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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여자 151209우리교회창세기

여자 151209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여자(창세기 2:21-25)

이근호

15-12-09 21:13

여자

2015년 12월 9일 본문 말씀; 창세기 2:21-25

(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에 들어와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로서 사람은 사람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남자로서 상대방 남자나 여자를 보든지 아니면 여자로서 상대방 남자나 여자를 바라볼 뿐입니다.

즉 남자로서 갖는 안목으로 남자는 이러해야 하고 여자는 이러해야 함을 말할 뿐입니다. 혹은 여자로서 갖는 안목으로 남자는 이러해야 하고 여자는 이러해야 함을 말할 뿐입니다. 이는 곧 남자와 여자를 초월해서 진정한 사람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실정을 알 수 있는 자리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남자, 아니면 여자로서의 배타적 성(性)별을 부여받으므로서 전체 사람을 아는데 있는 모든 인간들의 제한되어 있고 한계가 갖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를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의 권한이요 창조주만이 갖는 안목입니다. 따라서 사람이란 하나님만이 아시는 ‘사람’이 지닌 창조의 원리를 그냥 펼쳐나갈 뿐입니다.

그렇다면 남자의 안목과 여자로서의 안목의 차이점을 무엇일까요? 우선 남자나 여자나 모두 ‘둘이 하나됨’의 원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2는 어디까지나 2이며, 1은 어디까지나 1이기 때문입니다. 2가 1이 되는 산수에 대해서 인간은 당연히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1→1이 되는 것만이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들이 범죄하고 난 뒤, 2는 2로서 나란히 병행할 뿐이었습니다. 2가 1이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남자는 남자 본인을 유일하게 특출나게 여기고 여자를 그저 그런 자아를 보조하는 자리에 배치하려고 합니다. 즉 여자는 남자의 존재를 떠바쳐주는 기능으로만 그 존재 가치가 있다고 남자는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배우기 이전에 이미 타고납니다. 아무리 남자가 여자와 사이좋게 지내고 평등을 외쳐서 남자 본인만으로 충족되는 그 1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중심에 두고 여자가 자기에게 부속품으로 붙여서 남자의 1됨을 빛내는 것이 여자로서의 본래의 자리라고 남자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생각과 다릅니다. 여자는 자기를 독보적 존재로 간주하고 남자를 자신을 보조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를 통합해서 나타나는 그 1를 생각합니다. 더불어 같이 살므로서 생겨나는 그 1를 지향합니다. 반면에 남자는 자기 자신을 1로 생각하는 그 1를 위하여 여자가 도우미로 붙어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2등급 인간이라는 겁니다. 여자 다음으로는 고양이나 개들들이 이겠지요.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고 난 뒤, 이 세상에서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그런 고유한 여자는 사라지고 모두 ‘남성의 것’으로의 여자만 있을 뿐입니다. 고유한 여자란, 남자조차 없는 세계, 곧 하나님만 계시는 그 세계의 원리를 품고 나타난 존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시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 남자 제일 중심부에다 여자를 집어넣으신 겁니다. 남자의 갈빗대를 가지고 여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사람의 창조 원리는 여자가 원래 있었던 그 자리가 틀어쥐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즉 남자는 여자의 등장을 통해서 자신의 결코 조물주가 아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창조의 원리에 따라야 하는데 그 창조의 원리가 ‘여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중심부에 새겨지게 됩니다. 이런 관계에 따라 2가 1이 되는 겁니다. 즉 ‘남자가 없는 세계’에서 나타난 ‘여자의 세계’가 남자로 하여금 창조원리에 묶여 살도록 만드는 겁니다.

‘남자 없는 여자만의 세계’가 곧 하나님 나라를 대변합니다. 요한계시록 12:1,5에 보면,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해내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지상의 일의 핵심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남자 없는 여자로 이루어진 세계’가 곧 구원된 이후의 세계라는 겁니다. 메시야는 ‘여자의 후손’이지 결코 ‘남자의 후손’이 아닙니다. 여자 쪽에서 창조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원래 2가 1이 되는 그 원리를 사모합니다 즉 여자는 ‘새로운 판’를 지향하고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보다 더 특출남을 염원합니다. 여자는 약자며 상대적으로 남자는 강자입니다. 하지만 약자 쪽에 구원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여자는 범죄하고 난 뒤, 완력면이나 경제적, 사회적 여건에서 남자에게 밀리고 또한 종속되어 생존을 부지합니다.

힘 있는 남성들에게 억압을 당하고, 이용당하고 압제를 당합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남성에게 예속되는 이 모습 속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구원의 원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5-7에 보면, “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인들의 순종을 보면서 남자들은 아내 위에 군림할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아내에게, 즉 아내를 통해서 나타나는 메시야의 원리에 도리어 목숨을 내놓고 희생해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엡 5:25) 이처럼 남자나 여자나 모두 예수님의 교회의 비밀스러운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리입니다.

진정한 하나됨은 예수 그리스도 몸뿐입니다. 교회는 그의 신부입니다. 이 세상 가정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징벌 취지에서 던져지듯이 주어진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의 관계만이 궁극적 하나임을 잊지 맙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 속에 작용하는 낮아짐의 원리를 무시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5-12-10 06:57

16강-창 2장 21-25(여자)151209-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2장 21-25절입니다. 구약성경 2페이지입니다.

창 2:21-2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남자와 여자만 이 본문에 등장하는 게 아닙니다. 누가 여기 등장하느냐 하면, 여기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남자가 보는 여자, 여자가 보는 남자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남자 여자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 여자를 합하여서 그것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장26절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안목은 우리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남자와 여자를 초월해서 제 3의 관찰자, 주시할 수 있는 위치를 하나님만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그것은 다 엉터리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사람이라고 말할 입장이 못 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나는 사람 중에서 남자고 너는 사람 중에서 여자다.” 이렇게 해줘야 됩니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자 여자 합해서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는 그 개념은 남자와 여자에 속하지 않은 창조주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시선이거든요. 그런데 이미 우리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그 고유의 시선에 우리가 끼어들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남자 아니면 여자, 여자 아니면 남자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인간이 갖고 있는 것은 남자면 남자로서의 독특한 안목이 있을 것이고 여자는 여자로서의 남자와는 다른 독특한 안목이 있을 뿐이에요. 그 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라는 통합된 안목은 인간에게 갖추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범죄 한 인간 입장에서 이 본문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이해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왜 아담은 흙으로 만들고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었습니까?”라는 겁니다. 이렇게 아이가 물었는데 갈빗대로 안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말이지요.

이미 인간이 범죄하고 난 뒤에 ‘흙으로 만들려면 다 흙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갈빗대로 만들려면 다 갈빗대로 만들든지 해야지.’라는 의식과 생각이 난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안목에서 벗어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라고 받아들이는 것 하고 따지듯이 “뭔가 이상하잖아요.”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네가 이상하다.” 네가 마치 남자와 여자를 봐야 될 특출 난 지점을 갖고 있다고 우기고 싶은 거예요. 내가 보는 시선, 내가 보는 관찰이 항상 옳아야 된다는 생각을 이미 갖고 있어요. 어린애의 생각이지만 그것이 범죄 한 증거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달라.” 그게 정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돼.” 어떻게? 내가 문제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경외해야 돼요. 내가 아는 것은 전부 다 죄며 엉터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높여줘야 됩니다. 우리 생각대로 하지 않음에 대해서 영광 돌리면 돼요. “달리 이야기해서 내 인생이 내가 계획한대로 안되게 해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돼야 돼요. 그래서 오늘 본문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은 아는 바가 없어요.

특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할 때 이것도 인간은 이해가 안 됩니다. 둘이라는 것은 숫자로 2고 한 몸이라는 것은 숫자로 1인데 2는 1이 될 수가 없습니다. 2는 영원히 2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2를 가지고 1로 한다면 하나님은 숫자 헤아리는 것도, 산수도 초등학교 1학년 학생만도 못해요. 어떻게 2가 1이 돼요? 담임 선생님한테 걸리면 빵점입니다. 어떻게 2가 1이 될 수가 있습니까? 2는 2고 1은 1이에요. 2와 1은 달라야 되고 다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체제에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 둘이 한 몸이 된다면 한 몸 되고 나서는 둘이 아니어야 되고, 둘을 유지한다면 결코 한 몸이 되지 않아야 되고, 어떻게 둘이 한 몸이 되는지 인간의 지혜로는 납득할 수가 없지요. 납득할 수 없다는 말은 벌써 인간은 하나님께서 처음 만든 그 인간 아니라는 뜻입니다. 붕괴되어야 되고, 무너져야 되고, 주님 앞에 저주받고 지옥 가더러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 벌로 인하여 지옥의 벌을 받아도 마땅합니다. 개뿔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천국 가겠다고 나서면 안 되지요. 모르면 모르는 값을 해야지요. 벌을 받아야 돼요.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도 모르면서 천국이 어떤 동네인데 거기 갑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영어도 할 줄 모르면서 미국 간다고 하는 것과 똑같아요. 영어도 못하면서 미국 가서 살겠다는 거예요. 어떤 곳에 가려면 그쪽 원리에 대해서 감을 잡아야 되고 그쪽 원리가 나의 원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을 해줘야 되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둘은 둘이고 하나는 하나이기 때문에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려야 됩니다. 둘이 하나가 되지를 못하는 것을 이해 못한다는 것은 나한테 문제가 있고 ‘이게 죄지은 것이 맞구나. 범죄 한 것이 맞구나.’ 그렇게 돼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본문을 가지고 기껏 내놓은 해석이 가정화목, 그리고 행복,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가정이 잘돼야 사회가 잘되고, 사회가 잘돼야 교회가 잘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거예요.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범죄 한, 이미 죄를 짓고 난 뒤의 남자의 안목입니다. 남성은 자기 자신을 독특한 위치에 높여놓고 상대방 여자를 볼 때 자기세계의 일부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자는 자기를 높여 보는 것이 아니고 남자와 더불어 새로운 판을 생각합니다.

제가 한 말을 두고 “남자나 여자나 별 차이점이 없어 보이네요.”라고 하실 것 같은데 다시 말씀드릴게요. 여자부터 먼저 이야기할게요. 여자는 남자를 보면서 하나의 판을 생각해요. 이것이 인간이라고 자기 자신과 남자를 같이 포함시키는 반면에 남자는 자기를 특출하게 높여놓고 여자를 자기의 예속물로, 자기의 일부로 간주해서 자기중심의 판을 짜는 거예요. 이래도 “그래도 똑같네요.” 한다면 다시 할게요. 이번에는 남자부터 먼저 할게요. 남자는 자기 자신을 높여서 특출한 존재로 위에 놓고 그 다음에 여자를 자기 아내로 보고 ‘이것은 인간이 세계가 아니고 나의 세계’라 해서 남자 중심의 나의 세계가 있는 반면에 여자는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고 여자와 남자가 하나가 될 때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인간의 세계라고 그 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런데 남자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이미 범죄하고 난 뒤의 일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뒤에 갖게 된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이 세상은 아담의 세계에요. 아담의 세계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일부일 뿐이에요.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라 하는 것은 남자의 뒷바라지, 일본말로 남자를 시다바리 해주는 거예요. 남자의 보조 격, 남자가 주인이 되고 여자는 남자 앞에서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뭐냐? 남자의 작은 부분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남자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본래의 여자는 날라 가버린 거지요.

그래서 남자의 세계에서 여자라 하는 것은 사실은 여자는 없고 약한 남자로서 버티면 여자는 남자로서 살 수 있는 그런 팔자,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범죄 한 남자의 안목에 의해서 성경전체가 해석되지요. 가정이 잘 돼야 된다. 여자가 잘해야 가정이 된다. 그러면 여자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누가 심사하고 평가하는데? 남자가 평가하고 남자가 심사해요. 그것은 여자 고유의 능력이라는 것은 이미 날라 가버린 겁니다. 그냥 남자의 일부, 남자의 새끼손가락, 남자의 발가락, 그 정도로 남자에 포함되어 버렸어요. 여자 고유의 것은 없습니다.

죄짓고 나서 결국은 여자는 없는 거예요. 남자뿐인 거예요. 여자는 없고 남자뿐이라는 말은 무엇도 없는가? 여자도 없는 동시에 하나님도 없어요. 죄짓고 난 뒤에는 남자만의 세계이고 여자가 사라지면 하나님도 사라지는 겁니다. 그 사라진 여자를 데려오는 것이 여자의 후손이에요. 남자 없는 여자의 세계를 하나님이 앞장세워서 남자의 세계에 쳐들어오는 겁니다. 그러면 여자는 뭐냐? 여자는 판 자체를 바꾸는 거예요, 판 자체를. 남자 중심의 판 자체를 하나님이 남자 여자를 만들어준 그 판으로 바꾸는 거예요.

남자 중심의 판을 하나님중심의 판으로 바꾸는데 있어서 남자는 떨쳐버리고 여자가 나서야 되는데 그것이 여자의 후손입니다. 범죄 한 세계는 남자가 있고 시다바리로 여자가 있는 반면에 천국에서는 여자가 있고 여자에 부속된 아들, 여자의 자손, 여자의 아들의 세계가 되는 거예요. 이것은 기존의 남자한테는 없는 다른 남자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른 남자의 세계에서 그 아들이 온다 하더라도 여자는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낳은 아들에게 스스로 복속하는 새로운 판짜기에 여자는 아낌없이 자신을 사용 당하게 되지요.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되면, 이 세상에 여자는 없습니다. 남자가 요구하는 어떤 존재, 그것뿐이지 진정한 여자는 이 세상에 없어요. 남자가 원하는 대로, 남자가 시키는 대로, 또는 남자가 사모해서, 남자가 이끄는 대로, 그냥 시키는 대로나 하는 종 같은 존재의 여자인데 그것은 원래의 여자가 아니에요. 이미 모든 힘이 남자에게 쏠려버린 여자가 되는 겁니다. 마태복음 19장 3절에 이런 말씀이 나와요.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내 보내면 이혼할 수 있다고 한 거예요. 이혼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여자한테 이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남자에게만 이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그 말이에요. 왜냐하면 여자는 남자의 집에 있는 가구에 불과하니까. 남자 쪽에서 “내가 기분 나쁘다, 틀어졌다, 나는 너와 못살겠다. 아침마다 네 얼굴 보려니 이제 지겹다. 강아지도 5년이나 10년 키우고 죽으면 바꾸는데 너는 떨어지지도 않고 계속 내 앞에서 사는데 나는 너 때문에 살맛이 안 난다. 나는 한 번 바꿔보겠다.”

그러면 여자가 “당신 보고 결혼했는데 당신이 그렇게 나오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하면 남자가 하는 말이 “그건 내 맘이다. 왜?” 왜냐하면 가정은 남자 중심이니까 내 마음이라는 거예요. 남자가 하는 말이 “너는 너의 독자적인 권한은 없어 네가 나 떠나서 다른 남자하고 붙어살든 말든 그것은 네 행복이니 네가 알아서 할 문제고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싫어한다는 이 점이야.” 너의 주인은 남자인 나니까, 남자가 주인이고 여자는 주인이 아니니까 주인이 싫다면 나가야 된다는 거지요. 이걸 사회적으로 법을 정해놓은 그 이전에 남자의 마음이 그래요. 인간의 깊은 마음 자체가 그래요.

남자는 타고났어요. 주도권이 여자에게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는 그 마음이 남자의 마음이고 남자하고 여자가 같이 가정을 이룬다는 그것은 여자의 마음이고. 남자의 마음은 내가 주고 너는 종이 되어서 주종관계로 되어야 된다는 것이 태어나면서부터의 남자의 마음이고. 누가 그런 마음을 줬는가? 범죄하고 난 뒤에 하나님이 그런 벌을 내렸지요. 여자 남자에게 그런 벌을 내렸습니다. 남자가 자기중심으로 된다는 것이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벌이라는 생각을 남자들이 못하고 있어요. 무슨 특권을 누리고 있는 줄로 오해를 하고 있어요.

원래 남자가 여자에게 어떤 주도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주도권이 있게 된 것을 가지고 선악과를 여자보다 뒤늦게 따먹은 자의 어떤 특권인양 그렇게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대로 다시 말씀드릴게요.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여자를 붙여준 것은 둘이 한 몸 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남자는 뭐냐? 내가 한 몸이고 내 한 몸으로 끝! 너는 나한테 붙어서, 그것도 끄트머리에 붙어서 한 몸. 그러나 여자는 생각하기를 그것이 아니고 남자와 여자가 합해서 한 몸. 그런데 이게 먹히지 않으니까 여자가 살려면 ‘그래, 좋다! 너 좋은 대로 해라.’ 해서 돈 있고 힘 있는 남자한테 보호를 받는 식으로 들어가서 여자임을 포기하고 그 남자의 그 여자로 평생을 사는 것으로 ‘이것은 내가 선악과 먼저 먹고 벌 받는 탓이다.’라고 수긍을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남녀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데 이 자식에 대한 호적, 법적인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지만 몸의 느낌은 내 새끼라는 이것이 남자보다 강렬해요. ‘누구보다도 내가 키워야지.’ 그것이 바로 디모데전서에 나옵니다. 디모데전서에 보면, 디모데전서 2장 11절부터 15절에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이라 하는 것은 처음 죄짓기 이전의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거든요. 처음 죄짓기 이전,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된 그 순간은 죄짓고 난 뒤에 해산을 통해서 감을 잡고 지각 될 수가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둘밖에 없는데 자식을 낳으면 세 명이 되잖아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그 새로운 생명이 어디서 나왔는가? 그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면서 하나님이 주신 원리와 원칙이 개입이 되는데 그 원리원칙은 죄짓기 이전에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에게 준 원리원칙이 유효함을 여자는 해산을 통해서 감 잡게 됩니다. 믿음과 정결과 신앙 속에서 감을 잡게 돼요.

그것은 둘이 하나가 되는 신비로움이 새로운 자식을 잉태케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설명한다고 이해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면 그 신비롭다는 것은 그냥 신비롭다고 하면 찝찝해요. “신비로움의 그 내용이 뭡니까?”라고 한다면 요한계시록 12장 1절에 나와요.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여기에 어떤 여자가 등장하고 그 여자가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이 메시아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자의 역할은 뭐냐? 여자의 역할은 죄짓기 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의 그 판, 하나님이 처음 만들었던 그 원리원칙이 유지되는 그런 판을 여자를 통해서 보여주는 거예요.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아들을 낳는데 남자 없이 아들을 낳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남자 없는 세계, 남자 없이 여자만 있는 세계가 있었는데, 남자 없는 세계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면서 아담을 낳았어요. 아담을 낳아놓고 거기에 뭘 집어넣느냐 하면, 남자가 없는 다른 세계의 존재를 여자라는 이름으로 그 옆에다 붙여준 겁니다.

아담은 잠들어야 돼요. 코는 이렇게 또 쌍 커플은 이렇게, 이런 식으로 간섭하면 안돼요. 아담은 그냥 눈 감아야 돼요. 아담은 눈 감고 아담의 갈빗대를 빼는 겁니다. 그러면 아담의 몸은 아담의 것이 아니에요. 아담의 몸은 누구 것인가?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에 있는 그것이 아담을 아담 되게 한 창조의 원리가 자리 잡고 있는 그 지점이에요. 그게 여자의 지점입니다. 아담 안에 여자의 지점이 있었던 거예요. 여자의 처소가 있었던 겁니다. 그 여자가 남자를 살려요. 여자의 후손이 인간을 살립니다. 왜냐? 여자는 하나님의 창조원리의 주입, 또는 삽입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든 것이 아니고 먼저 아담부터 만들어놓고 그 뒤에 여자를 만들어놓은 이유는 약해보이고 그리고 네 눈에 없어 보이는 그것이 진정한 너를 하나님과 이어지도록 가동되는 엔진, 제일 중요한 기관,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엔진부분이 남자 속에 가동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자는 뭐냐 하면, 딱 깨놓고 말해서 둘을 하나 되게 하는 요인인 여자가 삽입됨으로써 비로소 성사가 되는 겁니다. 둘이 하나 되는 것은 남자입장, 남자의 안목을 없애버리는 거예요. 여자의 입장은 물론 없애버리고. 둘이 해서 동일한 하나의 판, 하나밖에 없는 그 1의 판에 둘이 등장해서 창조의 원리가 유지되는 하나의 판을 형성하는 겁니다. 그래서 둘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내 존재, 네 존재 아무리 합해봐야 이것은 하나의 존재가 안돼요. 나의 존재, 너의 존재가 합해서 하나의 판이 되는 겁니다. 그 판을 오늘 본문에서 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 몸은 뭐냐? 그 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겁니다. 그것도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남자나 여자는 다른 동물하고 달라요. 다른 동물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게 에베소서 5장에 나옵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의 색시, 자기의 신부를 만들어요. 교회지요. 자기교회를 만들고 교회를 자기의 색시로 만듭니다.

그렇게 되어 버리면 이 땅에 있는 모든 남자는 여자를 자기소유화 시킬 수가 없어요. 도리어 여자를 보면서 내가 여자의 소유는 물론 아니지만 내가 그리스도의 소유라고 이야기를 해야 돼요. 여자를 보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소유라고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 같이 남편들도 아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는 겁니다. 그것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원기능을 보여주지 아니하면 남편 값 못한다는 이야기죠. 남자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베드로전서 3장 5절에 보면,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사라의 위치가 뭐냐? 사라가 자기 남편을 주라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사라가 남편을 주라고 보는 안목을 남편이 사라에게 강요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여자는 직접 하나님과 통하고 있다고 본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돼요. 하나님이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하나님이 지시했다, 이렇게 돼버리면 그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겁니다. 그걸 바라보고 정신을 누가 차려야 되느냐 하면, 아브라함 쪽에서, 남자 쪽에서 정신을 차려야 돼요.

‘아내가 자발적으로 나한테 순종하는 것은 나한테 순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있는, 창조의 원리를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저렇게 순복한다면 남편 된 나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지.’라는 점을 아내에게서 배워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가정에서 누가 갑이에요? 신앙적으로 남자가 갑이 아니에요. 누가 갑인가? 자진해서 순종하고 복종하는 여자가 갑이 돼요. 섬기는 자가 높은 자가 돼버려요. 섬기라고 강요하는 자는 낮은 자가 돼버립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은 다 엎으세요. 여자가 복종하니 여자가 만만해요? 만만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가정을 생각해요. 남자는 자기 일만 생각해요. 그래서 부부가 그렇게 틀어지는 거예요. 남자는 자기 일만 생각하고 여자는 혼자가 아니고 당신과 함께 있는 가정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겁니다. 그래서 부부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때 이것은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고 본인 하나의 문제입니다. 각자각자 본인의 문제에요. 상대방이 어째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든지, 저 사람이 잔소리가 많아서 그렇다든지, 술 먹고 들어와서 담배피운 손으로 자식을 만져서 그렇다든지, 이런 온갖 핑계들을 대요. 남편이 너무 시댁과 가까워서 화가 나서 시집살이를 못하겠다든지, 이런 모든 문제는 상대방에게 돌릴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보다 더 치사스럽고, 이것보다 더 구박받고, 남편이 바람피우는 여자가 백 명이 되든지 천명이 되든지 그 남편을 뜯어고쳐서 내 사람 만들고자 하는 그것은 사실은 이미 범죄 한 여자들의 속성이에요. 남자를 내 사람 만들어서 좋은 가정되면, 쉽게 말해서 여자가 그렇게 좋은 가정 만들면 그걸로 인해서 여자가 구원됩니까? 여자가 임신하면 더 똑똑해져요? 아닙니다. 여성의 구원은 자기가 원초적으로 창세기로 돌아가서 이런 수모, 태어날 때부터 남자보다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2등급 인간으로 취급받는 이 수모, 이 안에 나를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원리원칙이 들어있음을 간파할 때 그것이 여성의 기능입니다.

주께서 나에게 선악과 따먹는 죄를 짓게 해서, 그리고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먼저 태어난 남자가 사람을 대표하는 갑으로 행세하든 어쨌든 간에, 이 인간세계에서 이미 범죄 했기 때문에 남편과 사는 이 세상은 후딱 빨리 허물 벗어버리고 영원한 신부되신 그리스도와 만날 준비를 해야지 남편하고 마음 맞춰서 행복하게 살아봤자 몇 십 년도 아니에요. “님아, 요단강 같이 건너자.” 해도 “너나 건너가라.” 같이 건너가는 법도 없고 연탄가스 피워놓고 같이 죽어도 따로 갈 수밖에 없어요.

사람 없다 했습니다. 남자 아니면 여자기 때문에 남자는 남자의 기능대로 보여줘야 되고 여자는 여자의 기능대로 보여줘야 됩니다. 여자의 기능은 이렇게 수모당하고 눌리고 아파하고 힘에 밀리는, 그러면서도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보는, 내가 남자를 지배하겠다는, 그런 남자 같은 여자도 있겠지만, 남자를 지배하는데서 여자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더불어 사는데서, 너나없이 더불어 한 가정 만드는 소박한 소망입니다. 반면에 남자의 가정의 행복이라는 것은, 남자는 완벽하고 그래서 내가 밖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해도, 술을 먹고 바람을 피우든 어떤 짓을 해도 질투하지 않고 “예, 주인님! 맘대로 하세요. 뭐가 또 필요하십니까? 세끼 밥 다 차려드리지요.” 이런 것만 하는 그것이 자기만의 행복이고 그것 때문에 여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이 남자에게는 저주고, 그런 남자에게 눌리는 그것이 여자가 받은 저주고, 다 같이 저주, 이 땅에서 어차피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이 정답이에요. “예수님, 아내와 남편이 어떻게 한 몸 됩니까?” 그런 한 몸은 물 건너갔어요. 진정한 한 몸은 예수님과 교회가 한 몸이에요. 그 한 몸과 이미 혼인했으면 임시적 혼인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잠간 사는 이것에서 행복의 전부를 뽑아내려고 생각하지 마시고, 뭔가 이 세상 내 뜻대로 안될 때는 내 뜻대로 안 되는 그것을 통해서 내 자리, 예수님과의 어떤 관계가 더 중요하지 눈에 보이는 저 남자나 저 여자와의 관계보다도 보이지 않는 주님과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 인간적인 관계에 실망토록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전략이고 창조의 원리의 적용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 전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서 있다는 것은 말로는 알고 생각은 들지만 막상 삶에 들어가면 우리의 본성상 나오는 나만의 행복, 인간다운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모든 것이 짜증나고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고, 그렇게 되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을 다시 한 번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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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4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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