합니다. 나중에 복수합니다), 1096 십자군 운동 시작, 1206 몽골의 테무친이 칭기즈 칸이 됨, 1274 원나라 건국, 1299 오스만 제국 건국,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발간, 1309 아비뇽 유수, 1337 백년 전쟁 발발, 1347 전 유럽에 페스트(흑사병) 퍼짐, 1368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1381 영국에서 와트 타일러 난이 일어나서 영국의 시민운동이 커집니다. 1429 백년전쟁 중에 잔 다르크, 계시 받은 소녀가 영국군을 격파, 1450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발명.
이때부터 점점 역사가, 국가가 아니고 주체가 강렬해지기 시작하지요. 1453 동로마 제국 멸망, 1455 장미전쟁(영국에서 랭커스터 가문(붉은 장미)과 요크 가문(하얀 장미)의 왕위쟁탈전), 1492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1392 태조 이성계가 조선건립, 1592 임진왜란 일어남), 1517 루터의 종교개혁, 1519 마젤란의 세계 일주, 1533 잉카제국 멸망, 1536 칼뱅이 종교개혁, 1543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 주장, 1555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회의에서 영주에 따라 종교 결정, 1588 영국이 무적함대 스페인 격파, 1618 30년 전쟁(루터만 개혁주의로 인정하고 칼뱅은 인정하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일어난 전쟁), 1632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지동설 주장, 1643 절대군주 루이 14세 등장.
1665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 제가 보기에는 연대기에서 이게 제일 중요해요.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현실은 시간과 공간으로 이미 정해지고 거기서 법칙만 끄집어내게 되면 이제는 종교가 아니고 과학이 진리의 자리를 넘어서는 결정적 시기에요. 모든 진리는 과학으로 점검되고 확장되는 거예요. 과학적으로 돈이 나오지 않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으면 그것은 개소리입니다. 그건 환상이에요. 지금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1688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납니다. 기술자, 금융인들이 권력으로 지배했던 것을 뒤엎는 거예요. 거기서 시민계급이 등장합니다. 이게 오늘날 2016년 우리의 자화상이에요. 제가 말한 인간의 주체란 역사에서 조립한 겁니다. 누가 이야기한 게 아니에요. 흘러들어오면서 굳어진 거예요. 과학적으로 무장된 나는 하나의 시민으로써 내 위에 내가 없고 내 밑에 내가 없는 민주주의 사회가 있는 거예요. 이게 진리라고 본 거예요.
1769 드디어 과학이 발달하면서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지요. 1775 주체가 되니까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합니다. 1789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고, 1804 왕 족보가 아닌 힘을 가진 군인이 황제에 등극, 나폴레옹 1세입니다. 1840 어리숙한 동양을 영국이 차를 사는데 은이 모자라니까 아편을 팔아서 충당, 아편전쟁. 광동성에서 중국이 상선에 참패. 거기서 텐진조약이 나옵니다.
1857 인도에서 세포이 항쟁이 일어남, 1911 중국에서 신해혁명, 여진족이었던 중국을 민생, 민권, 민족주의에 입각해서 쑨원이란 사람이 혁명을 일으킴. 드디어 중국이 근대국가로 넘어옵니다. 1914 세르비아의 청년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를 살해함으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독일, 이태리, 오스트리아와 한 패로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 4년 동안 전쟁. 1929 세계대전 후 막대하게 생산된 상품이 소비할 데 없어서 미국에서 경제공황이 일어납니다. 이 와중에 한 몫을 잡은 사람이 십일조 해서 부자 됐다는 록펠러입니다. 경제사범입니다.
1939 전쟁배상금 때문에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 1945 다 아시죠. 전쟁 종결, 1949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957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 1964 베트남 전쟁, 1968 프라하의 봄이라 해서 소련의 탱크에 묵사발 당함, 1969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 1977 LA 캐피탈센터에서 그룹 이글스가 <호텔 캘리포니아>를 라이브공연한 때에요. 1980 존 레논이 마크 채프먼에 살해당합니다. 1989 천안문 사태, 독일 통일, 1991 소련 해체.
1800년대가 통째로 빠졌는데, 1859 다윈이 <종의 기원> 발표, 1861 미국 남북전쟁, 1866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 1868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국가로 넘어가면서 덕분에 한국도 근대국가체제로 됩니다(친일파??). 1869 이집트에 수에즈 운하가 영국의 자본으로 개통, 1879 에디슨 전구 발명, 1896 쿠베르탱에 의해 제1회 근대 올림픽 개최, 1898 퀴리 부부가 라듐을 발견.
라듐을 발견한다는 것은 보이는 세계만 과학이 정복한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접수하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점점 더 과학시대에요. 제가 하는 이야기가 헛소리하는 게 아니고 지금 이 시대에는 요한계시록은 없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천국은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있어도 시답지 않게 여겨요. 우리 주체가 과학적 주체인데 무슨 천국이 있어요. 요한계시록이 옛날 전설 아니에요? 잠도 오는데 요한계시록 왜 하는지 모르겠어. 이미 우리는 진리를 아는데. 양자물리학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손을 댔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서 천지창조는 수학적 공식으로 이미 해명이 돼있어요. 힉스 장에서 무에서 균형 상태가 깨지면서 새로운 것이 일어나면 거기서 중력이 생기고 중력이 모아지면 질량이 되고 그게 오늘날 우리가 되는 거예요.
어디까지 했더라? 1991 걸프 전쟁, 1997 홍콩을 반환하고, 1998년은 한국에선 잊을 수 없어요. 아이엠에프 사태가 벌어집니다. 2008년 10월 2일 아침 6시에 최진실이 자살합니다. 과학인데 자기가 주체인데 내가 죽을 권리를 내가 왜 행사 못해. 과학적으로 따지면 죽으면 흙이 되는데 원자로 와서 원자로 돌아가는데 누가 이걸 탓해요. 오늘도 대기 순번표 뽑고 어지간하면 자살하려고 준비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최고의 인기를 얻고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도대체 누가 누굴 죽인 거예요? 내가 나를 죽인 거예요. 그러면 최진실이 둘이 되는 거예요. 죽임을 당한 최진실과 죽이는 최진실. 죽이는 최진실은 누가 만들었고, 죽임을 당한 최진실은 누가 만들었어요? 꼭 로마서 7장 같아. 내 안에 또 내가 있어. 가시나무 새인가? 그건 내 안에 내가 너무 많고.
종교? 기독교? 불교? 1665년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합법적인 행정국가가 되면서 종교는 자본주의에 편입되지요. 종교는 자본주의에 편입되면 교회나 절이나 그 밑바닥이 뭐냐? 자본시장 없으면 유지가 안 돼요. 돈이 없으면 교회도 안 되고 성당도 절도 안 된다니까요. 교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돈이 되는 소리를 해라. 자식한테 교육할 때 돈이 되는 짓을 해라. 게임을 하더라도 게임박사가 되든지. 우리의 교육은 이미 하나로 간편하게 축소돼있어요. 돈 되는 짓을 해라. 내가 물려받은 주체는 돈 되는 주체였고, 내가 물려줄 주체도 돈 되는 주체고, 내가 아는 연대기 속에서 돈 없이는 못 살겠더라. 뭐 할 일 많다, 나중에 간다고 전해라라든지 전부 돈과 연관 돼있어요. 재촉하지 마라. 알아서 갈게~
돈은 기술이고 기술은 과학적 토대 위에서 나와요. 이 삼종 세트가 오늘날 진리고 그 진리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우리의 자아주체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왜 필요하지요? 그래서 이번 시간에 일단 결론을 내립시다. 환상의 세계, 천국은 없다. 그걸 교재에 써놨어요. 길게 써서 찾지도 못하겠다. 3페이지 제일 위에. 없는 장소. 천국은 없는 곳이에요. 아니 있어도 내가 인정 안 하면 없는 곳이에요. 없는 곳은 묘사가 안 됩니다. 없는 곳은 언어가 일대일 대응이 안 되니까 지시나 대응할 수 없어요.
문제는 간단히 끝났어요. 요한계시록 결론이 뭡니까? 없는 동네다. 요한계시록은 이 지구상에 없다. 왜 없는가? 3페이지 밑에 2번 보세요. 혈연관계. 내 새끼, 내 집안, 이게 너무 강렬하게 결속돼있기에 내 새끼를 키우는데 필요치 않은 것은 있으나마나 없는 겁니다. 내 몸 하나 잘 먹고 배부르고 혈연관계를 위하여 투자하는 것을 믿음, 소망,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저 내 자식, 내 새끼 좋아하는 것을 사랑이라 하지 남 자식 사랑하는 것을 사랑이라 않습니다. 이웃도 나와 자존심과 관련될 경우에만 이웃이지 날 공격하는 자를 내 이웃이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이방인과 다를 바가 뭐 있느냐고 이야기해요. 그럼 우리는 어쩌라고?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요? 사랑하면 애초부터 원수가 안 되는데. 적대적인 관계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또 다시 느낍니다. 주님의 세계는 현실성이 떨어졌구나. 현실에서는 없는 세계구나. 주님의 세계, 천국,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 그 모든 것이 마치 없는 것처럼 살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우리 몸 자체가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연대기 속에서 형성된 주체 덩어리에서 헤엄치는 하나의 주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연대기를 나열하는 것은 조상이 살았던 모습이나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이나 한 치도 역사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왜냐? 우리 엄마가 역사기 때문에 우리 아빠가 연대기기 때문에 연대기에 파생된 퍼져버린 그 중에 하나가 주체로 얽혀져있기 때문에 주체 밖으로 벗어난다는 것은 자기 주체를 포기하거나 부정하는 그런 모순된 이야기에요. 이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에요.
없습니다. 없는데 요한계시록은 역사가 전부에요. 역사 속에 끼어드는 게 있어요. 환상이 끼어듭니다. 애써 무시하지요. 애써 배척합니다. 열심히 배척하는데 여기에 겹쳐지는 환상이 와서 가버리면 되는데 여기서 흔적을 남겨요. 제일 중요한 게 시작됩니다. 십자가 사건을 유발하면서 떠나버립니다. 뭐지? 물 위를 걸으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분이.
유대인한테는 새로 도래하는 진짜 기다리던 메시아 나라라고 했는데 막상 죽고 끝났어요. 몇몇 사람, 오백 명이 만났다는 소문이 있어요. 풍문으로 들은 거예요. 내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없는 거예요. 뭐지? 새 종교인가, 새로운 교주가 등장했는가? 가버렸습니다. 가고 나니까 역시 환상이 뜯겨져 나가고 역사만 남아요. 자, 앞으로 진격, 진격. 그래서 환상이 와서 십자가 사건 남겨도 역시 없다. 요한계시록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십자가 사건 터져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지금까지 연대기에서 빠트린 역사가 있어요. 이스라엘 역사가 여기에 포함돼있어요. 제가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뭘 만들어왔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역사가 전부입니다. 우리는 역사가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역사 외에는 생각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미지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고 과거는 지나갔고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중요하고. 그것뿐이에요. 골치 아프게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1988년 이문세 제3집에 <광화문연가>라는 노래가 나왔거든요. 가수가 광화문연가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문세 팬클럽은 좋아해요. 그걸 기억한다고요. 왜? 나와 긴밀하게 가까워지거든요. 연대기라는 것은 저 멀리 도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연대기는 역시 내가 포근히 여전히 기억 속에 남고 있는 겁니다. 주체 뜯어보면 기억이 전부에요. 기억 덩어리가 주체입니다. 층층이 겹겹이 과거에 체험된 것이 현재의 자아에 의해서 편집된 채 일방적으로 그것이 자기의 역사로 날마다 구성되는 겁니다. 과거 아는 것을 기억이라 하면 안 돼요. 과거 중에서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을 뽑아서 자기 마음대로 날조하고 조작하고 과장하고 확대하고. 간증집회지요. 내가 여기 존재할 이유가 있음을 남한테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꾸미는 거예요. 날마다 자기가 소설가에요.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역사를 지금 연대기에서 뺐습니다. 교대역에서 3호선으로 빠지는 것을 3호선까지 가지 않았어요. 그냥 교대역에서 강남으로 바로 갔습니다. 그게 선릉에서 분당선으로 빠지지 않고 바로 삼성역으로 간 게 문제에요. 이스라엘 역사가 역사의 핵으로 등장한다고 우기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민족이 있었으니 그 민족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언약적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 쪽에서 제시한 것이라서 절대로 하나님 약속은 중간에 취소시키지 않고 반드시 이뤄진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이스라엘 역사가 문제의 진원지가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역사 속에 포함돼있으면 기존의 역사는 짐승의 역사가 되고 이스라엘 역사 속에 살아있는 메시아는 환상+역사까지 포함한 합집합이죠. 모든 것을 포함해서 창조하신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 것을 이야기해봅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주체가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역사에 의하면 환상까지 포함해서 이게 현실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 주체는 역사의 생산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극단적인 환상적인 이스라엘 역사를 배척하게 됩니다. 교회 나가는 건 좋은데 성경은 보지 마. 이런 식이죠. 왜? 성경 자체가 언약의 책이니까, 하나님의 약속이니까. 이렇게 시작한 하나님이 이렇게 끝낸다는 거예요. 이걸 일본말로 ‘시마이’라고 해요. 요한계시록은 시마이하는 책이에요.
문제는 끝내면 역사 속에서 주체라는 우리는 기분 굉장히 나빠요. 우리는 땅굴 파느냐? 노아의 방주를 40만 불 돈 주고 빌려서 거기서 삼년 간 버틸 수 있는 생수와 기관총까지 준비하고 비상식량, 건빵, 라면, 요새 유행하는 진짬뽕, 그런 것을 잔뜩 구비해서 우리끼리 살겠다고(혈연관계거든요) 지금도 노아 방주에 신청하는 사람 많습니다. 화성으로 도망가고 달로 도망가고. 캐나다의 어떤 사람은 아예 냉동 해달라는 거예요. <토탈리콜>인가요? I will be back. 그것도 저것도 안 되는 사람은 팔을 기계로 바꾸고, 눈도 심장도 기계로 바꾸고. 휴머노이드인지 두뇌만 인간이지 나머진 다 기계로 바꿨어요. 반 기계, 반 인간. 그걸 해야 의사들이 돈이 된다니까. 다 바꾸고 고쳐.
왜 그럽니까? 역사의 주체는 양보할 수 없는데 과학이 발달하면 언젠가 내 두뇌마저 아이큐 150 인간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꿈이 역사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자본을 돈 벌이 되는 것이 계속 가다 보면 역사는 진화되고 또 진화되고 발전하고, 발전하고. 거기에 함께 뛰어들지 아니하면 취직도 못 하고. 혈연관계, 내 새끼, 내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거기에 기술로 뛰어들어야 되고. 그게 전부지 뭐 있습니까.
그런데 유대인이 말하는 메시아는 백날 가봐야 역사 안에 갇혀있고 너희는 환상을 모르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왜 태어난 지도 모르고 그냥 옆 사람과 경쟁하기 바쁘고. 지하철 2호선 굉장히 복잡해요. 특히 사당, 신도림역. 신도림역 내리면 끔찍해요. 개미들도 아니고. 거긴 정말 힘듭니다. 전부 역사와 연대기가 만든 주체를 욕심내지 않고 소박한 연대기, 나를 위한 연대기 그것 하나 꾸미는 데도 그렇게 힘드네요.
주체가 살아있고 역사 속에 자기 연대기 만드는 게 힘드니까 빈자리를 교회에서 종교생활로 “하나님이여, 이런 주체가 힘드니까 내 소망을 이뤄주옵소서.” 그러면 그 종교란 바닥에는 자본주의 원리가 그대로 작용되잖아요. 주님의 환상과 다른 관계되는 거예요. 접촉점에 들어가야 환상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 들어가면 요한계시록이 이야기하는 새 하늘, 새 땅,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물으면, 못 들어가요. 십자가 들어가도 못 들어가요.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시마이한 거예요. 이미 판 끝났어요. 게임 판, 카지노 판 끝났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안목은, 그것은 미래에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현재가 반복해서 작용하는 바로 현재적 일이라는 겁니다. 괜히 어렵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걸 위해서 쉬운 예를 준비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뭐냐 하면, 전기밥솥이에요. 아침 6시에 밥이 되는 그 기계를 전날 밤 11시에 조작해놓습니다. 그러면 밥 짓는 것은 이미 11시에 작동이 돼요. 그럼 아침 6시까지 뭘 하느냐? 이게 지연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에 성도는 뭐냐? 성도=IS여성대원. 왜? 온 몸에 시한폭탄 갖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다. 그리고 터지는 것은 좀 기다려봐. 이미 구원된 사람이 회고하듯이 회상하듯이 요한계시록을 보는 거예요. 그 안목이 예수 그리스도의 안목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요한계시록을 그렇게 보는 겁니다.
앞으로 될 일이라는 것은 연대기, 역사 속의 주체가 말하는 미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손때라. 내가 그렇게 해주겠다는 거예요. 손때 내가 이미 백미 예약을 했어. 아침 되면 하얀 쌀밥이 돼있어요. 이미 주님이 눌러놓은 것은 우리가 취소할 수 없어요. 회고록 알지요. [대통령의 시간] 이명박이 지었잖아요. 회고록이에요.
대통령이 떠나도 회고록 남아있듯이 우리가 뭘 거쳐 왔지, 어떤 걸 경과했지, 어떻게 해서 구원됐지, 라는 관점을 내가 행한 것으로 연대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갖고 있는 고유의 연대기를 우리가 내 연대기처럼 거기서 보는 겁니다. 아, 이런 절차를 겪어서 우리가 이렇게 예수 안에서 천국을 맛보고 있다는 것을 회고하면서 보는 게 요한계시록입니다. 666 맞고, 베리칩 이런 것 아무 소용없어요. 베리칩 맞아서 구원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늘날 역사 속에 환상을 집어넣는데 사건을 어떻게 집어넣는가? 이 하얀 게 전체에요. 이 동그라미처럼 환상이 있거든요. 이 목을 치면 환상이 전체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전체 안으로 들어와 버려요. 우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 뜻이겠지요. 남자 하나 앉아있네요. 전체 속에 부분이 들어오게 되면 이 부분은 전체가 장악될 수 없는 전체가 아무리 자기 속에 예속하라고 잡아당겨도 절대로 끌려들어가지 않는 흔적에 속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역사 안에 포함돼있어요.
놀라운 사실은 이 사실이 이미 구약의 언약이 주어지는 현장에서 되풀이 되었다는 겁니다. 천상회의를 보았던 예레미야나 미가야에 대해서 기존의 거짓 선지자들은 도저히 이해 못하고 있습니다. 너, 우리 같은 이스라엘이냐, 아니냐? 할 때 선지자는 말하기를 너와 같은 이스라엘로 보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속에 있는 주님의 신이 작용해서 같이 있어도 달리 있는 것이다. 면적을 보면 일부를 차지하지만 사실 가까이 옆에서 보면 붕 떠있어요. 멀리서는 함께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가면 이쪽은 하늘에 속하고 이쪽은 땅에 속하고 이게 붕 떠있는 거예요. 한쪽은 연대기 속에 있고.
특히 이스라엘은 연대기에 굉장히 민감하죠. 왜? 성경해석이 누적돼야 되니까. 조상들의 성경해석을 후대에 그대로 가져와서 그 시대에 맞춰서 해석합니다. 성경해석 자체가 연대기적이에요. 오늘날도 연대기적 해석을 개혁주의 전통 해석이라 합니다. 루터가 어떠니. 칼뱅은 뭘 했으며, 바빙크가 어떻고, 밴틸이 어떻고, 총신 나온 사람은 다 알아요. 장신 나온 사람은 칼 바르트가 어떻고, 폴 틸리히가 어떻고, 한신 넘어가면 불트만이 어떻고 몰트만이 어떻고. 그런 해석, 연대기적 신학이 앞으로 점점 발달한다는 그게 개혁주의 이론입니다. 진리는 없어요. 가봐야 안다는 거예요.
요한계시록은 바로 환상이 역사 속에 겹치면서 역사 연대기 속의 주체자들은 아무리 해도 요한계시록이 해석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칼뱅도 포기했어요. 난 요한계시록 해석 못한다. 그런데 용감한 사람들이 있어요. 이만희라고. 신천지. 요한계시록을 연대기로 막 풀어. 걸프전이 어떻고, 또 세대주의자들. 마곡이 어디까지 있으면 마지막에는 유엔이, 유로화가 되게 되면 이러니저러니. 그게 악마의 뜻이 되고. 그럼 어쩌란 말인가? 잘 대비해야 된다는 거예요. 잘 대비해서 망한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1,2,3}, {3,4,5} 두 집합을 합치면 {3}이라는 교집합이 등장하죠. 이 충돌되는 지점이 희극이 아니고 비극이라는 거예요. 어떤 사건? 죽음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단 결론 내리면,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든 걸 통합했다. 십자가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그분이 주님인데 주님을 위하여 처음부터 세상은 창조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네가 현실을 알아, 네 자신을 알아?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주체는 뭐냐? 주체는 단 한 분이에요. 예수님만 주체고 다른 사람은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주체가 아니면 왔다가 사라지는 상징물이지, 뭐.
쉽게 말해서 인간은 없습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와 연루해서 이야기하면 죄인만 있어요.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 후손이 어떻게 됩니까? 죽었더라, 죽었더라고 돼있지요. 우리가 다 죽기 때문에 죽어서 어디 가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죽는 게 정상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에녹 같아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 배척해버려요. 미쳤나. 어딜 살았어. 다수가 진리인데 남들 죽으면 같이 죽어야지 너는 왜 사는데? 그러니까 에녹은 억울한 거예요. 괜히 하나님이 살려줘서. 마치 자기가 비정상적인 존재인 것처럼 억울하게 된 겁니다. 그 억울함이 순교를 낳는 거예요. 본인들이 비정상적인 걸 모르고.
요한계시록은 비정상으로 여겼던 사도 요한이 비정상적인 내용을 펼쳐놓은 거예요.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다면 사도 요한처럼 아프든지 안 그러면 미치든지, 망하든지. 혹시 망하고 싶거든 요한계시록에 관심 두세요. 돈도 안 되고 승진과 아무 관계없고, 면접 치를 때 요한계시록 아느냐고 안 묻거든요. 자본주의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진리가 되는 사회에서 요한계시록은 아무짝도 소용없고 차라리 없는 세계라는 것이 주체의 마음을 편하게 해요.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주님이 들이닥치면 내가 편하고 싶어도 주님이 편하지 않게 합니다. 열두 제자가 편하게 살다가 주님 만나고 고생길 들어선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 길이란 본인이 자진해서 손들고 나설 입장이 못 됩니다. 그저 주께서 왕림하시면 우리는 주님이 활동하시는 활동의 장으로 내놔야 돼요. 그걸 사람 일이라 하지 않고 사도행전에서 주체가 없다고 해서 ‘증인’이라고 합니다. 증인은 반드시 앞에 누구누구의 증인. 어떻게 가능하다? 성령이 임해야 증인됩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나의 증인돼요. 나는 믿음 좋다, 나는 선교했다, 나는 헌금했다, 나의 증인돼요. 나는 어느 신학교 나왔고.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했고, 내 기도 덕분에 많은 사람이 병도 낫고, 전부 나의 증인됩니다. 이건 주체가 이미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 증인이란 보이지 않는 환상에 매여 있으면서 역사 속에서 살아야 될 팔자.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내용입니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데려가지는 않겠다. 너희는 이제 죽었어. 나처럼 고생해봐라. 너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지만 붕 떴지만 붕 뜬 채로 내가 올 때까지 내가 부를 때까지 너는 이 땅에서 고생해라. 그 사도 요한이 마지막에 밧모 섬에서 본 게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10분 쉬고 계속하겠습니다.
첨부파일 : 2016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1강.hwp (57.5K), Down: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