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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무엘상 6강(속성), 마태복음 68강(단절) 150922강의다니엘

사무엘상 6강(속성), 마태복음 68강(단절) 150922

이름 : 이근호(IP:119.18.86.67)

주향(IP:222.♡.177.93)

15-10-21 15:16

속성 (사무엘상 2:6-9 ) 대전-(사무엘6강)

이근호

2015년 9월22일 본문말씀: 사무엘 상 2:6-9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2: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2장 합시다. 2장6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는 것은 잊어 주세요. 죽이시기도 하시고 우선 그것부터 합시다. 하나님은 죽이시기도 하시고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전체를 보시잖아요. 사람의 제일 안정된 것이 뭐냐하면 일단 전체를 알면 안정이 되요. 누굴 만나도 안정된 사람이 제일 편합니다. 까부는 것은 짜증나잖아요! 전체를 아는 것. 전체를 아시는 분은, 인간도 전체를 안다고 하지만 인간은 멀었고

하나님은 전체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죽이시기도 하시고, 죽이시기도 하시고, 죽이시기도 하시고 이런 전체가 아니고 하나님은 죽이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살리시기도 하시고, 그렇다면 전체를 모르는 우리는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종잡을 수가 없는, 헷갈릴 수밖에 없는 인생, 생로병사의 인생이지요. 주님께선 약간 흔들었는데 인간들은 많이 흔들리는 것. 주께선 약간 탁! 쳤는데 인간은 저 100m 나가떨어지고 이렇죠!

나가떨어지면서도 전체에 일어나는 일에 일어나는 일에 일부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주님의 안목처럼 우리도 안정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시작하면서 구약과 신약을 한번 엮어 봅시다. 성경은 구약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약도 있기 때문입니다. 방금 한 것을 적어 볼께요!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고 그 뒤에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 올리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고 나오지만

사실은 인간에게서 사느냐 죽느냐가 제일 큰 문제니까 이걸로 정리 될수 있어요.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신다라고 할 때 구약만 잘라서 보면 “그럼 저 어떻게 살아야 되요?” 왜냐하면 죽이기도 하시는데 살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고 “그래! 죽자!” 이렇게 하고 살려주면 또 내 행동이 뭐쓱해지잖아요? 하나님 앞에서 뭡니까? 개인의 자존심이라든지 개성, 자신의 결단, 미래에 대한 계획, 자기 스토리, 자기 인생, 이거는 개무시 당하는 겁니다. 의미 없이 되는 거에요.

아무리 해도 죽이면 끝나는 거고 그렇잖아요? 아무리 해봐야 몸이 아프면 못하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얘기 하다가 “그때 그 일을 해야 했는데 갑자기 암 선고 받아서라는 드라마에 많이 나오잖아요? 드라마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통보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차사고 나서 기억 상실증에 걸리고 이것도 모자라 엄마와 딸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둘다 서로 만나도 못 알아 보는 것, 그런 드라마 지금 아침마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냐하면 나만 잘되면 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잘되면 이건 덩달아 잘된거야! 라는 것에 대해서 네가 수긍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야기 다시 해봅시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합니다. 그 말은 뭐냐 “됐냐? 동의하지? 어떻게 기쁘지?” 그걸 묻는 거에요. 우리에게 묻는 거에요. 그러면 어떤 사람만 “예! OK! 좋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만이 되는

그야말로 뭔 탄다고 해야 할까? 롤러코스터 타는 것처럼 높은 대는 올라갈 때 높은 대대로 재미가 있고 내려올 때는 와~ 하고 재미있고 내가 만들지 않은 구름판에 주께서 만든 그 구름판을 “나는 그냥 띄워 주시면 올라가고 내려 주시면 내려오는,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이런 사람에게만 거부감이 안일어 나면서 안정 되겠지요? 그야말로 침착하게 되겠지요? 그런 사람 있습니까? 그런 사람 없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만 잘되면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만 잘되면 되는 것에 네가 동의하라는 이 말입니다. 마치 회사에서 “나 사장인데 나는 나만 잘되기 위해서 이번에 한 200명 쫓아내겠습니다. 어떻게 쫓겨나는 사람들 기쁘죠?” 이 이야기하고 똑같은 거에요. “아이고! 뭐 사장님만 잘된다면 저는 나가겠습니다.” 이런 사원들 없습니다.

“오늘 당신 집에 불 날거야! 당신 출근 길 조심해! 차사고 날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협박, 공갈로 나오게 되지 동의하지 안잖아요? 그만큼 하나님의 이 말씀은 사람들이 수상한 짓을 해왔다는 겁니다. 하나님~하나님~! 하면서도 사실은 독자적인 자기 영역을, 자기 주머니를 따로 찼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절대로 봐주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무조건 나다! 라고 하는 그것을, 이제부터 강의가 난해해지지만 좀 참으세요!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전체가 속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스라엘에게만 알려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행위가 속성을 낳고 속성이 있는 도달 지점이 이스라엘이라는 특수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행위 속에 속성이 나타나고 속성을 담은 게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행위가 뭐냐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하나님의 속성은 뭐냐 나(하나님)만 잘되면 되는 것, 하나님만 잘되면 되요.

그러면 거기에 대해 이스라엘은 수긍하면 살고 수긍 못 하면 이스라엘은 망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이고 구약에서 하나님의 진면목입니다. 어떻게 이런 하나님, 우리가 알아서 선택해서 믿고 싶은 생각이 들겠어요? “아이고! 뭐 콩쿨에서 2등해도 그렇고 저는 떨어져도 상관없어요!" 이렇게 콩쿨에 도전합니까? "이번에는, 이번에는 1등하고 말리라!" 하나님 믿고 콩쿨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에요.

적어도 구약의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은 아니에요. 그러면 가짜 하나님 믿으면 돼요. 나를 1등 시켜주고 나를 유명인사주는 하나님, 그러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은 상대할 용의가 있는 데 진짜 하나님은 아무도 믿질 않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망합니다. 망했다는 말은 하나님 백성 없다는 말입니다.

바로 신약은 어디서 출발하는가? ‘없다’에서 부터 출발하는 거에요. 만약에 누가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원래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새로 생긴 믿음이라고 보면 되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구원받을 ‘나’가 나에게는 없었는데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구원 받은 나로 ‘없음’에서 ‘있음’으로 새로 창조했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왜? 내가 여기 있는데 없다고 하느냐?”

그거는 구약을 밟아보면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되요. “아하~나같은 사람이 있는데 실패했다. 동시에 나도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없는데서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라는 인간은 어떤 인간이야 하면 하나님이 기뻐해서 만든 인간이기 때문에 실패란 없다. 실패는 끝입니다. 보통 결혼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 하지요? 바로 그 이야기에요. 우리는 예수님하고 결혼하기 때문에 불행 끝, 행복 시작이에요.

“뭐! 죽이시려면 죽이시든지! 뭐! 더 살려 주시면 살지요!” 불행 끝, 행복 시작이에요. 그토록 구약에서 주의 말씀대로 예언했던 것이 신약에서 등장하는데 인간들이 휼륭해서가 아니라 없는 것을 주님의 속성이 나서서 새로 만든 거에요. 인간에겐 그런 마음이 없어요. 인간에겐 하나님께 동의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없는데 하나님의 속성으로 인해 자루 안에 속성을 담아서 새로 만들어 보니까 그것이 성도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겁니다.

대구 강의에서도 했는데 갈라디아서 3장 봅시다. 제가 3장을 읽어드리고 질문을 하나 하겠어요. 2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지요! 지금 갈라디아서 3장 27-28절에 분명히 나와 있는데, 이걸 원했던 사람이 있습니까? 사전에? 아무도 없지요!

원했던 사람이 없어요. 왜 원하지 안느냐 하면 지금 내가 있는데 성도로 바꿔 달라고 요구한 사람이 100% 없기 때문에 만약 내가 헬라인인데 구원해달라! 또는 내가 유대인인데 구원해달라! 혹은 남자나 여자인데 나를 구원해 주세요. 어떻게 하면 구원받습니까를 내 쪽에서 먼저 요청한 사람이 100%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그런 사람은 하나도 해당이 안되요. 왜냐하면 내가 요청했기 때문에 내가 죽어서 좋은 나라 가려고 내가 요청했기 때문에 성경은 해당 사항이 없어요. 서로 엮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약이 어려운거에요. 구약은 하라, 하지 마라가 많이 나오니까 그러면 하면 구원시켜 줍니까? 어떤 가능성이라도 보이지요? 신약은 그게 없어요. 왜? 사람이 없어요. 이런 사람이 없어요.

이런 사람은 어디 있냐? 예수 안에 있어요. 그래서 본문이 어려워요. 예수 안에 있다가 바깥으로 튀어 나오면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관계없이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가 되는거에요. 사람이 있는데 옷 입는 게 아니고 옷 입을 사람이 아예 없어요. 없는데 예수 안에서 창세전에 예정된 자를 주님께서 이렇게 물고기가 알 품듯이 주께서 창세전에 자기 백성을 품고 있는 거에요. 품은 자에요. 주님이 한 명만 임신한 게 아니고,

주님이 창세전에 예정된 모든 자를 알 품듯이 품고 있다가 터트린 거에요. 터져 나오면서 어떤 사람은 유대인으로 어떤 사람은 헬라인으로 나오는데 나오면서 나는 유대인이다. 나는 헬라인이다라고 하면 “이리와! 이리와! 너희들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너희 끼리 비교 하지마! 왜?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오리지널입니다. 항상 오리지널임을 원천을 잊지 말라는 거에요.

내가 요청한 게 아니고 나는 없어요, 없는데 튀어 나와 보니까 내가 된거에요. 그런데 5년 전에는 예수를 몰랐고 교회도 안 다닌 그것이 이미 태중에 있던 캥거루 새끼라니까요. 나오자마자 예수 믿는 게 아니고 5년 뒤에 예수 믿으라고 하면 믿어야 되고 20년 뒤에 믿으라고 하면 믿어야 되고 믿어 보니까 오리지널 원천이 뭐냐, 처음 믿을 때 구원 받은 게 아니고 애초부터 주님의 품속에 있었던 성도였습니다. 성령의 방식이에요.

성령의 방식은 원천을 항상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의 품속에 있던 독생자가 나타났다. 요한복음 1장 이야기입니다. 독생자가 어디 있었다? 아버지의 품속에 있던 독생자가 나타났지요? 아버지의 품속에 있던 독생자가 나타날 때 누가 옆에서 개입합니까? 성령이 개입 하지요? 성령이 개입 할 때는 항상 원천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개입을 해요. 출원지, 출발지.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이 뭐냐?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을 했지요?

구약에선 하나님께 인간이 기대를 하지요? “난 이런 하나님인데 어때? 너희들의 반응은 어때? 어떤 하나님인데요?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데 너희들은 이런 하나님 좋아하지?” 그러면 사람들이 “어데예? 언제예? 택도 없는 소리하지 마이소!” 이렇게 나오겠지요? 아무도 주님의 속성과 본질을 선뜻 나서서 “저! 받아들이겠습니다.” 수용할 사람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성 받다가는 자기가 살고 싶을 때 죽고 자기가 죽고 싶을 때 살기 때문에,

항상 성도는 속성의 연결입니다. 속성에 확정 된거에요. 그렇게 안되던 것이 신약에 오니까 성령을 받아 버리니까 성령의 일이 뭡니까? 주님 품에 있는 것을 바깥으로 명태 알처럼 품고 있다가 확! 쏟아 내지요? 쏟아 내니까 흩어 진거에요. 옛날 초등학교 때 여학생들 검은 치마 입고 구슬놀이 할 때 남자애들이 보면 구슬놀이 하다가 치마 품에서 구슬이 확 내려가잖아요! 구슬 따는 것, 하여튼 여자들은 좋아요. 보관하기가 좋아요. 치마가 있으니까! 남자들은 주머니에 넣는다고 하는데 흘러 나와요. 그렇게 치마에서 구슬 쏟아 내듯이

성령은 뭐냐하면 일체 우리의 것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속성을 현실화 시키는 작업이 성령의 작업입니다. “니들이 하나님 뜻을 알아?” 이것이거든요. 로마서 8장에 보면 우리가 기도 한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하는 기도는 안 받으십니다. 미안하지만 뭐 1등 하게 해달라! 해도 안 받고 너희가 기도 할 줄 모른다고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시는 분은 오직 성령뿐이오니 이것이 로마서 8장에 보면 나와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 아버지를 아는 분이 성령뿐이라고 하냐 하면 성령의 역할이 인간들이 모르는 하나님만이 아는 것을 바깥으로 현실속에서 구체화 시키는 거에요. 그런데 제 말을 이렇게 오해 하시면 안됩니다.

세상이 있고 현실이 있는데 성령께서 하나님의 속성을 뜻을 이 땅에 펼친다고 해석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을 성령이 펼치게 되면 비로소 등장하는 것이 세상이다. 그렇게 보는 거에요. 거기에 비해 철학자들은 뭔 보느냐 하면 세상과 현실이라는 것을 누가 만드는가? 인간이 역사를 통해서 자기의 수고와 지혜와 협동으로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이제 광복 70년 이후에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 누가 만들자? 우리가 만들자. 왜?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 왔으니까! 월남 파병해서 투자 받아서 나라가 수출 드라이브 정책해서 이만큼 전 세계 150 몇 등 하던 나라를 25등까지 끌어 올리고 이렇게 경제발전 한 것은 다 우리가 한민족의 끈질긴 하면 된다는 강한 의지력이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못한다 하지 말고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거 하면 된다는 거지요?

하면 된다는 속성은 누구의 속성입니까? 하나님 속성 입니까? 인간 속성이지요? 인간의 속성은 뭐냐하면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지요? 그러나 주님은 뭡니까?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그러니까 하나님의 속성은 인간이 역사를 주장하고 확고함에 거부를 일으켜요. 그래서 그 거부감을 우리 힘으로 예수 믿습니다. 저는 거짓말로 봅니다. 대구 강의 제목이 뭐냐하면 부자연스러움이죠? 그 강의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왜 세상일은 그렇게 재미있어 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있어선 억지가 동원되는지! 이게 주님의 속성보다 내 속성이 더 친해서 그래요. 습관화 되서 내 성질대로 사는 이것이 나의 역사를 이뤘거든요. 내 성질대로 사는 이것이 내 역사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선 성도로 하여금 자기 성질대로 하게 하세요. 하게 해놓고 네 성질이 더 세냐? 내 뜻이 세냐? 내 속성이 세냐? 네가 네 현실속에서 그 차이를 한번 발견해 봐라! 그게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의 삶은 착한 일을 하는 게 아니고 내 뜻은 이거였는데 이상하게 내 뜻대로 안 되네! 이 차이점 “내 소원은 이건데 아~ 기여히 주께선 내 소원을 억지로 막으시네” 억지로 막으시는 분을 느끼신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그러니 기도를 하세요. 기도를 하는 가운데서, 기도를 해봐야 내 기도를 안 들어 준다는 것을 알지 기도도 안 하면서 무슨, 기도를 안 들어 준다는 것을 알겠어요?

기도를 해야 성령의 생각은 딴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병원에 오래 계시다가 남편이 돌아 왔다. 아내가 밥을 해 준다. 밥을 해 줘야 남편 입맛에 맞는지 안 맞는지 알지요. “당신 뭐 먹고 싶나?” 이러면 남편은 몰라요. 병원에 오래 있었어서 “그저 병원 밥만 아니면 된다.” 그러지 말고 이것저것 해줘요. 그러면 이건 아니고 이거 아니고 이거 아니구나! 하고 뒤적거리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 가듯이,

하나님은 우리 자신들로 하여금 내가 내 뜻이 아니라고 재끼는 그것이 하나님 뜻 인것으로 찾기를 원하고 계세요.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냥 다니던 직장 다니시고 그냥 생활 하세요. 그냥 사세요. 막 사시면서 그래 그건 아니라니까! 그건 아니라니까! 자꾸 이렇게 아니라고 하시면서 내 몸이 내 속성대로 내 성질대로 되는 게 아니고 주님의 성질대로 되어 가는 몸이라는 것을 만끽하란 말이죠. 그게 바로 신앙생활이에요.

그래서 간단히 말해 그냥 사시면 신앙생활 입니다. 견주지 마시고 자기가 분류하지 마시고 그냥 살면 되요. 아까 어떤 교회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교인들이 나간다 하면 나가시라 하면 되요. 그렇잖아요. 애가 성적이 내려간다. 내려 가라하면 되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애가 성적이 내려가면 참을 수 있는 엄마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너 오늘 죽었다!” 하면서 “니가 공부를 더 하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자!”

약국에서 가짜 약 사서 영양제 사서 “이거 수면제인데 먹고 죽을란다!” 하면서 보는 앞에서 열 댓개 먹으면서 사실은 보약인데 죽는 척하면서 겁주려고 그렇게 하면서 그게 신앙생활이에요. 우리의 성질이 나와야 왜 하나님은 우리의 성질대로 안 해주시는지 우리의 성질대로 하면 지옥가니까 천국 보내기 위해서 우리의 성질을 내보여 주시면서 그것을 그대로 안하게 하시는거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진정한 성도라면 엄마가 그렇게 공부하게 하려고 협박, 공갈하며 눈물 흘리니까 자식이 감동해서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새 사람 되어 애가 공부를 열심히 하거든 사실 본인은 걱정해야 되요. “내가 지금 안 할 짓을 했구나! 이게 아닌데!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우리 애한텐 안 먹혀야 할텐데 왜 갑자기 애가 개과천선해서 새 사람 되어 공부 열심이 하는지!” 이렇게 되면 굉장히 낯설지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내가 감동 먹여서 된 것이 아니고 때가 되면 말씀이 응하게 되리라! 하나님의 때가 되매 나로 하여금 내 지저분한 속은 다 돌출시키고 그러면서도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하시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처럼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그럼 보세요. 가난하게 된 사람의 소원은 뭡니까? 부자되는 거지요? 그렇지요? 부자되기 위해서 열심이 노력해 부자 되었습니다.

만약에 열심이 한 것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자기역사가 되요. 불신자입니다. 그런데 열심이하는 가운데 뭘 알아야 하느냐 열심히 하는 내 욕심과 욕구와 탐욕,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물리치신다는 것을 느끼며 부자가 되긴 했지만 내가 가난할 때 열심히 해서 된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게 뭐냐하면 바로 도저히 나에게서 나올수 없는 기적적인 마음이에요. 마음에 할례 받은 겁니다.

어떻게 자기가 고생해서 부자 됐는데 극구히 내가 고생한 것과 부자된 것을 연결시키지 말라는 거에요. 나는 내가 부자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부끄러워 말을 못하겠다는 겁니다. 얼마나 철딱서니 없고 얼마나 믿음이 없었으면 부자 되려고 그렇게 애를 썼을까요? 그러면 부자 되려고 애썼던 작업을 하게 한 계기를 주신 분은 누굽니까? 바로 하나님이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성질 더러운 것을 다 드러내라고 우리로 하여금 가난하게 하니까 우리는 자존심 상해서 “나는 이렇게 가난할 인간이 아니야! 나는 부자가 내 격에 맞아!” 이래서 온갖 부자되려고 했거든요. 하고난 뒤에 돌아보니 지난 짓들이 그동안 숨겨져 있던 축출되야 할 나의 더러운 악마적 본성인 것을 주께서 그렇게 노출시킬 때 모든 영광을 누구에게로 돌립니까? 주께 돌리죠. 이걸 다른 말로 하면 피할길.

제가 십자가 마을에서도 피할 길에 대해 설교를 해놓았잖아요. 거기에 보면 예를 드는데 특이한 예를 들었지요. 벤츠사서 타다 시동 걸어 타는 것도 피할 길이다. 무슨 뜻인지 들어도 모를 거에요. 제가 무법자가 된다 했는데 무법자가 뭐냐 하면 함부로 행동하는 게 무법자가 아니고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것이 내가 법대로 시행한 결과가 아닙니다. 그래서 무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황야의 무법자가 아니고 그냥 거저 얻은 것이지 내가 법을 지켜서, 착해서 또는 의로와서 된 게 아니라는 것이 설교 전체의 흐름이에요.

아까 한 것 다시 하겠습니다. 구약에서는 내 성질 받아 줄 사람 있다? 없다? 아무도 없지요? 구약에선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니 겁나서 그렇게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늘 잘되게 해줘야 믿지요. 네가 아무리 부자로 살아도 오늘 밤에 내가 죽이기로 한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겠어요? 여러분, 인간은 신을 손아귀에 줘야 안심이 되요. 그렇지요? 내 필요할 때마다 써 먹어야 할 때, 내 하인 격의 신이 좋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한다고 이렇게 나오니까 뇌물 받친다고 해서 성사 되겠어요? 아부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을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러면 믿을 수 없으니 어떻게 대처 할까요? 진짜 죽여 버려요. 법 안지켰다고 핑계대서 “그러니까 내 말 맞잖아!” 이러는 거에요. 다시 말해서 이 이스라엘이 없는데서 만들어 졌지요!

없는데서 만들어 졌으면 뭐를 생각하겠습니까? 오리지널, 원천, 다시 나를 주님께서 없애도 나는 괜찮아요.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내 앞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있는데 왜 저를 괴롭힙니까? 이러지 말라는 말이죠! 부처가 잘못한 게 그거에요. 생로병사 고생한다는데 그 앞에 전제 된다는 게 뭡니까? 어쨌든 나는 있잖아요? 나는, 싯다르타라는 나는 있다는 거에요.

주님은 그것을 있는 것으로 보는 게 아니고 죽은 거로 봐요. 있는 거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기독교 신자가 된다라는 것이 기적입니다. 물론 제대로 된 신자인가가 문제이지만 있는 나를 어떻게 해주세요! 신자 아닙니다. 예수 믿고 보니까 주께서 없는 데서 나를 있게 만들었지요? 왜? 주님의 속성을 담는 포대기! 여기 있는 게 뭡니까? 밤을 담아 왔는데 누가 봐도 안에 밤이 들어 있는지를 모르잖아요.

청담동에 가면 대신 돈다발이 들어 있어요. 청담동에 가서 사과 상자주면서 선물 받으세요 라면서 진짜 사과만 들어 있으면 그 사람은 끝난거고 사과 말고 대신 안에 돈이 들어 있어야 되요. 겉으로 봐선 모르다고요. 우리 자신도 겉으로 봐선 몰라요.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아요? 아까 집사님이 얘기 했잖아요. 내 속에 더러운 내 성질이 있다고, 성질만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것은 잘못 본 거고 내 속에 더러운 성질과 더불어서 그 성질을 훝어 내는 주님의 속성이 담겨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항상 내 뜻대로 안되잖아요. 그것을 미리 알아서 기도도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은 로마서 8장 다시 할께요.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이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기도 할 줄을 몰라! 왜? 아버지 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면 왜?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모릅니까? 성경을 보고 있는데! 아니야! 안다고 해서 뜻이 되는 개 아니고 뜻을 펼쳐야 되요. 그러면 우리가 펼치면 되 안습니까? 아니야! 성령이 품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쏟아내는,

여자 애들이 치마 속에서 구슬을 쏟아 내듯이 쏟아내는 그 결실물이 저와 여러분들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졌잖아요. 십자가 지실 때 무엇 때문에 졌지요? 죄인보고 죽었잖아요. 그러면 구원 받아야 할 죄인을 치마에 담았다가 성령이 우르르 쏟아내면 그 구원 받아야할 죄인이 굴러서 대전에 뚝! 떨어졌고 대구에도 뚝! 떨어 졌고 떨어져서는 뭘 봐야 됩니까? 원천을 봐야 되지 않습니까? 원천을 우리는 몰라요. 못 찾아가요.

그런데 성령이 오게 되면 원본과 연결 시켜 줍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 보면 그 원본을 십자가라고 합니다. 십자가는 무엇으로도 모른다? 마음으로도 모른다! 마음으로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알게 된다. 십자가를 알게 되면 우리 속에는 주님의 속성이 담겨서 누구의 속성을 드러내냐? 우리가 왜? 예수님이 죄인의 모습으로 왔는지 그 죄인의 모습에 그 죄인에 해당되는 나에게 할당된 죄인의 모습을 한 평생 보여 주는 겁니다. 나에게 할당된 죄를 보여주라고 각자각자 자기 인생을 사는 겁니다.

애초부터 우리는 실패자에요. 정말 세상 살아가기 편합니다. 실패자이니까 남을 비판하면 안되요. 세상적으로 산 위에서 행복합니다!라고 소리치거든 “아이고! 할아버지 행복 같은 소리하지 마세요. 지옥이 기다립니다.” 심술로 그러면 안되지만 사실이 그러니까! 자! 사무엘 상 다시한번 봅시다. 사무엘 상 2장에서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이것을 속성이라고 했지요! 이것을 여러 번 해야 되요. 자꾸 잊어버리니까!

이 속성은 구체화 될까요? 안 될까요? 구체화 됩니다. 그게 이스라엘 입니다. 한나가 이렇게 찬양 한것은 한나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이 한나의 입을 통해서 예언을 하게 한 거에요. 예언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이런 식으로 하시는 거에요.

그러면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어느 쪽을 택하냐 하면 부자되는 쪽에 속하게 해주세요! 더 잘 사는데 속하게 해주세요라고 하지요? 하나님께선 전부 없애 버리고 나는 부자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나는 가난을 원했습니다. 나는 가난을 원했습니다라 아니라 내가 가난을 원하든 안 원하든 간에 내가 가난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라고 자기 가난을 주께 수긍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예언대로 출생된 자입니다.

그런 사람을 이스라엘에서 뭐라고 하냐하면 고아와 과부라고 하는 거에요. 전쟁미망인들, 이런 사람들, 전쟁이 나면 국가에서 강제로 징집을 하게 되어 있어요. 전쟁터에서의 소모품이지요. 인격이고 뭐고 그냥 소모품이에요. 저쪽 소모품하고 이쪽 소모품, 다 떨어진 곳이 먼저 지게 돼있고 소모품이 남아 있는 곳이 승리하게 되어 있어요. 전쟁이 났다는 말은 고아와 과부가 생긴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면 되요.

그럴 때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겠습니까? 그런데 원망하지 말라는 거에요. 왜? 하나님의 예언대로 너희 아버지가 죽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죽으면 내 인생은 누가 책임집니까? 너희 아버지가 죽인 분이 책임지면 되잖아! 왜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나? 너희 아버지를 전쟁 통에 보내서 그걸 뭐라 하지요? 유복자라 하지요. 임신 했는데 아버지는 죽고 나중에 태어나 보니까 엄마만 있고, 유복자지요! 유복자가 되도록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 책임지면 되잖아요! 이것이 믿기진 않지만 어렵진 않지요? 썩 기쁘진 안지만 굉장히 간단한 논리입니다.

하나님이 어느 정도야 하면 이런 거에요. 하나님이 만약에 미용사라면 머리를 깎다 보니까 한 쪽이 빵구가 나게 했어요. 여자 고객인데 머리를 잘못 깎아서 머리가 많이 잘려서 하나도 없이 해놓으니까 “아악!” 하고 고함치니까 미용사가 하는 말이 한 6개월 기다리세요. 다시 날거에요. 이런 거 하고 똑같아요. “아이! 내 머리를” 그러니까 미용사가 하는 말이 “그럼 네 머리인데 네가 알아서 하지 왜 나에게 하라고 해서 그러냐!”

처음부터 우리는 주님의 장식품이에요. 주님이 어떻게 꽃을 꽂든 머리에 장식을 하든 미친 사람처럼 해바라기 꽃으로 하든지 그것은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 말이에요. 장애인이 되고 싶어 됩니까? 교통사고 났는데 졸음운전 하다가 박아 버리면 장애자 되는데 고속도로 가다가 박아 버리면 졸지에 장애자가 되는데 졸음운전이 어디 졸고 싶어 그렇게 됩니까? 졸음오면 정신없어 브레이크도 못 밟고 박아 버리는데요.

세상만사가 주님의 예언대로 안되는 게 없어요. 때가 되매 말씀에 응하게 하셔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요. 처음에 강의 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전체를 알면 마음이 편하다고 했지요? 전체를 알게 되면 너무 엄청나서 문젠데 “주님이여! 그냥 부분만 알겠습니다.” 이렇게 빼지 마시고요. 한나도 여자이지 전체가 아니잖아요. 한나가 내린 결론이 이것입니다. 인생 뭐 있어 그냥 죽이면 죽고 살려주면 사는 게 인생이야! 인생 뭐있어 한방이지 뭐!“ 이 말은 뭐냐 저는 여호와만 있으면 족합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습니다. 종을 편안히 쉬게 하시는군요! 하는 것처럼 시므온이 그런 고백을 하지요. 우리가 이렇게 볼 때 구약의 하나님이나 신약의 하나님이 어찌 그리 꼭 닮았는지! 닮은 게 아니지요? 똑같지요? 똑같아요. 구약의 사람들은 오해를 한거에요. 하나님 이스라엘을 위해 살아 주세요! 오늘 날은 하나님! 교회에 나왔습니다, 제가 예수 믿습니다. 예수님 저를 위해서 잘되게 하옵소서! 이 오해나 구약의 오해나 똑 같습니다

하나님은 죽이시기도 하십니다. 이런 말을 장례식에서 용감하게 할 수 있는 목사를 저는 못 봤어요. 특히 병원에 문병가서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십니다는 병원에선 할 소리가 아니라고, 할 소리가 아니지요! 그럼 이러한 예가 어느 나오냐 2장 끝에 보면 구체화 됩니다. 3장에선 더 구체화 되고 홉니와 비느하스를 주께서 죽이십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나쁜 짓을 해서 죽였다. 이런 이야기는 그 당시 구약시대 때에요.

구약시대의 출발점은 인간의 존재로 부터 출발합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그 점을 감안해요.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렇게 했으니까 죽어도 당연해!라고 하지만 이것을 신약적 안목으로 보면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이 죽이셔야 될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서 죽을죄를 지었던 역할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신약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되는 거에요. 전체를 아는 관점에서 보면 그 사람들은 죄를 지어서 죽은 것이 아니고 죽기 위해서 죄를 지어야만 하는 거에요.

이것이 홉니와 비느하스에게만 해당되는 것니 아니고 오늘 날 우리에게도 해당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죄인으로서 살아야 되요. 왜? 그래야 우리에게서 뭐가 나오냐 하나님의 의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떻게요? 죄수하게 되면 그냥 의가 되는 게 아니고 죄수를 저주로 데려가고 저주가 의로 바꿔지는 것은 예수님의 피 밖에 없어요. 예수님의 언약의 피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죄수질 잘 했지요? 구원해 주세요!라는 소리는 저주 앞에서는 이것이 삭제 당합니다. 마음을 낮추면 좋아한다면 “하나님! 제가 마음을 낮췄습니다. 이젠 좋아하시겠지요?” 이렇게 하지 마세요! 이것은 피를 모독하는 거에요. 마음을 낮추는 것이 뭐가 되냐 하면 교만, 마음 낮춘 형태의 새로운 교만의 등장입니다. “하나님! 헌금하면 복 주시겠지요?” 뭐가 잘못 됐어요? 뭘 모독 한거에요? 피를 모독한거지요!

제가 쓴 책 중에 제일 유명한 십자가를 아십니까? 십자가를 아십니까에서 십자가만 이야기 하면 되는데 왜 거기에 헌금, 전도, 예배, 기도, 안식일, 주일 성소 등 왜 이런 것을 거론했을까요? 전도, 선교, 예배, 헌금 이렇게 하면 할수록 십자가를 모독하는 행위가 도출되기 때문에 그렇게 비교한거에요. 예배하면서 십자가를 모독하고 기도하면서 십자가를 모독하고 전도하면서 십자가를 모독하고,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그러면 안하면 되겠네요? 이렇게 하거든요!

차암~ 세상에! 하고 안하고는 없어요! 주께서 예언하면 우리는 하게 되는 처지에 놓여 있어요. 해야만 되는 입장에 있지 안하고 빼고 할 입장이 못되요! 어느 하나, 혼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눈 맞아서 마음 맞아서 하는 것 같지만 하게 하시면 해야 되요. 아들 결혼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주께서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한다면 “주여! 때가 죄면 할 줄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되잖아요.

기도의 내용이 “모든 되어지는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오니 속성이오니 그 속성대로 되어질 때 제가 순순히 수긍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해 놓고, 아멘 해놓고 돌아서서 “아~ 도저히 수긍 안됩니다!” 하면 안 되지요! 2장 34절 봅시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여기서 봅시다. 누가 죽입니까? 오늘 제목을 이것으로 할까요? 뻔한 이야기인데 자꾸 잊어버립니다.

누가 죽입니까? ①번 나 스스로 ➁번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죽인다 ➂번 우연히, 우연히 아닙니다. 필연 입니다. 다 아닙니다. 누가 죽이는가? 누가 죽이는가 제가 해답을 제시하면 누가 죽이는가? 사람들은 그거야 여호와 하나님이 죽이시지요! 이렇게 말하는데 제가 원하는 답변은 누가 죽이시는가가 아니라 누가 죽이시는가라는 질문을 우리가 평소에 고대했습니까? 아니지요?

오늘 밥을 하는데 누가 밥을 지으십니까? 평소에 밥 짓는 주부가 그것을 생각합니까? 안 하잖아요! 그런데 밥 짓다가 죽여 버리면 “왜 죽이는데?”이렇게 나온다고요. 밥 짓는 것부터 누가 밥을 지어 주십니까? 해줘야 밥 짓다가 죽어도, 감전되어 죽어도 “주께서 나를 죽이시는 이 분이 그전에 밥을 짓게 하셨는데 관여하셨구나!”가 되는 겁니다. 아! 진짜 어렵지요? 이런 것을 따지면 짜증나지요? 뭐 제대로 걷지도 못해요! 오른 발은 주께서 내 딛게 하셨습니다. 왼 발은? 이게 뭐에요?

그냥 막 살고, 되돌아 봐서 한꺼번에 받아 들여라! 그게 안정되니까! 그게 사실이거든요. 밥 짓는 것도 발걸음도 성경대로 사실인데 성경에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는다는 이 말은 이 사람들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누가 죽이는가? “알아요! 하나님이 죽이십니다. 왜 죽이시는가? 그 놈들은 나쁘거든요!” 하면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냐 하면 너는?

오늘 제목을 속성으로 하지요! 지금 죽는 사람에게 나쁜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이시는 분이 의로와서 죽이시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쟤는 나쁘지만 저는 착해요!”이렇게 하면 당합니다. “아! 저렇게 거룩하시군요! 저렇게 무서우시군요! 참! 무서운 분이시군요!” 한다면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 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그러면 거기에 대한 답변은 어떻게 합니까? ①번 앞으론 조심하겠습니다. ②번 안 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➂번 정말 주님은 죽이시는 분입니다. 몇번 입니까? ➂번 이지요! 주님을 알아야 되지 어떤 내 살기 위한 방어, 조치 이걸 하라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정리해 봅시다. 누가 죽이시는가라는 질문을 누가 하냐 하면은 이미 우리 자신이 해답이에요. 해답인데 우리는 이 해답에 맞는 질문을 찾아낼 능력이 없어요.

세계 뮌헨 콩쿨대회에서 2등을 했다. 그러면 본인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역시 나는 그때 일등 할건데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못했어라는 핑계를 대겠지요? 사실은 2등을 해도 질문을 못 찾아요. 왜? 2등 했는데 2등에 합당한 질문이 없어요. 되지 못 하는데 주께서 2등이나 하게 했습니다. 이러면 주께 영광이 되는데 “아이~ 이번에 내가 1등인데”이러면 질문자와 답변자가 나에게서 나오잖아요.

그러면 독자적인 자기 일인데 그 독자적인 것이 누구냐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사무엘상 2장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네요. 성경 왜 봅니까? 이건 내 이야기 입니다. 성경은 내 이야기 이고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그리고 다음 시간에 할 엘리 이야기에요.엘리가 하나님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합니까? 자식이 자기 자식이거든요. 내 자식이거든요. 이게 엘리 이야기입니까? 우리 이야기에요? 우리 이야기에요.

이것만 하고 10분 쉽시다. 왜 하나님이 신약을 준비 하셨는지 이젠 아시겠지요? 왜 성령께서 아무것도 하지 안아도 공짜로 구원시키시는 이제 아시겠지요? 아무리 해고 우리 속성을 더러운 우리의 속성을 극복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죽읍시다! 주의 속성에 그냥 된통 얻어맞읍시다. 맞는데 맞아야 될, 저주 받으시러 중간에 차고 들어오신 분이 누구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우리가 마땅히 당할 저주를 대신 채 가신 거에요.

독수리가 채 가듯이 채가시고 우리는 졸지에 말도 안되는 지옥가는 인간으로 드러나게 하고 채 가시고 난 뒤에 우리를 새로 만드는 겁니다. 네 안에 주님의 속성이 들어 있다. 그것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우리를 건지십니다.

10분 쉽시다.

주향(IP:222.♡.177.93)

15-10-21 15:31

놀라운 구원(마 19:23-28) 대전- 68강

이근호

2015년9월 22일 본문말씀: 마태복음19장 23-28

(마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가는 것 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19: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마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태복음19장23절부터 합시다.

(마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부자가 천국가기 어려우면 그러면 천국은 누가 간다해야 되지요? 그러면 가난한 사람만 갈수 있다라는 오해가 되지요? 지금 모든 사람이 부자를 지향하잖아요? 그러면 지금 가난해도 언젠간 부자가 되고야 말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잠재적인 부자가 되어 버려요. 부자에 대한 그리움, 부자에 대한 요망과 소망, 이런 것을 품고 있는 한 그 사람은 가진 돈은 부자가 아닐지언정 마음은 부자가 되어버려요.

그러면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심령이 가난한 자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주님의 일관된 원칙과 위배되지요. 마태복음 5장을 보통 팔복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팔복이라는 말이 잘못됐어요. 거기서 복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복이 되요. 이 말은 예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우린 복 받을 자격도 안되고 그리스도께서 없는 복을 확장시켜 나가요.

검은 잉크를 책상 위에 쏟아 부으면 시커멓게 되지요? 시커멓게 된 그것이 복이란 말이에요. 복은 주님 안에 들어 있지요? 주님이 쏟아 내시면 비로소 닿은 그 곳이 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선 철저하게 인간이 기대하는 복은 차단 시켜요. 그 차단하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차단되지 않으면 주님께서 주시고져 하는 것이 혼란을 유발시키고 곡해와 오해를 유발시키게 되는 겁니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것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같을껄? 그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특히 어려운 것은 우리가 스스로 자기를 사람으로 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왔지요? 그럼 예수님을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이라는 개념의 범주에 우리고 들어 있고 예수님도 들어 있어요. 주님께선 이러한 인간들의 오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받아 들여 놓고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지요! 그렇게 되면 하늘나라가 저 위에 있는 게 아니고 인간 속에서 새롭게, 새로운 안목으로 생겨나는 이것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겁니다.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고 네 옆에 있다라는 거에요. 천국이 네 옆에 있다라는 것이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의 이야기이고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보면 네 속에 있다가 되요. 네 옆에 있는 것이 아니고 네 속에 있다가 되요.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점령했고 아까 첫째 시간에 제목이 속성이라고 했는데 우리를 포대기 삼아서 밤 담듯이 주님의 속성을 집어넣으면 되지요! 주님은 속성은 우리가 줍는 게 아니고 주님이 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두 번째 강의 제목을 단절이라 합시다. 단절의 대표적인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구약에서의 광야입니다. 설명하자면 광야란 땅과 애굽 땅과 연결된 동일한 땅이라고 생각하지요. 그것은 니 생각이고, 인간들 생각이고,

여기에 주님께서 사건을 집어넣어요. 홍해 사건, 같은 말로 하면 어린 양이 죽는 사건, 사건을 집어넣으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특이성을 띱니다. 땅인데 전에 살던 애굽 땅과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특수한 일들이 벌어지는 새로운 땅이 되지요. 애굽 땅과 광야는 이미 단절되어 있습니다. 애굽의 군사들이 홍해 바다에 들어섰습니다. 왜 들어섰는가?

홍해 바다를 건너서 애굽에 살던, 자기 옆집에 살던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무사히 건너서 맞은 편 땅에 도달했기 때문에 자기네들은 뒤따라가면 된다고 생각 했지요. 뒤따라가면 되는데 애굽 군사가 들어섰을 때 홍해 바다가 갑자기 합쳐졌지요! 그러면 물어 봅시다. 이것이 개인 성품의 차이입니까? 소속의 차이입니까? 소속의 차이지요! 착해서 구원 받는 게 아니지요? 히브리인 중에도 나쁜 사람들 많잖아요? 이것은 개인의 성품이나 성격이 문제가 아니고 소속의 차이지요?

소속의 차이가 뭐냐 하면 곧 대장의 차이에요. 애굽 대장과 히브리인의 대장 즉, 어르신의 차이지요? 그러면 여기서 단절이 일어났다는 말은 애굽의 왕초하고 히브리인의 대장하고 이 자체가 단절상태로 되었다는 위로 올라가 영적상태로 보면 단절 사태인데 그냥 단절이 아니고 이것을 전쟁 중이에요. 전쟁 중, 싸움하고 있는 거에요. 어른 들 끼리 싸우고 있고 밑에는 친하게 지내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그럴 수 없지요?

위에서 싸우면 밑에서도 싸워야 되요. 그렇잖아요? 소속이 다르니까! 예를 들어 초등학교 운동회 때 같이 친하게 지내다가 선생님이 학생 번호대로 나누다 보니까 한쪽은 백군 되고 한쪽은 청군 되다 보니까 운동회 날은 서로 원수가 되는 거에요. 한쪽은 울고 한쪽은 좋다고 야호! 부르고 왜냐하면 위에서 갈라놓았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어른신의 결정대로 우리 운명은 그 속에 속해버린 거에요. 항아리가 다르면 그 속에 뭐가 들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항아리를 통째로 들고 가게 되면 안에 들어있던 간에 같이 들려지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부활로 이동했다면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뭣도 모르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들려 이미 이사를 한겁니다. 이사 한 것 한 턱 내세요. 이동 한겁니다.

이동한 것을 목사님이 어떻게 압니까? 저쪽에 있는 사람과 단절을 느낄 때 이동 한 것을 알지요. 순복음 교회에선 주여! 주여! 부르짖으면서 행함으로 그저 1등 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 하고 있는데 우리는 기도도 안했어요. 아무 것도 안했어요. 지금껏 아무것도 안했고 앞으로도 극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요. 그래서 복음이 한국 교인들에겐 낯설게 느껴지는 겁니다.

왜 우리에게 아무것도 안해야 된다고 하는가? 뭐든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한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안 해서 벌 받는 느낌이 들고 그것은 어르신이 달라서 그래요. 그 쪽 어르신 선악과 어르신이고 이쪽은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안겠다는 어르신이고 어르신네가 달라서 그래요. 전에는 우리에게도 이런 어르신이 있었어요. 뭘 지켜야 되고 행해야 되고 교회에 뭘 해야되고 우리의 어르신이 바뀌었어요.

이 어르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안아요. 이것만 해요. 그냥 달라야 돼! 저쪽과는 달라야 돼! 그것만 원해요. 단절을 설명 할 때에 여기서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에요. 부자가 천국에 못가면 그럼 누가 갑니까?라고 할 때 제자들은 지금 부자들을 개인으로 본거에요. 소속으로 볼 줄 몰라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오해하기를 지금 제가 예수님 말씀 잘 듣지요? 이렇게 한거에요.

내가, 내가 예수님 말씀 잘 들어서 지금 주님이 나와 함께 해 준다는 겁니다. 내가 주님 말을 잘 안들으면 주님이 쫓아 낸다는거에요. 이건 어불성설 말도 안되는 것이에요. 주께선 택한 자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내가 택한 자는 버리지 않아요. 그런데 인간들의 버릇이 자기가 자기인생을 꾸려 나가는 이것이 더러운 버릇이 되어 버리니까 내가 나를 안 돌보면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벼랑에서 손 놓으세요. 절벽 끝에서 손 놓으세요. 절벽이 왜 있는 줄 아세요? 손 놓으라고 있는 거에요. 손 놓으세요. 죽기 밖에 더하겠습니까? 죽으면 또 나사로처럼 살려 줄 수도 있는 데, 아 살아나면 안된다. 군대 생활 또 해야 되니까! 자기 자신을 믿는 게 아니고 내가 어디에 소속 되어 있는가를 사후적으로 믿어 져야 되는 거에요. “그럼 주님께 소속되어 있는가를 어떻게 우리가 확인한다는 말입니까? 참~답답하네! 그 방법을 이야기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것이 뭐냐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라! 누가? 내 인생이 이상하게 꼬여! 이상해! 내 뜻대로 안돼! 안되도 너무 안돼요. 그리고 또 증거가 뭐냐하면 예수님을 백날 믿어도 나는 나이트클럽이 좋아! 화투가 좋고 골프가 좋고 왠지 취향이 저쪽 취향이야! 세상 취향이고 하나님 안 믿고 그냥 친구들과 노는 저쪽 취향이에요. 그걸 날마다 느껴지는 겁니다. 이게 내 힘으로 천국에 갈 입장이 아예 안돼는 구나!

착함 꽤나하고 십일조 꽤나 한다고 해서 주께 먹히는 게 아니고 처음부터 이건 내가 손 댈수 없는 거에요. 내 성질을 내가 아는데 내 성질로는 백날 해 봐야 고무줄 당겼다가 툭 놓으면 다시 세상적으로 훅! 가버린다 말이죠! 돈 으로도 못가요~ 하늘나라~ 방금 불러 놓고도 돈이 천국이 돼가지고 갈수밖에 없는 나이에 관계없이 팔십이 되도 마찬가지고 구십이 되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푹 빠져 버리는 그런 식이에요.

제자들이 지금 너희 눈에는 부자가 개인으로 보이느냐 하는 이것이 부자와 예수님의 만남의 취지입니다. 부자가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 그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이렇게~했습니다. 개인이 내가 내 스스로 구원받기 위해서 나는 구원받을 당사자인 나는 주님 앞에 이 정도로 성의를 표했습니다라는 그것이 부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12제자들도 어찌 그리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래~! 저 사람이 저렇게 착한데 설마~주께서 구원 하겠지!” 그런데 모든 소유를 팔고 따르거라 했을 때 근심하며 돌아갔잖아요? 그것이 개인의 한계입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팔고라는 말을 안하셨으면 따라 갔을 거에요. 왜냐하면 개인은 거절합니다. 단체로 오세요. 이게 주의 뜻이기 때문에 그래요. 개인 입장은 안 받습니다. 단체 입장만 예약 받습니다. 그러면 그 단체가 누구냐? 구원 받을 단체를 인간은 몰라요. 인간에겐 자기의 어르신이 있습니다. 마귀가 있습니다. 귀신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을 봅시다.
(마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 있지요? 사람 나오고 그 다음에 뭐가 나옵니까? 강한 자가 나오지요? 사람 위에 뭐가 있다?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강한 자가 있다. 그런데 더 강한 자가 누구냐 담을 넘어 온 도둑이 와서 너희들이 알고 있는 최고의 강한 자 그 강한자 보다 더 강한 자가 누구다? 예수님 본인이다. 누가 믿겠어요? 행색이 초라한대~

몰라요. 또 허리춤에 암행어사 마패라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남원 고을에서 사또 보다 더 강한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지요. 그런데 춘향이는 더 강한 자를 사랑했잖아요? 얼마나 복음적입니까? 변 사또가 “나한테 수청을 들라!, 아닙니다, 저는 일부종사 합니다.” 그 다음에 변 사또 목 자르고 암행어사가 얼굴 가리개(사선紗扇)하고 묻잖아요. “네가 관가의 기생이니까 마땅히 나한테 수청을 들라!” 오너는 다 똑같아! 오너는 남자라 다 똑같네! 이렇게 됐거든요!

그때 흐뭇해하면서 “나다! 춘향아~”하면 “서방님~” 이 이야기가 바로 영화 암살에 나옵니다. “당신은 왜 같은 동지를 배신했습니까? 나는 조선이 해방될지 몰랐거든!” 구원의 상태를 앞서서 아시는 분은 주님 밖에 없어요. 제자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강한 자에게 굴복하잖아요! 그 강한 자의 대표가 어린 소녀였습니다. “아저씨! 내가 봤는데” 성경에선 소녀로 나오지만 사실 주인집 강아지가 짖어도 베드로는 깜짝 놀랐을 거에요. “가만있어!, 멍~멍” 세상의 개는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도록 지금도 짖고 있습니다.

“네가 예수 믿어 구원받아 천국 간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이런 소녀들이 철딱서니 없는 소녀들과 개들이 한 가득 있어요. 우리 속에 특히 20대 젊은 애들에겐 주위 친구가 전부 철딱서니 없는 개입니다. “네가 세상을 알아?” 이렇게 놀리고 “네가 세상의 강함을 알아?”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을 보세요. 그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한계입니다. 자기의 한계, 자기 힘으로 강한 자를 이긴다? 못 이긴다? 그러니까 마귀는 계속해서 베드로를 지배하고 있었던 겁니다.

베드로가 “제가 죽기까지~” 목숨을 담보로 했지요? 도박판에서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칩으로 쳐주지 않아요. 이런 것은 돈으로 안쳐줘요. 자기가 구원받기 위해 내놓을 돈이 없어요. 우리는 도박할 자격이 없다니까요. 우리에겐 내가 구원될 수 있도록 거는 도박 자금이 일체 없다니까요! 부자를 보세요. 돈 나눠주라고 하니까 근심하며 돌라가는 것을 보세요. 쉽게 말해서 우리는 내 것 가지고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내 목숨을 구할 만한 값을 내 쪽에서 내놓을 수가 없어요.

마더 테레사 있지요? 성녀 테레사의 착한 일 한 것을 다 모으면 그것으로 구원됩니까? 본인이? 복음은 딱 하나입니다. 어떤 것을 내놓아도 어떻게 희생하고 봉사해도 그것이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나를 구원하지 못해요. 아무리 50년 동안 개척 교회하면서 봉사해도 죽기까지 문둥병 치료하고 백날해도 우리는 안 됩니다. 집 팔아 바치고 뭘 바쳐도 교회에 다 바쳐도 절대로 요만큼의 복 하나 안 들어옵니다. 이런 것을 교회에서 외쳐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적금 하듯이 십일조 해도 선교 헌금해도 애들 성적 하나도 안 오르고 여러분이 복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완악함만 더 증감 될 뿐이지요. 점점 더 마귀의 속성에 가까이 되지요. 완고한 고집은 평신도에서 집사, 집사에서 장립 집사에서 권사, 장로 되면 될수록 그 완고함이 점점 더 철근 같아요. 강해요. 석고에서 다이아몬드까지 점점 더 강해져 목사 쯤 되면 와~그걸 누가 깹니까?

그 목사랍시고 마음속에 어쨌든 나는 목사인데 하는 그 기득권을 무슨 수로 깨요? 차라리 목사되면 이렇게 해야 되요.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마귀야! 네가 나를 망하게 하려고 목사되게 했구나! 이제야 네 술책을 알았다!” 이런 고백을 해야 돼요. 그렇게 하면 목사해도 괞잖아요. 그렇게 되면 자기 본심을 증거하게 될테니까 그러면 괜찮은데 그것을 숨기고 복음 가르쳐서 교회 한번 해보겠다는 그래선 안됩니다. 19장 28절 한번 봅시다.

(마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예수님께서 들뜬 제자들을 떠 띄어줘 버렸어요. 붕~ 띄어줘 버린거에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 중에 누가 높습니까? 이렇게 나오지요? 그런데 뒤에 나오기를 심판이 있다 하니까 이거는 더 기분이 업 된거에요. 뭐가 빠졌어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뭐냐하면 네가 권세자가 되려 하지 말고 내 쓴잔을 마실 수 있느냐 이 말이죠? 누가 더 크나이까라고 할 때 어린 아이를 데려 왔잖아요? 이처럼 자기를 낮추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간다고 했지요?

그러면 낮추려면 있던 자리에서 낮춰야 할텐데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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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727건 중 2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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