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5 - 뿌리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5 - 뿌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5 - 뿌리
15,12,0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39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다윗에 있어서 솔로몬의 태어남은 두 가지 노선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솔로몬으로부터 시작되는 다윗의 가문은, 혈통적으로 다윗의 정통 자손이라고 우기는 유다 왕들의 육적인 결과로 해서 망하는 식으로 이어집니다.
◈ 굳이 다윗과 솔로몬까지 알아야 하는가?
이스라엘 역사에 보면 다윗과 솔로몬이 나오는데, 그분들이 오늘날 우리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 수 있는데, 그냥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를 알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다. 예수님만 알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아버지가 누구이고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면 되는데, 이순신 장군이 누구인지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요?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우리는 살아가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성경에 의하면, 다윗과 솔로몬을 모르면 지장이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있어서, 그분을 만나보면 믿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실제로 12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보았지만, 전혀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은 예수님을 보고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뿌리까지 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것이다.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하는 것, 그냥 "오, 예수님이여!" 라고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마 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그러니 유대인들의 분위기는 무엇인고 하니, 메시야와 관련된 분이 오셔야 한다는 것인데, 즉 메시야의 뿌리가 있는, 메시야 계통에 있는 분이 말이다. 그분이 곧 구원자인데, 그러니 구원자 이전에 먼저 메시야 계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 유대인들에게는 상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이방인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메시야 개념도 없고, 율법 개념도 없고, 물론 구약 개념도 전혀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에는 누가 뿌리인가? 알다시피 단군이 뿌리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양반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 뿌리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해 !!
반면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자기들의 뿌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결국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어떤 민족에 있어서 지금 현재 얼마나 단결을 잘 하는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뿌리가 자기 민족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즉 "지금 나를 나 되게 한 뿌리가 있다" 라는 것인데, 유대인들의 경우는 말이다.
그렇게 뿌리가 있다는 것은 '나' 라는 것이 단독적으로 존재하면 안 되고, 그 뿌리로 인한 줄기에서 나오는 열매로서 '나'이어야 하는, 그런 실존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 정체성인데, 즉 "나는 누구인가?" 라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면서 나올 문제가 아닌데, 물론 처음에는 교회에 와서 그렇게 하면 좋지만 말이다. 오늘처럼 오랜만에 울산에서도 오고 하면 좋다는 것이다(ㅋㅋ).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이렇게 어디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그 원천이 따로 있다는 것, 그게 서로 관련이 맺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라고 하면, 그것은 자기가 믿는다고 하는 행위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믿음이라고 할 수 없고, 그게 아니라 "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이 나를 나 되게 했습니다" 라는 것을 포함해서, 그게 믿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믿음 속에는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빠져야 하고, "믿게 하셨습니다" 라는 것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
제가 이런 것을 일일이 설명을 좀 해드리고 싶은데, 현대사회가 너무나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내가 선택해서 내가 믿습니다. 끝!" 이라고 하면 그것을 그냥 끝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해서 아는 바에 의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왕인데, 그런데 민주주의에서는 왕이란 개념이 없는데, 가면을 쓰고 데모를 하든 무엇을 하던 자기가 알아서 움직인다는 말이다.
왕이라고 하는 것은,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라고 하는 것인데, 하지만 민주주의는 모두가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 "너희는 친구다" 라고 하니, 사람들은 정말로 친구라고 여기고 막 먹으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저는 왕의 종만 되어도 영광스럽습니다" 라는 인식이 전혀 형성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이 형성이 되어있는데, 왕의 나라의 뿌리를 유지하고 싶어하기 말이다. 물론 현재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우리는 메시야의 신하입니다" 라고 하는 인식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왕 됨을 위한 하나의 임시적인 조치이고, 왕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민주주의가 변경시킬 수는 없다는 말이다.
차라리 누구의 신하가 된다는 것이 안정적이지, 매일같이 투표를 한다는 것은 번잡스럽고 귀찮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신분자체가 "나는 누구누구의 종이다" 라고 확정되면 미래까지도 보장이 되니, 그래서 그들은 메시야를 고대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뿌리가 없는 이방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이겠는가?" 라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행전에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덜 받았는고 하니, 그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온전한 구원이 되려고 하면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그 성령이 바로 '메시야의 영' 이라는 것이다.
◈ 뿌리를 질책하시는 성령님 !!
그래서 성령이라고 하면 하나만 생각하면 되는데, 즉 "성령은 어떤 기능을 합니까?" 라고 했을 때, 그것은 바로 지적하는 것, 책망하는 것, 혹은 고발하는 것, 바로 그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무엇을 고발하는고 하니, 우리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를 고발한다는 것이다.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연결시켜보면, "성령이 오심으로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리의 뿌리가 새롭게 드러난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인데,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의 행동을 지적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뿌리를 지적하신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는 우리를 보고 "너희의 뿌리가 이러하니, 너희는 이런 행동이 나올 수밖에는 없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이고, 그것은 바로 죄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죄인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방인이기에 어쩔 수가 없다" 라고 하는 변명을 늘어놓기 위함이 아니라, "진작에 우리는 지옥에 가도 당연한 이방인이다. 언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그냥 인간들밖에 모른다. 우리가 믿었던 신은 다 거짓이다" 라고 하는, 그것을 성령으로부터 지적을 받을 때, 그게 바로 성령이 임한 자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방인들에게 큰 소리를 칠만하다는 말이다. 즉 "너희들이 전혀 모르는 진짜 하나님이 우리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었고, 바로 그 하나님을 우리의 조상인 모세가 시내산에서 직접 만나서 율법을 받았다" 라는 것이다.
◈ 출애굽은, 시내산이 기본 !!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을 해볼 것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유월절이 기본인가? 아니면 시내산이 기본인가? 시내산이 기본이란 말이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와서 시내산에 도착하게 되면, 거기서 언약을 받게 되는데, 바로 그 언약을 받는 지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시내산인데, 그들은 언약을 받으면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배가 그만 실패로 끝나고 마는데, 왜냐하면 예배를 제대로 드리려고 하면, 예배를 드리는 쪽과 받으시는 쪽이 서로 제대로 죽이 맞아야 하는데, 그런데 드리는 쪽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으니 전혀 맞지를 않는데, 그래서 그만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가 실패로 끝나게 되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성취가 되어야하는데, 그래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동행을 하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드리지 못하고, 그 예배가 그만 지연이 되고 미완료 상태에 돌입하고 만다는 것이다.
◈ Let it Go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가자!' 라고 하시는데, 이것을 오늘 강의제목으로 하면 좋지 싶은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자고 할 때는 그 전제가 있어야만 하는데, "잊어버리고 가자!" 라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인가? 옛 것을 잊어버리고 가자는 것인데, 그러면 어디로 가면 되는가? 그것은 가보면 아는데,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알려주지 않는가? 알려주어도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자기들이 알고 있던 방식으로 찾아가기 때문에, 하늘나라, 천국, 낙원, 유토피아 등등, 기존 인간들이 알고 있던 수준이 있으니, 과거 자기들이 애굽에서 살던 사고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날조된 천국인데, 자기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천국인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왜 자기가 살기 좋은 나라가 천국이 아닌가? 자기 자신이 잘못되었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과거 70년대에 '행복의 나라로' 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가 행복해지는 나라인데, 그러니 그것은 천국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나라라는 말이다. 천국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나라라는 것이다.
◈ 교회놀이를 멈추고 !!
그래서 오늘날 교회를 보면 일종의 친목단체인데, 즉 자기들이 행복한 나라라는 말이다. 그것을 4글자로 '교회놀이' 라고 하는데, 교회놀이를 그치고 복음의 세계로 들어온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교회놀이가 올무이고 유혹인데, 왜냐하면 그 속에서 자기가 누구인지가 정립되어 왔으니 말이다. 그것을 다 부수어야 하는데, 종교놀이, 인기놀이, 행복놀이를 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위한 놀이인데, 그래서 주님은 "가자. 너희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라고 하시는데, 미지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래서 여기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은 자기들이 알지 못했던 행동들만 하는데, 자기가 봐도 어처구니가 없는 행동들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에게 조롱을 받는데, 비도 오지 않는데 방주는 왜 만드느냐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인데, 그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동행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점점 더 난처해지는데, 당황스러워지고 말이다.
◈ 왕이 필요하지 않는 나라 !!
나라꼴이 어떻게 정립이 되고 단단해져야 하는데,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푸석푸석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단해지기 위해서 나름대로 애를 쓰는데, 그게 바로 사울 왕이었다는 말이다. 즉 "우리에게 왕을 주옵소서"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생각한 원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왕이 없어도 굴러가는 나라이다" 라고 하시는데,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그들은 "그렇게 해보니 나라꼴이 말이 아닌데, 그러니 왕을 주세요"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게 누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계획을 말이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하나님이여, 저의 인생을 이렇게 좀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너는 너 자신을 몰라. 그래서 너의 인생을 내가 알아서 할거야. 그러니 나만 믿어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어디 믿을 만한 것이 있어야 믿지요?" 라고 하면서 받아치고 말이다.
* 우리 : 하나님이여, 저의 인생을 이렇게 해주세요.
* 주님 : 너는 너를 몰라. 그래서 너의 인생을 내가 알아서 할거야. 그러니 나를 믿어라.
* 우리 : 어디 믿을 만한 것이 있어야 믿지요?
* 주님 : 너 자체가 고장난 것인데, 무슨 믿을만한 것을 찾는단 말이냐?
* 우리 : 제가 고장이 났다고요?
* 주님 : 그래, 고장났어. 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겠어.
* 우리 : 감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 주님 : 온전치 못한 너의 인생의 너의 손에 맡기는 일은 없을 거야.
* 우리 : 좀 심하네요.
* 주님 : 니가 뭐라고 해도 너의 인생이 너의 원대로 되지는 않도록 하겠어.
* 우리 : 어휴, 고집쟁이!
* 주님 : 나는 반드시 니가 원하는 않는 방법으로 너의 인생을 온전하게 만들겠어.
* 우리 : 그러면 그것을 미리 좀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 주님 : 안 된다. 알려주면 너는 그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멈추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한계는 무엇인고 하니, 스톱을 한다는 것인데, "여기사 좋사오니" 라고 하면서 말이다. 신앙이 그만 멈추고 마는데, 그러니 평안할 때가 사실은 신앙의 위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일종의 거대한 소용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말이다. 예수님에게 가까이 가게 되면 이 세상에서 받았던 환난이 소용돌이를 친다는 것이다.
◈ 요한계시록 - '안목 바꾸기' !!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간 자들이 바로 12 사도들인데, 이들이 요한계시록에 보면 24장로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대표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 세상을 보는 안목이 무엇인고 하니, 죽도록 충성하지 않으면 천국에 오지 못한다는, 그렇게 이 세상을 위태롭게 본다는 것이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인데, 이제 한 달 정도만 있으면 겨울 수련회를 할텐데, 요한계시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안목 바꾸기' 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존 안목으로는 요한계시록을 아무리 봐야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무슨 만화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무협이나 판타지소설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면 무슨 안목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환난의 중심이 선 사도의 안목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생을 하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는 고생을 해도 인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생을 하면 된다면 주님은 우리를 고생시키고 또 시키는데, 그런데 환난이란 것은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고 하니,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복음이 발생하게 될 때 환난도 같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복음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환난도 없다는 말이다. 전기밥솥이 언제 부르짖는가? 평소에는 조용하게 있다가 밥이 다 되면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친하게 지내는 친척이나 이웃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최종적으로 확정이 될 때, 밥솥이 소리를 지르듯이 그런 소리가 난다는 말이다.
그러면 "아하, 환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환난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런데 우리가 평상시에 그런 환난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것은 평소에 타협을 너무나 많이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인데, 좋은 것이 좋다고 하면서 그냥 서로 사이좋게 지나가고 만다는 것이다.
◈ 어쩌다가 성도 !!
성도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좋은 의미의 말이 있는데, "어쩌다가 내가 십자가를 알아서!"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어쩌다가 성도!' 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 강의제목이 또 나왔는데 말이다. 그러니 자기의 인생이라고 하면서 강력하게 주장할 수가 없는데, 주님에게 끌어당기는 엄청난 힘이 있는데, 그것을 성도는 수시로 감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소한 것에도 목숨을 걸었는데, 이제는 걸고 싶어도 걸 목숨도 남아있지를 않다는 말이다. 그때는 인생자체가 도박이었는데, 사업도 도박이고 연애도 도박이고 결혼도 도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도박이었는데, 그래서 싸워서 빼앗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생 자체에 그러한 의미를 두지 않는데, 그럴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주시는 대로 살겠다고 한다는 말이다. 언제부터 자기 인생이 마치 수프처럼 흐물흐물하게 되었는지 몰라도, 국도 아닌 것이 밥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정체성이 모호하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왕일 필요가 없고 메시야일 필요가 없기에 그러한데, 다만 메시야에 연결된 주변인물로서 살아가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나는 이런 존재입니다" 라고 하는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유상표를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좋은 명품 브랜드가 있기 때문인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그것 때문에 자기 브랜드는 포기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대기업들은 브랜드를 가지고 심하게 장난을 치기 때문에 문제인데, 빵집의 경우에도 파리바케트의 횡포가 얼마나 심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이방인들의 경우에 그들에게 성령이 왔다는 것은, 그냥 그들의 잘못된 것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 채 잘못되었다" 라는 것을, 자기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뿌리가 언약이 없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더러운 이방인의 뿌리였음이 드러나는, 그렇게 발각을 당하는 것이 바로 구원을 받은 사람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 멍멍멍 !!
이방인인 수로보니게의 여인처럼, "나는 개입니다" 라고 하는데, 그래서 주님은 "나는 유대인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자기는 남에게 기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고 여기다가, 그 시선에 주님에게로 향해서 주님의 시선과 합세가 되니까, 자기가 그만 개로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보통 말하는 개나 애완견과는 생김새는 좀 다르지만, 하지만 이방인이니 개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한 아들, 즉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다" 라고 규정한 그 공동체에 합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르는데, 그것은 다른 방법은 없고 오직 예수님의 백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 경계선을 넘어왔다는 것인데, 단체로 지옥에 가야하는 태생적 집단에서, 예수님의 특혜로서 그분이 따로 준비한 천국백성으로, 진짜 왕이 계시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합류가 되었다는 특혜, 그것이야말로 이방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기쁜 것은 이런 신분이 자기 힘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니 손을 놔도 괜찮다는 말이다.
왜 '타이타닉' 이라는 영화에 보면, 여자가 뱃머리에서 팔을 벌리고 서 있으면 남자가 뒤에서 잡아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주 멋있는 음악과 노을이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말이다. 그 장면 때문에 영화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본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쓰레기와 같은 이방인들, 즉 "나는 찾지 않는 백성들이 나를 찾았다" 라고 하는 이사야서의 예언을 성취한 것에 대해서 우리와 같이 이방인들이 주님의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자나 땅에 있는 자나, 심지어 땅 밑에 있는 자라고 해도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그러한 상황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증거물로서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 65: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그렇게 팔을 벌리고 뱃머리에 서있는 우리와, 그런 우리를 잡고 있는 예수님의 연결고리는 바로 '상처' 인데, 즉 "너 때문에 내가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손과 발에는 못이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렸다" 라는 말이다. 그것은 이방인들뿐만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상처 없는 구원은 없어 !!
이러한 연결고리가 바로 상처인데,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보면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라고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천국과 인간 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고리가 상처인데, 그래서 예레미야서에 보면 "이 상처가 웬일인고?" 라고 하면서 예언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계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그리고 시편 38편 11절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즉 주님을 상처를 받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손과 발과 옆구리에 구멍이 나게 위해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렇게 구멍이 날 때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는 말이다.
(시 38:11)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이사야서 53장 5절의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라는 예언은 주님의 몸에 상처가 나야한다는 것인데, 그러니 서로 좋은 말로 해서 천국에 보내고 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즉 상처가 없는 구원이 없다는 것인데, 십자가가 없는 구원은 없다는 말이다. 그 상처에서 나온 자식들이 바로 성도라는 것이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것은 명란젖의 명태 알을 연상하면 되는데, 명태가 아니고 통대구인가요? 그 통대구를 찌르면 알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새끼들이 말이다. 그래서 창세기에 보면 야곱의 허리에서, 혹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의 허리에서, 하늘과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은 수많은 자식들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상처에서 완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통대구라고 하면 거제도 앞바다가 생각하는데, 아마 그 명란젖을 다들 먹어본 기억들이 나지 싶은데, 그 통대구는 알을 가득 품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게 주님 안에 예정이 되어있었는데, 그래서 어제 오후시간에 설교하기를, 주님 안에 내장되어있는 것을 바깥으로 끄집어낸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서 있는 천국의 흔적이라는 말이다. 즉 미리 앞서 본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천국은 얼마나 살기가 좋고 아름다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상처와 연결이 되어있느냐는 것인데, 그게 진짜 천국과 가짜 천국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1장 6절에 보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라고 하는데, 다윗과 솔로몬이 어떻게 연결되는고 하니, '우리야' 라고 하는 충실한 장군의 죽음으로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로 억울한 죽음인데, 바로 그 억울한 죽음이 우리를 살린다는 말이다.
(마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그러니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억울한 것이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살아놓고 무엇이 억울하냐는 것이다. 진짜로 억울한 분은 주님이지 우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지적, 혹은 질책을 하실 때, "너희는 기도할 줄 모른다" 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상처인데,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상처도 없이 기도를 하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너희가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야. 너희는 기도를 할 줄도 몰라. 아버지의 뜻을 아는 것은 성령인데, 그 성령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시면 너희가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로마서 8장 26절 말씀이라는 말이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우리는 그 상처가 더 크게 보이고, 항상 감사하는 쪽으로 성령께서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처가 아니라 주님의 상처가 말이다. 그러면서 '주님 덕분에' 라는 것이 점점 더 늘어나고 팽창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것을 솔직히 말하면, 제가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감사가 더 늘어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젊었을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서 민망스럽다는 것이다(ㅋㅋ), 굳이 변명을 하자면, 요즘은 백세 시대라고 해서, 과거에는 나이가 들면 떠날 준비를 했는데, 지금은 더욱 더 살아보려고 발악을 한다는 것이다.
◈ 잠시 정리를 하면 !!
여기서 잠시 정리를 하면, 예수님을 믿을 때 어떻게 믿어야 하는고 하니, 그것은 뿌리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뿌리를 건드리면서 구원을 하시지, 그냥 우리를 건드려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뿌리 자체를 바꿔치기를 하는데, 왜냐하면 뿌리가 문제이니 말이다.
그래서 다윗은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뿌리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윗의 자손을 말이다. 그런데 12제자들은 누구에게 기대를 걸었는가? 자기가 납득이 되는, 즉 자기와 동일한 존재를 가지고 있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 된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주님의 뿌리는 주님의 상처에서 나오는데, 그런데 상처가 없는 주님을 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쓴 잔을 마셔야 한다" 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그 쓴 잔을 통해서 너희들이 모르는 진짜 메시야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라는 것인데, 즉 예수님의 상처를 통해서 예수님의 진면목이 나온다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서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아줌마들이 모여서 "참 안 되었다. 좋으신 분이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어" 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 아줌마들을 보고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나 때문에 울지 마라. 내가 보니 너희들 딸이 오히려 더 걱정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너희들이 보기에 내가 죽었기에 걱정이지 싶은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멀쩡한 너희들 딸이 걱정이다. 멀쩡해 보이는 것이 더 위험하단 말이야. 너희들이 속해있는 세상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것 같은데, 너희들의 뿌리가 얼마나 위험한 뿌리인지,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 그러니 내가 새로운 뿌리를 제공해주겠다" 라는 것인데, 소위 메시야를 기다린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말이다.
◈ 주께서 꺾으신 뼈 !!
그러면 솔로몬은 어디서 나왔는가? 다윗이 아니라 다윗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 아닌, 다윗의 자손의 아들이라고 해야 정답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다윗의 자손은 어떻게 되는가? 아직 예수님이 오시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야 장군을 보내셨는데, 그렇게 다윗을 자기 뿌리와 관련이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그래서 꺾으신 뼈로서 우리야 장군을 희생시켰다는 말이다.
(시 51: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그래서 온갖 폼을 다 잡고 살아가는, 저의 경우에는 경주 이씨를 예수님 예씨로 바꾸어야만 하는데,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십자가를 알게 하시고, 경주 이씨의 티를 내면서 살아가던 자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과거 유대인들이 그렇게 고대했던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손으로 바꾸게 하시는데, 그것을 질책하시면서 이루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이다.
◈ 지금 이 순간의 십자가 !!
여기서 갈라디아서 3장을 보겠는데, 여기서 사도바울은 십자가를 언급하면서,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라고 하면서, 3절부터는 계속해서 성령으로 이끌고 가신다는 말이다. 즉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인다" 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그것을 바로 십자가를 계속해서 되풀이를 하도록 성령께서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갈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그러니 십자가는 한 때 지나간 그때 그 십자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십자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성령께서 그렇게 작용을 하니, 그래서 지금의 십자가로 유효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14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하는데, 즉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2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라고 하는데, 그러니 성령께서는 다수를 유일하신 한 분에게 접목을 시키는데, 즉 예수님에게 접목을 시킨다는 것이다. 그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는 말이다.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런데 그 다수(EVERYBODY)가 각자 각자가 자기 주장을 하는데, 그런 다수의 자기 주장을 포기시키고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가시는 일을 성령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데리고 가시는가? 성령께서는 "율법에 의하면 너는 저를 받은 자야" 라고 질책하시는 방법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3장 10절에 나오는데, 즉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대로 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가 다 저주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이방인들 속에 스며든 이스라엘 !!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그러면 이방인들은 율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해당사항이 없지 않습니까?" 라고 할지 몰라도,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고 난 뒤에 공중분해가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멸망을 당했다는 것이 이방인들 속에 스며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심판의 예언이 전 세계로 확산이 되고 말았는데, 그래서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나 에스겔서 등에 보면,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 있고 난 다음에 반드시 주변에 있는 모든 이방 나라들에 대한 필연적 멸망이 예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예언에 있어서 라이벌이 있는데, 유다 나라가 멸망을 당하면서 기껏 피한다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면서 애굽으로 피신한다는 것이 그 대안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것도 예언이 되어있는데, 그렇게 그들이 애굽으로 피신을 함으로서, 유대인들이 살려고 피신한 나라들은 다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굽이 망하고, 그 다음에는 바벨론이 망하고 마는데, 그 다음에는 바사, 즉 페르시아로 넘어가는데, 그 바사도 그만 망하고 만다는 말이다. 그리고 바사는 헬라에게, 그 헬라는 로마에게 망하고 만다는 말이다. 그러면 로마는 누구에게 망하는가? 예수님에게 망하고 마는데, 그게 바로 다니엘서에 기록된 예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 것인데, 그러니 우리보고 "망한 나라에서 무슨 이익을 보려고 하는가?" 라고 하는 것인데, 즉 "이미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 확정이 되었는데, 그렇게 확정된 것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지?"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무슨 낙을 보겠다고 이 세상에서 그렇게 출세를 하려고 몸부림을 치느냐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를 보고 허무주의자라고 하는데, 하지만 허무주의가 무엇인가? "나는 내 뿌리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름은 아담인데, 그 이름의 의미가 허무라는 말이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이 모두 허무개그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웃기네' 라는 것인데, 물론 요즘 개그콘서트는 웃기지도 않지만 말이다.
◈ 여기는 놀이동산, 출발 !!
그것을 조금 저속한 표현으로 "깨춤을 춘다" 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김영삼 대통령이 죽었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고 하니까, 국장이라고 하면서 5일장을 하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자기가 무슨 요셉도 아니고 말이다.
그분은 놀이동산에서 그냥 자기 게임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왕이지 그런 통치자가 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도 왕을 구하고 있으니 그런 일을 벌린다는 말이다. 정치인이 되어서 국회의원을 하면서 노는 것인데, 그러다가 재수가 좋으면 대통령이 되고 말이다. 그렇게 각자 각자가 자기 마당에서 논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니가 오늘 오시지 않았는데, 아마 어디서 놀고 계시지 싶은데 말이다. 요즘은 주로 우리 집에서 노시는데, 거의 노인정 수준이라는 것이다. 우리 집 보일러가 다른 집 보일러보다 잘 돌아가니 말이다. 그래서 모이면 우리 어머니는 환대를 하시는데,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성경말씀을 아시는지 몰라도 말이다(ㅋㅋ).
그것이 인생인데, 그렇게 놀이동산에서 논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 줄로 모르고 말이다. 뿌리를 알아야지 어디로 가는지도 아는데, 그 뿌리가 지옥이니 결국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언약이 없는 이방 민족들의 운명이라는 말이다.
◈ 내가 넣어줄게 !!
그렇게 언약이 없는 곳인데, 그런데 언약의 완성자가 "내가 넣어줄게"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평생을 언약을 모르면서 살아가다가 마지막에 언약의 완성자를 만나서,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언약 안에 있단다" 라고 해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이방인들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을 로마서 11장에서는, 돌감람나무가 떨어져 나와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다고 한다는 말이다.
(롬 11: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 잠시 겨울 수련회를 !!
그렇다면 다윗의 자손이 어떤 위치에 있기에 그런 기능을 하느냐는 것인데, 여기에서 요한계시록을 보겠는데, 특별히 이 대구모임에서 이번 수련회에서 할 요한계시록을 미리 앞당겨서 보자는 것이다. 먼저 5장 5절을 보겠습니다.
(계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여기에 보면 '유대 지파의 사자' 라고 되어있는데, 그것은 사자(使者) 아니고 사자(Lion)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라이온이라고 할 수 있는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래서 울지 말라고 한다는 말이다. 사자인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는 것이다.
(녹취자 - 안타깝게도 개역국한문에서는 그만 사자(使者)로 잘못된 표기를 하고 말았는데, 영어성경에서는 모두가 사자(Lion)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글번역은 모두가 사자입니다.)
(계 5:5) 장로(長老) 중(中)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支派)의 사자(使者)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冊)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 개역국한문
(Rv 5:5) Then one of the elders said to me, "Do not weep! See,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the Root of David, has triumphed. He is able to open the scroll and its seven seals." - NIV
이것은 일단 알았다고 치고 창세기 49장을 보겠는데, 9절입니다.
(창 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여기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러니 야곱의 12지파 뿌리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쉬운 예를 들면, 왜 반찬을 만들 때 손에 끼는 비닐장갑이 있는데, 일단 그게 손가락이 12개라고 보자는 말이다. 그 장갑을 끼려고 하면 손가락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12개가 역사 속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만약에 이스라엘이 없다고 하면 이 세상은 각자 고유의 혈연관계로 구성된 민족들로 형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부분이 강을 끼고 발달하는데 말이다. B.C. 3,300년경의 이집트 문명으로 시작해서, 보통 세계4대문명으로 이집트, 인더스,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황하문명을 말한다는 것이다. 각각 나일강, 인더스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그리고 황하강을 끼고 발달했는데, 이중에서 중국의 황하강이 B.C. 2,000년경으로 제일 늦고 말이다.
이들은 모두가 공통점이 혈연관계의 씨족들인데, 이스라엘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것이 보통 학교에서 말하는 것인데, 그러면 이렇게 같은 성씨를 가지고 오손도손 모여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나쁘냐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조폭도 아니고,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지옥에 갈 일이냐는 말이다.
그런데 성령이 오셔서 그렇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그러한 인생이 바로 악한 뿌리에서 나온 악한 짓이라고 하는 인식을 가지게 하는데, 그것이 비닐장갑에 쏙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언약의 나라와 대비해봐라" 라는 것인데, 그러면 그 나라는 사탄의 나라가 된다는 말이다.
이런 파격적이고 과격한 인식의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그것을 설명을 한다고 해서 납득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성령이 임해야 가능하지 말이다. 귀가 있고 눈이 있는 것도 문제인데, 왜냐하면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귀와 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 진짜 민족은, 오직 이스라엘 민족뿐 !!
그러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이런 모든 광신적이고 맹신적인 발상은 모두가 이스라엘의 존재 때문에 발생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말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없다고 하면, 우리는 다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서로를 존중해주면서 말이다. 자기의 삶이 귀한 것처럼 그들의 삶도 역시 귀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소통의 문화인데, 우리 현대인들은 그렇게 손에 손잡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귀의 짓이라는 것을 감히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로 사이좋게 친하게 잘 지내보겠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런 원인제공이 바로 이스라엘인데, 12지파가 등장하게 되니 기존의 민족과 대결상태에 들어가면서, 다른 민족들의 신은 모두가 다 가짜고 악마가 만든 신이 되고 마는데, 오로지 이스라엘 쪽에서 내민 비닐장갑의 그 열두 지파의 촉수를 통해서 꽉 차있는 하나님의 예언만이 유일한 미래의 실제예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알면 친구라고 하면서 사귀는 것도 겁이 나는데, 왜냐하면 친구가 아닌 적이라는 말이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은, 싸움을 하기 위한 하나님인데, 우리에게 싸움을 붙이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창세기 3장에 나오는데,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물론 학자들은 그것을 옛날 구닥다리 신화에서 한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마는데, 성경에 나오는 내용들은 다 바벨론 신화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이다. 창세기의 창조신화도 역시 그렇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당신들이 당신들의 뿌리를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 라고 하는데, 악한 영들에게 속했기에 그런 주장들이 나온다는 말이다.
소위 인문학 박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하지만 마귀가 인문학 박사라고 해서 그냥 물러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게 바로 악마의 음성인데, 오직 이스라엘만이 민족이고 나라이지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언약이 없는 나라에는 저주를 퍼부어 주소서" 라고, 그런 예언이 예레미야서나 시편에 보면 나온다는 것이다.
(렘 11: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 메시야와 관련된 뿌리 !!
그러므로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수 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메시야가 자기들의 뿌리와 관련된, 자기들이 그런 백성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했다고 하는 것은, "나는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갈래" 라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뿌리는 원래 지옥에 갈 뿌리인데, 그런데 주님이 중간에서 중재자가 되셔서, 나의 뿌리가 주님의 뿌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셨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 감격과 감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12지파의 뿌리를 보면 유다 뿌리가 있는데, 여기서 12지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12지파가 각자 다른 파트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을 합쳐보면 그것은 예수님이 장차 오셔서 이 땅에서 하실 일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을 미리 앞당겨서 각자의 분야별로 맡아서, 그렇게 일이 진행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유다 지파를 비롯해서 각 지파의 운명은 개인이 어떻게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즉 각자 개인이 조금 더 양심적으로 살고 말고 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이미 지어진 운명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레위지파를 하지 않고 유대지파를 할래" 라고,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옮길 수가 없다는 말이죠.
◈ 뿌리를 까고 살자 !!
그것을 어제 낮 시간에 "인간은 역사를 변화시킬 수가 없다" 라고 했는데, 인간은 아무리 자기 운명이라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운명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대나무가 꽂힌 집에 가든지 해야하는데, 그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고 하니, "이미 주어진 운명도 자기가 바꿀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사기를 쳐서 돈을 빼먹는다는 말이다.
물론 교회 목사도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데, 즉 "교회에 오면 당신의 운명은 바뀝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데, 자기 뿌리를 확인할 뿐이지 바뀌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에 바뀐다고 하면 서로 좋게 좋게 사는 것이 좋은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남아있는 것은 전쟁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뿌리를 까고 살자" 라는 것인데, 주민등록증만 까려고 하지 말고 뿌리를 까고 살자는 말이다. 성령이 있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뿌리를 보여주게 되어있고, 악한 자는 악한 뿌리를 결국 내어놓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마지막 대화는 결국 자기 본성과의 만남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고 하니, 12지파가 나아갈 때, 이방나라들은 이 12지파에 들어올 수가 없고, 그리고 12지파는 이방나라들에게 갈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그런 전쟁에 그들은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사사기의 전쟁이 바로 그러하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왜 우리 민족은 이런 전쟁을 해야합니까?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겁니까? 그리고 왜 우리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에게 져야합니까?" 라는 것인데, 그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언약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함인데, 얼마나 이 땅에서 편하게 사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전체는 언약이 우선이지 이스라엘이 우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오해해서 반대로 여겼는데, 자기들은 사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바로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다" 라고 하시는데, 즉 잘못된 뿌리로 인해서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는 말이다.
◈ 다시 정리하면 !!
지금까지 한 것을 간단하게 정리를 하면, 다윗은 다윗 개인이 아니라 다윗의 뿌리와 연계가 됨으로서, 다윗을 왕으로 삼는 이스라엘 전체가 다윗의 뿌리와 연계가 된 백성인지 아닌지를, 그것을 손가락이 튀어나온 비닐장갑으로 보여주는데, 즉 그 시대의 전쟁을 하는 것으로 다윗은 그 백성들과 관여하게 되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솔로몬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다윗과 솔로몬은 주님의 상처가 있었고, 그것은 바로 그 시대의 우리야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시대에 전파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야 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서 말이다. 그 억울한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처음부터 한 뿌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그대로 멈춰라 !!
그래서 다윗의 아들이 솔로몬이라고 하지 말고, 다윗의 뿌리에서 다윗도 나오고 솔로몬도 나왔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손가락으로 말이다. 그렇게 보면 시간은 정지가 되고 하나의 묵시세계가 되는데, 즉 '시간스톱!' 이라는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고 하면 모두가 정지를 해야하듯이 말이다. 옛날에 했던 그 게임을 알죠? 요즘은 인터넷 게임을 하지만, 그때는 실제로 몸으로 했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스톱을 했을 때는 찍은 스냅사진은, 그 모습은 서로가 각자 다르지만 뿌리는 주님에게서 나온 동일한 것이기에, 그래서 성령은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인다고 하면서, 남자나 여자나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성령의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자기의 뿌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인다" 라는 것은, 자기 뿌리가 십자가와 관련이 된 뿌리인지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에서 말하는 전쟁이라는 것은 사람 만들기가 아닌데, 그런 식의 사람 만들기는 목사들이 하는 짓이고 말이다. 그러니 성경은 '진정한 탕자 찾기' 라는 말이다. 즉 "내가 확정을 지은 내 백성이 어디에 숨어있지? 어서 나와라"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쁜 내 강아지 어디 있지?
왜 할머니가 손자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엄마 아빠는 맞벌이를 하기에 다 나가버리고 말이다. 그러면 손자와 어떻게 노는가? 할머니도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이쁜 내 강아지가 어디에 있지? 어서 나와라" 라고 하는데, 그러면 손자는 "나, 여기에 있지롱" 라고 하면서 나왔다가 또 다시 숨고 말이다. 그렇게 같이 어울려서 논다는 것이다.
그렇게 손자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전도라는 것인데, 이미 구원을 받기로 작정된 사람을 솎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란 말이다. 주님은 그것을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알곡도 이미 확정이 되어있고 가라지도 이미 확정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뽑아내는 것은 주님의 상처를 가지고, 즉 십자가를 가지고 뽑아내는데,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인다" 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교회에 나와서 술 담배를 끊고 인간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뿌리는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자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성화론이 어쩌고 하면서 까불지 말라는 것인데, 즉 뿌리는 본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뿌리가 주님의 뿌리가 아니라고 하면, 50년을 믿던 평생을 믿던 간에 한 방에 무너지는데, 십자가를 들이대면 말이다. 그렇게 교회놀이를 하다가 넘어진 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139페이지의 내용이고, 이제 교재 140페이지를 보자.
** 그러면 진정 산 자는 다윗의 죄로 말미암아서 죽은 우리야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야의 죽음은 '다윗은 살아있다' 라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죄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살아있는 죽음'이어야 하는 겁니다. 반면에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늘 '죽어있어야 하는 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야가 참으로 산 자가 되는데, 왜 그런고 하니까, 솔로몬이 우리야의 자식이라는 말이다.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의 자손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우리야의 아들인데, 그 아내는 밧세바이고 말이다. 그러니 죽은 자가 도리어 진정한 산 자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의 자식들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야는 누구의 표상인가? 예수님은 분명히 죽었는데 그래서 이 세상을 실질적으로 접수한다는 말이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심판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데, 그러니 살았다고 하는 자는 실제로는 죽은 자가 되고, 주 안에서 죽은 자가 영원히 산 자가 되는데, 그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온다는 것이다.
◈ 사람, 사자, 소, 독수리 !!
바로 그런 위치를 성경에서는 '사자(Lion)' 라고 한다는 말이다. 에스겔서 1장에 보면 보좌에서 4가지 형상이 나오는데, 사람의 모습과 소의 모습과 독수리의 모습과 사자의 모습이 있는데, 이것이 전부 다 그 공통점이 무엇인고 하니까, 그 만든 영역에서는 모두가 왕이라는 말이다. 사자는 짐승의 왕이고, 소는 가축의 왕이고, 독수리는 새의 왕이고, 그리고 사람은 지상의 왕이라는 것이다.
(겔 1: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이것은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모양만, 즉 천사들이 모양이 그렇다는 말이다. 천사는 고정된 모양이 없는데, 기능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자체가 상징적 세상이기에, 즉 허구라는 말이다. 제대로 된 확정된 모양은 천국에 있는데, 상징이라고 하면 어려운데, 그러면 모형이라고 해도 된다는 것이다. 모형은 부셔져도 괜찮은데, 왜냐하면 실재가 따로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천사들이 그 기능을 담당하는데, 그것이 이 땅에 있는 기능을 가지고 천사가 그때그때 변신을 한다는 것이다. 변신, 즉 변장을 하는데, 물론 변장을 하면 본래 얼굴이 있지만 천사는 그런 얼굴이 없다는 말이다. 기능에 따라서 모양새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나타난 천사가 사자로 나타나고, 그리고 소로, 독수리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렇게 기능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면 참으로 희한한데, 타고난 본래의 모양이 없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이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마귀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마귀도 모양이 없는데, 뿔이 달리고 녹색얼굴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귀는 천사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체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검은 사제들이라고 해도 마귀를 체포할 수 없는데, 성수를 뿌리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가능하지 말이다.
그런 마귀가 용이나 뱀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다 기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생물학적 뱀은 어떻게 보면 매우 억울한데, 마귀가 자기 모양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얼마나 미움을 받는지 모르는데, 특히 기도원 근처에 갔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용은 이 세상에 실질적으로 그런 짐승이 없는데, 그래서 적절하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지배하고 있는 실체인데, 그러니 마귀에게 아주 적절한 것이 용, 혹은 옛 뱀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우리는 일시적 모형이다 !!
그러니 "우리는 일시적 모형이다" 라는 것만 명심하면 요한계시록을 볼 때 아주 쉽게 이해가 되는데, 모형은 구원이 없는데, 실체만 영광스러우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형이 왜 건방지게 실체가 되고 사람이 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자기가 무슨 피노키오도 아니고 말이다.
피노키오라는 이태리 동화를 보면, 할아버지가 자식이 없어서 외로워서 나무로서 사람 모양의 인형을 만들었는데, 그런데 어느 날 천사가 와서 요술봉으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