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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용서 2004년 9월 19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8:21-22설교마태복음

Re..마 18:21-22 (용서)

이름 : 이근호(IP:)

용서
2004년 9월 19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8:21-22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1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용서'라는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다른 노선으로는 하나님과 인간은 통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돈을 들고 나온다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이라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제사 드렸지만 하나님은 거부했습니다.

용서하는 영역 안에는 하나님은 순전하게 '용서해주시는 분'으로 나타내시고, 거기에 비해 인간은 '용서받아야 마땅한 철저한 죄인'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다른 인생관을 염두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맨 처음 에덴동산에서 살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어디 그 동산이 인간이 친히 만들었던 세계입니까? 아니지요?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와 그 안에 살던 인간을 서로 연관시켜 생각해 주셔야 인간의 위치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인간만 고립시켜서 생각하면 안됩니다.

만약이 인간이 원해서 에덴동산이 만들어졌다면 과연 인간들이 그 안에 선악과 나무라는 것을 심어놓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란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을 일방적으로 누리면서 살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버림받고 난 뒤부터 인간에게는 달리 대안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지켜내야 하기에 그 때부터 인간들은 힘을 비축하고 힘으로 버티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타락이란 윤리적으로 죄지었다는 의미보다는, 자기 노동에 의해서 축적된 그 힘만을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는 그 상황을 말합니다. 즉 인간이 달라진 것입니다. 감사나 사랑이나 믿음이나 소망이나 용서받음보다는 오직 스스로 소유하고 힘을 의존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용서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때부터 인간 세상은 모든 것이 인간대 인간의 게임 장으로 변했습니다. 세상을 분석하는데 있어 게임으로 분석하는 것이 세상의 뿌리부터 아는데 제격입니다. 세상은 게임과 같고 점점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인간으로 변해갑니다.

바둑은 땅을 많이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고, 장기는 남보다 먼저 적의 왕을 제거하는데서 승하는 것이고, 경마는 자기가 찍은 말은 더 빨리 달리면 이기는 것이고, 화투나 포커는 높은 숫자 패를 많이 확보하면 이기는 겁니다. 스포츠는 점수를 많이 내는 쪽이 이깁니다. 노래방에 가도 마찬가지고, 미술대회, 음악 경연 대회, 심지어 미인대회에 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게임에는 결코 용서라든지, 사랑이라든지, 믿음이라든지, 소망이라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오직 기술력과 기능적인 술책이 요구됩니다. 재주껏 자신의 기능을 드러내 보이고 자신의 이기성을 재주껏 감추어야 힘이 축적되는 겁니다.

이렇게 인간 세계의 모든 방면이 다 게임이며 승자가 되기 위한 모든 사기술이 다 동원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부흥되기 위해서 사기를 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대 인간의 집단 체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세상에서는 이처럼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가 승자요 밀리면 패자로 간주하는 분위기입니다. 유일하게 사기 술이 담겨있지 아니한 것은 복음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간대 인간들끼리의 승자를 가지는 게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과 약속에 의해서 자기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소유되어야만 된다는 조건을 유일하게 철폐하고 소용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뿌리는 인간들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사랑해 주심에 있습니다.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이든 말입니다. 여기에는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이 세상에서 와서는 인간들의 치열한 게임으로 인하여 산산조각 난 그 유리 파편에 상처를 입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리에 관심이 없고 승자가 되는데 급급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밑바닥에 머무시는 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이 누구나 하나님은 운운하지만 인간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그 자체를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자기 자신에게 적개심을 가져야 되는데 오히려 걸핏하면 하나님에게 적개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만 신경 쓰고 살기에 자꾸만 자기가 하는 일을 규합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기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은 진리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중심으로 진리 관이 생기고, 죄 관이 생겨 여기에 따라 용서하고 아니 하고 본인이 결정할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요나의 경우를 보세요.

분명히 40일만 되면 참혹스럽게 멸망 받아야 마땅한 니느웨가 40일이 지나도 멀쩡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보고 있던 요나는 하나님께 적개심을 품고 자결하려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저 니느웨 사람을 용서한 것은 하나님 나다. 그런데 왜 네가 나에게 불만이냐?"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아직도 자신들의 모든 행동의 뿌리는 자기 자신에게 두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에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몇 번까지 용서해 주면 됩니까?" 이 말에는, 우리가 같이 예수님을 따라 바른 일과 진리의 길을 가는 성자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수준을 높여서 몇 번까지 용서해 주면 되느냐 하는 식이지요.

이게 얼마나 철없이 발언입니까! 왜 헤아리기는 왜 헤아립니까? 1번, 2번, 3번, 이라고 자꾸 헤아리니 7번이라는 것이 의미가 생겨버린 겁니다. 처음부터 안 헤아리면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답변하십니다. 영원한 용서를 언급했습니다.

'영원함'이란 숫자나 시간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용서함의 근거는 결코 인간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영원한 용서는 영원하신 분의 영원한 행위에 그 뿌리가 있어 용서가 주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서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사됩니다. 이것은 언약이요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맹세입니다. 인간은 용서를 요청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용서가 주어진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받은 숙제를 완성한 결과물로서 주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언약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행동 여하에 따라 자신이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들은 나름대로 죄관 같은 것을 수립해 있습니다. 용서를 하는 주체자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용서하는 이유, 용서하는 기준점, 용서하는 목적 이 모두가 자신의 것을 우상시하는 사고방식에서 도출됩니다.

용서가 성립되려면 우선 '죄'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라는 것이 정립되려면 그 보다 우선적으로 '진리'라는 것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진리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늘 새롭게 마주치고 부딪치는 경험 속에서 수시로 바뀌고 통찰하다가 때로는 실망을 하면서 재확인되는 것입니다.

과거 어릴 때 진리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막상 자신이 그 상황과 그 나이가 되어보니 그것이 진리가 아니었다는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의 진리성 안에서 살아가지만 시공간을 초월해서 절대적으로 '이게 진리다'라고 확정지을 진리를 수립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처럼 진리 관이 모호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죄 관도 경우에 따라 변동하게 되고, 따라서 용서의 내용도 달라지고 바뀌게 됩니다. 용서란 주기도문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한결같이 '용서'라는 영역의 형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에베소서 4:32-5:2에 보면,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때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신다는 겁니다. 과연 베드로 본인은 하나님 보시기에 흠 없는 생축의 제물이 될 수 있습니까?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예수님의 죽으심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비행기 폭파로 곧 죽을 상황이 되더라도 예수님의 죽으심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용서받은 자들은 죽어도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요 맹세하신 바입니다. 우리 이런 사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명감이 결여되면 반드시 자기 정당성과 자기 방어에 나서는 인간이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의 게임에서 승리자가 되고자 하며 패배자 되기를 두려워한 저희들을 이제는 그저 주시는 용서함을 증거하는 사명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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