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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50904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죽음의 기호화자유게시판출애굽기

20150904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죽음의 기호화

이름 : 한윤범(IP:119.192.174.209)

20150904a 울산강의-출애굽기 34장 : 죽음의 기호화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5절부터 보겠습니다.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지며 너의 토지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취지는 딱 이겁니다. 현재 돌아가는 세상이 너희들 세상이 아니라는 거죠. 인간들 세계 같으면 인간들이 행하고 익히 아는 것들만 막 쑤셔넣으면 돼요. 민주주의제도, 군대, 학교교육도 그렇고 내무부, 외무부, 문공부, 전부 인간들이 만들어낸 거잖아요. 상공부, 공장 세우고, 농사짓고. 농토 개간하고 학교 세우고 군대 만들면 천국 됩니까? 그건 하나님 나라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성경을 보는 이유가 현재 인간들이 만든 내 나라 만들기 위해서 성경이 있다는 애초에 그런 마음을 접어야 됩니다. 지금 살고 있는 내 나라, 아 대한민국, 내 나라, 내 겨레, 홀로 대한, 독도는 우리 땅, 영원하라 울산아. 그런 것 위해서 성경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성경을 본다는 자체가 뭘 의미하느냐 하면, 현재 울산바닥 말고, 대한민국 말고 다른 나라에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셔야 돼요. 이 나라 말고, 가족끼리 살기 좋은 이 나라 말고, 국민소득이 몇 만 불인지 따지는 그 세계 말고 전혀 인간들이 꾸며낼 수 없는, 조성할 수 없는, 인간들이 수입할 수 없는 다른 나라 살고 싶다는 마음이 돼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 갖는다고 그 나라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사실은.

미리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오늘 강의가 무지무지 어려워요. 여기 본문에 나오는 이 말씀, “너는 염소의 새끼를 어미젖으로 삶지 말라” 이 대목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누가 해석했습니까? 아무도 해석 못해요. 주석 보세요. 심지어 여기에 대한 책도 나와요. 전혀 안 맞아요. 오늘 본문이 짧지만 무지하게 난해합니다.

말씀이 난해한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말씀이 있다는 그 생각 자체가 말씀을 해석하는데 장해가 돼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주님이 좋으신 대로 그 나라 만들어 가세요. 이러면 말씀이 어렵지 않아요. 주님, 저 같은 것 신경 쓰지 마시고 주님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드세요, 라고 하면 오늘 본문뿐만 아니고 성경 전체가 쉽습니다. 꼭 나를 개입시키니까 성경이 오해가 되는 겁니다. 저는요? 저는 어디 가야 되는데요? 저는 어떻게 되는데요? 이렇게 나오면 성경해석 처음부터 잘못됐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 나라는 ‘율법의 나라’거든요. 제가 아까 강의 처음 시작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현재 인간의 나라는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요소로 가득 차 있다고 했지요. 국방부, 외무부, 상공부 있는 것철. 인간들이 할 수 있는 농토 개간하고, 바다 배 띄워 무역하고, 얘들 교육 시키고 어린이집하고, 이게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총집합이잖아요.

그런데 주여, 이 나라 살기 싫어요. 인간들이 조성한 이 나라 말고 다른 나라가 있을 건데 그 나라가 어떤 나라에요? 인간의 세계를 버리고 다른 나라가 옳은 나라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오늘 본문이 해석이 됩니다. 그 나라는 제가 소개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율법의 나라에요. 인간들이 행할 수 있는 것의 총집합이 아니고 그 나라는 율법이 총집합이 되어 조성한 나라가 바로 성경에서 출애굽기에서 소개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출애굽기 34장 25절 내용이 뭡니까? 결국 율법에 관한 이야기, 하나님의 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법은 인간들과 사전에 조율이나 협의가 된 내용이겠어요? 협의가 되지 않지요. 협의가 되지 않은 내용이라면 인간이 이 율법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왜 율법을 인간이 못 지키느냐 하면, 이미 인간이 율법 주기 전에 인간에게는 행함이 있었고 그 행함의 총집합이 인간의 나리거든요.

아주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율법이 없는 나라가 출애굽기에 나와요. 그게 애굽입니다. 그리고 애굽 외에 다른 나라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가 없기 때문에. 그런데 애굽에서 한 나라가 삐져나와요. 밀가루 반죽을 만들었는데 뚝 뗐을 때 혹처럼 늘어나서 떨어진 것, 반죽이 하나인데 중간에 잡아당깁니다. 이것 하나 생기고, 이것 하나 생기고. 밀가루 반죽을 하나님께서 잡아당기니까 혹처럼 떨어지면서 A와 B 두 개의 상응한 나라가 생겼어요. 이게 순서인데 밑에 순서를 더하게 되면, A란 나라와 B란 나라 사이에 전쟁이 있었더라. 전쟁의 나라에요.

그러면 화살표로 이렇게 되는 과정을 촬영된 필름을 거꾸로 돌려봅시다. 처음부터 애굽 안에 점선으로 무언가 들어있어요. 들어있는 이것을 잠재성 또는 잠재적 나라라고 봅시다. 이걸 눈치 챈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어요. 모세도 몰랐지요. 히브리인들도 몰랐고. 애굽 사람들이야 이 나라가 전부니까.

정리해봅시다. 인간 나라의 특징은 율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 나라에 율법을 준 취지가 뭐냐?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나가 되어 살아라. 이게 율법을 준 취지입니까? 아니지요. 떼어내라. 혹처럼 떨어져라. 이별해라. 이별은 만남보다 참 쉬운 것 같아요. 떨어져 나오는 거예요. 떼어내는 거예요.

이게 떨어져나갈 때 제가 이야기한 주장에 의하면 율법이 개입되어야 나온다 했지요. 그러면 율법이 개입되지 않으면 떨어져나올 수 없을뿐더러 더구나 떨어져야 될 이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살면서 너무 고생했으니까 죽어서 좋은 곳에 가야지. 그런 것은 애굽 나라의 이시스 종교에 다 들어있어요. 이시스 종교가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어서 이 세상 말고 다른 세계 부활의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중보자가 바로 바로 왕이 되는 거예요. 바로 왕이 신의 아들로서 현재 애굽을 통치할 뿐만 아니고 애굽에 있는 자기 백성을 죽어서도 부활의 세계에 넣어줄 수 있는 제사장 노릇을 하는 두 가지 역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왕입니다.

그러니 애굽 사람만 아니라 히브리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고생 많은 세상 얼른 떠나서 천국 가고 싶어요. 그런 상품은 다 개발돼있습니다. 개발할 때 중보자 노릇하는 것 다 있습니다. 이 땅에서 죽어서 좋은데 가는 방법까지 개발돼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업보입니다. 착하게 살면 좋은 나라, 나쁜 짓하면 나쁜 나라 가게 돼요. 선을 쌓으면 좋은 나라 가고 악한 일을 많이 쌓으면 나쁜 나라 가게 되는 겁니다. 이미 누구 하나 거기에 대해서 이의 거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온 국민이 하나 같이 단결돼있어요. 왜? 다 선악과 따먹었기 때문에 선하면 천국에 가깝고 악하면 지옥에 가깝다는 것, 이것은 상식에 반하지 않는 정말 우리의 기본적인 본성에 합치가 되는 훌륭한 종교가 되죠. 그런 종교가 있는데 뭐 때문에 이미 부활로 가는 길이 있는데 뭘 가겠어요.

그러면 중보자가 하는 일은 뭐냐? 선악에 대해서 나름대로 법을 명령을 내려줘요. 너희들 선한 게 뭔지 모르지. 내가 왕이니까 내가 중보자, 신의 아들이니까 내가 너희에게 법을 줄 테니까 이 법들을 지키게 되면 너희들은 선한 쪽에 속하고 그렇게 되면 구원받는다는 겁니다.

애굽의 종교와 정치, 성속이 하나가 돼요. 정치, 종교가 하나가 되니까 이런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잖아요. 오늘날 교회가 바로 그거잖아요. “목사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습니까?” 다들 교회 나올 때 그렇게 묻지요. 그러니까 물음 자체가 수상하고 엉터리인 거예요. “목사님, 우린 천국 못 가는데요? 왜 우린 쫓겨났습니까?” 이렇게 물어야 돼요. 쫓겨난 것은 일언반구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이 쫓겨난 것은 하나님의 행정적 착오나 실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그래서 이 땅에서 쫓겨난 것을 하나님의 실수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눈물 나는 아주 허접스럽고 정말 불쌍한 표정을 지어야 돼요. 믿습니다. 부족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 고생고생하는 것에 대해서 주께서 미안한 감을 갖도록.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여지를 이 땅에 살면서 많이 유발시키는 겁니다. 이걸 사람들은 흔히 교회에서 순교, 고난, 희생, 봉사라는 말로 위장해요.

그러나 질문을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이 정도 불쌍하면 구원받겠습니까? 이걸 개콘 용어로 하면 이케요? 이렇게 할까요, 그런 뜻이지요. 이것보다 더 내려놓을까요? 내려놓음. 이것보다 더 내려놓을까요? 교회에서 주을 위해서 이 정도 재산 바치면 되겠습니까, 이 정도 미움 받고 희생하면 되겠습니까? 이케요? 그것, 처음부터 질문이 잘못됐습니다.

주님이여, 우리가 어디서 문제가 되어서 마땅히 천국에서 차여야 마땅한 어떤 점에서 그런 존재로 살아가야 됩니까? 그래서 주님의 추방조치가 왜 합당한지를 알게 하옵소서. 그걸 다윗은 알아요.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났다. 내가 죄를 지은 게 아니란 것. 바로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출생을 죄만 짓는 존재로 출발했다는 것을 우리의 원천, 기원, 우리의 처음 자리를 다윗은 발견했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죄 짓지 않았다. 참 아무리 생각해도,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해요? 놀라운 발명이라고? 콜럼부스가 뭘 발견했다고요?

우리는 자신의 원천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우리 측에서는 발견 정도가 아닙니다. 이건 발명입니다. 이건 창조에 해당되는 거예요. 이건 도저히 나만 생각하고 나만 사랑하는데서 남은 다 죽어라 나만 살란다, 이러한 품성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서 주여, 마땅히 우리는 지옥 가야 될 존재로 태어난 것, 너무나 당연한 조치를 행사하셨습니다. 잘 하셨다는 이런 고백은 도저히 인간의 능력이 아니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고백이에요. 누가 그런 고백하겠어요. 할 수 없지요.

그래서 출애굽기를 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모세와 아론을 누가 반대했어요? 바로 히브리인들, 같은 동족들이 반대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돼요.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방식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도대체 애굽에서 나간다는 자체가 말이 안 돼요. 살던 동네, 부동산 팔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갈 데가 있어야지. 갈 곳이 없어요.

그들이 요구했던 것은 어디로 나가는 게 아니에요. 그냥 울산바닥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기를 원했을 뿐이지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지 여기 말고 다른 데 갑시다. 이건 인간에게는 나올 수 없는 아이디어에요. 모세도 마찬가지에요. 모세가 왜 혁명을 일으키고 왜 애굽 사람을 쳐 죽였는데요? 탈출하기 위해서? 어림도 없는 소리죠. 내 나라, 내 민족 우리가 지키겠다는,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라니까. 의사가 왜 그리 많은지. 안창호라니까요.

그랬던 모세가 난데없는 율법을 받아요. 이것은 정말 아주 낯선 거예요. 정말 너무 낯설어서 무서운 것 있잖아요. 너무 이질적이어서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뭐 이런 게 다 있어. 그게 율법의 나라입니다. 뭔가 공통점이 있어야 되는데 그래서 내가 평소에 저것 원했어. 이제 믿고자 합니다. 믿을 내용이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누굴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저걸 얻게 되면 나한테 이익이 온다는 마지막으로 환원된다는 걸 계산하고 타산을 맞추어서 내가 믿을래요, 라는 말을 한다는 것. 나한테는 손해가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래서 믿는 거예요. 그 믿음은 바로 애굽 사회, 인간이 만든 세계에서 통용되는 믿음이에요. 가짜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의 나라, 모세를 통해서 비로소 외부에서, 외부란 말도 되고 사실은 외계지요. 외계에서 투입된 것은 모세 본인도 안 믿었습니다. 모세도 못 믿어요. 나이 팔십에 그냥 살랍니다, 이렇게 나오지 뭘 해요. 누가 뭘 보낸 거예요. 서장훈이 광고한 스카이라이프라는 게 있지요. 하늘에 몽땅 다 있느니라. 푹 쑤시는 게 있거든요. 허연 도포 입고 키도 오죽 큽니까? 모든지 다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쑤셨고 모세는 백성들을 쑤시는 거예요. 백성들은 굉장히 낯설어요. 나가자는 겁니다. 어디로, 갈 데가 있어야 나가지요. 고생한 게 여기 다 있는데.

차이나타운에 중국 사람들 살고 있지요. 어떤 중국 사람이 인천바닥에서 살기 고생스럽지. 우리가 나가자. 제일 먼저 묻는지 뭐겠습니까? 지금 중국 사람들이 대대로 여기서 살았는데, 히브리 사람들이 고센 땅에 살았는데 나가기는 어디로 나가는데? 모세가 말하기를 몰라. 이게 말이 됩니까? 나갈 자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되잖아요. 모른다는 겁니다. 일단은 나가게 하신 분이 알려주신데. 어디 있다는 것도 말도 안 하고 찾아갈 수도 없어요. 왜 찾아갈 수 없느냐 하면 나가라고 하신 분만이 안다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이 하신 것과 똑같아요.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베드로도 도마도 물었잖아요. 나만 믿어라. 이 말은 뭐냐 하면, 네가 은근히 기대하는 것은 꿈 깨라. 너로부터 시작한 희망과 기대는 나한테는 탈락이 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노선을 갈아타야 돼요. 갈아타는 노선이 어떤 선인지는 몰라야 되고. 왜 몰라야 되는가? 알게 되면 믿는 자신을 믿게 돼요. 나는 예수 믿는다는 것을 믿게 돼요. 그러면 탈락이에요. 내가 예수 믿는 것도 놔버려야 돼요.

정육점에 고기 거는 S자 갈고리 있잖아요. 이것만 보면 섬뜩해. 여기에 무생물로 변해버린 소고기, 돼지고기 목살이 달려있잖아요. 이게 그리스도 S자에 우리는 목덜미 꿰어 가야 돼요. 손님이 오면, 목살 드릴까요? 하고 목살 아닌 것은 한쪽으로 밀어버리잖아요. 이걸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밀고 당기고, 당기고 밀고.

이 S자가 신약에서는 예수님이지만 구약에서는 율법이라고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게 아니에요. 율법이 천국 백성을 생산해냅니다. 도저히 알지 못하는 인간에다 율법을 칩으로 박아 넣어요. 그걸 임플란트라고 했는데. 가락교회에서는. 그래서 너의 뿌리는 너의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 존재를 너의 뿌리를 하나님의 율법으로 바꿔치기 해야 된다는 거예요.

너의 뿌리가 어미였고 아비였고 아담이 뿌리였다면 이제 너의 뿌리는 예수님이 뿌리가 되지 아니하면 아들의 나라, 천국에 못 갑니다. 천국을 상상하지 마세요. 백날 상상해봐야 내 존재의 뿌리에서 나온 망상에 불과합니다. 망상과 실제 천국의 차이는, 망상 속에는 주의 분노가 섞여지지 않아요.

시편 90편에 나오는데 그 대목을 제가 잠간 읽어볼게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10,11절) 그리고 8절에 보면,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이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면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주여 분노 중에 지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의 분노, 화내심, 분통 터뜨림, 심판이죠. 주님의 심판은 무엇을 색출해 제거해버립니까? 우리가 주님의 분노를 모를 때 나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드라마, 소설, 천국 가서 마음놓고 식구들과 살아야지. 모든 드라마적인 요소를 주의 분노로 전부 제거해버려요. 주의 심판 가운데 없애버립니다.

왜 없애느냐? 그래야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킨 취지가 그거거든요. 처음에 에덴동산에서 나가라. 죽으라고 쫓아낸 거예요. 흙으로 돌아가는 게 죽음이잖아요. 선악과 따먹었으니까 너는 죽어야 돼. 죽일 때 장난삼아 죽이는 게 아니고 분노 가운데 죽이거든요. 분노하라고 그 뒤에 아담 자식들 낳게 한 거예요.

그런데 분노 중에 왔으면 분노로 뒤집어 써야 되는데 하늘 보니 별 있고 달 있고 별 하나, 나 하나 까불고 연애나 하고 있지 주의 분노가 안 보이는 거예요. 안 보이니까 일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천국 가면 더 행복하겠지, 그지? 천국 가서 행복하게 살자. 이건 니 생각이고. 주의 분노가 없다니까. 주의 분노가 없다는 것을 시편에서는 주의 분노 가운데 지나간다고 하지만 이걸 신약 용어로 하게 되면 십자가가 없는 거예요.

십자가가 뭡니까?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 요소가 들어가야 돼요. 그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주님의 저주와 분노가 십자가에서 최종적으로 다 들어난단 말이죠. 그 요소가 있으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모든 것은 풍선이 터지듯이 우리 천국, 낙원 터져버려야 돼요. 십자가에서.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말이 맞지요. 율법을 준 것은 죄를 더 생산하기 위함이라. 죄를 더 짓게 함이라. 왜? 죄를 더 지을 때 우리는 감히 천국 간다는 말을 내뱉을 수 없는 무자격자라는 것을 우리로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죄를 더 짓자는 말은 오해가 있는데요. 사실은 죄를 더 지는 게 아니에요. 이미 죄 아래서 죄를 짓고 있었어요. 그 죄가 매일같이 어느 정도 죄인가를 율법과 사도 바울의 권면과 말씀을 통해서 늘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고하고 교만하고, 이렇게 돼있지요. 이게 사도 바울의 권면이죠. 이 권면이 우리한테 오게 되면 나는 잘났습니다, 떳떳하다고 할 사람 아무도 없지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학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전부 다 지금은 안 하지만 오년 뒤에 십년 후에 얼마든지 나올 수 이야기잖아요. 지금 이 말씀 자체가, 우리가 육을 갖고 있잖아요. 육을 향하고 쏴대는 말씀이에요. 네 육에서 나온 죄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왜요? 내가 말씀 전할 때 잘 들어라. 이러이러한 말씀에 비취어서 너는 죄인일 수밖에 없어. 그래서 사도 바울의 권면들이 많은 거예요. 하나님이 널 사랑하니 서로 사랑하라.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 무시로 기도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범사에 감사하라. 어떻게 범사에 감사합니까? 얘가 아픈데 무슨 감사가 돼요.

모든 것이 뭐냐 하면, 이 말씀에 합치될 수 없는 몸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네가 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해도 네 행함으로 네 몸을 천국에 집어넣을 수 없는 그런 몸으로 애초부터 이 땅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네 행함을 의지하지 말라는 겁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이걸 구약으로 말하면, 너는 애굽 사람이지 하늘나라 사람 아니라는 거예요. 저, 하늘나라 사람 되고 싶어요.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안 되면 어떻게 합니까? 출애굽 할 때 율법을 줘요. 율법이 칩처럼 새겨진다니까요. 거리에 어묵 줄 때 젓가락 안 주고 손으로 집어먹든지 젓가락을 주지 않잖아요. 어묵을 꿰는 꼬지를 주지요. 그 꼬지가 어린양의 죽음이에요. 거기서 율법이 나온단 말이죠. 율법을 지키는 게 아니에요. 왜 우리는 어린양의 피만 의지해야 되는가? 그걸 늘 매일같이 확인시키기 위해서 추가적으로 율법이 계속 주어지는 겁니다.

십계명으로 율법이 끝인 줄 알아요? 아니에요. 살아가면서 새롭게 알려지는 행동을 죄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거기에 맞춘 율법들이 계속해서 추가적으로 도입되는 겁니다. 그걸 언약이라고 해요. 언약은 지키라고 준 게 아닙니다. 네가 안 되는 교체작업, 내가 한다는 겁니다. 언약 주신 분이 알아서 우리를 바꿔줘요. 언약을 알고 지켜서 우리가 힘으로 바꿔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언약을 알고 추가된 언약 때문에 없던 죄까지 또 지어요. 왜? 본성이 죄 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쉽게 말해서 “너, 애굽에 살고 있지. 힘들지. 그냥 있어. 내가 끄집어내줄게. 그냥 살아.” 그러면 그들이, “끄집어내준데. 가자.” 이렇게 합니까? 안 하지요. 어떻게 하느냐? 애굽 사람들의 히브리인들을 밀어내도록 조치해요. “에이씨, 나가.” 누가 명령했습니까? 애굽의 수장되는 바로 왕이 대표해서 너희들 나가라. 나가기 싫어요. 꺼져. 꼴 보기 싫어.

요새는 그런 가정 없습니다만 못된 시어머니에게서 언제 나가는지 걱정하지 마세요. 시어머니가 나가라 할 때 그때 분가하면 돼요. 꼴도 보기 싫어. 나가. 그냥 나가라고 하겠습니까? 돈 주며 나가라고 하지.

하나님의 율법이 바로 입을 통해서 바로 왕을 앞장 세워서 나가라고 오히려 요청할 그 때를 율법이 만들어주십니다. 그걸 잠재성. 애굽이란 나라가 인간들은 애굽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라라고 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보지 않고 애굽이란 나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을 이 땅에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잠시 등장했다가 해체돼야 될 나라로 하나님이 만드신 나라에요. 하나님이 만드신 나라를 하나님이 알아서 언약대로 분리시키는 건 하나님이 하실 일이죠.

하나님께서 분리할 때 다시 이야기합니다. 율법이 주어져야 분리가 됩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왜 망하는지 알아요? 율법이 주어져야 분리가 되는데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가 약속의 땅에 오고 난 뒤에 자신들이 율법을 지켜서 이스라엘을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망해버린 거예요. 율법을 지켜서 그 나라 하려니까 망한 겁니다.

율법을 주신 분이 율법을 행세해야 되는데 주셨으니까 알아서 십계명 지키고 알아서 제사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제사 드려서 망했어요. 그들이 제사 드린 것 때문에 누굴 핍박했는가? 새로운 율법과 약속을 언약을 소개한 선지자를 지근지근 밟았습니다. 율법이 있는데 네가 왜? 율법 잘 지키고 있는데 네가 왜?

어떻습니까?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어디에 몰입했습니까? 율법 대로 제사 드리기에 몰입했지요. 율법 잘 드리고 있잖아요. 그들은 모세를 아주 높였어요. 모세 율법 대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율법 준 사람이야. 내가 안식일의 주인공이야. 네가 율법 지킨다고 안식일에 손이 상한 사람, 몸이 아픈 사람을 고친 적 있나? 결과를 봐라. 안 되지. 영생 못 주지. 그러니까 하나님은 너희들 노선이 아니라 예수님 노선이라니까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율법을 준 것은 인간들의 잠재돼있는 죄가 율법을 통해서 점점 더 구체화되는 거예요. 율법을 준 취지를 율법을 지키는 인간들이 얼마나 반발하고 싫어하는지를 싫어하는 요소가 인간 내부에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장착돼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출애굽할 때 중요한 요소가 있어요. 요소를 제가 몇 가지 적어볼게요.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어린양의 죽음이죠. 어린양의 피죠. 그러면 어린양의 피를 바르면 되는가? 아니에요. 그것만 있는 게 아니고 할례를 행해야 돼요. 그 다음에 누룩이 없는 떡을 먹어야 돼요. 이게 다였습니까? 중요한 게 있어요. 이것이 밤에 이뤄진다는 거예요. 밤은 인간들의 세계가 아닙니다. 천사들의 세계에요.

하나님께서 애굽에 모세 보낼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 다음에 야곱의 하나님이죠. 야곱의 하나님이 언제 찾아왔습니까? 밤에 찾아왔어요. 밤에 찾아왔다가 언제 떠나려 했습니까? 낮이 되려고 하니까 떠나고자 했어요. 떠나고 난 뒤에 드디어 새 날이 밝았습니다. 밤에서 아침이 되는 것, 이건 창세기 1장에 보면, 저녁이 아침이 되니, 그걸 한 날이라. 이 날은 하나님의 창조의 요소가 흠뻑 담긴 날입니다. 그 날을 창세기 1장에 보기에 좋았더라고 돼있어요. 우리가 아는 스물네 시간이 보기에 좋았다는 게 아니라 창조의 요소가 담겨있으면 보기에 좋았더라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스물네 시간은 하나님 보기에 좋았더라입니까, 싫었더라에요? 좋았더라입니다. 그게 잠재돼있기 때문에.

울산은 울산시민이 만들잖아요. 이건 보기 싫은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보기 싫더라도 잠재돼있는 것은 뭐냐? 인간들이 울산 만들도록 그 바닥에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조성한 겁니다. 율법에 준해서 율법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이 세상에 참새가 떨어지는 것도, 들풀이 자라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주님의 허락 없이 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가 맞아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좋았더라는 대목도 있지만 그들을 후회하시니라. 또는 근심하신다고 돼있지요. 이것은 뜨물 걷어내듯이 걷어내면 되는 거예요. 안에다 하나님 말씀과 언약으로 된 그 세계를 인간들이 마귀로 하여금 죄로 덮치게 허락하셔요. 그 죄 진 것에 대해서 심판이 작용해서 그걸 드러내면 되는 겁니다.

홍수로 다 심판하면 남는 게 뭡니까? 노아언약만 남지요. 그렇게 해서 잠복돼있는 요소를 노아한테만 알려줍니다. 그게 노아언약이에요. 이 땅은 원래부터 행함이 아니고 은혜로 유지하게 돼있단다. 너만 알아라. 그리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물로써 망한다. 그걸 네가 전해라. 그래서 노아가 전했더니만 자기 식구 빼놓고 몇 명 전도했습니까? 0명, 단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하늘나라 가서 책망 받았어요? 한 구찌도 못하고, 영업사원 때려치워라. 이랬습니까? 노아야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참 보기에 심히 좋았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은혜 입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천국에 못 온다는 것, 장차오실 예수님 마음속의 모습을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노아는 방주를 만듦으로 믿음을 표했다는 대목으로 그게 나타났지요. 노아가 방주 만드는 것은 곧 주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고, 거기에 옆 집 사람 한 사람도 오지 못하고 오직 노아 제 식구만 달랑 안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지신 취지를 흠뻑 그 시대에 보여준 겁니다. 택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못 온다.

이 말 들으니까 섭섭합니까, 갑자기 홀가분해지고 심령이 가뿐해지는 느낌입니까? 갑자기 몸무게가 확 줄지요. 20킬로 줄지요. 안 와도 돼요. 모든 설교는 안 올 사람은 오지 마세요. 그런 쪽으로 설교를 해야 돼요.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어요. 백날 오천 명 모아야 다 탈락입니다. 쓰레기만 모은 거예요. 어디 교회가 쓰레기하치장 노릇할 일 있습니까?

누가 구원되고, 안 되고, 합격이란 말하지 마세요. 그건 우리 소관 아닙니다. 합격자는 주님만 아시고. 복음만 그리스도의 모습만 보여주면 돼요. 오직 아버지에게 선택된 자 외에는 아무도 못 옵니다.

그 방주 기능을 모세 때는 율법으로 바꾸면 노아 외에는 방주 의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요. 모세는 이미 주님과 독대했어요. 모세가 언약을 꿰고 십계명을 모세만 알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요. 모세 저 혼자만 영광스럽고. 그래서 수건 뒤집어쓰고 내려왔는데. 이건 이야기한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모세만 알고 있는 그 내용을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들어요. 그래도 전해야 돼요. 왜? 율법은 납득해서 알아서 오는 게 아니고 율법과 더불어 율법의 효과와 효능이 율법 외침과 더불어 그 현장에 덮치기 때문에. 잠재적인 능력이 드디어 분화구처럼 이제는 애굽의 지표면을 덮칩니다. 덮으니까 열 가지 재앙이 되고 말았어요.

바로가 자기 백성 안 보냅니다. 어딜 가, 하던 그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제발 가주세요. 충정어린 신하들이 그랬어요. 히브리인들 제발 내 보내세요. 이러다가 나라 말아먹겠습니다. 견딜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술사, 마법사의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이건 정말 우리가 아는 신을 초월한 일이기 때문에 감당 못합니다.

나가라고 하니까 모세가 하는 말이, 아직 마지막 한 재앙 남았습니다. 그 재앙이 뭐냐? 죽음이죠. 옛날 삼국시대나 옛날 역사에 구석기시대에 보면 순장 제도가 있어요. 무덤에 족장이 죽을 때 하녀들, 생사람을 양식 보름치 주고 묻어버립니다. 뭔 뜻입니까? 종은 소유잖아요. 주인 죽었으니까 그들은 주인이 없어요. 그러니까 주인 따라가야 돼요. 황천길 가면서도 주인을 모셔야 부활의 세계에 이르기 때문에. 부활 종교, 준비 다 돼있는 거예요. 옛날부터 있었던 상품이에요. 그러니까 중을 생사람 잡아버린 거예요. 주인 죽을 때 같이 죽어라.

자, 어린양만 죽습니까? 누가 죽어요? 애굽에 있는 모든 장자는 다 죽여요. 왜 장자만 죽입니까? 어린양의 정체가 하나님의 맏아들이기 때문에. 로마서 8장에 보면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라고 돼있지요. 모세를 애굽에 보낼 때 먼저 하는 게 있어요.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다. 내 장자다. 아들이 복수가 아니고 단수에요. 그러니까 둘째 아들, 셋째 아들은 아들 아니에요. 첫 번째 아들만 아들이에요. 그것은 이스라엘 자체가 장차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이 둘, 셋이 있는 게 아니고 독생자, 하나밖에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그러한 흔적을 남겼고, 특히 아브라함의 아들이 두 명, 세 명이 아니에요. 이삭, 사랑하는 독자를 바치라고 했거든요.

아브라함이 독자를 죽이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들을 죽이는 거예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들 죽이는 것은 장자오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아들로 오셔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죽어야 된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죽음 안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천국이 들어있기 때문에 자신이 산 채로 들어갈 수 있는 위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 안에 들어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오뎅 꼬지의 의미가 뭐냐 하면, 죽음 없이는 어느 누구도 천국 못 간다. 산 채로는 못 가요. 살아있으면 천국을 상상하게 돼요. 자기를 주인공 삼아서. 내가 지금 살기 힘든데 좋은데 가야지. 이러거든요. 그 인간을 주께서는 죽여주시는데 율법으로 죽이시다가 마지막에는 십자가로 죽여 버립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가 있어요. 십자가가 동원되면 십자가는 우리를 죽이는 역할해요. 이제는 우리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없고 우리 안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란 이름은 사실은 복수, 다양성이지만 성경에서는 단수에요. 인간은 하나밖에 없어요. 아담1, 아담2, 아담3 인데 그게 아담이에요. 아담4, 아담5 이렇게 돼요. 그게 아담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죽입니까? 밤 되면 다 죽어요. 잠을 자기 때문에. 밤 되면 인간의 활동이 중지되고 의식으로 했던 것이 무의식 세계에 들어갑니다. 내가 자고 있다, 나는 자고 있다. 아직도 이건 의식 세계에요. 그러다 깨보면 벌써 아침이라. 그 틈 있잖아요. 내가(주체) 자고 있다는 자체를 삭제해버리는 그 시간, 온전히 본의 아니게 이건 살든지 죽든지 누구 손에 달렸습니까? 하나님 손에 달려있는 그 순간에 일을 저지릅니다. 어떻게? 그건 10분 쉬고.

첨부파일 : 20150904a 울산강의.hwp (35.0K), Dow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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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5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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