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강-YouTube강의(부러움)151105-이 근호 목사
132강-YouTube강의(부러움)151105-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32강-YouTube강의(부러움)151105-이 근호 목사
제 132강, 제목은 ‘부러움’입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대표적인 것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 되는 것이 부럽죠. 어떤 의미에서 교회 나오는 것도 보다 더 부자 되기 위해서 나오는 그런 노림수 때문에 나올 경향이 농후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누가복음 16장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보고 하는 이야기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라고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섬김이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데, 같이 비교시켰던 반대가 뭐냐 하면 재물입니다.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이상은, 하나님과 겸하여 재물을 섬기고 있는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신다면 재물은 섬기는 대상이 아니라고 하시니까 그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이 궁금하겠죠. 그리고 난 뒤에 거기에 예를 든 게 있습니다. 예를 든 것이 바로 유명한 거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지 나사로는 지지리 궁상이죠.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나사로하고 누구를 비교시키느냐 하면 앞집의 부자와 비교를 시켰습니다. 우리에게 누가 부러움의 대상이냐고 묻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거지 나사로 될래? 부자 될래? 어느 팔자가 마음에 드느냐고 우리에게 묻는 겁니다.
그리고 둘 다 죽었습니다. 죽고 난 뒤에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갔고 부자는 지옥 갔습니다. 자, 옛날에 한 때 부자였고 한 때 거지였다는 것은 시간만 지나가면 그거는 옛날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우리에게 묻습니다. “어느 팔자가 부러우냐? 거지 나사로가 부러우냐? 아니면 부자 됐다가 지옥 불에 간 게 부러우냐?” 고 묻는 겁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취지는 더 깊은데 있습니다. 바로 그 낙원이라는 것, 천국이라는 것,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으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세계죠. 그 천국이라는 것이 이 지상의 모습에서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안 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나중에 죽고 가서 가게 된 그 지옥이라는 게, 특정 장소가 문제가 아니고 누가 지옥에 가느냐가 중요하거든요.
누가 지옥에 가느냐 하면 이 세상에서 살면서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던 자들이 지옥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붙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덧붙여서 해석을 해야 앞에 나오는 13절 구절인 하나님과 겸하여 재물을 섬길 수 없다는 그 내용이 확연해지고 분명해지는 겁니다.
사람은 어떤 추정적인 결과에 대해서 선택을 하라면 지옥보다 천국을 선택하겠죠. 그런데 그 천국에 거지 나사로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상당히 다행스럽게 생각을 할 겁니다. 하지만 거지 나사로가 처음부터 천국 간 것이 아니고 이 지상에서는 그야말로 거지로, 심지어 거지 정도가 아니죠. 죽을 때도 고통가운데 죽었으니까.
남들 보기에 얼마나 참 인생 망가졌고, 세상에 인생을 실패해도 어떻게 저런 나락으로 실패 하냐고 모든 사람의 동정과 천시를 받을 정도로 그러한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거지 나사로에게 가미를 해놓고, 그 다음에 앞집에 부자를 설정해놓고, 자 둘 중에 어느 쪽이냐는 거죠. 사다리타기에요.
눈에 보일 때 마치 우리는 거지 쪽에 가게 되면 마지막 끈이 지옥하고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느껴지고, 그리고 부자는 얼마나 하늘의 복을 받았으면 부자가 되었겠습니까? 그만큼 부자 받을 짓을 했기 때문에 부자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그 끄트머리는 아마 천국 갔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은 우리가 죽고 난 뒤에 골라잡을 문제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기준해서 선택돼야 될 문제죠. 그 말씀이 뭐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이 이야기를 쉽게 예를 들면 하나님과 반대말은 뭐예요? 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과 반대말은 재물이고. 하나님을 못 믿게 만드는 라이벌이 재물이고. 반대로 이야기해서 재물에 신경 쓰지 말고 관심두지 말라고 말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래도 하나님 섬길 마음이 있습니까? 달리 이야기해서 그래도 거지 나사로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십니까? 이 부러움이라는 것은 이 땅에서 하나의 유혹거리였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말씀이 창세기 2장에 나옵니다. 근데 따먹지 말라고 해놓고 3장에서는 그 나무가 어떤 나무냐 하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지라. 이거 유혹입니다. 이거 부러움입니다.
누구나 끌릴 수밖에 없고 땡길 수밖에 없는 대상이 바로 선악과 나무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했다면 딱 보는 순간 ‘에이, 꼴 보기 싫어!’ 이런 모양새로 아주 흉측한 과일로 만들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면 말씀만 그렇게 하실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라도 진짜 진저리 날 정도로 외면하게 만드는 그런 과실을 달아놓았으면 사람들이 아예 안 따먹을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질 건데, 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까지 해놓고 왜 따먹지 말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주의 일에 영광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어떤 거래를 하거나 흥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나무를 심어놓고 그 다음에 다른 요소를 불러내요. 이게 유혹될 만한 것을 놓고 다른 것으로 불러내는데, 그 다른 것이 누구냐 하면 악마, 뱀을 그 덫에 걸리도록 한 겁니다.
이미 인간을 이렇게 창조할 시점에 하늘에서는 예수님과 미카엘과 악마의 전쟁이 있었고, 그 전쟁의 여파로 뱀은 이 지상을 선택해서 지상에 왔습니다. 그렇다면 선악과 따먹지 말라고 한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저주해야 될 존재에게 저주하기 위한 근거로써 이 말씀을 줬다면 그 궁극적인 저주의 대상은 악마였고, 이 악마가 인간에게 유혹으로 작용해서, 자기편으로 삼아서 악마가 자기 정체를 드러내게 한 겁니다.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은 선악과로부터 시작해서 이러한 모든 것이 인간의 운명이나 인간의 팔자라는 것은 사람이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있는 겁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먹지 말라 니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해서 죽음의 의미를 던져준 것은,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이 죽음을 알맹이로 삼아서 핵심으로 삼아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인간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선악과 안 따먹은 상태에서 구원이라는 것이 성립이 안 됩니다. 선악과 따먹어서 인간들로 하여금 자기 팔자, 자기 미래, 자기 운명이 자기 힘으론 어쩔 수 없다는 지경에다가 푹 잠기게 해놓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조치에 의해서 구원이 주어지게 되면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영광만 돌리게 되죠.
그렇다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자기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가 되고 허약한 입장이라는 것이 여기서 분명히 정립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성경말씀에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는 어느 쪽을 부러워하지 말고 나사로 쪽을 선택하라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할 위인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다고 단정 짓고 거지가 거지 된 것은 자기의 믿음이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조치하신 겁니다.
앞으로 모든 영생이라는 것도 이처럼 우리의 현재 입장을 분명히 알게 해주시고, 이러한 이길 수 없는 부러움과 유혹을 능가해서 주님의 용서하심으로써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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