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뽕 나무 습격 사건묻고답하기누가복음

뽕나무 습격 사건잃어버린자 키 작은 삭개오(눅 19:1-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0제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삭개오는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았나요?1번 키 작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키 높은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고자 했기에 2번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를 위해 나누어 주겠다고 다짐을 해서3번 남의 소유를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해서4번 1번 2번 3번을 다 행하고자 했기에몇 번 입니까?오늘 온 김진우씨는 답이 없다고 했고, 우리 학생 진희는 답이 5번이라고 했습니다.결국 답이 여기에 없고 다른 답이 있다는 말인데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는데 우리 진우씨는 잃어버린 자를 인자를 찾으러 왔기에 1-4번은 답이 아니다고 했고, 진희는 아주 간단하게 삭개오의 어떤 행동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마음대로 이다 라고 했습니다. 진희는 저번에 배운 것을 여기에 써먹는 융통성을 발휘 했지요. 그럼 결국 진우씨 말대로 왜 잃어버림을 인자는 찾는 겁니까?그 잃어버림의 의미를 알아 보고자 합니다.자 삭개오의 고백은 사실상 누구나 다 할수 있는 고백 일겁니다. 까짓꺼 그것 못하남 뽕나무 위에 올라가고, 재산 반 내 놓고, 남의 소유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것 100배 정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까짓꺼 쪼깨마한 삭개오도 했는데, 키 큰 내가 그것 못하겠냐고 우깁니다.그런 자신감은 나 보다 못난 자가 했기에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럼 생각을 해봅시다!. 삭개오가 그런 행동을 안했다고 칩시다. 나 보다 못난 자가 그런 행동 안하고 나보다 훨씬 잘 난 자가 했다고 생각 해보면, 사람은 늘 상대적으로 판단하기에 그 사람은 잘났으니까 그것 하는가 당연하니 내가 구지 흉내 낼 필요 없다고 자기를 합리화 시킵니다. 미쳤나요 내 재산 반이나 내 놓게?. 토색했으면 1배만 배상하면 되지 4배 씩이나? 그런데 문제는 잘 난 인간이 아닌 무시 받아도 싼 못 난 인간, 누구든 손가락질 해도 아무도 눈치 안주는 그런 매국노 세리 삭개오, 더군다나 키 작은 자입니다. 그런 자가 재산 반 가난한자에게 내 놓고, 토색한 것 4배로 갚겠다고 했으면 아무리 키가 작아도 삭개오보단 큰 자들은 이거 이거 못참지요. 까짓껏 이거 왜 못하겠습니까? 삭개오도 했는데. 못할 것 없지요.뽕나무? 그거 못 올라 가겠습니까? 삭개오 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있고요.재산 반? 에게 에게 재산 반이 뭐꼬 재산 3분의 2 정도 되어야지 아니 10분의 9 쏜다. 토색한 것 4배? 삭개오가 4배면 난 7의 7 77배 음 숫자도 은혜스럽넹 77정도는 되어야지아주 자신 만만해 합니다. 왜? 삭개오 보다 잘났으니까.그런데 왠 걸 예수님은 저 무가치한 매국노 세리, 민족과 이스라엘 국가의 배반자, 더군다나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 삭개오를 먼저 맞아주십니다.영접하는 자가 삭개오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를 먼저 영접하신 거지요.자 그렇다면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고싶도록 만든 자가 누구죠? 아니 뭐 대단한 사람 왔다구 이러는게 아니야 ! 다들 뭐 그냥 보고, 안보이면 그만 재방송을 시청하거나, 그 좁은 구석보단 넓은 길을 갈때에 얼마든지 가능한데, 왜 구지 그 순간 안보고는 못 배길 정도로 삭개오는 참지 못하고 기여이 기여이 보고 싶어했으며 왜 무모한 행동인 뽕나무를 올라갈려고 했냐 말이죠. 너무 성질 급한 것 아닙니까? 뭐 아무리 예수님이 인기 좀 있다고 해도 조금만 있으면 아니면 내일 사람들이 없을 때에 한산 할때에 만나면 되지, 뭐그리 어려운것도 아니요 늘 군중들 틈 속에 비집고 들어갈 정도로 늘 그런 상태가 아니다면 다음 기회 있잖아요? 왜 급합니까? 저 혼자 오바입니까? 뭐가 그리 급하냐 라는 거지요 지금 당장 오늘 이 순간 안보면 못 볼 것처럼 다급하냐 말입니다. (아가서 내용 생각나넹)오바 아닌가요? 오바면 수정하거나 고치거나 삭제하거나 휴지통에 버려야지요(다 컴퓨터 용어넹) 그런데 더 기가막히는 것은 예수님이 나무라시거나 수정하기는커녕 먼저 삭개오를 알아보시고서는 삭개오야 너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십니다.참 나 ! 지금 그 다급하기 짝이 없는 삭개오를 차분하게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더 다급하게 만듭니다. 보고싶어 보고싶어 그 두근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뽕나무 위에서 함 볼려구 조금 더 가차이에서 보고싶어서 애타는 그 마음에 그 불같이 타오르는 급한 마음을 주님은 물 좀 뿌려서 차분하기 짝이 없고 점잔하기 이를데 없는 유대인의 왕 다운 모습으로 삭개오를 차분한 자기처럼 진정 시키는게 아니라, 불 난 집에 기름 끼언 듯 오! 삭개오 내 너거 집에 놀러 갈게 ! 이거 이거 도저히 예수님도 못 말립니다. 삭개오 보다 더 오바맨입니다. 이게 뭡니까? 삭개오 나빠요 예수님 나빠요. 그래서 키 큰 놈 다 냅뚜고, 잘 난 인간 다 무시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들 모두를 뻘쭘하게 만들어 버리시니, 다들 궁시렁 합니다 나 완전히 새됐어. 뭡니까 이게.의인 유대인이 아닌 죄인인 세리(매국노) 삭개오랑 함께 하겠다는 것은 예수님도 죄인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그런 환영 분위기에 찬 물 끼엊는 썰렁함으로 왜 분위기 따운 시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아이스맨 ? 지금 우리가 뭔가를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자는 거지나사로가 천국 갔다면야 비록 자기는 지옥 왔지만 자기 동생들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가 거지나사로도 갔으니까 말이지요. 상대성으로 느낀 천국이겠죠. 그러니 동생들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 한 참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지요.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자기의 가능성을 늘 손 놓던 자입니다. 죽어도 상관 없는 자. 개가 핧타도 개에게도 무시 당해도 상관 없던 자, 그것을 아브라함은 고난이라고 거지 나사로를 변호하는 겁니다. 그러니 천국에서 부자에게 무시당해도 그냥 마냥 품 속에만 있는 겁니다.부자는 자기가 지옥 온 줄도 모르고 천국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오라 가라 라고 요청을 하니 웃끼는 일이지요.마찬가지입니다. 삭개오가 한 일이면 나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자기의 가능성을 자기보다 못난 자를 통해서 발견한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자기 보다 못 난 모습으로 온 자가 베푸는 구원은 구원으로 여기겠습니까? 그거 공짜로 줘도 안 받습니다. 가치가 없거든요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가치있는 구원, 가능성 있는 구원을 인간은 요구합니다. 그러니 그 가치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는 겁니다. 지옥 속에서도 부자는 그 기준을 놓지 않았으며, 지금 삭개오랑 함께 유하겠다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겁니다. 왜 가치성이 떨어지거든요. 그것을 믿어버리면 삭개오랑 동기동창을 먹어야 하는데 싫치요 싫어.그러니 삭개오를 무시하는 겁니다. 바로 이 모습이 예수님이 인간들에게 당하는 잃어버린 바 되는 모습이다는 겁니다.예수님은 자신의 잃어버림의 모습을 삭개오 속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잃어버림을 표출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담은 그릇으로써 표출될 수 밖에 없도록 됩니다. 아무도 생각지도 못하던 뽕나무를 올라갈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 당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이런 생각 나올 수 있는 겁니까?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의 아이디어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심은 아이디어를 예수님은 찾으시는 겁니다. 그 수 많은 자 다 냅뚜고 말이지요.자 그럼 그 뒤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능하다고 여긴다면 부자가 가지고 있는 천국관이랑 다를바 없습니다. 감히 상상치도 못할 고백을 하게 됩니다. 재산의 반이나 뚝, 그 피 같은 재산을 뚝, 이거 이상하잖아요? 뚝 짤라서 가난한 자에게 아픈 마음 감춘채로? 뭐가 그리 신이 나서 자기 피 같은 재산을 나누어 줍니까? 뭘 갚긴 뭘 갚아요? 그냥 보험들면 보험회사가 다 알아서 처리하고 벌금통지서 날라오면 그 액수만 내면 되지 왜 느닷 없이 낯설은 4배가 왜 나옵니까? 이것은 주님이 심었다는 겁니다. 지금 삭개오가 주인을 만나서 주인교체 작업을 했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 교체 할 자 없습니다.그래서 이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원이 허락 되어 집니다. 알고보면 삭개오가 한 것 없고 오로지 주님 홀로 만든 상황이요 주님 혼자 다 이루어 놓은 감독 연출 각본 주연 모두 예수님인데 단지 삭개오라는 소품을 통해 잃어버림의 역할(건축자의 버린 돌의 모습)을 맡은 것이지, 삭개오의 작품이 아니라 예수님의 작품이라는 겁니다.그 감독의 아이디어가 바로 뽕나무 습격 사건입니다. 캬 이거 이거 감독 아니면 어떤 누구도 흉내 못내는 아이디어 아닌가요? 뽕나무를 우찌 습격할 생각을 다 했을까요?그것두 딱 한 명만 말이죠. 만약 여러명이 뽕나무를 습격한다면 그거 감독이 편집하고 짜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작품이 아니라 감독인 예수님의 작품인 겁니다. 감독이 빛이 나야지 삭개오가 빛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뽕나무 습격 사건은 딱 한 명만 올라가죠. 예수님 혼자 감독 연출 카메라감독 조명 주연 조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예수님 혼자 다 하시는 거지요. 그러니 진희 말대로 예수님 마음대로입니다.그럼 우리는요?진노를 보여주는 소품, 긍휼을 보여주는 소품 이지요. 소품이 움직입디까? 죽어져 있어야지요. 가만히 찌그려져 있어야지 살아서 꿈틀꿈뜰 거리지 않지요.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역할은 예수님 뿐이요. 인간은 단지 소품입니다. 소품으로 출연하는게 그게 어딘데 이거 땡잡은것인데.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갈 때 나무1 김진우 나무2 김진희 점봇대 김대식. 이거 김트리오 자기 이름 올라 가는게 이게 이게 보통 영광이 아닌데 이것을 무시하면 안되죠.그럼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되나요? 그럼 가만히 있지 나무가 발 달렸나요? 점봇대가 꿈틀 꿈틀 움직이던가요?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성경의 믿음의 선배들이 바로 이 역할입니다. 자기들이 꿈틀꿈틀 살아서 움직인 적 없어요. 살아서 움직이는 분은 주인공 예수님 뿐이고. 믿음의 선배들은 단지 예수님의 소품 이거 이거 영광이지요. 주인공의 소품입니다. 누군 예수님의 칼, 누군 예수님의 방패, 누군 예수님의 신발, 누군 예수님의 투구. 자 그럼 예수님은 그 소품들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까요? 아니지요 소품은 소품일뿐 주인공이 안됩니다.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한다고요? 그건 오바죠. 주인공은 아무것도 없어도 주인공 그 자체로 영광 됩니다. 람보 영화를 보면 람보가 기관단총 총알 다 떨어져도 기관총 버리면서도 빗발치는 적의 총알을 다 피하잖아요. 총이 없어도 왜 그럴까요? 주인공이니까. 그러면 극적 효과가 더 하지요. 왜? 주인공이니까 ! 소품은 결국 소모품입니다. 소모품으로 예정된 거죠.소모품 주제에 소모품의 가치성을 찾으면 안됩니다. 그 가치성 그 가능성을 절대로 포기 못하는 자가 부자였고, 지금 뒤에서 수근 거리는 선민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이었고, 소모품은 소모품일뿐 아무것두 아닌데 뭘 이라고 하는 자가 삭개오요, 거지 나사로요, 아벨의 족보라는 겁니다. 자기의 가능성 자기의 가치성에 의미를 두지 않더라는 겁니다.결국 그렇게 의미를 두지 않다 보니, 가치를 두는 자들에게 잃어버린 바 당하지요. 없어지는바 당합니다. 예수님이 앞으로 당할 모습을 예수님이 삭개오를 통해서 자신의 잃어버림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겁니다. 주인공 이신 예수님이 소모품 대열에 합류합니다. 주인공이 !성경은 참 이상합니다. 제게도 그런 질문을 하는 분이 많은데요, 물론 저도 많이 목사님께 물었지만 ! 그럼 그 고백 이후 그 고백대로 했냐 안했냐? 특히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 그 이후 죄 지었냐 안 지었냐? 이것에 대해 억수로 궁금해 합니다만 묻는 이유가 성경이 답하질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답이 없으니 묻지요. 그런데 우리는 의미를 두고 싶지요. 가능성과 가치성을 둡니다. 부자 욕할 필요 없지요 우리도 그러니까. 성경만 예수님만 가능성 가치성을 안둡니다.답하지 않는 이유는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지요. 야곱이 십일조 앞으로 내겠다고 서원하지요(창 28:22) 그 이후로 냈다 안냈다 의미 안둡니다. 성경이 의미를 두지 않으면 우리도 의미 안두면 되지요.의미를 두는 것만 알면 되지요. 무엇인가요? 삭개오의 고백이 실행 되었냐 안되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삭개오의 고백이 누구에 의해서 성취 됩니까?바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에서 다 이루어지는 겁니다. 바로 잃어버림 속에서 다 이루어 지는 겁니다.분명 우리는 그를 버렸는데 이루어질 리가 없는데. 예수님은 그 버림당하는 그 순간에 다 이루신 겁니다. 이상하잖아요. 버렸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고 가치가 없는 것인데. 오히려 그 속에서 다 이루시고 성취하시고 완성하시고 찾으시고 북치시고 박치시고 다 하시니 마치 우리는 그를 버렸지만 죽였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하신 것이요 다시 살려낸 것이지요.분명 삭개오, 소경, 현장의 간음한 여인, 아벨, 우리야, 기생 라합, 스데반, 등등 구름 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을 우리는 분명 버렸는데, 죽여버렸는데, 잃어버림을 당케 만들었는데, 예수님은 그 잃어버린 자들을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다 찾아내시고, 다 구원시켰다, 다시 살려내었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죽였지만 주님은 다시 살려내더라 라는 것이죠.(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9)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히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이 아이디어 인간의 지혜 속에서 나올수 있는 아이디어 입니까? 오직 예수님만의 아이디어입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는 예수님 뿐이지요. 믿음의 주는 예수님 뿐입니다. 인간 믿음 다 거부하십니다. 믿음의 주인은 예수님이기에 인간이 주체가 된 믿음 예수님이 준적 없습니다.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새 생명의 삶, 성화가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고 가치성이 있고 가능성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면 세상 사람에게도 먹혀 듭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무가치 합니다. 내세울꺼리가 못됩니다. 자랑할게 못되요? 가능성도 없는 겁니다. 세상에 먹힐 리가 없지요.어느 것이 나를 인정 해줄까요? 나도 나에게 무엇을 가치가 있는 믿음이라고 가르쳐 줍디까? 십자가요? 거짓말입니다. 십자가는 가치 없습니다. 잃어버림을 누가 가치가 있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자기도 남도 인정하는 것을 가치있게 가능성 있게 봅니다. 십자가는 그 어떤 가치도 가능성도 없는, 졸지에 몽땅 잃어버림을 당케 되는, 절대로 인간 스스로가 선택 할 수 없는 겁니다. 믿을 수 없는 겁니다.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믿음을 거부합니다. 믿으면 죽습니다. 죽는다니깐?그래서 건축자의 버린 돌(무가치 무가능성)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이 포착 불가능한 것입니다. 딴 사람 몰라도 나는 믿는다? 꼬끼오 !!!오죽하면 기이하다고 할까요? 분명 무가치하고 무가능성인데 어떤 누구도 하지 못하는데 말이죠. 이런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말이죠. 분명 각기 제 길로 가는데.(마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고 라고 합니다.(벧전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이 잃어버림이 아니면 선택을 들고오든 예정을 들고오든 선민을 들고오든 새 생명의 삶을 들고오든 성화된 삶을 들고오든 구원을 들고오든 새피조물을 들고오든 다 소용없는 겁니다.왜냐구요?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인자의 관심 사는 우리(선택자, 구원된자, 예정자, 성화된자, 새피조물)가 버린, 무가치하다고, 무가능하다고, 무관심했던 바로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우리의 관심사는 오로지 나 자신이요 나의 믿음으로 구원 따내기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런 믿음에 의해 잃어버림을 당한 어린양만을, 희생당한 어린양 되신 예수님만을 성경은 관심두고 있지 다른 관심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삭개오처럼 되자고 쉽게 따라잡기를 해도, 삭개오처럼 잃어버림을 당하자는 아무도 없는 다 도망 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잃어버림을 우리 속에 심으셔서 십자가로 끌고가셔서 반드시 다 이루시듯이 성취하셨듯이, 주님의 잃어버림을 무시하지 않는 십자가를 감사하고 기뻐하고 십자가를 귀히 여기는 십자가의 사랑만을 자랑할 수 있는 자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9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267 묻고답하기 Re.. 언어란,허구인가요?(허상.)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21
1,266 우리교회 Re..출 16:31-36 (증거 항아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20
1,265 우리교회 Re..출 16:31-36 (증거 항아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20
1,264 설교 용서 2004년 9월 19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8:21-22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9-20
1,263 우리교회 Re..마 18:21-22 (용서)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9-20
1,262 우리교회 출 16:31-36 (증거 항아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19
1,261 우리교회 Re..행 13" 1- 5 (전도 일꾼)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4-09-16
1,260 강의 부산 9월 13일 강의 11, 12세기 신학 [신학] 최고관리자 04-09-15
1,259 강의 Re..8월 30일 강의 녹취 - 화평교회 오용익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4-09-14
1,258 묻고답하기 Re..간절히 기도합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14
1,257 묻고답하기 간절히 기도합니다. - 최고관리자 04-09-14
1,256 설교 종말과 교회 2004년 9월 12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8:15-20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9-13
1,255 우리교회 Re..마 18:15-20 (종말과 교회)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9-13
1,254 우리교회 Re..출 16:21-29 (안식일과 만나)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13
1,253 우리교회 Re..출 16:21-29 (안식일과 만나)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13
열람 ➜ 묻고답하기 뽕 나무 습격 사건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04-09-13
1,251 우리교회 출 16:21-29 (안식일과 만나)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12
1,250 묻고답하기 지옥 속을 뚫고 시편 최고관리자 04-09-11
1,249 묻고답하기 Re.. "극락이" 글과 "강도야" 글 사이에 이 내용이 있습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10
1,248 묻고답하기 매정한 복음 이사야 최고관리자 04-09-10
1,247 묻고답하기 Re..예배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9-09
1,246 우리교회 Re..행 12"18-23 (교 만)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4-09-09
1,245 우리교회 [일반] 아래 9월 6일 모임은 9월 5일 동은교회 예배임을 수정합니다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4-09-09
1,244 우리교회 Re..출 16:13-16 (이것이 무엇이냐)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06
1,243 우리교회 Re..출 16:13-16 (이것이 무엇이냐)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9-06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