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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 66강 채권 채무 (마 18:23-35)자유게시판마태복음

대전- 66강 채권 채무 (마 18:23-35)

이름 : 주향(IP:222.116.177.93)

채권 채무 (마 18:23-35)대전- 66강

이근호

2015년7월28일 본문말씀: 마태복음18장 23-35

(18: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18: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18: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가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18: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18: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이르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18: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18: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 하여 주었거늘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 이 하시리라

18장 아까 첫째 시간에 사무엘상을 하면서 주님은 특별대우란 없다고 그랬지요? 특별대우는 없습니다. 똑같은 원칙을 적용시키지요! 무차별성이다. 똑같은 원칙을 적용시키기 때문에 그 원칙을 공통적으로 고백이 되는 형태가 되는 겁니다. 무차별적으로 다룬다는것에 섭섭해 하지 말고 똑같은 고백을 한다는 것에 신기함과 놀라움에 감사해야 되지요! 그런데 12제자 가운데 베드로가 꼭 나섭니다.

수제자다운 면모를 보이겠다고 나서다가 꿀밤 맞고 얻어맞지요! 그중에 하나가 몇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이것을 지난 시간에 했듯이 인간은 누구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용서할 자격이 없습니다. 용서할 자격도 없는데 왜 그리 이 세상에서 용서가 빈번한지! 100%가짜 입니다. 전부다 가짜이고, 미끼이고 사탄의 유혹입니다.

내가 너를 용서해줄테니까 앞으로 내말 잘 들어라! 이것이 ‘갑’질 하고 있는 것니다. 용서를 빌미로 갑질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흔히 뭐라고 하냐 하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을 하지요. 내가 너를 사랑하잖아! 이거 상당히 위험해요! 사랑이 굉장히 위험스러워요. 사랑은 없어요. 없는 데 사랑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전부 100% 가짜 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사랑 할 수 없어요. 용서가 없으니까 사랑도 없어요.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이 되고 용서가 안 되거든 그건 거래이고 흥정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봐줄테니까 앞으로 너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더라도 너는 내 밑에 꿇어야 돼! 나에게 복종해야 돼! 권력의 모습, 권력에 대한 적용이 되어 버립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용서가 되야 하는데, 그러면 용서가 되려면 뭐가 필요하냐 하면 바로 희생이 필요 하지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금 엄마가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고생하는 것도 희생이 아니냐? 그러면 희생의 사랑이 있네? 용서도 있고 희생이 있으니까 사랑이 있다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니까 그것도 사랑이라고 해주는 게 맞네!라고 여러분은 이야기하고 싶지요? 이 희생은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희생이어야 해요! 우리 인간들이 이야기하는 희생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희생이라 하는 것은 레위기에 보면 제사 이외는 다른 희생이 없습니다. 제사 없는 희생은 없어요. 내가 너를 위해 희생했다! 이건 희생이 아닙니다. 결코 사랑이란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왜? 이유가 있어요. 언약의 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지상에서 희생을 하고 그 희생에 대해서 허락, 제가가 나야되요. (하나님께서) 그래! 희생 내가 받았다라는 허가가 나야 되요. 그래야 희생의 값이 성립됩니다.

희생이라 하는 것은 “나 이렇게 희생을 했습니다”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제가를 받아야 되요. 하나님의 제가를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희생해야 된다는 원칙대로 해야 되요!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되지 그냥 우리가 아낌없이 희생했습니다? 저는 모든 걸 버렸습니다!라고 한다고 하나님께서 봐주는 것이 아니에요. 인간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정말 눈물겹지요? 자기 하나 죽고 살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래가지고서 지옥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왜 그러냐하면 지옥이라든지 천국의 기준이 착하다 성의 없다 바르게 살았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안으면 지옥가요. 예수님이 언약의 완성이기 때문에, 모든 게 언약입니다. 언약대로 돌아 가셨고 예수님이 언약대로 안 돌아가시면 ‘주’가 되지 못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언약에 입각한 분이 주님이시다 이렇게 믿어야지 그냥 예수라는 분이 주었다 이렇게 되면 문제되요.

예수라는 사람이 한두 명이라야지 자기가 지져스라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니까! 가짜 예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언약대로 예수님이 돌아가셔야 되요. 그럼 언약대로 돌아가셨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살아나야 되요. 그러니 이건 부처도 안되고 소크라테스도 안되는 거에요. 공자, 맹자도 안되는 거에요.

지금의 인문학 강좌라는 것이 뭐냐하면 다 마귀 짓이라니까요. 이게 언약이 없어요. 대전 시민대학 강좌도 그렇고 이게 뭐냐 사람들 죽이는 짓, 지옥 보내는 짓이라니까요! 복음이 없어요. 이건 인간들 자기네끼리 인정한거에요. 자기들끼리 한 것이고 하나님의 제가가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제가, 허락은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살아났기 때문에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살아난 분의 영이 그 분의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 성령이거든요!

성령이 임하게 되면 모든 촛점이 어디로 가냐 하면 나는 희생했다, 나는 자식사랑 했다가 아니고 나는 죄인이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내가 했다는 희생, 내가 했다는 모든 것도 죄에 불가하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교회를 짓다가 엎어져 다친 것도 죄다. 교회 짓는 것 자체가 죄이고 교회 다닌 것도 죄고 나에게 어떤 것도 죄가 된다. 이것은 성령 받아야 가능 합니다.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 보면 특별대우란 없습니다. 동일한 원칙을 적용시키기 때문에 그러면 제자들은 뭘 해야 됩니까? 베드로가 까불다 쑥 들어가고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동일한 원칙은 뭡니까? 그것이 오늘 해야 될 23절 부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므로 천국은 에서 천국은~이라고 나올 때는 이렇게 알아야 되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지옥은 으로 반대로 들으면 딱 맞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은 지옥은 기피하고 천국은 좋아하는 바로 이런 성격 때문에 예수님은 살해당하거든요! 따라서 예수님을 살해할만한 이유를 이 세상에서 찾아내는 것, 이것이 성경 해석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어야 했는가? 쉽지요?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싫어하는가? 왜 미워했는가? 돌 들고 죽이라고 하지 않았어도 주의 말씀 전하는 것을 왜 피해버리는가? 볼일이 있어서? 바빠서?

왜 주의 복음이 안 들이는 것, 십자가 복음이 안 들리는 곳으로 왜 숨어 버리는가? 복음을 들으려면 나와야 되는데 멀쩡한 인간도 복음 전하면 전부 동굴 속으로 토굴을 파서라도 다 들어가 버려요. 주일 낮 설교에 박인환의 시 이야기 했잖아요 ‘목마와 숙녀’라 하는 것. 혼자서 술 먹고 혼자서 술병 쓰러뜨리고 혼자서 복음 들으러 나오면 되는데 세상이 더럽다고 그 때가 ‘일제 강점기’거든요. 지식인들의 고뇌

일제시대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주님이 만드셨잖아요. 그것을 모르는 거에요. 민족이 어떠니 뭐 조선인의 해방 조선인의 나라 그들은 이것을 이야기 하지요. 이게 바로 인간들이 기대하는 희망, 곧 천국을 의미 하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천국은 이와 같으니~ 이 말은 이것이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자 입에서 나오는 천국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싫어하는 나라는 이러 하니라는 말로 해석 하시면 딱! 맞아요.

그러면 그 뒤의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입니까? 인간들이 이러이러한 원리와 원칙은 진짜 싫어하지! 이런 투로 쭉 나오는 거에요. 마태20장에 먼저 보면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가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되어 있지요. 그럼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은 어떠하겠어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내용이 나오겠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은 뭐냐하면 일을 많이 하면 하늘나라에 가서 복 많이 받고 일을 적게 하면 복 못 받는 것.

이것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거꾸로 뒤집어 버린다. 제가 지난 주일 낮 설교 끝에 뭐라고 했습니까? 구원은 어떤 구원이라고 했어요? 이유 없는 구원이라 했지요! 이것은 착하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더 놀라운 일은 나쁜 일을 해서 지옥 간다는 게 아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착한 일을 하는 동기 부여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동기 부여가 안되지요? 뭐 악해도 천국 간다며..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악하다고 지옥 가는 건 아니라고 했지 악하다고 천국 가는 것도 아니다란 말이죠!

이유 없는 구원, 아무 이유 없어요. 나중에 정작 이유 없이 가보니까 이유가 있네! 주님의 긍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아까 첫째 시간에 이야기한 게 뭡니까? 내가 어떤 이유를 달려고 할 때는 ‘내가’라는 앞에 주어 자리에 내가 있기 때문에 이유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 주님이 들어가니까 주님에게서만 나오는 이유로 인해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주님에게서만 나온 이유,

그것이 뭐냐하면 “내 마음대로 이다. 왜? 야곱은 천국을 보내고 에서는 지옥 보냅니까? 내 마음대로지 네 마음대로이냐? ”그러시거든요. 내 마음이다. 창조주에게 그런 권한도 권리도 없나? 토기장이에게 그런 권한이 없어요? 있지요! 그것을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이고 그런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을 가고 피서 가듯이 그런 이야기가 안 들리는 곳, 그러면 그런 이야기, 주님의 말씀이 안 들리는 곳엔 자기의 노동의 가치만 피어나겠지요!

그건 자기 노동은 자기 자랑거리가 되니까 18장 다시 봅시다. 23-24절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이만 달란트 빚진자 하나를 데려 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일만 달란트가 도대체 돈이 얼마나 되는 거에요? 수십억이 넘을 걸요? 하여튼 엄청 나게 빚진 사람을 데려 오는데 25절에 뭡니까? 갚을 것이 없는지라~ 자! 여기 까지 한번 봅시다!

천국은 첫째 시간에 이야기 한 것처럼 항상 주어는 주님이라고 하는데 여기선 뭐냐하면 주님이라고 하지 않고 대신 천국은 이라고 한거에요. 주님은 뭐든 것을 해내신다는 방식인데 여기서는 천국은 하고 뒤에다 갚을 것이 없는지라고 하는 거에요. 갚을 것이 없는 인간이도록 일부러 무차별적으로 만들어 버린거에요. 어떤 인간도 이만 했으니까 천국가도 되지요?라는 말을 일체 못하게 만들게 하시는 능력이 찾아오거든 천국이 찾아 왔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도대체 갚을 수 없다. 마태복음 5장 잠시 보겠습니다.

(마5: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라는 말은 지금 인간들이 율법에 포위되어 있지요! 인간 세계인데 율법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율법이 뭐냐 하면 갇혀 있다고 하는 거에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인간들은 본인이 지금 어느 자리에서 살고 있는 지를 그것조차 몰라요. 지옥에 살고 있습니다. 지옥에 살고 있다라는 말은 지옥에 살고 있으면서도 지옥에 사는지를 모르는 거에요. 지옥에서 지금 이건희는 아파서 빌빌거리고 있고 지옥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르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등장했다는 말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뭐가되냐하면 누구하고 계산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간들은 짐작도 못해요.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뭔가 갚을 것 갚아야 하는 이러한 관계를 빚을 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냐하면 햇빛도 그냥 주시고 공기도 주셨는데 만약에 거기에 대해 은혜를 모르게 되면 어떻게 된다? 너는 나중에 지옥 가서도 핑계치 못한다.

결국에 인간들이 나중에 지옥에 가보면 그걸 소급해서 보면 사후에 가보면 그동안 내 노동으로 내가 산 게 아니고 혜택은 실컷 입어 놓고 그 혜택에 대해서 정당한 주에 대한 보답과 영광을 못 돌렸다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입이 열개라도 유구무언 할말이 없습니다. 유교에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부모를 공경해라 부모가 너를 키울 때 얼마나 고생한 줄아나? 맨날 이런 소리를 하지요? 제사 잘 지내라고

그러나 눈에 보이는 부모 공경할 줄은 알아도 하나님을 공경할줄은 모르고 기껏 제사 지내는 식으로 그냥 자기 착함을 가지고 죽으면 어디로 간다? 좋은 데 가는 줄 알고 있어요. 불교도 마찬가지고 다시 한번 정리 합시다. 천국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 왜 예수님이 은혜 주시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아이고! 뭐 믿으면 믿고 아니면 할 수 없고” 이게 아니고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 될 이유는 바로 그전에 이미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에게 율법을 줬기 때문이에요.

호리라도 못 갚으면 지옥 가는 겁니다. 그래서 뭐라하냐하면 그전에 화해해라! 그 전에 사과 할일 있으면 사과하고 회개할거 회개하고 그 전에 정리가 되야 돼요. 만약에 정리가 안되면 심판 날에 끝납니다. 이게 방금 제가 한 말이 목사님! 겁나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실제로 사실입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딱! 한마디 하죠! 죽었다가 부활했습니다. 십자가,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 눈 앞에 보이거든요,

십자가가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가 지옥에 살고 있으면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면 지옥갑니다. 저주 받습니다. 이게 사실인 것을 증명하는 겁니다. 바로 십자가가 부활이 그래서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 두 가지를 알아야 되요. 첫 번째는 엄청난 행운을 잡았다는 사실, 이건 돈 주고 얻은 게 아니잖아요. 로또 1등자리 천 장 하고도 바꾸지 마세요! 이건 로또하고 바꿀 문제가 아닙니다.

두번 째는 엄청난 사명을 받았다는 사실, 이것은 어떠한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이, 성령이 주신 이 사명은 어떤 경우라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나는 못 합니다”라는 입장이 못되요. 이것은 목사만 전도 하는 게 아니에요. 주께서 주변에 마주치게 하는 사람에게만 엮여진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파하라고 성령을 주셔서 주의 증인되게 하려는 겁니다.

그러면 증인되는 방법은 뭐냐 딱 하나밖에 없어요. 그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해야 되요. 모르는 이야기가 뭐냐하면 나는 무조건 죄인이다. 밥을 먹어도 죄인이고 다 죄인이다. 이이야기 외에는 달리 할 얘기가 없어요. “예수님은 있잖아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했잖아! 나도 그건 알거든!” 이렇게 해도 복음이건 전도이건 아무것도 안되요. 꼭 나로 하여금 내가 죄인됨을 들추어냅니다.

전도를 누가 하냐하면 주님이 하시기 때문에 고넬료 전도하기 전에 베드로가 어떻게 됐습니까? 베드로가 지독히도 주의 말을 안 듣는 티가 났지요! 보자기가 세번 내려왔잖아요! “먹어라! 안 먹습니다.” 또 올라가고 “먹어라! 안 먹습니다.” 또 올라가고 “먹어라! 안 먹습니다.” 또 올라가고 지독히도 말 안 듣는거에요. 그리고 난 뒤에 고넬료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럼 전도는 누가 하는 겁니까?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거기에서 나오는 결론은 간단합니다. 막 사는 게 전도이다. 왜 막 삶으로써 본인이 뭐가 됩니까? 죄인이 되지요. 죄인 되거든요 죄인 되게 하시는 그 방법이 전도하는 방법이에요. 그래서 선교사가 되거든 막 사세요. 전도를 가장 방해하는 것이 무슨 방법이야 하면 착하게 사는 것, 그게 가장 전도를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앞에 반드시 뭐가 붙느냐하면 나는 착한데 누가 했다? 내가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전도를 방해하는 거에요.

내가 착하게 되면 반드시 뒤에 나오는 게 있어요. 뭐가 나오냐 하면 원망이 나와요.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착한데 왜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안 됩니까? 왜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이렇게 나오지요. 하나님의 원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게 하나님의 원수에요. 범사에 감사 하는 것이 아니고 예를 들면 요한3서에 나오지요.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누가요? 앞에 누가 붙어요? 내가 붙지요! 내가 붙으니깐 이건 엉터리 해석이 되는 거에요. 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 죄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씀이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해당되면 나는 어떻게 됩니까? 화가 나지요? 그런데 주의 말씀은 하나도 잘못된 게 없습니다. 왜 이 말씀대로 너 말고 저 사람에게 주었기 때문에 주의 말씀은 이걸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고 지금도 이렇게 실시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지금도 이 순간에 이 말씀대로 하고 있어요.

날씨는 더워도 그런데 사람들은 나는 왜 안 됩니까? 이러면 무차별성이 아니고 뭘 원해요? 특별대우를 원하지요? 그러면 특별대우를 한다고 하면 특별대우하는 담당자가 누구이다? 내가 이렇게 되게 된다는 거지요! 그럼 이것은 뭡니까? 천국을 훼방하는 거에요. 가로 막는 겁니다. 천국은 차별성이 있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된다고 했지요! 천국은 오히려 내가 죄인 되는 거지요.

그래서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된다라고 할때 마치 내가 이래야 되는 것처럼 느끼겠지요? 그게 바로 막 사는 거에요. “그래! 남보다 먼저 이렇게 돼야지!”라고 할 때 이미 우리는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죄가 노출된 겁니다. 그렇게 죄가 노출될 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이 잘 된거에요. 말씀대로 잘 된거에요. 아! 마을 뒤에 있는 큰 바위 얼굴처럼 잘생긴 누가 올텐데.. 누가 와야 우리 마을이 잘 될텐데 ..

누가 오지? 누가 오지하는데 그게 누구에요? 그렇게 기다린 본인이 나이 들어 늙고 보니 그게 큰 바위 얼굴이었어요. 바로 소망했던 것이 본인인것을 주의 말씀대로 잘되야 될텐데 그게 바로 본인이 잘되고 이었는데 자기가 어떤 다른 기준을 제시하면 곤란하지요. 마태복음 5장에서 언급했듯이 호리라도 해결하지 못하면 못나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18장 다시 봅시다. 보면 천국은 뭐라고 한다? 천국은 딱 드러서게 되면 뭐라 합니까? 천국은 법대로 하잖아요! 그 앞에서 우리는 뭐다? 갚을 것이 없다. 자! 갚을 것이 없으니까 그 다음에 나오는 결론은 간단해요. 이제는 넣어 주던지 안 넣어 주던지 주인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이것이 정답입니다. 왜? 천국은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고백, 그걸 다른 말로 하면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엎드리는.

누가 복음에서 성전에 오실 때 죄인이 엎드릴 때 네가 바로 의인이라고 판정해 주지요! 그래야 어떻게든 천국에서 뭘 지우느냐? 나의 주체를 지우개로 지워버리는 작용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겁니다. 니가 한 것 아니다. 인생, 대전 시장 물러간 것도 니가 대모해서 그런 것 아니다. 계속해서 지워 버리는거에요. 세월호에 애 빠진 것, 니가 잘못해서 빠진 게 아니야! 니가 못해서 빠진 게 아니고 잘해서 빠진 것도 아니야!

그리고 니가 세월호에 안 타서 산 것도 아니고 망대 무너질 때 그 때 마침 피했다고 해서 니가 산 것이 산 게 아니야! 내가 살았다는 것을 너의 현실의 원리로 삼지 마라!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현실의 원칙으로 인정하지 마라! 현실의 원칙은 말씀이지 니가 살고 죽는 것이 영향력 있는 것이 있는 게 아니야! 휴가 가려는데 비가 왔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멋진 주님이지요! 좋은 정도가 아니라 왜 어떻게 이렇게 잘 아시고 내 뜻대로 안해 주시는지!

기도 응답 그대로에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그래서 휴가 갈 때 비가 와서 휴가 못가도록 해 주옵소서! 왜 말짱하게 날씨 좋으면 주여! 오늘도 내 뜻대로 안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장난치다가 비가 올 수도 있어요! 네 속마음을 내가 다 안다!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하지요! 어쨌든 이랬든 저랬든 간에 우리는 갚을 것이 없습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걸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채권자와 채무관계에 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그냥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만 알았잖아요. 그런데 채권자와 채무관계에 있는, 이게 바로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진짜 하나님의 뜻이고 창조주와 피조물은 모든 이방민족이 알고 있는 우상적인 신이지요. 이걸 존재적 신이라고 하는데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 했을 것이다. 이것은 복음이나 언약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요. 인간이면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으니까 이런 것은 잘못된거지요.

채무와 채권관계가 진짜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라고 정립이 된다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채무를 갚을 길이 없는 자가 되게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법대로 채무를 못 해결했으니까 율법에 의하면 못 갚을 사람에게는 징벌과 저주받는 것이 합당하지요. 돈도 못 갚는 주제에 뭘 까불어요! 무슨 행복을 바래요! 행복 같은 소리하고 있네! 돈도 못 갚는 주제에 무슨 행복을 운운해요?

에덴동산에서 쫒아 냈을 때 에덴동산은 아담이 잘못한 것과 관계없이 떨어진 그 자리에 뭐가 피어납니까? 저주가 피어나지요? 그러니까 나쁜 짓 할 때만 저주 받는 것이 아니고 그 놓여진 환경 자체가 저주를 유발시키는 환경에 빠진거에요. 그리고 저주의 일부가 아담의 육신의 자연적인 성격으로 성질로써 속성으로써 피어납니다. 내 몸 바깥에서 저주가 피어나고 몸에도 저주가 피어나고 모든 게 다 저주에요.

저주니까 힘들잖아요. 힘들어서 투쟁을 하니까 이것도 저주네 산다고 애쓰는 게 전부 저주 잖아요! 전에 이야기 했듯이 아이들은 부모가 벌어준 돈으로 살기 때문에 그 아이 자체가 동화의 세계, 천국 같은 세계에서 사는 거 같지만 아이가 커서 직접 돈을 벌게 되면 동화의 세계도 날아가 버리고 그 자체가 저주의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그동안 배웠던 모든 학식과 덕목과 기술과 모든 기능은 오직 사기 치는데 모든 것을 집약시켜요.

그래서 성인들이 하는 모든 말은 입만 떼면 사시입니다. 선한 게 없어요. 사기를 치면서도 핑계하기를 밥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수 없다. 너는 사기 안치나? 너가 안치면 나라도 쳐야지 사기는 사기로 대항해야지 어쩔수 없어 이렇게 되는 거에요. 물론 고급 사기와 저급 사기가 차이가 나지만 그것은 차이일 뿐이고 전부다 사기가 되는 겁니다. 저주 받은 세계에서 힘들지요!

그런데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이 저주에 뛰어 드셨어요. 이렇게 해서 다른 세계, 이 저주 바깥의 신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뛰어들 때 아버지도 같이 뛰어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뛰어들 때 아버지도 함께 뛰어 들었기 때문에 아버지, 아들 ,성령 다 들어 왔으면 이 저주 바깥의 다른 세계라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종교라 하는 것은 사탄의 망상입니다. 사탄이 심어준 허무의 세계입니다.

주님 있는 곳이 천국 입니다. 다른 곳은 없습니다. 천국이 없습니다. 이 발상은 정말 중요한 발상인데 신학자들도 모르는,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예수님 말고 아버지 따로 있고 성령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삼위일체라는 것, 그걸 이야기해요. 그렇지 안습니다. 비록 예수님 안에 아버지 있고 성령이 있더라도 우리의 인식에 있어서 예수님만 있는 거에요.

예수 믿을 때 그때 아버지도 있고 성령 다 있어요. 하지만 예수님만 있는 거에요. 예를들어 너희집이 어디냐? 우리 집은 어디이다 이렇게만 하면 되지 우리 집에 개도 있는데 알려 줄까?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말이죠. 지네 집안에 개 있겠죠! 하지만 묻는 말이 너희 집이 어디야고 물었는데 우리 집에 개가 있는데 예쁘다라는 건 쓸대없는 이야기에요. 천국이 어디 있냐고 묻는데 아버지 계시고 성령도 계시고 이럴 필요 없다니까요!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라니까요. 예수님만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버지나 성령은 이것이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아주 수상하기 짝이 없어요. 이건 분명히 예수님 안 믿는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 임금이 어떤 임금이냐 이것은 호리라도 다 받는 어디에 나오냐 하면 34절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몽땅 호리라도 만약에 없으면요 없는 만큼 혼이 나야되요.

아까 23절에서 갑자기 34절로 건너 뛰어 왔지요? 그 중간에 내용이 없다고 생각해 봅시다. 없다라고 생각하자는 것에 대해서 이의 있습니까? 불만스럽습니까? 그러면 안 되지요! 주인이 마땅히 이렇게 할 권리 있지요? 그게 천국입니다. 천국은 한 푼이라도 낼게 없으면 합당한 저주를 내리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게 천국이에요. 천국은 그렇게 시작 되야 되요. 그다음에 34절에서 34절까지 중간에 내용이 하나도 없다고 치고 그 다음에 24절 에서 34절의 내용을 주는 것을 우리가 요구하면 안돼요!

아~ 오늘 중요한 것 이야기 하는데 그것을 요구하면 안돼요! 에잇! 그게 뭐가 있을꺼야! 요구하면 안된다니까요! 뭐가 있을꺼야! 어딜 넘봐! 넘보면 안되요! 우리의 입장이 어떤 입장입니까? 못 갚아요, 못 갚는 자에겐 어떻게 한다? 지옥가야 해요! 끝났어요! 그 다음24절 33절까지 내용은 주님 쪽에서 어떻게 하실 문제이지 우리가 관여해서는 안될 문제에요.“내 자식 강아지인데 우리 강아지도 안 봐줘요.

23절 이후의 내용에 관해서는 그것은 일방적이에요. 주님께서 줘도 되고 안 줘도 그만인 일방적인 것이지 우리가 거기에 관여하면 안되요. 주님은 사랑이시니까 그 정도는 요구해도 되지 안겠나요? 아니~요! 그렇게 요구할 입장이 못됩니다. 왜 그래야 되는가? 그래야 천국 갔을 때 천국이 너무 좋아서 이런 소리를 해야되요. 이럴수 없어 이건 말이 안되는 소리야! 나 같은 인간이 천국에 오다니 이건 말이 안돼 이렇게 돼야 됩니다.

오늘 두번 째 강의 제목은 말도 안돼라고 할까! 특별대우 요구할 권리 없디요! 그런데 주님이 주체가 됐을 경우에 우리는 특별대우를 받는 사람이 되어 버려요. 그것은 안 받아도 되는데 받은거에요. 그러면 여기서 내용이 어려워지는데요. 분명히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작살난다는 이 원칙을 주인이 원칙을 지킵니다. 지켰다는 말은 (마5:26)에 나오니까 (마18: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이런 주인의 마음이 달라진 게 없어요. 없는데 중간에 주님과 이거와 너무나 상반되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태도가 뭔지 한번 봅시다.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18: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가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의 주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불쌍히 여겨’ 불쌍히 여기지요, 불쌍히 여겼다는 말이지요! 이것을 시차적 관점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시간의 시가 아니고 시간의 차이가 안다가 아니고 시각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시차적 관점이다. 아래서 위로 보는 관점이 아니고 위에서 아래로 보는 관점 그것은 불쌍히 여겨 주는 거에요. 그것이 불쌍히 여겨 주는 거에요. 불쌍히 여겨 주기 때문에 여기서 위와 아래 사이에 불쌍히 여김이 있지요.

그러면 만약에 제가 이 스마트 폰을 이 집사님에게 잠깐 맡겨 놓고 잊어 버렸어요. 그런데 몇 시간 뒤에 생각나서 “돌려줘! 뭐? 뭐? 나의 미소? 나의 재산? 아닌데요. 나의 자랑? 아닌데요. 그럼 뭐? 아까 내가 준거 말이에요 뭘 주었는데!” 이러면 안 되지요? 서로 원수가 되지요! 주님께서 불쌍히 여겼다는 말은 내꺼하라는 말입니까? 아니면 간직하라는 말이에요. 불쌍히 여겼다는 말은 간직하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뭘 돌려 달라는 말입니까? 내가 준 것을 도로 회수하겠지요? 그럼 우리는 항상 주님앞에 뭘 내어 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불쌍히 여겼다를 내어 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불쌍히 여긴다라는 것은 어떤 대상이 될 때 불쌍히 여김의 의미가 있어요. 어떤 대상이 될 때 정말 인간 같지도 않은 죄인일 경우에만 불쌍히 여김이 불쌍히 여김으로 의미가 부각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이제 알겠지요? 그래야 항상 내어놓을 것이 있기 때문에 “아이구! 뭐 말입니까? 제 주특기 말입니까? 제 재롱? 제 헌금? 아니에요. 내가 너에게 준 것, 뭘 주었더라? 난 받은 적이 없는데요!” 이러면 지옥 가는 거에요. 불쌍히 여김을 받을 때 우리를 죄인 되게 해서 불쌍히 여겼으면 우리는 평생 동안 ‘불쌍히 여김’을 높이기 위해서 찌질이가 돼야 되요! 평생 동안, 날이 가면 갈수록, 무슨 노래 제목 같은데

날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뭐가 되야 돼요? 죄인이 될 때 불쌍히 여김만 수면에 떠오르게 되잖아요? 우리 집의 강아지도 다 불쌍히 여겨서 주신 겁니다. 불쌍히 여겨 준 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나님께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빚진자가 어떻게 했습니까?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가 어떻게 했어요? 간직하지 못하고 자기 종에게 멱살 붙들고 몇 푼되지 않은 자기 돈 내놔라! 이렇게 한거에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갑자기 불쌍히 여김이 사라졌으니까 용서가 안되지요! 결국 정리하자면 주님의 용서하신의 원칙을 적용시켜서 주어진 것은 뭐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나오지요! 천국에 들어오게 되면 여기에 반드시 뭐가 나온다? 지옥이 나온다! 그럼 지옥이 나와 줄때 아! 천국이 들어 왔구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지옥이고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아 사랑한 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용서를 이야기 하면서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하신 거에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천국과 지옥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를 이용했고 우리를 활용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인데 찾아와 주셔서 십자가를 알게 해 주시고 부활을 알게 하셨으니 그 원칙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운영하고 이끄시는 진리인 것을 복음인 것을 증거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첨부파일 : 대전66강마태18장.hwp (60.0K), Dow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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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5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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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