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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51215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29-메를로-뽕띠자유게시판미가

20151215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29-메를로-뽕띠

이름 : 한윤범(IP:14.39.134.60)

20151215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29-메를로-뽕띠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 강의는 메를로-뽕띠(1908~1961), 얼마 살지 못했지요. 53세로 죽었지요. 이 사람의 사상은 한 마디로 해서 몸의 현상학이라고 돼있는데, 우리가 몸은 알잖아요. 현상학이란 게 뭐냐? 어떤 사람이 나는 현상학이라고 주장한다면, 반드시 그 전제가 뭐냐 하면, 기존의 것은 틀렸다는 것을 언급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자기 사상이란 게 의미가 없잖아요. 기존의 사상이 불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불만인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기존의 사상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에서 오는 불만을 갖고 있어야 돼요.

이 사람이 1908년이니까 20세기 사람인데 그럼 20세기 올 때까지 수많은 사상과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세상에 대해서 이것이 옳다, 이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메를로-뽕띠는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세상을 잘못 보고 있다고 단정 짓고 자기 사상을 펼치게 되는 겁니다. 메를로-뽕띠 이후도 마찬가지지요. 메를로-뽕띠까지 포함해서 잘못됐다고 사상을 내세우는 겁니다.

이게 유대인들이 성경해석법이에요. 유대인들의 성경해석법은 그냥 산 위에서 기도하고 도 닦는 게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계룡산에서 계시 받았네, 라고 저를 욕하는데 진짜 계룡산에서 계시 받는 식으로 받는 게 아닙니다. 전부 파악해서 다 틀린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제대로 꽉 맞게 거의 합치되지 못하게 설명하지 못하게 어설프게 한다든지 꽉 조이게 하지 않고 듬성듬성 대충 넘어가는 그 틈새를 더 세밀화 시키면 더 꽉 조이니까 현실과 논리가 딱 맞으니까 오히려 한 발자국 진화된 진보된 진리가 되겠지요.

그런 식으로 학문이 늘어나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해석은 역사가 흐를 때까지 계속 되다가 메시아가 오게 되면 모든 것은 확연히 드러난다는 게 유대인의 성경해석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어느 학자가 이의를 걸겠습니까? 아무도 걸 사람 없지요. 왜냐하면 그게 개혁주의기 때문에. 개혁주의가 뭐냐 하면, 정답은 없어요. 갈 때까지 가보는 겁니다. 정답은 역사에 맡기는 겁니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역사가 진리에요. 아마 다음 되면 우리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진리에 합당하겠지,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럼 이렇게 되면 개혁주의 해석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냥 대충 믿어 봐. 결국 이렇게 되지요. “목사님, 어떤 걸 믿어야 구원받습니까?” 그냥 대충 믿어. 나도 몰라. 후대에서 더 옳은 진리가 나온다면 나도 거짓말쟁이 되니까 나도 몰라. 그냥 대충 믿어. 신학교에서 순진한 신학생들이 교수한데 어떤 진리를 묻고 해석을 요구할 때 교수들이 대부분 하는 발언들이 뭡니까? 그건 내 분야가 아니고.

그럼 짓궂은 학생이 묻지요. 그럼 교수님처럼 믿어야 구원받습니까? 너는 너대로 믿고 나는 나대로 믿고. 신학에는 믿음 이야기하지 맙시다. 우리는 학자들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이것만 이야기해야지 개인적인 신앙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교수가 잘리는 수가 있어요. 우리 교단 사상과 안 맞는다고 하면 자기 밥벌이가 날아가는 수가 있기 때문에. 짓궂은 학생이라고 했지만 나이 적은 학생이 아니고 전부 40~50대, 뒤늦게 사업하다 망해서 신앙은 관심 없고 그냥 장난치면서 족구하면서 재미나게 보내는 살만 찌고 졸업하는 사람들의 관심사겠지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메를로-뽕띠가 이전에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 메를로-뽕띠가 몸의 현상학이라고 했거든요. 현상학은 메를로-뽕띠 이전에 후설이란 사람이 주장했는데 그전의 사상이 뭐가 문제가 되어서 현상학이란 그런 사상을 주장했는가? 거기 나와 있어요. [현상학은 과학의 진리성을 의심하는데서 출발한다.] 과학자들이 들으면 굉장히 기분 나쁜 이야기에요. 과학은 진리의 모든 것을 독점한 분야입니다. 진리를 물으려면 과학한테 물어야 돼요. 달에 토끼가 있느냐, 그런 것을 물을 때, 과학자는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달엔 토끼가 없었습니다. 왜? 가보니까 토끼가 살만한 공기가 희박하고 온도차가 있어야 못 삽니다. 끝. 끝난 거죠.

요한계시록에 번개가 치고 우레가 치고 지진이 일어나는데 그 원은 뭡니까, 하나님이 진노입니까? 과학자는 간단히 이야기하죠. 우레와 번개, 이것은 지질현상이고 공기 중에 두 개의 대립되는 전기적 현상입니다. 왜 갑자기 우리나라에 홍수가 나고 또 가뭄이 듭니까? 하나님의 진노입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아닙니다. 엘니뇨현상입니다. 엘니뇨현상이 뭡니까? 엘니뇨현상은 적도부근의 수면이 올라가서 그렇습니다. 왜 올라갔습니까? 무역풍이 적게 불어서 그렇습니다. 왜 무역풍이 적게 붑니까? 지구 자전의 속도가 달라져서 그렇습니다. 왜 달라집니까? 지구 내의 자기장에 변화가 생겨서 그렇습니다. 왜 변화가 생겼습니까? 그건 뭐, 변화가 생기는 걸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없는 거예요.

과학에서 언급하는 것은 뭐냐 하면, 전에도 이야기했지요. 인간은 사물이다. 물체에요. 인간이 물체라면, 물체는 주변에 둘러싼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게 물체잖아요. 1655년에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했습니다. 1632년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이야기했어요. 1543년에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이야기했고.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했는데 발견한 인간을 뭐로 만드느냐 하면 물체로 보는 겁니다. 물리학에선 이걸 질점이라고 해요. 수학에서 점이란 부피와 무게가 없는 거예요. 물질을 보여주는 점이다. 점이라면 인간 고유의 가치, 자존심이라는 건 일시적인 문제고 결국 한 마디로 죽으면 그만이라는 거예요.

컵이 깨지면 나는 아깝지만 남이 보면 컵 하나 사면 되니까 별로 아깝지 않지요. 점점 더 과학적 사고가 되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물체가 분해, 해체된 걸로 보면 가슴 아프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는 게 가슴 아프지 않다면 자연적으로 종교라는 현상이, 바람이 불면 향기가 날아가는 것처럼 인간이 아우라처럼 걸치고 있던 종교, 내세문제, 영혼문제도 과학 바람에 다 날아가는 거죠. 갈수록 인간은 종교와 멀어지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이 물체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는 물체로 살면서 재미나게 살면 되는 겁니다. 재미나게 사는 게 뭐냐? 자극적이고 즉흥적인 것. 요새 여러분들이 세대 차이 나는 중2부터 해서 젊은이는 엉망이라고 하는데 말로만 하지 말고 그게 과학기술 발전의 여파입니다. 그렇게 살벌한 과학이라면 우린 그걸 하지 않으면 되잖아, 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모르는 이야기에요. 뭐냐 하면, 뉴턴이 발견했잖아요. 사람이 과학을 발명했지만 뉴턴 이전부터 세상은 만유인력으로 돌아갔지요. 그렇다면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가 과학을 발달시켰다고 자부심을 갖는 게 아니고 자연이 인간보다 더 세다. 이걸 소급해서 계속해서 그걸 느끼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즉흥적인 겁니다. 임시적이고. 재미나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 그렇게 돼요.

자극적이고 모든 게 즉흥적이라면, 자극적인 것은 쾌감을 줘야 되거든요. 쾌감을 주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쾌감 주는 방법은 재미나는 일. 주변에서 재미나는 일을 구입하려면 돈이에요. 돈을 어떤 식으로 버느냐, 이것이 한시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유일한 목표가 되고 만 겁니다. 너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으면, 자연이 그런데, 뭐. 보통 다들 그래요, 하지요. 더 나가면 새고 꽃이고 뭐고 대자연이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누가 나서서 독보적으로 윤리나 도덕을 외칠만한 자격자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강의만 해도 프랑스 수능은 합격해요. 어떤 누구도 진리를 외칠 중심 자리에 선 듯 나설 위인은 없습니다. 왜? 모든 것은 자연주의, 과학주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물질이기 때문에. 물질의 특징은 본인이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주변에서 흔들리는 대로 이끄는 대로 갈 뿐입니다. 이게 완벽한 진리에요. 그리고 그 완벽한 진리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연의 산물, 다른 말로 과학의 산물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에 그래요.

여기에 대해서 메를로-뽕띠나 철학자들은 분통을 터뜨리는 겁니다. 왜 자신이 과학의 진리를 발견해놓고 자기가 활용한다고 분명히 인간은 주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니까 결국 인간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고 처음부터 있었던 만유인력이 우연적으로 만들어낸 게 바로 인간이에요. 이게 오늘날 천문학의 끝입니다. 지구 말고 다른 외계에 인간과 같은 생물체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만나서 뭐 할 건데? 결론은 이미 나와 버렸어요. 만약에 외계인이 있다. 악수했다. 이야기한다. 나오는 대화는 너나 나나 자연이 만들었지. 그게 결론이에요. 이미 결론을 알고 있어요. 네가 나를 만들었어? 이런 결론은 아니에요.

결국 오늘날 과학은 진리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고 돈을 목표로 기술 발전을 위해서 과학이 시녀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제가 아까 철학자들이나 메를로 뽕띠는 분통을 터뜨린다고 했지요. 분통을 터뜨릴 때 다른 사람은 피식 웃지요. 너도 돈 없이 못 살면서 무슨 분통을 터뜨려. 확고한 과학에 네가 건방지게 대들어! 이렇게 되는 겁니다.

분통을 터뜨리면서 나오는 게 뭐냐 하면, 1페이지 위에 있는 현상학이라는 겁니다. [과학은 이런 인간 주관적 의식과의 상호작용을 무시했다.] 여기서 상호작용을 무시했다고 메를로-뽕띠도 이야기하고 후설도 현상학에서 이야기한 거예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현상학은 과학이 문제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뒤에 나오는 사상체계입니다.

현상학에서 과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결국은 과학적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과학이 낳은 사생아 또는 물체덩어리에 불과하잖아요. 그러면 인간 고유의 가치라는 게 있을 자리가 없어요. 만유인력에 의해서 내가 나왔으니까. 인간에 세포가 있는데 세포가 주변의 중력이 작용하잖아요. 그러니까 중력에 의해서 인간이 만들어진 거예요. 세포를 쪼개보면 분자, 원자, 원자는 쿼크로 돼있고. 모든 것은 중력에너지에 의해서 무에서 유로 힉스 장이라는 곳에서 만들어진 거란 말이죠.

그렇다면 인간은, 나는 이런 내가 되고 싶다는 자기주장은 같은 건 소용없는 짓이 돼요. 나는 이런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은 태어난 중력장에 의해서 그런 주장이 나왔구먼. 이렇게 이야기하면 할 말이 없잖아요. 네 주장이라고? 네 주장은 없어. 그래서 과학은 주체가 없어요. 자아는 있어요. 그러나 주체는 없어요. 자아는 몸에서 나온 거고 주변의 환경에서 만들어진 게 주체입니다.

어느 젊은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잖아요. 커피 타고 예, 예하는 이건 주체에요. 집에 가서 자기 성질 죽인다고 너무 피곤해서 상사 욕하는, 혼자 있을 때 하는 이건 자아고. 모였다하면 갑자기 자아는 쑥 들어가고 주체가 나옵니다. 타인의 요구가 나의 주체는 만들어내는 거예요.

현상학은 그 자아라는 것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몸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물질과 영혼으로 돼있기 때문에 물질이 우선이냐, 영혼이 우선이냐고 따진 거예요. 따지는 방법이 딱 하나였어요. 나는 생각한다. 그것으로 따져보는 겁니다. 따진다는 것은 의심한다는 뜻이고요. 따져보니까 몸이 우선이 아니고 자아가 우선이었다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의심해도 의심하는 나는 의심되지 않잖아.

그러니까 내가 가장 근원적이다. 내 자아가 근원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현상학은 특히 메를로 뽕띠는 그 자아가 우선이 아니라 몸이 우선이라고 본 거예요. 그럼 자아는 뭐냐? 자아는 몸이 있고 난 뒤에 생긴 게 자아라는 겁니다. 몸이 먼저 있고 자아가 있다는 겁니다.

메를로-뽕띠, 당신은 과학을 싫어했는데 과학은 어떻게 생겼느냐? 과학은 자연에서 왔잖아. 메를로-뽕띠는 그렇게 하지 않고 주관적 의식과의 상호작용에서 했다는 것이 현상학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1페이지 위에서 여섯 번째 줄에, [과학은 이로서 진정한 의미나 가치를 놓치고 있다.]고 본 겁니다.

자아와 바깥과 상호작용은 후설의 현상학인 반면에 내 몸과 바깥의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메를로-뽕띠의 현상학, 몸의 현상학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현상학은 현상학인데 기존의 현상학과 달리 몸의 현상학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 뒤에 봅시다. [메를로-뽕띠는 이런 현상학하고도 거리를 둔다. 인간의 선험적 주관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현실 문제를 지극히 추상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를로-뽕띠는 데카르트의 경험주의와 후설의 현상학 모두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펼친다.]

다시 강의하면서 여러분의 기억을 위해서 설명해드립니다. 데카르트나 후설의 현상학이나 메를로-뽕띠는 살의 현상학은 과학을 반대하기 위해서 한 겁니다. 과학을 진리를 다 차지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반발하면서 과학은 진리를 모른다. 오늘 강의가 어려워질까 겁나서 미리 결론부터 합니다. 과학이 진리를 모른다면 과학은 뭐냐? 과학은 환상이다. 자연인데. 자연도 환상이죠. 그러면 자연 속의 인간도 환상이다. 지금 결론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럼 환상 아닌 게 뭔데? 인간의 신체냐? 신체도 환상이다. 환상 아닌 건 살. 신체와 살을 구분했어요. 그래서 신체의 현상학이 아니고 살의 현상학이에요.

어째서 메를로-뽕띠가 대범하고 단호한 주장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오늘 강의 시간에 살펴보는 거예요. 특히 메를로-뽕띠나 어떤 사상을 들을 때는 곱게 순응할 생각하지 말고 반발할 생각으로 들어주셔야 돼요. 그래야 차이가 등장하고 차이가 등장해야 양쪽 다 알아요. 네가 백날 해봐야 이렇게 해서 거짓말이라고 염두에 두고 어떤 강의나 설교나 봐야 돼요. 그래야 자신의 한계가 드러나요. 그걸 평가하려는 본인의 밑천이 적다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지요. 그 사람의 주장, 논리를 반발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가 무식 덩어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 됩니다.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것 여러분 다 아시죠. 네 꼬라지를 알라하는데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진짜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심 없는 사람은 사실 교회 오지도 않고 교회 나와도 잡담하려는 것밖에 안 돼요. 십자가 자체가 날마다 우리의 죄를 들춰내기 때문에 이만하면 나도 안다, 이만하면 됐다는 입장에서는 성경 보거나 복음 들을 자격도 안 되죠. 교회 나올 이유도 없고.

그렇다면 메를로-뽕띠가 기존의 과학이 왜 문제인가? 1페이지 중간에 나옵니다. 두 가지 테스트하는 거예요. 하나는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응시한다. 첫 번째 나는 생각하는 것의 한계가 뭐냐 하면, [경험 자체를 일단 의심(=반성)을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를 비판하는데 참된 판단과 거짓된 판단을 누가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 판단자가 없다는 거예요. 말 맞지요.

나는 의심한다, 나는 비판한다, 나는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판단은 누가 하는데? 본인이 하잖아요. 본인이 한 건 맞나요? 본인이 했기 때문에 무조건 맞는다는 것은 억지잖아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데카르트가 의심을 통해서 기껏 안 것은 뭐냐? 자아는 완전하다, 자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그걸 안 게 아니고 메를로-뽕띠 보기에는 세계-내-존재라는 걸 확인할 뿐이다. 세계 안의 존재다. 존재가 절대적 존재가 아니고 세상 안에 들어있다. 전체 안에 부분으로 들어있으면서 감히 건방지게 부분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전체에 대해서 할 말이냐 그겁니다.

동사무소 9급 공무원이 온지 2개월도 안 됐는데 동장님에 대해서 어떻고 이야기한다는 게 됩니까? 그것도 말단 직원인데. 동장끼리 논하는 것은 정책상 상위에 있는 거거든요. 이건 하위직 공무원에게 꼭 알려줄 필요 없는 거예요. 그러면 9급 공무원들은 상위직에서 판단하고 정책 내리는 것의 진의를 알까요, 모를까요? 모르지요.

나치 게슈타포, 비밀경찰이 시키는 대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유대인들을 집어넣는다. 샤워한다고 해놓고 가스로 다 죽였잖아요. 그럴 때 그 행동 책임을 말단 직원에게 물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중에 전범 재판에서 당신은 왜 사람을 죽였습니까, 할 때 그 사람이 할 말이 있지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행동은 누가 시켜서 한 거예요? 사람들은 내가 했다고 하거든요. 내가 했다는 나라는 것에 대해서 메를로-뽕띠가 그걸 거부하는 거예요. 당신이 한 게 아니요. 당신의 몸이 당신이 했다고 우기게 만든 거야.

장발장이 도둑놈이 직업이 아니잖아요. 장발장이 옥에 갇힌 이유가 뭡니까? 배고파서 빵 먹었잖아요. 누가 배고파요? 장발장이 배고픈 게 아니고 사실은 장발장이란 신체가 배고픈 거예요. 그런데 왜 데카르트는 장발장이 배고프다고 이야기했느냐? 장발장이 배고프다면 자아가 자기 신체 하나 정도는 책임져야 되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자아가 자기 몸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이건 산상설교에 나오지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간음죄지요. 그걸 자아가 책임질 수 있습니까? 예쁜 여자 보면 안대하고 눈 가리면 간음 안 한 거예요?

메를로-뽕띠는 이야기합니다. 어떤 여자가 지나가는데 간음죄 짓지 않으려고 갑자기 선글라스 쓰고 고개 돌리며 안 보는 척했을 때 지금 행동 보세요. 나는 저 아름다운 여인을 안 보겠다. 그런데 이미 이 문장 속에 다 나오지요. 이건 의식에서 나오잖아요. 메를로-뽕띠 이전에 모든 철학자들은 의식이 자아에서 나온다고 본 거예요. 그런데 메를로-뽕띠는 의식이 몸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나는 저 여인이 아름답지만 절대로 내 눈엔 아름답지 않아요. 저건 추한 거야. 이렇게 하면 간음죄 안 짓습니까? 그 여자 근처도 안 갔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었다면 이미 간음죄가 성립되는데 그 간음죄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의식은 내게서 나왔기 때문에 내가 부족합니다, 불교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를 쳐서 복종하고 모든 귀를 막는다고 해서 의식이 없어지느냐 이 말입니다.

메를로-뽕띠 이전의 모든 철학은 윤리, 도덕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윤리, 도덕적이 아닌 진리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윤리, 도덕과 관련된 것은 인간속의 의식이잖아요. 태도 이런 걸 말합니다. 의식을 어떻게 자아가 잘 정돈해서 죄를 적게 짓고 착한 일 많이 할 수 있는 의식으로 전환하는 이것이 바로 철학과 윤리와 도덕, 과학이 하지 못하는 다른 분야에서 해야 될 일이라고 그런 중차대한 사명감을 지고 외쳤단 말이죠.

그런데 메를로-뽕띠에서 끝나버려요. 의식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의식도 몸에서 나온 건데. 따라서 의식이 자아에서 관리 안 된다면 그전의 사상가들이 메를로-뽕띠에 대해서 뭐라고 비판하겠습니까? 윤리, 도덕 마지막 바탕까지 완전히 다 날아가 버린 셈이 되지요. 쉽게 말해서 누가 윤리, 도덕을 외치면 너나 잘하세요, 하는 것과 똑같다 이 말이죠. 너는 깨끗하냐 이 말이에요.

오늘 아침에 우리교회에 질문했는데, 질문하신 분이, 목사님의 신학은 완전한 신학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 던졌어요. 제가 답변하기를 완전한 신학을 기대하는 그것이 악마의 심성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분은 따로 있는데 내가 왜 완전해야 되지요. 이 세상일은 누가 합니까? 내가 합니까, 주님이 하십니까? 주님이 완전하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굳이 내가 완전한 신학을 따로 끄집어낸다는 그 의도가 바로 나도 신이라는 악마적 심정 아닙니까.

메를로-뽕띠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데카르트가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윤리, 도덕을 염두에 두고 자아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 자아를 좋은 자아로 괜찮은 자아로 쉽게 말해서 사람다운 사람, 인간다운 인간, 남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 훌륭한 사람, 이게 과학이 범접할 수 없는 생물학, 물리학, 화학, 그것만 진리가 아니고 또 다른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철학과 윤리, 도덕이 전공분야로 해야 된다는 철학적 존재, 가치, 거기에 신학도 포함되겠지요. 교회는 필요하다. 왜?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근거는 자아의식에 있단 말이죠. 그걸 무너뜨리는 거예요.

두 번째 시험이 나는 응시한다. 나는 내 눈을 통해서 책상을 응시한다. 여기 보면, 환지통 환자가 나옵니다. [환지통(幻脂痛)이란, 이미 사지가 잘려서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두뇌에서는 계속 아픔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착각이죠. 아이고, 오른팔이 아프네. 오른팔 없는 사람이 오른팔이 아프데요.

[이것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인간의 세계관은 본인의 절대적 의식만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세계로부터 계속 영향을 받는 ‘세계내존재’라는 점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즉 이미 있는 세계로부터 도리어 찌그러뜨림을 당하는 처지에 놓여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계속해서 영향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미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있던 세계를 유지하다보니까 그걸 지속하는 버릇 때문에 환상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 어떤 것에 대해서 주장한다는 것은 새로운 내 살과 바깥의 자연과 상호작용에 의해서 늘 수정돼야 되는데 수정이 더딘 거예요. 그럼 계속 아픈 거예요. 없는 데요. 옛날 있을 때처럼 버릇을 갖고 하는 겁니다. 이 버릇은 인간의 의식에서 나오거든요. 실제는 잘렸는데 의식은 옛날 버릇이 남아서 오래 가는 거예요. 선입감 같은 거죠.

그래서 뭐냐? 중요한 이야기에요. 메를로-뽕띠는 대전제에서 [명증적으로 느끼는 자기의식은 늘 거짓이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 모든 언어는 거짓이에요. 그러면 성경의 헬라어, 히브리어는 뭡니까? 거짓이에요. 원어는 거짓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거짓된 언어로 계시를 이야기해요. 인간은 그걸 해석하면서 거짓된 의식으로 거짓된 방법으로 원어를 거짓되게 해석하면서 그걸 주님의 계시라고 일방적인 처단을 내리고 단언해버리죠.

그러한 절차, 논리를 끄집어내는 것은 메를로-뽕띠의 살의 현상학에서만 비로소 가능해요. 그럼 기존의 신학은 왜 안 되는가? 기존의 신학은 명증적인 것이 따로 있어요. 나는 존재한다, 내가 판단하는 것은 무조건 옳은 거야, 라는 것을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원어를 분석하고 철저하게 역사적인 모든 해석을 검토한 결론이 뭐냐? 그래서 이게 진리라고 주장해왔던 겁니다. 그런데 메를로-뽕띠는 한 마디로 그게 거짓이다. 환지통 환자다.

자연이 벌써 바뀌었는데 5초 후가 바뀌었는데 우리는 5초 전의 사상을 쥐고 있으면서 진리를 판정하는 판정자의 입장에 서있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메를로-뽕띠의 주장이라면 참신하고 옳은 주장인데 왜 그 사람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은 옳고 그르고 없어요. 돈밖에 몰라요. 내가 바른 판단하느냐는 것도 없어요. 그저 세계-내-존재로 공동체죠. 자기들끼리 누가 잘났나, 누가 더 위대하느냐, 욕망의 싸움질하기 바빠서 이런 것에 관심 없다니까.

오죽했으면 책을 읽으세요. 인문학 강좌가 왜 나왔겠습니까? 책 안 봤다는 거거든. 책을 안 볼 때는 그들은 뭘 한 거예요? 돈 버는 일을 한 거예요. 그들이 교회 오는 겁니다. 메를로-뽕띠는 거짓이란 걸 알았잖아요.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은 거짓이란 것도 몰라요. 본인이 어느 정도 거짓인 줄 몰라요.

2페이지 넘어갑니다. 첫 번째 줄에. [궁극적인 환원을 향하여 늘 시도하게 되지만 그것이 늘 실패로 끝난다.] 세 번째 줄에. [이러한 실패성은 매개가 되는 언어로 표현되기에 언어가 품고 있는 본래의 의미 찾음도 덩달아 늘 실패한다.]

그러면 언어가 실패하게 되면 언어가 완벽하지 않지. 이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언어가 내가 사용하기 이전에 남들이 먼저 사용해요. 그 언어로 나한테 뭘 요구하느냐 하면, 자기들이 사용한 언어의 의미에 합치되도록 정신적으로 강제하게 되고 지배하게 되고 통제하게 돼요.

너는 이런 인간 돼야 돼. 이런 인간 안 되면 호적에서 뺄 거야, 라고 아빠, 엄마가 이야기한다면 그건 언어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네가 이런 정도로 공부 못할 줄 몰랐다. 이렇게 공부하려면 나가 죽어라. 우리 집안사람 아니다. 이렇게 언어로 이야기할 때 합치될 의미를 알아야 되잖아요. 부모가 사용한 의미가 분명치 않아요.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잘해야 부모 마음을 기쁘게 할지 자식들이 몰라요. 엄마, 아빠도 엉터리 실패할 수밖에 없는 언어를 남발하고 있으니까.

그 다음에 2페이지 위에서 일곱 번째 줄에. [메를로-뽕띠는 공격하고 있다. 과학적 진리를 비롯해서 모든 인간 사회에서 진리로 등장되는 것들의 명증성은 어떤 식으로도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에 대해서 증명되지 않는다는 말이지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에요. 과학이 불필요한 건 아닙니다. 진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밤 까는 기계를 만들기 전에는 손으로 일일이 깠는데 기계를 만들고 난 뒤에 밤을 쉽게 깠다.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게 왜 불필요해요. 하지만 밤 까는 기계가 진리는 아니란 말이죠. 그런 다른 사람이 진리가 뭔데? 밤 까는 기계는 뭘 요구하느냐 하면, 밤 까는 기계가 편리하잖아요. 네가 편리하다고 느낀다면 너도 편리함에 맞춘 인간이 되기 위해서 밤 까는 기계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으는 기계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골프를 거의 안 쳐봤습니다만 골프 치는 게 재미있지요. 그리고 골프 치면서 만나는 사람은 돈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럼 그 모임에 들면 자기 신분이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마음에 흡족하고 만족하고 쾌감을 느끼잖아요. 그걸 목표로 잡으면 골프 치기 위한 돈을 모아야 되는 거예요. 결국 인간은 그걸 목표로 한다면 돈을 생산하는 기계가 되는데 돈 버는 기계가 진리냐고 묻는 거예요. 메를로-뽕띠가 우리한테.

골프가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밤 까는 기계가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니고. 인간은 점점 더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조차도 하지 않는데 휘말리고 있다는 겁니다. 메를로-뽕띠가 안타까운 게.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합당한 인간이냐는 질문 자체가 차단되는,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도 없고 요구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걸 물을 필요도 없는 거고.

여기에 대해서 과학자 말고 철학자들은 굉장히 반격을 하죠. 그 반격 중에 프로이트가 등장합니다. 어떤 인간에겐 장애가 있는데 그 장애를 억압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흔히 친한 친구 죽음에 너무 슬픈 나머지 친구가 죽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그처럼 모든 인간 속에는 진짜 인간으로 태어나서 진리로 살아야 되는데 그놈의 돈이 뭔지 돈 때문에 진짜 내가 인간 되는 것을 누르면서 그동안 살아왔단 말이죠. 그런데 누른다고 눌려지는 게 아니고 그게 꿈에 나타나고 평소에 무심코 행동 가운데 나타나다보니까 이게 누적이 되다보니까 정신병이 생겼다는 겁니다.

현대인들은 정신병이 많은 게 아니에요. 전부 다 정신병자에요. 처음에는 아니겠지. 그러나 벌써 세 살 때부터 정신병자 되는 거죠. 추성훈이 딸 추사랑 나올 때부터 아이는 정신병 든 거예요. 아빠 저것 사줘. 본인은 추성훈이 아니고 그만큼 돈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내는 일본의 제일 모델도 아니에요. 그런데 추사랑이 그런데 놀러가니까 아빠 나도 저런데 놀러가. 놀러가는데 그냥 갑니까? 돈이 있어야 가지. 그럼 아이가 억압되겠지요. 왜 우리는 내가 원하는 걸 못 살까? 그래 우리 집안은 가난해서 못 사. 그럼 걔가 그걸 전부 포기해요? 이미 봐버렸는데. 그걸 누르죠. 누른다고. 나도 언젠가 돈 벌어서 사랑이 엄마처럼 하겠어. 누르잖아요.

이 정신병자를 고칠 수 없어요. 정신과 의사가 정신병자거든요. 이렇습니다. 돈이 목적이 된다면 정신병자에요. 이건 본래 인간과 달라요. 왜냐하면 본래 인간은 메를로-뽕띠나 여러 철학자에 의하면 몰라요. 자본주의가 왜 나쁘냐 하면, 인간이 누구냐를 알려줘서 나쁜 것도 아니고 인간이 몰라서 나쁜 게 아니고 모르니까 에이씨(이게 중요해. 중간 매개로), 돈이나 벌자고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알아서 안 알려준 그게 나쁜 게 아니고 모르면서 돈이 전부라고 그게 진리를 대용하는 식으로 세상이 흘러가는 그게 나쁜 거예요.

해답이 없으면 천부여 의지 없으면 손들고 오면 되는데 해답 몰라도 안 와요. 뭐만 있으면 돼요? 돈이 곧 행복이에요. 전에는 행복을 필요한 걸 얻기 위한 지폐였는데 이제는 돈 자체를 모으는 거예요. 옛날에는 상품이 좋았어요. 지금은 상품을 살 수 있는 돈이 더 좋아요. 우리 정신이 그렇게 개조되었어요. 자본주의 때문에.

그래서 자본주의의 폐해가 열 가지 있는데 다 설명할 건 없고, 욕망을 돈 주고 산다는 게 가장 나쁜 점이에요. 욕망을 풀어야 되는데 풀지 않아요. 욕망을 계속 누적시켜요. 욕망을 돈으로 사는 것, 그걸 광고라고. 광고는 계속해서 욕망을 생산합니다. 우리 학원에 오시면 한 달 만에 수학 20점 늘어납니다. 그걸 보고 에이, 거짓말이라고 하면서도 잊지를 못해. 그저 구라. 구라의 대결이에요.

2페이지 밑에 봅시다. [신체는 더 이상 의식의 작용을 받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거짓이었을망정 그런 의식을 이끌어내는 능동적인 계기로 역할하고 있다.]

메를로-뽕띠, 당신은 진리를 아느냐? 신체가 날마다 거짓을 유발하면서 그걸 능동적 계기로 그러니까 거짓을 이야기하면서도 역시 잘하고 있어. 오늘도 거짓말했어요? 잘했어요. 자기 자신의 신체의 거짓적 행동을 두둔하고 옹호해주는 그러한 자아가 신체에서 계속 뿜어져 나온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20151215a 부산강의.hwp (34.5K), Dow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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