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강-YouTube강의(우상과 미신)151119-이 근호 목사
135강-YouTube강의(우상과 미신)151119-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69.34)
135강-YouTube강의(우상과 미신)151119-이 근호 목사
제 135강, 제목은 ‘우상과 미신’입니다. 우상이 뭐냐, 딱 한마디로 말해서 미신입니다. 그럼 미신이 뭐냐, 현실을 잘못보고 있는 것이 미신입니다. 사람은 믿지 말래도 눈에 보이는 것을 믿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외부를 의지하면서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어떤 분에게 남편이 죽었다고 한다면 남편 죽어도 자기가 평소에 키우는 개가 있으면 그렇게 절망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개 믿고 살면 되니까요. 그런데 개마저 트럭에 치어 죽는다면 그 여자는 자기 세계가 와해됩니다.
사람은 남을 믿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남을 믿는다는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은 외로우면 못살기 때문에 그렇죠. 그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남에게 의지한다고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근데 사실은 그 남이라는 것이 아무나 남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말에 잘 따라줄 때만 그것이 자기가 의지하고 싶은 남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이유가 개나 고양이는 자기한테 명령을 하지 않아요. 명령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개나 고양이가 자기의 잘못을 후벼 파지를 않습니다. 자기를 지적질 하지 않아요. 오직 자기 말에만 그저 순응하고 순종합니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것은 자신의 분신이고 자기 확대입니다.
여자들이 결혼하고 싶은 이유는 남편하고 재미나게 살기 위해서 결혼하죠.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남편하고 사는 것도 이제는 권태로워요. 그래서 뭘 원하느냐 자기 말 잘 듣는 자식을 낳고 싶어요. 그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에게 조건이 있어요. 엄마 말을 고분고분히 잘 듣는 자식일 때 엄마는 자식 낳은 보람을 느낍니다.
결국 미신이라는 것은 제 2의 자아상을 자기 앞에 두고서 자체적으로 외로움과 쓸쓸함을 해소하는 그런 방식이 미신입니다. 그래서 미신은 환상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철두철미하게 믿습니다. 그래서 우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기분 나빠해요. 그들은 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믿는 예수라고 이야기 하라는 겁니다. 내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내가 믿는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자기는 우상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그렇게 우깁니다. 교회 다녀서 삼위일체 배워서 하나님 믿으니까 자기는 우상을 믿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자기들은 덜 외롭고, 덜 쓸쓸하다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가 아까 우상을 정의하면서, 미신을 정의하면서 이렇게 말했죠. 미신은 나에게 명령하지 않는다. 나의 잘못을 후벼 파지를 않는다고 제가 분명히 결론 내렸습니다. 이사야 44장에 보면 거기 이사야 선지자가 우상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어떤 말을 할 때는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가지고 그걸 미래까지 끌고 가는 방식으로 예언을 합니다. 계시를 하죠.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그들이 하는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 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들은 신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사야가 나서서 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을 대변하는 거죠.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하기를 “니가 믿는 신은 우상이다. 참 신이 아니다.” 그렇게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그래 옛날에 우상을 섬겼구나. 하지만 이사야가 있던 시절, 그때 그 당시에 있던 이야기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산입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선지자가 예언을 할 때에는 마치 스키장에 슬로프를 타고 올라가 산 위에 보드나 스키를 하나 걸쳤다고 보면 돼요. 그러면 산 위에 하나의 보드나 스키를 걸쳐놓으면 그 스키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아래쪽으로, 산 밑으로 브레이크 없이 그냥 신속하게 돌진하듯이, 저 산 밑으로 꼴아 박듯이 쭉 계속 미끄러지겠죠.
그 미끄러진 마지막 도착지점이 어디냐 하면 그것이 신약성경입니다. 구약에서 이야기한 것이 구약으로, 한시적으로 그때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신약으로 미끄러져 와요. 미끄러져 오게 되면 이사야 44장의 우상의 개념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는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에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절,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멸망하는 자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누구도 본인을 멸망하는 자의 범주에다가 자진해서 들어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게 바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이사야 44장을 다시 보게 되면 내가 믿은 예수, 내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 내가 믿는 여호와가 이게 우상이라고 아무도 그걸 인정하려고 나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오늘날도 유효합니다. 누구나 내가 믿는 여호와는 진짜 여호와고, 내가 믿는 예수는 진짜 예수고, 내가 다니는 교회는 진짜 교회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진짜 나를 구원할 하나님이라고 모두다 스스로 그렇게 자부하고 싶어요.
왜? 그렇게 믿는 자기 자신은 문제가 없기 때문에. 문제없는 하나님은 역시 문제없는 내가 선택한 이유 때문에 문제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단정합니다. 그러면 옳고 그름의 기준은 이미 자기로부터 시작한 거죠. 그러면 미신이다, 우상이다, 할 때 그 결정적인 기준이 뭐냐, 어떻게 하면 나의 문제 있음을 들추어내는 기준을 내가 믿는 하나님에다 삽입을 시키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가 믿은 하나님에 의해서 도리어 내가 죄인으로 폭로당하는 그런 관계를 우리가 설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이라고 믿었는데 그 하나님이 오히려 너는 죄인이라고 지적하시더라도 계속해서 그러니까 진짜 하나님이 맞군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하면서 그 하나님에게 소속될 용의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하면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준수하고 믿기 이전에 그 말씀을 우리를 지적질 하기 위해서 주어진 말씀이라고 믿읍시다. 그렇게 받아드립시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너는 나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너는 우상을 섬기는 자라고 지적이 오더라도 우리가 흔쾌히 아멘하고, “제 잘못을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상숭배밖에 없습니다.” 라고 자백할 수 있는 용의가 되어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 믿고 예수님 믿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지금의 나를 이 불멸의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기 위한 욕심의 산물입니다. 자꾸 주님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자기 죄, 자기 허점을 스스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맞습니까? 지적당하면서, 우리의 우상이 드러나면서 주께서는 그 우상의 죄를 십자가로 용서해주십니다.
우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우긴다면, 다시 말해서 우리를 지적할 것이 없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면 이것은 미신입니다. 내가 잘되고 싶은 나에 의해서 역시 호응해주는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내가 외로워서 선택한 고양이나 강아지같이 내가 조작한 가짜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신이요, 우상입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나 잘되기 위해서 믿는 교회, 그것이 사탄의 전당입니다.
첨부파일 : 135강-YouTube강의(우상과 미신)151119-이 근호 목사.hwp (32.5K), Down: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