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강-YouTube강의(세상)151203-이 근호 목사
137강-YouTube강의(세상)15120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69.34)
137강-YouTube강의(세상)151203-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제 137강, 제목은 간단합니다. ‘세상’입니다. 세상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인간들의 조합, 모임, 인간들이 이해하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성경을 보게 되면 인간들만의 세상이 아니고 천사들이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그 말은 인간들에게 관심 두고 인간들을 위하여 이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다른 분의 의도 때문에 세상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세상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연 내추럴natural이라고 이야기해요. 자연이라는 뜻은 스스로 있는 것이다. 자연과학도 그렇게 이야기해요. 근데 주인공이 없다는 거예요. 주인이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 말 들을 필요도 없이 서로서로 의논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죄란 뭐냐, 공동체 내에서 수치를 느끼는 것을 죄라고 간주합니다. 다들 동의하는데 동의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냥 고개 숙이고 전통에 따라라. 안 그러면 우리 공동체에서 니 추방당해.” 이게 옛날 고대사회에서부터 오늘날 교회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면 여자가 시집갔다. 그러면 여자는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죽어서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친정보지 마라. 그래서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하면 여자가 시집가서 쫓겨나면 친정에서는 안 받아줘요. 그걸 가지고 출가외인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해요. 요새는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잘못 활용하고 있어요. 친정에서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니까, 딸보고 돈 내라고 하니까, 딸이 출가외인인데요. 나는 몰라요. 자기 필요할 때만 출가외인이지만.
원래 출가외인은 서글픈 용어죠. 다시는 친정보지 마라. 다시 말해서 그 공동체에 순종하고 그 공동체에서 지적을 받게 되면 니는 우리 가문에도 수치스러운 죄인이 된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럼 그걸 누가 만들었는가, 전통이 만들죠. 왜 이 전통이 그렇게 압력을 행사하는가, 인간의 정신구조는 대대로 양육 받은 전통에 의해서 인간의 정신활동이 상승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을 딱 깨보면 나름대로 살아왔던 자기 가문의 전통들을 입으로 끄집어내놓고 토론하고 그것과 대화에 나서고 그렇습니다. 자기 집안의 내력, 자기 집안의 인식을 개성 있게 전부다 내놓는 거죠. 그러면 하나가 되기가 곤란하니까 그때는 양보하고 타협해서 대충 맞추는 식으로 그렇게 되는데,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10장 34절에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고 되어 있죠. 아까 강의 제목이 뭐냐 하면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누가 관리하느냐, 인간이 관리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님이 관리하는데, 창조주가 관리하는데,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면 있는 화평도 깨러 옵니다. 있는 화평도 깨러 오시는 겁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사람들은 아무리 세상이 번잡해도 우리 식구끼리 똘똘 뭉치면 된다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그런 의도를 아시고 그 식구끼리의 틈새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 뒤에 보면 35절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가장 최소한도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우리끼리만 이라도 마음 맞춰서 살자‘가 행복의 그 온실, 최후로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온실인데, 그 온실마저도 주께서 사정 봐주지 않고 침입해버립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세상의 기본은 가정이고, 가정이 확대되면 세상이고, 사람은 거기서 행복을 찾고자 합니다. 그뿐이에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유를 알아야 되겠죠. 아브라함의 경우에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니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어디로요?” 그거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부르다 보면 만나는 곳이 바로 약속의 땅입니다. 그 땅을 아브라함이 미리 알 필요는 없다. 가르쳐주지 않아요.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브라함보고 갈 바를 알지 못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가는 거예요. 믿음입니다.
보통 인간의 세상은 미리 알고 그걸 붙잡으려고 하는데, 주님의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거예요. 믿을만해서 믿겠다는 것은 인간적인 신임에 불과하지만 모르면서도 부르심만 있으면 그게 어디든지 가겠다고 하는 것은 이건 완전한 자기포기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판단력을 포기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는가, 가는 방법은 있습니다. 부르심이 그냥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전환시키는 그런 사태들이 일어납니다. 그 사태에 대해 한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 48절에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외침을 같은 공동체 세상은 말릴 수가 없습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세상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단 한 사람,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왜 기다리느냐, 누군지 모르지만 그 메시아로 인하여 자기가 소경되었다고 어딘가 원인과 결과를 이렇게 연결시킨 겁니다.
쉽게 말해서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내가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할 때는 내 인생이 내 마음에 흠뻑 들 경우에 그런 용어를 쓰거든요. 뭔가 일이 잘 되었을 경우에, 예상 밖의 성공했을 때, “주여 내가 내 자랑하고 싶지만 꾹 참습니다. 제가 아는 멘트를 사용하겠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저 착하죠?” 하는 그게 거기에 가미되어 있죠.
그러나 소경 바디매오 같은 경우에는 누가 욕해도 거기에 이의 걸지 않는 망해버린 인생입니다. 누가 욕해도, “그래서는 되겠느냐?” 지적질 할 정도로 망해버린 인생이 바로 소경 바디매오입니다. 그런데 소경 바디매오는 자기가 소경 된 것은 이게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뭐냐 하면 메시아와 연결되기 위한 그 소경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바디매오는 내 인생이 내 인생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서 소경되어야만 그런 팔자를 주로부터 부여받은 거예요. 그러한 연결과정속에서 뭐가 나오는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용어 나오죠. “불쌍히 여기소서” 용어 나오죠. 다윗의 자손, 불쌍히 여기소서, 그 노선이 뭐냐 하면 주께서 유발시킨 노선입니다.
누구든지 바디매오처럼 자기가 그런 노선에 있지 아니하면 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없어요.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고백을 내놓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메시아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서만 구원해주죠. 그럼 우리는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요소로써 인생을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불쌍한 존재고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고. 그 가운데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주님의 공로로만 우리가 거기서 긍휼을 입게 되고.
따라서 누구나 눈 뜬 바디매오가 되든지, 눈 감은 바디매오가 되든지, 어쨌든 간에 내가 나 된 것은 그 원인을 주님 쪽에서 찾아야 될 그러한 운명에 속한 사람만 구원이 되는 겁니다. 이 바디매오가 우리의 대변자요, 인생의 표준입니다. 아이구, 쯧쯧, 안 됐다, 소경됐네, 이렇게 동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도리어 바디매오가 우리를 동정해야 할 입장에 있어요. 얼마나 니가 잘난체 했으면 니가 이런 것도 이해 못하나?, 내 심정도 이해 못하냐? 이렇게 치고 들어옵니다. 우리를 지적질하고 고발하는 바디매오.
우리는 바디매오 안에 계시는 주님으로부터 날마다 지적당하는 죄인이어야 마땅합니다. 주님은 소경된 자, 절름발이를 낫게 해줄 때, 이거는 나는 건강하니까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하지 마세요. 얼른 우리는 병신 된 자, 소경된 자로서 합류해야 합니다. 주님의 긍휼이 내리쬐는 그 조명에 바다에 우리가 합류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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