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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에덴동산 151118우리교회창세기

에덴동산 151118

이름 : 이근호(IP:119.18.86.67)

에덴동산 (창세기 2:8-15)

이근호

15-11-18 21:47

에덴 동산

2015년 11월 18일 본문 말씀: 창세기 2:8-15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2: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2: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성경을 보면서, 성경 밖, 곧 자신이 쳐 있는 세상 속의 입장에서 성경을 보게 되면 모든 것이 오해로 되돌아옵니다. 에덴동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멋진 세상을 우리 인간에게 다시 베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오늘 본문을 전혀 이해 못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환경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인간이 환경의 일부입니다. 이 말은 곧 환경 속에서만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요건을 갖춘다는 말입니다. 에덴동산이 없는 인간은 있을 수 없고, 인간없는 에덴동산도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이 날아가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인간이란 실은 없는 존재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이 인간이고 거리에 돌아다니는 자들도 인간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들이나 그들이 이 땅에 얼마 나타나지 못하고 사라져야 될 자들입니다. 언젠가는 사라져서 없어질 존재라면 지금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없는 존재가 에덴동산에 대해서 미련이나 욕심을 내어서는 아니됩니다.

인간은 실은 에덴동산에 갇혀있는 자들입니다. 에덴동산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서 더 하나님께 나아가서도 아니되고 나아갈 필요도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에덴동산에 무엇이 없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현 입장에서 갖추진 것과 차이나는 것을 통해서 과연 우리 자신이 제대로 된 인간인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기도도 없습니다. 제사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없습니다. 따라서 종교도 없습니다. 앎도 없습니다. 지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지식이 필요치 않으니 자연적으로 의미도 없고 존재 이유도 없고, 더구나 목적이나 희망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이란 단지 에덴을 지키고 다스릴 일만 하면 됩니다.

이보다 더한 것을 생각해서는 아니되는 겁니다. 에덴동산을 지키고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것은 인간이 중앙이 되는 형편을 생각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이미 에덴의 중앙에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중앙성을 지키고 파괴되지 않도록 주변을 다스려야 하는 임무가 인간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처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으로서 끝입니다. 그냥 흙으로 환원될 뿐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더 욕심내고 다른 상황을 꿈꾸어서도 아니되는 겁니다. 즉 나중에 하나님과 함께 살겠다는 터무니없는 기대는 다 자기 분수를 모르는데서 나온 구상입니다.

에덴동산과 떨어져 단독자로서 자기 형편을 꾸려보겠다는 시도는 자기 안에 오로지 자기 자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곧 범죄해서 타락한 본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겁니다. 성경 안에서 성경을 보게 되면, 서서히 흙이 되어가는 이 지경이 얼마나 합당하고 마땅한 조치인지를 군말없이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부는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인간은 악마와 단짝이 되어 성경 밖에 성경을 이용할 의도를 잔뜩 품고 삽니다. 죽어가면서도 안 죽겠다는 야심이 대단합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와는 상관없이 이왕 살아있는 목숨을 기어서 붙들겠다는 집념에 불타있습니다.

이러한 야심의 흔적은 뭔가 넉넉하고 평온할 때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참된 신앙인같아요”하면서 자기 도취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곳곳에서 지진이나 가뭄이나 태풍이나 테러나, 전염병이나 사회질서가 혼란하여 범죄로 인해 상처를 입고 피해를 입으면, 마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아니되는 것처럼 현실에 대해 불만한 흥분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무리 많은 기도와 성경을 읽어도 여전히 자기를 중심이 둔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성전도 없고, 기도도 없고, 제사도 없고, 심지어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되는 그런 아담이 아니라 자기를 원해서 끊임없이 신에게 매달리는 식으로 자기를 도로 살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환경없이 독단적인 자기 조치로 자신이 살게 되리라는 원칙을 자기 내부에서 퍼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의 파편과 흔적들을 인간의 역사적 공간 안에 깔아두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보석입니다. 보석이란 인위적거나 인공적이지 않아서 희귀할 뿐만 아니라 귀한 것입니다.

물질로 묘사된 신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에덴동산을 지키는 그런 인간을 찾아나서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인간을 만드시려고 귀한 보석을 언급하시면서 이스라엘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 분이 곧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 보면, 거기에 대제사장의 복장이 나옵니다. 두 어깨에는 견대가 있고 가슴퍅에는 흉패를 답니다. 이 견대와 흉패는 보석을 바탕으로 하고 테두리도 보석으로 입혔습니다. 즉 ‘보석처럼 귀한’ 것을 심어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천국 백성을 만들고 계시다는 겁니다.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것은 12가지 보석돌 위입니다. 이 제사장이 직무는 ‘특이한 죽음’인 언약에 의해 발생된 죽음과 관련 있는 일입니다. 이는 곧 인간의 죽음을 기정 사실화하는 가운데 ‘자기 백성 만들기’가 진행된다는 겁니다. 특히 동산 한가운데 있었던 두 나무인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과 인간의 속으로 각각 파고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아무리 매사에 선의 임계점에 극한의 밀착으로 선을 행해도 일단 실시되면 그 현장에는 반드시 악을 발생되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은 선과 악에 후달리고 시달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영생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중심지를 예수님에게 내어주었기에 이 사람은 에덴동산처럼 ‘가운데의 가치’를 지키는 것으로 삽니다.

바로 이런 자가 천국에 살 사람입니다. 인간의 생각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신기한 일,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떤 형편에 처하던지 상관없는 일, 곧 이미 결정된 죄 용서함의 사건을 사수하는 것이 참 성도의 모습니다. 그 안에 생명나무가 있고 그 나무는 천국에도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그 나무가 살아있기에 성도도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중심을 늘 비워놓고 주님으로 채워서 사나 죽으나 주님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5-11-19 07:08

13강-창 2장 8-15(에덴동산)151118-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2장 8-15절입니다. 구약성경 2페이지입니다.

창 2:8-15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은 에덴동산과 떨어져서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지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성경 안에 들어가서 성경을 봐야 되는데, 성경 밖에서 봐버리면 성경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오해가 되는 겁니다. 에덴동산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성경 밖에 있는 인간이 에덴동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이런 좋은 동산을 주께서 허락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기대하면서 에덴동산을 보게 되는 겁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가? 본인이 인간이라고 자부하면서 에덴동산을 갖다 붙이면 된다고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라 하는 것은 에덴동산과 함께 있지 않으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에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난 뒤에는 하나님께서 그 아담을 인간이라 하지 않고 흙이라 했습니다. 사람 같은 사람은 이 땅에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해서 뭐냐? 내가 사람이 아니다, 곧 내가 없는 거예요.

있기는 뭐가 있지요. 현재 말하고 있는 제가 여기 있잖아요. 하지만 몇 백 년 지나서, 아니 몇 백 년 갈 것도 없지요. 몇 십 년 지나서 제가 사라지고 없어지는 거예요. 없어지는 것은 있어도 있는 게 아닙니다. 에덴동산이 없어졌다는 말은 인간도 같이 없어진 거예요. 에덴동산이 등장했다는 말은 에덴동산을 지키는 인간도 함께 등장하는 겁니다. 에덴동산 빠진 인간은 없고 인간이 없는 에덴동산도 없어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에덴동산 자체는 우리가 기대하거나 희망할 대상이 되지를 못합니다. 왜? 우리 자신이 없으니까. 우리는 없어지는 존재니까. 점점 없어지면서 “에덴! 에덴!” 해 봐야 무슨 소용 있습니까? 본인이 있어야 에덴을 어떻게 하든지 하지 지금 본인도 사라지는 마당인데요. 에덴도 같이 사라지는 거지요. 에덴이 사라졌다는 말은 “너도 점점 더 사라져라.” 그 말이에요. 점점 더 멀어지고 날라 가는 거예요. 없는 겁니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을 위한 책이 아니에요. “아, 그 때 에덴동산이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에덴동산을 허락해 주옵소서.”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에덴동산? 사라져가는 너에게 에덴동산 줘봐야 같이 사라지려고? 같이 없어지려고?” 너 없어질 때 에덴도 같이 없어지는데요? 에덴동산이 희락의 동산이고 복락의 동산이라서 좋은데 어차피 우리하고는 관계없는 동산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 때 그 아담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동산이에요. 넘보지 마세요. 괜히 에덴동산을 기대하지 마세요.

본인이 영원히 머물러 있고 본인이 안 사라지고 영원히 산다면 에덴동산에서 어떻게 살아볼까 하는 희망이라도 갖겠지만 6개월 뒤에 암으로 죽을 사람이 좋은 아파트 있어봐야 뭐합니까? 6개월이 뭡니까? “일 개월 뒤에 죽습니다.” 하면 맨션아파트에 살 것이 아니고 공동묘지에 가야 제일 빠르지요. 괜히 가족들 애먹이지 말고. 그래서 에덴동산은 어떤 내용이 핵심이냐? 사람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 있어서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 이런 요건을 갖춰야 사람’이라는 그런 요건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에덴동산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의 요건에 부합되지 않으면 에덴동산과 인간은 결별되고 날라 가버립니다. 우리는 어떤 입장이냐 하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입장이잖아요. 추방된 입장이기에 오늘 본문을 보면서 에덴동산에서 뭐만 발견해야 되느냐 하면, 에덴동산의 어떤 요소가 우리로 하여금 그곳에서 살지 못하게 만들었는가, 그걸 찾으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에덴동산이 없는 입장에서 우리가 어디서 찾느냐, 라고 하는데 지금도 에덴동산의 요건가운데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 남아 있는 것들이 없는 인간을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이 에덴동산 지키는 참된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에덴동산의 남아 있는 흔적들을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인간을 어떻게 모집하고, 어떻게 구성하고 창조하는가, 그 원리와 흔적을 오늘 본문에서 찾으면 되겠습니다. 가상적으로 우리가 아담이라고 치고, 에덴동산에서 산다고 간주하시고, 에덴동산에 무엇이 있는가를 찾지 마시고 무엇이 없는가를 찾아보세요.

현재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몸 가지고 에덴동산에 들어갔다고 칠 때 이 세상에는 있는데 에덴동산에는 없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뭘까, 그것을 찾는 가운데서 에덴동산이 존재하는 요건과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뭐가 없느냐 하면, 성전이 없어요. 에덴동산에는 기도가 없습니다. 성전 없으니 기도도 없어요. 그리고 제사도 없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신이 없어요. 하나님이 없어요. 에덴동산에는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고, 죄도 없고, 의도 없어요. 한마디로 말해서 에덴동산에는 종교가 없습니다.

종교가 없다는 말은, 에덴동산에는 에덴동산 안에 있는 아담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느냐, 하는 방식이 에덴동산에는 없습니다. 인간은 에덴동산과 함께 살면 되지 건방 떨면서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주제 넘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딱 깨놓고 말해서 에덴동산은 추방만 있을 뿐이지 에덴동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는 없습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 갇혀 있는 존재입니다. 에덴동산에 갇혀 있어요. 에덴동산에 갇혀 있지 않고 욕심을 내서 에덴동산에서 주어진 것보다 더 뭔가를 하나님에게 얻어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에덴동산 밖으로 나가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고, 있는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될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은 뭐냐 하면, 나대지 말라는 거지요. 설치지 말라는 겁니다. 주는 대로, 내가 지정한 자리에 머물러서 그냥 존재하면 되는 동네, 그래서 에덴동산에는 뭐가 필요 없는가? 지식이 필요 없어요. 아는 게 필요 없어요. 몰라도 되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요. 내 나름대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그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고, 살아야 될 이유를 내가 알 필요도 없고, 그게 에덴동산입니다.

어떻습니까? 굉장히 낯선 동네지요. 만약에 에덴동산 밖에 있는 인간이 에덴동산에 와 있다고 치고 거기 들어가 산다면 거기서 뭐하는가? 종교생활 할 거예요. 그러면 또 추방당합니다. 종교생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제사 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예배드리고, 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또 쫓겨나가요. 왜? 시키는 대로 안하고 나대기 때문에.

제가 방금 언급한 뭐가 없다, 없다, 없다, 한 이것을 언급한 이유가 에덴동산을 아무리 줘도 못사는 동네에요. 왜냐하면 에덴동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거예요. 에덴동산에 못 산다는 말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유가 에덴동산에서 머물지 않고 에덴동산보다 더 나은 어떤 멋진 다른 세계를 꿈꾸다가 추방당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에덴동산에도 못 살 뿐더러 천국에도 못삽니다. 천국에 살 이유가 없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그것으로 인간의 모든 의미는 끝났습니다. 인간 찾지 마세요. 그냥 잠시 반짝 살다가 흙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밖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의 신세, 우리의 처지, 우리의 위치라는 것이 내가 어떤 계획을 잡는다든지 희망을 가져야 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창세기 3장에 가기 전에 2장만 봐도 그래요. 여기서 우리가 “동산 가운데 나무를 왜 심었습니까?” 이렇게 물어서도 안돼요. 묻는 게 아닙니다. 군대의 특징이 뭐냐? 묻는 게 아니에요. 지시와 명령을 하달 받을 뿐입니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질문하면 안돼요. 왜냐하면 인간자체지 무기고 기계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면 질문해도 되는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질문하면 안돼요.

그래서 군대 가면 인간성 파괴됩니다. 하나의 막대기처럼, 쇠막대처럼 그렇게 돼요. 할 수만 있거든 안 갔으면 하지요. 사람 다 버려서 나옵니다. 상관 앞에서는 인간도 아닌 것으로 살아놓고 제대할 때는 마치 사람인양 제대하면서 가면을 쓰고 나와요. 이 말은 뭐냐 하면, 힘이 강한 자 앞에서 졸아들어서 그야말로 무생물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에 짓눌리게 되면 자진해서 사람 아닌 존재로 얼마든지 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마치 사회에 나와서는 뭐라도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남을 속이는 이중적인 인격만 군대에서 배우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군대에 안 가게 된다면? 군대 안 가게 되면 네가 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군대에 가야 돼요. 여자도 될 수 있는 대로 군대에 가야 돼요. 군대에 가서 힘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이게 마귀의 힘이지요, 악마 앞에서, 악마의 공갈과 협박 앞에서 꼼짝도 못하면서 악마가 시키는 대로 그냥 “예, 예!” 할 따름일 뿐인 인간이 환경이 좀 숨통이 트이니까 “주여, 주여!” 하고 있는 것, 그런 식으로 위장을 하고 있는 거예요. 장로로, 목사로, 집사로, 평신도로 교회에서 행세하지만 만약 여기에 북한 인민군이 총 들고 왔다면 주님이고 뭐고 없어요. “지도자 동지 만세!” 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인간들이 교회에 나오고 있어요.

교회 와서 주님을 원한다고요? 힘을 원하겠지요, 힘을. “목사님이 무슨 근거로 그렇게 큰 소리를 칩니까?” 사건이 일어나면 대번에 알아요. 프랑스에서 테러사건이 일어났지요. 폭탄이라는 힘 앞에서 200여명이 죽었잖아요. 얼마나 힘이, 폭탄이 무섭고, 테러가 무섭고, 죽는 것이 무서웠으면 “나는 이슬람에 굴복하지 않겠다.” 이런 객기를 부리겠습니까?

우리 집 천장에 쥐가 들어와서 3년째 안 나가고 있어요. 제가 설교 시간에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에 애도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우리 집 쥐 들어왔다고 해서 애도기간 지키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그것은 애도할 사항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런데 만약 우리 집에 무장이슬람단체가 테러를 해서 우리 가족이 몰살당했다면 애도할 거예요. 그게 애도할 가치가 있는 겁니까? 그걸 왜 애도합니까? 그게 남의 일 같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게 남의 일 같지가 않다면 누구 일인데? 본인일이잖아요. 본인이 어떤데요? ‘나에게도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그거거든요.

그게 왜 무서우냐 말이에요. 도대체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살기에 무서운 것이 있느냐는 말이지요. 왜 무서운 게 있어야 되지요? 왜 무서운 게 있느냐 하면, 종교생활 하기 때문에 그래요. 처음 에덴동산에는 종교생활이라는 것이 없어요. 살고 혹은 죽고, 그런 것을 걱정하면 안 되는 존재가 인간이에요. 죽든지 살든지, 사나 죽으나 걱정하면 안돼요. 행복한가, 불행한가, 그런 것도 염려하면 안돼요. 처음에 에덴동산의 인간은 그냥 존재하면 되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미래를 걱정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그런 주제 넘는 짓을 하면 안 된다니까요.

에덴동산에 있던 인간이 진짜 인간인데 이 진짜 인간이 날라 가고 없어져 버렸어요. 에덴에서 추방된 그것은 가짜인간인데 가짜 인간이니까 그 때부터 신을 찾고, 예수 찾고, 하나님 찾고, 교회 다니고, 아주 북새통이 되었어요. 북새를 떨면서 애도기간을 갖고. 프랑스 테러 일어났다고 애도기간을 가질 것 같으면 성경전체를 백독을 했던 만 독을 했든 다 소용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 다 헛짓 한 거예요. 성경 왜 읽었어요? 성경 읽었다는 말은 성경 속에는 안 들어가고 성경 바깥에서 뒷짐을 지고 구경을 한 거예요. 성경 내용에 뭐가 있는지, 이렇게 구경을 한 거예요.

그동안 기도한 것도 다 소용 없는 것이고 예수 믿는다는 것도 다 헛짓입니다. 정말 성경 안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게 폭탄을 터뜨린 거예요. 그 다음 차례는 우리 차례인 거예요. IS가 아니라 아예 서울 한 복판에 핵폭탄이 터지고 화산 터져도 우리는 ‘음, 터지는구나.’ 이래야 돼요. 그래야 성경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천국에서 던져놓은 어떤 흔적을 가지고 천국에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인데 앞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에덴동산 그런 것은 이제는 없어요. 지키고 말 것도 없고 에덴동산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인간을 천국에서 던져놓은 파편의 흔적을 가지고 뽑아내는 작업을 성경전체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게 보석이라는 거예요. 성경에 에덴동산이 있다고 할 때는 질문을 이렇게 해야 돼요. “하나님이여, 에덴동산은 왜 있어야 됩니까?” 질문을 이렇게 해야 된다고요. “꼭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들어가야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고 “그런 것이 왜 있어야 됩니까? 금은 왜 있어야 되고, 생명나무는 왜 있어야 되고, 선악과는 왜 있어야 됩니까?” 사실 이런 것은 우리한테 전혀 필요 없는 거예요. 처음의 그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지 이미 에덴동산에 퇴학당한 우리한테는 전혀 필요가 없는 겁니다.

결국 이 에덴동산에 있는 강과 금이라든지 베델리엄, 이것은 진주거든요, 진주와 호마노나 이런 것이 있다는 말은 “네가 이런 보석을 누릴 자격이 안 돼.”라는 통보용입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지요?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모세만 본 것이 아니고 모세와 장로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 계신 곳을 본 것이 나와요. 출애굽기 24장 10절에 보면,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여기에 보석이 나와요.

보석이 나온다는 이것은 인간의 인공적인 제조능력을 뛰어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보석을 보여주셨다는 것, 귀하다는 그 말은 인간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희귀한 것이고 고귀한 것입니다. 신성한 흔적을 광석이라는 물질을 가지고 표현을 한 거예요. 출애굽기 28장에 보면,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거기에 제사장 복장이 나옵니다. 어깨에 견대 두개 나오고 제사장 가슴팍에 흉패가 나와요. 그 테두리와 이름을 쓰는 바탕이 열두 개의 보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석으로 무장한 자, 보석을 중심에 깔고 있는 보석 맨이지요, 보석 맨, 그 보석 맨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까 언급했듯이 에덴동산에는 성전이 없지요. 제사도 없고 제사장도 없지요. 기도도 물론 없고 하나님도 없어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뭘 귀하게 보는가? 귀한 보석, 이것은 흔해빠진 것이 아니잖아요. 귀하디귀한 것이 보석이잖아요. 보석으로 테두리를 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 세상을 관리하면서 진정 고귀하게 여기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보석처럼 귀한 것이 따로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주입시켜서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수 있는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 만드는 그 작업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작업이라는 겁니다. 그 귀한 작업을 할 때 동반하는 것이 뭐냐? 제사장이거든요. 제사장이 하는 일은 뭐냐? 죽음과 관련되어 있어요.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귀한 보석은 없다. 인간이 손에 잡을 수 있는 물질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보석이라면 그 보석을 테두리로 해서 가장 귀하디귀한 것은 뭐냐?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발생되는 죽음입니다.

그 죽음은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거든요. 마치 보석이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듯이. 마치 에덴동산의 모든 구조, 요건들, 그 구성이 인간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처럼. 어디서 나왔는가? 출애굽기 24장에서 여호와하나님이라고 해서 언약을 앞장세우고 약속을 이 땅에 실현시키는 여호와하나님을 보니 청옥이 발아래 깔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석이 깔린 거예요. 보석을 통해서 보석을 주신 세계와 보석을 특별히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해서 받은 민족 사이에는 하나님의 새 생명, 하나님과 영원히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백성 되는 작업 현장이 되는 겁니다.

제가 왜 그렇게 말씀 드리는가 하면, 에덴동산은 없어요.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살 인간도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시는 어디서 끝나야 하는가? 창세기 2장에서 이걸로 끝나야 돼요. 옛날 에덴동산이 있었다. 그 때 에덴동산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만들어놓았는데 그들이 에덴동산을 지키지 못했기에 에덴동산이 날라 가버렸고 동시에 그 안에 함께 있던 인간도 잠시 살다가, 몇 백 년 살다가, 구백년쯤 잠시 살다가, 아주 짧은 기간을 살다가 없어졌다. 끝! 그러면 끝나는 거예요. “그 뒤에 없습니까?”라고 질문할 인간도 없지만 혹시 있다고 치고 “그 뒤에 없습니까?” 한다면 “없다.” “왜 없습니까?” “에덴동산 못 지키면 사람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 아니지요. 에덴동산 날라 가버렸어요. 인간도 함께 날라 가버렸습니다. 없는 거예요.

그러면 에덴동산에 있었던 요건 가운데 다 날라 갔습니까? 아니지요. 에덴동산은 날라 갔지만 에덴동산의 중요한 요건들이 있어요. 그 중에 하나가 보석이었고 특히 중요한 것은 동산 한 가운데 있던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 가운데서 이 생명나무는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하면, 요한계시록 22장에도 나오는데 영원한 천국까지 생명나무는 계속 살아 있습니다. 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질문할 것은 ‘왜 에덴동산의 중앙, 한 복판이 필요한가?’ 하는 겁니다.

한 복판이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봐야 돼요. 오늘 본문 마지막에 보면,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했는데 3장에 보면 추방되었거든요. 그러면 뭘 못 지켰고 뭘 못 다스렸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생명나무와 선악과의 취지 그 원칙을 못 지키고 못 다스린 거예요. 그렇다면 에덴동산에 인간이 있는 이유는 동산 한 가운데 있는 선악과의 법칙과 취지를 유지를 하는 용도로써 인간이 있었다고 한 거예요.

이 말은, 인간은 결코 한 가운데 있을 존재가 못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한 가운데는 비워놔야 되고 인간은 그 한 가운데를 탐내면 안돼요. 한 가운데는 한 가운데로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주변에서 그 한가운데 있는 두 나무의 가치를 지켜줘야 되지요. 두개의 나무가 있는데 선악과나무는 따먹음으로써 날라 가서 없어져 버렸고, 사실은 그 속성이 인간 내부에 있었고, 남아 있는 생명나무는 신약에 오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능력 안에 생명이 있어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거든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그 말은 뭐냐? 예수님이 우리 한 가운데 오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지킬 것도 없고 다스릴 것도 없어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이 한 가운데 오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의 졸개가 돼요.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겁니다. 이 말은, 여전히 우리는 한 가운데를 차지하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생명이 안 찾아온 사람은 누가 가운데 있는가? 자기가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 선악과나무 과실을 따먹었잖아요. 따먹었으니까 선과 악을 아는 자기 자신을 자신의 중앙에 세워버린 겁니다. 선악과는 중앙에 있던 나무니까. 그 속성이 어디 가겠어요?

인간이 선악과를 안다는 것은 선과 악에 시달린다는 말이에요. 인간이 선악과를 지배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지배가 없어요. 선과 악을 아는 지식에 후달린다는 그 말입니다. 내가 선을 행하고 싶어도, 선을 아무리 행해도, 아무리 치밀하고 세밀하게 선을 행해도 그 선에는 악이 그만큼 등장하게 되어 있어요. 왜냐? 선이 있는 곳에 악이 있고 악이 있는 곳에 선이 있는 그 구조 안에 인간은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인간 속에 마귀 있다는 말이 그 말이에요. 선악을 아는 그 원칙에서 시달리고 있는 거예요. 심지어 지옥 가서도 마찬가지고. 그게 중앙에 있으니까.

성령이 오지 않은 특징이 뭐냐? 종교생활 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하나님 믿는 것이 선하지요? 예수 믿는 일이 선한 일이지요?” 하나님이 묻습니다. “네가 그거 믿어서 뭐할래?” “믿어서 천국 갈라고요.” 참 같잖지도 않지요. 쫓겨났잖아요. 인간은 없어요. 인간은 없거든요. 인간도 없는 주제에 선악과 따먹어도 계속 인간이라고 우기는 그 고집은 도대체 누가 가르쳐준 고집입니까? 세종대왕이 가르쳤어요, 강감찬이 가르쳤나요, 누가 그렇게 가르쳤지요? 선악을 아니까 나는 인격적인 인간이라는 그것을 누가 가르친 겁니까?

제가 이 설교를 하면서도 도대체 이 말을 누가 알아듣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는 사람들이 다 알아듣는다고 이야기들 해요. 농민회에 속한 60먹은 노인이 데모하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서 죽게 되었어요. 그 데모 왜 했습니까? 나름대로 선과 악을 안다는 거예요. 인간이 압니까? 인간이 과연 선과 악을 알아요? 후달리고 있지 그게 아는 겁니까? 선과 악을 왜 알아야 되는지 그걸 알아요? 선과 악은 아는데 그걸 왜 내가 진작부터 알았는지 거기에 대해서 알았어요? 그걸 안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는 사람도 아니다.” 하는 겁니다. 물대포에 맞든지 폭탄에 터지든지 너는 죽어도 당연하다는 뜻이에요.

그 농민회 노인이 성경 백독하고 복음도 안다 칩시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본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나를 지킨다.” 본인이 중앙에 있으니까 지킬 자기가 있는 거예요. 우리는 중앙을 차지하면 안돼요. 우리는 중앙을 차지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 설교를 얼마나 많이 들었겠습니까?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는가? 그게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거 알아서, 그 위치 알아서 뭐하는데? 그걸 알아서 뭐할 건데요? 물대포 쏴서 농민이 죽어가고 있고 프랑스에서 테러가 일어나서 200명이 죽은 것과 에덴동산 위치 아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그게 다 관계가 있어요. 왜? 너는 에덴동산을 알 자격도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도, ‘에덴동산이 지역은 세 지역이고 네 개의 강이 있고 그래서 천국 가면 강이 흐르고…….’ 그래서 뭐! 그러면 테러 안 터집니까? 그것과 테러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오늘날 테러 일어나고, 화산 터지고, 인도네시아 화산 터지고, 엘니뇨현상으로 가뭄이 오고, 이 전부가 창세기 2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너는 살 가치도 없다.” 그 이야기 한다고 이 창세기 2장에 근거해서 가뭄 들고, 화산 터지고, 몽골에서 황사 날아오고……. 내가 살 가치가 있는 세상도 아니고 에덴동산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살고자 악을 쓰고, 농민 못살게 한다고 데모하고, 시위하고, 왜 그런가? 도대체 정신, 이 사고, 네 안에 대체 누가 들어있기에 그렇게 성경과는 배치되는 짓을 하면서 또 교회 와서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고. “주여, 도와주소서.” 뭘 도와주는데? 뭘 어쩌라고? 그만큼 살게 해줬으면 되었지 뭘 어쩌라고?

에덴동산의 내용은 뭐냐? “인간은 어떤 소리도 할 자격 없다.” 이게 에덴동산입니다. 이미 인간은 환경 없는 인간 없고 그 환경속의 인간이 아니면 인간이 아니에요. 에덴동산 없으면 인간도 없는 겁니다. 당연히 흙이 되어야 되고 끝이에요. 그 다음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의 작업, 그리고 보석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나타난 그 모든 작업은 하나님께서 없는 인간을 천국에 사는 인간으로 새로운 백성을 만드는 작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보석 같은 인간은 본인이 알아서 나오는 인간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붙여준, 보내준 사람이 보석 같은 인간이에요.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옵니다. 보석 같은 인간. “이것은 네가 생각도 못했다. 네가 이런 성도가 된 것은 아무리 성경보고 아이디어를 얻어도 사전에 상상도 못한 인간이 된 거야.” 이런 보석 같은 신부의 모습이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옵니다.

에덴동산에서 흘렀던 그 강줄기, 에스겔 48장에 보면 강이 새로 생겨서 나오지요. 강과 보석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맛있는 과일들, 바나나, 체리, 사과, 맛있게 잡수시되 이것은 우리를 고발하는 과일들 입니다. 옛날에 이만큼 맛있는 것이 있었지만 그 때 그 인간, 그 때 그 사람 지금은 없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그 사람, 에덴동산의 그 사람 없습니다. 동산 가운데 있던 그 없어진 선악과가 내 속에 심겨져 있어서 마땅히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남기신 저주와 심판의 흔적들 속에 둘러 싸여 있고 우리의 환경, 그 심판과 저주의 환경에 적합한 존재로서 우리는 삽니다.

따라서 ‘이 모든 된 것,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힘든 인생, 고생만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본향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에, 진짜 그 중심에 생명나무가 있기에 “주여, 저의 생명을 지키고 저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저의 할일이 아니고 전에 에덴동산 한 가운데 있던 그 생명나무를 지키는 그것이 아담이 있어야 할 이유였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 십자가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 새롭게 만든 피조물의 전부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생명나무가 강가에 있는 그 나라에 살 사람입니다. 보석 같은 존재지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여러 가지 사건이 터지는 그것은 평소에 우리가 숨겨온 우리의 관심사와 우리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비 복음적이고 얼마나 종교생활에 국한 되었는지를 폭로시키는 하나님의 귀한 사건인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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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4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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