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투영체 150710
말씀의 투영체 150710
이름 : 이근호(IP:119.18.86.67)
권선희(IP:203.♡.206.24)
15-07-23 11:21
히브리서 10장 26절,27절
야, 사람들이 무지무지하게 질문하는 구절이예요.제가 읽어볼게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이 대목! 이 대목에 사람들은 갑자기 심장이 얼어붙는 거예요.
예수 믿고 죄 지었으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 이 이야기잖아요.이 이야기!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라는 거! 그 점을 강조해서 보세요.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죠.
예수님 믿는 믿음을 내가 어쨌든 간에 유지하는 방법밖에 없지요? 그런데 유지 못한다면 어떻게? 유지 못할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이거 괜히 알았어.괜히 알아가지고 빼도 박도 못하고 괜히 알아가지고 탈락해 버리면 이거는 뭐 표현도 보세요.“맹렬한 불” 그냥 불도 아니고 “맹렬한 불”이예요.“맹렬한 불!” 지옥불이죠! 그냥 지옥가도 서러운데 이 지옥에 뭐가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까? 맹렬한 불이 기다리고 있지요.
그러면 사우나도 한 10분 있으면 뜨거워서 후딱 뛰어나오는 사람이 10분이 뭡니까?
영원토록 맹렬한 불에 시달리는데 이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하신 마태복음에 이런 대목에 가게 되면 이건 뭐냐 완전히 중국집 주방같애요.구더기를 볶아, 볶던지 안그러면 치킨집에 튀김하던지 하여튼 인간세상에서 맹렬한 불에 시달릴 수 있는 모든 그럴싸한 경우를 다 끄집어 내 보세요.그리고 거기에 우리가 하나의 오징어나 고추나 그리고 튀김 한 종류있잖아요, 그것이 우리 거기 튀기는 기름 구덩이 속에 우리가 놓여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 유황불이라 하는데 유황불도 냄새도 별로 좋지도 않아요.유황불 속에 우리가 놓여있는데 거기 한 일이 년 살다가 퇴소! 이제는 다시 원상복귀 되는 게 아니고 영원토록 그런 불에 튀겨진다면 구더기를 죽으면 괜찮은데 이게 죽지를 않네요. 그냥 튀기는 아픔만 있을 뿐이지 죽지를 않고 계속 가는 거예요.
저는 남자라서 애기를 안 낳아 봤습니다 마는 애기가 쑥 빠져버리면 성경에 나오는 얘기니까 저는 모르지만 그 애기가 나올 때 그 아픔이 해산하고 난 뒤에는 그것이 해소된다면서요? 뭐 해소되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잊어버린다? 기쁨이 더 커서 그런다 이거죠.만약에 그게 변비처럼 안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나? 보통문제가 아닌 거예요.
이 본문을 보고 두 가지 문제! 뭐냐 하면 내가 나중에 죄지으면 지옥 갈 생각을 하니까 끔찍한 것과 그 보다 더 큰, 그것보다 더 아픈 것은 나는 뭐 어떻게 하든지 이걸 알아가지고 죄지을 때 마다 회개하고 지을 때 마다 회개해서 그때 그때마다 예방주사 맞고 회개한다 칩시다.
사랑하는 가족! 그게 아들이야 뭐 그렇지만 딸내미,딸이 만약에 복음을 모른다,교회는 다니는데 복음을 모른다, 또 아들이 아예 교회를 안 다닌다,걔는 술만 먹고 다닌다,그리고 남편이야 지옥가든 말든 그건 놔둬버리고,이 내 사랑하는 자식이 뭐 강아지야 지옥 같은 거 자체가 없기 때문에 괜찮은데, 이 유황불에 간다,그때 나 혼자 천국 간다면 이게 혼자 천국에서 맘이 편하겠느냐 하는 그 문제입니다.맘이 편하겠어요? 차라리 그 내리사랑이라는데. 차라리 아들을 천국 보내고 내가 아들이 고생하는 지옥자리에 내가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 부모심정이잖아요.그저 못해줘서 맘이 아프잖아요,못해줘서! 해줘도 해줘도 끝이 없이 그래도 미흡하고, 아직까지 해줘도 자식에게 덜 했다는 게 부모마음인데, 이것이 이세상에 있을 때는 집이나 사주고,퍼주고,매일 김치나 담아주고,아이나 손자 봐주면 되는데 이 지옥문제에 대해서는 부모라는 자격으로 이게 해결될까요? 안될까요? 이게 해결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공부 시작했으니 정리해 봅시다.
히브리서 10장26~27절 이 말씀은 결국 이 말을 사자성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사자성어로 이야기 한다면은 ‘해결안됨’ 해결 안된다는 겁니다.그 인간에게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반면에 할 수 있는 일,해결가능이라 합시다.해결가능이 어느 포대기에 싸였다? 해결안됨 포대기에 지금 싸여있는 거예요. 해결안됨 포대기에.해결가능이 해결안됨을 점령할 수 있느냐? 여기까지 잡아당길 수 있느냐? 이게 안된다는 거예요.이게 안되요.왜냐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피조물이란 말은 뭐냐면 내가 알아서 내가 창조 안 했단 뜻입니다.예,내가 알아서.내가 알아서 창조하면 아이큐 155에다가 인물은 이쁘게,다 하겠는데 내가 나를 알아서 만든 게 아니잖아요.
이것은 뭐냐하면 투기됐다.그냥 투기! 돈 투기 말고 툭 던져버렸다.
철학자가 그렇게 얘기했어요.’인간은 툭 던져진 존재다
’예를 들면 내가 미리 알았으면 재벌집 아들로 태어나고 싶은데,툭 던져져서 눈 떠 보니깐 조실부모하고 집안 다 말아먹고 이렇게 되었을 때,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그냥 수동적으로 수납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예요.이 처지가!수납할 수 밖에 없어요.
경주를 해야 되는데,남들은 토끼,사자,말로 태어나는데,나는 딱 태어났는데 거북이로 태어났어. 그리고 사회에 나왔는데 ‘거북이냐?’이런 거 묻지를 않아! ‘요이 땅! 달려!이건 뭐 발이 요만한데 달리기는 뭘 달려? 개도 아니고,슬슬 기어가는데!물론 자기 뒤에 지렁이도 있고,달팽이도 있겠지만!그건 눈에 안 들어오거든요.쉭쉭 빨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그래서 이 투기된 삶을 어려운 말로 실존이라고 해요.실존이란 말은 뭔 뜻이냐 하면 내가 상상한 내가 여기 있다! 그것은 실생활에 아무 소용없고 내가 원치 않는 이 상황 안에서 나는 내 상황에 일부가 되어 있음을 나는 아무 군소리 말고 그냥 받아 들여야 되요.
어떤 여자분들은 남자 안됐다고 삐지는 사람 있고 어떤 남자는 여자가 아니라고 삐져서 자기가 자기 맘대로 여자로 바꾸고! 하리수 같이 자기가 수술해서 바꾸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심지어 남자들 군에 갈 때 ‘아 내가 여자로 때어났으면!’그것이 남자들 군에 갈 때 다 그렇게 생각해요. ‘여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군대묻기!정말 군생활 잘하는 사람들 빼놓고는 다른 사람들은 너무 힘들 때는 그런 생각을 해요.
하지만 그건 다 실없는 소리예요.그것은 자기 실존을 모독하는 겁니다.실존을 모독하는 것! 실존은 변경이 될까요?변경이 안될까요?변경이 안되요.다른 말로 하면 내게 주신 상황은 변경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변경이 안되니까 약이 오르잖아요.그래서 뭐라고 하냐면 ‘나의 희망은 주어진 상황을 바꾸어서 남 보란 듯이 내가 이렇게 큰 성공했다는 거 내세우는 것입니다.말로는 그렇게 하는데 상황이 바뀌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뭔가 있어줘야 상황이 바뀌지 전혀 가능성 없을 때는 전혀 그런 것도 바뀌지를 않아요.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그겁니다.내가 상황을 바꾼다는 개꿈 같은 거 꾸지 마시고 상황이 나를 바꾸어 주게 되어있어요.
하나 예를 들께요.콩고에 사는 사람들이 콩고에 사는 국민들 있잖아요.그 사람들끼리 출세하니 성공하니 해 봤자,기껏 출세해봐야 콩고나라에서 출세해봐야 그들의 소득은 우리나라의 반에 반도 안되거든요.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자기나라에서 자기들끼리 ‘너 출세했나? 좋은데 장가갔나?시집갔나?’이렇게 하고 있다 말입니다.그런데 콩고나라에 반란이 일어났어요.반란이 일어나서 어떤 사람이 강제로 추방이 되어서 한국에 와 버린 거예요.콩고에서 한국에 온 사람 있죠?남미에서 온 사람! 그 사람의 한국 삶이요.광주조선대학교 교수인데 지금 한국 교수생활이 콩고의 어느 직장보다 나아요.
이것이 본인이 원했던가요?이쪽에서 추방시킨 겁니까?강제추방 시킨 거죠?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뭐냐면 내가 환경을 바꾸어봤자 기존의 환경에 물들은 한계 내에서만 꼼짝거리는 것 밖에 안된다 말이죠.’내 꿈을 펼쳐야지’ 내 꿈을 펼쳐봐야 기껏 가스회사 취직하는 거예요.
그게 제벌 3세딸한테
‘네 꿈을 펼쳐라’
’아버지, 제 꿈을 펼치겠습니다’
‘뭐 할래?
‘가스회사 경리 보는 거요’
이것은 그쪽 바닥은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이 꿈을 꾼다는 것도 이미 주어진 환경에서 약간 앞선 것 뿐이지,인간은 상황을 못벗어 나요.꿈을 꿔도 터무니없는 꿈은 상상도 안하잖아요.
가령 예를 들겠습니다.어떤 사람이 지갑을 주웠는데 돈이 2억 들었어요.그 사람은 방송에 나오고 했는데 자기가 돌려줬지요. ‘사례금도 안 받았습니까?’하니까 ‘내가 주인 찾아주는데 무슨 사례금을 내가 받습니까? 주인이 와서 주인 찾아주는 것이고 내꺼 아니면 돌려 주는 게 마땅하지요’ 그 사람이 만약에 지갑 찾아 줄 때가 부도나서 이제 굶어 죽을 때, 마지막 빵 조각 먹고 죽자 하고 있는데 지갑 찾았을 때,그 사람이 사례금 안받겠는가?(목사님 그거 10억이예요/2억이 아니고 10억입니까?) 그걸 안받겠는가?
그리고 만약에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사람 이름이 뭡니까?빌 게이츠가 길에서 10억 주웠다? 안 찾아줬겠어요? 찾아주죠 왜? 푼돈이니까! 껌 값도 안 되는데 내가 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 상황 속에 있는 상황! 그 사람 나름대로 살아왔던 인생관! 남들 보기엔 대단하다 하지만 그 사람한텐 대단한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거예요.
만약에 그 사람이 어떤 사업을 하면서 1000억짜리 사업을 따낼까 말까 할 때는 양보없지요,경쟁에 나서겠지요. 나는 이것도 양보해 그렇진 않을 거란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말씀대로 삽시다 하는데 성경대로 살 수가 없어요.성경에는 뭐라고 되어있냐 하면 먹는 것,입는 걸로 사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한 두명이 아니고 아프리카에 가면 수두룩하잖아요.먹는 것 입는 걸로 살아라 이 말이 아니고 그 다음 말이 어려워요.’족한 줄’이게 안돼요.
이 가난한 사람이 돈을 더 탐내요.한번 봐라,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야 말리라.이 지하방에서 벗어나리라.
반드시 족한 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니깐요.사람들이 어디에 던져져 버리면,현대중공업이 어려워요.4천명을 구조조정한대요.1차,2차,3차에 걸쳐서,울산에 가면 이런 이야기 듣거든요.4천명을 내보내야 되요.그런데 현대중공업사장님 지금 뭐 먹고 삽니까? 밥 먹고 살잖아요.족한 줄 알아요?천만의 말씀!옛날에 잘나갔던 그 시절로 빨리 돌아와야 되요.그래서 구조조정하고 이러는 거예요.
사람이라 하는 것은 제가 하는 말은,인간은 멈출 줄을 몰라요. 뭔가 내가 나를 관장하고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뭔가 다른 요소에서 조종 받고 있어요.그걸 가지고 불순종의 역사하는 영!사탄입니다.악마가 우리를 계속 조종하고 있습니다.
뭐 성도는 안 그럴 줄 알아요?성도도 마찬가지예요.악마가 조종하는데 성도가 좋은 점 딱 한가지예요.성도를 악마가 조종하는데 그 악마를 주님이 조종해요.그래서 성도한테는 악마가 꼭 필요해요. 왜?그걸 인간 만들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 말은 헛소리가 아니고요 이스라엘 광야나 가나안 땅에서 사탄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갖고 놀았습니까?다윗의 인구조사 누가 시켰어요?사탄이 시켰잖아요, 하나님의 나라 거룩한 백성인데 사탄이 하려고 하는 것을 왜 주께서 막지 아니하냐?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탄을 사용해서 이야기하는데.
사탄이 아예 안 들어오면 좋겠죠.그 방법 아니예요.주께는 사탄도 천사예요.천사를 가지고 적절하게 우리 인간을 개조하는데 꼭 필요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떻게 활동하느냐?우리가 사탄을 부르느냐?아닙니다.야고보서에 이렇게 되어있어요.”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4장에 보면 이런 말 해 놨어요.세상을 사랑하는 여자를 뭐라고 표현했냐 하면 간음하는 여자라고 하죠.간음과 세상 사랑하는 여자와 어떻게 매치가 됩니까?이걸 강남에 있는 교회가 그걸 설교해 보세요.전부 명품 다 숨겨야 되요.세상을 사랑한 여자는 간음한 여자다! 뭐 이혼감이다 이말 이거든요.뭐 주님하고 이혼해야 되지만.
그러면 간음이 안될려면 뭘 사랑하지 마라?세상 사랑하지 마라.아니 지금 우리가 어디에 던져졌는데요?세상 자체에 던져지면서 세상사람으로 숙성이 되어있는 입장이거든요.속속들이 세상이 스며들어있는 우리는 스폰지예요.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우리 속에 계속 녹아 들어온 게 뭐냐면 세상이예요.
세상과 우리를 분리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겁니다.수박에서 단맛 따로 뽑아 낸다?농축 안시키면 그런 일 없잖아요.
어떤 사람이 그런 소리했는데 ‘말이야?막걸리야?”하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나도 드라마에서 그런 말 나왔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약간 천박한 사람들이 말이 안되니깐 억지를 부리는 그런 투로 ‘말이야?막걸리야?’ 얼마나 막걸리를 좋아했으면,말 같지 않은걸 자기 좋아하는 막걸리라고 하는 모양이죠?
그런 단어하나하나 용어 자체가 이미 스며 들은 거예요. 우리 모친께서는 별명이 천심이었습니다.하늘의 마음이었습니다.그런데 성질 날 땐 욕하더라고요.저는 어릴 때 어머니 입에서 욕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약간 치매 걸리니까 이게 나오는데 저 욕을 도대체 누가 가르치진 않았을 것이고 흘러가듯이 들은 것 같은데,그것이 안에 스며 들은 것 내장된 것 같아요. 이건 어머니 이야기할 것이 아니고 그렇게 곱게 키운 자식들,자녀들. 무심코 내뱉는데 학교에서 배웠는지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어린이집에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성질 급할 때 욕이 막 나오잖아요.그럴 때 엄마는 기겁을 하지요.그동안 공들여서 키웠던,귀족아들처럼 키웠는데,너 그거 어디서 배웠어?이렇게 나오잖아요.
더 의심스러운 것은 물론 바깥에 가면 온갖 이야기를 듣습니다마는 왜 다른 건 다 잊어버리고 욕은 왜 그렇게 오래 간직하느냐 이말이죠.왜 가장 깊은 곳에 저장이 되느냐 이말입니다.
도대체 인간의 장치가 어떤 장치이길래 그 장치에 대해서 이번 주일에 설교하게 될 거예요. ‘인간의 내부장치’ 양심이야기거든요.
그건 그때 기대하시고.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신앙생활은 내가 노력한다고 가는 게 아니다라는 겁니다.상황자체가 ‘해결불가’예요.해결되지 않는,우리 손으로 할 수 없는데 상황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요. 그렇다면 이 상황이 우리 힘으로 안될 때는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고마운 것은 주님께서 해결 안되는 상황가지고 우리를 성도로 만들어 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요한복음 12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왜 죽은 줄 아느냐?밀알이 죽어야 뭐가 맺습니까? 열매가 맺히거든요.
우리는 나도 안 죽고 하나님도 안 죽고!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사다리타고 천로역정같이 올라타고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되면 ‘반갑다 친구야’하여 손잡고. 마치 절벽을 영화에 보면 나오죠?절벽을 올라가면 우리는 수고와 모든 역경과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로마서5장에 있는 말씀 알아가지고 막 타고 넘어 올라가서 마지막에 주께서 강한 뽀빠이 같은 손을 내밀어 ‘수고했어!여기까지 올라오느라고 수고했어!고생했지?’
’고생 되게 했습니다. 주님 저를 원했죠?’
’원하고 말고!’
’저는 주님 말씀 지키느라 고생 많이 했거든요’이것은 국제시장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장면입니다.아버지장면에.’고생 되게 했거든요,힘들었어요. 동생키운다고 엄마…’ 주님 손잡고 지금 이런 시나리오 잊으세요.이런 시나리오는 없습니다.
이런 시나리오는 교회에서 목사들이 좋아하지요.’지금 당신 등급은 A등급인데 5년 전에 C등급에서 이만큼 성장했습니다.조금만 더 성장하시고 교회에 충성봉사하시면 A에서 플러스A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조금만 더 하시면 이제는 당신은 천국갈 수 있습니다.’막 아줌마들이 기를 쓰고 금요철야까지 나오고 새벽기도 나와가지고 저 뒤 떨어진 남하고 비교하여 흐뭇한 눈초리로 보는 거예요. 가진자의 여유죠.’신앙도 없는 것들이’이러면서.재미가 그 재미잖아요.교회 열심히 하는 재미가!차 운전할 때 재미가 뭡니까?남자들!예,추월했을 때,추월도 시시하게 하면 추월도 방해하고 보복운전하고,추월했을 때 스피드 내는 기분처럼,여자들은 교회에서 그걸 하는 모양입니다.
이거 없습니다.이런 건 잊으세요.이런 방법 없습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면 우리가 저 높은 곳이 아니고 우리가 가기 싫은 저 낮은 곳으로 보내버리죠.저 낮은 곳으로!
이게 빌립보서 3장에 나오는데 성경 한번 보겠습니다.3장10절 성경구절이 가끔 맞아요. 대부분 틀리는데 오늘 맞네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 다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죠.그러면 사도바울이 이미 십자가를 알고 부활을 아니까 뭐 그냥 대충 살아도 구원받겠네요? 아니죠 주님께서 그를 어디로 몰아 넣습니까? 마귀를 통해서 오든지 천사를 통해 오든지 관계없어요.주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몰아넣습니까?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죽은 자로 십자가로 십자가가 더 크게 느끼게 만드는 곳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죽음은 한마디로 말해서 억울한 죽음이죠?억울한 죽음이죠? 제가 지난 수요일날 그런 얘기 했잖아요. 어떤 분이 ‘가룟유다는 억울하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니까 제가 답변했잖아요.메일로 답변했어요.’억울하다는 것은 자기가 살 권리가 있는 사람한테나 하는 소리지 이미 에덴동산에서 쫒겨 나서 이 땅이 죽음의 땅이거든요.주께서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한 것은 이 땅 자체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서 죽으라고 준 땅이예요.
우리 생각은 뭐냐 하면,마귀의 종 노릇 해가지고 우리는 생각을 반대로 하죠.굳이 살아보겠다 하잖아요.그리고 고생은 혼자서 고생한대.주님은 죽으라고 세상에 보내줬는데 우리의 본성은 어쨌든 살아남고야 말리라 하고 나오니까 이게 이빨이 안 맞는 거예요.
5년 살면 이제 맘 편하겠지?살아보세요 맘 편한지.또 새로운 걱정거리가 또 생기죠.그 나이만큼 안됐기 때문에 몰랐던 걱정거리가 그 나이가 되니까 새로운 걱정거리가 발견이 되는 겁니다.
아,이런 걱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이젠 뭐 60넘어서 애 장가시집 보내면 편안히 살면 된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편안한 게 없습니다.65세 되었습니까?65세에 맞는 걱정거리가 있어요.70되면 이젠 모든걸 잊어버리고 연금 타서 살아야지.연금? 그리스처럼 연금 반타작되면 어떻게 할려고?연금 5만원 못 타가지고 남편이 연금 탈려고 다섯 군데 돌아다니다가 못 타가지고 땡볕에 우는 장면도 나오잖아요.그리스에서.은행에 줄 서야 되는데 줄 서니까 벌써 문 닫아버리고 줄 서니까 돈 다 가져가 버리고 돈이 없는 거예요.나이 70넘어서.그럴 때는 죽은 아버지 찾는 거예요.’아버지여 날 왜 이렇게 살게 하셨습니까?진작 죽게 하지’ 뭐 이런 식으로.
사실은 새벽기도나 이런 기도의 올바른 기도는요,좀 죽여달라고 기도해야 되요.금요철야기도회에 가서. 사람 좀 그만 괴롭히고 그냥 데려가 주세요.뭐 이런 기도를 해야 되요.자 십자가가 뭐냐하면은 억울한 아픔을 공감하게 만드는 경험입니다.억울한 아픔!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그러면 있는 재산 다 날라가야 되요?’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지금 재산이 얼마냐,우리가 생활이 어떻게 그게 문제가 아니고 마음문제거든요.
십자가는 아무리 가난해도 십자가 느껴지지 않아요.십자가는 아무리 부자가 되도 십자가 느낄 수가 있습니다.있어요.만약에 현대중공업 사장단 가운데서 진짜 복음 아는 사람 있으면 지금 상황이 뭐냐?십자가의 아픔을 느끼는 상황이예요.밥 먹고 살아도.연봉 10억씩 받아도 십자가예요 그게. 그런데 아무리 가난하게 노숙자로 살아도 십자가를 못 느끼는 사람이 훨씬 많지요. 망한다고 해서 십자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나를 위한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
해결불가능한 가운데 둘러싸여 있다.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해결불가능하게 만드는가? 네가 너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가지고 우리가 이 땅에 던져진 존재이니깐 던져진 존재보고 네가 알아서 구원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요.
괜히 구원받을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냥 사세요.주어진 환경이 우리를 만들어 낸다니깐요.이것을 사자성어로 따라 하세요 ‘자동세차’예요.’자동세차!’가 좀 어울리지 않는다면 ‘안마, 세자로 한다면 ‘마사지’ 자동세차는 가만히 앉아있으면 되잖아요.그 방법가지고는 십자가 안돼.어떻게 하냐 하면 ‘자동마사지’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면 마사지를 해 줘요.
대전의 어떤 집사님이 마사지를 받는데 진짜는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가짜로 마사지를 해 주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예요. 하고 난 뒤에 돈 3만원 주고 2시간을 했다든가 했는데 얼마나 심하게 받았는지 하고 난 뒤에 토해버렸답니다. 사람을 밟아놨어요.마사지하면서.
그래도 뭡니까?자동마사지예요.주께서 사용하는 방식은 이 방식 사용하시는 겁니다.강의 끝!
사람을 죽여버려 아예!빨리 토하란 말이야 자족할 줄 모르는 이 마음을 토해버려!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여자다?간음하는 여자!어디 세상을 사랑해?지그지근 밟아버려요.그런데 이상하게 시원해요.
이게 바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광야생활입니다. 사람을 애굽소속 그대로 확장했거든요.애굽에서 나와도 애굽사람입니다.이 애굽사람 가지고는 약속의 땅에 못 가요.가봤자 소용도 없고.따라서 광야를 통해서 지근지근 밟아놓습니다.네가 네 생존의 방법을 다 포기하게 만들어 버려요.농사?광야에서 무슨 농사를 지어요.목축?그냥 겨우 먹고 사는 정도.오직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로 버티게 만드는!그 방식은 사람들은 견디지를 못합니다.원망하고 불평하고 난리 났습니다.
하지만 자동안마 마사지는 너무 아파요.그래서 이 말한 제가 가슴이 아프네요. 말을 바꾸겠습니다.’자동세차’일단 기분 좋잖아요.시원하니,브러쉬만 왔다갔다하지 안에서 둘이 앉아있고 뭘 하는지 모르잖아요. 자 그렇게 사실은 자동세차가 맞는데 구체적으로 나가면 자동안마가 되서 밟힌다니까요.형식상으로는 자동세차 맞습니다.
이걸 가지고 행함 없는 구원이라는 겁니다.지난 낮설교에 행함 없는 구원에 대하여 얘기 했지요.행함 없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시작하는 이가 주님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주님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우리의 행함을 요구하지를 않아요.그런데 우리의 행함을 요구하는 것은 그동안 주님의 자동세차를 누가 방해하느냐 하면 우리가 행해서 구원받겠다는 그 사고방식,그 객기,그 오버하는 것,도대체 누구한테 배웠는지 모르겠어요.잘못배운거예요.
그 잘못 배운 것이 주님이 거져 주신 값없이 주는 생명수를 우리는 값을 치르고 받겠다고 객기를 부리니깐 주님께서는 가만두지를 않습니다. 내가 언제 돈 받고 십일조 받고 구원해줬나?왜이래?네가 복 받는 것이 십일조하고 안식일 지켜서 복받게 해줬어?그거 아니야.그런데 왜 십일조하고 안식일 지키라고 했습니까?그게 네 속에 그런 마귀가 들어있으니까 그 마귀를 쪽 빨아내는 방법이 그 방법이예요.하라고 하게 되면 우리 속에는 못한다 하고 나오면 되는데 못하는 게 아니고 할만큼 했잖아요.이게 마귀의 음성이거든요.
마귀음성 한번 들어볼까요?마가복음 5장7절 마귀의 음성까진 아니지만 사람의 음성으로 한번 들어보세요.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큰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데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이게 귀신 2천 들었던 악마가 하는 소립니다.예수여 당신이 하나님 아들인 거 내가 아는데 아는 건 아는 것이고 제발 나를 가만 놔 두세요.괴롭게 하지 마세요.
사실은 나를 괴롭게 하지 마세요 라는 말은 우리가 눈만 뜨면 하는 소리 아닙니까?우리 일기장이라.오늘은 맑음,내용은 나를 괴롭게 하지 마세요.그 다음날 오늘 흐림 오늘도 내용은 나를 괴롭게 하지 마세요.주님께서 나를 괴롭게 하는 그런 내력을 적은 것이 금요철야하면 기도가 되고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참 저도 우리 교인들 괴롭게 해요.오늘 오후에 기도하실 수 있습니까?어떤분은 손짓으로 가위표하는 분도 있고 어떤 사람은 손사레 치는 사람도 있고. 나가 없어요. 나라는 것은 허구거든요.나가 있는 게 아니라 몸이 있는데 몸을 두고 주님은 자기 몸이라고 우기고 우리는 내 몸이라고 우기면서 나가 붙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목이 마르잖아요. 따져봅시다. 내 몸이 목이 마른 거예요. 물 마시자 자연스러워요.이걸 동사라고 해요. 그때 누가 밖에서 들어와서 이 물 누가 마셨어? 이때 내가 마셨어가 되요.나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는 나가 필요하지 않아요.그런데 내 앞에 예수든 하나님이든 타인이 있음이 되어버리면 갑자기 우리는 움츠러듭니다.지켜야 돼.갑자기 나가 구성이 되요.순간적으로 나라는 게 구성이 되어 버립니다.나한테 침범하기만 해봐라.혼자 있을 때는 자기 맘대로 웃통 벗고 있다가 누가 들어오면 갑자기 나의 의를 건드리기만 해봐.건드리면 나는 괴로운 거예요.
이게 선악과 따 먹으니까 선악과 따 먹은 티를 우리 안에 새겨버렸어요.영원토록 선악과 따먹은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우리는 선악과 구경도 못했습니다.아담이 아니니까 구경도 못했는데 이상하게 내가 손댈 수 없는 다른 어떤 초월적인 본성이 자꾸 나와요.그 본성이 뭐냐하면 나는 의로운데 나는 이대로 죽을 놈이 아닌데 남은 다 죽어도 나는 손대면 안돼 나는 실패해서는 안되는데 씩씩거리면서 계속 나오는 겁니다.
남의 나라 부도나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견딜만하지 씩 웃으면서 남 잘못 되는게 왜이리 기분이 좋고 연예인 누구 이혼했다고 하면 기분이 좋고 뭐든지 상대적 우월감이 사는 보람으로 기쁨으로 살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지 이게 뭐냐하면 나는 살만한 자격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사는 게 마땅하고 너는 죽어야 마땅하니 죽어야 되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만 있으면 십자가 몰라요.십자가와 차이 나는 것 두 개를 양쪽 십자가가 있는 거예요. 한쪽 십자가는 뭐냐하면 예수여 우리를 구원해보소.이렇게 된 거예요.왜 구원해야 됩니까? 나는 귀하니까.나는 소중하니까.그런데 구원받은 강도는 뭡니까?내가 죽는 것도 주님 당신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그렇다면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예수님 때문에 내가 강도짓 했으니까 당신나라 갈 때 저도 생각해달라.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그 강도가 약간 오해한 것은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라고 미래를 봤는데 주님의 답변은 미래가 아니고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이건 예상 못한 횡재를 얻은 거예요.
은행가서 기다리는 것 제일 싫어하잖아요.기다릴 것 없어.오늘 같이 가자 이렇게 된 거예요.세상에 강도되고 구원받고,창녀돼서 구원받고,세리 되어서 구원받고 (성도:강도가 죽기 직전이었으니까 깨닫지 않았을까요?)처음부터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죽기 직직전이라도 당신 때문에 내 신세 망했다 이렇게 되겠죠.그런데 예수 당신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나의 운명 때문에 나는 그럴 사람 아닌데 우리 부모 때문에,내가 부모를 잘못 만나가지고,내가 강도짓 안 하면 안될 정도로 이 사회가 나쁜 사회라서 어떤 핑계를 대도 좋은데 똑 같은 상황이지만 그것이 저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였다는 것.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사후적으로 알게 된 거죠.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수요일 날 그런 얘기 했잖아요.우리가 죄 용서 받았으면 우리 인생이 어떻게 망가져도 우리는 토 달지 맙시다 감사합시다.인간이 어떻게 망가져도 용서받은 게 어딥니까?벌써 결재 끝났어요.다 받았어요.우리는 헤헤거리기만 하면 되요.이제는.촐랑거리기만 하면 되요.강아지 분양안되도 괜찮아요.뭐 어떻게 해도 괜찮아요.구원받았으면 아무 상관 없는 거예요.환경이 우리를 만들어냅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도대체 어떤 환경이기에 내가 못하는 천국 가기를 성사시키는가 그것을 알면 되는 거예요.그 방법이 뭐냐?여러분들이 다 실력들이 있기 때문에 어렵게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7절28절 가지고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오늘 강의는 이 그림이 핵심이예요.
제로(zero)에서 투영을 하게 되면 우리네 인생이 나옵니다.(제로에서 인생으로 화살표)이게 26절 27절의 내용이예요.제로는 한자로 하면 無(무)없음이예요.없음이 투영된 구체화된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아까 처음에 해석할 때 걱정거리 이야기 했지요.”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이 대목을 모든 사람이 보면서 두 가지의 걱정을 한다 했지요?첫째는 내가 예수 믿고 난 뒤에 죄지어 버리면 지옥 가는 것은 두 번다시 기회가 없으니깐 이 본문대로 예수님이 속죄한 이 본문을 알고 죄지어 버리면 빼도 박도 못하고 이제는 두번 다시 기회가 없다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공포로 다가와요.
죄짓던 관계없이 공포스럽고 부담이 되고 그것이 하나의 문제고,두 번째 문제가 뭐하고 했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나는 어쨌든 구원받기는 받겠는데 미처 복음도 모르는 내 아들이나 딸 특히 요새 딸이 중요하죠 딸은 마지막에 날 지켜주고 아들은 뺏기니까.내 딸이 만약에 복음을 몰라서 지옥 간다면 엄마 마음에서 천국 가서 내 마음이 편하겠느냐 이 말이죠.
내 딸이 지옥 불에서 지금 맹렬한 불에 빠져가지고 헉헉거리고 못 빠져 나오고 있는데 천국 가서 혼자서 ‘에구 잘됐다,넌 고생해야 돼’이렇게 맘이 되겠느냐 이 말이죠.맘 정리가 되겠어요?차라리 내가 지옥 가고 네가 천국 갔으면 그게 어미의 마음 아닙니까? 이 두 가지 걱정거리 있다고 했지요?
제가 그렇게 설명한 이유가 다 있어요. 그게 출발점이 뭐냐 하면 이 내용을 볼 때 無부터 출발해야 하는 걸 가지고 내 인생부터 출발 한 거예요.인생부터.
이 걱정거리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인생이 그냥 홀로 된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강의하는 게 뭐냐하면 어떤 상황에서 스며 들은 인생이라고 했지요? 나라는 것은 없는데 상황에 남도 있고 교회도 있고 하나님도 있으니까 그분과 교제하고 관계 맺기 위해서 내 몸도 아니면서 ‘에고ego’나라는 것을 만들어야 되요.나는 없어요.없는데도 따로 만들어야 되요.
그냥 길을 걸으면 되는데 그게 동사예요.경찰이 ‘어이,아줌마’하면 뭐라 합니까?’나요?’하잖아요.갑자기 타인이 등장함으로써 타인과 관계해야 되는 거예요.그런데 주님 뜻은 뭐냐 하면은 경찰이 부를 때 네가 관계하지 말고 주님께 속한 몸이 나를 구원시키기 위해서 앞에 경찰을 우연히 맞닥뜨리게 한 겁니다.경찰이 맞닥뜨릴 수 있고,훌륭한 처녀총각을 만나 결혼을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이 전화하셔서 ‘나의 실수는 남편을 만난 것이다’그런 얘기하셨어요.’그래도 집사님은 결혼도 해 봤잖아요’그러니까 ‘결혼한 게 실수였습니다’ 결혼 안 할 수도 있고 이런저런 것은 뭐냐하면 나를 그리스도의 증인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들을 가했는데 우리는 복음을 알기 전엔 그걸 모르고 내가 선택해서 저 남편 골랐고 내가 선택해서 직장을 구했고 내가 선택해서 내 인생을 관리하고 감독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 한 거예요.
그러니까 뭘 제거해야 되요?그 놈의 나를 내 몸에서 떼내야 되는데 떼낼 때 필요한 게 말씀이 치고 들어와서 떼내는 겁니다.상황이 無에서부터 나온 거예요.無는 뭐냐?내가 거울 보면 보이죠?내가 존재하니까 이 존재한걸 가지고 나의 존재부터 출발하게 되면 신이 존재하고 예수가 존재 해버리죠.그 신이 존재,예수가 존재하는 것은 나의 존재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가짜가 돼버립니다 이건 전부 다 망상이 되요.이게 바로 교회 자체가 허구라는 증거예요.
교회에서 신이 있고 예수 있고 성령 있고 삼위일체 하는 거 전부 다 허구입니다.왜?나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교회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교회가 없다는 말은 존재라는 말은 있다!있다는 것!
여러분은 실력 있기 때문에 어렵게 합니다.할 수 없어요 이것은 쉽게 못합니다.있음이라 하는 것은 눈에 띄일 때만 있음이란 말을 해요.우리 인간 눈에는.눈에 안 띄면 없는 거예요. 귀신 있다 해도 우린 안 믿습니다. 왜?본 적이 없기 때문에.UFO!안 믿습니다.나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그런데 본 사람은 뭐라고 합니까?존재한다고 했지요.왜?자기가 보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성경말씀은 ‘네가 본 것이 너를 속인다’는 것입니다.성경은 네가 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거예요.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네가 본다고 하니깐 소경 맞네! 네가 본다고 하니깐 소경 맞네!예수를 믿을 때는 어떻게 믿어야 된다?보지 않고 믿어져야 된다는 겁니다.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 있도다.예수님이 그 말할 때는 우리한테 불가능을 얘기하는 겁니다.
사실은 제자들도 그걸 우리처럼,제가 얘기할 때 여러분도 참 난해하죠?제자들도 못지않게 더 난해했어요.그래서 제자들이 오죽했으면 이렇게 얘기했습니까?’예수님,그러면 누가 구원받겠습니까?’예수님 답변은 간단해요.기다렸단 듯이 답변합니다.”사람은 못한다.”뒤에 말은 모른다 치고 앞에 말 “사람은 못한다” 이래서 제자들은 절망해버렸죠.
왜냐하면 평소에 습관이 내 인생은 내 문제 내가 해결한 거예요.주님은 내가 없는데도 내가 만들어서 내 몸을 기어이 내 소유의 몸으로 유지해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랑할 자가 없고 나는 지옥에 내팽개친다고 우리는 그렇게 악마한테 배웠습니다.’네가 선악과를 알고 있으니까 어쨌든 간에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라 그러면 선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동적으로 그렇게 스며들어 온 거예요.착하지도 않은데 나쁜 강도가 천국 가?그런 천국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하여튼 천국은 착한 일 노력한 사람들,A등급들,엘리트들, 노력한 착한 순서대로 거기에 집합되어 있다는 것이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남아있는 찌꺼기 같은 것들이 우리 속에 여전히 매일같이 나와요 매일같이.예수 믿었으니깐 값을 한다고 착해야지.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매일 근본 본성으로 나오는 겁니다.본성으로.
그런데 주님의 방법은 뭐냐?네가 있다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있는 겁니다.이것은 기능인데 빨간 글씨로 ‘바꿔치기’기능이예요. 세 글자로 ‘십자가’입니다.예수님이 죄인 속에 들어와서 의인으로 바꿔치기 한 그 확보와 능력을 우리 속에 우리가 죄인이잖아요.너도 죄인이네 해서 천구백몇년도에 태어났으면 그 때 우리한테 들어와요.들어올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너는 하늘나라를 볼 수가 없다.다른 말로 하면 천국은 네가 아무리 시력이 2.0이라도 보이지 않는다.더 놀라운 사실은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한다,보고 있어도 보지 못한다.이제는 안보고도 보는 몸으로 내가 바꿔치기 된 거예요.
한가지 예를 들면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헐어라.내가 사흘 만에 짓겠다.그 이야기를 열두 제자가 두 귀로 다 들었고 머리 속에 다 기억했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뒤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주님이 함께 있을 때 그들은 아하 그리스도를 가지고 성전이라 하는 것이고 우리 몸이 바로 성전이라 하는 것을 그때서야 아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부활의 영이 들어왔기 때문에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주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몸이면서 그리스도께서 남을 대할 때 주님께서 필요한 마귀의자식이나 주님이나 하나님이나 주님께서 필요한 대로 쓰기 위하여 했을 때 그 때 필요한 주님 안에 새로운 자아가 있어요.불교처럼 자아가 없는 게 아니고 새롭게 만들어져요 자아가.
그 자아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십자가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자아, 그리스도의 자아이름으로 사는 자아가 만들어져요.그러면 우리는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는 새로운 구조가 체계가 만들어지면서 머리와 대비되는 자아가 만들어질 때 그것이 바로 자아정체성!천국에서 만들어지는 자아정체성입니다.
10분 쉽시다!
권선희(IP:203.♡.206.27)
15-07-30 12:37
자 아까 그림을 다시한번 그려볼게요. 자 이건 無다 zero. 인생이 뭘로 둘러 싸여있습니까? 불가능한 상황으로 둘러 싸여있지요. 無가 있고 無라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보이지 않고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無의 자리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 28절에 보면 모세의 법이 들어가요. 모세의 법이. 모세의 법의 내용을 설명하시 위해서 여기 스크린으로 모세의 법이 갖고 있는 내용이 뭐냐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이라는 피조물이 필요했습니다.
여기 보세요. 우리가 피조물이잖아요. 우리가 창조주가 아니죠? 우리는 무엇 때문에 내가 있느냐를 내가 규정할 수가 없어요.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그런 권한이.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다 했잖아요?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했지요? 자 욕심은 왜 생길까요? 욕심은 왜 생길까요?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데 그러면 욕심은 왜 생기고 욕심은 왜 있는 것이냐? 어디서부터 있는 것이냐?
바로 저 그 선악과 따먹게 한 게 누구죠? 뱀이죠? 뱀이 인간에게 뭐냐하면 어떤 권리 같은 것! 권리 같은 게 있거든요. 권리에서 욕심이 나와요. 나는 무조건 살아야 돼 하는 어떤 권리주장! 욕심은 내용이 있어요. 그냥 욕심이 아니고 나를 살려 내란 말이야가 욕심의 본질 내용이 되는 겁니다. 모든 내용이.
욕심이란 게 천억 버는 사람이 이천억 하는 것도 욕심이지만 최저임금 오천삼백원이 육천원 되는 것도 욕심이에요. 왜냐하면 최저임금을 만원으로 올려달라는 노 동계의 이유가 왜? 올려주면 뭐할 건데요? 올려주면 살지 이러잖아요. 살아서 뭐할 건데요? 거기에 대한 답변이 없다니깐요. 무조건 살아야한다는 거예요.
성경에서는 네가 무조건 살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뭐냐? 모세의 법,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는 그런 조건하에만 비로소 너는 살았다가 성립이 되요.
‘살아 있는 거 어쨌든 간에 이왕 살려놓은 거 계속 살게 해 주세요.’
‘안돼, N0'
내가 살아있으면 안되고 말씀이 계속 살아있어야 되요. 말씀이 이런 식으로 살아있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도의 역할로써 살아있어야 되요.
다른 말로하면 말씀의 완성이 주님이잖아요. 주님이 이런 분임을, 살아있다는 것의 증인되기 위해서 살아야 되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죽어도 살아야 되요. 죽어도 사는 게 내 소원이 되면 안됩니다. 주님의 소원일 경우에만 우리는 죽어도 삽니다.
그러니까 그 사실을 알려면 내 것은 토해내고 주님의 소원만 우리 속에 가득 담아야 되요. 그러면 우리는 천국 가기 싫어도 주님을 위해서는 가야만 하고, 우리는 지옥을 가고 싶어도 주를 위해서 절대로 지옥으로 안가도록 주께서는 강하게 역사하지요.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지요. 내 사랑은 왜 사랑이 아니냐 하면 어쨌든 살고보자에서 출발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면 사랑은 뭐냐? 죽어야 되는데 왜 살았지? 이게 사랑이예요. 그래서 죽어야 되는데 왜 살았지를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서 십자가 죽었다가 살아 난 능력이 사랑으로 포장이 되어서 택배로 공짜로 우리한테 오게 되었어요. 뜯어보니까 십자가 사랑이에요.
그래서 십자가 복음 전파만이 사랑이고 자식들 돈 대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자식을 내 뜻대로 욕망대로 욕심대로 가둬놓기 위해서 모이 주는 것이고 먹이 주는 거죠. 자식들한테 내 돈 받고 내 뜻대로 살아야 돼 라는 투로 먹여주는 것이 자식한테 돈 주고 집 사 주는 거예요. 집사줄테니까 너는 부모를 버려라 뭐 이런 부모 없잖아요.
부모가 집 사 주고 뭐 해 줄땐 다 공짜 아닙니다. 너는 결혼해도 내 품의 자식이야 그것을 다 조건으로 밑에 깔려 있는 거죠. 이 말은 뭐냐면 나는 죽어도 네가 살아있으면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라는 유전적인 본성에 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쉽게 얘기해서 자기 사는 것에 대해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지난 수요일 날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왜 자살하는 게 나쁘냐 하는 거죠? 왜 자살하는 게 나쁘냐? 유병현목사 자살했지마는 왜 자살이 나쁘냐 하면 자살해 버리면 죽음의 종류가 두 종류가 되요. 분명히 우리가 살아 있는 것도 죽이는 죽음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살아 있으면서 죽는 죽음이 주님 주시는 자연스러운 죽음인데 이 죽음 말고 다른 어떤 성질의 죽음을 내가 만들어 낸 죽음을 죽어버리면 이 죽음과 이 죽음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거죠.
밥 먹고 살고, 재미난 데 놀러 가고, 괌 놀러 가고, 태국에 놀러 가고 이렇게 죽는 것도 주께서 진짜 죽이시는 죽음이기 때문에 우리가 맘 놓고 놀면서 그 죽음에 순종하면 되는데 내가 이래서 우스워서 부끄럽고, 내가 망해서 얼굴 못 들겠고, 에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이래버리면 그 죽음은 주에서 난 죽음이 아니고 어디서 나온 죽음이예요? 자기 자존심, 자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죽음이기 때문에 이 죽음은 굉장히 수상한 죽음이에요.
그 죽음은 가룟유다에서 나왔습니다. 가룟유다가 밥이 없어 죽었습니까? 양심이 없어 죽었습니까? 왜 죽었습니까? 양심의 가책 때문에 죽었지요. 가룟유다가 만약에 아이큐가 40이나 30되었으면 자살했겠어요? 허허 웃으면서 팔아먹지도 안았겠지마는 동네 바보처럼 돌아다니면서 그래가지고 어떻게 죽겠습니까? 주께서 죽이시는 죽음 때 되면 죽겠지요.
그게 자연스러운 내츄럴한 죽음인데 이 사람이 그런 죽음말고 다른 이질적인 죽음이 들어온 거예요. 사탄이 들어온 거죠. ‘네가 괴롭지?’ 괴롭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 몸은 내꺼 라는 뜻이잖아요. 내가 주인인데 내 맘대로 안되니까 괴롭잖아요.
그러니까 마지막 내 인생을 누구 권한으로 작살낸다? 누구 권한으로? 누구 권리로? 내 권리로 내 몸이니깐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 마지막 주님에 대한 저항방법이에요. ‘나는 죽을 때 까지 너한테 뺏길까보냐? 내 몸은 어디까지나 내 관리하에서 내 능력 안에서 보란 듯이 죽인다’ 이렇게 되면 주님의 것을 누가 손대요? 원래 주인인 주님이 아닌 내가 손대는 것은 이것은 궁극적인 하나님에 대한 반항의 극단적인 모습이 자살이죠.
그런데 제가 이렇게 자살에 대해서 정의를 내립니다 마는 하나의 미진한 게 뭐냐 하면 이미 정신병을 갖게 돼서 이게 다리인지 육지인지 분간 못하면서 노래 부르면서 물에 빠진다든지 술에 만취해가지고 길을 헤매다가 빠진다든지 아니면 강제적인 자살 다시 말해서 네가 독약 먹어서 죽을래 사자에 물려서 죽을래 이런 것은 사형에서 방법을 네가 선택해라 이것은 타의에 의한 죽음이라.
그런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경우를 인간이기 때문에 다 끄집어 낼 수는 없습니다 마는 타의에 의한 자살, 본인의 의사가 아닌 자살과 본인의 의사를 과연 같은 인간인 내가 깔끔하게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곤란해요.
그래서 저 죽음은 이것은 진짜 마귀죽음입니다 이걸 단정 짓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사실 주제 넘는 결정이라는 것을 일단 감안합니다. 몸이 아파서 아픔의 증세가운데 하나가 자살하는 증세가 있다면 그거 어쩔거예요? 우울증이라 하잖아요.
우울증이 심해가지고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칼 쥐고 스스로 죽는다 스스로 약국에 가서 이렇게 할 때 이것이 자기의 능력인지 아닌지 분간 못할 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좋다는 이야기 아닙니다. 그것은 병에 의해서 죽었기 때문에 자살은 아닙니다하고 단정하는 것을 제가 보류한다 이 말입니다.
에이, 우울증 걸려서 자살했으니까 자살 아니잖아요. 자살 아닙니다 결정자체를 보류하겠다 이 말입니다. 그걸 빙자해서 자살을 할지를 그 사람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은 결정내기 곤란해요. 본인만 알아요 본인만 알아요. 하여튼 제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살이라 하는 것은 분명히 가룟유다를 예로 들어서 마귀의 마지막 모습은 끝까지 죽어가면서도 내 몸은 난 누구한테도 빼앗기기 싫어 난 끝까지 내 몸이다라고 우기고 싶은 그 객기! 그건 말도 안되는 오기거든요.
그럼 태어날 때 누구한테 태어났습니까? 네 몸 네가 알아서 조작했어요 DNA를?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일이지만 이상하게 말이 안되는데 우기고 억지를 부리는 거예요. 내 몸은 내꺼라고. 안믿는 사람들, 안믿는 남편들 보세요 다 그렇잖아요. 이거 내 인생이라고.옛날에 복음모를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듣고 보니까 전부 다 저건 무슨 저런 오기가 있나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나 이래되지요.
하늘에서 비가 온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비를 내려 주는 구나 아니거든요. 욥기에 보면 비 오는 것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비와요.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다만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비 내리는 것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도가 되는 겁니다. 성도가 되는 거예요. 황무지에 비 오는 이유를 압니까? 하나님이 욥보고 얘기 한 거예요.
“황무지에 비 오는 이유를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거봐 네가 아는 게 뭐가 있느냐? 네가 아는 게 뭐가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주여 이러시면 안됩니다”
“왜 그래서는 안되는데?“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이 너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기를 위해서 있는데 왜 자꾸 욥은 나를 위해서 있어야 되는 것처럼 그 마음은 어디서 왔느냐 이 말입니다.
“그래놓고 네가 의롭다 할 수 있느냐?”
“저 의롭지 못합니다”
진작 이야기해야지 의롭지 못하다고.
그런데 사실은 욥이 의롭지 않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은 정말 욥이 그 정도로 의로운데 의롭지 않다면 그러면 우리는 종기가 얼마나 나야 우리가 정신 차릴까?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럴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자성어로 ‘무료세차’기 때문입니다. ‘자동세차’기 때문에. 차 안에 들어가 있으면 되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동안마’요게 구체적이요. 그런데 토 할 수가 있습니다. 뼈 마디 다 욱신거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고 나면 시원해요. 하고 나면 시원해요. 아이고 내 몸에 독소가 많았구만. 내 몸에 독소가 많은 게 아닙니다. 내 몸 자체가 독소예요. 뭐 뺄 거 없어요. 빼도 계속 나와 한도 끝도 없이 나와요.
우리 집에 쌀벌레 있는데 지금 2주째 잡고 있습니다. 쌀벌레가 얼마나 많은지 계속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오는데 그래서 저하고 아내하고 옥상에 올라가서 쌀을 전부 펴 놓고 비닐봉지에 분리해서 묶어 놓고 난 뒤에 나흘째 계속 쌀벌레 나와요. 어디서 나오는지 보니까 애벌레가 벽에 붙어 있는 모양이예요. 언제까지 나올지.
자, 하도 말이 어렵기에 딴소리 했습니다.
모세의 법에서 투영체가 스크린이 우리 몸이 되는거예요. 모세의 법이! 그러면 모세의 법이 투영체가 된다고 하면 그러면 우리가 모세처럼 깨끗해야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는거예요. 모세의 법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악이 나와요. 모세의 법에 악도 들어 있고, 의도 들어 있고, 악이 의로 바뀌는 방법도 들어 있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인으로 모세의 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중간에서 출발한 게 아니고 어디로 가느냐 우리가 근본적인 죄인으로부터 출발하도록 우리 인생이 그렇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아까 그림이 이 그림이거든요.
無,zero에서 투영한다 했지요? 스크린에 맺힌 것이 우리 인생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무서운 마음으로 다시..” 이렇게 할 때 우리가 아유 겁나라 이제 예수 믿고 죄 지으면 지옥이야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대 이제 큰일 났어 어떻게 유지하지? 만약에 치매 걸리면? 치매 걸리면 이제 어떻게 해요 안되지요. 치매 걸리면 내 몸을 유지 못하는데 치매 걸려 가지고 예수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지옥가겠네. 이런 곤란한 문제가 뭐냐?
출발점이 여기(zero)서부터 출발해야 될 걸 가지고 나로부터 나 살 궁리부터 출발하니깐 이 방향성이 틀리니깐 해석자체가 다 엉터리가 되는 거에요. 모세의 율법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너 같은 죄도 불가능한 죄도 가능케 하는 요소가 모세의 율법 속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러면 모세의 율법의 완성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아까 우리는 자기 존재로부터 시작하는데 존재가 아니고 뭐라했습니까? 기능이죠? 그러면 예수님이 계시다를 믿으면 구원받습니까? 아니죠. 예수님의 존재가 뭐로 바뀌어야 됩니까? 우리한테 올 때는 예수님의 기능으로 와야 돼요. 그 기능이 뭐냐? 죽은 자도 살린다!
제자들이 하는 말이 부자가 천국가기 힘들다. 낙타가 바늘구멍... 제자들이 하는 말이 누가 갈 수 있습니까? 누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무도 인간은 못한다. 아무도 못한다. 그 다음에 제자들이 그 뒤에말 안들었으면 얼마나 낙심할 뻔 했습니까? 뒤에 뭐라고 했냐하면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할 수 있느니라” 주님께서 말을 안 바꾼거에요. 순서를 지킨거예요.
만약에 하나님은 하십니다. 인간은 못해도 이거하고 인간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신다 어떤 것이 내용이 확 다가옵니까? 인간은 못한다부터 해야되요. 만약에 하나님이 하신다 하면 인간은 마중 나갈 생각을 한다니깐요. 언제 오십니까? 기름준비 할까요? 눈에다 성냥깨비 해서 깨어서 있을까요?
교회 목사들이 하는 얘기가 이 얘기라. 인간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면 주님은 영접된다 이 방법하잖아요. 이 방법! 그런데 그 방법이 방향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불가능이 아니고 가능한 방법으로 하게 된다면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결국 가능하다는 말은 내 존재가 아직도 쓸 만하단 뜻이고 그러면 자기 존재의 가치를 유지해야 되고 만약에 그게 실패로 끝나면 자살로 끝날 수가 있어요. 이렇게 주님한테 최선을 다했는데 아직도 은혜를 안주시다니 그러면 신(神)당신 보는 앞에서 내 몸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건 당신 책임이야! 나한테 은혜를 안줬으니까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도 은혜를 안줬으니깐 당신책임이야!
제가 너무 극단적인 말을 한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말! 많은 전화를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순화 된 모습이든지 아니면 노골적인 모습이든지 십자가마을 과거의 질문답변 한번 읽어보셔요. 방금 이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겠습니까?’ 그 이야기! 저의 답변은 뭡니까?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그 사람들이 분노가 치미는 거예요. 만약에 정작 구원을 받았으면 ‘감사합니다 자동세차군요’ 이렇게 이해하면 쉬운 걸 가지고. 지금 세차장에 안 있거든. 지금 맨 땅에 뭘 해야 되는데 그것도 아니다, 십일조도 아니다, 주일 예배도 아니다, 기도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왜 구원 받으려고 합니까? 안 믿으면 되지 예수 안 믿으면 안 믿었지 굳이 믿을 이유가 없잖아요.
믿겠다는 것이 수상하다는 거예요. 믿겠다는 것이 굉장히 수상한 거예요. 믿겠다라는 말은 주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 이용하겠다는 그런 의미로만 나한테 들리는 겁니다.
안 주면 안 받으면 되지 왜 그걸 굳이 받아야 됩니까? 어디서 써 먹을 데가 있다고. 개 안주겠다면 개 안 받으면 되지. 꼭 개 분양받아야... 안 키우겠다고 하면 안 받으면 되는 것이고. 왜 주님을 자꾸 키울라고 해요 어디 써 먹을 데가 있다고. 피라냐나 키워라. 열대 아마존 강, 그거나 집에 키우다가 못 키우면 저수지에 버리고 말이죠.
주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은 네 힘으로 못 키운다 말이야 다시 찾아올 수가 없어요. 자살해도 안되요. 아 자살해서 천당갈 것 같으면 나도 자살하겠다. 이게 빠른 시간안에 제대하면 되는데 그게 안된다니깐요. 실패라니깐요.
그럼 실패라는 것은 뭐냐 하면 누가복음에 거지와 부자 이야기처럼 여기에 뭐가 있느냐 하면 이쪽에서 이쪽으로 건너 갈 수가 없습니다. 이미 계곡을 이렇게 틈을 갈라지게 했어요. 내가 했습니까? 주님이 알아서 했는데 왜 나보고 따져 왜? 인간은 헤엄쳐도 안돼.
애들 찬송가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착해도 안돼, 돈으로도 안돼, 근데 믿음으로 된다 그 가사를 왜? 믿음으로 안돼요. 왜 믿음으로 안되냐 하면 내가 믿어 버리면 내 믿음으로 내가 구원받아버리니까 믿음로 안된다니깐요. 차라리 믿음으로 하지 말고 예수님으로 된다 이렇게 해야되요.
예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애들한테 어려우면 예수님의 손길로 하든지 그렇게 되야하는데 내 믿음으로 가는 게 아니예요 이거는. 물이 있다면 헤엄치면서 믿음으로 믿음으로 나중에 힘 빠져 버리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가다 빠져 죽지요.
애굽 군사들이 홍해 갈라질 때 처음 들어갈 때 믿음으로 들어갔지요. 쟤들 건너갔으니까 우리도 건너 갈 수 있다 얼마나 믿음좋습니까? 물이 합쳐지니까 물고기밥 됐죠.
이 벌어진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