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140강, 141강), 희생 , 영적 전쟁 160107강의레위기

유튜브(140강, 141강), 희생 , 영적 전쟁 160107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140강

141강

이미아(IP:122.♡.169.34)

16-01-10 00:29

140강-YouTube강의(희생)160107-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 140강, 제목은 ‘희생’입니다. 성경에서 희생이란 그냥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고 레위기에 보면 제사가 희생에 근거해서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어요. 희생은 어디까지 가야 되는가, 죽음까지 가야 희생이 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상식적으로 접근하기 마련입니다. 죽음을 통해서 희생이 완성된다. 그런데 성경은 거기서 멈추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하면 그 희생하고 난 뒤에 주어지는 결과에 대해서 처음부터 희생을 기대한 사람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돼야 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보통 가족끼리, 형제가 있는데 집안이 가난하다. 근데 맏이는 딸이고 둘째는 아들이고, 그럴 때 맏이 된 그 누나가 자기 남동생이 대학 갈 수 있는 실력인데 형편이 안 되니까 남동생을 대학보내기 위해서, 공납금 대기 위해서, 자기는 일찍 고등학교 나와서 중소기업에 경리로 취직해 돈 벌어서 그 번 돈으로 동생들 다 대학 보내고 취직시키고 결혼까지 다 시킬 때, 보통 그것을 가지고 희생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런 희생과는 다른 희생을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누나가 동생을 위해서 희생할 때, 누나가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고 노리는 것이 있고 달성해야 될 목표가 있어요. 내 하나 희생하게 되면 동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대학에 들어가면 안정된 직장과 결혼이 보장된다는 그런 노림수, 또는 기대, 이런 것과 관련지어서 희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근데 성경에서 등장되는 성도들의 희생,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바치는 그 희생, 또는 요나에 보면 요나가 같이 동승한 사람들을 풍랑에서 건지기 위해서 자기 몸을 심청이처럼 던지는 그 희생에는 거기에서 얻고자 하는 어떤 기대치에서 어긋나게 되어 있어요. 내 한 몸 하나 바치면 필히 이런 결과가 주어질 것이라고, 그래서 과감하게 희생을 하는데 막상 희생을 하고 보니까 자기가 뭔가 오해했다는 사실을 희생의 상황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예를 들면 요나 같은 경우에 요나 선지자가 풍랑 일 때 자기 몸 하나 던져서 풍랑을 잠잠케 하게 되면 나는 비록 죽지만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려줄 것이다. 요거는 자기가 희생하기 전에 기대했던 겁니다. 근데 막상 자기가 희생하고 보니까 자기로 인하여 살았다는, 같이 배를 타고 같이 풍랑으로 고생했던 그 사람들의 기대와 본인이 큰 물고기 뱃속에 있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과는 전혀 연결점이 없습니다.

더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요나가 알게 된 그 사실은 전에 같이 풍랑으로 멀미하면서 고생했던 사람들은 도저히 알 길이 없어요. 요나가 알았던 새로운 사실의 기쁨과 환희와 진리의 그러한 감격은 전에 같이 배 탔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알지를 못해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14절, 거기에 보면 요나는 십자가를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은, 이것은 자랑이라는 말을 사도 바울이 사용함으로써,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을 간단히 이야기해서 “나는 내 것으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나는 내가 사도 된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런 뜻이거든요.

사도 된 것을 자랑하지 않으면 나머지는 자랑할 것이 없죠. “나는 내 것으로 자랑할 것이 일체 없습니다. 그렇게 나를 만든 것이 뭐냐, 십자가가 그렇게 나를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이 십자가를 모르는, 십자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어디서부터 그들의 자랑꺼리를 끄집어내는가를 똑똑히 보고, 그걸 통해서 십자가 안에 있는 자와 십자가 밖에 있는 자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큰 교회 다닌다는 것을 자랑할 거예요.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서 내가 다니는 교회가 이렇게 부흥되었습니다.” 이걸 자랑꺼리로 내세운다 이 말이죠. 그거는 십자가와 상관없는 겁니다. “십자가 때문에 우리 교회가 컸습니다.” 라고 하면 상관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십자가, 큰 교회 되고 큰 교회 다니고 하는 그런 기쁨과는 결합될 수 있는 십자가가 사도 바울에게는 없습니다. 성경에도 물론 없죠.

자랑 할 게 없다고 나와야 그게 십자가와 관련된 상황 속에 살고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세상이 나에 대하여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났느냐 하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이, 예수님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따라서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은 예수님 쪽과 그리고 그 외에 쪽은 이것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 십자가 사건을 미리 요나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요나서 2장에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죠. 뱃속에 들어가 있었을 때에 전에 배타고 있었던 사람들은 요나가 죽은 줄 알고 있었는데, 요나가 죽은 거 맞아요. 그 사람들 눈에는 죽은 것이 맞아요. 깊은 물속에 빠지면 안죽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다 죽지. 다 죽는 것이 맞는데, 요나가 살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요나는 그들 말대로 죽은 것이 맞는데, 그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뭘 깨닫는가 하면 죽음보다 더 깊은 죽음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같이 배에 동승했던 사람들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체험했죠. 죽음보다 더 깊은 죽음이 뭐냐, 내가 스올, 음부, 다시 말해서 인간이 죽고 난 뒤에 가야 될 그곳, 스올은 음부라고 되어 있고 이곳은 죽은 자들이 집합하는 장소입니다. “그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음부의 체험을 했고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인간들이 알고 있는 죽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면 죽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제대로 된 깊은 죽음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하는 그러한 고백처럼, 얼마나 무서운 분 앞에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입장에서 서 있다는 이 체험이 진정 죽음의 체험입니다.

그리고 그 체험에서 하나님이 나를 건져내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대상인 것을 알게 됩니다. 주께서 나를 구원해주지 않아도 되고, 나에게 영생주지 않아도 되고, 나를 천국 보내지 않아도 주님의 조치는 합당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이것이 참된 죽음 앞에 서 있는 겁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 우리가 영생 얻기 위해서, 우리가 천국 얻기 위해서, 우리가 익히 상식적으로 아는 그런 것을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고, 우리고 하여금 우리가 감히 살아있는 이것 때문에 체험할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는 체험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기 위해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거기서 성령이 흘러나온 겁니다.

희생이란 어느 누구도 희생할 수 없고, 오직 희생하실 분은 주님 외에는 아무도 제대로 희생할 분 없다는 고백은 십자가 앞에 선 성도에게만 나올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미아(IP:122.♡.169.34)

16-01-10 00:29

141강-YouTube강의(영적전쟁)160107-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제141강 제목은 ‘영적전쟁’입니다. 보통 영적전쟁이라고 하면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에 나오는 환상적인 SF같은,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그런 전쟁으로 묘사를 많이 하는데, 실제로 성경에서 영적전쟁이라는 표현은 의외로 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죠.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분명히 오실 때 헤롯도 방해했고, 예수님 태어나실 때 두 살 아래에 애들이 다 죽은 것과 동방박사가 위기에 처한 것, 이 모든 것이 우주 속에서 영적전쟁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막상 설교하는 가운데도 그 영적전쟁적인 요소가 분명히 담겨있거든요.

설교 가운데 어떤 식으로 그 영적전쟁의 요소가 담겨있는가, 그것은 마태복음 5장 19절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친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여 가르친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지고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획득할 수 있느냐를 놓고 보이지 않는 악마와 전쟁하고 있는 상황을 예수님을 통해서 거기에 갖추어지는 겁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해서 인간은 이미 율법 안에 포위되어 있고 갇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영적전쟁이라는 것은 뭐냐, 법이 동원되고, 그 구체화 된 것이 뭐냐, 율법이죠. 율법이 동원되어서 율법을 가지고 의를 만들 수 있다면, 의가 나올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긴 자가 되는 겁니다. 만약에 율법가지고 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전쟁에서 패배자가 되는 겁니다. 근데 여기서 이겼다, 패배했다는 것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는 성립되지 않는 두 패가 되는 거죠.

쉽게 말해서 운동회가 열리지 않았다면 청군, 백군 자체가 없었죠. 운동회가 열리는 그 날에 너는 청군이고 너는 백군이고, 같은 반 애를 둘로 나눠서 그렇게 하잖아요. 율법이 주어지므로 말미암아 무엇이 뚜렷하게 등장하게 되느냐 하면 너는 천국 가는데 성공한 자냐, 아니면 천국 가는데 실패한 자냐, 하는 것이 율법의 개입을 통해서 새삼스럽게 정해지는 겁니다. 규정되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에 영적전쟁이라 하는 것은 나의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나의 전쟁이 아니고 율법을 제시한 법의 전쟁이죠. 율법대로 성취한 편에 속하느냐 아니면 율법을 성취하지 못한 편에 속하느냐로 분류되는 전쟁입니다. 율법이 개입되지 않으면 이런 분류 자체가 성립되지 않죠. 예수님께서 영적전쟁을 하시면서 율법을 가지고 이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 들어오셔서 20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가지 못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뭐냐 하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면 필히 누구를 만나게 되느냐 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방식으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자들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나타난 자체가 천국이 가까이 온 겁니다. 세례 요한이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천국을 몰고 왔다. 또는 예수님이 천국을 동반해서 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예수님이 천국을 동반해서 왔으면 예수님이 우리한테 바로 주면 되는데, 마태복음 5장에서 그렇게 바로 주시기보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언급을 하십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그냥 예수님은 주고 우리는 받는 그러한 중립적인, 중성적인 상황이 아니고 이미 이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어떤 전쟁이냐 하면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고 다른 방식으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의를 모으고 있고 의를 쌓고 있는 그러한 움직임이 이미 갖추어 있는 그러한 세상에 너희가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거기서 건져낸다는 말은 결국 무엇에서 건져낸다는 말이냐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방식으로 의를 축적해서 그 의를 가지고 천국에 가려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야 거기서 건짐을 받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아니하면 그들은 기껏해야 아무리 애를 써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한패가 되고 한 방식에 머물러 있게 되죠.

주님의 이러한 말씀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느냐 하면, 내가 너희를 구원한다는 말은 그냥 맹탕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똑같은 사고방식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너희를 구원하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필수적으로 영적전쟁을 하면서 딴 거 생각할 필요가 없죠. 영적전쟁을 하면서 우리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그런 식으로 의를 만들려고 했던 것과 오신 예수님이 싸우시는 그런 전쟁 속에 우리가 놓여있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 전쟁은 우리 내부에서부터 이미 들끓고 있는 전쟁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어떤 식으로 의를 모았느냐, 21절에 보면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게 라가라(욕설이죠.)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

지옥에 들어가는 이유는 살인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들어가게 되죠. 예수님께서 “옛사람에게 말한바” 라고 하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옛사람 안에 가두어져 있다고, 갇혀 있다고 이렇게 보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옛사람 안에 가두어져 있는 것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인데 그 속에 지금 너희가 합류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 옛사람과 다른 방식을 내놓겠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살인해도 구원받는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고 옛사람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직접 사람을 죽여야 지옥가지만,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는 한 살인죄가 성립이 안 되고, 살인죄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면 살인했다는 이유 때문에 지옥 가는 일은 없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는 이야기에요. 우리나라 형무소 있죠? 법원 있고 경찰 있고 검찰 있잖아요? 그들이 주장하는 살인죄가 뭡니까? 바로 옛사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살인죄의 범위와 동일한 범위다 이 말이죠. 우리는 그것을 국민으로서 납득을 하고 동의를 하고 있죠.

만약에 우리나라 헌법에 형제한테 욕하는 것도 살인죄라고 법을 만들게 되면 누가 동의하겠습니까? 아무도 동의 안 할 거예요. 왜 동의 안 하죠? 본인이 거기에 걸려서 맨날 형무소 가야되고 사형당해야 되니까. 따라서 인간들이 만든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뭐냐 하면 자기가 자기만큼은 살고자 하는 식으로, 법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그러한 형편과 상황 속에 우리는 거기에 곱게 놓여있는 겁니다. 뭔가 안심하는 투로.

그러나 주님은 그 경계선을 찢어버립니다. 내가 보기에 모두가 지옥가야 한다. 옛사람들은 살인 안 하면 천국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의인된다는데, 나는 너희에게 이야기한다. 과연 의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누가 있느냐? 아무도 없다. 그것이 예수님의 산상설교입니다. 법입니다. 이 법이 있는 곳이 영적전쟁이고, 그 전쟁에서 예수님이 제안한 구원은 이겁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겁니다. 따라서 영적전쟁에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39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5,192 자유게시판 140강-YouTube강의(희생)160107-이 근호 목사 레위기 최고관리자 16-01-10
15,191 자유게시판 수련회 참가자 명단 [수련회] 최고관리자 16-01-09
15,190 자유게시판 수련회 방 배정표 [수련회] 최고관리자 16-01-09
15,189 강의 십자가와 부활 160108 디모데후서 최고관리자 16-01-09
15,188 강의 고향 160108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6-01-09
15,187 강의 무한과 초월 160107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6-01-09
열람 ➜ 강의 유튜브(140강, 141강), 희생 , 영적 전쟁 160107 레위기 최고관리자 16-01-09
15,185 자유게시판 요한복음 8장 44절(가락-악마의 정체)151217b -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6-01-07
15,184 자유게시판 20강-창 3장 11-13(하나님의 추궁)160106-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6-01-06
15,183 자유게시판 수련회 시간표 [수련회] 최고관리자 16-01-06
15,182 우리교회 하나님의 추궁 160106 창세기 최고관리자 16-01-06
15,181 자유게시판 수련회 준비물 및 오시는 길 [수련회] 최고관리자 16-01-06
15,180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5. 12. 18) 1강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6-01-05
15,179 자유게시판 172강-고전 12장 14-17(지체의 다양성)160103-이 근호목사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6-01-03
15,178 자유게시판 64강-신 11장 8-12절(약속의 땅)160103-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6-01-03
15,177 강의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6 - 주님의 증인 잠언 최고관리자 16-01-03
15,176 우리교회 약속의 땅 160103 신명기 최고관리자 16-01-03
15,175 묻고답하기 요긴한 지체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6-01-03
15,174 우리교회 구원의 길 160103 - 최고관리자 16-01-03
15,173 우리교회 지체의 다양함 160103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6-01-03
15,172 설교 지체의 다양함(고린도전서 12:14-17)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6-01-03
15,171 자유게시판 요한복음 8장 44절(가락-악마의 정체)151217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6-01-03
15,170 자유게시판 서울 의존교회151211a,b (말씀의 주권)―이 근호 목사 디모데후서 최고관리자 16-01-01
15,169 자유게시판 19강-창 3장 7-10(두려움)151230-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5-12-31
15,168 우리교회 두려움 151230 창세기 최고관리자 15-12-3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