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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3 사도행전설교(수요)-이근호자유게시판사도행전

2003 사도행전설교(수요)-이근호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 행 1:1-5 (성령의 일)
2003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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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행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행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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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사도행전인데, 이것을 누가가 썼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글을 쓰기 이전에 먼저 쓴 글이 있었는데, 그것이 곧 누가복음입니다. 거기에 보면, "데오빌로 각하여, 제가 배우고 살핀 것을 편지로 써보냈습니다" 라고 하는데 말이죠. 즉 누가 자신이 예수님의 목격자가 되어서 편지를 써서 보냈다는 겁니다.

(눅 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눅 1: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눅 1: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눅 1: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지금은 파장 분위기, 그러나 !!

그런데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지금 사도행전의 이 마당에 와서는, 이미 예수님은 돌아가신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으로 인해서 일어났던 일들은, 이제 열렸던 시장이 거의 다 마무리가 되는, 그런 파장 분위기라는 겁니다. 교주였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이 됨으로서 그 세력이 이제는 약화가 되는 말이죠.

그러니 한 때 잠시 융성을 하다가 시들해지는, 그런 사이비 종교단체의 생성과 소멸이 아니겠냐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런 이런 일을 하셨다. 그때는 참 대단했었지. 그러나 지금은 그분이 계시지 않다"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니 이제는 사람들의 뇌리에만 남아있어서 일종의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는, 그런 분위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누가는 거기에 대해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사도행전 1장 1절에 보면 "데오빌로 각하여!" 라고 하는데, 지금 전혀 그런 파장 분위기가 아니라는 의미라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자기가 두 번째 글을 쓴 이유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끝난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각하여,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의 가르침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의 예언대로 이제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거기에 대해서 편지를 쓰겠습니다. 그러니 그 내용을 보시고, '예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사라졌구나. 오히려 이제는 보이지 않는 분으로서, 그때보다도 더 활기차게 일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혼자 떠나시는 예수님, 그 이유는?

그래서 이 사도행전을 기록했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서 몇 가지 의문점이 생기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사도인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좀 데려가 주세요. 예수님 혼자 떠나고 나면, 우리만 이 세상에 남아서 죽도록 고생하지 않습니까? 스승으로서 너무 비겁합니다" 라는, 그런 생각도 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12사도를 뽑은 것은, 그들만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고 오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을 계속해서 건져내기 위함인데, 그래서 그들을 이 땅에 남겨놓고 떠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는데, 사도들이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느냐는 말이죠.

물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실 때는, 한 때 귀신도 쫓아내고, 베드로의 경우에는 물 위를 걷기도 했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것이지 제자들이 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성전세를 바치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당황했지만,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아서 아가리를 벌리게 해서, 거기에서 나온 동전으로 바치게 했다는 말이죠.

(마 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난감하기 짝이 없는 제자들 !!

적어도 그런 재주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은 하시지만 다른 제자들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제자들만 덜렁 남겨둠으로서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것인지, 예수님이 떠나고 나니 자기들끼리 모여서 부들부들 떠는 자들인데 말이죠.

그러니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지, 제자들은 난감하지 짝이 없다는 겁니다. 차라리 무능한 제자들을 먼저 데리고 가시고, 예수님이 남아서 사람들을 차례대로 낚싯대로 건지든지, 아니면 공수부대를 보내서 건지든지,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무능한 제자들을 남겨두어서 도대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겁니다. 그들이 메시야도 아닌데 말이죠. 여기서 우리가 누가복음 제일 마지막인 24장을 볼 필요가 있는데,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에 대한 해답이 나와있다는 말이죠.

누가복음 24장 45절부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눅 24: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 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눅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눅 24:50)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눅 24:51)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눅 24:52)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눅 24:53)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죄사함 !!

이것이 누가가 먼저 쓴 글인 누가복음의 마지막 대목인데, 여기 46절과 47절에 보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라고 되어있는데, 즉 '죄사함' 이라는 것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먼저 하늘로 올라가시고 제자들을 남겨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하게 인간이 되어서 자기가 지은 죄가 없어지는, 즉 창조주인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죄의 용서함을 받는 경우는, 바로 이 한 경우밖에 없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의 증인들부터 예수님이 하신 일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그때는 에스키모든 어느 종족이든 간에, 그런 것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겠다는 말이죠.

이 세상에 괜찮은 직업이 많은데, 억울함을 풀어주는 검사나 판사도 그렇고, 아닌가요? 병을 고쳐주는 의사도 그렇다는 겁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도 그렇고, 국위선양을 하는 스포츠 스타도 있고 말이죠. 하지만 자기가 그런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 김정일을 찬양하면 죄 용서가 되나요? 안 된다는 말이죠.

지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주시려고 하는데, 그것이 곧 '죄사함' 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면 뭐라고 합니까? 다른 사람이 와서 "당신은 남편을 참 사랑하는군요" 라고 하지, "당신은 남편을 참 믿는군요" 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보통 사랑한다고 하지, 그것을 믿는다고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이러한 '믿습니다' 라는 것은 부부간이나 부모와 자식간에 사용하는 말이 아니고, 이것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해당이 된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사랑의 관계는 주고 받는 관계지만, 이 믿는다고 하는 예수님과의 관계는, 예수님이 혼자 행하신 모든 일을 일방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바로 그런 입장에서 '믿습니다' 라는 것이 성립된다는 겁니다.

죄 용서는, 오직 예수 !!

좀 더 깊게 들어가서, "세례요한을 믿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을 믿습니다. 천지창조를 6일만에 한 것을 믿습니다. 다니엘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렇게 세례요한을 믿고 다니엘이 있었다는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느냐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바친 것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습니까? 전혀 아닌데, 모세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한 모세를 믿는 것이 유대인들이고, 지금 이슬람 신자들도 아브라함을 믿고 또 모세를 믿는다는 말이죠. 하지만 믿어서 자기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겁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이름을 준 적이 없다는 말이죠.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러니 자기 아내에 잘해주고 자기 남편에게 잘해주는, 전혀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말인데,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조금 그렇지만 말이죠(ㅋㅋ). 아무리 아내에게 잘해주고, 또한 목사님에게 잘해주고 해도, 그런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로 '믿습니다' 라고 할 대상은 예수님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왜 성령을 기다려야 하는가?

지금 신학자들이 사도행전 1장에서 제일 힘든 게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으면 죄 용서를 받으니, 그것을 빨리 나가서 증거하라고 내쫓는 것이 아니라, 왜 40일 동안 기다리라고 했느냐는 겁니다. 즉 "내가 약속한 것이 오기를 기다려라" 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죠.

신학자들도 이게 참 골치 아픈데, 그래서 "이상하다.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다음에 '내가 부활한 것을 보았지? 그러면 이제 나가서 증거해라' 라고 하면 되는데, 왜 그랬을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다음에 생선을 잡수셨는데, 그게 누가복음 24장에 나오지요. 그러면 그 똥은 과연 사람들이 누는 똥과 같은 똥인지, 그런 것을 따진다는 겁니다.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는지, 그런 것도 따지고 말이죠.

하지만 지금 초점은 그것이 아니라,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눈으로 부활을 보았다면, 그래서 기뻤다고 하면 그것을 증거하도록 하시면 되는데, 그런데 왜 성령이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느냐는 겁니다. 기다리지 않고 그냥 나가서 증거하면 안 되는 겁니까? 당장 나가서 길가는 사람을 붙들고 "예수님은 부활했습니다" 라고 전하면 되는데, 왜 성령이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느냐는 말이죠.

그게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나와있는데, 한 번 찾아봅시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왜 보혜사 성령인가?

여기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다" 라고 하는데, 이것이 정답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그 당시의 제자라고 하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도 보고 생선도 같이 먹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 정도만 해도 예수님의 증인 노릇을 충분히 할 수 있겠다" 라고, 자기의 의지와 노력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는 말이죠.

죄송하지만 전혀 아닌데,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이 아니라 누구라는 겁니까? 성령께서 예수님에게 대해서 증거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15장 26의 말씀인데, 성령이 오셔서 비로소 예수님에 대해서 타인에게 증거할 수 있다는 말이죠.

왜 그런고 하니까, 그만큼 이 '죄사함' 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겁니다. 자기가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또 간증거리가 좀 있다고 해서, 그런 것을 써먹어서 될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성령께서 말을 하게 해서, 그래서 말을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너희가 아니라 !!

우리가 요즘 주일 낮에 마태복음을 살펴보고 있는데, 10장 20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그런데 이렇게 성령께서 하시는데, 그 전제가 무엇인고 하니, "너희가 아니라" 라는 겁니다.

(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자기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았으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으면 그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겠느냐고 할지 몰라도,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이 있고, 내고 싶은 성질이 다들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죄사함의 능력을 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그러면 성령께서 어떻게 일을 하시는지 확실하게 말씀해주소" 라고 하신다면,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해답이라는 겁니다. 제가 이것 때문에 많이 싸우곤 했는데 말이죠.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제가 왜 싸웠는고 하니, 간증 때문인데, 즉 자기가 체험을 했다는 겁니다. 자기는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는데, 물론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때 뜨거웠다는 것은 인정을 해주겠는데, 하지만 그것을 증거한다고 해서 죄사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성령께서는 우리의 체험을 가지고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검, 즉 말씀인데, 성령은 그 성경말씀 이외에 다른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다큐, '노' !!

제가 총신의 어느 동아리에 가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약 300명이 모였는데 말이죠. 제가 "만약 예수님의 일생을 찍어놓은 비디오 테잎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그것을 성경말씀으로 집어넣을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니, 학생들이 가만히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것은 결코 성경말씀이 아닙니다" 라고 했죠. 그 말을 듣고 뒤에 있던 학생들이 몇 명 나갔는데, 각자의 노트북을 들고 말이죠. 기분이 나빠서 더 이상 강의가 듣기 싫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예수님의 일생을 생생하게 찍어놓은 기록영화가 발견되어도, 그것은 전혀 성경말씀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은 이제 이미 끝났는데, 그러니 더 이상의 간증도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성경의 저자는 제자들이 아니라, 성령께서 직접 쓰신 것인데, 그러니 누구든지 여기에 추가를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령이 와야만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고, 그렇게 구원을 받으면 성령께서는 그 사람의 체험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말씀을 가지고서, 그 사람을 통해서 죄사함을 주는 능력을 발휘하신다는 겁니다. 성령께서 말이죠.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조금 걱정이 되는 분도 있지 싶은데, "목사님, 저는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큰일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는데, 왜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합니까? 제가 지금까지 10년이나 믿었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됩니까? 이 답답함을 좀 해결해주세요" 라고 말이죠.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그런 분이 없지 싶은데, 이 설교테잎을 듣는 분들 가운데는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ㅋㅋ).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왜 이 말씀이 중요한고 하니, 기도원에서 자꾸만 성령을 받은 증거물에 대해서 유행을 시켜놓으니까, 그래서 "랄랄라, 룰룰루" 라고 하지 않으면 성령을 받지 않은 것이고, 뜨겁지가 않으면 성령을 받지 않은 것이고, 안수해서 병을 고치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않은 것이고, 또 목사를 섬기지 않아도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서 사기를 친다는 말이죠.

그렇게 온갖 잡동사니를 다 모아서 거짓을 퍼트리기 때문에, 제가 이 말씀을 이렇게 다시 한 번 강조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하게 되고, 그러니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이미 성령을 받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예수님을 훌륭한 스승이나 지도자나 영웅으로 본다고 하면, 소위 '3대성인' 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죄송하게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예수님을 존경해도, 예수님을 주가 아니라 자기가 본 받아야 될 모델로서 여긴다면, 그런 사람은 매우 곤란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고, 우리의 구세주라는 말이죠.

각각 은사들의 경우에 !!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여러 가지 은사들이 나오는데, 방언, 통역, 병고침의 은사 등등, 많이 나오죠. 특히 10절과 11절에 보면 방언과 통역의 은사가 나오는데 말이죠.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 당시에는 계시인 성경말씀이 아직까지 종결되지가 않았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성경말씀이 그때까지는 아직 없었다는 말이죠.

이미 교회는 세워져있지만, 아직 계시인 성경말씀은 완성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즉 죄사함에 대한 그 내용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했는고 하니, 모든 사람들이 다가 아니고, 특별히 몇 몇 사람에게 계시에 관한 능력을 주신 적이 있었다는 말이죠.

그 당시의 방언이라는 것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외국말인데, 그러니 당연히 통역이란 것이 필요하고, 그러면 사도가 와서 그것이 복음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해서 옳다고 인정되면, 그것이 그 당시의 임시 방편적인 계시의 말씀으로서 활용이 되었다는 겁니다.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그러니까 "랄랄라, 룰룰루" 라고 하는 것이 방언의 기준이 아니라, 방금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성령께서는 누구를 증거한다고 했습니까?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보면, 성령께서는 오직 예수님에 관해서만 증거한다고 했는데, 사도들이 자기들 눈으로 목격한 것을 가지고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성령께서 그 누구보다도 더 예수님을 확실하고 제대로 완벽하게 알기 때문에, 그래서 사도들을 제치고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거하시는데, 그 당시에는 임시적으로 방언과 통역을 통해서 알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것을 은사라고 하는데, 그러니 방언이나 통역은 그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말씀과 합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것으로 결정이 난다는 겁니다.

왜 성령을 기다려야 하는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그리고 그 예수님에 대해서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지만, 하지만 그 목격자도 인간이기에 결코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몇 날이 못되어서 누군가가 오시니 기다려라" 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도대체 누구를 기다리라는 겁니까?

그것은 약속하신 어떤 분이 오시는데, 그분은 예수님에서 완벽하기 아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분이 오셔서 그 사람 속에 들어가야만, 그런 사람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죄 사함의 능력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성령을 받은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하는 것인데, 구세주로 말이죠.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여러 가지, 즉 병을 고치든 무엇을 하든 간에, 그런 것을 통해서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이다" 라는 것을 증거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방식으로 다양한 은사들이 펼쳐진다는 말이죠.

이미 확정된 성경 !!

그러니 은사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서, 그것이 성경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우리가 판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사도가 아닌데 어떻게 판정할 수 있느냐고 할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성경이 종결되었기에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떤 사람은 "누가 간증을 하던데, 그것이 성경에는 없지만 은혜가 되던데요?" 라고 한다면, 그게 아니라, 성령께서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하시는데, 이미 확정된 성경 안에서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한 성령이 오기를 기다려라" 라고 하셨던 겁니다.

그러면 그 성령을 사도만 받고 우리는 받지 않은 겁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도 받았는데,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세상 것이 사소하게 보이는데, 반면에 예수님이 주라고 하는 진리 너무 너무 크게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일들은 너무나 사소하게 여겨지고 말이죠.

아하, 이게 사소한 것이구나 !!

마지막으로 이 말씀만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어떤 정형외과 의사가 있었는데, 실력도 있고 해서 교통사고가 나서 생명이 위급한 사람들을 많이 고치고 했는데, 그래서 주위에서 칭찬도 자자하고 말이죠. 그래서 자기가 의사라는 것을 통해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그런 뜻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니까 크게 달라졌는데, 어떻게 말입니까? 이제 정작 자기에게 중요한 일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죄사함의 능력을 증거하는, 즉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그런 하나님의 일이 크게 눈에 들어오고, 그동안 자신이 자랑스러워했던 의사로서의 외과기술과 같은 것은 너무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당신은 은사를 받았군요" 라고 하게 되는데, 무슨 은사인가요?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은사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형외과 의사의 은사라는 것은, 의료기술에 하자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의료사고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이고 죄를 사해주시는 구세주임을 증거하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죠.

여러분, 죄사함의 일은 우리 인간이 전혀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고 성령이 오시기를 기다리라고 했다는 말이죠. 이처럼 하나님 일은 반드시 자신을 부인하는 모습과 병행하게 되어있는데, 오직 그런 자만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증거하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라는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어찌 시비를 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온 족속의 죄사함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앞에 우리가 얼마나 초라하고 무능한 존재인지를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았다는 것을 마음껏 증거하는 사명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5,10,27 정리함 - 녹취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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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득영(IP:203.♡.97.152)

15-12-25 20:36

제가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싶어서 정리를 한 것입니다.
기존의 설교녹취도 있는데,
그것은 이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난 다음에 복기를 하시면서 올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한 것이 더 풍성하고 낫습이다. ㅋㅋ
102강까지 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빠른 시간에 올리겠습니다.
덕분에 대구녹취가 늦어진 점 양해를 구합니다.
이것도 빨리 해서 올리겠습니다.
참, 이한례 집사님께서 성경강해의 사도행전에 좀 올려주셨으면 좋겠네요.
올리세요. ㅋㅋ

박종은(IP:118.♡.228.126)

15-12-26 12:29

정말로 믿습니다의 대상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 하나 꼼꼼하게 정성다해 녹취하신 것, 너무 귀한 내용입니다.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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