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1 - 가시적 초월강의잠언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1 - 가시적 초월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1 - 가시적 초월

15,10,05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28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주님께서 법을 주셨으니, 나로서는 온 힘을 다할 뿐입니다" 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저주를 받은 인간의 변명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법으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법으로 만나면 인간은 죽어요.

◈ 두 종류의 인간 !!

인간은 두 종류가 있는데, 즉 죽어야 되는 인간과 다시 살려야 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간이 두 종류가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표준적인 인간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아시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일하게 아버지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죽음과 사흘만의 부활을 통해서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최초로 이 세상에 공개하셨는데, 그것을 비밀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기독교가 어떻고 교회가 어떻고 하는 것은 완전히 무시해도 되는데, 그것은 완전히 마귀의 장난이라는 말이다. 마귀는 숨기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방금 이야기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두 종류가 있고, 그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다" 라고 하는 것이 말이다. 기독교를 불교와 비교하는 것과 같은 들은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인데,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 진실을 아는 자 !!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무엇인고 하니, 가면 갈수록 이 세상이 진실을 이야기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돈과 관련이 없이 진실을 이야기하면 되는데, 그런데 자기에게 이익이 올 경우에만 진실을 이야기하려고 하고, 손해가 되면 입을 다물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세상을 탓하고 말이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그 자체가 진실만을 이야기하는데, 그러니 우리는 우선 그것을 먼저 알아야하고, 그렇게 해서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 자신은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인간을 죽여가면서까지 진실을 이야기하도록 조치를 취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보내심을 받은 자의 경우에는, 그런 사람의 삶 바로 제2의 예수님의 인생을 살아가도록 되어있는데, 즉 복음을 위해서 죽도록 되어있다는 말이다. 오직 그런 자만이 진실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는데, 즉 복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가?

방금 두 종류의 인간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그러면 그 다음에 우리는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가?" 라고 하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쓸데없는 생각인데, 거기에 '나' 라는 자기 생각이 개입하게 되면, 그 진실을 왜곡하고 훼손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는 말이다.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는데 말이다.

다음과 같은 제목의 영화가 곧 나온다고 하는데, '나쁜 놈은 반드시 죽는다' 라고 말이다. 그게 영화 제목인지 드라마 제목인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런 긴 제목을 걸었다고 하면, 그러면 사람들 중에서 나쁜 사람을 골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골라내게 되면 나쁜 사람을 빼놓으면 자동적으로 나머지는 좋은 사람이 되고 마는데, 그러니 이게 비복음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영화 제목처럼 이렇게 "나쁜 놈은 반드시 죽는다" 라고 할 때, 그러면 누가 나쁘고 좋은지, 과연 그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제3의 위치에 누가 서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인간은 그럴 수가 없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호응을 한다는 것이다. "나쁜 놈은 죽여야해"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실에 대해서 훼방하는 것이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인데, 그러니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내가 진실하지 않다" 라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자기 자신이 전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 성경전체가 악마의 글이다 !!

어제 낮 예배시간에 "성경전체가 악마의 글이다" 라고 했는데,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글인데, 결단코 악마의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가 들여다보면 그것이 전부 악마의 글이 되는고 하니, 그 말씀을 보는 우리 자신이 전혀 진실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할 때, 죽어야 하는 인간과 생명을 얻는 인간이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저는 어디에 속합니까?" 라고 들이대는 순간, 그것이 바로 자기의 가짜임이 들통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주님이 "너는 거기에 개입하면 안 돼" 라고 말씀을 하시면, 우리는 "그래도 나는 좋은 쪽에 서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들이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보면 되는고 하니, 이렇게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하면, 자기가 자꾸만 좋은 쪽에 서려고 하지 말고, 우리는 그것을 주님께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욕심으로 인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좋은 쪽에 서려고 하는데, 그러면 자기가 가짜임이 들통나게 된다는 것이다.

◈ 거짓이 뚜껑을 닫고 있기에 !!

그것은 비단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그러한데, 그렇다면 이렇게 모두가 다 가짜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진실하지 못한데도 진실한 것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그것은 바로 그 거짓된 것이 뚜껑을 닫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뚜껑을 말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 몸을 피부가 덮고 있는데, 그러면 보기에 그래도 나름 아름답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피부가 벗겨지면 어떻게 되는가? 교통사고가 나던지 해서 그렇게 되면 보기에 흉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나오면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데, 너무 징그러우니 직접적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 나는 나의 피부만 좋아할 거야 !!

아니 피부가 있거나 없거나 모두 같은 몸인데 왜 그렇게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자기가 가기를 볼 때, 껍데기만 보겠다는 심보가 아니냐는 말이다. 자기 내부는 알라지 말라는 것이다. 건강검진을 하면서 내시경을 해도, 그것을 의사만 보고 자기에게는 알이지 말라는 것이다. 의사가 "지금 환자 분의 위는 이렇습니다" 라고 하면서 보라고 해도, 정작 자기는 그것이 보기가 싫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국 인간은 자기 피부만 보고 있는데, 곱니 쭈글쭈글하니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표면만 보고 있는데, 그런데 만약에 누군가가 그 피부를 통 채로 뜯어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도 성형수술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지 싶은데, 성형은 일종의 '피부 바꾸기' 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 피부가, 즉 표피가 자기 운명을 결정한다고 여겨지는 이 세상, 그러니 뭔가 이것부터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껍데기로 경쟁하고 비교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쁜 것은 어디를 가도 성공하고, 못생긴 것은 어디를 가도 미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 이것도 운명이다 !!

이것은 타고난 것인데, 자기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왜 흔히 "결혼을 하면 예쁜 것은 얼마 가지 않는다. 역시 사람은 속이 진실해야 돼. 성실하면 못나도 다 예쁘게 보인다" 라고 하는데, 결혼을 할 때 보통 중매쟁이가 그렇게 남자를 꼬드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니 생각이고, 남자가 결혼을 해서 40년을 살아도 여자가 못생긴 것은 여전히 못생겼다는 것이다(ㅋㅋ).

왜 그런고 하니,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보는 식으로 남을 보기 때문에 그러한데, 인간은 자기를 껍데기만 본다는 것이다. 그런 안목을 가지고 남들을 본다는 것이다. 여자가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그런 식으로 칭찬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못생긴 여자와 사는 자기의 울분을 그런 식으로 해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자기를 스스로 위로하려는 것의 하나일 뿐이지, 예쁜 것은 계속해서 예쁘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위로를 하면 되는가? "이것도 운명이다" 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그것 이외는 달리 방법이 없는데, 스스로 고치고 개선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치는 것이 전혀 안 되니 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종류의 인간, 즉 죽어야할 인간과 또한 새로운 피조물인 인간이 있는데, 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대해서 접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진실하지 못하기에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나는 이것을 선택하겠다" 라는 것은 애초부터 그만 박살이 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간 자체가 껍데기만 보고, 전혀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 인간이 못하는 것을 주님은 해내신다 !!

그렇다면 성경내용은 무엇인가? "인간이 못하는 것을 주님은 해내신다" 라는 것인데, 그러한 과정이 성경에 보면 잘 나타나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밖에 없는데, 즉 '어떻게?' 라는 것이다. 주님이 어떻게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해낼 수 없는 것을 주님은 어떻게 해내셨는가?" 라는 것인데, 그러니 우리 인간에는 그것이 불가능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불가능성을 무엇으로 바꾸시는가? 가능성으로 바꾸신다는 것이다.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말이다.

어제 오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즉 자기가 흥정이 되는 것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가 주님과 흥정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이 자기가 시도해서 얻는 것보다도 더 소중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미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겠지만 말이다(ㅋㅋ).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의 기억 속에서 자기가 얻고자 하는, 그런 자기의 기억보다도 아예 자기 기억 속에 없는 것인데, 주님이 도리어 더 신경을 써주신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는 더 소중한 것이고, 그런 것이 도달했을 때, 그것을 기적이고 은혜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노력해서 얻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오히려 진짜 기적을 훼손하는 마귀의 장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라고 하면 그 기도내용이 "주님의 뜻이라면, 나는 모르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옵소서" 라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필요한 것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하면, 그 해답은 이미 성경에 나와있다는 말이다. 즉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하는, 바로 그 '아버지' 라는 것이다.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그 '관계' !!

왜 그러한가? 아버지는 아들도 책임을 지는데, 그러니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그 관계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혼자 살고 싶어서 거기에 필요한 김치냉장고, 가스레인지 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혼자 살면서도 기가 죽지 않는 것들을 말이다. 그래서 "차를 사주세요. 집을 사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경우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데, 바로 그 관계만 되면, 그 아들의 나라에 우리는 같은 아들로서, 즉 우리는 양자가 된 자로서 영원히 같이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챙기기 위해서 허락하신 그 천국이 오죽 찬란하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문제는 그 결과인데, 하지만 우리는 결과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고 그 과정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해내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지금부터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성경을 세 군데 찾아보겠는데, 그러면서 그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는 말이다. 먼저 시편 17편 15절을, 그 다음에는 80편 7절, 그리고 132편 10절을 보자.

(시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80: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 132:10)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 시편에서 '얼굴'이 등장함으로서 !!

여기에서 공통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얼굴' 인데, 이 얼굴을 다른 말로 하면 시선인데, 이것이 바로 인격의 대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의 대표가 눈인데, 그래서 흔히들 사람들이 눈을 영혼의 창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에도 보면 눈을 마음의 등불이라고 하고 말이다.

(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그러니 눈에서 그 사람의 속에 들어있는 인격성이 드러나는데, 그러니 눈이 밝으면 그 사람의 몸이 밝고, 몸이 밝으면 그 사람의 영혼도 밝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말은 결국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는 자신의 영혼을 말씀을 통해서 전달하고 전달해서, 영생을 얻고자 하는 새로운 피조물에게 자기 속에 있는 얼굴의 빛을 담게 되면, 그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편에서 왜 이렇게 얼굴이 많이 등장하는고 하니, 방금 살펴본 132편 10절에 보면 누가 나오는가? 다윗이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이 시편이 무슨 언약인가? 노아 언약도 아니고, 아브라함 언약도 아니고, 모세 언약도 아니고, 그러면 무슨 언약인가?

그게 다윗 언약인데,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다윗 언약과 다른 언약의 차이점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다른 언약은 그 중간매체가 방주라는 물체이고 또한 율법이라는 문자인데, 그런데 다윗 언약에 와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기 아들, 즉 어떤 인격적인 중보자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다윗 언약 때 와서 말이다.

(시 132:10)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 다윗 언약, 그리고 !!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해보면, 기독교니 불교니 하는 것을 일단 다 치워버리고,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는 언약을 가지고 하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보자는 말이다. 하나님의 언약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언약이라고 하면 또 뭐라고 하는가? 언약은 약속으로서, 그 약속은 귀에 들려오는 하나의 언어적인 개념인데, 그런데 그런 언어적 개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하소서. 듣겠나이다" 라고 나오면서,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다윗 언약에 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모세 언약에서는 율법인데, 사실은 이 율법도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돌판이라는 것이 있어서 구체적인 물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돌판의 구체적인 물체성과 인격성에 대해서는 울산강의에서 이미 언급을 했는데 말이다. 즉 모세마저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서, 그렇게 탈락하는 기능을 모세가 감당해야 했다는 것이다.

모세가 돌판을 가지고 왔을 때, 사람들은 모세만큼은 율법을 지키겠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돌판이 그냥 돌판으로 끝나겠는가? 그리고 이 돌판마저도 깨어지게 되는데, 그게 언제 깨어지는가? 어떤 언약이 준비되고 난 뒤에 깨어진다는 것이다.

◈ 다윗의 후손이 다윗가문을 만드신 분 !!

그 준비된 것이 바로 다윗 언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그러면 그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가? 그게 바로 다윗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다윗의 가문이라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윗의 가문을 가문이 되게 하는 다윗 가문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분이 놀랍게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유대인 박사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했는데, 왜냐하면 시조라면 시간적으로 제일 먼저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시간적으로 제일 빠른 분이 그만 자손으로 오게 되면, 그만 시간의 역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즉 미래가 앞당겨져서 그 과거를 장만하게 된다는 말이다.

◈ 언약이란 무엇인가?

언약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쉽게 그냥 약속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약속은 말로서 하는 것인데, 그러면 그 말은 듣게 되고 말이다. 아니면 보고 읽는 글자든지 하는, 그런 언어적 범위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게 구약시대라고 하면, 그런데 신약에 와서 "언어에 속하는 말씀이 나에게 대해서 증거하는 것이다" 라고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말씀하게 되면, 그게 예수님의 인격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말씀을 지켜서 구원을 받자고 하던 것이 그만 파토가 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즉 말씀을 지켜서 구원을 받던 시대는 그만 끝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약속을 알고 싶은가? - 예, 알고 싶습니다" 라고 해서, 그러면 말씀이 인격이 되면 그분과의 차이점을, 즉 예수님과 자기의 차이점을 알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 날아가고 마는가? 인간이 만든 신이라는 것, 즉 하나님이 그만 날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을 염두에 두게 되면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추상적인 언어만 개입되기에 말이다. 이미 언어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었는데, 그런데 그 언어로 계속 밀어 부친다는 것은, 자기가 생각한 하나님을 그렇게 계속해서 밀어 부쳐야 한다는 말이다.

◈ 하나님인가? 예수님인가?

같은 신학교를 나와서 동기로 지내면서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그들은 뭐라고 하는가? "왜 내가 이야기하는 개혁주의 신학이 바른 신학이 아니냐?" 라고 하면서 불만을 터트린다는 것이다. 총신에서 그렇게 같이 공부한 개혁주가, 하나님 중심의 칼빈주의가 왜 아니냐고 하는데, 자기들은 도저히 그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하나님을 중심으로 놓기 때문에 엉터리이다" 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쪽에서는 "도대체 하나님 중심의 칼빈주의가 무엇이 나쁜가?" 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것은 진실치 못한 당신이 지어낸 것이기에 엉터리다" 라고 했는데, 즉 "진실치 못한 당신이 납득이 되기에 엉터리다" 라고 말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고 하니까, "이근호 목사가 주장하는 예수님 중심을 우리도 인정을 하는데,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 주권사상의 일부가 아닌가?" 라는 것인데, 그러니 백날 예수님을 이야기해도 거기에 다 집어넣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뭉텅거려서 '하나님 중심'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카페에 앉아서 분위기 좋게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음성이 그만 높아지고 마는데, 진리를 이야기할 때는 격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나운서처럼 미리 작성된 원고를 보고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아니 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하나님' 이라는 우상성을, 그것만 포기하면 되는데,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게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 하나님을 포기하고, 언약이 구체적으로 인격화가 되신 분을, 몸소 이 땅에서 걸어다니신 그 예수님만을 생각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버리지도 못한 채로, 자기가 믿는다고 하는 예수님을 결합시켜서, 사실은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예수님도 마지막 때에 아버지에게 다 바쳤다고 했으니 2인자인데, 그러니 모든 것을 1인자인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좋은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지금 신학교 교수들이나 목사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모두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귀가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자기들이 했던 것이 그것인데 말이다. 유대인들은 입만 벌리면 하나님인데, 알라신을 섬기는 이슬람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힌두교나 일본도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그리고 저기 대만을 가도 바다의 신을 섬기는데, 그게 섬나라이니 말이다. 옛날에는 실제로 아이까지 제물로 바쳤다고 하는데, 지금은 자제해서 향을 피우고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카오 등지도 역시 그러한데, 그런 곳에는 여전히 미신이 아주 극렬하다는 것이다.

물론 저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걸어서 세상 속으로' 라는 여행프로를 보면 다 나온다는 것이다. 그게 그 나라의 음식이나 살아가는 모습을 소개하는 프로인데, 저는 거기에서 종교적인 것만 주로 보는데, 모두가 다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물론 마귀가 만든 하나님이지만 말이다.

◈ 얼굴 - '너희는 율법을 지키지 못해'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시편에서 이렇게 얼굴이 등장하는데, 이런 얼굴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은, 그것은 바로 모세의 율법이 인격화가 되는 전환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미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는가?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 라는 것을 이미 전제로서 깔고 진행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에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만 있다면 다윗 언약도 필요가 없는데, 율법을 지킬 수 있으면 자기가 지켜서 구원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신명기에 보면 분명하게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물론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말씀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그게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위선적인 껍데기에 둘러싸여 있기에, 그런 고깃덩어리에 파묻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벗겨내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몰라도, 벗겨버리면 자기가 자기를 꼴 보기가 싫다는 것이다. 마치 여자들이 화장을 벗겨낸 맨 얼굴의 자기 얼굴을 싫어하듯이 말이다.

◈ 혼자 노는 시체놀이 !!

그래서 사람들은 엑스레이 사진이 아닌 거울을 찾는데, 자기 겉모습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가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 얼굴이 두 개가 되는데, 자기 얼굴과 거울에 비친 얼굴로서 말이다. 그러면 이제 서로 말을 주고 받는데,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45도 각도로 자기 모습을 비쳐보고는 만족해하면서 출근을 하든지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는 '혼자 노는 시체놀이' 라고 하고 싶은데(ㅋㅋ), 이게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는 말이다. 그래도 젊었을 때는 나름 봐 줄만 한데, 나이가 들어서도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진한 화장을 하면 보기에 흉측하다는 것이다. 물론 하지 않아도 그렇지만 말이다. 그 정도의 나이가 되면 자기의 내면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데,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내면을 통해서 아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 주님의 시선을 통해서 !!

그 내면을 아는 방법이 바로 얼굴인데, 즉 타인의 시선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누가 자기를 지켜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분이 자기를, 자기가 착각한 자기가 아닌 그분이 원래 생각했던 두 종류의 인간, 즉 율법으로 저주를 받게 하는 인간과 율법으로 완성을 시키는 인간, 그렇게 결국 두 종류로 만들기 위한 주님의 꾸준한 지켜봄, 관찰함, 그렇게 주님의 시선을 통해서 쳐다보게 되어질 때, 우리 인간은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까 본 시편 80편에 보면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 라고 하는데, 그 얼굴로 인해서 구원을 받게 해달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구원이 주님의 따가운 시선으로 된다는 말인데, 즉 "구원에 대한 모든 작업을 주님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저는 인정합니다" 라고 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편에 이런 대목에 나와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생뚱맞게 느껴지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우리 인간들을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보고 계실 것이라고 여기니 말이다. 마치 우리가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보듯이, 그렇게 심심풀이로 말이다.

하지만 주님의 얼굴은 전혀 그게 아닌데,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얼굴은 이 땅에 어떤 인격자로 출현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라는 의미인데, 쉽게 말하면 "저를 주님이 원하는 자로 만들어주옵소서"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의미는 비교를 함으로서 !!

여기서 우리가 정리해야 할 것이 무엇인고 하니, 조금 어려운 것을 하려고 하니 머뭇거리게 되는데 말이다. 그래도 할 것은 다 하는데 말이다. '자아' 라는 것은, 이것을 영어에서는 '에고'와 '셀프' 라고 하는데, 같은 의미라고 보면 되는데 말이다. 둘 다 그 자체를 비교해서 알 수 있지 그 자체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언어라는 것 자체가 그러한데,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해서 반사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고유의 의미는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남자의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까, "여자가 아니다" 라는 것인데, 그게 바로 남자의 의미라는 말이다. 물론 여자는 남자가 아닌 것이 여자이고 말이다. 그렇게 의미는 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곧 악마 !!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인데, 귀신과 짝을 이울 때 진짜 하나님의 의미가 등장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귀신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공격하고 방해하는 것인데, 그게 바로 악마라는 것이다. 그렇게 비교를 해야하는데, 그런데 우리는 존재로 봐서 뭐라고 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고,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귀신이다" 라고 해버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기가 진실하지 않은데, 그러니 그게 진실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반대로 생각하면 되는데, 즉 "내가 싫어하는 분이 진짜 하나님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악마이다" 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라고 되어있으니 말이다.

(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 주님의 잔소리를 계속해서 듣지 아니하면 !!

어제 오후시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말씀으로 자기를 심하게 치지 않으면 타인의 시선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말씀으로 자기를 친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치는 것이 아닌데, 말씀에 담겨있는 주님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그 주님의 따가운 시선이 "아직도 너는 니가 노력해서, 니 덕분으로 산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하는, 그런 잔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님으로부터 잔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지 아내의 잔소리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그런데 자기가 잘났다고 버티게 되면 마누라가 옆에서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그만 발작을 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서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다투는 여인과 사는 것보다 차라리 광야에서 혼자 살아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ㅋㅋ).

(잠 21: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은 본다고 해서 느껴지고 체험되는 것이 아닌데, 자기에게 결핍이 되고 누락이 된 것이, 그래서 한 바탕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에 이 말씀을 보면 그야말로 실감이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잠언서에서는 한 구절인데, 옆에 있는 구절은 또 그 구절에 맞는 사건이 벌어지면, 그때 비로소 실감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의 구절은 또 잊어버리고 말이다.

◈ 언약이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성경을 제 아무리 천독을 하고 만독을 해도,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때 그때마다 사건을 일으켜서 깨닫게 해주시는데, 그러니 마음속에 박히는 말씀은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찬송가도 그러한데, 자기가 힘들 때 부르면서 은혜를 받은 것이, 배가 부를 때는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다시 힘들게 되면 "천부여, 손들고 나옵니다" 라고 하면서, 그때 그 찬송가를 다시 부른다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을 당해서 4천만을 날렸을 때는 말이다. 그런데 다시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뭐라고 하는가? "우리가 인생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살 필요가 뭐가 있는가?" 라고 하면서 다시 그때를 잊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집어넣는데, 그때는 언약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신부나 목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언약을 집어넣는데, 그때는 그냥 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를 그만 찢으면서 집어넣으신다는 것이다.

◈ '나'와 '주체' !!

그러니 주체는 없는데, 그런데 그동안 찢어진 자기가 자기 자신의 주체로서 행동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이해가 잘 안 되지 싶은데, "내가 나 자신의 주체로서 행동했다" 라고 한다면, 여기서 '나' 라는 것과 '주체' 라는 것이 어떻게 다르냐는 말이다. 우리 생각에는 "내가 주체이고, 주체가 곧 나이다" 라고, 그렇게 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것도 조금 어려운 것인데, 여기서 '나' 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 '나' 라는 것이고, 반면에 주체라는 것은 남과 만났을 때 "이게 나입니다" 라고 변장해서, 그렇게 순간적으로 급조를 해서 남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니 주체는 객체와 반대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객체가 어려우면 그것을 '대상' 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그 대상 앞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식으로 마중을 나올 때는, 그때는 자기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자기를 급하게 조립하게 되는데, 그렇게 조립해서 대상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주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김 여사님, 오셨습니까?

그 대표적인 것이 상견례를 할 때인데, 평소에는 그냥 아줌마라고 하다가 그때는 꼭 '여사님'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한 품위를 하고 한 교양을 하시는 분들이 상견례를 하는데 모여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제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멀리서 보면 천사이고 가까이 보면 괴물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ㅋㅋ).

상견례가 끝나고 나면 모두들 탈진상태인데, 그동안 자기를 꾸민다고 힘이 들어서 말이다. 상견례를 두 번만 하다가는 고혈압으로 쓰러지지 싶은데, 자기를 꾸미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체가 객체에 따라서 그때그때 다르다는 말이다.

◈ 내 안에 내가 너무나 많아 ♬

고상해야하는 주체를 만들 때는 그렇게 만들어야하고, 또한 동네에서 그냥 몸베를 입고 돌아다니는 주체를 만들 때는 또 다른 주체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가시나무새' 라는 노래가사가 딱 맞는데, 즉 "내 안에 내가 너무나 많아"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그때마다 급조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액체주체' 라고 하는데, 즉 그릇의 모양에 따라서 그때그때마다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처신하는 방법을 다 달리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우리교회 교인들도 교회에 나올 때는 나름 양복을 차려입고 나오는데, 물론 등록할 때 말이다(ㅋㅋ). 그 다음부터는 잠바를 걸치고 나오는데, 즉 객체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교회에 나와보니 다들 그런 차림이니 거기에 맞출 수도 있는데, 하지만 그것보다는 말씀 앞에서 모든 게 들통이 나니, 자기가 아무리 꾸며도 그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모두들 편안한 주체로 바뀌고 만다는 것이다. 아무리 급조를 해도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아니까 말이다.

◈ 자아는, 자기 안에 있는 악마 !!

하지만 그래도 주체는 주체인데, 자아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아는 신(神)인데, 즉 자기 안에 있는 악마라는 것이다. 자기 안에 있는 귀신은 자기가 손을 대지 못하고 말이다. 이게 어느 정도로 악마적인고 하니, 이 자아는 뭔가 마지막 적이 다가오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도 자기 자아를 모르는데,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때그때마다 주체로서, 마치 징검다리를 딛듯이 그렇게 살다보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체 덩어리가 마치 보디가드처럼 자기 주위를 포위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것을 바꿔치기를 하는데, 어떤 때는 털털한 인생을, 또 어떤 때는 꼼꼼한 인생을 살아서 자아에게 봉사하고 섬긴다는 말이다.

◈ 가시적 초월 !!

그런데 그 자아는 자기보다도 월등한데, 그것을 두고 '가시적 초월' 이라고, 아주 어려운 표현인데 말이다. 즉 자기 안에 자기를 초월하는 가시적 초월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몸으로 등장하니, 이 몸을 뭐라고 하는고 하니, '가시적 초월체', 혹은 '가시적 초월자', 혹은 그냥 '가시적 초월'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초월이라는 말이다. 보통은 초월이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이 초월은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이번 겨울수련회용 요한계시록 교재를 쓰고 있는데,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고 넣고 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염두에 두고서 그 교재를 쓰는고 하니, "왜 인간은 초월하려고 하는가?" 라는 것인데, 즉 왜 인간은 현재 자기가 아닌 신적인 다른 자아를 자꾸만 염두에 두고, 그것을 목표로 삼으면서 나아가려고 하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려고 하는 의도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날마다 초월하려고 하는 것을 쉬운 말로 하면, 발전, 계승, 성장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지금보다 더 나은 나' 라는 것인데, 하지만 정작 더 낫고 더 훌륭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무조건 더 환상적인 것을 향해서 자꾸만 도약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도약할 때는 그냥 뛰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것들을 끌어 모으는데,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간에, 친구이든 돈이든 간에, 아무튼 그런 것들을 끌어 모아서 새로운 자기를 위한 세상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세계를 만든다는 말이다.

◈ 하이데거 - '세계 내의 존재' !!

이것을 하이데거는 '세계 내의 존재' 라고 하는데, 이번 부산강의에서 할텐데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은 자기를 발견할 때 그냥 "나 여기에 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세계 속에서 "나 여기에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무엇 무엇 안에 내가 있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영어로 하면 'IN'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 풍선들이 즐비한 거리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렇게 큰 풍선이 있으면 그 안에 자기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풍선은 자기가 만든 자기 세계인데, 그런데 이 풍선을 가지고 거리에 나가보니, 자기와 똑같은 풍선들이 여기 저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퉁퉁 부딪치게 되는데, 그런데 여기서 도망을 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싸워야 돈이 된다는 말이다. 어제 낮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말이다.

왜 노인정에 가보면 거기에는 고스톱을 치는 할머니들이 꼭 있는데, 그분들이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단 돈 10원이라고 걸고 한다는 것이다. 어제 어머니를 잊어버려서 갔는데, 정작 어머니는 없고 그런 할머니들만 있다는 것이다. 3천원을 내고 그것을 바둑알 30개로 바꾸어서 말이다.

◈ 장애인 협회 !!

그런 풍선들을 모두들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풍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장애자들이라는 것이다. 장애자들은 불쌍하니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정작 장애인 협회의 임원들을 보면 잘 산다는 것이다. 장애인들끼리 모여서 무슨 권력이 있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권력은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다.

알다시피 장애인들은 국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데, 장애인 협회의 임원들은 바로 그러한 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잘 보이면 떡고물이라도 조금 떨어질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장애인들 중에서도 그만 가난한 장애인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이런 장애인 협회와 같은 곳이 어디에라도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방금 이야기한 노인정에 가보면 노인정 협회라는 것이 있고 말이다. 그렇게 언제나 모든 곳에는 보다 더 큰 풍선들이 있는데, 그러니 싸워서 빼앗아야만 돈푼이나 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저는 싸우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소리인데, 인간은 평생동안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없는데, 물론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름 싸우고 있지 싶다는 것이다.

◈ 다시 정리하면 !!

그러니 인간은 자기가 신봉하는 '자아' 라고 하는 신이 있기에, 그 신에게 봉사한다고 하면서, 그 신의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고 하면서, 끝까지 거짓의 주체 덩어리로서, 그런 그때그때마다의 다양한 주체 덩어리로서 버티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것 주체를 끄집어내고, 또한 내일은 저것 주체를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자기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데, "걱정하지 마쇼. 내가 아니라면 누가 당신을 지켜주겠소. 내가 지켜주겠소" 라고 말이다. 거울을 보면서 하든지 어떻든 간에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간다고 하는데, 진리고 뭐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그것이 아니라 못났다고 하시는데, 어떤 경우에 말인가? 하나님의 언약이 침투할 경우에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언약은 무엇인가? "언약이 말씀이니 곧 율법이네. 그러면 그 율법을 지키면 되겠네" 라고 할지 몰라도, 그 언약은 지나가고 이제 무슨 언약인가? 다윗 언약인데, 즉 주님의 인격화가 된 얼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그래도 시편에 보면 얼굴에 광채를 비춘다고 했으니, 광채를 비추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한다면, 하지만 막상 이 땅에 온 얼굴은 어떠한가? 광채는 고사하고 아무도 흠모할 만한 모습이 전혀 되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전혀 그런 얼굴이 아닌데, 그야말로 온 몸에 매를 맞아서 상처가 나고 난 얼굴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차라리 노숙자의 얼굴을 믿으라고 하면 몰라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온 몸에서 냄새가 나는 노숙자에게 가서, "당신 옆에 있으니 참으로 든든합니다" 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참으로 당신을 믿기를 잘했어. 당신과 같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라고,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12제자가 왜 예수님을 버렸겠는가? 전혀 든든함을 느낄 수가 없는데, 만약에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고 하면 36계는 기본이라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도망을 치게 하는가? 자기의 주체가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 자기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즉 자기에게 이익이 없다고 여길 경우에는 당장에 손을 털고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 이제 가짜는 좀 꺼져주세요 !!

주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 다른 말로 언약을 주실 때, 언약의 영이 곧 성령인데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가짜는 좀 가라" 라고, 가짜를 떼어내는 식으로 성령께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주체는 각각 사건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기어이 떼어내시는 작업을 완수하고야 마는데, 꼭 제주도 해녀처럼 말이다. 기어이 바위에서 전복을 떼어내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백성을 떼어내어서 바구니에 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냥 바위에 그대로 둔다는 말이다. 우리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가 믿는 신이 있으니 말이다. 자기가 곧 신인데, 자기가 자기를 믿는데, 그러니 자기 자신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떨어지겠는가? 죽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안 되는 것을 주님을 떼어내시는데, 언약의 칼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면 우리 속에 들어있는 괴물은 뭐라고 하겠는가? "안 돼!" 라고 비명소리를 지르는데, 그러면 주님은 "이게 어디서 까불어?" 라고 하시면 그만 찢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찢을 때 나오는 것이 살과 피라는 말이다.

◈ 예수님도 자아와 주체가 있어서 !!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과 헤어지셨는데, 예수님에게도 우리처럼 자아와 주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게 달리실 때 뭐라고 하셨는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했는데, 그것은 곧 "아버지의 원대로 하면 나의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짐을 인정합니다. 기존의 자아를 아버지께서 손대지 않으면, 그 자아로는 저는 메시야가, 주가 될 수 없습니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막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러니 그와 동일한 고백이 우리 입에서 나와야 하는데, 즉 "주여, 나를 가만히 두지 마시고, 내 속에 있는 자아를, 그 괴물을 찢든지 뜯든지 주님 마음대로 하옵소서. 그리해서 두 번 다시 이 허접스러운 나를 신봉하지 않게 하옵소서. 어떻게 하면 내가 나에게 실망스럽게 다가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저를 실망케 하옵소서" 라고 말이다.

그게 성경에 그대로 나와있는데, "주여, 나를 미워하게 하옵소서. 내 목숨을 미워하게 하옵소서" 라고 말이다. 즉 자기의 살아온 인생 스토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막장 드라마를 봐야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결론이 무엇인가?

아까 '나쁜 놈은 반드시 죽는다' 라는 영화제목을 이야기했는데, 그런데 자아는 그것을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나 빼놓고 다 나쁜 놈이다" 라고, 즉 자기에게 해꼬지를 한 놈들은 다 나쁜 놈들이라는 말이다. 이게 거짓된 자아인데, 즉 진실하지 못한 자아라는 것이다.

◈ 진실, 진실, 최진실 !!

진실이라고 하면 자꾸만 최진실이 생각나는데, 그녀도 죽고 그 남동생도 죽고 또 남편도 죽고 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들이 무엇인가를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을 텐데, 만약 최진실이 유명한 영화배우가 아니고 평범한 가정주부였다면, 그렇게 독하게 자살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라고 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게 그녀의 유명한 멘트인데 말이다. 그것 때문에 대박이 나지 않았다고 하면 과연 그렇게 되었겠느냐는 것이다. 마귀가 그녀의 마음을 너무나 부풀리고 말았는데, 무엇이 부풀어지고 말았는가? '자아' 라는 신만 커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게 자기에게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커진 만큼 멋있게 살면 되겠지만, 하지만 각 상황에 맞추어서 그때그때 거기에 맞는 주체를 만들어내기가 자기로서는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고상하게 살지도 못하면서 고상한 척을 하려고 하니, 그리고 배운 것보다도 더 많이 아는 척을 해야하고 말이다. 어쩌다가 말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그 원성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가 자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폭발을 하니 그게 자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게 맞지 않는데, 그러면 그게 맞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사람은 없는데, 위선적인 주체와 자아는 서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때그때마다 주님은 자근자근 밟아서 이 자아가 얼마나 허접스러운지, 그것을 깨닫게 해주니 우리로서는 고맙기가 그지없다는 말이다.

◈ 너는 밥도 먹을 자격이 없어 !!

자기가 자기를 보고 날마다 잔소리를 해대야하는데, 즉 "너는 밥도 먹을 자격이 없어. 무엇을 했다고 밥을 먹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잖아"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밥도 먹으면 안 되는데, 아무리 탕수육 세트가 맛이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식사 때 감사기도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녹취 구 -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 이란 다큐영화가 있는데, 두 명의 김기덕이 등장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는 내용입니다. 한 명의 김기덕은 들어주고, 또 다른 한 명은 이야기를 하고 말이죠. 그러면서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고 하고 하는데, 자기의 마음속에 있던 것들을 다 끄집어내는 겁니다. 마지막에는 욕만 바가지로 하는데 말이죠.)

우리 어머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고 하니, "니가 이렇게 와서 일일이 밥까지 챙겨주고 하니 참 고맙다" 라고 하시는데, 물론 그게 주체인지 자아인지는 구분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ㅋㅋ). 아무튼 그렇게 챙겨주는 것에 대해서 고마운 것을 아시니, 저는 그게 고마운데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대외적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해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괴물과 같은 자아를 모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이렇게 공기와 햇빛을 주시면서 살려내시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 정말 주님의 은혜가 고마운데, 그래서 참새도 키우고 들풀도 키운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대가 형성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은 그야말로 들풀이고 또한 참새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키우신다는 것, 그것이 느껴지게 될 때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우리는 침투한 언약에 대해서 감사하게 되지, 결코 자기 자아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 언약 - '너희들이 악하지만 구원을 하겠다' !!

다시 정리를 해보면, 인간은 자기를 스스로 바꿀 수가 없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이 있어서 어떻게 되는가? 어제 오후에도 그런 설교를 했는데 말이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언약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니까, "거짓말을 한 자는 천국에 가고, 순박한 자는 지옥에 간다" 라고 하는, 그런 희한한 역전의 법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법칙이 이스라엘에게 오다가 보니까 어떻게 되는고 하니, 신명기 9장의 말씀처럼, "너희들이 착하고 의로워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으로서 원래 악한 자들이다. 하지만 나는 너희들을 구원을 하겠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신 9: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신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것을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떤 점에서 해결을 하지 못하는고 하니, 그것은 두 개를 서로 비교해보면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첫 번째 경우에, 악인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가? 그만 구원을 하신다는 것이다. 즉 "악인데 구원을 하신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학자들의 주장은 무엇인고 하니, "선한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 세상에는 왜 악이 있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는 말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왜 악을 용납하시는가?" 라는 나온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미 질문 자체가 매우 수상한데, 이것은 언약 안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라, 불신자들이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오늘날 신학자들이 하고 있고 또한 목사들이 하고 있는 질문인데, 물론 아브라함도 역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말이다.

◈ 귀신을 통과하지 않으면, 직접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

그래서 어제 낮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귀신을 통과하지 않으면 직접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라고 말이다. 이것은 제가 목회를 하고 나서 처음 했는데 말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귀신에게 사로잡히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귀신에서 잡혀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는 상태가 되어서 비로소 구원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경우에는 그야말로 귀신에 씌인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즉 "하나님은 선한 분인데, 그런데 왜 악을 용납하는가?" 라고 하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 "광주사태가 왜 일어나는가? 목 잘린 하나님인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게 악마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하는 소리라는 말이다.

아브라함도 그러한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이여, 의인 50명만 있으면 벌하지 마옵소서" 라고 말이다. 그 50명이 45명, 40명, 20명, 30명, 10명으로 내려가는데, 10명 이하로 내려간 다음에는 차마 더 이상 기도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0명이 있으면 되는가? 그것은 말이 안 되는데, 의인이 없으면 당연히 심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모든 인간이 다 괴물인데,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언약이 왔으니 하나님과 대화가 되는 것이고, 만약에 언약이 오지 않았으면 아브라함은 자기가 주장한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 줄로 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하지 못한 자아가 만든 하나님은 모두가 다 거짓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개혁주의 신학이 바로 그러한데, 하나님의 주권, 즉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믿자"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이슬람의 알라신이고 힌두교의 신이라는 것이다. 그런 칼빈주의는 모두가 다 엉터리이고 인간이 만든 철학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은 결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다.

◈ 선한 선생님이여 !!

"어떻게 하나님은 선한 분인데 악이 있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은, 그것은 부자청년이 했던 오해와도 동일한 것인데, 그 청년이 예수님을 보고 "선한 선생님이여!" 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대번에 뭐라고 하시는가? "니가 어떻게 나를 선하다고 하는가?" 라고 나오신다는 것이다.

(눅 18:18)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그것은 예수님께서 선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너의 평가에 나는 말려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즉 "니가 나를 보고 아무리 선하고 훌륭하다고 해도,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오히려 나는 기분이 나쁘다" 라는, 그런 뜻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쁜 사람을 보고 예쁘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누가 봐도 예쁜데 굳이 예쁘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들리는고 하니, "남들이 너를 보고 예쁘다고 하지? 이제는 내가 너의 약점을 캐겠어. 너의 속내를 다 까발리고 말겠어" 라고, 그렇게 공격적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제가 너무 깊이 생각을 했나요? (ㅋㅋ)

하나님은 결코 선하지 않는데, 여기서 요한복음 7장 19절과 20절을 보자.

(요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요 7: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

어제 여기까지 설교를 하려고 하다가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날 것 같아서 그만 두었는데 말이다. 여기 20절에 보면,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보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에게 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입에서 귀신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귀신은 아까도 말했지만 가시적 초월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거울로 보는 것 이상의 여분의 것, 잉여의 것, 즉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아닐 것이다" 라고 여기고, 그 빈자리를 마저 채우려고 하면서도, 인간이 어떻게 손댈 수 없는 다른 초월적이고 영적인 영역을 구상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로호를 발사하는 치밀한 과학자들도 어떻게 하는가? 로켓을 쏘아 올리면서 미리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과학자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은 "아마 이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인간이 대자연에서 다 안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지의 것이 남아있는데, 그 남은 것에 대해서 성의를 표하면 일이 잘 풀릴 것이다" 라고, 그렇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심봤다' 라고 외치는 심마니들이 또한 그 대표적인데 말이다. 꿈속에 누가 나타나서, 무슨 산에 가서 어디를 파라고 해서, 실제로 가서 팠더니만 삼산이 50뿌리나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까지만 아는데, 하지만 그 사람이 삼산을 팔아서 그 돈으로 예쁜 여자를 만나서 행복하다가 살다가, 결국은 어떻게 되는가? 죽어서 지옥에 가는데, 그러니 지옥에 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는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 끝까지 다 보고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중간에 그만 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끝까지 다 나와있는데, 즉 "언약을 모으면 주의 분노로 망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얼굴을, 즉 "주님의 너를 향한 조치가 없다고 하면 너는 저주를 받는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 언약을 알면 전부를 안 것 !!

그것이 끝까지 다 이야기한 것인데, 그러니 언약을 알면 전부를 안 것이라는 말이다. 언약에는 모든 시간이 다 응축되어있는데, 언약 안에서 말이다. 그러면 언약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문자로 보지 말고, 언약은 예수님이라는 분으로 구체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언약 안에서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인간의 목숨과 관련된 두 가지의 기능을 보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47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4,992 묻고답하기 (8탄) 어느 목사님의 질문과 답변 민수기 최고관리자 15-10-31
14,991 자유게시판 10강-창 1장 28-31(인간의 할일)151028-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5-10-29
14,990 우리교회 인간의 할 일 151028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5-10-28
14,989 강의 사무엘상 7강(누구나 메시야), 마태복음 69강( 12보좌성) 151027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5-10-27
14,988 자유게시판 요한복음 7장 40절(가락-거주지)151015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5-10-26
14,987 자유게시판 54강-신 9장 13-17절(깨진 돌판)151025-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5-10-25
14,986 자유게시판 62강-고전 11장 1절(그리스도와 사도와 성도)151025-이 근호목사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10-25
14,985 우리교회 깨진 돌판 151025 신명기 최고관리자 15-10-25
14,984 우리교회 예수님의 어릴적 151025 - 최고관리자 15-10-25
14,983 우리교회 그리스도와 사도와 성도151025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10-25
14,982 설교 그리스도와 사도와 성도(고린도전서 1:1)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10-25
14,981 묻고답하기 남자와 여자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10-25
14,980 강의 혈연관계 151023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15-10-24
14,979 자유게시판 요한복음 7장 40절(가락-거주지)151015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5-10-23
열람 ➜ 강의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1 - 가시적 초월 잠언 최고관리자 15-10-22
14,977 자유게시판 9강-창 1장 26-27(인간)151021-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5-10-21
14,976 자유게시판 십자가마을 문서파일 부탁 [신학] 최고관리자 15-10-21
14,975 우리교회 인간 151021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5-10-21
14,974 자유게시판 대전- 68강 놀라운 구원(마 19:23-28)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5-10-21
14,973 자유게시판 대전-(사무엘 6강) 속성 사무엘상 2:6-9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15-10-21
14,972 자유게시판 61강-고전 10장 30-33(하나님의 영광)151018-이 근호목사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10-18
14,971 자유게시판 53강-신 9장 9-12절(돌판)151018-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5-10-18
14,970 우리교회 돌판 151018 신명기 최고관리자 15-10-18
14,969 우리교회 하나님의 영광 151018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10-18
14,968 설교 하나님의 영광(고린도전서 10:30-33)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5-10-18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