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마 18:12-14 (양 찾기)
Re..마 18:12-14 (양 찾기)
이름 : 이근호(IP:)
양 찾기
2004년 9월 5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8:12-14
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8: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인생을 불분명하게 사시면 안됩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대충 살아가시는 분이 계십니다. 뭐가 확실한 사실인지도 모르는 채 관심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전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 배후의 은닉된 사실까지 다 아셔야 합니다. 전체를 한꺼번에 다 아셔야 합니다. 분명한 것을 안다는 것은 짐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를 홀가분하게 합니다. 우리 마음을 흥겹고 가볍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31-32에 보면, "요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만은 하늘에 사시던 분이신데, 그런데 어찌 땅의 일밖에 모르는 인간들이 하늘의 일을 알겠느냐고 반문하시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에게는 단순히 하늘의 일을 알리시는 것 뿐 만 아니라 아예 자신이 원하는 자까지 살려내시는 권세까지 부여받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5:21에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이 말씀을 대하게 되면 인간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못 알아보게 되어 있고, 단지 구원될 '잃어버린 양'은 순전히 예수님의 살리려는 권세를 가동하므로 서만 구원이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양을 찾아 나서신다는, 인간 스스로 자신을 잃어버린 양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이고, 이것은 곧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 보시기에 '잃어버린 양'이라는 것이 발생되는 겁니까? 인간들은 형편이 안 좋을 때만 세상과 자신을 원망하며 살게 마련입니다. 즉 스스로를 '잃어버린 양'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이 염두에 두고 있는 잃어버린 양이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잃어버린 양의 개념과 다릅니다. 인간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렸다고 여깁니다.
실제로 설교를 들을 때면 목사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설교가 들려지기를 사람들은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잃어버린 양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외면하지 마시고 반겨서 하나님으로부터 도로 구원받은 양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설교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오해한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어느 인간 치고 '잃어버림을 당한 양'이 아닌 자가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잃어버린 양'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다 일시에 구원하시면 구원의 일이 복잡하지도 않고 간편하고 수월하게 될 것입니다.
즉 "모든 인간은 나의 양이다. 모두 다 나의 사랑의 대상이니라. 왜냐하면 나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들은 결국은 전부 다 구원된다. 하나 빠짐없이 다 구원된다. 왜냐하면 과거도 나의 양이요 지금도 나의 양이요 미래도 나의 양이요 언제까지나 나의 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잃어버린 양'이라고 특정 양을 고집해 버리면, 구원에서 제외되는 쪽의 양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은 전혀 사랑의 하나님으로 간주할 수 없고 공평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의 양, 혹은 '잃어버린 양'으로 간주해야 상식으로 바른 하나님 상이라고 사람들은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과연 예수님에 의해서 찾고자 하는 양인지 아닌지는 양 본인이 결정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양이 구원될 양으로 등장되는 겁니까? 요한복음 10:26-29에 보면,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신을 목자라고 하시면서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에게는 철저하게 기피하시는 목자 상을 말씀해주십니다. 다 보장해준다는 생명보험 회사의 선전문구와는 달리 주님은 다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그 구별됨과 분리시킴의 취지를 모르면서도 구원될 자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게 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구원받을 만한 이유가 자기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시켜 줄 이유는, 인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속에 있고, 그 내막은 예수님만 알지 인간들에게 철저하게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바로 이점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생각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향하여 많은 말씀과 기적들이 쏟아져왔든 점을 근거로해서 자기들에게 타민족과는 달리 구원받을 만한 이유가 담겨있다고 보고, 그 점을 발췌해서 유지하는 것으로 구원의 사전 준비를 갖출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만들어낸 구원의 방식으로서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예수님으로부터 도적이나 강도라는 평가를 받을 뿐입니다. 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나오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그야말로 그들의 눈에 정말이지 하나님으로부터 즉 기존의 하나님의 개념으로부터 잃어버린 양이 되시는 한 분이 이 인류 역사상에 등장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일을 시작하십니다.
인간들의 잘못된 하나님 관으로 인해 버림받는 자가 누구냐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분과 동일한 대우와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갈 자가 누구냐 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말씀하시는 '목자'란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목자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하나님 관에 도전장에 낸 건방진 종교환상가로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태반의 사람들도 다 예수라는 분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 분을 유일한 '목자'라고 알게 된 자가 등장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기이한 일입니다.
세상 적으로 봐서 전혀 얻을 것이나 건질 것이 없어 보이는 분을 추종해서 뭘 어떠하겠다는 겁니까? 세상 권력과 동떨어져진 분과 사귀어서 뭘 얻겠다는 겁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을 목자라고 생각하고 그 분의 음성을 알아듣는 자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 목자와 양 사이에는 분명 뭔가 통하는 채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채널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요한복음 10:14-18에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목자되시는 예수님의 권세 사용은 자신을 이 땅에서 더 살리고자 하는데 사용되는 권세가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권세입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님께서 염두에 두고 계시는 양만이 그 분의 죽음의 알고 나머지는 모른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이해는 예수님의 죽으심부터 출발해야지 사람들이 자신이 구원을 받겠다는 것부터 출발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 우리는 잃어버린 양이 되는 겁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자기 의'가 담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인간이 이 땅에서 무슨 일에 종사해도 허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는 의가 우리의 행함으로는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의를 주시기 위해 우리와 동등되게 이 땅에 죄인이 당하시는 모든 것이 함께 당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 세상의 참된 목자는 예수님 밖에 없음이 분명해졌습니다. 또 우리 목자의 위대성은 나를 살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던지시면서 우리가 죽어 마땅한 존재임을 밝혀주시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목자가 죽지 아니하면 우리는 살 수 없음을 목자도 알고 양도 같이 아는 겁니다. 이로서 목자와 양은 죽음이라는 공통 영역에서만 서로 통하고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34:1-3에 보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목자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저도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십자가 졌습니다. 십자가 지신 분만 따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의로 구원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다른 목자를 찾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