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26강-YouTube강의(교만)150917-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로마서

126강-YouTube강의(교만)150917-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26강-YouTube강의(교만)150917-이 근호 목사

오늘은 126강, 제목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흔히들 사람하고 일한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하고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하고만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과 일해서 나오는 생산, 업적, 결실 그것을 가지고 새로운 창조를 달성하십니다.

그렇다면 교만이라는 말은 벌써 개념이 간단하게 정립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하고만 일하시는데 내가 하나님하고 일하겠다고 나설 때, 그게 바로 교만입니다. 왜 우리가 나서서는 안 되느냐 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이니까.

물론 우리 생각은 창조주가 피조물하고 같이 상대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는데, 창조주하고 피조물하고 상대가 직접적으로 되지 않는 이유는 그 창조주가 피조물을 만들 때, 그냥 만들어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 때 그 원리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피조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 되게 했던 그 원리와 원칙에 하나님께서는 중점적으로 주목하십니다. 그 원리와 원칙이 뭐냐 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아드님을 주님으로 등극시키는 것이 초점이 됩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만유의 주가 되시는 것이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하신 계획이었습니다.

따라서 피조물하고 직접 상대하지 않는 이유가 예수님의 주 되심에 대한 그 모든 작업의 실시는 오직 하나님이 할 수 있지 피조물이 끼어들어서 그 일의 성과를 얻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피조물들의 존재 의미가 없지 아니 하냐, 피조물의 존재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하고 상대함에 있어서 주로 등극하려면 죄가 발생되어야 해요. 죄가 발생되고 그 죄를 의로 바꾸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예수님은 주가 되시는 겁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오묘한 비밀을 누가 알았으리요” 라고 이야기하죠. 이거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일에 감히 피조물이 미리 알아서 끼어들 그런 입장이나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피조세계를 만들 때, 피조물은 그냥 만들어졌다, 이제부터 나는 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만들어질 때에 예수님의 주 되심을, 그걸 밑에 전제로 깔고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 주 되심을 위해서 같이 참여하라고 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미 만들어진 인간은 무엇에 빠졌는가, 오늘 강의할 교만에 빠졌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도 어느 정도 자기의 업적이라든지, 자기의 행함, 가치 같은 것이 약간은 필요했다는 식으로 예수님을 자기 쪽으로 의미를 두죠.

의미를 두어버리면 뭐가 모독을 받느냐 하면, 예수님의 주 되심을 온전하게 드러내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이제 방금 교만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교만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보면 뭐냐,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또 인간이 인간끼리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끼어들고자 하는 모든 시도가 교만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실을 성경적으로 정리해서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는데, 그 중에 하나가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브닌나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무엘의 아버지의 첩입니다. 그 브닌나가 아들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무엘의 아버지 이름이 엘가나이고, 그 본처가 한나 인데,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브닌나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아기가 없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에 비해서 나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식을 갖게 했습니다.” 라고 자식 없는 본처를 향해서 구박을 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교만한 마음입니다. 그 대목을 볼 때 결국 교만이라는 것은 뭔가 있다는 그 자체가 교만의 원인 제공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대로 같은 나이인데 어떤 사람은 머리가 희어졌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까맣다, “아이고 너는 벌 받아서 머리가 희였고 나는 복 받아서 머리가 까맣다.” 이런 말은 차마 못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이 안 들겠어요? 나오지요? 둘 다 자식 자랑하는데 저쪽은 좋은 대학 나오고 이쪽은 대학 떨어졌을 때 자연적으로 우쭐댈 수밖에 없죠.

이게 바로 브닌나와 한나의 만남에서 나온 교만의 예 중에 우리가 벌써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가졌다는 거예요. 왜 가졌는가, 가질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가질 만한 가치로 내가 이정도 되었다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님으로 하시는 일 앞에서 그게 교만이 되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어떤 아버지 집에 아들이 둘 있는데, 한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빼돌려 가출하고, 허랑방탕 도시에 가서 다 낭비하고 방탕한 짓을 했습니다. 탕자죠. 누가 봐도 그 탕자는 하나님 앞에 죄지었다고 생각 할 겁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가출해서 재산을 낭비한 반면에 큰 아들은 한 번도 가출하지 않고 아버지 옆에서 봉양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누가 나쁜 자인지 벌써 표가 났잖아요. 가출한 탕자는 나쁜 사람, 악한 아들이고 큰 아들은 점잖고 착한 아들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주시고,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 되심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하나님의 원수인 교만이 항상 발생되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의로 바꾸는 것은 주님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맏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맏이를 하나님이, 아버지가 보시기에 맏이는 자기가 죄를 지은 것이 없기 때문에 죄를 알지를 못해요. 죄를 알지를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교만할 구석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맏이의 교만이 드러날 시점이 언제냐 하면, 그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아직까지 교만하지 않았어요.

문제는 돈 허비하고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아버지의 태도가 그 자기 자신의 재산을 탕진한 그 아들을 위해서 소도 잡고, 가락지 끼우고, 좋은 옷 입히고, 동네잔치 하고, 동네에 자랑하고, 그 순간 큰 아들은 머리가 돌았습니다. 완전히 정신 나갔어요. 아버지한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여, 제가 한 평생 아버지한테 봉사했는데 아버지는 저한테 소 한 마리 잡은 적 있습니까?” 아버지의 말은 “이때다!! 그게 바로 숨겨진 너의 교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 하니까 겸손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그게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생을 살게 하신 것은 그 매순간순간에 주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로 하여금 숨어있던 교만들을 자꾸 발췌하고 유발시키는 상황들을 우리에게 들이닥치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보다 성질 더럽고, 나보다 가출하고, 나보다 나쁜 짓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흐뭇해합니까? ‘하나님이 복 주셔서 이렇게 착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게 바로 우리에게 숨어있던 교만을 유발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고 방식입니다.

우리는 자기 잘난 척 하기 위해서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얼마나 수집을 했습니까? 아마 그 수집한 보람으로 인생을 살걸요? 성경에서 말한 교만이라는 것은 예수님 빼놓고 다 교만한 자입니다.

첨부파일 : 126강-YouTube강의(교만)150917-이 근호 목사.hwp (32.0K), Down:17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51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