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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24강-YouTube강의(아무것도 아님)150903-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124강-YouTube강의(아무것도 아님)15090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80.231.90.76)

124강-YouTube강의(아무것도 아님)150903-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 124강 제목은 ‘아무것도’ 아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사람들은 신앙을 가져야 된다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왜 신앙을 가져야 하느냐 하면은 하나님 믿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에 어쨌든 믿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럼 믿을 때, 과연 성경의 내용이 우리가 믿을 만한 내용인지를 생각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자기가 믿고 싶은 것, 또 믿을 만한 것만 골라서 믿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 점에 대해서 이미 우리 선배들인 이스라엘 나라가 그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 믿음이라는 것을 내놓았는데, 하나님에 의해서 그들의 믿음이 가짜로 들통 났습니다.

유대인이나 우리나 다 같은 아담의 자손인데, 그들의 신앙이라도 하나님 앞에 거부당했는데, 우리의 신앙이 무슨 대단한 신앙이라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것이라고 그렇게 성급하게 생각할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어느 것 하나 우리가 믿을 만해서 믿어지는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믿으라고 하는 그것을 제대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아무도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를 믿을 수 없다, 예수 믿는 능력은 우리 속에 애초에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시는 것도 성경의 말씀 안에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간단합니다. 이 성경의 내용에 내가 믿을 수 있는 능력은 나한테는 없다는 그 사실을 성령이 오게 되면 알게 됩니다. 아, 성경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줄 때는 믿고 천국오라고 준 게 아니고 우리가 애초에 천국 갈 수 있는 그러한 자격자, 권리자가 아니구나! 우리 주제 파악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경을 다시 보게 되면 성경이 새롭게 나타나죠. 그 전에 수 천 가지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한 가지 예를 들면 시편 73편 20절에 보게 되면 거기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꿈 이야기가 나오면서 거기 중요한 단어가 꿈과 함께 나오는데 그 단어에 대해서 이번 강의에서 강조하고자 합니다.

시편 73편 20절을 읽어보면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꿈과 더불어 같이 동반되는 두 개의 단어가 있는데 하나는 ‘무시’, 같은 뜻으로 ‘멸시’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문장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야기는 딱 이겁니다. “니가 니 자신을 무시할 수 있느냐?”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느냐, 우리가 꿈을 꾸고 난 뒤에 꿈을 자연적으로 무시하죠. 꿈이 생각나서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 안 날 정도로 무시를 해버립니다. 꿈은 지난밤에 꾼 것이고 지금은 벌건 대낮이기 때문에, 우리의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꿈까지 신경 쓸 거 없잖아요.

꿈을 우리는 무시합니다. 꿈을 우리는 멸시합니다. 왜냐하면 그거는 신경 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보신다는 겁니다. 꿈을 개무시 하고, 꿈을 멸시하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존재와 생각들을 무시할 때에, 그 무시함을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을 자꾸 일부러 조작해내려고 하느냐 하면 믿음을 조작하는데 노림수가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나를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 나를 가치 있게 보려고 믿음이라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시편 73편 23절에 보면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라고 되어 있는데, 23절을 보면서 앞에 22절을 봐야 해요.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이것을 우리가 믿습니까? “주님이여, 제가 주님 앞에 우매하고 무지합니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를 개무시 할 때 그것은 당연한 조치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주께서 우리를 멸시 할 때, 아무것도 아닌 걸로 멸시할 때, 마치 꿈처럼, 지난밤에 꾼 꿈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정할 때, 정말 그것이 내가 미처 나를 몰랐던, 나의 진면목인 것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주의 앞에 내가 짐승이오니” 라는 고백을, 우리가 이 시편에 나오는 73편 22절에 나오는 이 고백을 동일하게 고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말씀 안에 들어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꿈을 개무시 하듯이 꿈처럼 간주해서 우리를 무시하고 멸시하시는 이유는 주께서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한 절차로서 시편 73편 22절의 내용을 가지고 다시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편 73편 22절의 내용 자체가 우리는 주의 앞에 짐승이다, 우리는 꿈같은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멸시 당연한 것이다, 무시당함도 마땅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모아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피조물로 만들어내시는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그 작업의 결과로 우리가 성도라는 자아가 형성됩니다. 성도가 되는 겁니다. 그러고 난 뒤에 그 모든 작업을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하셨거든요. 하시고 난 뒤에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면 여기에 두 가지의 다른 층이 형성됩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내가 나를 무시하지 않고, 내가 나를 굉장히 귀하게 여기고, 존귀하게 여기면서, 하나님의 계시까지 포섭을 해서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내가 천국까지 갈려고 하는 그 시도, 그 시도가 신약에 가게 되면 예수라는 이름의 우상을 믿은 우상숭배자가 되는 겁니다.

예수라는 우상을 믿는 우상숭배자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온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을 형제로 간주하지를 않아요. 예수 믿는다는 그 예수가 다른 예수인지, 고린도전서 11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게 다른 예수인지, 진짜 성령이 임해서 믿게 된 진짜 주님의 백성인지를 그걸 가려내고 구분하는 안목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이 참된 신앙인입니다.

그럼 그걸 구분하고 가려낼 때 기준이 있을 텐데, 그 기준이 뭐냐 그 기준은 제가 오늘 124강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이 어디에 근거 하느냐, 시편 73편에 근거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편 90편에 보면 이래되어 있어요. “사람을 주께서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다.”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는데, 그 티끌로 돌아가게 하신 그 원인이 시편 90편 7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분노 가운데서, 하나님의 화내심 가운데서 티끌로 돌아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서 섭섭하십니까? 화가 나십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라는 이름의 우상을 믿는 우상숭배자가 되는 겁니다. 사람이 성령이 없이 그냥 성경을 대해버리면 예수 믿으라 하니까 예수 믿으면 본인이 이익인 줄 알고 예수를 믿는다고 자부하고 나옵니다. 근데 그거는 결심에 불과하고 오기에 불과합니다. 그건 이단이 되는 거죠. 예수님은 이단이 되는 겁니다.

그러한 구분은 뭐냐, 다시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게 되면 오늘 시편 73편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매했습니다. 무지했습니다.”는 이 고백이 기쁨으로,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이제야, 나는 우매하고 무지함을 주님 앞에 짐승 같음을 이제 알았습니다.” 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을, 그걸 확인하는 차원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이 땅에 살게 했음을, 기쁨으로 깨닫게 되는 겁니다.

첨부파일 : 124강-YouTube강의(아무것도 아님)150903-이 근호 목사.hwp (31.5K),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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