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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13" 1- 5 (전도 일꾼)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13: 1- 5 (전도 일꾼)

이름 : 이근호(IP:)

전도 일꾼
2004년 9월 15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13:1-5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만약 지금 우리보고 전도의 일을 하라고 성령께서 하신다면 우리는 참으로 황당할 것입니다. 세상 직업은 일정한 연봉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할 근사한 사무실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번듯한 직업인이라는 것을 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은 분주한 연봉도 없습니다. 서류 가방도 없습니다. 그래서 남들 보기에 꼭 백수같이 산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과연 이 일을 즐거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왜 성령님께서는 전도의 일의 하는 사람을 이토록 난처하게 만드시는 겁니까? 그것은 그들이 전하는 내용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법칙에 준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납득이 되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사람들이 납득이 되는 하나님의 일로서 비쳐지지 않는 겁니다.

전혀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처럼,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일과 반대되는 일인 것처럼 곡해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복음은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일을 인위적인 결심과 각오로서 하라고 한다면 아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께서 이 일을 바나나와 바울에게 맡기게 됩니다. 즉 성령이 임해야 이 전도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인간들이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 식으로 전도해서는 아니 되는 겁니까?

이들 두 사람은 단순히 교회 성장을 위해 전도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선교를 위한 선교를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어떤 일을 맡게 되면 일한 만큼의 대가를 어느 정도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흔히 전도로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에 의해서 일하는 것과 인간적으로 일 하는 것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한다든지 전도를 하게 되면 이 전도의 일이 끝나고 난 뒤에 주님 쪽에서 제공되는 그 어떤 보상 같은 것을 희미하게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성령께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의 하나님의 일이란, 그 일 자체가 곧 보상입니다. 그 외에 다른 보상이라는 것을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그 자체를 큰 횡재라고 있는 중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그 횡재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길이에 더 푹 잠기고 싶어서 그 어떤 어렵다는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거부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6:18-20에 보면,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는데 있어 그 어떤 어려움도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사도는 지금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전도자가 갖추게 될 자질 같은 것은 성령을 통해서 주어지는데 그 자질이 어떤 것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 마태복음 10장-11장에 잘 나왔습니다. 전도의 취지는 10:34-39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전도를 해야만 하는 제자들은 무엇을 가졌기에 자기 목숨까지도 버려야 하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말씀, 곧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하늘의 아버지의 뜻, 즉 계시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5-27에 보면, "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되면 아버지의 계시말고 멸망당한 자는 다른 것을 쥐고 사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목숨입니다. 즉 하나님은 목숨을 노립니다. 목숨을 빼앗아가려고 하십니다.

물론 성도들에게 있어 빼앗김이란 곧 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은 복음 안에서 우리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담겨 있기에 그것을 전하는 사람은 이 가치의 차이성을 명백히 하면서 전해야 되는 겁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목숨은 목숨대로 빼앗기고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셈이 됩니다. 그래서 전도의 현장에서는 목숨을 그냥 쥐고 있을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고 순순히 목숨을 내놓을 것인가를 놓고 양단간에 결단을 촉구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마태복음 10:39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나를 위하여'라는 대목이 들어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즉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이 빼앗겨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성도의 목숨을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란 겉으로는 예수님의 도, 혹은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지만 그 방식은 전도자의 목숨을 이미 압수한 상태에서 일이 진행이 된다는 겁니다. 즉 인생을 다 산 것이요 그만 산 것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끝장난 인생을 부질없이 질질 끌고 다니는 식으로 살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에 의해서 무겁게 덮쳐진 인생을 그래도 살려내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반면에 성도는 이왕 죽어버린 인생, 예수님 관리 하에 둠으로서 전도라는 형식으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삶은 세상에서 완전히 격리된 그런 삶이어야 하는 겁니까? 고린도전서 5:10-11에 보면,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6:14-16에 봐도,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주눅드는 생활을 그만 하라는 겁니다. 그들에 의해 세상 것으로 농락 당하는 생활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수준을 이미 다 아는 마당에 더 이상 그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목숨보다 더 귀한 생명을 주신 그 값어치를 안다면 이 세상을 살면서 자유가 뭔지를 느끼면서 살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 어떤 대가를 염두에 두고 전도나 신앙생활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므로서 얻어지는 것보다 그 사랑 자체가 이 우주의 모든 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당장 죽을 수도 있었지만 사는 것이 은혜인 줄 깨닫는 것은 아무나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오직 '들을 귀 있는 자에게만' 들려지는 복음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생활도 마땅히 이 특수성에 부합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 일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세상을 초월하며 살았듯이 우리도 세상을 초월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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