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b 울산강의-출애굽기 35장 : 나는 가짜다
20151106b 울산강의-출애굽기 35장 : 나는 가짜다
이름 : 한윤범(IP:119.192.174.209)
20151106b 울산강의-출애굽기 35장 : 나는 가짜다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합니다.
안식 법을 완성법이라 했지요. 완성법, 최종 법이니까 세상은 하나님이 안식하는 쪽으로 가게 돼있어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히브리서 4장에 보면 나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안식하면서 하나님이 성격이 급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창세기 2장 처음부터 집어넣어버렸어요. 일종의 케이블카지요. 팔공산 케이블카, 대롱대롱 달려있는. 창조는 안식 법에 대롱대롱 달려 있어요. 안식 법답기 위해서 세상은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안식 법 안에 누가 들어있는가? 누굴 위한 안식이란 말인가? 우릴 위한 안식은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위한 안식이거든요. 그러면 안식 법 전개과정에서 뭐가 나와야 돼요?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될 그것이 창세전부터 있는 거예요. 그걸 감추어진 비밀이라고 해요. 또는 에베소서 3장에 보면 예정된 비밀이에요. 그게 복음인데 십자가 복음이에요. 이것은 예수님이 신약에 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겁니다. 이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죽어요. 그게 비밀이에요. 모든 창조의 비밀은 하나님의 죽으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스스로 죽으신 것을 찬양하기 위해서 천지는 창조되었던 겁니다.
그 내용이 안식 법에 담겨있었고 창세기 2장 초반부터 있었고 그 안식 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는데 죽기 위해서는 적그리스도 다시 말해서 악마가 등장해서 악마와의 전쟁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겁니다. 쉽게 말해서 안식 법은 어떻게 이뤄집니까? 전투와 전쟁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누구와의 전쟁입니까? 너희는 몰라. 예수님만이 알고 있는 원수가 있어요. 그걸 가지고 주의 원수라 해요.
주의 원수는 항상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낯설어요. 의아해 할 정도로 낯섭니다. 히브리인들은 애굽 사람들과 한 통속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애굽이 친구지 적이 아니에요. 그런데 강제로 개입하면 바로의 애굽 나라가 주의 원수가 되는 겁니다. 원순지 아닌지는 그들의 판정하는 게 아니에요.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인들 돈 떼어먹어서 원수 아니에요. 강제로 원수 되게 만들기 위해서 장차오실 메시아의 죽음을 집어넣은 거예요. 집어넣으면서 생긴 상징물이 어린양으로 피 바른 겁니다.
두 번째가 상징물이에요. 첫 번째는 전제된 거고.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미리 전제한 게 있었고 그것이 이 세상에서는 상징물로 들어온 거예요. 사람들은 가짜기 때문에 상징물을 현실이라고 본 겁니다. 예를 들면 나는 가짜다. 진짜는 주 안에 있을 때 진짜거든요. 야곱은 가짜고 이스라엘이 진짜에요. 아브람은 가짜고 아브라함은 진짜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넘어갈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말씀 지킬 수 있어요, 없어요? 지키기 있기, 없기? 지킬 수 없어요.
야곱은 끝까지 야곱적이에요. 끝까지 자기 챙기고 사기 치고. 야곱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거기에 누가 서 있느냐 하면, 밤의 천사가 서 있는 겁니다. 야곱의 진짜는 이스라엘이에요. 그리고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말하고 그걸 합치면 신약에서 예수 안에서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했지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본인이 원한 게 아닙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이 찾아왔잖아요. 나는 죽고 내 안에 누가 있다? 그리스도가 살아있는 나가 돼버렸어요. 예수 안에 있을 때 그게 창세전에 예정했던 진짜 납니다. 그것을 고린도후서 5장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거예요.
새로운 피조물의 특징은 뭐냐? 주님의 사랑에 미친 거예요. 나, 주의 사랑에 미쳤다고 하는 겁니다. 보통 인간은 자기 행함에 미쳤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 문 열고 하는 마음 태도가 이렇습니다. “주여, 저를 보호해주소서.” 그런 소리하는 게 아니네요. 저를 잃어버리게 하옵소서, 이래야지. 보호해 달라고 하면 안 돼요.
죽음을 이해합니까? 인간은 안 죽어요. 죽어도 무덤 속에서 호출하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안 죽어서 골칫거리에요. 아무리 죄 짓고 해도 공중의 재가 된다면, 죽기 전에 미리 알면 실컷 나쁜 짓 욕심대로 다하고 난 뒤에 어차피 불꽃놀이처럼 한줌의 재가 된다면 실컷 하고 싶은 대로 원대로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아예 절망을 줘버렸어. 죽어도 마지막 때에 무덤 속에서 호출한다고 하니까 차라리 밟아 죽이면 좋겠는데. 그래서 번개탄 열 개 피워놓고 차 안에 테이프 붙이고 죽었으면 좋겠는데 자살해도 안 죽으니까 문제가 된 거예요. 죽는 게 절망이 아니고 안 죽는 게 절망이에요. 죽어도 못 죽는다는 게 절망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없어지는 것을 주께서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골치 아픈 거예요. 사람 죽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한데 그 뒤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 히브리서 9장 끝에 보면 나와요.
죽는 것은 애달파하지 마세요. 이것은 한 번은 해야 될 일이에요. 남자들 군에 가는 것과 똑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심판 있다고 했어요. 여러분의 사명은 막중합니다. 천사도 흠모할 귀한 사명을 띠고 있어요.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죽는 것은 한 번 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심판이 있으리라.
첫 번째가 전제가 돼있고 두 번째가 상징인데 이걸 사람들은 현실이라고 하는데 현실이 아닙니다. 그냥 가짜에요. 가짜, 심볼, 상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태극기가 우리나라입니까? 아니지요. 그럼 태극기를 찢고 밟으면 기분 나쁘지요. 왜? 태극기가 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태극무늬가 있잖아요. 우리 몸, 신체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져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상징물이면서도 기분이 좋아요. 그러면 주님께서는 천 조각을 보호하겠습니까, 주님의 상징을 보호하겠어요? 상징을 보호하지요. 뭣도 모르고 태극기 찢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태극기 또 만들면 되잖아요.
우리가 이 땅에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죄를 짓고 그 죄를 용서받는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와 상대하기 이전에 마귀와 싸웠던 마귀를 이겼던 유일한 무기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귀는 죄에 대해선 처벌해야 된다는 게 마귀의 무기였어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게 네 무기 다야? 그렇다면 내 무기 있다고 꺼낸 무기가 그 죄인에게 사랑을 베풀어서 의인되게 했단 말이죠.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 뭐라 합니까? 누가 너희를 송사하리요. 누가 이 비검을, 보검을 모독하느냐 이 말입니다.
마귀를 칠 때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는다는 게 나다. 너희들은 이 여인이 죄 있다고 해서 질질 끌고 돌 들고 왔는데 그 여인을 내가 용서했다. 왜 꼽냐? 할 때 그들이 물러가잖아요. 물러간 그들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물, 주님의 십자가 없는 그것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혈연관계가 원수에요, 사실은. 천하 자식이나 혈연관계가 원숩니다. 굉장히 사랑스럽고 예쁘잖아요. 자식 낳고 내 새끼라고. 그런데 그것이 가짜라고 아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독한 주의 원수라는 것을. 내가 주의 원수를 낳았다는 생각을 해봐야 돼요. 내가 가짜인 걸 알 때 가짜가 가짜를 낳고, 가짜가 가짜를 낳고.
나는 다행스럽게도 가짜인 걸 알았는데 저들은 가짜인 것도 모르고 엄마, 스마트폰 바꿔줘. 지금 기변시대인데 바꿔줘. 이건 관심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런 것에 관심 있는 게 아니고 남들 부러운 것 따라가는데 헛된 상징물 따라가는데 급급하니까 참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애통하지요. 그때는 한산도 섬에 앉으세요. 복음의 큰 칼 옆에 차고, “주여, 저를 쳤던 주님의 칼은 언제 우리 자식들, 가족들에게 떨어질까요?” 그게 바로 기도지, 뭐가 기도겠습니까?
그런 마음만 있다면 평소에 부부생활이나 모든 가정생활에서 다 티가 나게 돼있어요. 그걸 선교사라 합니다. 그게 전도에요. 유난 떠는 게 아니고, 가정예배 드리자고 유난 떠는 게 아니고. 가정예배 드려보세요. 한두 번하면 밑천 떨어지고 한 소리 또 하고. 가르칠 게 없다 이제는 하산하라, 이런 수가 생깁니다. 그냥 평소의 태도가 그래, 나는 가짜다. 그 모습이 세상을 초월한 모습이죠.
계속 진도 나가 봅시다. 그 다음에 세 번째가 있어요. 첫 번째가 전제 된 거고, 주께서 창세전에. 두 번째가 그것이 상징으로 나타났습니다. 안식 법은 예수 그리스도, 인자를 이야기하고 그 안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담겨 있고 죽음을 당하기 위해서는 주의 원수와 싸워야 되는데 그 안식 법이 주어지는 현장마다 주의 원수가 새롭게 추가해서 상징세계로 들어오게 돼요.
그게 뭐냐 하면, 오늘 본문 같은 출애굽기 35장 같은 경우에 여기 보세요.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 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 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여기 출애굽기에서는 나중에 나옵니다만 천지창조에 대해서 기념해서 하라,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십계명 네 번째 계명에 나올 때 해설이 돼있어요. 안식일을 지키라. 여호와께서 복 되게 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신명기 5장에 보면, 안식일 내용이 추가됩니다. 어떻게? 네가 안식일을 지켜라. 애굽에서 종 되었던 너희를 끄집어낸 그 날이다. 그러면 끄집어낸 그것을 기념해서 안식일이 된 거예요. 신명기 5장 15절에 보면,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이게 오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이에요. 애굽에서 건져낼 때 얼마나 요란스러웠습니까? 홍해 갈라졌지요. 집집마다 장자 죽었다고 난리 났지요. 그 사건을 시간이란 보따리 속에 어떻게 집어넣을 겁니까? 어렵지요?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은 사건을 그림으로 그렸잖아요. 그렇다면 출애굽 사건을 종이에 그림으로 말고 그걸 날짜에 어떻게 집어넣습니까? 이게 그냥 집어넣는다고 되는 게 아니고 집어넣되 조건이 있어요. 안식일 할 때마다 그 사건의 효과가 반복해서 나오는 게 있어야 제대로 집어넣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말 넣는 서랍, 그게 끝이 아니에요. 그 다음에 양말 꺼내기 위해서 열려라 참깨처럼 서랍이 열려야 돼요. 집어넣었는데 치매 걸려서 양말 어디 놨더라? 냉장고에 넣었는가? 이렇게 되면 나이가 벌써 죽음이 데려갈 사람 쯤 되죠. 집어넣었으면 끄집어낼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끄집어낼 수 없어요. 못 지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지켰다고 우기죠. 그러면 출애굽 사건의 효과가 나타났습니까? 안 나타나지요.
첫째 문제가 어떻게 집어넣을 것이냐? 두 번째가 어떻게 끄집어낼 것이냐? 하나의 기억을 날에 담는 기념일은 될 수 있어요. 백일 기념, 생일 기념. 생일 날 케이크 자르고 폭죽 터뜨렸다. 60회 맞은 그 생일과 돌 때와 똑같은 얼굴입니까? 늙어 빠진 얼굴이잖아요. 효과 없네. 전혀 효과 없지요.
그러면 예수님 십자가에 죽은 사건을 예수님 죽은 날을 십자가 생각한다고 십자가 능력이 나오겠어요?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다 출애굽 사건을 넣었다는 말은 어떤 인간도 안식일을 제대로 지킬 수 있다, 없다? 못 지킵니다. 그러면 주님은 안식일을 끄집어내서 어떤 효과 봤습니까? 그건 마태복음 12장에 나와요. 안식일에 긍휼을 베풀어요. 손 마른 자에게 손을 낫게 한 거예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왜 안식일에 병을 고치냐고 하니까 양이 개울에 빠지면 안식일이라고 안 끄집어내느냐? 그것처럼 귀신 들린 자를 내가 안식일에 끄집어내는 이것은 안식일에 본래 담긴 의미라는 거예요. 그러면 안식일은 병 고치는 날입니까? 아니에요.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중풍병자 친구 네 명이 지붕 뚫고 내려왔지요. 그럴 때 예수님이 중풍병이 나았다고 이야기했어요?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했지요. 중풍병에 묶인 게 아니에요. 죄에 묶인 겁니다. 그러면 중풍병에 안 걸린 멀쩡한 사람들, 파릇파릇한 아이돌은 다 어디에 묶여 있어요? 죄에 묶여 있어요. 소녀시대가 아니고 죄인시대에요.
그러면 이미 우리는 죄 용서받아서 구원받았잖아요. 그래도 또 죄인입니까? 이 질문을 제가 수천 차례 들었지요. 제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성도는 인간이 아니고 계시입니다. 주님의 효과가 되풀이해서 나와요. 되풀이해서 나오면 우리가 하는 것이 전부 다 언약 안에서 죄로 나와야 돼요. 이것은 이미 그 안에 하나님 의가 들어있기 때문에 의와 죄를 구분하기 위해서 바깥으로 방출시킨 겁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의인은 누굽니까?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의인이고 우리의 옛사람은 방출되는 것은 죄가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평생토록 죄만 지으면 되는 거예요.
뉴질랜드 목사님이 그런 설교하니까 어떤 사람이 반발이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뒤에 뭘 하면 됩니까? 그분은 그런 이야기를 그때는 안 했지만 제가 전화로 일러줬어요. 죄만 지으면 되지 뭐. 그 목사가 굉장히 과격하다고 하는데 과격하나마다 그게 정답이에요. 죄만 나오는 기쁨이 보통 기쁨이 아닙니다. 아까 전에 삼겹살 먹는 죄를 지었는데. 이능우 집사님이 한턱 쏴서 장작불에 삼겹살 먹는 죄를 지었습니다. 서 목사님은 우산 놔두고 오는 죄를 지었고 이 집사님은 그 우산 찾으려고 전화 거는 죄를 지었어요. 여러분은 아이 키우는 죄를 지었고. 좀 있으면 사법고시 합격했다는 죄를 지을 수 있고 서울의대 갔다는 죄를 지을 수 있어요. 왠지 그런 죄는 짓고 싶어.
죄 지어도 괜찮다는 이야기입니다. 안식 법 안에 긍휼이 들어있잖아요. 인자는 긍휼이거든요. 그때 다윗이 안식일에 못 먹는 떡이 있지 않느냐고 하시면 안식일은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그렇다면 긍휼과 자비를 드러내기 위해서 안식일은 뭐하는 날이다? 결국은 우리가 가짜다. 가짜니까 죄만 나오는 그 모습을 보여주는 날이 안식일이어야 하는데 그 안식일 법을 누가 지킬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지요.
그렇다면 여기 출애굽기 35장에서 안식일에 불 피우지 말고 안식일에 제사 드리는 법이 나와요. 그러면 안식일에 불 피우지 말라고 해서 불 안 피우면 출애굽의 효과가 나옵니까? 안 나오지요. 불 피우지 말라는 것은 결국 인간들로 하여금 지가 아는 현실에 머물지 현실이 주님이 전제돼있는 상징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첫째는 전재돼있고, 두 번째는 상징이고, 세 번째는 구조에서 예외적인 것, 빠져있는 것, 더 쉬운 말로 나머지.
이 나머지는 주님에 대한 찬양이겠지요. 이사야 6장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 무슨 나쁜 짓한 건 아니죠. 성전에서 열심히 일했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이사야가 뭐라고 합니까?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두 번째입니다. 이사야는 자기가 상징물이잖아요.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그럼 뭐가 전제돼있어요? 전제된 거룩한 분을 만났으니까 화로다 망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 남아 있는 건 뭡니까? 본인은 뭘 해야 될지 모르죠. 그런데 나를 위해서 누가 갈꼬? 할 때 제가 가겠나이다. 이건 이사야가 예상한 게 아니죠. 나머지죠. 그럼 누가 이룹니까? 이사야가 이룹니까? 칠백 년 뒤에 예수님이 이룬 거예요. 그러면 이사야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의 그림자다. 그냥 계시라 하면 우리가 예수 되니까 예수님의 그림자, 그걸 신약성경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
어떻게 증인될 수 있을까요? 기도원에 갈까요, 복음학교에 입학할까요? 어떻게 적용될까요? 내가 시도한 증인은 아무리해도 실패로 끝납니다. 왜냐하면 나는 상징으로 보지 않고 1번이 없이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범한 거예요. 강의 끝나면 제목을 잊어버려요. 오늘 제목은 상징.
우리는 상징으로 가짜로 보지 않고 나 자체를 점으로 보는 거예요. 내가 스스로 내가 전제된 게 돼버려요. 그러면 우리가 예수 믿거나 주의 증인이나 기도하거나 이건 내가 기안/시안 냈고 내가 계획했기 때문에 모든 영광은 내가 받을 거지요. 이렇게 되면 첫째 시간에 강의한 것,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로 돌아갔죠. 거기 제사장과 레위인, 자기 기안에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줄 하등의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도 마찬가지에요. 강도 만난 사람을 기다린 것도 아니에요. 내가 본때를 보여줄게. 이런 것 없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누워있을 때 자기의 내용은 슬그머니 빠지고 강도 만난 사람으로 이동했어요. 강도 만난 사람이 나고, 나는 가짜다. 나는 가짜라는 게 더 마음에 드는데.
그러면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웃사랑을 한 적이 없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강도 만나게 장치를 하신 주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 속에서 이동시킴으로써 처음부터 전제된 거예요. 처음부터 완성하신 그분이 완성의 티를 선한 사마리아인을 통해서 보여준 겁니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안식 법, 요한계시록 처음부터 있었던 법이에요. 왜? 안식 법 자체가 완성법이고 최종 법이에요. 그 최종 법이 창세기에 벌써 삽입돼있습니다. 그리고 묵시세계, 시간이란 팔공산 케이블카로 보면 돼요.
케이블카 타 봤습니까? 혹시 케이블이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때는 일단 밑을 봐요. 뛰어내릴 수 있는지 봐요. 케이블 출발지점에서는 뛰어내릴 수 있어요. 그런데 갈수록 못 뛰어내리겠어. 너무 높아. 그렇다면 제발 나무 있는 데로 가면 좋겠다. 끊어질 걸 생각하죠. 그러나 이 생각마저도 내가 2번이 아니고 항상 나는 나를 1번으로 생각해서 하루하루 스케줄을 짜잖아요. 나, 오늘 뭘 하지? 내가 예상한 것, 전제한 것, 내가 기대한 그것이 나의 하루 스케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짜인 티를 냈거든요. 안식 법이 이미 우리 하루 종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하루 종일 살면서 네가 2번이지, 너는 1번이 아니야. 전제된 게 아니고 그냥 전제된 것에서 나온 2번이라는 걸 깨닫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요. 새 차 타고 가는데 새똥 떨어지면 새 차 버렸다는 생각 들지요. 그걸 예상했습니까? 주여, 오늘도 새똥 떨어지게 하옵소서. 기도한 적 없지요. 우린 다른 기대했잖아요. 그런데 새똥 떨어졌잖아요. 예상 밖의 일이죠. 그때 순간 주여, 하필이면 이런 고행을 주십니까? 이렇게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죄송합니다. 물티슈로 닦아내면 될 문제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새똥이라면 물티슈로 닦아내면 돼요. 그런데 현실이 새똥이 아니고 벼락이 떨어지면 왜 하필이면 접니까, 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것은 어디서 나오는가? 나머지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내가 내 잘남의 계시로 살아가요. 우리는 자칭 신이기 때문에 절대적이기 때문에 내 잘난 맛을 남들이 알아주고 같이 동감해줄 사람을 찾습니다. 그것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러니까 가짜가 내뱉는 사랑은 다 가짜 사랑이에요.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나, 당신 사랑해.” 그러면 아내가 오랜만에 경상도 남자가 이상한 소리하니까 비위 맞춘다고 혀 짧은 소리로, “나도 당신 사랑해.” 이러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진리는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내가 선택한 게 진리거든요. 너는 몰라. 이래야 남편이 튀어 보이잖아요. 여자는 한 수 낮게 보고 자기는 갑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남자가 주책없이 그래, 당신에게 감사라고 하면, 이미 주도권은 아내 쪽으로 넘어갔어. 입 다물어. 너는 남자의 사랑을 몰라. 여자의 눈물은 흔해빠졌지만 남자는 딱 세 번 우는 거야. 태어날 때 울고, 나라가 망했을 때 울고, 휴대폰 잃어버렸을 때 울고. 어느 초등학생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자들은 언제 웁니까? 계주한테 돈 떼일 때 울고, 드라마 보면서 울고, 머리 잘 안 나왔을 때 울고. 완전히 현실이 드러났잖아요. 자꾸 2번이면서도 1번이기를 원하는 이 속성, 그게 바로 주님의 원수가 내 빈 자리를 찾아와서 그래요. 뭘 해도 나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가락교회 김중우 집사님이 공장을 하나 새로 시작했어요. 안양인가. 공장 직원 가운데 근처 우주 교회라는 이름도 거창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집사님이 남 신앙 놀리는 취미가 있거든요. 그 교회 집사냐고 하니까 집사 아니라는 거예요. 세 명 데려와야 된다는 거예요. 집사님이 가만있으면 되는데 다단계네요,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직원이 화를 낸 거예요.
자기가 왜 그런 이야기했는지 이유를 밝혀야 될 것 아닙니까? 우상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우상이란 다른 신을 섬기는 거죠. 십계명에 나오지요. 공부 좀 한 사람이에요. 집사님이 그분에게 그 계명 앞에 뭐가 있는데, ‘자기를 위하여’ 섬기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지금 그걸 빠트렸어요. 자기가 다니는 우주 교회, 집사 되려고 세 명 데려와야 되는 다단계하는 것도 우상이고, 모든 게 우상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도 우상입니다. 그 사람이, 그런 것도 있었어요? 할 말을 잊어버렸어요.
집사님이 장난치는 취지를 알겠지요. 그 집사님은 신자는 없다고 보는 거예요. 없다고 생각해줘야 진짜 주께서 나를 집어넣었다는 사람 등장하면, 웬 축복? 그런데 기대를 해요. 혹시 신자일 수 있겠지. 그런데 몇 마디 주고받게 되면 다단계입니다. 다 마찬가지에요. 전부 다 다단계에요.
우리교회 좀 배웠다는 어떤 집사님도 조희팔에 빠져서 오십만 원 날렸어요. 백오십만 원 내고 백만 원 돌려받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왜 백만 원 돌려주는가? 이렇게 이자주니까 더 많이 하라는 게 조희팔의 다단계 수법이거든요. 그래서 남편 되는 분이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해서 빠졌다는 거예요. 거기에 수억 집어넣은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데 지옥 같은 울산에 자꾸 빠지잖아요. 못 빠져서 환장했어. 빠지면서 하는 말이, 이게 현실이라는 거예요. 그건 성경책에나 있는 거고 안식일 법이 현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안식일 법이 현실 아닙니까?
제가 강의할 때 제일 먼저 물었잖아요. 사람들은 누굴 의식하면 살아갑니까? 안식일 의식합니까, 사람을 의식합니까? 100% 이야기하죠. 나는 눈만 뜨는 사람 의식하지 안식일 법 의식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가짜입니다. 우린 가짜에요. 다단계 욕할 것도 없어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자신이 우상 덩어리에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 문 열고 하는 말이 신이시여, 내가 여기 왔나이다. 나를 보호하소서. 주님이 우리 보디가드입니까? 왜 자기를 보호 해달라는 거예요?
이거는 이스라엘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식 법을 받았잖아요. 안 지켜야 되는데 이 사람들이 지킵니다. 지키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집착이 지키면 지킬수록 점점 더 자기를 위해서 매이게 돼있습니다. 이게 바로 한국에서 교회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사기인 줄도 모르고 내가 믿음이 모자라서 그런 모양이다. 내가 어린아이 같이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서 그런 모양이라고 해서 있는 돈 있는 정성 계속 거기다 꼴아 박습니다.
조희팔 목사님만 웃는 거예요. 조희팔 시찰회, 조희팔 교단, 조희팔1, 조희팔2, 조희팔3, 권총 들고 나서는 조희팔도 있고. 얼마 전에 회칼 들고 나온 사람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나중에 가스총 들고 나타나서 건드리면 죽인다고 한 사람이에요. 아무도 못 건드렸어요. 동영상 보면 나중에 가서 왜 이러시냐고 말려요.
도대체 무엇이 겁나는 거예요? 1번이 겁나는 게 아니고 2번이 겁나는 거예요. 내가 나의 올무에요. 내가 나의 덫이에요. 내가 깨질까봐 내가 나한테 매여 삽니다. 내 안에 괴물 있습니까? 괴물이 맨날 말하는 것이 협박조에요. 너, 그렇게 하게 되면 망한다. 협박 아니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럼 내가 나한테 이야기하죠. 그러면 하루에 성경 몇 장 읽고, 기도는 몇 분해야 되는데? 하루 세 장 읽고, 기도는 30분은 하고 전도해야 이번에 얘 수능 치잖아. 수능 며칠 안 남았다. 이때는 몸조심하고 정신 단단히 해야 된다. 나쁜 생각, 나쁜 마음 품지 말고. 이건 불교인지 기독교인지 분간도 안 돼요. 십자가에 왜 죽었는지 이유도 없어요.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몸가짐 잘하기, 이게 교회 다니기
안식일 법 안에 뭐가 들어있다고 했습니까? 긍휼, 자비. 마태복음 12장 볼게요. 진도 더 나가야 몸만 더 피곤하니까.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노라. 너희가 그 뜻만 알았더라면 내 제자들이 밀밭에서 밀 뜯어먹는 것에 대해서 시비 걸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에요.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추수로 본 겁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못할 짓을 했느냐고 했거든요. 그 말은 뭡니까? 그들은 안식 법을 지킨다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본인이 가짜인 것을 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 거예요. 왜? 괜찮은데 왜 죄인이라 합니까? 이게 한국교회 복음 보고, 십자가마을 공격하는 게 그거 아닙니까. 왜 괜찮은 사람에게 맨날 죄인이라 하느냐? 예수 성령 받아서 의인됐는데 왜 자꾸 죄인이라 하느냐, 그것으로 시비 걸고 있거든요.
효과가 와야지. 십자가 효과가 우릴 통해서 계속 나와야 될 것 아닙니까. 효과가 뭡니까? 효과가 남 전도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바로 죄인 중의 괴수라는 그 고백 나오는 게 효과고, 그것이 전도가 되는 거예요. 십자가 이야기하면 그들은 십자가 믿을 마음까지 돼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십자가 믿는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잘난 데다 더 잘난 사람 돼버린 겁니다.
어떤 천주교 집이나 가게에 보면,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마태복음 10장에 나오는 이야기하잖아요. 내가 보기에는 부적이에요. 주님을 상대로 협박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 이것 달아놨으니까 우리 가게는 평화가 있고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부적이 노란 종이에 벌건 피 같은 글자도 아닌 것이 있지요. 그걸 왜 달아놓습니까? 귀신이 보고 놀라서 떠나게 하기 위해서 하잖아요. 그게 일리가 있어요. 그 글자를 보고 흥분하는 사람은 귀신이 아니고 본인이기 때문에. 본인 속에 귀신 있다는 것을 그만 들켜버렸어.
지금 교회에서 집회를 하잖아요. 주님이 흥분하겠습니까, 본인이 흥분하겠습니까? 본인이 땀 질질 흘리면서 흥분해요. 그래놓고 끝나면 카스, 시원하다. 은혜 받았다는 거예요. 카스는 맥주 이름입니다. 시원하게 성령의 카스를 마시는 거예요. 땀 증발하면 시원하잖아요. 땀 빼면 시원해져요. 모든 게 다 기분 탓이에요. 실패입니다. 기분 따라 살아요. 그걸 전문용어로 충동이라 해요. 인간은 자기가 이성적으로 다룰 수 없는 충동으로 살면서 뒤늦게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조립하는데 급급해서 자기 정당화시키잖아요.
결론 맺겠습니다. 오늘 내용은 이겁니다. 안식 법을 준 것은 인간의 현실이라는 것이 현실 세계가 아니고 사실은 일시적인 가현실이죠. 상징에 불과해요. 현실을 숨어있어요. 나타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아요. 나타난 것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대로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에요.
나타난 것이 다가 아니에요. 나머지가 있다니까. 우리는 나머지에 묶여서 살아요. 성령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런데 울산 사람들은 무엇에 움직입니까? 자기가 확정한 현실, 자기 몸, 자기를 위하여 울산에서 돈 벌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삽니다. 남들 이야기라고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우리의 일상이지요.
그러면서도 1번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고 우리를 하나의 상징물로 그리고 나머지, 세상에 모르는 그 일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피동적으로 사용하다 보니까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과제나 숙제가 아니고 우리의 할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일이 곧 구원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일을 내 일로 생각하지 말고 주께서 나로 참 부지런 떠시는구나. 부지런히 주님이 자기 구원의 일을 이루어나가시는구나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장도 비슷한데요,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스톱! 믿습니까? 우리 안에 누가 들어있다고? 1번이죠. 주님의 전제가 들어있지요. 그 다음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스톱! 우리 뜻 아닙니다.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것 3번, 나머지, 우리에 적용되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주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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