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50814a-히10장28절(중간 부분) -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히브리서

안양20150814a-히10장28절(중간 부분) - 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121.183.185.40)

안양20150814a-히10장28절(중간 부분) - 이 근호 목사

오늘은 약간 어렵습니다. 제가 어렵게 하는 게 아니고 성경 자체가 어렵게 나와 있어요. 여기에 보면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렇게 돼 있죠. 복잡한 내용들이 한꺼번에 문장에 급작스럽게 연결돼 있죠.

‘은혜의 성령’이란 단어도 그렇고 그리고 여기 ‘언약의 피’란 이 언약의 피는 최고로 너무 어렵고요. ‘모세의 법에 두 세 증인’이란 이것도 어렵고 이렇게 어렵고 어려운 것이 한 연결 문장으로 죽죽 다 연결돼 있으니까 하나, 하나 모르면 전체를 모르게 돼 있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요 순서대로 하겠습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 두 세 증인” 요거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요거는 신명기 17장에 나오는 이야긴데 이건 뭐냐 하면 모세의 법이라고 나올 때는 항상 요것만 생각하시면 요게 쉽습니다. 모세의 법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된다.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돼요. 이방 나라한테는 해당이 안 됩니다. 모세의 법은 이미 그 바운더리가 따로 정해져 있어요. 두 세 사람 없이는 못 죽인다는 것은 다른 나라한테 적용시키는 게 아닙니다. 자기들끼리 모세의 법에 보면 이스라엘 내부에만 적용시키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왜 두 세 증인 없이 죽이면 안 됩니까? 라는 말을 할 때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집단을 위해서 에요. 그래서 현대인들이 성경을 볼 때에 성경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현대인은 개인주의입니다. ‘저 어떻게 나 혼자 천국가요? 나는 어떡하면 천국 가죠?’개인한테 물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 받습니까? 하는데 여러분 주기도문 알죠? “하늘에 계신” 어떤 아버지? 우리 아버지잖아요. 집단 이예요. 집단! 집단이기 때문에 개인 모이면 집단 가는 게 아닙니다. 초반부터 어려운데, 개인 개인이 플러스, 플러스, 집단 되는 게 아니고, 집단에서 명주실 뽑듯이 누에 뽑듯이 집단에서 하나 뽑혀 나온 그게 개인 되는 거예요. 집단에서 뽑히면 개인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개인의 요 자리, 사람이 이렇게 있다면 개인의 자리가 이게 개인 자리 아닙니다. 우리의 자리, 집단의 자리에 공동으로 개인이 서 있는 거예요. 아! 요 인식 바뀌어야 되거든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가 아니죠?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는 누구만 할 수 있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만 할 수 있어요. 이걸 제가 뉴저지에서 적용할 때 언급을 했어요. 그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왜 나의 아버지가 안 되느냐 하면 우리 아버지는 전부 다 우상이거든요. “우리 하나님” 전부 다 우상 이예요. 진짜 아버지는 누구만 아시느냐 하면 개인적으로 예수님만 알고 나머지는 몰라요. 혼자 알고 나머지는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 십자가 충돌이 일어난 겁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들은 여호와만 연구한 사람들 이예요. 그런데 여호와만 연구했는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우리가 돼 버렸어요. 유대인끼리의 우리. 그 우리는 주님 우리한테 근처도 안 갔어요.

주님이 아시는 아버지는 주님만 알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요. 그래서 메시아의 기능은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데 예수님이 거기 화합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만 알고 있는 기능이 옆에서 퍼지는 겁니다. 물탱크에 구멍 나면 처음에 조금, 조금 퍼지다가 나중에 많이 퍼지죠. 물탱크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에서 조금씩, 조금씩 아버지의 양상이, 아버지의 모습이 나오게 되면 다른 쪽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저건 우리가 알고 있는 여호와가 아닌데.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아닌데.’ 예수님이 그러죠. ‘그래, 아니기 때문에 내가 온 거야. 너희 애비는 마귀거든.’ 너희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마귀를 닮아요. 그럼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진짜 아버지고. 우리 한번 대조해보자. 만나보자. 만남에서 이게 구원이 이루어져요. 어떻게 만나야? 서로 ‘아네.’가 아니라 달라도 너무 다르네.

그것을 저는 이렇게 한 자로 ‘틈’ 이 틈은 하나님과 인간의 틈.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죄인이잖아요. 틈이 있죠. 건너갈 수 없는 것. 그 대표적인 틈이 천국과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 사이는 건너갈 수 없어요. 무슨 계곡이 있답니다. 이거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부자하고 나사로하고 서로 건너갈 수 없어요. 산 넘어 물 찾아서 길 따라서 배낭여행한다고 가는 게 아닙니다. 도저히 건너갈 수 없어요.

지금 혹시 지옥 가 있으면 잘 봐 놓으세요. 나중에 죽으면 두 번 다시 상봉이 어렵습니다. 끝났어요. 심지어 가족끼리라도. 미리 사진 찍어놓으시고, ‘김치’하고 사진 찍어놓으세요. 죽으면 영원히 헤어집니다. 참 안타깝죠.

하나님과 인간의 틈이 있는데 그 틈이 인간의 틈이 아니고 사실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 사이의 틈 이예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인간의 틈이 있는 것을 하나님과 예수님이 와서 메꾸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고, 하나님과 인간의 틈이 있잖아요? 인간은 죄인이고 하나님은 의인인 틈이 애초부터 하나님과 아들 사이에 틈이 있었습니다. 이 틈이 바깥으로 퍼져버리면 이게 하나님과 인간의 틈이 되는 거예요.

이 발상도 상당히 중요한 발상인데 우리는 이걸 잊어버려요. ‘내가 구원받으려 하는데 내 힘으로 안 됩니다. 하나님 어떤 수가 없겠습니까? 예수님 보내주세요. 메시야 보내주세요.’이렇게 일을 자기 문제가 자기부터 출발해서 ‘그래? 아이쿠, 못 오겠나? ’‘아유, 못 오겠습니다.’‘왜?’‘죄가 많아서’ ‘그래, 걱정하지 마. 죄 씻어주기 위해서 내가 메시야 보내줄게.’우리 구원문제 해결하려고 주님 오셨나, 이렇게 이해하잖아요. 순서가. 내가 천국 못 가서 답답한데 주께서 사랑의 하나님이라서 가만있지 못하고 불쌍히 여겨서 우리에게 예수님 주셔서 믿었다. 이건 대학생들 선교단체 교재마다 다 나오는 이야깁니다. 이거 완전히 반대에요. 이거 엉터리에요. 그 선교단체가 커서 교회 되고 그 출신들이 목사 됐으니까 또 마찬가지 이야기에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구원 못 받죠? 걱정하지 마세요. 능력의 하나님 보내주시니까 그분이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다리입니다. bridge입니다. 예수님 믿으시고 건너오시면 천국 옵니다. 여러분 감사합시다. 할렐루야 노래 불러요.’

그러면 애초부터 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악과를 왜 심어놨느냐 말이죠. 처음부터 선악과를 왜 심어놨어요? 아니 에덴동산을 만들어 놨으면 뭐든지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그게 오히려 더 사랑이 넘치고 넘쳐나는 게 아닙니까? ‘마음대로 먹어, 마음대로 먹어. 마음대로 다 먹어. 너희들이 맘대로 먹는데 애로사항 있어?’ ‘저 선악과 좀’ ‘어, 걱정하지 마. 내가 빼줄게.’ 하고 삽으로 선악과를 빼주면 ‘자, 됐나?’ ‘저거 먹으면 혹시 죽지 않습니까?’ ‘오, 걱정하지 마. 내가 안 죽게 만들게.’ ‘선악과야 미안하다.’뽑아서 메가지 틀어서 먹고 ‘자, 또 ..’‘마귀가 자꾸’ ‘마귀? ’ 마귀를 모가지 비틀어서 보내버리고, ‘자, 또 뭐뭐’‘이제는 괜찮습니다.’ ‘그래’ ‘심심한데.’ ‘그럼 여자 줄게.’이렇게 일이 되면 그게 사랑의 하나님 아닙니까? 애초부터 죽음이란 언급을 누구 쪽에서 먼저 했어요? 인간 쪽에서 죽음을 거론했어요? 안 했어요? 안 했죠. 죽으리라 하는 말은 우리 인간에서 한 적이 없습니다.

셰프, 요리사가 식당에서 요리를 하면서 ‘자, 요리입니다.’ ‘무슨 요리죠?‘ 제가 복어 요리 맛있게 했습니다. 잘 잡숴야 됩니다. 죽습니다.‘ 이런 요리를 내놓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독을 빼고 주셔야지. 이게 우리 쪽, 먹는 소비자 쪽의 입장이고 생각입니다. ’독을 빼고 주셔야죠.‘

에덴동산이 뭡니까? 극락의 좋은 동산이잖아요? 그러면 독을 빼고 좋은 동산 돼야죠. 그게 있으면 위험한 동산 이예요. dangerous, 굉장히 위험한 동산이지 좋은 동산 아닙니다. 자기 1살 먹은 애를 ‘애야 마음 놓고 놀아라.’ 해놓고 여기는 가시나무 심어놓고 여기는 뱀 열 댓 마리 풀어놓고 여기는 쥐 한 스물 댓 마리 있고 여기 바퀴벌레 한 오백 마리 풀어놓고 ‘마음껏 놀아라. 마음껏’ 한 두 시간 되면 애가 물려서 얼굴 퍼렇게 돼서, ‘엄마, 이렇게 물렸어.’엄마 하는 말이 ‘조심하라 했잖아. 죽여.’ 이게 무슨 사랑의 하나님 이예요? 내가 지어낸 이야깁니까?

그게 어제 수원강의 했죠. 이미 범죄한 그것을 정당화하는 마귀가 계속해서 그걸 정당한 거예요. ‘선악과 따먹어라. 괜찮아 질 거야.’ 가 죄질 때만 아니고 죄 짓고 난 뒤에도 마귀가 떠나지 않아요. 계속 입을 나불나불 거려요.‘괜찮아, 사랑의 하나님이야. 널 위해서 십자가 준비했어.’ 그러나 그 십자가는 진짜 십자가 진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들을 못 도와줘서 환장하신 분. 여호와 증인 말 같으면 아예 지옥을 없애버리는 하나님. 여호와 증인도 바보라. 지옥을 없앨 게 아니고 처음부터 선악과 없으면 훨씬 일이 간편해져요. 선악과 심어놓고 죽어라 해놓고 나중에 지옥 없애 버리면 이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잖아요. 지옥 없애지 말고 선악과부터 ‘아이쿠, 내가 실수했다. 네가 먹으라 한 게 아닌데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왜 거기 심어놨지?’이런 식으로.

그래서 이 전체 구조가 전체적으로 잘못되었어요. 이건 근원적으로 성경 보는 눈 자체가 잘못되었어요. 잘못 됐으니까 잘못된 것을 알면 이걸 어떻게 해요? 고쳐야 되겠죠.

고치는 방법은 뭐냐, 하나님과 우리가 벌어져서 우리가 죄인이고 우리는 천국에 못 가는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틈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 관계가 이렇게 확대경으로 확대시켜서 이 땅, 지평에 펼쳐진 게 오늘날 우리들 인생의 역사입니다. 그게 창세기 3장에 나와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그때 예수님께서 뱀의 후손, 여자의 후손 이야기할 때 그때 인원수가 몇 명이었습니까? 일단 하나님 계시고 그 다음에 아담 있고 그 다음에 여자 있고 뱀 있고, 거기 이야기 대상자, 총 등장인물이 몇 명입니까? 달랑 4명이죠. 달랑 4명밖에 없죠. 그 네 명이 바로 뒤에 나오는 모든 역사를 다 주관해 버리는 겁니다. 이해되십니까? 네 명이.

그럼 내가 누구냐를 지금 이 자리에서 찾으면 안 돼요. 어디 가야 돼요? 고 네 명이 의논한 곳에, 의논한 건 아니지만, 하여튼 네 명이 있는 곳으로 근원을 찾아가셔야 돼요.

그래서 오늘 강의 제목을 네 자로 정했습니다. ‘중간부분’ 옛날에 우리 집에서 제사를 많이 드렸거든요. 교회를 안 다녔으니까. 제사를 많이 드릴 때 우리 어머니가 제사 음식을 담당하는데 또 할 짓 없는 내가 옆에서 지켜본다고, 어릴 때 일곱 살 여덟 살 때, 엄마가 하는 걸 지켜보았는데, 학원도 있는 것도 아니고 놀이동산 있는 것도 아니고 맨 날 엄마 하는 그것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돔배기를 가져와요. 고기를 잡을 때 머리 부분 끊어내고 꼬리 부분 끊어내고 중간을 굽잖아요. 갈치도 마찬가지고. 그럼 그걸 끊어내 버리면 여기 네모져 버리지, 전체 고기 모양이 사라지잖아요.

인생이 뭐냐 하면 태어나서 죽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게 전체로 보이지만 이것은 중간에 잘린 거예요. 창조 모르고 끝 모르고, 중간에 돔배기(상어고기)처럼 자체가 잘린 거예요. 그래서 욥이 하나님 앞에 대드니까 하나님께서 뭘 해줍니까? 잘린 부분을 말씀하셨잖아요? 네가 삼성 별 만들 때 너 어디 있었느냐? 뭐 있을 리가 있어요? 욥이 나이가 얼마 안 됐는데.

그러니까 처음에 바람이 처음 부는 장소를 아느냐? 왜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자꾸 질문해요. 무슨 퀴즈 게임이 그런 게임이 있어요? 태어나기 전에 있는 게임을 어떻게 알아요? 욥아, 너한테 준 고난은 중간부분에 있는 사람은 못 알아봐요. 중간부분에서 내가 몇 살, 몇 년, 이건 모르고 근원과 마지막을 아는 사람만 풀 수 있는 수수께끼로 너에게 고난을 준 거다 말이죠. 네가 지금 고난이 있다고 나를 원망하는데 그건 뭐가 오류냐 하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있는 인생 경험으로서 이 고난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하는 거예요.

그거야 모르는 게 당연하죠. 몇 살 먹었다고? 돔배기인데. 끊긴 중간 부분이 어떻게 안다고요? 그런데 사람이 욥이 뭘 보여주느냐 하면 욥이 나중에는 자기 잘못을 알지만 욥은 태어나서 죽을 때 이르니까 자기가 태어나서 살았잖아요. 살았으니까 살았다 + 행복, 이렇게 되겠죠. 이왕 살 거 멋있게 살고 부자로 살고 애들 열 명 낳고 갑부로 살면 이걸 뭐로 보느냐 이걸 복이라 본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복을 연장하자는 거예요. ‘네가 태어나서 내가 아프지도 않고 건강하고 아내와 열 명의 자식과 부유하게 산 것은 이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에 복 받았다. ‘라는 요 규정, 요 의미 규정을 주님께서는 강제로 잡아당길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의미가 그렇게 돔배기처럼 중간부분을 잘라버리면 이거는 누구의 시험을 받느냐 하면 시작과 끝을 마귀로부터 이게 시험 들어요. 마귀가 주님한테 시험했을 때 ’배고프지? 배고프지?' 그 다음에 ‘니가 메시아 역할 인기 많으면서 하고 싶지? 기적을 막 베풀며 하고 싶지? 니가 세상의 모든 걸 다 갖고 싶지? ’ 사실은 그 마귀가 하는 말이 뱀이 하는 거예요. 뱀이 마귀니까.

뱀이 처음부터 이미 아담한테 선악과 따먹어라 할 때부터 이미 노림수가 거기 있었어요. ‘니는 살아야 되겠고 살면서 이왕 사는 거 행복하게 살아야 되겠다. 필요한 거 내가 대줄게.’그야말로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것처럼 메스도펠레스라는 그 마귀하고 거래를 하는 것처럼 지금도 우리는 날마다 마귀하고 거래하는 중입니다.

‘이번 일만 성사가 잘 되게 해주신다면 감사헌금 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도대체 잘 된 게 뭔데? 그 자기 성사한 그것이 주께서 다 이루었다 하고 무슨 관계있는데? 주님이 준 게 다 이루었는데, 우리는 펄펄 살아서 행복한 게 다 이룬 겁니까? 사람이 살아 있어 행복해 져버리면 그 다음부터 뭣에 편중하냐 하면 이 살아있는 걸 관리해야 될 부담을 느껴요.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돼.‘이게 뭐냐 하면 본인이 살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죽으면 안 돼‘가 되는 거예요. ’죽으면 안 돼‘가 돼야 되니까 뭔가 죽음이 오는 사태가 오니까 우리는 어떻게? 숨어 들어가는데 제가 주일날에 그걸 토굴이라 했는데, 토굴 속에 파고 들어가는 거예요. 두꺼운 이불 마구 덮고 마지막 때 3차전을 대비해서 후 삼천 년 후 삼천 반 올까 싶어서 탱크, 지하 벙크를 만들어서 거기 생수 사놓고 거기 피하는 것처럼 자기 하나 살기 위해서 온갖 것을 하는 거예요.

히브리서 2장에 뭐라 돼 있던가요? “죽기를 무서워서” 그 다음의 말이 뭡니까? 종노릇하죠. 한 번 봅시다. 선악과 따 먹는 날에는 그 다음에 뭐가 나오죠? 그 뒤의 말이 “죽으리라” “죽기를 무서워서” 그 뒤에 나오는 말은 그냥 종노릇이 아니고 누구의 종? 마귀에게 종노릇한다. 귀신이 들락날락한다 이 말이죠. 죽기를 무서워한다면 마귀에게 종노릇한다. 건강할 때는 뭐 주님 믿고 편안히 죽으면 되지, 하지만 조금이라고 이빨 아프고 시리고 엉덩이 아프고 하면 ‘주여 왜 이러십니까?’ 이거 뭐 욥의 반복이라. ‘차라리 이럴 거 같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욥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어요. 이거야 말로 그야말로 중간부분이라. 돔배기라. ‘왜 이러십니까? 나중에 죽으면 주님한테 따질 거야. 내가 무슨 잘못 했다고 이렇게 수모를 주십니까? 따질 거야.’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가 뭐냐 하면 이 중간부분을 그냥 놔두면 안 되죠. 중간부분을 그냥 놔두면 마귀의 종 돼요. 마귀한테 시험 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됩니까? 시작과 끝부분으로 이걸 잡아당겨야 되죠. 뭐 좀 지저분한 방법이지만 사람의 팔 다리가 네 개니까 여기다 말 네 마리 묶어서 ‘이럇’해서 잡아당기면 좀 늘어나겠어요? 성장 판이 늘어나겠습니까? 늘어나는 정도가 아니고 사지가 찢어지죠. 옛날에 역적들 죄 질 때 그렇게 찢잖아요. 중국도 있고 외국에도 그런 게 있어요. 아주 잔인하게 찢는데 지가 통닭도 아니고 왜 그렇게 찢습니까?

자, 그러면 그게 안 된다면 어떻게 돼요? 돔배기밖에, 중간부분밖에 안 되는데 뭘 어떻게 늘려서 시작과 끝을 잡아당겨야 됩니까? 모르겠죠? 방법이 없잖아요. 이게 개인으로는 안 와요. 어떻게 하느냐 하면 단체, 우리, 내가 아니라 우리, 단체에다 집어넣어버립니다. 그러면 이 단체는 개인에 속할 때는 돔배기, 중간부분이 되지만 이 단체는 단체에 뭐가 주입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주입돼요. 약속이 주입되면 창세기 3장의 그 약속과 요한계시록 약속이 이 단체에 전부 다 이게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언약, 이삭의 언약, 야곱의 언약 이예요. 아브라함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이 요한복음 8장에 보면 누굴 봤는지 알아요? 예수님 보고 기뻐했어요. 보세요. 자기의 돔배기를 능가하잖아요. 아브라함이 죽기 전에 예수님을 봤다는 겁니다. 죽고 난 뒤에 봤는지, 하여튼 아브라함은 본인의 돔배기 넘어서는 것까지 본 거예요. 예수님이 언제 적 예수님인데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봤습니까? 유대인들은 막 달려들었다고요. 왜, 유대인들은 전부 다 돔배기니까, 개인이니까 자기가 태어나서 바르게 산 것 가지고 착하면 천국 간다. 그들이 놀랜 거예요. 착하면 천국 간다. 누가? 내가.

그러나 성경은 내가 구원받는 그런 이야기는 없어요. 우리가 구원받지, 내가 구원받는 게 아니거든요. 아! 참 이런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내 신앙 가지고 내가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신앙으로 우리가 구원받아요. 주님 신앙으로 내가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도함을 받는 것은 내 기도가 아니고 주님의 기도죠. 그런데 주님의 기도로 인하여 내가 인도받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기도로 우리가 구원받아요. 그런데 우리 속의 내가 돔배기로 포함이 돼 있어요. 그래서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고 우리의 자리에요. “하늘에 계신 우리”우리의 자리라고요. 예수님이 만든 것은 우리를 만들었지 나를 만든 게 아닙니다.

그래서 마지막 계명이 사랑인데 사랑은 누가 있어야 돼요? 사랑은 일단 첫 번째는 대상이 있어야 돼요. 사랑할 대상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는 사랑은 그 대상이 둥글게, 둥글게, 이미 우리라는 걸로 한정돼 있어야 돼요. 마귀를 사랑하면 안 되잖아요. 지옥 갈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되죠. 사랑하란 말은 우리를 위해서 니가 있다. 이 말 이예요. 쉽게 말하면. 너를 위해서 저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고 저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있는데 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고 저 사람이라고 저렇게 만든 우리라고 만든 분을 위해서 우리가 있는 겁니다. 뭐든지 다 바꾸려고 하니까 참 강의가 어려워져요. 다 바꿔야 돼요. 다 바꿔야 돼요.

착해서 구원받는다. 주여 이 정도 착하면 천국 가겠죠. 율법은 그걸 완전히, 언더 스킨이란 영화도 있지만, 피부를 뜯어내 버려요. 피부를 뜯어내게 되면 괴물이 다 나오죠. 무화과나무 떼버리고 가죽 옷으로 그걸 덮어버려요. 왜, 우리의 피부는 죄가 밀어내서 표면으로 밀어낸 죄기 때문에 우리의 외면도 내면과 동일하게 죄 모양새입니다. 죄의 구체화에요. 이걸 뜯어내고 죄가 나오는 거기다 주님께서는 가죽 옷을 탑재를 시켜버려요. 탑재를 시키면 죄가 이기겠느냐, 주의 의가 이기겠느냐. 이 문제가 남아있거든요.

그런데 죄가 더한 곳에 뭐가 더 있습니까? 로마서 5장에. 은혜가 넘치죠. 그 구절 기억나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죠. 너는 지켜봐라, 내 은혜가 센지, 니 죄가 센지, 니는 지켜봐라 말이죠. 보면 은혜가 이겨요. 은혜가 이기면 신자고 은혜가 질 때가 있어요. 은혜가 안 찾아오니까 자기의 윤리 도덕으로 자기의 의로움으로 자기가 열심히 교회 충성한 걸로 지킨다면 그건 백전백패입니다. 못 이깁니다.

율법을 더한 것이 죄를 더하게 한 겁니다. 왜, 율법 1차적으로 보내고 율법 따라서 율법을 이루듯 십자가 은혜를 하게 되면 율법으로 완전히 박살내 놓고 모든 의를 다 빠개죠. 망치 가지고 마늘 쪼개듯이 다 빠게 놓고 이제는 죄밖에 없죠. 거기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버립니다. 그러면 바짝 마른 뼈가 하나님의 군대로 일방적으로 살아나요.

이번 수련회할 때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뼈 속에 숨어서 마른 뼈도 아니면서 뼈 인척 하면서 숨어서 엘리야하고 이야기하는 거 다 들어서 ‘이 뼈들이 어떻겠느냐’지는 ‘뭐라 하시노?’뭐라 하는지 다 듣고 있다가 “자, 이 뼈들이 살리라”한다면 천사가 와서 뼈들을 살리는데 ‘오! 뭐 이런 가짜가 있나’

우리는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이미 물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에 전에 우리가 어디 빠졌나를 제대로 알죠. 물에서 축축하게 빠져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전에 물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렇지 않으면 몰라요. 제일 나쁜 인간이 바르게 살아서 행여 주어지는 저주를 인생 내 망가짐을 커버하려는 이 사고방식은 가장 극단적으로 복음과 정 대치가 되는 그냥 가장 지옥 적인 모습 이예요. 행동 똑바로 하게 되면 설마 벌은 안 받겠지, 가장 악마적인 모습 이예요. 악마의 극단, 죄의 극단이 그겁니다. ‘그래 좀 절제해야지, 절제해야 돼, 그래야 내가 다시는 그런 일 안 생기지.’무심코 내뱉는 이 이야긴데 너무나 복음적이 아니에요.

그럼 복음적인 발언은 뭐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내 행함이 무슨 의미가 있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내 행함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던 간에 그 행위 자체가 악한 짓해도 의미 없고 좀 착한 일해도, 뭐 길거리에서 고정적으로 도와줘도 의미 없어요. 바캉스 가도 의미 없고 안 가도 의미 없어요. 어차피 봄 지나면 가을되는데. 시가집 간다고 해서 의미 없고 안 가도 의미 없고 모든 게 의미가 없어요.

왜 없느냐, 의미 있는 게 따로 탑재돼 있기 때문에 그 의미 있는 것에 내 의미 있는 행위가 섞이면 안 돼요. 절대로 섞일 수 없어요. 100% 은혜가 돼야 되는데 왜 내 것이 씨잘데 없이 내 행함이 왜 거기 끼어듭니까? 그거는 분명히 마귀가 그렇게 우리를 만들어요. 나쁜 짓하면 ‘얼레리 꼴레리 이번 주에 너 죽었다. 죽었다고 너 오늘 각오해라. 이런 나쁜 짓을 해놓고 아마 화요일 쯤 돼서 벌 받을 거야. 아니면 수요일 쯤 벌 받을 거야. 목요일 날 속도 걸려서 한 5만 원 나올 것이고, 금요일 날 남편이 회사에서 잘못해서 한 2천만 원 물어 줄 거고, 이 말이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보고 부탁하는 것은 본인이 본인에게 벌주지 말라는 거예요. 벌주지 말고 제발 본인이 본인보고 협박하지 마세요. 이게 되게 겸손한 거 아닙니다. 겸손을 빙자한 마귀, 귀신 열댓 마리의 수작 이예요. 본인을 협박하지 마세요.

어젯밤에 잠 잘 잤잖아요. 주의 은혜입니다. 또 햇빛 주시죠. 주의 은혜거든요. 은혜를 공짜로 받고 마치 공짜가 아니고 내가 착해서 은혜 받는 것처럼 왜 그 원천, 그 바탕 자체를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그걸 뒤바꿉니까? 주님의 희생으로 온 은혜를 왜 내 착함으로 그 희생을 가로막습니까? 이게 마귀 짓이지, 이런 짓 외에는 마귀 짓 또 있겠어요? 마귀는 무조건 주님의 희생을 막는 거예요. 착한 일 하지만 착한 일 했다고 여기지만 몇 시간 지나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요. 착한 일은 없습니다. 다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거예요.

자, 지금 어디까지 이야기했느냐 하면 모세 법 이야기합니다. 모세 법 한번 설명할게요. 모세의 법은 뭐냐, 모세의 법이 두 세 사람의 증인 없이는 못 죽인다. 왜 네 사람 안 되고 두 사람인데요? 왜 일곱 명은 안 되고 두 세 사람인데요? 왜 한명이 없이는 안 되고 왜 두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요? 따지지 마. 이게 출발점이 이스라엘이라는 원천과 마지막을 아는 이스라엘이라는 자체가 출발이기 때문에 니가 그렇게 따지고 묻는 것은 질문의 출발이 어디입니까? 다 우리 이스라엘이 아니고 나에서 출발해요. 나에서 출발하니까 ‘왜 두 세 사람인데요? 왜 네 사람은 왜 안 되는데요?’

애 들이 이런 비슷한 질문을 해요. ‘얘야 7일 만에 천지를 창조했다.’ 하니까 손 들고 ‘왜 9일은 안 되는데요? 왜 13일 반은 안 되는데요? 왜 26일 두 시간 반은 왜 안 되는데요?’ ‘니가 지금 따지는 출발점이 어디냐?’ ‘제가 궁금한데요.’그게 잘못이야. 니가.‘ 너라는 자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그게 죄에요.

요번 수련회할 때 어려운 이야기했죠? 죄가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 안에 관장돼 있는 나를 빠져나와서 그 모습으로 내가 바깥에서 주님 안에 있는 나를 다시 관찰할 때 그게 죄라고 했죠. 그게 악이라 했잖아요. 하나님은 나를 다루되 그게 잘 다루느냐 안 다루는지 심사는 내가 따로 나가서 하겠습니다. 그럼 주님 , 나 따로 있고 바깥에 관람하는 나 따로 있고 그렇게 분리하겠다는 말은 이게 마귀한테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나는 거기에 동의 안 합니다. 자기가 ‘난 독자적으로 놀 거예요.’ 독자적인 노선, 이게 죄 짓고 난 뒤에 모든 인간의 공통점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같이 모여서 어떤 건전한 사업을 한다? 일 안 됩니다. 결국은 마지막에는 자기가 얼마나 희생하고 얼마나 공로, 자기 공적 내세우면서 갈라지게 돼 있습니다. 부부사이도 좋다가도 나중에 이혼할 때는 문제가 돈 문제로 끝나잖아요. 니가 얼마 벌었다고. 위자료 내라 하면 니가 살림하는 여자가 무슨 돈을, 무슨 위자료가 있느냐, 천만 원 먹고 떨어져라. 돈은 내가 벌었는데 니가 무슨 돈을. 재판 걸면 주부도 일단은 반은 챙기고 반에서 혹시 아르바이트 한 거 있으면 또 챙겨주고, 간통죄는 없지만 살림은 거덜 나요.

모세의 법 할 때 ‘나 그 법에 저촉 안 돼. 나 그 법 인정 안 합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어떻게 됩니까? 소멸하는 맹렬한 불에 죽게 돼 있어요. ‘니가 모세의 법을 폐했지, 나 두 세 사람 필요 없습니다. 나 그 따위 법 안 합니다.’ 이러면 소멸하는 맹렬한 불에 벌 받게 돼 있어요. 왜 그러냐고 묻지 마세요. 돔배기가 어디 감히, 고기도 아닌 것이 중간에 네모진 것만 달랑한 게 어디 머리 부분, 꼬리부분 뭐 안다고, 지가 뭐 안다고, 중간만 알아서 뭐 안다고, ‘난 안 합니다. 난 이런 법은 못 지키겠습니다.’“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시작과 끝을 갖고 계시는 분이 두 세 증인 같으면 두 세 증인 해야 돼요. 뭐 네 명 다섯 명, 한명 필요 없어요. 두 세 증인이어야 돼요. 이게 모세 법이예요. 이제 이해되시겠습니까?

어떤 법이 주어질 때 그 취지가 뭐냐, 너 자리에서 나오는 것은 다 엉터리고, 말씀의 자리로부터 다시 가서 거기서부터 다시 새 출발하라. 이게 바로 법을 주신 이유입니다. ‘한번 따져서 믿어볼까?’이러지 마세요. 우리는 따질 권한이 없어요. 우리는 따져봤자 사적인 욕구와 욕망에서 따지기 때문에 그렇게 따져서 예수 믿겠다는 그 예수는 완벽한 가짜입니다.

흔히 저한테도 옛날에 그런 사람이 있는데 ‘나를 ale게 해봐라. 믿으면 구원받겠는데 그러니까 당신 목사니까 나를 믿게 해봐라.’ 니가 뭔데 내가 믿게 해, 니가 뭔데.‘ 그 사람이 모르는 게 뭐냐 내가 무슨 자격으로 구원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니가 스스로 물어봐라. 니가 뭔데 구원될 자격이 있죠?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내가 가치 있다는 것을 내가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증명 못해요. 내가 가치 있는 걸 증명 못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증명도 안 되는 짓을 왜 ’난 가치 있다. 난 살아야 돼.‘ 왜 자꾸 그런 말이 나오죠? 분명히 마귀가 그렇게 부추긴 거예요. 모든 시작은 너로부터, 왜, 너는 소중하니까.

그러면 그렇게 말한 당신은 소중하지 않습니까? 저한테 물으면 내가 소중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소중하다. 그 우리가 누군데요? 안 가르쳐줘.ㅎ 우리가 소중하죠. 그럼 우리는 1인칭 복수니까 영어로 WE, 우리를 대표하는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이란 한분이 다양성을 생산했어요. 머리는 하나요, 몸은 여럿이고, 그래서 수련회 때 제가 모가지를 자르라 했죠. 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모가지를 왜 위로부터 왜 자르라 했습니까? 여기에 되도 않은 나만을 위한 눈, 나만을 위한 코, 나만을 위한 귀가 있기 때문에 이 얼굴을 잘라버리고 여기다 뭘 해야 되느냐 하면 십자가 가지고 여기 꽂아야 돼요. 얼굴에 십자가를 꽂으면 원피스 입으면 흉측한 모양 되겠죠.

요걸 머리 되시는 주님, 우리는 몸 지체, 합해서 교회, 다른 말로 쉽게 하면 우리, 요한복음에 의하면 주님께서 하신 너희, 이제는 나의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가 된다. 그때 처음 이예요. 예수님 죽고 난 뒤에 부활하고 난 뒤에 처음 이예요. 그전까지는 전부 다 이건 나로부터 출발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이는 내가 머리가 되는 중심의 집단을 말하죠.

주님 부활하고 난 뒤에 주님의 집단이 생겼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은 부활했습니까? 부활 안 했습니까? 부활 안 했죠. 닭 쫓던 개 돼 버렸죠. 주님이 지금 뭐라는데? 뭐라는 거야? 우리 여기 있잖아요? 너 아니고 내가 만든 우리 따로 있어. 저희, 여기 12제자 있잖아요. 아니라니까. 너희는 아니야, 너희는 너희들끼리 우리 말고, 내 중심으로 된 우리, 내가 부활되게 되면 따로 만들어 놓는다니까. 그때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그때는 우리 단체에 합당한 계명이 한 계명밖에 없어요. 이제 마지막 계명이니 서로 사랑하라. 어디 안에서? 네가 상대를 사랑하되 어느 범위 안에서? 정해 놓은 숫자의 우리 범위 안에서. 이제 이해되시겠습니까?

그걸 부활되지도 못한 우리가 지키려 하니까 이건 나에서부터 우리가 나왔으니까 이거는 그야말로 사랑이 아니고 그걸 무슨 관계냐 하면 이게 사랑이 아니고 애증의 관계라 하는 거예요. 사랑 + 증오가 같이 있어요. 동전 보면 같이 있어요. 여기 숫자 500 있잖아요. 여러분 500주니까 500 받은 줄 알아요? 숫자 뒤에다 미움을 써야 돼요. 주니까 자기는 사랑보고 받았는데 뒤에 보니까 뭐가 있어요? 만약에 내 사랑에 제대로 대우 못하면 니는 나의 최고의 미움의 대상이 될 거야.

압살롬이 자기 누이동생을 그렇게 미칠 듯이 사랑해 놓고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한번 범해놓고는 미칠 듯이 죽여 버리는 거예요. ‘가, 가란 말이야.’ 낙엽 막 던지면서 ‘니가 내 인생에 꼬이고 되는 일이 없어. 가, 가란 말이야.’ 낙엽 들고, 우리는 돈 들고 막 던지면 좋겠는데, 돈은 없으니까 낙엽 들고 ‘가, 가, 가란 말이야. 미워 주겠어.’ 남자는 다 그래.

아유, 결혼을 하기 전에는 뭐 당신은 손에 물 안 묻혀줄게, 해서 고무장갑만 사주는 줄 알았지, 그리고는 결혼해놓고는 여자는 결혼하고 나면 거머리처럼 달라 붙잡아요. 세퍼트가 달리 세퍼트입니까? 한번 물으면 놓지 않으니까 세퍼트죠. 달라붙으니까 이게 귀찮은 것이라. 남자는 충동이고 여자는 거머리고. 괴물과 거머리의 만남, 같이 산다는 게 신기해요. 개 보기에 미안해요. 개보다 더 못해. 그래서 여자가 달라붙다가 애 낳기만 해봐. 애 딱 낳고 난 뒤에는 이제는 가벌 관계가 역전돼 버렸어요. ‘돈 벌어와. 돈 벌어와, 니 새끼 책임져.’지는 지 새끼하고 맨날 같이 먹고 자서 너무 먹어서, 애 먹을 때 같이 먹고 애 잘 때 같이 자다 보니까 퍼져 있고, 남편 보고 ‘돈 벌어와. 지 자식 책임져. 돈 벌어와.’ 남자는 그나마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서 완전히 점점 더 아내 앞에서는 작아져요. CF에 그런 거 있잖아요. 더워서 에어컨 좀 틀려고 하니까 ‘꺼라.’

참 우리가 먼저에요. 시작과 끝을 아시는 분이 먼저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개인에게 주는 겁니다. 그러면 개인은 원천을 모르고 돔배기처럼 자기밖에 모르니까 여기서 강한 반발이 일어나죠. 반발에 대한 벌칙 조항이 율법에 있어요. 만약에 이 모세 법을 폐하는 자는 죽여버린다. 그것도 어떤 벌로? 맹렬한 불로써. 요 법을 누구한테 준다 했습니까? 처음에 강의할 때, 이스라엘에게 줬죠. 안 잊어버리셨네요. 감사합니다. 요걸 이스라엘에게만 줬죠. 이스라엘에게만 줬다가 이스라엘을 누가 잡아먹죠? 바벨론 제국이 마지막에 잡아먹으면서 이스라엘 바운더리가 깨지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전 세계 디아스파라 흩어져버리죠. 유랑민이 돼 버렸잖아요.

그렇게 되면서 다니엘은 거기 포로 잡혀 가서 예언을 하죠. 한번 바벨론은 영원한 바벨론이다. 그게 메대, 바사가 되던 헬라 마케도니아가 되던 로마가 되던 그건 전부 다 한 신상 안에 있는 부속 이예요. 머리가 바벨론이면 발도 바벨론 이예요. 그게 모양이 바뀌었다 뿐이지 이게 로마가 되던 필리핀이 되던 이게 나이지리아가 되던 관계없어요. 이게 러시아가 되던 북한이 되던 중국이 되던 관계없어요. 전부 다 바벨론 이예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전부 다 큰 성 바벨론, 하나의 음녀, 끝났어요. 그게 왜냐 하면 어느 관점이냐, 우리 관점이 아니고 니 나라 내 나라 있는 게 아닙니다. 홀로 아리랑이 아니에요. 하나의 관점 이예요.

하나밖에 없는 그 이스라엘 관점, 이스라엘 관점에서 이스라엘이 망해버리면 참, 중요한 대목입니다. 어렵더라도 좀 참으세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스라엘에게 주고 이방 나라에는 안 줬죠. 그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 계시를 받은 한 나라를 주께서 포기 안 해요. 끝까지 가요. 이 한 나라를 바벨론이 잡아먹죠. 잡아먹으면 바벨론 나라에 이스라엘이 분산돼서 흩어지잖아요. 그러면 이스라엘만 이스라엘 나라에요. 다른 나라는 나라 아니에요.

그러면 속에 있는 분산된 이스라엘 나라에게 약속을 줘버리면 그 이스라엘에 준 약속이 안에서 자생적으로 진짜 한 나라 이스라엘을 만들어버려요. 그러면 바깥에 있는 나라가 한 나라를 둘러쌌기 때문에, 제 논리가 한 나라가 이스라엘을 둘러싸잖아요. 우리는 220국 나라라 하잖아요. 유엔에 가입된 나라가. 월드컵에 가입된 나라가 220나라라도 하나님 관점은 하나의 이스라엘을 포장한 하나의 단일체가 되는 거예요. 요거 이해되십니까?

다니엘에 보면 바벨론이 신상이 몇 개에요? 달랑 하나에요. 나라가 바뀌었다 해서 모양새가 바뀐 거지 맨 그 발바닥에 있는 인자의 나라 올 때까지 그 발바닥은 누구 발바닥 이예요? 그 금신상의 발바닥 이예요. 같은 한 통속이라니까요. 그게 이스라엘이 하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둘러싼 그 나라도 두 개가 돼서는 안 되고 오직 한 나라가 돼야 되거든요. 한 나라가 되고 난 뒤에 이 한 나라에 뭐가 있느냐? 하나님의 약속은 누구만 줬다? 이스라엘에게 준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가 약속을 잃어 버리면 진짜 이스라엘을 만들어 버리면 바깥에 있는 가짜부터 해서 모든 바벨론 나라가 이게 퍼져 버리면 이쪽에서 뭐가 생깁니까? 균열을 일으켜요.

새로운 손톱 나오면 바깥의 손톱은 어떻게 됩니까? 이게 아주 흉측하게 떨어져 버리죠. 새살이 나오면 바깥의 살은 그냥 떨어진 게 아니고 균열을 일으켜서 아주 흉측하게 떨어지잖아요. 그 흉측한 나라에 지금 봉사하고 있습니다. 홀로 아리랑. 그 흉측한 나라가 지금 독립한지 70년 됐다는 거예요. 그 흉측한 나라에. 갈라질 나라에. 찢어질 나라에. 부서질 나라에 전체가 하나의 계시 준 이쪽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짐승의 나라에요. 음녀에요. 왜, 진짜 그리스도 신부는 새 언약에 의한 그리스도 교회만 신부이기 때문에, 이 신부 아닌 것이 가짜 신부, 음녀에요.

바벨론 음녀라는 개념 잡아내는데 그렇게 복잡해요. 이게 굉장히 어려워요. 이 무슨 간음죄 했나? 간음죄라는 그 간음죄는 다른 나라한테 주지 않았습니다. 어려워서 다시 하겠습니다. 십계명의 간음죄는 다른 나라 주지 않았다. 누구한테 줬다? 이스라엘에 줬다. 따라서 간음죄냐 아니냐는 누가 결정한다? 이스라엘이 결정하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바알 신을 섬겼다? 그러면 간음죄가 성립됩니까? 안 됩니까? 간음죄가 성립되죠. 에스겔, 예레미야, 이사야에 나오죠.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하고 할 때는 간음죄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 하는 것은 간음죄가 성립이 안 돼요. 왜, 그 나라는 애초부터 뭐가 없다? 율법이 없어요. 모세 율법이 없다니까. 지금 히브리서 10장 28절합니다. 지금 모세 율법이 없어요. 간음죄가 성립이 안 돼요. 율법이 없는 데는 뭐가 성립이 안 된다? 죄가 성립이 안 돼요. 로마서 나오는 이야깁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 법이 없는 곳에는 죄가 없는 거예요. 달리 이야기합시다. 법이 있는 곳에는 죄가 있죠. 이걸 사람들이 오해해서 법 지키면 되지 않겠느냐, 이건 지금 법 준 취지를 완전히 오해, 법을 줬잖아요. 그러면 무조건 죄가 있어야 돼요. 잘할게요. 하나님께 ‘잘할게요.’ 라는 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니까요.

법은 죄를 만들기 위해서 준 거예요. 아휴, 이런 인식 발상을 언제 바꿀지 모르겠어요. ‘하나님 저 잘못됐습니다.’잘못됐다는 그 말이 건방져요. 언제는 잘못 안 했어요? 밤에 잠자는 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왜 새삼스럽게 잘못됐어요? 아휴, 내가 새삼스럽게 잘못해서 요번 주에 벌 받을 거 싶다. 그 사고방식이 잘못된 거예요.

가방 있죠? 2분 남았는데 숨 쉬는 것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숨 쉬는 것도 잘못된 거예요. 알레르기 비염 잘못된 거 아니에요? 다 잘못된 거예요. 참 우리가 히브리서 10장 보면서 목사님 설명해 주세요. 하는데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이거 알레르기 비염 약입니다. 이거 아침, 저녁으로 한번 뿌려버리면 한 달 전부터 뿌리면 그 다음 한 달 후부터 비염이 없어져요. 5년 전부터 사용해서 설교하는데 지장 없어요. 요거 의사의 처방 있어야 돼요. 지금 이건 딴 이야기고.

하여튼 간에 이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밖에 없어요. 왜냐,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거밖에 없는데 중간에 많은 220개국 있더라도 한 나라에요. 음녀가 돼요. 법이 이쪽에서 음녀라 하면 음녀인 줄 알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교회 만들고 ‘한번 법 지켜서 착하게 살아 천당 가볼까?’우리는 천국은 관계없는 데에요. 우리가 가려면 이렇게 가면 안 되고 이스라엘 들어와서야 돼요. 이스라엘에 들어오게 되면 여기 ‘다 이루었다’ 언약 십자가 있잖아요. 여기 들어오면 우리가 새 이스라엘 되게 되면 그 다음에 뭘 아느냐, 이방인들이 사고방식이, 이방인들이 죄를 용서받는 게 아니고 이방인들의 사고방식을 용서받아요. 사고방식을!

이방인들이 사고방식은 하나입니까? 사적 이예요? 사적이죠. 왜냐 하면 마귀가 그렇게 만들어놨거든요. ‘니가 잘해서 구원받으면 니만 홀로 구원받는다.’너만 받는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뭐라 했습니까? 우리거든요. 우리! 우리로부터 출발해야 된 건데 모든 인간들은 누구부터 출발하느냐 하면 나로부터 출발하잖아요. 그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천상천하유아독존, 이거 이방인 사고방식, 불교잖아요.

요러한 율법의 정신을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이게 전체로 확산이 되고 말았어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했으니까. 확산되고 난 뒤에 하는 말이 뭐냐 하면 28절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자는 그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크겠느냐” 하죠. 이 말은 신약 시대에요. 다시 말해서 구약의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국가에 줬던 그 법이 이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망하게 함으로써 이 법이 이제는 보편적인 전체 지구인에게 다 퍼졌다. 그때는 모세가 기준이었는데 지금은 누가 기준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기준이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범위의 확대!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안양20150814a-히10장28절(중간 부분) - 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15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5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