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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무엘상 5강(완제품), 마태복음 67강(놀라운 구원) 150825강의마태복음

사무엘상 5강(완제품), 마태복음 67강(놀라운 구원) 150825

이름 : 이근호(IP:119.18.86.67)

주향(IP:222.♡.177.93)

15-09-16 18:10

완제품 (사무엘상 2:2-9) 대전-(사무엘5강)

이근호

2015년 8월25일 본문말씀: 사무엘 상 2:2-9

(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 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 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2: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2: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 올리기도 하시는도 다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2: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사무엘상 2장2절부터 입니다. 오랜만에 한 느낌이 들어서 지난번에 했던 것을 간단히 요약하고 하겠습니다. 수련회에서 사사기를 했잖아요. 사사기와 연관해서 사사기의 특징이 왕이 없다고 했잖아요! 왕이 없다는 말은 뭐냐하면 인간들이 왕을 세워도 그것은 인간들의 왕이지 그리고 인간들이 왕을 세운다는 것 자체도 수상한거에요. 잘못된거에요. 인간들이 대통령을 뽑는다 이게 뭔가 잘못된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출발점이 뭐냐하면 자기의 행위의 옳은데로, 자기 소견에 옳은데로 행하기 때문에 왕이라고 할지라도 왕 자체가 자기의 의견을 반영해 주는 왕이지 왕한테 자기 행위를 꺾는, 굴복하는 그런 식의 왕은 인간들이 원하지를 안아요. 그래서 현대에선 투표하잖아요. 투표란 것이 뭡니까? 내 취향에 맞는 지도자일 경우에 당신과 나는 계약 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되겠지요?

그래서 사사기와 사무엘상이 왕이 없을 때거든요. 사무엘도 사사의 일부이니까! 사사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포청천이라 하면 되요. 포청천 아시죠? 아주 지혜로운 사람, 판관 포청천, 그때 사건 사건을 옳고 그름을 처리해 주는 자, 권위로써, 그런데중국의 포청천은 계속 보수직이죠? 자기가 왕이 됩니까? 그렇지 않지요? 그런데 사사는 그 지역의 왕같이 사람들이 잘해주니까 자기가 왕이 되고자 한 게 아니고 사람들이 그 지역의 왕으로 옹립을 해 버려요.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에요.

그것을 이렇게 봅시다. ‘나’가 있고 어쨌든 내가 이 땅에 생겨났잖아요? 생겨났으면 나의 영토를 넓혀가는 겁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서는 가정이지만 사회로 넓혀갑니다. 넓혀가면서 나에게 필요한 친구들, 동창생들, 필요한 스승들, 이러한 사람들을 뽑아내면서 그것으로 관계를 맺어 버려요. 관계를 맺어 버리면 나의 영토가 커지는 겁니다. “나는 아는 사람 많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나는 이 동네에서 유명해!” 이렇게 점점 확장되겠지요?

그렇게 퍼져 나가면서 자기 자신의 욕망도 점점 더 넓히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자기 힘으로 되지 않아요! 자신은 잠시 주변으로 비켜나고 자리를 피하고 있습니다. 내대신 내 욕망을 달성해주는 어떤 분이 계십니까? 제가 아낌없이 시키는 대로 할테니까 내가 속해있는 세계를 넓혀 주세요! 이게 왕이에요! 이게 왕입니다. 자리를 비켜주게 되면 그 자리는 빈 자리가 되요. 빈자리가 되니까 이것은 자기가 비켜주고 난 빈자리이기 때문에 왕은 뛰어남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줄때 일시적으로 왕으로 여기는 거에요.

신입사원. 요새 젊은 사람들이 회사에 취직하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을 뽑지만 사장들이 직원 뽑기가 힘들다고 하는 건 젊은 사람들이 옛날에는 사장이 뽑아 잖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장을 평가 한다니까요! 몇 개월 다니고 그만 둘까! 이런 식으로 요새는 경력이 필요하니까 몇 개월만 하고 사표 던지나 이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당신은 나에게 무얼 해 줄거요? 그럴 경우에만, 내가 필요한 한 달 수입을 보장하고 복지도 보장해 준다면 당신을 사장으로 인정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왕이란 게 결국 뭐냐하면은 내게 없는 능력을 약간은 채워주되 한시적으로만 그사람에게 복종하는 척 하는 것. 그게 인간이에요. 그러니까 왕 앞에서 자기를 포기 한거에요? 안 한거에요? 자기를 포기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강화시키죠! 강화시킨다니까요! 요새 처녀들 총각들이 결혼하기 힘든 이유가 뭡니까? 네가 내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조건하에 내가 살아줄께! 이런 조건, 서로에게 조건을 내미니까 그 조건을 맞추기가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자!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내가 아무리 왕에게 복종하는 척 해도 내가 왕이기 때문에 I'am king 이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신이기 때문이에요. 애들에게 오냐오냐 해주면 애들이 기고만장하지요! 왜? 자기에게 잠재된 신적인 속성, 왕적인 속성이 다 나와요. 요새 선생님들이 애들 가르치기 힘들잖아요! 왜? 한 반에 열 명이 있으면 열 명이 다 신이기 때문에 그 뒤에는 수렴청정 하는 열 명의 학부형이 다 있거든요.

이것은 뭐 애들과의 기 싸움도 아니고 누가 더 높은 신인가 하는 권위싸움도 아니고 참 힘들어요. 예전에는 부모들이 애들 맡길 때 굴복하고 들어갔잖아요! 지금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이 시대는 왕이 없어 왕을 구한다는 자체가 수상하고 사고방식이 잘못된 거에요.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만들기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스라엘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해결책이 있느냐? 실제적으론 실패하고 있잖아요! 그래선 안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내 백성 만들겠다고 약속은 했고 실제적으로 그 당사자들은 실패하고 있고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 중간에 준비된 왕이 드러날 상황이 됐지요! 그 상황이 무슨 상황이야 하면 어두움의 상황,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가 전부 다 실패로 끝나는 상황, 이제는 인간으로서는 무능이 다 탄로난 상황,

다시 말해서 인간 전체가 가짜임이 들통 나는 세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가짜임을 폭로하는 작업에 들어 갑 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이 뭐냐 하면 나는 가짜임을 받아들일 때 구원받은 사람이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뭐냐하면 너는 가짜라고 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가짜에요. 왜냐하면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분 때문에 가짜도 구원되는 게 복음인데 인간이 자기가 신이라 했지요 자기가 왕이잖아요.

그러니까 누구를 의지하는 자체가 자존심이 굉장히 상하는 거에요. 기분 되게 나쁜 거에요. 나 자신에 대한 모독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내가 어때서, 내가 무슨 문제인데 이러니까 점점 더 진짜를 만들어 내는 거에요. 자꾸 진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뭡니까? 진짜를 만들어 낸다는 자체가 이미 가짜가 되는 겁니다. 그때 그때마다 땜빵하는 식으로 자꾸 가짜를 만들어 내는 거에요.

인간이 24시간 만들어 내는 게 뭐냐하면 가짜 만드는 거에요. 나 인듯 내가 아닌 나 같은 자꾸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하나님은 뻔히 아시는데 아까 뭐라 했냐하면 우리가 어두움이고 무능이라고 했지요! 불가능이거든요!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과 의에 이를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 위주이지 남의 위주가 아니기 때문에 이웃 사랑 자체가 성립이 안돼요! 우선 나부터 살아야지 남 챙길게 어디 있어요.

이웃사랑이 남을 위해 한다? 이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게 율법을 우리에게 준 것은 우리를 죄인 되게 하기위한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 주신 취지가 뭐냐하면 가짜라고 주신 것이거든요. 그런데 인간들은 그런 취지를 모르고 “내가 가짜임을 감추고 진짜로 행세해봐?” 이렇게 나오니까 가당치도 안지요?

다시 강의 정리하면 하나님께선 무얼 만드신다? 모든 것을 실패로 만드는 작업 이것이 구원 작업입니다. 나는 나로 인해서 실패한다. 나 혼자의 독자적인 인생은 곧 실패한 인생이다. 누가 책임진다면 아낌없이 드리리다. 이게 바로 왕과 백성의 관계에요. 하나님이 원했던 바로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다라는 무슨 뜻입니까? 주님 제가 가짜 맞지요? 이런 고백만 편하게 술술 내놓으면 돼요. 남에게 할 필요도 없고 주님 앞에서 술술 내놓으면 돼요.

“주님은 내가 가짜인 것을 다 아시는구나!” 라고 아! 이것도 못합니까? 평소에 자가가 자신을 봐도 가짜인데 그걸 왜 못해요! 그게 얼마나 쉬운건데, 가짜이면서 진짜로 행세하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인데 그게 더 힘들어요. 말씀 지키지도 못해놓고 말씀 지킨 척 하면서 복 달라고 요구 하는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사무엘상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만드시는데 너는 불가능하고 무능하다 하지만 네가 무능하면 무능할수록 하나님이 이미 장만하시고 준비했다는것이 더 분명하게 네 마음에 와닿을꺼야! 라는 진행 과정.

이것이 사무엘상의 진행 과정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사무엘이 하는 일은 뭡니까? 가짜 왕을 은퇴시키고 그 사이에 진짜 왕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중매 역할을 사무엘이 하는 겁니다. 그럼 질문하기를 “아이고! 목사님, 사무엘 본인이 왕을 하면 안됩니까? 선지자인데” 사사는 왕을 하면 안돼요. 방금 어렵게 이야기 했는데 이게 어려운 이야기에요. 왕이 되려면 세습제에 의해서 되는데 세습제가 되려면 과거로부터 과거의 나로부터 현재의 자식 다음에 미래의 손자 대대로 왕이되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왕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인간이 과거로부터 현재에서 미래로 간다는 것은 과거의 죄로부터 죄를 더 많이 짓는 방향이기 때문에 허락하지 안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가? 미래의 의로운 분이 죄를 마중 나오면 되요. 탕자 비유에 그런 것도 있고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창극도 있겠지만 자식은 부모 마음 애를 먹이는 그런 나쁜 자식이에요. 다 망하고 난 뒤에나 불효자는 웁니다라며 집에 들어 오거든요.

그때 부모가 천대합니까? 추방시킵니까? 아니죠! 이거에요. “자식아! 아들아! 너는 나쁜 짓을 해도 부모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여 주는 거에요. 그것을 극 대극으로 보여 주는 거에요. 그러면 부모의 사랑을 언제 극대화시키겠어요. 자기에게 어떤 미련 애착이 실망스럽게 붕괴 될 때 와해가 될 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잖아요. 그 앉아 버리는 것을 묵시라고 합니다.

역사는 진행하는 거잖아요? 묵시는 그것을 진행해도 소용없어요. “엄마! 내가 5년 뒤에는 잘 할께! 아니! 나는 네가 5년 뒤에 잘하지 않아도 지금 네가 망해도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는 말이죠. 그런데 자식은 어머니의 말은 이해 못해서 5년뒤에 착하게 되면 어머니가 기뻐하시겠지! 그것은 엄마의 마음을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그렇게 지금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거에요. 이것은 교회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착하면 기뻐하신다? 아닙니다! 착하면 기뻐하는 게 아니에요. 대구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나쁜 짓 하고도 구원 받는 게 구원이라고 했잖아요. 세리나 창기, 강도가 구원 받는다니까요! 왜 자꾸 반대로 생각해요? 뒤집어 생각할 줄 몰라요.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을 내가 지어낸 하나님으로 고수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나를 닮으면 안돼요! 나를 닮지 않은 하나님이에요. 나를 닮으면 큰일 나지요!

묵시라는 것은 스톱! 그 자리에 멈춰!에요. 묵시라는 것을 쉽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싶어서 나름대로 고민 하다가 생각한 것이 이겁니다. 바위산이 있는데 산 가장자리를 돌면서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의 폭이 발 딛을 만큼 좁은데 이런 길들이 보통 중국의 깊은 산골에 많지요. 걸어서 세상 끝까지 그런 프로에 나오잖아요. 산에 오르면 길이 있어 좋다 했는데 점점 올라 갈수록 길이 폭이 좁아져요 좀더 올라가니까 산사태가 여러 번 나서 길이 뭉게졌어요.

그러면 못 올라 가잖아요. 완전히 비탈길에 디딜곳이 없는데 어떻게 올라가요. 거기서 주저 앉지요! 주저 앉히 게 하는 것, 이게 하나님의 뜻이란 말이죠. 5년만 돈 더 벌고 교회 나올께요 라든지 10년 뒤엔 반드시 주일 성수하겠습니다. 이런 것. 그것은 아직도 길이 보이는, 자기가 가능성이 있고 멋있고 무능하지 않고 영광 돌리고 찬양 멋있게 하고 헌금하고 선교 헌금 낼 수 있고 하나님 위해서 나도 교회에서 봉사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전부다 주저 앉혀버려요. 그걸 사자성어로 놀부 심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놀부 심보에요.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이런 것. 그냥 주저 앉혀요. 앉을 때 그게 역사가 아니고 묵시가 되는 겁니다. 마중을 나오는 거에요. 마중을, 내가 마중을 나와서 데리고 가야지 니가 자꾸 용서받았다고 그냥 천국오면 안된다는 거에요. 강의 다시하겠습니다. 다시 해도 돌아서면 다 잊어 버리잖아요.

사람들이 사무엘을 세습화 시키지 못한 이유가 사무엘의 아들이 개판이에요. 이 말은 사무엘이 과거의 입장에서 과거와 현재의 입장에서는 왕이 될 자경이 못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사무엘은 뭐냐하면 과거에서가 아닌 미래에서 오신 분을 앞당겨서 불현듯 홀연히 나타난 것. 마치 여고괴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귀신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사부작 걷는 게 아니고 복도에서 팍!팍! 이렇게 나오지요?

미래에서 등장했기 때문에 사무엘은 이 땅에서 자생적으로 잉태하지 못해요. 애 없는 상태에서 사무엘이 태어나요. 이것이 무얼 닮았는가 하면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을 닮았어요. 원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없었어요. 그냥 애굽 나라에요. 애굽나라의 일부가 뚝 떨어져 나와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떨어져 나올 때 그냥 떨어져 나왔냐 아니에요. 애굽 사람은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홍해가 있어요.

홍해에서 같은 인간인데 애굽 사람은 다 빠져 죽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똑같은 인간인데 하루 세끼 똑같이 밥 먹고 잠자고 옷 입었는데 이상하게 홍해 바다가 살려 내잖아요. 바다에서 살려 낸다는 말이죠. 그래서 시편에 보면 저 인간들은 바다에서 튀어나온 족속리라고 되어 있어요. 성도는 존재가 다릅니다. 생김새 똑같이 생겼지요? 존재가 달라요. 왜냐하면 일반 존재는 그냥 존재이지만 성도는 바꿔치기한 존재이기 때문에 달라요.

바꿔치기 하신분이 관리하고 함께 있는 점에서 존재가 달아요. 일반인들은 자기의 선택에 의해서 살지만 성도는 자기 마음대로 못 살아요. 왜? 바꿔치기 하신분이 이미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주인을 주인되게 보여주는 하나의 껍데기. 표현의 증거로써 성도가 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못해요. 사무엘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미 한나가 애기 못 낳는 여자가 애기를 낳았다로 부터 한나는 이걸 알았어요.

그래서 한나가 애를 어느 정도 클 때까지 키워서 그다음엔 어떻게 합니까? 이것은 “제 아들이 아닙니다 라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그냥 드려 버려요. 이게 뭐냐하면 과거에 내가 기대했던 아들, 과거와 연결된 시간 고리가 있고 미래가 찾아주는, 방문해주는 시간 고리이기 때문에 이것은 주께서 데려 가는 게 옳습니다. 이러한 사무엘의 위상이 신약에 나오는 성도의 위상과 동일해요.

로마서 8장30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거기 까지 보겠습니다. 제가 카메라에서 사라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번 해 보겠어요. 이 말씀을 그대로 행동으로 옳겨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나오면 안된다니까요. 하나님 믿고 예수 믿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가짜입니다. 말씀 그대로 한번 해볼께요. 가만히 있는데 누가 호출해요. 교회로 호출하는 게 아니고 주님에게 호출해요. 호출하면 앉았던 뒤의 자리를 한번 보세요.

그러면 그 자리는 옛날에 나의 자리이지요? 내가 노동해서 얻은 내 자리가 딱 돌아보니까 이미 아신 자리에요. 이미 아신 자를 방금 호출했잖아요! 이미 아신 자를 부르시고 라고 하면서 돌아보니까 처음에 불렸을 때는 “야! 이거 나도 예수 한번 믿어 볼까?하고 왔는데 성령 받고 난 뒤에는 그게 아니에요. 내가 구원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선택한 게 아니에요. 부처 선택할까? 예수 선택할까? 에잇! 예수 선택하자 절에 갈까? 교회 갈까? 에잇! 교회 가자~! 이게 선택한 게 아니고

딱! 부름 받고 난 뒤에 보니까 처음부터 이 자리가 이미 아신 자리에서 말씀이 이미 아신 자를 부르시고 로마서 8장 30절에 나온 그대로 그 말씀이 나에게 적용시켜 버린거에요.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고 난 뒤에 보니까 로마서 8장 30절에 한꺼번에 사후적으로 이게 납득이 되는 거에요. 아~하!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그래서 이게 뭡니까? 과거에 나의 기억에서 내가 알아서 내 인생을 구원 받기 위해서 내가 천국 가기 위해서 행위로 예수를 선택한 게 아니고 미래에서 나를 새롭게 기계로 나를 생산해 내고 있는 겁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 입각해서 그 설교 도면대로 이미 아신 자를 부르시고 그러면 내가 구원 받았다가 아니라 뭐냐하면 주께서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가 되는 거에요. 내가 예수를 믿습니다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조차 말씀대로 행하신 그 열매에요. 마지막 때에 성령이 오게 되면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요엘서에 나오거든요. 호세아 다음에 요엘 다음에 아모스 다음에 오바댜 이렇게 주~욱 그 다음에 하박국..

그 선지서에 보면 마지막 때에 성령이 오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 자리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말씀의 자리이다. 그래서 주일 낮 설교의 요점이 뭡니까? 사자성어로 한다면 밑장 빼기라고 했지요? 기억나십니까? 화투 도박꾼이 화투 칠 때 9를 내지 않고 밑장에 단풍을 숨겨 놓고 장땡이라고 내어 놓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 9 아니였어? 장땡 이었어? 속아 넘어 가는 것처럼 우리의 가짜 인생이 말씀에 진짜 나를 그동안 무거운 엉덩이로 눌러 앉았 있었어요. 무거운 엉덩이 아줌마들 생각하면 되요.

꾸~욱 눌러 앉아 내 자리라 했는데 막상 구원 받고 난 뒤 보니까 태어 날 때 부터 주의 말씀의 자리인것을 그것을 그동안 우리는 내 자리 내 인생이라고 과거로부터 현재로 차고 들어온 내 자리라고 생각하고 과거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미래가 침공한 거지요. 미래의 완성이 인간을 침공 했는데 어디까지 침공했느냐 하면 창세전부터 까지 창세전부터 예정된 나를 부르시고 미리 정하시고 창세전에 정하시고 창세전에 부르시고 그걸 의롭다 하시고 그다음에 영광스럽게 이미 구원된 자로 우리를 다루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인생이라는 것은 전시품이라고 보면 되요. 마트에서 카메라를 사는데 카메라가 진열돼 있잖아요! 그러면 소비자가 카메라를 가지고 계산하고 나오면 되지요? 그런데 카메라 옆에 제조 기술자가 옆에 붙어 있습니까? 아니죠! 이미 제조가 끝나서 검사대 거쳐 검사에 합격된 것만 마트에 진열돼 있잖아요? 전시되어 있잖아요? 그렇지요? 지금 중요한것 이야기 합니다.

내가 나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공장에서 하는 거고 지금 마트에 전시된 것은 이미 완제품인 거지요? 완제품은 그냥 완제품이에요. 그 물건을 하이마트에 가서 사서 찍기만 하면 되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만들 때 말씀으로 만든다는 말은 완제품으로 우리를 만드는데 우리는 내가 보기에 내가 좀 미진하고 거룩하지 않은 것 같고 나쁜 짓을 하니까 내가 나를 손대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큰 문제에요.

한복집은 그런 게 있어요. 한복집에 가서 마음에 드는 천 골라서 치수 재고 기장 재서 다 해서 옷 입고 나가는데 주인이 따라 나와서 자기가 만든 작품이라고 잠깐만 가만히 있어 보세요. 마감질 마저 해야된다며 입고 지금 막 나가는데 붙들고 요것마저 하고 이러지요? 이것처럼 주께서 미리 죄인인 것을 알고 주께서 우리를 검사대 거친 그 못난 창기도 완제품인데 우리는 인제 창기 노릇 그만 해야지! 강도짓 안 할꺼야! 술 끊고 담배 끊을꺼야! 이런다고 해서 완제품 더 되는 것 아니거든요!

그러니 사실은 하나님의 교회는 완제품 밖에 없어요. 지가 손댈게 없다고요. 손댈게 없는데 교회에선 교인들에게 “뭐합니까?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아야지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했으니 그렇게 살아야지요! 여러분들이 지지리도 못살고 집안 망하는 것은 말씀대로 못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벌 받으니 정신차립시다! 하나님이 복 주셔서 복 받게 돼 있는데 복을 받고 못 받고는 여러분들 하기 나름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니까 복 받으려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십일조하고 주일 날 일찍 나오고 난리도 아니에요. 백날 해도 가짜에요. 이번 수련회 마지막 시간에 제가 뭐라고 했든가요? 기억 안나지요? 너무 돌아오지 마라 했지요. 십자가 바로 알면 구원 받는데 그동안 멀리 돌아왔어요? 허 전도사님, 자기 자리에서 천국자리로 가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아마존에서 그렇게 고생을 많이 했지 않습니까? 이제 암에 걸리고 보니까 내가 한 짓거리가 결국 암에 걸릴 짓거리에 불가한 것을 이 짓 안 해도 구원 받는데 완제품인데 자기가 자기 마음에 안든거에요.

그러면 이것은 자기가 구원 받은 상태를 자기가 상상한 거에요. 상상해서 구원받았어요. 여러분 상상에서 벗어나세요. 여러분의 상상한 자체가 죄에요. 여러분의 상상으로 더 이상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어요. 주님의 우리의 상상 그 이상 입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 나온 이야기에요.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 “이 땅에서 네가 상상했냐? 천국을? 좋아! 그건 네 자유야! 하지만 진짜 천국은 네가 이 땅에서 아무리 멋있게 상상해도 그 이상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누가 아느냐? 피조물들이 알아요. 인간은 몰라도 개, 돼지는 알아요. 그래서 그들은 뭘 기다리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한 겁니다. 인간이 범죄해서 천지가 고통 가운데 신음 가운데 있다고 로마서 8장에 있거든요. 이 로마서 8장이 단순히 개인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고 전체 우주론에 관한 이야기에요. 성경이 그렇게 폭이 넓어요. 너말고 전체 우주,

우주가 어떻게 인간이 죄지었는데 개는 왜 같이 늙어 죽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왜 그런지를 그 원리가 모든 피조물에 예수 그리스도에 주의 속성이 거기에 다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지난 낮 설교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죽음은 복수가 아니고 단수라고 했지요! 죽음은 영희 죽음과 철수의 죽음이 각자 다른 죽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죽음을 따로 주사기로 뽑아내보면 똑같은 죽음이에요.

어떤 인간도, 인간은 다양하게 보이지요? 다양 하지 않습니다. 똑같습니다. 왜 모든 죽음은 흙으로 끝나니 똑같으니까! 죽고 난 뒤에 흙으로 섞어보세요. 누구의 할아버지인지 누구의 아저씨인지 분간이 안되요. 아이고! 우리 아버지다 냄새 맡아 보니까 예전에 담배 많이 피우셔서, 그런 것 없어요. 똑같아요. 똑같에, 똑같은 아담을 수제비 떼듯 이렇게 따로 분리해 떼어 놓은거에요. 따로 떼었던 것을 다시 원래대로 뭉친 것이 죽음이라니까요!

죽음에서 나와서 잠시 안개처럼 어떤 모양으로 사는 어떤 여자, 어떤 남자, 어떤 가난한 자, 어떤 부자로, 가난한자와 부자는 하나의 역할에 불가 합니다. 잠언서에 의하면, 나쁜 짓해서 가난한 게 아니에요. 팔자에요. 이 남자 저 남자 만난게 이 여자 저 여자 만난 게 팔자라니까요. 역할이에요. 사다리 타기라니까요. 이래가나 저래가나 전부다 꽝이에요. 팔자가 사다리 이래사나 저래사나 도착 지점은 동일한 동일 선상의 죽음이에요.

그래서 사무엘상에서 하나의 찬양의 내용이 뭐냐? 우리는 모드 가짜라는 겁니다. 그러나 가짜일때 미레에서 마중 나오는 우리를, 가짜를 가짜라고 지적해 주는 그 분이 우리 가운데 있으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찬양의 수준이 다르지요? 내가 우리 아들 서울대학 갔다고 하는 이런 찬양이 감사가 아니고 그냥 몰랐던 내 자신에 대해서 내가 가짜인것도 모르고 뭔가 5년 뒤에는 잘 되겠지! 10년 뒤에는 팔자 펴겠지?

자꾸 뭔가 은근히 기대하는 것을 아주 말소해 버려요. “주제 파악해라!” 이렇게 주제 파악 하도록 해 주시는 그 분이 얼마나 감사 합니까! 그래서 찬양하는 겁니다. 다윗의 시편 51편에 하는 유명한 말씀있지요? 내가 사람에게 죄 지지 않고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얼마나 대범한 고백입니까? 나는 분명히 간음했고 분명히 살인 했잖아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저질렀잖아요? 비겁하게 그 여자의 남편을 죽인 사랑과 전쟁 드라마에 나올법한 그런 나쁜 짓을 저질렀단 말이에요.

그렇게 나쁜 짓을 해놓고 분명히 사람에게 나쁜 짓을 했잖아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인간에게 나쁜 짓 한 게 아니다란 것이죠. 왜냐하면 내가 인간에게 나쁜 짓을 해버리면 내가 여전히 나로부터 출발해요. 과거의 나로부터, 그런데 내가 하나님께만 죄 지었다는 말은 처음부터 나는 하나님께 죄짓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존재로 된 것이 나란거죠. 얼마나 우리에게 돈을 줘야 자기의 본색을 알겠어요?

다윗은 자기의 본질을 알았어요! 그리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죠! 감사합니다. 그토록 내 자신에 대해 몰랐었는데 성령이 오니까 비로소 내가 모친의 죄 중에서 처음부터 시커먼 오징어 먹물에서 나온 사람 죄 값은 사망인데 거기다 뭘 이쁘게 치장을 합니까? 데코레이션은 왜 해요? 토핑을 왜 합니까? 왜 뿌려요? 후추를 위에서 왜 뿌려요? 지가 무슨 쉐프입니까? 지가 무슨 백선생이에요? 설탕은 왜 붓는데요?

그 모든 행위가 가짜이기 때문에 가짜임을 감추기 위해서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위장술입니다. 누가 위장술을 멈출 수 있습니까? 미래에서 오신 분이 “고만해라!” 니가 가라 하와이 장동건이한테 칼에 찔릴 때 친구라는 영화에 나와요. 친구의 칼에 여러 번 찔려 죽잖아요! 주께서 우리를 팍! 팍! 찔려서 그런 식으로 우리가 천국을 가요! 우리를 죽여주시는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천국가는 사람은 새로운 죽은 시체위에서 주께서 새로 만드거에요. 말씀대로
그게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겁니다.

내가 가짜임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 낸 자가 천국에 가는 나에요. 그래서 우리는 가짜가 되어야 천국 가는 겁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죄 지은 적이 없어야 천국 갑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죄를 지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에요. 구약에서 다윗이 간음죄, 살인죄져서 그때 안다면 신약에서는 십자가사건 앞에서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분의 피 흘린 피 앞에서 우리는 살 주제가, 살 처지가 못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자기의 원본을 자기의 진짜 모습을 십자가에서 찢기고 예수님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얼굴이 그럴 때 나란 존재는 주의 이름으로 바뀐 존재라는 것. 내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기능화 되어서 쏟아져 나요죠. 나 같은 죄인도 봐라 오늘도 삼시세끼 먹잖아! 나같은 죄인도 집 밥 먹잖아! 나 같은 죄인도 자식있다!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한다. 나같은 죄인도 회담할줄 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평범하게 하는 것을 해석하면서 나 같은 죄인도 오늘 이렇게 모였습니다. 이게 바로 진짜에요.

나 같은 죄인인데 주께서 조성해 나가십니다. 예수님 고마와라! 감사합니다. 자! 이제 진도 나갑시다. 그렇다면 오실 분이 어떻게 우릴 지적 하느냐? 방법은? 방법은 뭐가 있습니까? 사사시대에 장차 오실 임금님, 다윗의 언약에 의해 오실 진짜 다윗 로마서 1장 3절에 나오지요? 다윗의 혈통으로 나서 죽고 난 뒤에 부활해서 성령으로 오신 그 다윗, 그 분이 오실 때 어떤 기능이 오느냐? 2절에 봅시다.

(삼상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여기에 봅시다. 반석 나오지요? 그 다음에 2장 35절 봅시다.

(삼상2: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제사장이라는 용어가 나오지요? 그 다음에 견고한 집이 나오지요? 가문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그러니까 2장 전체가 한나의 찬양으로 부터 시작을 하는데 10절에서 끝나거든요! 찬양대로 구체적으로 모든 사태가 진척이 돼요. 진행이 됩니다. 찬양한데로 돼요. 찬양한데로 진행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주 같은 이가 없다! 반석을 준다!

반석이라는 것이 뭐냐하면 우리가 아는 바로는 기초, 기원, 원천, 이렇게 보시면 돼요. 아까
다윗이야기 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진짜 자기를 몰랐는데 하나님의 성신이 와서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할 때 알았지요? 그것처럼 우리가 다윗만 그러면 안되요. 그러면 다윗만 구원 받아요. 우리도 그래야 돼요. 우리가 원천을 만나야 돼요. 그러면 원천을 어떻게 만나는가? 반석과 만나야 돼요. 반석되시는 분.

욥이 고난 받을 때, 시련 받을 때 었잖아요? 그럴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황무지에 비를 내릴 때 이렇게 물었잖아요. 그 소리 듣고 입을 다물었단 말이에요. 왜냐하면 욥은 자기가 황무지인줄 몰랐어요. 텃밭인줄 알았겠죠. 하나님께서 비를 내릴 때는 나한테 물어보고 내리시고 또는 나를 위해서 비를 준다고 그렇게 생각한거에요. 그래서 본인의 원천까지 안 가고 껍데기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잘남, 내가 사랑하는 그것을 페인트 해서 그것이 나의 전부인줄 알고 있었어요.

자기 밑바닥에 뭐가 있는 줄도 모르고 남은 죽어도 나는 살아남아야돼. 이런 게 있다니까요. 요번에 북한하고 대치 상태일 때 주변에 이야기하기를 그냥 한바탕 붙어봐라! 붙어봐라! 자신있다는 이야기죠! 내가 나에게 잘할 때 기분 좋잖아요.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생각은 뭐냐하면 내 잘되기가 이미 깔려 있어요. 깔려있고 거기서 나를 더 기쁘게 하기 위해서 세상은 이동하고 변화된다는 거에요. 이런 것들이 무엇을 막느냐 하면 나의 원천을 막아 버리는 거에요.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알아버렸다 했지요. 알게 된거에요. 그래서 다윗에게 밧세바가 나타난 것은 천만 다행이에요. 그리고 그 밧세바가 뚱뚱한 여자가 아니고 날씬한 여자라는 게 더더욱 다행한 일이고 뚱뚱한 여자였으면 발로 찼을 텐데 어디를 주제파악도 못하고 나에게, 인간의 양상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너무 멋있으니까 앞뒤도 가리지 않고 수련회에서 이야기한것 처럼 보고 싶어 미치는 거에요. 얼마나 보고 싶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이것은 90% 무의식이기 때문에 어떤 이성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냥 좋아서, 밧세바도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남편 죽이는 것도 그냥 죽이는 거죠. 왜? 내 욕망에 방해되는 것은 사람은 실천으로 옮기게 되어 있어요. 인간의 모든 실천은 내 일에 방해되는 것은 제거하고 이익 되는 것을 내 것으로 돌리는 그것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 한번 했다고 마는 게 아니고 두 번 다시 거짓 말 안하겠습니다. 그게 거짓말이에요. 자기의 이익이 된다면 사람들은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는 게 인간입니다.

이것은 본인의 잘못의 문제가 아니고 본인의 밑에 있는 원천의 문제에요. 그래서 주님께선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하시잖아요. 누구나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럴 수밖에 없는 거에요. 누구나 돌로 때릴 수 밖에 없는 상황, 누구나 간음 할수 밖에 없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 앞에 나와서 주께만 죄 지었습니다라고 이렇게 하면 돼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 아세요. 인간이 아닌 척 해도

전에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선악과 따 먹으며 안 된다는 것을 알잖아요. 그럼 하루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러면 따 먹고 싶은 욕망이 사라집니까? 이게 갈수록 더 미치겠는거에요. 그럼 일 년 반을 참았어요. 포기 했습니까? 포기 안합니다. 기여히~ 기여히~ 따먹고 말리라! 언젠간 따 먹어요. 그게 선악과에요. 인간은 언젠가는 조목조목 있는 대로 죄를 다 짓게 돼있어요. 십계명에 있는 데로 다 짓게 되어 있어요. 순서상의 문제이지! 일찍 짓고 간 사람도 있고 늦게 60넘게 짓고 간 사람도 있고 그렇듯이,

반석이라 하는 것은 “욥아! 이야기해 줄께! 네가 황무지야! ” 전에는 황무지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나는 잘났다. 나는 믿음 좋다. 나는 자식이 10명이나 있다. 나는 재산이 많다. 그런데 황무지가 뭐냐 말짱 아무 의미 없는거에요. 그것을 고난 중에는 몰랐어요. 고난 받고 난 뒤에 하나님 앞에 저항 할 때, 중요한 거에요. ‘저항 할 때’ 마귀의 뜻은 뭐냐하면 인간에게 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잖아요.

마귀는 뭐냐하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심판해 버려라 이게 마귀의 뜻입니다. “네가 뭔데? 내가 너를 심판 할꺼야!” 십자가 사건, 재판입니다. 인간은 인간속에서 저항해요. 누구에게? 최고의 권력자, 신에게 저항하는 요소가 있어요. 그것을 욥이 보여 주는 겁니다. 욥이 한방에 갔어요. 어디서 반석과 관련된 “네가 네 밑바닥이 관련된 반석과 딱! 접촉이 될 때 욥이 할 말을 잃고 재를 뒤집어쓰고 재가 뭡니까? 재는 모든 것이 의미가 소멸되고 말살되고 다 태워지는 불에 태워 버리고 남는 것은 불에 타도 마땅함만 남아 있는 게 죄지요.

윤시내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에 보면 나와 있어요. 촛불처럼 타서 재가 되리라~고 하잖아요. 나를 없애 주세요. 나를 없애고 당신만 존재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아이고! 놀고 있네~ 흉내 내기는! 가짜가! 이게 정답이거든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힘으론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시냐? 있는 자리에서 떠나게 만들고 뒤돌아보게 해요.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모든 것을 내가 주의 말씀을 깔고 앉아 있었습니다.

말씀이 말씀대로 하는 것을 마치 내가 착해서 내가 멋있는 줄 알고 내가 행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엉덩이 치워 버리면 너는 한 줌의 재가 되야 마땅해! 그게 욥이에요. 욥이 딱 그러고 난 뒤에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뭘합니까? 희생을 드리지요. 그리고 욥의 친구들은 그들이 아는 하나님은 다 묵살 당하고 고난 받는 욥이 그들의 중보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보이는 하나님은 누구냐?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유일한 보이는 하나님이고 유일한 하나님입니다. 다른 하나님은 없어요. 안 보이는 하나님은 없어요. 보이는 하나님에게만 그 분이 아버지와 함께 있어요. 따로 하나님 챙기면 안됩니다. 이 땅에서 죽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에요.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은 나의 투영이고, 나의 모델이지 그건 가짜입니다. 내 상상속의 하나님이지,

그 반석이 기름 부은 자로 와요. 사무엘상 2장의 줄거리를 보면 그 반석 되시는 분이 어떻게 오시냐 위에서 올라오죠. 인간의 원천을 찾아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하나님께서 점점 더 정체가 드러나는 메시야의 모습으로 반석 되시는 분이 지면에 작업을 실시해요. 그러면 이스라엘 내부에 뭐가 생기냐? 얼룩무늬가 생기죠? 칼자국의 무늬가 생기죠. 그 무늬는 인간이 예상 할 수 있는 무늬겠어요? 예상 못할 무늬겠어요? 예상 못할 무늬에요. 인간이 기대하지 않는 낯선 무늬 같은 것이 이미지가 생기는 거에요. 형상이 생기지요?

그러면 그 말은 뭐냐하면 내 인생에 낙서를 한거에요. 주님께서 자기 마음대로 낙서 한겁니다. 자고 일어나니깐 문신처럼 무늬가 생긴 것처럼 괴기 영화에서처럼 거울 비춰 보니까 목에 너는 오늘 밤에 죽을 것이다 뭐 이런 글자가 생긴 것처럼 기가막히죠? 성경 자체가 그래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하나님의 손가락이 벽에 낙서를 해요. 손목이 나타나서 글씨를 쓰는거에요. 기겁을 하지요!

그래서 성도는 뭐냐하면 성도는 일반 사람하고 똑같아요. 뭐든지 자기 유리한대로 세상을 일방적으로 해석 합니다. 인간들이 해석한 것을 이번 수련회에선 뭐라고 했냐 하면 그것을 현실이라고 했지요? 현실은 해석이다. 누구의 해석? 나의 해석이다. 따라서 나의 현실은 나만의 현실이다. 타인의 현실이 아니라 나만의 현실이다. 인간은 너무나 일방적이잖아요. 그런데 난데없이 낙서가 나타나고 내 뜻대로 안될 때

원천이 치밀어 오르는 거에요. 내 생의 표면까지 드디어 침공을 하신 거에요. 외계인의 침공입니다. 이게 바로 뭔가하면 처음에 이야기한 역사가 아니고 묵시이지요. 그리고 말합니다. 너는 완제품, 네가 바로 전시품이다. 누구 자랑하라고 예수님의 솜씨 자랑하라고 너같이 소용없고 너같이 사람에게 죄짓고 너만 알고 너같은 죄인도 주께서는 보란듯이 의롭게 했다는 겁니다.

매치 안되지요? 매치가 안되요. 우리가 생각하는 의와 진짜 주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그 의와 우리가 평소에 생각했던 의하고 연결이 안되잖아요. 기생 라합하고 구원 받는 것 하고 매치가 안되잖아요. 십자가에 달린 살인 강도, 한 가정을 파탄시킨 살인강도하고 오늘 밤에 낙원하고 매치가 됩니까? 능지 처참해도 용서받지 못할 인간이에요. 이게 매치가 되요? 안되잖아요. “주여! 매치가 안됩니다. 내가 볼 때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만만치 않아!”

우리는 이렇게 낯선 현실, 주님의 현실에 내 현실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이것이 복인데요. 불신자에게 그런 게 없어요. 나만 잘되야 하는 현실이 주님의 현실 앞에 거침없이 뭉개지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되요. 이게 성도의 복이에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시는 그 고마움. 어떤 뜻입니까? 내가 깔고 앉았던 말씀을 보게 하시는 것. 말씀이 알아서 구원했지 내가 착해서 내가 말씀 지켜서 구원 하신 게 아니라는 현실을 돌아보게 하시는 이 은총. 이것이 바로 사무엘상의 예언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 그것은 아주 진도가 빨리 나갑니다. 다음 시간에는..

10분 쉽시다.

주향(IP:222.♡.177.93)

15-09-16 18:13

놀라운 구원(마 19:1-22) 대전- 67강

이근호

2015년8월 25일 본문말씀: 마태복음19장 1-22

(마19: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마19:2) 큰 무리가 쫓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마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어떤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마19: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 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19:7) 여짜오되 그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마19: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19: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 나이다

(마19: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마19:12)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19: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마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19:20) 그 청년이 가로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하시니

(마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지역이 이렇게 되요. 여기가 (지도상; 좌측) 지중해이고요. 옆에(우측) 사해, 죽은 바다, 사해 바다, 북쪽으로 부터 사해 바다까지 물이 흘러 나와요. 요단강을 통해서 흘러 나와요. 헐몬산(헤르몬산 약 2,800m)이라고 높은 산이 있어요. 그 산에서 부터 물이 나와서 죽음의 바다, 사해로 가요. 그래서 에스겔서 마지막 대목에 보면 이 사해가 산 바다가 되면서 에스겔은 끝납니다.

사해가 지역이 어디인가 하면 옛날에 소돔과 고모라, 유황불이 떨어져 죽었던 지역이에요.그래서 여기는 소금기둥이 있어요. 생명이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요 모습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 진행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에스겔서는 이 사해 바다가 살아나요.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게 되면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아무리 깊은 죽음이라도 이 생명수, 물이 온 주변에 초목을 이루게 만들 것이다. 에덴동산을 만들 것이다.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기능이 뭐냐 바로 제사 제도에서 나오는 겁니다. 대신 죽으심으로 죽으신 분이 책임지고 자신이 죽었다는 취지를 온 우주에 넓게 전파하기 위해서 새롭게 된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내가 하는 이 십자가가 헛된 짓이 아니고 우주를 살리는 생명이 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죽은 죄인도 용서해 주시고 천국도 만들어 주셔서 오직 누구만 폼나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만 폼나게 존대 받는 것.

그것이 바로 천국의 위상입니다. 천국은 그냥 사는 곳, 노는 곳이 아니고 주님의 공로를 높이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 가려면 아까 첫째 시간에 한 것처럼 우리가 죄인이며 우리가 가짜이며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야 돼요. 그냥 완제품이에요. 우리 꼬라지는 이래도 아무 손댈게 없어요. 완제품이에요.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죄 지었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자를 의롭다 하는 모든 가공 과정이 이미 마감되었어요.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과거 완료. 이미 과거로 마감이 되어 버렸어요. 이 사실을 구약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요단강 입구에 여리고 성이 있어요.

여리고성이 뭐로 유명하냐 하면 사람들이 광야 40년이 끝나고 난 다음에 요단강을 건너 와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출입구에 여리고성이 있어요. 이 여리고성에 들어갈 때 화살 몇 발 쐈습니까? 없지요. 칼 몇 번 휘둘렀어요? 없어요. 그냥 줏었어요. 줍기만 했어요. 그럼 어떻게 들어갔느냐? 그냥 성을 하루에 한 바퀴 돌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 돌았더니 안쪽으로 무너져 사람들이 깔려 죽은 거에요.

자기를 지키려던 성이 자기를 함몰시키는 심판의 도구가 되었지요! 누가 놀랐겠습니까? ①번 여리고 사는 사람들이 놀랐다. ②번 이스라엘 사람들이 놀랐다. 이스라엘 본인들이 놀라 버렸지요. 뭐 이런 전쟁이 다 있느냐? 예상 밖의 전쟁이에요. 죄인인데 성령 받고 십자가 피로 용서받고 의인 되었다. 누가 놀라게 됩니까? 본인이 놀라야 되요.

“이게 무슨 소리야! 옛날에는 파출소에 왔다 갔다, 경찰서에 왔다갔다하며 그랬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얼마나 부모 마음 아프게 하고 그랬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내 꼬라지를 보니 보통 나쁜 놈이 아닌데 내가 어딜가? 오늘 밤에 죽어도 어딜간다? 네가 낙원에 있으리라! 뭐 이런 현상이 다 있나? 누가 놀랐겠어요? 우리가 놀라야 돼요. 이런 놀라운 마음으로 교회 가서 목사 설교 들으면 무슨 저런 설교가 다 있나? 저건 엉터리야! 저건 이단이지! 저건 마귀 일꾼이지! 저건 마귀 삯꾼이지! 대번 알지요!

그래서 복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안되요. 무엇이 복음이 아닌가로 규정이 되야 되요. 정의가 무엇이 복음이 아닌가? 무엇이 예수가 아니고 무엇이 성령이 아니고 무엇이 십자가 복음이 아닌지를 거기에 조금이라도 인간의 행함이 가미되고 복음 알았으니까 이제 헌금하세요! 라든지 복음 알았으니까 이제 선교해야지 조금이라도 인간의 행함이 나와버리면 복음 알았으니까 이제 봉사 해야지! 은혜 갚아야지! 이렇게 나오면 전부다 이단입니다. 그런 걸 하나님이 원하지 않습니다.

무슨 목소리가 좋다고 찬양을 받아요! 살아가는 자체가 찬양인데,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은 그 순간순간 빵! 빵! 불꽃 터지듯이 순간 또는 사건으로 이렇게 팡! 팡! 터져 나옵니다. 갈릴리에서 사건들을 일으켰어요. 빵!빵! 위에 갈릴리에서부터 (여리고 까지 약96Km) 내려 오면서 그 아래가 바로 사해( 길이 약 72Km)이고 좌측 옆에 유대 산지이고 수련회 때 이야기 했지요. 예루살렘이 (해발 약800m)이고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형인 사해 (해발 약-390m)는 바다 보다 지형이 낮아요.

갈릴리에서 유대 산지로 내려와서 주께서 유대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한다는 겁니다. 가는 곳 마다 뻥뻥 사건이 터져요. 그런데 사건의 특징이 뭐냐하면 사건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 다는 점, 전에 설교에서 그런 이야기 했지요. 예수님의 부활 보고 난 뒤에 완전히 바보 된다고, 예수님이 부활 했잖아요? 자기가 주님을 만났잖아요? 그러면 자기는 가만있을 수 없잖아요. “주님이 나는 죽은 줄 알았는데 세상에 죽었다가 살아났어! 지금 우리와 함께 있어!”라고 이야기 할 때 상대방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보여줘! 보여줘! 할 게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은 한번만 보여주고 그나 저녁으로 가버렸으니까! 이건 뭐 완전히 사람을 바보 만들었어요. 같이 팔짱끼고 다녀야지! 잠시 보여 주고 사라져 버렸어요. 이게 뭐냐하면 사건입니다. 사건은 순간적이에요. 바람 같아요. 그래서 사건을 본 목격자도 바보 소리를 들어야 되요. 왜 주님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주님이 가는 그 고난의 길에 성질이 바뀐채 참여하라고 우리로 하여금 소통이 안되는 내용을 외치게 만들었어요.

사람과 우호적이려면 서로 같은 것의 동질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 동질성을 주께서 일부러 잘라버려요. 왜냐하면 그 쪽에서 사건이 일어나야, 같은 사건이 일어나야 되는데 나만 일어나고 저쪽엔 안 일어나면 아무리 좋게 설득을 해도 그쪽에서는 NO! 거부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집안 원수가 네 원수가 집안 식구라는 말이 맞지요! 너를 반대하는 자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네 식구이다.

너하고 동질성을 갖던 그 식구가 너에게 일어 난 그 사건이 없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너를 원수 취급 할 것이다. 시 어머니가 며느리를 학대하고 딸이 아버지와 싸우고 동기간에 싸우고 형제간에 싸우고 결국 그렇게 되면 누가 누구를 미워하게 되냐 하면 내가 나를 미워해요. 왜 예수님 은혜를 알아 가지고 몰랐으면 친구가 더 많았을 건데! 괜히 예수님 알아서 친구들은 다 떠나고, 술 사줘도 다 떠나고, 밥 사줘도 다 떠나고, 난 사주고도 바보소리 듣고 이용당한 것처럼 그렇게 주께서 다루십니다.

그게 주의 가는 고통에 참여하는 겁니다. 이제 그 사건들이 집결해서, 그러면 그 곳에서 사건을 더 행하지 유대엔 왜 오시느냐 이런 사건 사건들이 모아 모아서 십자가 사건으로 획일화됩니다. 그 말은,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십자가 사건을 경유해야 사건들의 의미가 밝혀집니다. 병 고쳤다. 갈릴리 바다에서 오병이어 행하고 귀신 쫓아냈지요! 사람들이 표면만 보고 말해요. “야~ 주님이 병 고쳤대! 난치병 고치려면 주님을 찾아야 돼!” 이렇게 주님의 껍데기만 봐요.

오병이어도 “야! 배불리 먹었대! 예수님 만났으면 우리도 배불리 먹었을 텐데~” 껍데기에요. 그러나 기적의 원천, 반석은 뭐냐하면 십자가에요. 너희들이 배부르고 좋아한니까 너희가 죄인 맞잖아! 귀신 나갔다고 좋아하는 그것이 죄인인거다. 진짜 뭐냐하면 귀신이 적이 아니고, 너를 괴롭게 하는 마귀가 아니고 너의 식구가 적이 아니라 네가 너의 적이다. 잘난척하는 니가 너의 최고의 적이다라는 말이에요.

잘났으니까 살게 하는 거잖아요. 이게 최고의 적이라니까요. 이게 요새 20대, 10대가 안돼요. 아~하! 안되기는 30대, 40대, 90대도 마찬가지지만은, 요양원에 있는 90대가 “내가 죄인이다!”가 되던가요? 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야~야 미안하다! 내 때문에 고생 많이 시키재?” 보통 어른들이 예의상 이런 소릴해요. 그럼 자시들은 “말로만 그렇게 하지 마시고 유언장을 좀 고쳐 주세요“ 유리한 쪽으로 유산만 좀 몰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나빠~ 참! 내가 나빠~ 우린 잘난 척해야 살거든요. 내가 나쁩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취직되요? 저는 잘났습니다! 이 회사를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이래야 취직이 되지! 어떻게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됐습니까? 제가 못난 놈입니다~ 아이고! 노인정에나 가라! 노인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내가 부족합니다! 이래선 안된다 말이죠!

십자가가 최종적인 모든 기적과 표적의 해답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유대 땅에 오셨지요! 오셔서 바로 십자가로 간 게 아니고 드디어 사건화를 폭을 넓혀요. 사건의 폭의 깊이를 더해요. 아까 반석이 밑에 있다 했지요? 우린 표면에 있지요? 점점 더 가면 반석에 가깝기 때문에 의미가 점점 깊어져요. 따라서 왜 일반인들에게는 갈릴리에선 귀신을 쫓아내는데 왜 바리세인 귀신은 안 쫓아냈지요? 바르세인 속에는 마귀와 가깝게 있기 때문에 “너희 애비는 마귀이다!”

그 속의 덩어리 자체가 아예 큰 바위 같이 바르세인속에 있어요. 잔챙이들, 귀신들은 아무 문제도 아니에요. 진짜 덩어리는 여기 있어요. 그 덩어리가 있어줘야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도록 배척을 당하지요!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하지 않아요. 고마워하지요. 하지만 유대인들은 베풀어 줘도 귀신 들였다고 우길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큰 덩어리 귀신은 마지막에 자기 할 일, 역할이 있어요.

왜 다른 귀신은 쫓아내면서 정작 자기 제자인 가롯 유다는 안 쫓아내는데요? 왜 안쫓아 내지요? 참 이상하지요? 제가 대구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것이 아니라고 누구에게 이야기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마귀한테 이야기 했지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은 게임도 안되요. 마귀가 사람은 떡으로만 살아야돼! 인간에게 전부 세뇌를 시켜놨기 때문에 통괄적으로 마귀에게 이야기 하면 되요.

마귀 마음이 우리 마음이기 때문에 “ 그래! 사람은 역시 돈이 중요하지! 현찰이 중요하지” 우리는 그저 돈, 돈이거든요. 맹목적으로 이유도 없어요. 무조건 돈 있으면 행복하고 돈 없으면 저주 받은 거고 그것밖에 몰라요. 마귀의 심성이, 마귀하고 헤어지고 난 뒤에 마귀 아닌 인간 만나봤자 마귀와 만났던 마귀의 성질이 인간 속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을 만나든 마귀를 만나든 다 똑같습니다.

이것을 보세요. 사람 만나거든 이 세자로 이야기 하면 되요. 마귀라 하지 말고 ‘마네킹’ 사람 보기를 마네킹으로 봐라! 최영 장군의 시조에서처럼 황금 보기를 돌 같이가 아니고 사람 보기를 마네킹 같이 봐라! 그냥 허수아비입니다. 서로 같이 성질 낼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어요. 응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배후에서 조정당하는 하나의 인형들이에요. 세워진 마네킹이에요.

그래서 구약에서 전쟁할 때 어떻게 전쟁 했습니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원주민들과 전쟁할 때 붙여주는 전쟁을 하지요? 그들이 아주 키도 크고 장대 하지요? 하나님은 “야! 마네킹들아 한번 붙어 볼래?” 연예인 브로마이드하고 연예인하고 같습니까? 아니지요! 브로마이드는 하나의 사진에 불가하잖아요? 실제 연예인하고 다르잖아요? 마찬가지로 약속의 땅에 있는 꼬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보면 되요. 아니면 배추밭에 있는 배추 잎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도 연설을 못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배추 밭에 데려가서 저녁 때 보니까 전부 사람 얼굴처럼 보이거든요. 연설해봐라! 연습 시킨거에요.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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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5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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