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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 67강 놀라운 구원(마 19:1-22)자유게시판마태복음

대전- 67강 놀라운 구원(마 19:1-22)

이름 : 주향(IP:222.116.177.93)

놀라운 구원(마 19:1-22) 대전- 67강

이근호

2015년8월 25일 본문말씀: 마태복음19장 1-22

(마19: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마19:2) 큰 무리가 쫓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마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어떤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마19: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 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19:7) 여짜오되 그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마19: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19: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 나이다

(마19: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마19:12)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19: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마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19:20) 그 청년이 가로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하시니

(마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지역이 이렇게 되요. 여기가 (지도상; 좌측) 지중해이고요. 옆에(우측) 사해, 죽은 바다, 사해 바다, 북쪽으로 부터 사해 바다까지 물이 흘러 나와요. 요단강을 통해서 흘러 나와요. 헐몬산(헤르몬산 약 2,800m)이라고 높은 산이 있어요. 그 산에서 부터 물이 나와서 죽음의 바다, 사해로 가요. 그래서 에스겔서 마지막 대목에 보면 이 사해가 산 바다가 되면서 에스겔은 끝납니다.

사해가 지역이 어디인가 하면 옛날에 소돔과 고모라, 유황불이 떨어져 죽었던 지역이에요.그래서 여기는 소금기둥이 있어요. 생명이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요 모습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 진행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에스겔서는 이 사해 바다가 살아나요.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게 되면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아무리 깊은 죽음이라도 이 생명수, 물이 온 주변에 초목을 이루게 만들 것이다. 에덴동산을 만들 것이다.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기능이 뭐냐 바로 제사 제도에서 나오는 겁니다. 대신 죽으심으로 죽으신 분이 책임지고 자신이 죽었다는 취지를 온 우주에 넓게 전파하기 위해서 새롭게 된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내가 하는 이 십자가가 헛된 짓이 아니고 우주를 살리는 생명이 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죽은 죄인도 용서해 주시고 천국도 만들어 주셔서 오직 누구만 폼나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만 폼나게 존대 받는 것.

그것이 바로 천국의 위상입니다. 천국은 그냥 사는 곳, 노는 곳이 아니고 주님의 공로를 높이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 가려면 아까 첫째 시간에 한 것처럼 우리가 죄인이며 우리가 가짜이며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야 돼요. 그냥 완제품이에요. 우리 꼬라지는 이래도 아무 손댈게 없어요. 완제품이에요.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죄 지었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자를 의롭다 하는 모든 가공 과정이 이미 마감되었어요.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과거 완료. 이미 과거로 마감이 되어 버렸어요. 이 사실을 구약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요단강 입구에 여리고 성이 있어요.

여리고성이 뭐로 유명하냐 하면 사람들이 광야 40년이 끝나고 난 다음에 요단강을 건너 와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출입구에 여리고성이 있어요. 이 여리고성에 들어갈 때 화살 몇 발 쐈습니까? 없지요. 칼 몇 번 휘둘렀어요? 없어요. 그냥 줏었어요. 줍기만 했어요. 그럼 어떻게 들어갔느냐? 그냥 성을 하루에 한 바퀴 돌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 돌았더니 안쪽으로 무너져 사람들이 깔려 죽은 거에요.

자기를 지키려던 성이 자기를 함몰시키는 심판의 도구가 되었지요! 누가 놀랐겠습니까? ①번 여리고 사는 사람들이 놀랐다. ②번 이스라엘 사람들이 놀랐다. 이스라엘 본인들이 놀라 버렸지요. 뭐 이런 전쟁이 다 있느냐? 예상 밖의 전쟁이에요. 죄인인데 성령 받고 십자가 피로 용서받고 의인 되었다. 누가 놀라게 됩니까? 본인이 놀라야 되요.

“이게 무슨 소리야! 옛날에는 파출소에 왔다 갔다, 경찰서에 왔다갔다하며 그랬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얼마나 부모 마음 아프게 하고 그랬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내 꼬라지를 보니 보통 나쁜 놈이 아닌데 내가 어딜가? 오늘 밤에 죽어도 어딜간다? 네가 낙원에 있으리라! 뭐 이런 현상이 다 있나? 누가 놀랐겠어요? 우리가 놀라야 돼요. 이런 놀라운 마음으로 교회 가서 목사 설교 들으면 무슨 저런 설교가 다 있나? 저건 엉터리야! 저건 이단이지! 저건 마귀 일꾼이지! 저건 마귀 삯꾼이지! 대번 알지요!

그래서 복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안되요. 무엇이 복음이 아닌가로 규정이 되야 되요. 정의가 무엇이 복음이 아닌가? 무엇이 예수가 아니고 무엇이 성령이 아니고 무엇이 십자가 복음이 아닌지를 거기에 조금이라도 인간의 행함이 가미되고 복음 알았으니까 이제 헌금하세요! 라든지 복음 알았으니까 이제 선교해야지 조금이라도 인간의 행함이 나와버리면 복음 알았으니까 이제 봉사 해야지! 은혜 갚아야지! 이렇게 나오면 전부다 이단입니다. 그런 걸 하나님이 원하지 않습니다.

무슨 목소리가 좋다고 찬양을 받아요! 살아가는 자체가 찬양인데,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은 그 순간순간 빵! 빵! 불꽃 터지듯이 순간 또는 사건으로 이렇게 팡! 팡! 터져 나옵니다. 갈릴리에서 사건들을 일으켰어요. 빵!빵! 위에 갈릴리에서부터 (여리고 까지 약96Km) 내려 오면서 그 아래가 바로 사해( 길이 약 72Km)이고 좌측 옆에 유대 산지이고 수련회 때 이야기 했지요. 예루살렘이 (해발 약800m)이고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형인 사해 (해발 약-390m)는 바다 보다 지형이 낮아요.

갈릴리에서 유대 산지로 내려와서 주께서 유대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한다는 겁니다. 가는 곳 마다 뻥뻥 사건이 터져요. 그런데 사건의 특징이 뭐냐하면 사건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 다는 점, 전에 설교에서 그런 이야기 했지요. 예수님의 부활 보고 난 뒤에 완전히 바보 된다고, 예수님이 부활 했잖아요? 자기가 주님을 만났잖아요? 그러면 자기는 가만있을 수 없잖아요. “주님이 나는 죽은 줄 알았는데 세상에 죽었다가 살아났어! 지금 우리와 함께 있어!”라고 이야기 할 때 상대방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보여줘! 보여줘! 할 게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은 한번만 보여주고 그나 저녁으로 가버렸으니까! 이건 뭐 완전히 사람을 바보 만들었어요. 같이 팔짱끼고 다녀야지! 잠시 보여 주고 사라져 버렸어요. 이게 뭐냐하면 사건입니다. 사건은 순간적이에요. 바람 같아요. 그래서 사건을 본 목격자도 바보 소리를 들어야 되요. 왜 주님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주님이 가는 그 고난의 길에 성질이 바뀐채 참여하라고 우리로 하여금 소통이 안되는 내용을 외치게 만들었어요.

사람과 우호적이려면 서로 같은 것의 동질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 동질성을 주께서 일부러 잘라버려요. 왜냐하면 그 쪽에서 사건이 일어나야, 같은 사건이 일어나야 되는데 나만 일어나고 저쪽엔 안 일어나면 아무리 좋게 설득을 해도 그쪽에서는 NO! 거부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집안 원수가 네 원수가 집안 식구라는 말이 맞지요! 너를 반대하는 자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네 식구이다.

너하고 동질성을 갖던 그 식구가 너에게 일어 난 그 사건이 없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너를 원수 취급 할 것이다. 시 어머니가 며느리를 학대하고 딸이 아버지와 싸우고 동기간에 싸우고 형제간에 싸우고 결국 그렇게 되면 누가 누구를 미워하게 되냐 하면 내가 나를 미워해요. 왜 예수님 은혜를 알아 가지고 몰랐으면 친구가 더 많았을 건데! 괜히 예수님 알아서 친구들은 다 떠나고, 술 사줘도 다 떠나고, 밥 사줘도 다 떠나고, 난 사주고도 바보소리 듣고 이용당한 것처럼 그렇게 주께서 다루십니다.

그게 주의 가는 고통에 참여하는 겁니다. 이제 그 사건들이 집결해서, 그러면 그 곳에서 사건을 더 행하지 유대엔 왜 오시느냐 이런 사건 사건들이 모아 모아서 십자가 사건으로 획일화됩니다. 그 말은,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십자가 사건을 경유해야 사건들의 의미가 밝혀집니다. 병 고쳤다. 갈릴리 바다에서 오병이어 행하고 귀신 쫓아냈지요! 사람들이 표면만 보고 말해요. “야~ 주님이 병 고쳤대! 난치병 고치려면 주님을 찾아야 돼!” 이렇게 주님의 껍데기만 봐요.

오병이어도 “야! 배불리 먹었대! 예수님 만났으면 우리도 배불리 먹었을 텐데~” 껍데기에요. 그러나 기적의 원천, 반석은 뭐냐하면 십자가에요. 너희들이 배부르고 좋아한니까 너희가 죄인 맞잖아! 귀신 나갔다고 좋아하는 그것이 죄인인거다. 진짜 뭐냐하면 귀신이 적이 아니고, 너를 괴롭게 하는 마귀가 아니고 너의 식구가 적이 아니라 네가 너의 적이다. 잘난척하는 니가 너의 최고의 적이다라는 말이에요.

잘났으니까 살게 하는 거잖아요. 이게 최고의 적이라니까요. 이게 요새 20대, 10대가 안돼요. 아~하! 안되기는 30대, 40대, 90대도 마찬가지지만은, 요양원에 있는 90대가 “내가 죄인이다!”가 되던가요? 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야~야 미안하다! 내 때문에 고생 많이 시키재?” 보통 어른들이 예의상 이런 소릴해요. 그럼 자시들은 “말로만 그렇게 하지 마시고 유언장을 좀 고쳐 주세요“ 유리한 쪽으로 유산만 좀 몰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나빠~ 참! 내가 나빠~ 우린 잘난 척해야 살거든요. 내가 나쁩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취직되요? 저는 잘났습니다! 이 회사를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이래야 취직이 되지! 어떻게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됐습니까? 제가 못난 놈입니다~ 아이고! 노인정에나 가라! 노인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내가 부족합니다! 이래선 안된다 말이죠!

십자가가 최종적인 모든 기적과 표적의 해답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유대 땅에 오셨지요! 오셔서 바로 십자가로 간 게 아니고 드디어 사건화를 폭을 넓혀요. 사건의 폭의 깊이를 더해요. 아까 반석이 밑에 있다 했지요? 우린 표면에 있지요? 점점 더 가면 반석에 가깝기 때문에 의미가 점점 깊어져요. 따라서 왜 일반인들에게는 갈릴리에선 귀신을 쫓아내는데 왜 바리세인 귀신은 안 쫓아냈지요? 바르세인 속에는 마귀와 가깝게 있기 때문에 “너희 애비는 마귀이다!”

그 속의 덩어리 자체가 아예 큰 바위 같이 바르세인속에 있어요. 잔챙이들, 귀신들은 아무 문제도 아니에요. 진짜 덩어리는 여기 있어요. 그 덩어리가 있어줘야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도록 배척을 당하지요!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하지 않아요. 고마워하지요. 하지만 유대인들은 베풀어 줘도 귀신 들였다고 우길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큰 덩어리 귀신은 마지막에 자기 할 일, 역할이 있어요.

왜 다른 귀신은 쫓아내면서 정작 자기 제자인 가롯 유다는 안 쫓아내는데요? 왜 안쫓아 내지요? 참 이상하지요? 제가 대구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것이 아니라고 누구에게 이야기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마귀한테 이야기 했지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은 게임도 안되요. 마귀가 사람은 떡으로만 살아야돼! 인간에게 전부 세뇌를 시켜놨기 때문에 통괄적으로 마귀에게 이야기 하면 되요.

마귀 마음이 우리 마음이기 때문에 “ 그래! 사람은 역시 돈이 중요하지! 현찰이 중요하지” 우리는 그저 돈, 돈이거든요. 맹목적으로 이유도 없어요. 무조건 돈 있으면 행복하고 돈 없으면 저주 받은 거고 그것밖에 몰라요. 마귀의 심성이, 마귀하고 헤어지고 난 뒤에 마귀 아닌 인간 만나봤자 마귀와 만났던 마귀의 성질이 인간 속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을 만나든 마귀를 만나든 다 똑같습니다.

이것을 보세요. 사람 만나거든 이 세자로 이야기 하면 되요. 마귀라 하지 말고 ‘마네킹’ 사람 보기를 마네킹으로 봐라! 최영 장군의 시조에서처럼 황금 보기를 돌 같이가 아니고 사람 보기를 마네킹 같이 봐라! 그냥 허수아비입니다. 서로 같이 성질 낼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어요. 응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배후에서 조정당하는 하나의 인형들이에요. 세워진 마네킹이에요.

그래서 구약에서 전쟁할 때 어떻게 전쟁 했습니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원주민들과 전쟁할 때 붙여주는 전쟁을 하지요? 그들이 아주 키도 크고 장대 하지요? 하나님은 “야! 마네킹들아 한번 붙어 볼래?” 연예인 브로마이드하고 연예인하고 같습니까? 아니지요! 브로마이드는 하나의 사진에 불가하잖아요? 실제 연예인하고 다르잖아요? 마찬가지로 약속의 땅에 있는 꼬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보면 되요. 아니면 배추밭에 있는 배추 잎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도 연설을 못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배추 밭에 데려가서 저녁 때 보니까 전부 사람 얼굴처럼 보이거든요. 연설해봐라! 연습 시킨거에요. 잘했는지 안했느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배추밭에 배추가 사람모양으로 꼽혀 있잖아요. 그것을 사람 얼굴이라 생각하고 용기 있게 해 보란 말이죠. 하도 말을 못하니까 훈련을 그렇게 시킨 거에요.

하나님께서 다룰 때 잔챙이들, 일반 사람들은 그냥 마네킹인데 진짜 마귀와 접선해서 사탄의 역할을 해야 되요. 귀신의 대장 마귀의 역할을 해야 될 자들은 유대인이에요. 그리고 유대인과 결탁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배신자 가롯 유다이고 마무리 작업을 사탄이 해야 될 해야 될 일을 자기에게 퍼붓게 하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죽여라! 죽여라!”이 말이죠. 이제 바르세인들이 예수께 슬슬 시험하러 나옵니다.

시험이란 말은 테스트지요? 바르세인들이 예수를 시험하는 것, 우리가 예수님 편에 섣다고 생각 하는 것, 상당히 건방진 바르세인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사실은요 우리가 매일같이 내 인생을 걸고 우리는 시험하고 실험해 보는 인생을 살고 있어요. 한번 일 저질러 보는 겁니다. 매일이 도박이에요. 한번 해보고 안되면 말고 이런 식이에요.

사람은 가만있지를 못해요. 사람이 일을 해야 되는 이유가 가만있으면 가만있지를 못하기 때문에 일을 해야되요. 꼭 허된 짓을 해요. 직장에 매어 있으면 강제로 구속돼서 딴 짓을 못하는데 놀면 가만있지를 못해요. 물론 놀면서 녹취하는 건 좋습니다. 그것 말고 일 벌리는 것. 편물점 한다고 사기 당해 말아 먹고 양품점 한다고 기술도 없는 사람들이 편물점, 양품점 해서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나고

아주머니들이 그런 것 해서 퀼트 한다고 하다 한달이면 간판 바꿔져 있고 그런 게 많지요?
쉽게 하려고 가만있으면 가만있지를 못한다니까요 꼭 일을 저질러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는 그동안 가짜일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을 번듯하게 위장할 수밖에 없는 짓거리를 우리를 대표해서 바르세인이 예수님께 다 해주는 겁니다. 우리는 바르세인에게 고마워해야 되요. 우리가 하는 행세를 바르세인이 다 하는 거에요.

오늘 본문은 뭐냐하면 이거에요. 예수님 당신 말이 옳은 말로 들리지만 신빙성이 현실성이 떨어진다. 내가 당신 말을 믿고 싶어도 하도 ~없어서 못 믿겠다. 오늘 날 친구들에게 전도 해보면 복음 전해보면 늘 듣는 이야기가 귀신들린 바르세인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귀신들린 친구를 통해 듣습니다. 내가 믿고 싶어도 납득이 안되요. 납득이, 앞뒤가 안 맞아! 너나 잘 믿어 그렇게 좋거든 너나 믿어! 나에게 권하지마! 짜증내지요!

(마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어떤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것이 왜 테스트가 되느냐?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라고 했어요. 그러면 그들이 기대 했던 답변이 뭐해요? 우린 다 걸려 넘어졌어요. 이혼하면 안되지요. 이혼하면 안된다 나쁘다 이말이죠? 그러면 뭐가 문제 이혼 안하는 사람은 뭐가 되요? 좋은 사람이 되지요. 이게 바르세인이 노린 거에요.

예수님에게 모든 인간은 죄인이잖아요. 그게 납득이 안돼는 거에요. 왜? 이혼 안하고 착실하게 사는 건전한 남자도 있는데, 당신이 그렇게 하면 인격에 대한 모독이 되요. 그렇게 되면 당신 목회가 실패가 되잖아! 이렇게 된다 말이죠! 그러니까 오늘 날 목사들이 설교할 때 어떻게 해야 되요? 목회하면 안돼요! 아예 다 목사가 아니다 생각해요 나는 그냥 죄인이다 죄인으로써 강단에 서야지 목회 한다고 하면 안됩니다.

주님께서 누구한테 목회를 하청 준적 없어요. 동업자도 아닙니다. 목회는 주님이 친히 하시지! 사도 바울도 목회 한적 없어요. 왜? 나는 십자가 진적 없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우리는 알아야 되요. 내가 왜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지를 이것만 알면 되요! 우리는 날마다 가짜다! 우리는 날마다 실패다! 우리는 날마다 가짜거든요! 놀라운 사실은 가짜인 내가 일을 잘못을 저질러 놨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항상 주께서 성사시키시니까 이게 바로 놀라운 일이 되는 겁니다.

여리고 성 무너질 때 누가 놀란다고 했어요? 이스라엘, 아무 것도 안했어요, 그냥 돌기만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눈 떠서 보니까 성이 무너져 있잖아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겁니까? 다시 말해서 원인이 있어서 예상된 결과가 나와야 되는데 결과가 내가 생각한 원인에서 핀트(초점)가 안 맞는 거에요. 그런데 결과가 나와버렸다는 말이죠. 주님의 뜻은 뭐냐! 그 여리고성이 니 자신이라는 거에요!

네가 가고 싶어? 니가 애쓸거야! 하지만 삑!~☓그건 천국을 못가요. 니가 원한데로 안되는 그것이 너를 천국 보낼거야! 천국가는 네가 되는거야!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내가 아는 십자가가 아니고 내가 모르는 십자가 나를 구원 했어요. 참 좋은 말인데 적어놔야 되는데~ 내가 모르는 십자가, 내가 안 믿는 십자가가 나를 구원했어요. 그래서 구원 받고 난 뒤에 돌아보니까 그게 진짜 십자가였어! 내가 아는 십자가는 가짜였어!

왜냐하면 내가 돌아보니까 죄 아닌 게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니 납득이 되는 것을, 세상에! 성령 받기 전엔 누가 방해했어요? 주님의 뜻을 누가 방해했어요? 안다고 촐삭되고 까불면서 자기만의 현실, 남은 다 죽어도 나는 살아야 된다는, 북한 망해버리고 우리나라는 살고 이런 것만 있는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 전방에서 비상 경계근무 하느냐고 고생하는 이름 없는 병사는 알아주지도 않고 후방에선 편하게 TV 보며 즐기는 이런 것, 자기만의 현실.

하여튼 인간은 눈만 뜨면 자기 밖에 몰라요. 그런데 그런 인간이 죄지으면 주여! 십자가 믿어서 어떻게 좀~ 모면해 보려는, 벌 안 받으려고 십자가이지! 십자가 믿은 것, 저 십자가 믿어서 잘했지요? 잘난 척 하는 십자가이지, 나중에 보면 몽땅 다 십자가를 위해서 우리는 어설픈 짓들을 해야만 했던 존재이고, 그러면 가롯 유다도 잘못하고 베드로도 잘못했는데 왜 가롯 유다는 버리고 베드로는 왜 구원하십니까? 그게 바로 오야 마음대로 입니다.

오야가 단풍을 뽑든지 공산을 뽑든지 오야 마음대로 입니다. 우리가 밑장에 뭐가 깔렸는지 모르는데 빼 보니까 천국이다. 완전히 이건 돈 놀고 돈 먹기, 복골 복, 뒤돌아보니까 천국행이에요. 다른 사람은 뒤돌아보니까 지옥행이에요. 무서운 러시아의 룰렛 게임하고 똑같아요. 총알 하나 총에 넣고 총탄을 돌리는 거에요. 쏴! 보라는 거에요. 어느 총탄의 총알이 내 관자놀이를 관통 할 지 모르는 거에요. 디어헌터라는 영화에 보면 나와요. 베트남 영화지요.

마귀와 접촉한 바르세인의 질문을 보세요. 이건 그냥 질문하는 게 아니에요. 아주 노리고 하는 거에요. 예수님 말씀이 우리는 납득이 안됩니다. 이혼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주께서는 뭐라 하십니까? 이렇게 해요. 모든 인간을 죄인 만들어 버렸어요. 죄인 만든 것이 뭐냐하면 6절에 보세요.

(마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이것을 지킬 인간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괜히 질문해서 뭐가 됐어요? 졸지에 죄인 됐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라 하는 것은 나부터 계산해요. 숫자를 나 하나, 둘, 셋 이렇게 되요. 숫자 셀 때 너 하나, 나를 마지막으로 안세요. 보통 나 하나, 너 둘 이렇게 해요. 왜냐하면 나를 위한 너이기 때문에 따라서 부부는 영원히 숫자가 둘입니다. 좋을 때는 한 몸이라 하지요? 기분 나쁠 때는 갈라서잖아요?

그래서 윤도현이 부른 노래는 이별은 만남보다 참 쉬운 건가봐!~ 사랑했나봐~! 이렇게 나오지요? 헤어지고 난 뒤에 아쉬워하는, 참 이별은 만남보다 쉬워요. 만나기 위해서 투자했던 돈과 정성과 기다림, 애정, 정욕 한꺼번에 다 날아가 버려요. 헤어지고 난 뒤에 그러니까 이별은 그냥 이별이 아니라 뭐로 바뀌냐 하면 투자했던 것들이 증오로 바뀌지요! 그래서 인간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고 사랑과 증오 애증의 관계에요.

따라서 애증의 관계이기 때문에 사랑할 때는 해서 사랑하면은 안되요. 그러면 헤어지기 쉬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미워한다고 해요. “당신은 왜 그리 잘났어? 그리고 쳐야되요. 미워! 미워! 미워!”하면서 이게 최고의 애교입니다. 사랑해 라고 나오면 사랑 안 한다는 뜻이에요. 둘이 한 몸이 될찌라! 아무도 못 지킵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할 일이에요. 인간이 못 하기 때문에 무능하기에 주께서 해주십니다.

언제? 자리만 털고 일어나 보세요! 이미 주님과 한 몸이기 때문에 나는 주님을 떠나고 주님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게 아가서에요. 전도서 다음에 솔로몬이 쓴 아가입니다. 아가의 의 마지막은 뭐냐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 죽음은 우리의 본성이죠! 어느 누구도 죽음을 못 이기지요! 하지만 “네 눈에는 죽음만 보이야? 내 사랑도 그러하다 네가 지옥가도 거기에서 건져내리라!” 이것이 성육신이에요.

지옥에 있는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어주기 위해서 우리가 통과하면서 받아야 되는 아버지로 부터의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는데, 대신 저주받은 그것이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에요. 이것이 우리 안에서 하나의 메아리처럼 늘 울려야 되요.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이미 그런 메아리가 울린다는 자체가 우리 몸은 누가 접수했다? 주님이 접수하셨다! 우리는 십자가라는 지뢰를 밟았습니다. 하반신 정도가 아니라 전신이 분리되고 주님의 몸으로 다시 주님의 성령으로 조립되는 거에요.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폭탄을 통해서, 지뢰를 통해서 다시한번 의미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터졌는데 다시 합체되는 해체되고 주님의 사랑에서 걸레조각 같은 것이 사랑의 관계로, 그 사랑의 관계가 얼마나 질긴지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그 어떤 것도 사랑의 관계를 떼어 낼 수 없습니다. 누가 너희를 정죄하느냐? 누가 너희를 죄인이라고 비웃더냐? 그 말에 속아 넘어 가지마라!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내가 너를 위해서 몸을 던졌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마귀의 말에 그만 속아넘어가라는 말이죠. 무슨 말인 줄 압니까? 죄지었으니까 벌 받을 겁니다라는 말에, 그 저주의 말에, “저주 받을 겁니다. 굿 한 판 벌여야 합니다. ”라는 말에 제발~ 그만 속아라! “십일조 해야 됩니다.” 제발~ 그런 소리 그만 하란 말이죠! “40일 새벽 기도에 나오셔야 됩니다” 제발 그거는 NO! 그거는 사양 하세요. 봉사안하면 벌 받고 봉사하면 복 받습니다. 그 사기에 이제 그만 넘어가세요.

그 다음에 그러면 바르세인들이 하는 말이 그렇다면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 한건 그건 옳지 않습니까? 드디어 본색이 나왔어요. 제일 좋은 건 이혼 안하는 게 제일 좋고 그 다음엔 이혼 증서 써주면 나쁜 편에 속하지 않고 옳은 편에 속해서 하나님 오시면 지옥 안 간다고 바르세인들이 죽고 난 뒤에 부활의 세계에 관한 자기들의 이론이었습니다. 무조건 하여튼 착하면 천국 가고 나쁘면 지옥 간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19: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말씀을 들은 모든 남자들이 하는 말이 그러면 결혼 자체가 주께서 결혼을 허락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잘 살아왔더라도 5년 뒤, 10년 뒤에 갈라서게 되면 마찬가지거든요. 그 때 시점으로, 갈라진 시점으로 다시 가게 되면 옛날에 잘 살았던 것이 무효가 되요. 지금 성화론이 갈수록 착해지자는 성화론의 제일 큰 약점이 그거에요. 50년 신앙생활 잘했어도 51년째 깽판치면 그게 다 날아가 버립니다.

나중에 60년 뒤에 치매 걸리면 사도신경 외운 것, 신앙고백 한 것, 세례 받은 것, 다 소용 없어요. 성찬식에 떡 먹는 것 다 무효가 되요. 그런 걸 누가 해결해 줘요? 새벽 4시에 기도해서 은혜 받았다가 오후 2시에 차 사고로 인해 상대방과 싸움 했다면 주께서 어느 것이, 은혜 받은 내가 나일까요? 같이 싸움했던 내가 진짜 나입니까? 어느 나인지 판단이 안되요.

그래서 묵시는 모든 것을 중지시켜 버려요. 시간을 고정시켜 버려요. 얼음, 땡 놀이처럼 시간을 스톱시켜 버려요. 딱 붙잡아 보니까 모두 죄인이에요. 의인은 없어요. 시간을 풀어 놓으니까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겠지만 묵시 안에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똑 같아요. 인간이 그 인간이고 어디 갑니까? 사람은 떡으로 산다는 그게 이론은 사람은 말씀으로 살아야 되는 거지만 실제론 돈만 주면 입 헤~벌리는 대요.

대구 강의에서 한 것 같은 데 청와대에 있는 권력있는 삼촌이 좋으냐? 예수님이 좋으냐고 물은 적 있지요? 이론상은 예수님이 더 좋다고 해야 실제적으론 뭡니까?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 취직도 보장해 주니까 더 좋은거지요. 주님께서 아예 우리말은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기도 잘못했다고 후회하지 마세요. 애초부터 듣지도 않았어요. 뻔히 아시는데 자기가 수습해봐야 소용없어요. “아! 주님 기도 새로 할께요. 중간에 빠졌습니다.”라고

오죽 했으면 차라리 장가 안 가는 게 낫지 안겠습니까? 무슨 배짱도 아니고 누가 장가 가라고 했나? 싫으면 말고, 괜히 자기가 욕망 못 이겨 장가 들어놓고 장가 간 것 잘난체하려고 까불다가 주님께 걸려드는 겁니다. 그래서 11절에 보면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예수님 자신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마19: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마19:12)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12절은 뭐냐하면 사람은 육으로는 천국 갈수 없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 말을 못 알아 들으면 중세 때는 스스로 자기 고추를 잘라서 천국을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바보같은 일이, 잘라봐야 육인데 붙어 있다고 육이고 자르면 자기 스스로 잘라내도 그러면 하리수처럼 영도 성형 받았습니까? 그래도 육인데, 하리수 알지요? 남자인데 여자된 것, 성전환, 달린 것 다 잘라 냈잖아요? 그러면 그래서 구원 받았어요?

여자도 아니지요! 정신병이에요. 정신 질환자에요. 정신 질환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본인이 정신병자라는 것을 알면 된다는 거에요. 동성애자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정신병자라는걸 알면 되요. 알면 된다니까요. 그런데 자꾸 정당화 한다니까요? 이게 화난다니까요! 그게 어디가 정상이에요? 정신병인걸 알면 되요. 알면 동성애자도 구원 받을 수 있어요. “내가 정신병자 입니다. ”이러면 되요. 십자가 믿으면 된다니까요.

그런데 이건 정당화하려고 하고 잘나체하니까! “너만 잘났나? 나도 잘났다!” 이러니 문제가 된다는 말이죠.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도 그게 결혼이겠습니까? 정상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도 아슬아슬 한데 이건 남자하고 남자가 여자하고 여자가 무슨 결혼이겠어요? 주님께서 유대로 내려오시면서 점점 더 단어가 극열해 지고 점점 죄의 깊이에 들어갑니다.

(마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참 가당치도 않다. 무슨 선한 일을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 처음 나온 사람들, 어릴 때 잠시 부모따라 교회 나왔다가 나중에 사업 망하고 난 뒤에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는지 뒤늦데 교회 나와서 사업 회복하고 싶어요. 이런 사람들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목사에게 묻지요? 제가 무슨 행동을 하게 되면 잃어버린 재산, 부도난 것 다 찾고 다시 복 받겠습니까? 그동안 교회 안 나온 걸 회개하나이다. 이제부터 착실하게 다니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이미 자기가 해답을 다 갖고 와요.

“시켜만 주세요!” 시키는 데로 다 하겠습니다. 누구 좋으라고? 주님 영광? 아이고 무슨, 자기 좋으라고 자기에게 결핍이 생겼잖아요. 가정 파탄나고 애 죽고 겹치니까 펑 뚫린 자기의 가슴을 메꾸기 위해서, 위로 받기 위해서 오지요! 그러면 만약 여러분들이 목사라면 어떻게 해야 겠어요? 가세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목사님! 죽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 답변은 간단했어요. “죽으세요!” 전화가 딱 끊겼습니다. 나도 끊었어요. 깔끔하게 끝났어요,

술 먹고 전화해서 내가 사고 쳤는데 경찰서에서 나 잡으러 오는데 탄원서 써주세요. 미치고 답답하겠습니다. 미치고 답답한 것은 본인의 과거 기억 때문에 그런건데 잊고 합의 보세요. 합의 봤는데 제가 예전에 전과가 있어서 답답해 죽겠습니다. 제 답변은 죽으세요. 왜냐하면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술 먹는다는 자체가 남한테 피해를 주잖아요. 그러면 술 못 끊는 이상, 술 못 끊거든요. 술 못 끊으면 해결책은 뭡니까? 죽으면 되요. 내가 술 못 끊으니까 술 먹고 죽으면 되요.

그저 나는 기껏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만 알면 되요. 그런데 탄원서 써 달라! 술 끊게 해달라! 그 말은 자기가 누구에게 조정 받는지 본인이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거에요. 현실은 부정하면 안되요. 내가 죄인이라는 현실이 확정된 정답이에요. 내 죄를 고치지 마세요. 다만 살아가는 은혜를 감사하면 된다니까요.

뭔가 일이 꼬인다. 당연한 거에요. 안 꼬인다는 건 복 받은거에요. 하나님께서 많이 봐주고 있는 거에요. GOP에서 한 5년 말뚝 막아야되요. 전쟁 매일나야 되요. 그런데 한 2주하고 끝났어요.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신 거에요.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은혜를 주시는 거에요. 햇빛과 공기도 주시고 비도 주신다. 고마운 거에요. 감사한 거에요.

진작 죽어야 되요. 지옥 12번도 더 가야되요. 한번 가면 못 나오지만 그걸 알 때, 그 사람은 구원 받아요. 저는 복음을 전한 겁니다. 듣는 사람은 섭섭하겠지만 복음 전한 거에요. 달리 말할 수 없어요. 술 먹은 인간한테 무슨 말을 합니까? 개한테, 차라리 개보고 이야기 하지.이 사람이 이야기한 것은 똑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성도 주변에 일어나는 겁니다. 뭐해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겠습니까? 지금 하나님한테 뇌물 받치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서 재롱잔치하고 있는 거에요. 1+1은 귀요미 .그게 귀엽겠습니까? 제일 귀여운 것은 뭐냐하면 강도가 강도돼서 십자가에 달린 것. 그게 제일 귀여운 거에요. “주여! 저 이제 끝났습니다. ” 세상에 이것보다 귀여운 게 없어요. “끝났습니다! 귀요미” 이건 괜찮아요. “죽겠습니다! 귀요미” 이래야 되요. 사람이 자기에게 가능성을 갖기 때문에 여전히 행함을 기대하고, 잘 할 수 있는데

하지만 모든 걸 절망했을 때 전 시간에 산 위에 길이 뭉개졌을 때 역사가 사라지고 묵시가 나를 주저앉힐 때 비로소 역사와 묵시의 주인공이 나타나요. 십자가, 십자가지요.“아~ 십자가를 증거하라고 내 발걸음을 멈췄구나! 그만! 인생 끝, 오늘 밤에 니가 낙원에 있으리라! 저를 생각해 주세요! 생각 하고말고! 내가 너를 주저 앉혔으니까!”

그런데 옆에 구원 받지 못한 강도는 뭡니까? 아직도 자기 역사가 많아요. “살려만 주신다면 믿겠습니다! 손에 박힌 못 빼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 갈수 있다면 잘 믿겠습니다.” 그거 지옥 갑니다. 자! (16절) 이 말씀으로 시작해서 이것으로 시작한 것은 주께서 일부러 이런 인간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겐 의미 있는 내용인 거에요. 마지막 (22절) 끝을 봐야 돼요.

자! 끝에 어떻게 됐습니까? 주님을 믿었습니까? 근심하며 돌아갔습니까? 근심하며 돌아갔지요? 그러면 진작에 자기 본색을 드러내야 되요. “예수님! 저는 돈이 많은데요 돈 잃어 가면서까지 영생을 얻는 건 싫습니다.” 이렇게 나와야지요. 주님 앞에 나올 때 위장하면 안돼요.
자꾸 속이면 안되요. “사실은 저는 돈을 사랑하거든요! 돈 잃어 가면서까지 영생을 얻는 그럼 마음이 없는 나를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렇게 나와야지!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다 잡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나와야지! 어디를 되지도 않는 꼼수를 써요? 어릴 때부터 뭘 지켰습니다. 십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이 부자 청년이 십계명을 다 지켰기 때문에 뭘 생각하겠어요? 내가 부자 된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란 말이죠? 내가 십계명 잘 지켰기 때문에 복을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인데 이 가치에서 얼마나 더 보태야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은 천국이 어디에 있다고 본거에요. 자기 머리 위에 있다고 본거에요. 나의 착함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본거에요. 자기 죄의 연장선이 밑에 있는 걸 모르고 여러분! 십자가는 밑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십자가는 아무도 갈 수 없는, 그 저주의 자리로 주께서 홀로 가신 자리입니다. 그게 십자가에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누구를 따라 오너라?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럼 따라가면 어디를 가는 겁니까? 우리는 마네킹이 되죠. 우리는 거저 살아 왔어요. 우리는 산 것이 노력해서 산 게 아니고 거저 받았어요. 공짜로 살았어요. 아들 얻은 것도 공짜고 딸 얻은 것도 공짜고 무슨 아들 낳는 비법 다른 비법 없어요. 그냥 낳다보면 아들이고 딸이고 그런 거에요. 가계 물건이야 마음대로 고르지 아들, 딸은 전시된 게 아니거든요.

천사가 자! 장차 네 아들, 딸을 한번 골라봐라! 인물 잘 생겼는지 보고 이렇게 한 것이 아니잖아요? 자! 골라~골라~ 골라~ 아이큐 150, 자! 인물 잘 생겼습니다. 자! 킹카 됩니다. 아들로 하시겠습니까? 딸로 하시겠습니까? 이거 250만원 경매하는 겁니까? 입찰해요? 몰라요. 아들을 낳을 지, 쌍둥이 낳을 지, 세 쌍둥이 낳을 지 몰라요. 그냥 낳고 난 뒤에 짐이 되지요.

이제는 밤새 울어도 못 갔다 버릴 대상이 된거죠. 키워야 되니까! 끝까지 애 먹여요. 끝까지
“아버지! 보증 서 주세요!” 끝까지 장가가도 애 먹여요. “혹시 아버지 집 대출 얼마나 나오겠습니까?” 끝까지 애 먹여요. “이제 직장 생활 때려 칠래요! 사업 할래요!” 끝까지 애먹이네 앞으로 무슨 이리 생길지 모릅니다. 또 딸은 뭡니까? “아버지 이혼했어요!” 끝까지 애 먹여요.

도대체 이 아버지라는 게 눈 감을 때 까지 아버지이고 엄마도 눈 감을 때 까지 엄마에요. “엄마! 너 전화 목소리가 왜그래? 김 서방이 또 뭐라 하더냐? 아니요! 무슨 일 있지? 목소리가 이상한데? 아니에요. 아무 일 없어요! 그냥 끊을께요!” 또 바라바라 싸들고 갑니다. 무슨 일이 있다 이게 엄마의 마음이라니까요.

드라마에 나와요. “야 너 무슨 일 있지? 표정 보면 다 안다. 엄마가 보통 엄만가? 다 안다!
뭐가 문제인데? 사업 회전 자금이 없어서! 알았어! 내가 아빠 몰래 해 줄께! 적금 깰께!“ 뭐 이런 것. 그저 자식은 부모가 해 주면 좋아하고요. 안 해주면 나쁜 부모이고 그래도 해주는게 부모에겐 보람이고 못해주면 못해준 만큼 찝찝하고,

자! 묻겠습니다. 이 부자 청년이 인생의 반전을 위해서 내가 빠져 나올 수 있을 까요? 없을까요? 못 빠져 나오지요. 그러니 부자 청년이 얼마나 고마워요? 우리도 때려 죽여도 예수 믿지 않을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낯설게 내가 놀랬어요. 내가 예수를 믿다니! 그러니까 내가 원해서 믿는 예수는 버리세요. 가짜입니다. 전부다 가짜입니다. 뭔가 노림수가 있어요.

그런데 진짜 예수 믿어 버리면 부자 청년이 반가워요. 나는 빠져 나오는데 부자 청년은 못 빠져 나왔어요. 그러면 누가 나를 빠져 나오게 했습니까? 주님이에요. 그래서 우린 주님만 증거 하지요. 그러니까 주님 증거 해서 복 받는 게 아니고 본인은 솔직한 거에요. 이건 누가 돈 주면서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에요. 이건 본인이 알아요.

내가 부자 청년이 나라는 것을 뭐한다고 예수 믿어요? 예수 믿어서 뭐 얻을게 있다고 주께서 이 말씀을 그대로 방석에 깔아 놓았습니다. 나중에 예수 믿고 뒤돌아보니까 마태복음 19장이 깔려 있어요. 내가 바로 부자 청년이었습니다. 돈은 없지만 하여튼 부자 청년이었습니다. 딱이에요. 그래서 알아서 오지 마세요. 주님에겐 알아서 오는 게 아니고 주님이 알아서 갑니다.

주님이 알아서 노크하고 문 열고 들어가시는 겁니다. 그것을 침공, 침투, 왕 노릇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에요. 우리보고 착한 일 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냥 하던 대로 해! 그냥 하던 대로 해! 너 하던 대로 하고 네가 살아가는 모든 햇빛과 공기는 나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지 너 하는 것 봐서 주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몰라요. 제자들은 아직까진 예수 믿고 천당가서 자기 출세하는 것 만 생각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동질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의 대상이 된거지요. 예수님의 침투가 아니고 아직 십자가 지시기 전까지는 주님과 잘 지내면 죽어서 영혼도 횡재 할거러고 생각한 겁니다. 이걸 보고 누가 놀랐냐 하면 제자들이 놀라지요. 부자 청년은 남의 문제고 막상 자기 문제가 되었어요. “제자들이 놀라서 주여! 이러면 누가 구원 받겠습니까?”

주님의 정답은 간단합니다. 사람은 할 수 없다. 이게 정답이에요. 할 수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 받은 사람은 이것을 고백해야 되요. ‘아저씨는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할수 없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다고 해야 내가 희망이 있지요! 희망 가져도 소용없습니다. 나도
희망을 가졌었는데 할 수 없습니다.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지 말고 알려 주십시요! 왜 저한테 물어요? 집에 가서 계세요. 주님이 찾아가면 구원받고 안 찾아가면 구원 못 받고,“

이미 성령이 오게 되면 악수를 하면 되요. 당신하고 똑같네요. 나도 구원받으려고 할 땐 구원 못 받다가 에잇! 때려 치워야지 하니까 비로소 나 자신이 발견 되었습니다. 주님이 고마워 졌습니다. 그게 바로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그게 형제인데 혈육적인 형제 보다 더 오래가요. 영원까지 이어지는 형제, 주님이 사이를 맺어준 사이이고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어떻게 모이든 흩어지든 상관없이 그저 주님만 쳐다보면서 주님의 은혜준 사람 있음 자체로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첨부파일 : 대전67강마태19장.hwp (75.5K),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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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5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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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