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한 여자이야기
요한복음 8장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샬롬!목사님 안녕하세요.
청교도신앙을 기준으로 삶을 살려고 무단히 애를 썼었고 용도 썼습니다.
왜냐하면 모태신앙이였고
교회대부분의 설교가 개혁주의 성화주의로 끝을 맺으니까요.
그래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목사님설교를 듣다가 하나님은혜로 이렇게
성화주의 개혁주의 율법주의 감옥(?)에서 빠져나올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었던게 습관이 되었는지
성경을 보면 이 뻔한 레파토리가 아직도 머리에 각인이 되어 잘 떨쳐지지가 않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다(초반)->십자가로 죄없어졌다(중반)->성화적삶,개혁적삶,행동하는 삶(율법적삶)을 살자(결말)
많은 분들이 십자가마을에 모였다가 대부분 이 부분에서 걸려 십자가마을을 비방하며 떠나가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자신들을 방치해보니(?) 죄만 더 짓더라.차라리 절제(?)하는게 더 죄(?)를 안 짓는다(?)면서 말입니다.
이분들주장의 가장 큰문제는 오직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을 간과한 큰 우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로 시작했다가 수정성화주의로 거의다 빠져 버리더군요.
인간의 어떤 의지를 선함을 지푸라기만큼이라도 실끝만큼아라도 남겨두자는 것이였습니다.
그 끝트무리에서 결국 불이 붙는다면서 말이죠.
성화주의가 아닌듯하면서도 결국은 성화주의인 이상한 형태의 성화주의 말입니다.
간음한 여자의 이야기도 개혁적삶을 독려하는 대표적인 단골 설교메뉴인데..수백번 들어보고 책을 이리저리 읽어봐도
대부분 목사님들의 설교내용은 이 레파토리를 크게 벋어나지 않습니다.
간음한여자는 죄인이다(초반)->예수님이 죄사했다(중반)->앞으로 죄범하지말고 착하게 살아라(결말)
이 뼈대에 살만 이것저것 가져다 붙치는 형식이죠.가령 교회건축이 필요하면 교회건축이,헌금이 성화의 삶의 일부분으로 둔갑되어 강
당에서 주일날선포됩니다.교인수를 더 증가시킬려면 전도가 또다른 개혁의 모습으로 바뀌어지기도 하구요,
목사님.어떤 관점으로 이 간음한여자 이야기를 다시 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