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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36 - 땅과 하늘강의잠언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36 - 땅과 하늘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36 - 땅과 하늘

15,07,20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악을 더듬어 찾는다 !!

오늘은 교재 117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악을 더듬어 찾는다" 라는 것은 술집을 찾아다니고 사창가를 들락거리는 것만이 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는 것, "나는 보다 완벽하고 싶다. 남에게 뒤지기 싫어. 나는 남에게 지고는 못살아" 라는 식으로 가버리면, 결국 긍휼을 경외를 모독하는 쪽으로 나간 셈이 됩니다.

"막 사세요" 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악을 더듬어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즉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술집이나 사창가에 가는 것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악이 아니라, 악이라고 하는 것은, 평소에 주신 하나님의 긍휼을 잊어버리고, 자기 스스로 독자적으로 스타가 되려고 하는 것, 그것 전체가 곧 악이란 말이다. 그러니 주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 '악하다' 라고 하는 것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지시하지 않은 것을 행했을 때 !!

어제 오후시간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지시하지 않은 것을 행했을 때, 그것을 과연 악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시한 것을 지키면 선이고, 지키지 못하면 악인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말씀의 완성차원에서는 긍휼과 자비로 이어지는데, 그러니 긍휼과 자비를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서 행동하는 것은 다 악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의 악은 구약성경보다도 범위가 훨씬 더 확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남에게 아무리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그러한 것이 자기를 교만하게 만들면, 그것이 바로 악이 된다는 말이다.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청년의 경우에, 자기는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지켰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 십계명이 이렇게 있는데, 즉 "1, 2, 3, 4, … 10"으로 말이다. 그러면 1과 2사에는 텅텅 비어있는데, 하지만 그 사이에는 긍휼과 자비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청년의 경우에는 "이것은 지키고, 그리고 이것은 내 마음대로 살고" 라고 나오니, 그게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 나는, 내 할 도리는 다했단 말이야 !!

그래서 여기 교재 117페이지에 보면,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내 할 도리는 다했단 말이야" 라고 되어있는데, 인간은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늘 속삭이고 다짐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직업이나, 혹은 자기가 어디에 살던지, 즉 미국에 살던 중국에 살던 러시아에 살던 말이다.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 그 엉뚱한 곳에서는 긍휼이 있는 곳을 향하여 결국 이렇게 외치게 됩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내 할 도리는 다했단 말이야!" 그런데 진정한 최종적인 지혜는 오로지 십자가로만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비로소 사람들로 하여금 비난받는 메시아가 된 것입니다.

나쁜 나라에 있기에 죄를 더 짓고 좋은 나라에 있다고 죄를 덜 짓는 것이 아니라, 물론 나라를 그렇게 나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제 아무리 착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라고 해도 어떠한가? 오히려 착한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여김으로 말미암아서 긍휼과 자비를 더욱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서 오세요. 방금 시작했습니다. 이리로 오셔서 앉으세요.) 지금 한 분이 더 오셔서 어쩔 수가 없이 강의를 다시 시작해야 하겠는데, 물론 다시 하더라도 모두들 듣자마자 금새 잊어버리니 강의는 항상 새롭다는 것이다(ㅋㅋ).

◈ 다시 시작하면 !!

다시 하면, 악을 더듬어 찾는다는 것이 술집이나 사창가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다 악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의 악은 구약성경에서의 율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데, 즉 악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는 말이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더 이상 어떻게 하란 말인가?" 라고, 그렇게들 나오니 말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십자가로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의롭다고 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십자가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다 의인이 되는데, 왜냐하면 십자가의 예수님의 의가 하나도 남김없이 고스란히 그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말이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교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 단독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내세워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쪽에게는 십자가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마지막 때에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라고 하면서 온갖 바른 소리는 다 하는데, 그런데 그만 십자가가 빠지고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의 모든 행동이 자기에게는 악이 되는데,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인들에게 악을 유포시키고 가르치고 있는데, 그게 맞는 말이라고 하면,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라는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 소경의 침과 흙은 왜 안 되는가?

요한복음 9장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이 등장을 하는데, 그 사람이 우연히(?)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경은 자기가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불러서, 직접 땅에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바르심으로서 낫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소경이 스스로 자기 침을 뱉어서 그렇게 하면 낫지 않고 예수님이 손을 대야 낫는가? 그게 참 희한한 일인데, 자기가 알아서 진흙을 비비면 되는데, 그런 진흙으로는 왜 소용이 없느냐는 말이다. 이 원리만 알면 앞의 문제는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요 9: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 9: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 9: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요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 주님의 목적은, 땅에서 하늘로 가는 것 !!

그것은 바로, 땅에서 땅으로 가는 것이 주님이 오신 목적이 아니고, 땅에서 하늘로 가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 그게 문제라는 말이다. "하늘은 땅 위에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늘이 아니라 땅이라는 것이다.

'김병기(?)' 라는 나이가 백살이나 된 화백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 "집사람이 없으면 집도 없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자기 집에서 아내와 자기가 함께 산다고 여겼는데, 그게 착각이었다는 말이다. 아내가 죽고 나니 집도 같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즉 자기 혼자 남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집이라고 하는 것은 아내와 같이 있을 경우에 의식이 되는 것이지, 그 아내가 죽고 나니 집이고 뭐고 간에 다 사라지고 자기 혼자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고 하니, "아내에게 잘 해주세요" 라는 것인데 말이다(ㅋㅋ).

그런데 성경말씀이 바로 그것인데, 즉 "예수님이 없으면 천국도 없다" 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너희들이 알고 있는 천국은 찢어버려라. 그것은 가짜다" 라는 것인데,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 예수님이 없으면 천국도 없다 !!

세례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것이다. 그게 같은 이야기인데, 즉 예수님이 가까이 오면 천국이 가까이 온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죽어서 천국에 갈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예수님을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책임을 쳐주시니 말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자기들의 인생을 책임져줄 신뢰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을 행해서 그 신뢰성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회개를 했는데, 그러면 그 회개가 무엇인가? "나의 기존 선입견을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즉 "그동안 내가 나의 방식으로 나를 구원해보려고 시도한 모든 방식은 모두 헛방이었습니다" 라는 고백이 바로 회개라는 것이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했는데, 그러니 천국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 주제도 파악하지 못한, 그야말로 교만하기 짝이 없는 욕망이고 또한 욕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죄 !!

자기를 천국에 넣어달라고 요청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전혀 없는데, 그런데 기어이 들어가겠다고 하면, 그것도 역시 죄가 된다는 말이다. 즉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죄가 된다" 라는 것을 사도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의견을 제시하면 하나님이 그 의견을 들어줌으로서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모든 요구조건을 차버리시고, 일방적으로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긴 자들만 데리고 가시는 것, 그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천국에 들어온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오직 주님의 그 긍휼하심에 대해서만 감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긍휼을 입을 정도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전혀 한 것이 없음을, 자기는 오히려 그런 긍휼에 반대되는 교만과 자만만이, 그런 자기 자존심과 관련이 있는 것들만 자기 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즐겁게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계속해서 하는 이야기이고,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난 이후에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도바울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 지금 우리는 십자가 사건 이전의 상황인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과 또한 부자청년을 살펴보고 있고 말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소경은 자기가 눈을 뜨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그리고 소경이 눈을 떠봐야 역시 땅이라는 것이다. 눈을 뜬다고 해서 땅에서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9장을 보면 그 스토리가 두 단계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 본다고 하니 소경이고 !!

요한복음 9장 스토리의 첫 번째 단계는 눈이 감겼는데 떴다는 것이고, 그리고 두 번째는 눈을 뜨게 한 사람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9장 마지막에는 뭐라고 하는가? "본다고 하니 소경이고, 소경이라고 하니 본 사람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요 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땅의 일을 가지고 설명을 하시다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하시는가? 땅의 인간들이 왜 하늘에 가지 못하는지, 도저히 그들이 납득할 수 없는 멘트를 주님이 날리신다는 것이다. 즉 9장 39절에 나오듯이,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 '나'로부터 해서 '나'로 !!

이것은 땅에 속한 인간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데, 인간의 땅에서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나로부터 해서 나로!" 라고 하는 것, 그것이 곧 땅의 인간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나에게 어떤 시도를 하게 되면 나에게 이익이 되고 구원이 될까?" 라고 하는, 그렇게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결과가 자기에게로 도출되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땅의 특징인데, 그런데 하늘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 시작을 하나님으로부터 해서 보내심을 받는 것인데, 그래서 진흙을 눈에 바른 소경이 어디로 가는가? 실로암 물가로 가는데, 그 실로암의 뜻이 바로 "보내심을 받았다" 라는 것이란 말이다.

◈ 보내심을 받은 자 !!

소경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고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시는가? 이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보내심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빛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증거하라고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그 소경을 실로암 연못가에 가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갔다오니 눈이 나았는데, 그것은 자기가 진흙을 바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후시딘 연고를 눈에 바르면 낫는가? 과거에는 안티푸라민을 눈에 바르는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ㅋㅋ),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코 눈이 낫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눈을 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는 소경이 되어도 괜찮다는 것인데, 눈을 떠서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든 말든 간에 그것과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이미 눈을 떴다고 하는 그 평가, 그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평가이지 결코 땅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교회 - '눈 떤 사람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러니 결국에 교회는 무엇인가? "눈 떤 사람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라고 하는 것, 그게 곧 교회라는 것이다. "부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묻는 것이 교회가 아니고, "지지리도 가난한 사람을 부자가 되게 해줍니다" 라고 하는 게 교회가 아니고 말이다. 환경운동을 하고, 또한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것이 교회가 아니고 말이다. 탈북자를 보호해주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인가? 탈북자들을 아무도 도와주어도 결국에는 사기를 당하고 마는데 말이다. 그러니 교회는 "눈 떤 사람이 누구입니까?" 라고 하는 것인데, 그러면 눈을 떤 사람의 특징은 도대체 무엇인가? 긍휼을, 그런 긍휼의 소식이 들려오는 곳에만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긍휼을 싫어하는고 하니, 목사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사들은 교인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시키는 대로 순종하게 해서 말이다. 그런데 긍휼이 오게 되면 누구에게 가겠는가? 주님에게 가는데, 그러니 자기에게 올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 주님, 이것은 저의 일이 아닙니다 !!

그래서 진정한 목사는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자기가 알아서 가겠다고 하면 안 되고 말이다. 그래서 목사는 매일같이 "주님, 이것은 저의 일이 아닙니다. 저에게 책임을 묻지 마세요. 제가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시작하셨습니다" 라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 제 마음 같으면 빨리 죽고 싶습니다. 죽어서 주님과 함께 있고 싶지, 이게 만약에 저의 일이라고 하면 저는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이기에 이렇게 살려서 시키시는 모양인데, 일이 끝나면 하루 빨리 좀 데리고 가주세요. 그런데 보내심을 받아서 주님이 그 일을 시킨다고 하신다면, 그러니 이제는 그 보내신 자를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처럼 말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9장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고 하면, 아는 것과 알려진 것, 그 사이에는 무엇이 나와야 하는고 하니, "나는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소경이 보내심을 받아서 앞으로 해야할 일이라는 말이다. "내가 눈을 뜬 것에 대해서 나는 아닙니다" 라고, 즉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에 대해서 나는 아닙니다" 라고 말이다.

◈ 그러면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이전의 사건인데, 그러면 십자가를 지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되면 그 십자가 안에 요한복음 9장이 들어있는데, 8장도 들어있고 말이다. 즉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사건도 들어있다는 말이다.

물론 요한복음 10장의 내용도 십자가 안에 들어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가? 10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내가 양을 찾으매 그 어떤 자도 그 양을 내게서 빼앗을 수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인데, 그런 것들이 모두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십자가 안에 말이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게 십자가 안에 들어있어서 그것이 능력으로 쏟아지게 되니, "주님은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는구나" 라고 하는 것이 십자가에게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 안에서의 예정론이 십자가로 인해서 자동적으로 주어지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 십자가를 믿습니까?

그러므로 "예정론을 믿습니까?" 라고 하면 안 되고, "십자가를 믿습니까?" 라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서의 예정론은 십자가에게 다 들어있으니 말이다. 종합선물세트인데, 십자가 안에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것 따로, 저것 따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십자가 따로 예정론 따로,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파가 그래서 나쁜데, 구원을 완전히 바겐세일을 해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을 상품화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이 교회가 아니고, 오직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그 보내신 분을 증거하는 것이 곧 교회란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등의 실수가 없고 말이다.

그런데 소경이 된 자의 입장에서 실로암 연못은 어떠한가? 평소에 자기가 중요하게 여겼는가?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소경은 노동력이 없기에 거지인데, 그 당시에 무슨 복지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실로암에 세수를 하기 위해서 간 적은 있을지 몰라도, 자기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의미가 없는 실로암 연못, 그리고 의미가 없는 자기 자신, 그 당시에 소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의미가 없는 둘을 이어주게 된 것은, 예수님이 찾아오실 때는 의미가 없는 것들이 생생하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살아난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의미가 있게 일어나야 하고, 터져야만 될 사태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를 알게 되면 말이다.

◈ 모든 일들은, 복음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 !!

그러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고, 복음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라고 하는 말씀은, "어떤 법을 지켰으니 하나 먹자" 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보내심을 받은 자에게는 그것이 자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과 더불어서 뭉탱이로 보내심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고전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 조그마한 섬의 추장 아버지라도 !!

사도바울이 로마로 가는데 바다에서 풍랑이 일어났는데, 그러니 그것은 풍랑이 없는 사도바울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풍랑과 더불어서 사도바울이 같이 사명을 받고 있는데, 사도바울이 자기 혼자서 받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즉 풍랑도 사도바울을 도우면서 복음을 위해서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때 그 풍랑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는데, 만약 그때 풍랑이 없었다고 한다면 멜리데 섬의 추장 아버지도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로마로 가면서도 작은 섬에 있는 추장의 아버지까지도 살리고 가는, 일이 그렇게 진행된다는 말이다.

(행 28: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행 28:2)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행 28:3)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행 28:4)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행 28: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행 28: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행 28:7)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행 28: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행 28: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행 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옛날에는 엄마가 아이를 집에 혼자 두기가 뭐해서 시장에 데리고 가는데, 그래서 "가서는 장난감을 사줄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 가서는 어떻게 하는가? 엄마는 장난감을 사주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을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짜증을 마구 부리고 말이다.

그래도 엄마는 못 들은 척을 하고 반찬거리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를 다 사고 난 다음에 제일 마지막으로 장난감을 사주는데, 그때는 이미 아이의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하고 난 뒤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장난감을 사주면 참 좋은데, 그런데 꼭 마지막에 사준다는 말이다.

마치 원숭이를 다루는 것 같은데, 즉 "사과를 아침에 3개를 주고 저녁에 4개를 준다" 라고 하니 원숭이가 마구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 라고 하니 좋다고 까부는데, 사실은 둘 다 똑같은데 말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소식부터 먼저 알려드릴까요?" 라고 해서, 그래서 좋은 소식부터 알려달라고 하면, "여러분이 오늘밤에 죽어도 낙원에 간다는 것이 좋은 소식이고, 나쁜 소식은 여러분들이 오늘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ㅋㅋ).

이제 교재 118페이지를 살펴보자.

** "나에는 생명도 없고 지혜도 없었는데, 즉 나는 죽음뿐이었는데, 생명은 저쪽에 계셨습니다. 죽을 인간이 말씀 때문에 살았습니다" 라는 고백이 될 때, 우리는 지혜와 서로 죽음 안에서 만나는 겁니다.

◈ 나는 죽음뿐이었는데, 이제 생명을 얻었습니다 !!

여기 "나에는 생명도 없고 지혜도 없었는데, 즉 나는 죽음뿐이었는데, 생명은 저쪽에 계셨습니다. 죽을 인간이 말씀 때문에 살았습니다" 라는 문장을 요한복음 9장과 비교해보라는 것이다. 즉 "나는 눈을 뜰 수도 없었고, 눈을 뜰 의사도 없었는데, 즉 나는 소경이었는데 이제 눈을 떴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땅에서 땅으로 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나는 소경이었는데 실로암 연못에 갔다가 눈을 떴습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그 멘트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생명도 없고 지혜도 없었는데, 즉 나는 죽음뿐이었는데 생명을 얻었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땅에서 땅으로 가는 게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가게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 여러분, 부자 되세요 !!

그래서 제가 "병을 낫기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지 마세요" 라고 설교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십자가라는 반환점을 돌아온 사람에게는 병을 낫고 부자가 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일반 교인들은 그래도 나름 꾹 참고 있는데, 목사들이 꼭 시비를 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그러니 건강해지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일단 교회에 불러다놓고, 그 다음에 복음을 이야기하면 되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을 교회에 불러다놓고는 어느 시점에서 복음을 이야기해야 하겠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 나왔을 때, 아니면 세 번째 나왔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되느냐는 말이다. 세 번째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처음과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하면서 집에 가고 마는데 말이다.

그래서 목사들이 어떻게 하는가? 그들을 교회에 불러다놓고는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될 때까지, 그렇게 교회의 기둥서방이 될 때까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참 기둥서방이 아니고 기둥이 될 때까지 말이다(ㅋㅋ). 그러니 처음부터 가짜였다는 것이다.

◈ 여러분, 회개하세요 !!

'회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여러분이 과거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세요" 라고 하는데, 부흥사들이 하는 짓이 그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도 또 다시 똑같은 것을 회개해야 하는데, 평소에 얼마나 회개를 하지 않았으면 모아놓고 일 년에 한 번씩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가짜인데, 회개가 없는 구원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회개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회개가 끊어진 구원은 없는데, 즉 회개가 끊어지면 구원도 끊어진다는 것이다. 회개라는 것은 자꾸만 누적이 되는데,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아무리 은혜를 받았고 십자가를 알았다고 해도, 그것이 우상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회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믿음이 좋다니" 라고 하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떻게 되는가? 주님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만 자기 자신으로 빠지고 마는데, 그렇게 되면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그런 사명을 주어서 보냈는데, 그런데 막상 보내놓으니 자기가 잘났다고 해버리면, 보내신 자와 보내심을 받은 자가 틀리고 만다는 것이다.

◈ 내가 주님을 안다 !!

다시 말해서, 주께서 알게 하신 것과 자기가 아는 것의 틈 사이에서 회개가 일어나는데, 아무리 같이 "내가 주님을 안다" 라고 해도, '내가' 라는 것이 강조점이 있는 것과, '주님'에게 있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두 개가 아무리 같은 문장이라도 해도 그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니 항상 인간은 어떠한가? 땅에서 하늘로 가야하는데, 하늘로 올라가다가 땅으로 도로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우리를 보낸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역시 땅으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 미션임파스블 !!

그것을 어제 제가 설교하면서 예로 들었는데, '미션임파스블' 이라고 말이다. 5명의 비밀요원들에 무슨 명령이 떨어지는가? "어느 국가에 가서 그 독재자를 제거하세요. 만약에 발각이 되어도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음성테잎은 5초 이내에 자동폭파가 됩니다" 라고 하는데, 첩보영화에 단골로 나오는 멘트인데 말이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음성이 담긴 테잎은 사라지고 5명의 비밀요원밖에 없는데, 미션임파스블, 즉 '불가능한 사명' 이라는 것이다.

그런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물론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다시 성령께서 다스리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을 주께서 하셨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기에 "주님, 너무나 힘듭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아버지요, 참 힘들었거든요 !!

영화 '국제시장'에도 보면 그런 멘트가 나오는데 말이다. 6.25 때 아버지가 흥남부두에서 헤어지면서 하는 말이 "너는 장남이기에 가족들을 잘 돌봐라" 라고 하는데, 그래서 장남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가족들을 돌보는데,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월남까지 다녀오면서 말이다. 아마 여러분은 영화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 싶은데, 마지막에 보면 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혼자서 하는 말이 "아버지요, 제가 참 힘들었거든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힘이 드는데, 하지만 천국에 가서 그 이야기를 해보라는 말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겠는가? "저리 가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가룟 유다의 자살은 바로 이것인데, 하늘로 도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말이다. 자기도 기적을 베풀고 했지만, 자기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고무줄처럼 끝까지 자기가 자기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스승을 돈에 팔다니? 이런 기분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차라리 죽자"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비해서 나머지 11제자는 무엇인가? 뻔뻔스럽기가 짝이 없는데, 그래서 "주님도 없는데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고기나 잡자"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마치 귀신처럼 끈질기게 나타나셨다는 말이다.

◈ 찾아오시고, 사라지시고 !!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파견을 받아서 땅에서 근무하게 되면 그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찾아오시고, 또한 사라지시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라진다' 라는 게 환장할 일인데 말이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나오는데,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홀연히 찾아오신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으로 끝났는데, 그 이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떻게 되셨는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보면,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셨는데, 늘 함께 계셨는가? 가끔 계셨는가? 가끔 계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과연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뭔가 떠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함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불쑥 불쑥 자기가 필요한 시간에만 찾아오신다는 것이다.

(행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행 1: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행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바울이나 스데반 집사님의 경우에도, 주님이 옆에서 소곤소곤 늘 멘트를 날리는 것이 아니라, 교도소에 있을 때나 위기상황이 오면 비로소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라고 나오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같이 있어주면 참 좋은데, 그것이 아니라 또 다시 떠나고 만다는 것이다.

(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 아빠는 출장 중 !!

그러면 왜 그렇게 하시는가? 마치 출장을 자주 다니는 아버지처럼,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그동안 잘 있었어? 여기 선물을 사왔어" 라고 하시는데, 그런데 학교에 갔다와 보니 다시 출장을 가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가 뭐라고 하시는가? "아빠가 미국에 출장을 갔는데, 언제 올지는 모른단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이것은 무엇인가? 아버지는 아들이 생각하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다는 것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을 말이다. 주님과 오손도손 같이 잘 살고 싶은데, 그런데 주님은 그런 현실을 파괴시켜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님은 바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주님의 현실만 인정하고 우리가 그동안 다듬어놓은 현실은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를 '상상계' 라고 하는데, 그 상상계의 특징은 오인(誤認), 즉 잘못 판단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상한다' 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엉터리다. 일방적이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은, 자기가 상상한 그 현실 외에 다른 현실은 없다는 것이다. 약간의 변동사항은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 문질러버리시는 주님 !!

그러니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되겠는가? 날마다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서, 즉 상상에 따라서 변경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는 '변화된다' 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은데, '문질러 버린다' 라고 말이다. 여기에는 그 앞에 하나가 생략되어있는데, '열매를' 라는 것이 말이다.

그러니 열매를 콘크리트에 문지르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터져서 그만 엉망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성도의 상상을 문질러버리는데, 성도가 생각하는 현실에 말이다. 그것도 마귀를 보내서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꿈은 다 산산조각이 되고 마는데, 그렇게 변화가 되면서 등장하는 분이 누구인고 하니, "나는 너를 보냈다" 라고 하시는 주님이 등장하시는데, 그게 바로 그 지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문질러버리는데, 즉 우리의 주체를 해체시켜버리신다는 말이다. "아, 나는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다" 라고 하면, 주님께서 나타나셔서는 "누가 너보고 그렇게 살라고 했나?"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보냄을 입은 자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그것을 주장할 권리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성도가 처해있는 현실은 자기 마음에 들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에 들어서 붙여주신 현실인데, 그래서 주님은 언제 나타나시는가? 우리가 변화가 되어야할 시점에 나타나셔서, 주님의 힘으로 우리로 하여금, 새로 주어진 현실이 주님에게 필요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그러한 시점에 주님이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미션임파스블인데, 즉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녹음테잎을 가져다주신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남편은 집에 놀고 있는데, 그래서 여자가 바깥에 나가면서 어떻게 하는가? 살림을 살아야 하는지, 그것을 냉장고 등에 포스트잇에 적어서 붙여놓는다는 것이다. 현미쌀은 어떻게 불려놓고, 음식 쓰레기는 어떻게 하고, 이불을 빤 것은 어떻게 하고, 그런 것은 살림을 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오후에 택배가 오는 것은 잊지 말고 받아놓고, 그리고 시간이 나면 냉장고를 청소하고 말이다.

제가 그런 것들을 안다고 해서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라는데(ㅋㅋ), 아무튼 사람은 자기 세계 안에서 자기가 스스로 탐닉하는데, 그것을 나르시즘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반하고, 자기 것으로 행복에 젖어버리는, 그렇게 인간이 고정되고 만다는 것이다.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말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것을 문질러버리는데, 그때는 마귀가 와서 다투는 가운데서 그렇게 되는데, 그러니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난 다음에 '오늘의 사명' 이라는 스티커가 주어지는데, 그게 바로 성도의 일생이라는 것이다.

◈ 약속의 땅인가? 굶주림의 땅인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성경에 모두 나와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일생이 그러하고 말이다. 구약의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그냥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약속의 땅에 갔는데, 거기에 가뭄이 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약속의 땅인데, 그런데 살지도 못하고 굶어 죽을 지경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애굽으로 갔는데 그만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마누라를 팔아서 재물을 얻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아브람은 문질러지면서 사라지고 아브라함으로 정립이 된다는 것이다.

이삭의 경우에, 자기가 좋아하는 맏아들에게 기업을 유산으로 물려주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만 둘째 아들이 자기 마누라와 짜고 사기를 치는 바람에, 그만 재산이 첫째에게는 전혀 가지를 못하고 둘째에게 다 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삭은 자기만의 세계가 그만 문질러지고 말았는데, 그것도 거짓말로 인해서 말이다.

◈ 야곱은 분명 거짓말을 했는데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야곱은 분명하게 거짓말을 했는데, 그런데 그 거짓말이 유일하게 땅에서 하늘로 연결되는 고리라는 것이다. 거짓말로 인한 다툼이 없었다고 하면,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돌베개를 베고서 꿈도 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쫓겨나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러니 야곱은 형과 자신이 분리되는 과정에 있어서, 자기의 죄가 거기에 분리되는 요소로서 들어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좋은 것이 좋다고, 이것은 형이 하소. 이것은 제가 할게요" 라고, 그렇게 될 줄로 알았는데, 그런데 자기가 쫓겨가는 식으로 분리가 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해인데, 천국에 간다고 하니 자기가 시나리오를 다 짠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간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천국에 가는 길을 보면 경기가 날 정도인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나는 이렇게 해서는 살 수 없습니다" 라고 하는 소리가 나면서 천국에 가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게 좁은 길이라는 것이다.

◈ 그것은 상상 속의 천국 !!

자기가 알아서 좁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닌데, 자기가 알아서 고난을 받고, 헌금도 많이 하고,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사업도 하고 말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흉내를 내는 상상계인데, 즉 자기 상상의 세계 속에 있는 천국에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다 사기인데, 그래서 교회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간증집회가 자꾸 열리고 하니 말이다. 간증집회는 남의 인생이 자기 인생과 겹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가만히 있다가 죽어도 순교인데, 그런데 꼭 아프리카에 가서 인질로 잡혀야 순교냐는 말이다.

◈ 나는 대우를 받고 싶어 !!

제가 선교사들에게 하는 말이 그것인데, 아프리카에 간다고 해서 선교가 아니고,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곳은, 즉 실로암 연못은 바로 현재 우리가 태어난 이곳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가 바로 선교지인데, 그런데 무슨 새삼스럽게 선교를 한다고 그런 곳에 가느냐는 말이다. 필리핀이나 아프리카도 문제지만, 또 미국이나 호주는 왜 가느냐는 말이다.

사실은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첫째는 자기가 목사로서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이고, 둘째는 자녀들의 교육문제인데, 그러니 자기 장래를 위해서 간다는 것이다. 선교는 핑계이고 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는 사람들을 상대하기가 귀찮아서 나간다는 것이다.

자기가 목회에 짜증이 나서 쉬고 싶고, 그래서 자기보다도 질이 낮은 사람들에게 가서 대우를 받는 재미도 나름 괜찮다는 것이다. 자기는 열심히 준비해서 설교를 하는데, 듣는 사람들 자기보다 더 똑똑하니 그 현장에서 도피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선교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그게 나쁘다는 것이다. 선교는 주님이 하시는데, 그런데 자기가 왜 중간에 끼느냐는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선교가 되게 해주시는데 말이다. 언제부터 주님의 일이 자기 일이 되었는가? 그런 식으로 자기가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선교는 "주여, 이제 그만 죽여주옵소서" 라고 할 때, 그때 비로소 선교가 된다는 것이다. 즉 "저는 더 이상 할 줄도 모르고, 하는 것도 없습니다" 라고 할 때 말이다.

◈ 나는 아무 것도 하기 싫다 !!

삼성카드 광고에 보면 다음과 같은 멘트가 있는데, "나는 아무 것도 하기 싫다. 이전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아무 것도 하지 싫다. 극렬하게 하기 싫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서 웃으면서 나오는데, 유해진이 등장하는 광고인데 말이다(ㅋㅋ). 그런데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국은 일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느 개척교회의 변' 이라는 글이 있는데, 한 번 잃어보자.

** 교회를 사임하고 가진 휴지기에 나는 온 힘을 다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목회자의 리듬에서 벗어나서 다른 성도들과 같은 삶을 살아보려고 하는 중이다. 말씀을 받겠다고 주구장창 성경을 읽거나, 교회개척을 서둘러서 시작하지 않는다. 기도원에 들어가라는 어른들의 권면도 애써 무시한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준비하려는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뭔가 시작이 된다. 일을 피하려고 하는데 일이 들어온다. 예배당은 있지만 예배를 드린 적은 없다. 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일들로 인해서 자꾸만 불려 다닌다.

**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은혜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은혜라는 이름을 종종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은혜는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그저 받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꽤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본다는 자들이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저 받았기에 우리는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인데, 물론 우리가 그저 받기까지의 주님의 희생과 아픔이 있었는데, 그런데 은혜를 잊어버리니 그것도 같이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바로 죄다" 라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 인간은 언제나 낯선 이야기를 !!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은 땅에 하늘로 보냄을 받은 자들에 관한 것인데, 즉 자아가 문질러지고 마는데, 즉 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아는 것도 같이 깨어지기 때문에, 항상 자기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의외의, 즉 낯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하다" 라는 이야기를, 그리고 마귀에게 유혹을 받아서 실패한 이야기를 말이다. 그렇게 해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즉 하늘에 속한 사람이란 티를 내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는 아무런 나쁜 짓을 한 적도 없는데 몸이 아프다든지, 혹은 재산상의 손해가 와서 인생이 꼬이게 될 때 말이다. 그러면 자기는 그 원인을 얼마나 찾고 싶겠는가?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욥의 믿음은, 하나님의 일방적 평가 !!

마치 욥과도 같은데, 욥의 고난이 어디서 왔는가? 하늘에서 열린 천상회의에서, 즉 하늘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땅에 있는 욥과 그의 친구들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니가 별을 만들 때 어디에 있었느냐?" 라고 하시는데, 즉 인간은 없고 하나님만이 계실 때의 일을 가지고 욥에게 들이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시는가? "욥아, 니가 의롭게 되고 믿음이 있다는 것은, 그것은 니가 행동을 똑바로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평가와 판단은 하늘에 있는 나의 일방적인 평가고 판단이었다" 라는 것이다. 즉 "욥이 믿음이 있다" 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평가는, 그것은 욥의 지상에서의 행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님이 일방적으로 내려주시는 것이란 말이다.

◈ 미래에 믿었다 !!

그래서 어제 설교 중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이 무엇인고 하니, "미래에 믿었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좀 설명을 해야하는데 말이다. 제가 설교를 해놓고도 교인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준 것 같아서 미안했는데 말이다. 우리의 어법으로는 "미래에 믿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맞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고 "미래에 믿었다" 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과거에 믿었다" 라고 하면 말이 되는데, 그런데 "미래에 믿었다" 라고 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미래에서 볼 때 너는 이미 믿은 자이다" 라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우리는 미래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미래에 도착해보면, 우리는 "애초부터 믿었다" 라는 것으로 쳐주는 상황 과 사태 속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돌아보면서 감사하게 된다는 말이다.

욥은 하나님을 원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없는 믿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은 욥의 마지막 때에 드러나는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아하, 주님의 일방적 평가대로, 또한 평가가 정당함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서 나에게 고난이 찾아왔구나" 라는 것이다. 즉 욥이 의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이 의롭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욥이 걸려들었는데, 그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고, 그렇게 우리가 사용이 되어졌다는 말이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너희가 예수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었다" 라고 하는데, 그것을 마지막 평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과거에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 라고 되어버리면, 당연히 그 다음에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할까요?"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말이다.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무조건, 주님이 옳습니다 !!

그러니 성도는 무엇을 하더라도 "주님이 옳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그게 성도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것의 극단적 표현이 로마서 9장 3절에 보면 나오는데,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사도바울의 이런 배짱이 그야말로, 타짜도 이런 타짜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도 패도 보지도 않고 그냥 올인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패는 이미 주님이 다 알고 계시니, 자기는 그 패를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굳이 쪼고 말고 할 필요도 없는데, 그냥 덮어놓으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마귀를 보고 까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까니 욥이고 마귀라는 것이다.

* 마귀 : 미래에 니가 천국에 간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노?
* 성도 : 내가 미리 안 것이 아니고 보내심을 받았기에 그렇게 되었다.
* 마귀 : 그게 정말인가?
* 성도 : 그래, 결코 내 힘으로 안 것이 전혀 아니다.
* 마귀 : 진짜로?
* 성도 : 그래서 평소에는 나도 몰라서 수시로 주님을 오해한다.

◈ 한 달 수입이 얼마예요?

사실 우리도 "아버지여, 나도 참 힘들었어요" 라고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주님에게 원망을 하는가? 그래도 남들은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알아서 관리를 하는데, 그런데 왜 우리 인생은 그렇게 관리가 되지 않고, 그래도 자기가 좀 관리를 한다 싶으면 주님이 간섭을 하셔서 그만 다 박살을 내버리고 만다는 말이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도 우습고, 특별히 내놓을 인생도 없다는 것이다. 월급을 얼마나 받느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그야말로 답하기도 곤란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묻는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조금 전에 말한, 즉 우리의 자아를 문지르기 위해서 주님께서 마귀를 보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를 문지르기 위해서 말이다.

◈ 일단 정리하면 !!

여기서 일단 정리를 해보면, 요한복음 9장의 이야기는 무엇인고 하니, 땅에서 땅으로 가는 것 같은데, 즉 "소경이 눈을 떴다" 라는 것은 땅에서 원하는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도록 하시는데, 그러면 이제는 눈을 뜨고 말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경이 되어서 주님을 믿으면 소경이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앞을 보아도 주님을 믿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것이란 말이다. 즉 자기가 소경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 하지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보라는 것이다. 주님의 보냄을 받은 자라고 하면 소경이 아니고, 하지만 보냄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 즉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는 자라고 하면 반드시 소경이라는 것이다.

이게 하늘의 안목에서 봤을 때의 요한복음 9장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하면 되는데, 물론 요한복음 9장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성경들도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그러니 설교를 들으면서, 그게 제대도 된 것인지 아닌지는, 그 설교가 땅에서 땅으로 가는지, 아니면 땅에서 하늘로 가는지, 그것만 살펴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로 갔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보내심을 받은 자, 바로 그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나'로 출발해서 그만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땅에서 그만 땅으로 가버리는, 즉 인간의 상상에 속하는 마귀적인 성경해석이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9장을 그렇게 정리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재 119페이지를 보자.

**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라고 했을 때, 여기서 몇 가지 의문점이 발생할 수 있어요. 잠언을 유교의 삼강오륜이나 윤리와 도덕으로 연결할 때는 그 연결점이 없습니다.

(잠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 왜 남자이고, 왜 여자인가?

여기 잠언서 19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라는 구절을 풀려고 하면 상당히 복잡한데, 먼저 "왜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있는가?" 라는 것이다. 즉 남자로만 되어있던지, 아니면 여자로만 되어있던지, 왜 그렇게 되어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러한 동일한 신체구조가 아니라, 왜 남자와 여자로 구분해서 만들어놓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서는 왜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들지를 않고,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면 같이 만들면 되는데 말이다. 성경이 아닌 다른 신화를 보면 같이 만드는데, 태국의 신화에 보면 남자와 여자를 같이 만드는데, 많이 굽히면 흑인이고, 덜 굽히면 백인이고, 적당히 굽히면 자기들과 같은 황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빵을 굽는 분도 아니고 말이다(ㅋㅋ). 아무튼 하나님께서 왜 남자부터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여자를 만들었느냐는 말이다.

◈ 주체와 객체 !!

이제부터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설명해드리겠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사람들은 뭔가가 들어지게 되면 그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만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신앙의 대상이 그만 '나' 라는 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자나 여자도 똑같은데, 그렇게 신앙의 대상이 되고 나면, 자기 자신이 절대화가 되면서, 자기를 빼놓고 나머지는 다 객체화가 된다는 말이다.

주체의 반대말이 객체인데, 즉 자기는 주체가 되고 나머지는 다 객체가 된다는 것이다. 주체를 주관이라고 하면, 여기는 객관이 되는데 말이다. 자기를 빼고 객관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인데, 어떤 대상인가? 자기의 것으로 도로 가지고 올 허구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저것을 손을 좀 볼까? 말까?" 라고 할 말이다.

그것을 누가 하는가? 자기가 자기에게 명령을 내리는데,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흔들 수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부정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나'이기에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미워하라" 라고 하셨지만, 우리 인간은 그렇게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은, 자기를 미워할 수 없어 !!

불교가 그러한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즉 자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난 뒤에 다시 깨끗한 자기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가 욕심을 버린다고 해도, 그 욕심을 버린 당사자가 누구인가? 바로 자기 자신인데, 그것이 가능하냐는 말이다. 무아를 경유해서 유아가 되는데, 즉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여기서 그만 분절이 일어나는데, 자기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해소하지 못해서 남에게 분통을 터트리는데, 즉 남의 것을 빼앗고 죽이고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나를 섬기는데 성에 차지 않는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범죄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남자나 여자나 왜 술을 마시는가? 자기가 원하는 자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 갭을 메우기 위해서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분이 좋을 때는 왜 마시는가? 자기가 생각한 자기보다 더 과분한 자기 자신이 되니, 그 기분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술로서 발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기분이 좋아서 오늘은 내가 쏜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술과 담배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게 자기를 속이는 짓이니 말이다. 음식의 일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의도를 가지고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겠다" 라고 나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술은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기대를 하는 것이 있는데, 마시고 난 뒤의 그 황홀한 기분을 말이다. 그리고 뭔가 마저 채워야 하겠다고 노리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 야, 막걸리나 한 잔 하자 !!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목이 마르면 "야, 막걸리나 한 잔 하자" 라고 나오는데, 특히 시골에서 말이다. 그냥 물을 마시면 되는데 왜 술이냐는 것이다. 한 번 취해보자는 것인데, 즉 고통을 좀 잊어보자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것이 고통스러운데, "내가 꼭 이런 짓을 해야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그 어느 순간이라도 자기를 믿지 않는 순간이 없는데, 그래서 매일같이 "내가 꼭 이런 짓을 하면서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은 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가? 정말로 살아가는 것이 짜증이 난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고상하게 주체와 객체로 이야기하면, 방금 이야기한 것과 같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는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너희들은 만드신 분을 섬겨야 하지, 만들어진 자기를 섬기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을 지적질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 자신을 만들어서 우리 자신을 하나의 감시자로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슬기로운 아내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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