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의존교회151113a,b (뾰족한 수)―이 근호 목사
서울 의존교회151113a,b (뾰족한 수)―이 근호 목사
이름 : 김창길(IP:118.91.121.36)
서울 의존교회151113a (뾰족한 수)―이 근호 목사
디모데후서 2장 3절부터 하겠습니다.
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갑자기 우리가 전쟁 중에 있다는 상황으로 몰아붙입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전쟁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 기관총 앞세우고 말 달리고 활 쏘는 그런 전쟁만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말이나 총이나 비행기나 그런 전쟁이 없으면 상당히 모든 것이 평화롭다고 그렇게 생각하죠.
이것은 모든 것이 오해인데요. 그 오해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자기 신체적 전쟁, 자기 신체를 중심으로 해서, 이 신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겁니다. 가시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인다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자신의 신체를 자기가 보존하려고 전쟁을 벌인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라는데 문제는 뭐하면 그리스도 예수가 안 보인다는 거예요. 보이지를 않아요. 귀신하고 전쟁하렵니까? 귀신하고 전쟁해요? 보이지 않는 분에 편성해서 군사가 된다면, 제가 먼저 질문할게요. 그 보이지 않는 분에게 전쟁하는 그 대상이 눈에 보일까요? 안 보일까요? 객관식 문제로 둘 중에 하나에요.
내가 보이지 않는 분의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다면 그 그리스도와 전쟁하는 상대자, 대상자는 눈에 오일까요? 안 보일까요? 1번 보인다. 2번 안 보인다. 안 보여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 내가 보이잖아요. 내가 보이니까 나의 전쟁만 할 수 밖에 없어요.
오늘도 넥타이 매면서 출근하면서 스스로 자기 자신한테 정신 차려! 반듯하게 살아! 이 세상은 자칫하면 코 베이는 거야! 정신 차리고 실수 없이 업무 잘 수행하고 오늘도 남한테 좋은 칭찬받고 자, 출근이다! 이렇게 해 놓고 저녁 되면 보람찬 역할을 했노라 하면서 집에 온다 이 말이죠. 그러면 하루 종일 누구하고 전쟁합니까?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내가 눈에 보이는 내 신체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기 때문에 적이라는 것도 당연히 눈에 보이는 자들이 나의 적이 되는 겁니다.
돈 떼먹고 도망친 사기꾼, 그게 적이 되는 거죠.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운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와서 속도위반이라고 할 때 경찰이 나의 적이 되죠. 그런 전쟁을 우리가 평소에 한다는 것은 결국 이 말은 뭐냐 하면 태어나 지금 까지 나의 전쟁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도바울이 그리스도 군사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는 누구의 전쟁을 했습니까? 분명히 그는 여호와를 위한 전쟁을 했죠. 그리고 여호와는 눈에 안 보이죠.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기전에 사도바울의 실수가 뭐냐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입장에서 서서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했는데 그 적들은 눈에 보였을까요? 안 보였을까요? 눈에 보였잖아요.
그 대표적인 자가 누구이냐, 로마제국이에요. 이스라엘이 그 당시에 로마제국의 압제를 받았잖아요. 유대인 입장이라서 노골적으로 구체적으로 여호와를 믿는 집단을 핍박하는 쪽이 분명하게 드러났죠. 그러면 로마 제국만 망하게 하면 되겠죠. 그러면 구약의 약속대로 메시아는 누구를 경향해서 싸우면 되겠어요? 로마제국을 무찌르게 되면 자동적으로 메시야는 누구편이다? 우리 이스라엘 해방자, 이스라엘의 편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왔을 때 예수님의 적이 누구였습니까? 로마였습니까? 그렇게 믿고 있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예수님께서 공생에서 마지막 예언한 대 대목이 뭐였습니까? 로마는 망한다! 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이 망한다 했습니까? 이스라엘이 망한다죠. 차라리 그날에 안식이 안됐으면 좋겠구나! 돌 위에 돌이 남지 아니하고 모든 아니 된 자들은 저주가 있으리라 갑자기 적들이 쳐들어와 모든 것을 다 부셔 버린다. 예수님께서 이런 예언을 하셨잖아요. 그날에 깜깜하고 이스라엘이 멸망한 날이다 그 이야기나 구약 이스라엘 때에 그들이 바벨론에게 압제 당할 때 그들은 선지자를 요청했고 오신 선지자에게 예언된 예언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잘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 잡혀야 마땅하다. 물론 이사야에 보게 되면 너희를 치는 몽둥이가 오히려 너희들이 매를 더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끝나고 난 뒤에야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분명히 그렇게 예언되어 있거든요.
제가 지금 구약 이사야 끝부분을 완전히 다 한 거예요. 핵심만 잡은 거예요. 하나님은 언약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대로 실시하신다. 실시하시는데 그 실시하시는 방법이 뭐냐,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를 이방나라한테 포로 잡히게 하는 것이 언약의 방식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입장에서 듣기 난처한 이야기이에요. 쉽게 말해서 “혹시 집안이 교회 가십니까?” “예, 교회 갑니다.” “교회 왜 가십니까?” “구원 받으려 갑니다.” “그래요? 제가 예언해 드릴게요. 집안 몽땅 망하고 난 뒤에 구원될 겁니다.” 이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당신 집안이 완전히 거덜 나고 난 뒤에 하나님나라 천국 갈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 “아이고 오랜만에 귀인을 만나서 진짜 복음을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럴 사람 별로 없어요.
아니 구원이 뭔데? 왜 우리 멀쩡한 집안이 망하냐? 정답은 딱 하나에요. 구원을 누가 방해한다 말입니까? 누가 누구를 방해해요? 바로 구원받겠다고 하는 본인이 예수님의 구원을 훼방하고 있는 방해자라는 사실을 그동안 전혀 그런 생각이 없이 산거예요. 그냥 교회 열심히 다니고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구원된다고 이렇게 생각했지 내가 내 구원을 훼방하는 자라는 인식이 도대체 어떤 시점에서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1번 만사가 안 될 때, 2번 만사가 참 잘될 때, 어느 쪽입니까?
둘 다 아니에요. 이스라엘은 모든 일이 망한 쪽으로 갔을 때 그저 이방나라 바벨론 망하고 그저 로마제국 망해서 이 불쌍하고 불쌍한 하나님이 만드신 이 나라가 여호와의 명예와 여호와의 영광을 보란 듯이 세계만방에 떨치기 위해서 거봐! 이렇게 당당하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잖아! 그러한 자랑꺼리 그러한 멋있는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그러한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나 학수고대했습니까? 그들은 그 메시야가 올 수는 여권을 다 준비했어요.
성전에서 제사 드렸죠. 율법으로 온 민족을 율법화 시켰잖아요. 그리고 모든 민족을 신자와 시켰습니다. 이 정도하면 메시야가 와도 꿀릴 것 없다! 메시야가 참 잘했다, 그래 훌륭하다! 나온다고 잘 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완벽에 완벽을 가하면서 율법 중심적으로 그들이 했는데 그게 악마가 한 짓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노선이 그런 노선이 아니에요. 세례요한이 와서 회개하라 도끼 나무뿌리 이야기할 때 바리새인들 보고 너희들은 임박한 진노만 있으면 되지 나한테 오기는 왜 왔어? 너희들에게 임박한 진노만 임하는 거야! 일방적으로 보자마자 그런 소리를 해 데니 바리새인들이 영문도 모르고 저게 미쳤나? 이렇게 나온다 이 말이죠. 네가 뭔데 우리보고 뿌리째 잘릴 존재라고 그렇게 무슨 근거로 욕설하듯이 하느냐?
세례요한은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을 했느냐 하면 오실분이 오면 전부 다 작살난다! 다시 말 해서 이스라엘아, 메시야가 오기는 오는데 너희들을 멸망시키는 메시야가 온다 이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한테 충성을 다하고 섬기고 싶어서 마음속에 충성과 열심히 많은 우리 자신들에게 너희들을 멸망하기 위해서 메시야가 온다고 하면 그 메시야는 우리가 추구하는 메시야와는 유사하겠습니까? 정 반대이겠습니까? 정반대죠.
오늘 디모데후서 2장 3절 하면서 이렇게 보시면 돼요. 하나님의 전쟁의 적은 적이 있어서 전쟁하는 것이 아니고 적을 일부로 만들어 내면서 전쟁한다는 사실입니다. 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전쟁이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의 모든 전쟁은 가시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신체적 전쟁입니다.
신체적 전쟁이라 하는 것은 내 몸 하나 편한 거예요. 내 몸 편 하려고 하면 일단 일 안하면 되고 일 안하고 살려면 돈 벌면 되고 결국은 쩐의 전쟁, 돈의 전쟁이 되겠죠. 나쁜 친구 있어도 돈으로 구워삶으면 되니까 돈만 있으면 좋은 친구 많이 있으니까 여유 있게 취미 생활 해 가면서 이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겠죠. 이미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전쟁 중인데 이 전쟁이 누구의 전쟁이냐, 나의 전쟁이죠. 이 전쟁은 나를 지키기 위한 나의 전쟁입니다.
오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인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저도 난감해요. 나의 전쟁이라는 게 없거든요. 왜 없느냐 하면 이 나가 아침에 거울을 보면 나가 보여요? 안 보여요? 보이잖아요. 가시적 전쟁에 있어서 적은 가시적 일 수밖에 없어요. 그것은 아까 제가 예를 들었죠. 이스라엘이 눈에 보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한 적은 누구다? 악마의 나라가 아니라 누구다? 로마제국이라고 했죠.
가시적 제국에서는 가시적 적밖에 보이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어떠한 루트나 통로가 없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의 적이 돼요. 왜? “나”가 보니까요. 예수님께서 이런 말을 했거든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어라! 이렇게 되어 있죠.
전쟁에 가시적 전쟁에서 비가시적 전쟁을 하려면 눈에 보이는 것을 원래 보이지 않는 주인에게 돌려주는 과정과 절차가 필요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가이사의 동전, 이게 누구의 얼굴이냐?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이사에게 돌려주어라! 그러면 가이사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간단하죠. 세금을 내면 되죠.
세금을 안 내면 어떻게 됩니까? 전쟁이 나고 세금을 내게 되면 일시적인 평화가 주어지는 겁니다. 전쟁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줘라 이 말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전쟁을 누가 해요? 보이는 그들이 나서서 전쟁을 하려는 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의 적은 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