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강-YouTube강의(삶과 현실)151203-이 근호 목사
136강-YouTube강의(삶과 현실)15120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69.34)
136강-YouTube강의(삶과 현실)151203-이 근호 목사
제 136강, 제목은 ‘삶과 현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것이 자기가 태어나면서 현실이 마련되어 있고 자기는 그냥 현실에 맞추어서 그냥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 자기 삶을 한 모퉁이 잡아가지고 그 자리에서 자기가 평생토록 살아가면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그 삶이 끝나고 난 뒤에 주어진 현실에 대해서, 이 세상 현실이 미리 그걸 이야기해줘야 될 텐데, 그냥 무작정 죽는 날만 기다리죠. ‘죽고 난 뒤에 뭐 되겠지. 가보면 알겠지’ 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하지 않고 현실 속에 미래의 삶이 미리 여기서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걸 캐치하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은 태어나면서 눈에 보이는 현실이 있고 그 현실은 굉장히 크고 넓거든요. 그렇다면 자기의 삶은 거기서 한 모퉁이를 담당하는 거예요. ‘그래. 니는 니대로 그렇게 살고 나는 나대로 소박한 삶을 살다가 나중에 나이 들어서 죽으면 그만 이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구성되어 현실이 모두가 되고 전부가 되겠죠. 그리 되면 뭐가 문제가 되느냐 하면 현실이 끝났을 때, 자기가 눈을 감았을 때에 본인이 어디에 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과학적에서는 이야기하기를 화장해서 재로 뿌리면 다시 자연 현실로 섞여버린다, 끝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 이야기해볼 때 그럼 인생은 어차피 살다가, 살다가 못 견뎌 죽으면 그만인 거죠. 그러면 사람들은 왜 태어났는지 이유도 없고 단지 살아 있기에, 살기 위해서 꾸역꾸역 사는 것뿐이죠.
그렇게 과학적 인식이 되어 버리면 남는 것은 뭐냐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만 살면 되는 세상이죠. 나만 살면. 나만 살면 남는 거예요. 남이야 죽든 말든, 울든 말든 나만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나만 버티고 살면, 쉽게 말해서 나만 행복하면 되는 세상. 버티다, 버티다 못 버티면 힘을 합작해서, 모아서라도 기어이 한 구석 차고 들어가서 살게 되면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의미라고 보는 겁니다.
옛날 어렵게 살 때에, 식구들 많고, 방 하나에 이불이 하나밖에 없을 때, 하룻밤 추운 날 어떻게 지냈는가, 그냥 자기만 이불 돌돌 감으면 되죠. 옆에 있는 동생이고 형이고 어떻게 되든지, 춥든 말든 자기만 포근하면 되죠. 상당히 이기주의적이지만, 그 이기주의를 능가하는 윤리도덕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도 조건이 있어야 돼요. 베풀어 준 만큼 뭔가 많은 수익을 가지고 되돌아 올 때만 베풀어 줄 용의가 되어 있고 그렇게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만인에 대해서 만인이 투쟁하는 사회” 토마스 홉스 라는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세상은 동물들의 왕국인데, 인간이 동물이죠. 동물들의 왕국인데 강자는 살아남고, 못한 사람은 강자의 종이 되어서 그 정도로 살아남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강자든 약자든 간에 늙으면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뒷방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만약에 인생사는 게 전부라면 일단은 사는 것은 간단한 논리가 됩니다. 힘을 다 모아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아 산다. 그러면 양심이라는 것은 뭐냐, 잊어버려라. 양심보다도 내 생존이 우선이다. 내 가족과 내가 잘 되는 것이 우선이고 양심이라는 것은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인간에 대해서, 인간은 그렇게 살았으면 잘 사는 거거든요.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잘 사는 건데, 이상하게 우리의 마음속에 그것이 왠지 자랑스럽지가 않아요. 자랑스럽지 않고 그냥 나만 위했고 나만 챙겼다는 생각이 드는 그것이 자랑스럽지 않은 것을 가지고 수치스럽다고 하거든요.
결국 인생 산다는 것은 뭐냐 하면 꾸역꾸역 자기가 치밀어 오르는 수치를 매일같이 짓밟고 그것을 억지로 억누르면서 내가 나한테 설득하는 겁니다. ‘바르게 살아야 되지만 사는 것이 우선이라서 좀 참아다오! 나중에 돈 벌고 한가할 때 남 도와줄게.’ 이런 식으로 자꾸 자기에게 변명하면서 참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그런 것은 우리가 이해합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세상에 살면서 끝까지 교회까지 온다는 겁니다. 교회 와서 그것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교회 와서 뭐 새로운 것이 없고 교회도 똑같이 그런 역량을 키우는, 하나의 학원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성경을 안 펼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펼치게 되거든요.
펼치게 될 때에 성경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도대체 성경이 우리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예레미야 31장 3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성경에서 현실이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남긴 흔적이 있다는 겁니다. 그걸 캐치하지 못하면 교회만 들락날락했지, 결국은 그 미래는 보장받지 못하죠. 그리고 난 뒤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죄를 사하고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 쪽이에요.
그러면 하나님 쪽에서 어떤 일을 벌이느냐 하면, 우리가 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될 만한 모든 것을 끄집어내는 그 평지, 그 바탕으로서 우리의 삶을 영위하게 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이 있는데, 약속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너희 죄를 용서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는 기쁜 소식을 주께서 마련하셨습니다.
주께서 마련한 것이 죄의 용서와 기억치 아니함을 준비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제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버티면서 나만 살면 된다는 식으로 그저 밀어붙이는,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이게 의미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 성경 말씀과 우리와 욕구와 이게 서로 교류를 해보면 의미는 뭐냐, 주께 발각될 수밖에 없는 죄를 짓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죄 중심으로 내 인생을 다시 정립해야 죄 용서하시는 분과 다시 매치가 되고 연결이 되죠. “그저 나는 열심히 살다보니 살았습니다.” 라고 한다면 주께서 준비해놓으신 것과 연결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니가 잘했다는 말인가?” 하시면 “최선을 다했습니다.” 라고 우길 거예요.
그 최선을 다했다고 우기는 것이 교회의 대표기도 시간에 계속해서 반복해서 나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입장에서는 뭐냐 하면 주께서는 이미 죄를 주목하고 그 죄를 용서하는 흔적을 너희들 속에, 너희들 신앙고백 속에 남겨줬다는 겁니다. 우리는 말하죠. “살다보니까 그 흔적을 놓쳤어요.” 그게 뭡니까? “니는 어떻게 해도 니는 실패한 인생이다.”
우리는 망해야 마땅하고 실패해야 마땅하고 더 나아가서 지옥가야 마땅함을 주께서 구원의 흔적으로 이미 우리 인생 속에 집어넣은 겁니다. 이게 바로 회개입니다. “주여! 살아봤자 죄만 증거할 뿐인 인생을 그동안 살아왔습니다.” 라는 고백. 그럴 때 주께서 이야기합니다. “니가 그런 고백을 하는 그런 구조, 틀, 그 틀은 이미 죄를 용서하려고 준비된 틀에서 나왔던, 같은 공간에서 통하는 구조다.” 라고 보신 거예요.
따라서 회개는 우리의 결심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용서받기로 작정된 자에게만 그런 회개가 나오는데, 그 회개마저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용서의 흔적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주님의 번져진 약속을 보여주는 삶이 성도의 특이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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