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34 - 자아의 저항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34 - 자아의 저항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34 - 자아의 저항
15,06,0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09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구약의 모세법에는 누구를 이웃으로 보느냐 하면, 안 도와주면 생존이 힘든 쪽을 말합니다. 그냥 옆집에 산다고 해서 이웃이 아닙니다. 긍휼과 자비를 요청하는 쪽이 이웃입니다.
◈ 이웃을 사랑하라 !!
구약의 모세율법에 보면 "이웃을 사랑하라" 라고 되어있는데, 그런데 사람은 자기를 추스리는데 급급하지 이웃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를 방어하고 지키는 투쟁을 젊었을 때만 한다든지, 아니면 나이 40 정도까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는 순간까지도 조금도 그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사수에 대해서 말이다.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러니 남까지 돌볼 여유가 전혀 없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고 하니, 당연히 먼저 자기부터 챙기고 나서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자기 주변에 어떻게 도와줄 사람은 없는지, 그렇게 살펴보고 나서 이웃사랑을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웃사랑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미 출발할 때부터 "내 것은 내가 지킨다" 라는 것이 너무나 투철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자기 이익과 배치가 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에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기 위층에 누군가가 이사를 왔는데 아이들이 3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도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것에 대해서 좋다고 허락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뛰노는 것이 자기가 예상한 것을 벗어나게 되면, 반상회 때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수가 있다는 말이다.
◈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그러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할 때는, 거기에 어떤 조건이 붙어있는고 하니, "당신이 나의 것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도와드릴 용의가 되어있습니다" 라는 것이다. 즉 "당신을 도와줌으로서 내가 망가지는 것까지는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라는 것을 우리는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게 무슨 이웃사랑이냐는 것이다. 또한 이웃에 대한 동정도 아닌데, 왜냐하면 이웃을 도와주게 되면 그게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또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결혼식이나 무슨 일이 있으면 일일이 다 봉투를 돌리고, 장례식에도 일일이 다 찾아가고 한다면,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분명히 저 사람은 내년에 구청장이라도 나오지 싶다" 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면 그것이 이웃사랑인가? 아니면 표를 다지는 하나의 전략으로서, 미리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 것인가? 그러니 그런 것은 이웃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이라는 말이다.
◈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라는 사람이 '이기적 유전자' 라는 책을 썼는데, 즉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들어있는 유전자가 그 사람을 이용하고 있다" 라고 주장했는데 말이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나는 내가 지킬 수 있는 마지노 선이다" 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나' 라는 것을 해체해서 그 안에 있는 유전자를 보았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반반 씩 물려받았는데, 그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서 유전자가 세포를 공격하고, 그 세포가 모인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을 알려고 하면, 이렇게 거울 앞에 비치는 통일체에 멈추면 안 된다는 말이다. 더 쪼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쪼개니 그 안에 세포가 들어있고, 세포 안에 유전자가 들어있고, 그런데 그 유전자는 간섭을 받지 않는데, 자기 마음대로 인데, 마치 절대자와 같다는 말이다. 자기 속에 들어있는 또 다른 어른, 즉 자기 자신에게 갑질하는 최후의 것이 곧 유전자라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말이다.
◈ 성질대로 산다. 딩동댕 !!
"성질대로 산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다는 것이다. "집사님은 왜 성질이 그렇습니까?" 라고 하면, "나도 내 성질을 못 말려요" 라고 한다는 말이다. 평생을 고치려고 했지만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도킨스가 주장한 것인데,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누가 주인인고 하니, 자기가 주인이고 그 안에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주인이고, 그 유전자가 바깥으로 구체화를 시킨 것이 바로, 즉 세포를 가지고 "나의 유전자는 이런 모습입니다" 라고 티를 낼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신체라는 것이다.
◈ 유전자의 영원한 보존 !!
그러면 유전자가 왜 자기 마음대로 그런 짓을 하는고 하니까, 유전자는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유전자의 영원한 보존' 이라는 것이다. 유전자는 계속해서 복제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영원히 자기를 보존한다는 말이다. 우리 자신이 아니고 유전자 자신을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왜 자기밖에 모르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유전자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차가 오는데 피했다" 라고 하면, 그러면 왜 피하는고 하면, 그것은 자기가 아니라 유전자가 피하라고 두뇌에 명령을 했다는 것이다. 머리 속에는 세포가 있고, 그 안에는 각각의 유전자가 있어서, 그 유전자가 알아서 보호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생물학인데, 그야말로 막장 생물학이라는 것이다.
◈ 막장 생물학 !!
그렇다면 이런 현대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과학이니까 틀렸다고 할 수는 없고 말이다. 하지만 맞다고 하기는 뭔가가 조금은 심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금이라도 치면 되는가? 그것을 그냥 맞다고 해버리면 이 세상이 너무나도 냉혹해지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자기 주먹을 자기가 마구 흔들어놓고는, 그것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 유전자 책임이라고, 즉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런 것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라고 하면서 핑계를 대면서, 그렇게 윤리와 도덕적 책임에서 무책임하게 빠져버리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인 생각들이 말이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이렇게 되면 윤리고 도덕이고 간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고 하니, 아들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아버지를 때려놓고 뭐라고 한다는 말인가? 아버지가 "이 놈의 자식이 미쳤나? 왜 그래?" 라고 하면, "이것이 다 아버지의 책임입니다. 아버지가 그런 성격을 저에게 물려주어서 그렇습니다" 라고 하게 되는데, 그러니 뭔가가 빠졌다는 것이다. 그 빠진 것이 바로 윤리와 도덕인데, 그러면 그 윤리와 도덕을 집어넣으면 되는가? 물론 임시 땜방은 되겠지만 말이다.
◈ 타이어는 옥션에서 !!
예를 들어서, 타이어가 다 낡아서 빵구가 자꾸 난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것은 빵구를 땜질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타이어 자체를 갈아야 하는데, 그러면 타이어는 어디서 갈면 되는가? '타이어 프로' 라고, 거기서 갈면 된다고 하는데, 아무튼 그런 CF가 있다는 것이다(ㅋㅋ).
(녹취 구 - 타이어는 한꺼번에 다 가는 것이 좋은데, 그럴 때는 인터넷으로 구입해서 한 짝에 만원씩 정도의 비용을 주고 카센터에서 갈면 됩니다. 그러면 가격도 싸고, 무엇보다도 가장 새 타이어를 장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타이어의 인터넷 판매는 재고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냥 카센터에서 교체하면 생산한지 1년도 더 넘은 놈을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데, 타이어는 마모 정도만이 아니라, 연식도 오래 되면 안 되겠죠. 물론 타이어에 만든 날짜가 나와있지만, 그것을 일일이 따지기도 좀 그렇고 말이죠. 이상은 제가 애용하는 카센터에서 알려준 정보인데, 참 착한 카센터죠. ㅋㅋ)
◈ 가정교육을 잘 받아야 한다 !!
흔히들 뭐라고 하는가? "가정교육을 잘 받아야 한다" 라고 하지만, 하지만 그런 가정교육이 바로 임시 땜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윤리와 도덕도 막상 무엇 앞에서는 힘없이 그냥 주저앉고 만다는 말인가? 돈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돈 앞에서는 말이다.
오늘 아침신문을 보니, "일찍 유산을 남겼더니만 그때부터는 구박이 들어오더라" 라는 기사가 났던데, 그러니 아들이 나쁜 게 아니라 아버지가 나쁘다는 말이다. 유산을 주었다고 하면 그냥 깔끔하게 주면 되는데, 그런데 그런 유산을 주면서 뭐라고 하는가? "이제부터는 나를 돌봐라" 라고 하는 것을 은근히 노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유산을 준 것이 자식에 대한 이웃사랑인가? 아니면 자기 확대인가? 그것은 자기 확대이지 이웃사랑은 아니라는 것이다.
◈ 만인대 만인의 투쟁 !!
그러면 왜 그렇게 자기 확대를 했는가? 그것은 바로 '게놈', 바로 그놈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ㅋㅋ). 유전자가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가 없다는 것이 바로 문제인데, 그래서 이것을 두고 '만인대 만인의 투쟁'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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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만인대 만인의 투쟁' 이란 말은 무엇인가요?
* 답변 - 동물의 세계에서는 강한 동물만이 살아남습니다. 자신의 먹이를 확보하고 짝짓기를 하려면 남을 짓밟고 또 싸워야 합니다. 홉스는 사람도 마찬가지라서 질서를 지켜주는 정부가 없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싸워서 동물의 세계와 같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상태를 '만인(여러 사람이란 뜻)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라고 불렀습니다. - 네이버의 질문과 답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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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자기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서 남의 유전자를 차버려야만 하는 투쟁인데, 그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자식들이 유산을 받으면 취직을 하겠는가? 사업을 한답시고 유산을 다 날리기 일 수인데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국가경제는 살지 몰라도, 자기 집안은 왕창 다 말아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줘도 걱정인데, 그렇게 하면 당장에 "엄마, 더러워서 직장에 더 다니지 못하겠다" 라고 하면서 사업을 벌려서 말아먹는다는 것을, 그게 다 정해진 코스인데 말이다. 세상을 조금만 살아보면 그런 것을 다 안다는 것이다. 마누라가 돈을 좀 벌면, 남자들은 어떻게 하는가?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개인사업을 벌리는데, 그게 다 코스라는 말이다.
◈ 다시, '이웃을 사랑하라' !!
여기까지만 듣게 되면, 만약에 지금 이 시간이 성경공부시간이 아니라 일반 인문학 강의시간이라고 한다면, "유전자가 그렇다고 하니 우리는 그냥 각자가 만인대 만인의 투쟁으로서 서로의 유전자대로 그냥 삽시다" 라고 하면서 끝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런데 성경은 무엇인가? "이웃을 사랑하라" 라고, 그게 하나의 율법으로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성경공부시간이 아니고 하면, "그래, 각자가 잘 먹고 잘 살자" 라고 하면서 헤어지면 그만인데 말이다. 그게 바로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협동, 협력, 소통, 동업 등등, 그런 것들이 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의 영원한 자기 보존이 죽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 도대체 언제까지 '가족' 이라는 말인가?
여기서 특히 문제가 있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제가 칠판에 큰 글씨로 적겠는데, 그것이 바로 '가족' 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까지 가족이라는 말인가? 부모가 돈이 있을 때만 부모이고 가족인데, 돈이 없으면 그냥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키스가 말한 이 '이기적 유전자' 라는 것이 그냥 한 사람의 연구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대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밑바닥까지 파헤친 정답이라는 것이다. 왜 가족이 분화가 되고 동업자끼리 싸우고, 그리고 왜 국가간에 서로 다투고 하느냐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가 왜 이렇게 돈 때문에, 즉 경제문제로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그 원인에는 분명히 나쁜 놈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해서 파헤쳐 보니, 거기에 나쁜 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냉정하게 판단을 했느냐는 말이다. 즉 "마귀가 있고 괴물에 있어서 이 사회가 나쁘다" 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자체적인 보존 때문에 그렇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래, 우리가 너무 과학만 추구하게 되면 차가워져서 안 되지. 우리는 윤리와 도덕도 배워야해" 라고 이야기를 해봤자, 하지만 그 윤리와 도덕이 어디에서 무너진다고 했는가? 돈 앞에는 그냥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때만 임시적으로 땜방이고, 다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윤리고 나발이고 간에 날아가 버리고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최종적인 것이 윤리와 도덕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돈이라는 말이다. 왜 돈이 최종적인고 하니, 그 돈 밑에는 "나만 살겠다" 라고 하는, 그런 자기 보존이 있다는 것이다.
◈ 아내는 남편을 사랑합니까?
서울의존교회에서 강의를 하면서 앞에 앉아있는 조금 젊은 부부에게 물었는데, 그러면 "아내는 남편을 사랑합니까? - 예. - 한 달에 수입이 30만원이 되어도 사랑합니까? - 예. - 10만원이 되어도 사랑합니까? - 예. - 그러면 마이너스가 되어도 사랑합니까? - ???"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사랑이 과연 유전자의 자기 보존을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자기 보존까지 포기하는 사랑이 우리 인간에게서 과연 나올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는데, 그런데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이웃을 사랑하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반발하는 인간들 !!
만약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을 보지 않는다고 하면, "그래,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자" 라고 하면 끝나는 문제인데,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시는 하셨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없고 말이다. 사실은 능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거기에 대해서 반발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이 시간에, 즉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웃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그 이웃사랑에 담겨있는,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웃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말씀을 주셨는지, 그 내막을 살펴보는 가운데, 진짜로 하나님이 그 말씀을 주신 취지를 우리가 감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처럼 이웃사랑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즉 지하철에서 걸인에게 동전을 주면 그것이 바로 이웃사랑이 아니고, 자기 보존마저 극복하고 난 뒤에 나오는 이웃사랑이, 그게 우리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뻔히 알면서도 왜 그런 이웃사랑에 대한 율법을 주셨는지, 즉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말씀을 왜 하셨느냐는 것이다. 우리 인간을 뻔히 다 아시면서 말이다.
◈ 하나님이 누구인가?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우리들을 보고 "너희들이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보내주겠다"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누구인가?" 라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즉 우리의 착함이 문제가 아니라, 그 초점은 "하나님이 누구인가?" 라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너희들을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현재 자기 자신을 붙들고서 감히 천국을 넘보는, 즉 전혀 주제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희들 자신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그래서 도저히 천국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임을, 그것을 미처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로 있구나" 라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모르고, 그래서 천국에 가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전혀 파악도 하지 못한 채 어떻게 하고 있다는 말인가? 감히 천국에는 가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말씀을 지키겠다고,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 그러면 중보자가 왜 있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중보자가 왜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중보자가 오셨다고 하니,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감안하지 않고, 중보자를 영접한답시고, "저는 믿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천국에 갈 욕심으로 중보자를 받아 챙기려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중보자가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질책하는 그 이상으로 질책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홍해가 갈라진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것이라고 말이다. 자기가 기도해서 부자가 되고 또한 암에서 낫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아요" 라고 하는 마음가짐이 더 큰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런 우리 자신이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유도하신 주님이 훌륭하다는 말이다. 중보자는 바로 그런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준비됐나? 준비됐지? 그러면 이제 내가 구원해줄 게"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 중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보자는 우리가 행할 수 없는 큰 기적이 행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극단적 죄인으로 몰아세워서, 그렇게 몰아세우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이루지 못하는 이웃사랑을 실현시키는 절차로서, 그렇게 참여시킨다는 것이다. 즉 "저는 못합니다" 라는 자를 이웃사랑에, 율법완성에 참여시키는 방법을 주님은 사용하신다는 말이다.
◈ 그 느낌을 아니까 !!
이렇게 말로 설명을 하려니 복잡한데, 하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게 굉장히 간단하고 수월하다는 것이다.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목사님의 강의나 설교는 어려운 게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는 제가 다 신기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은근히 약이 올라서 속으로 "그러면 더 어렵게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어렵지 않다고 나오지 싶은데 말이다(ㅋㅋ).
그분은 논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과 같은 느낌이 드니, 동의가 되고 속이 시원하다는 것이다. 물론 표현은 되지 않아도 "목사님, 바로 그것입니다. 맞습니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논리를 따져서 구원을 받아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뭐라고 하는가?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게 쉽고 어려운 차원이 아니라, 그 느낌을 아니까 그렇다는 말이다.
◈ 나아만 장군과 이스라엘의 소녀 !!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인 나아만 장군이 나오는데, 자기에게 일을 시킬 종으로서 이스라엘 소녀를 하나 체포했다는 말이다. 원래 이스라엘은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일이 없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호하시기 때문에, 신약의 표현대로 하면 중보자가 보호하시기 때문에 말이다.
(왕하 5:1)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왕하 5: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이스라엘은 그러한 제사장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이 없는 저주를 받은 이방나라 사람들을 언약이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체가 언약을 포기해버리니, 이스라엘이나 이방나라나 똑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힘있는 자가 승자가 되는 논리로 모든 것이 점령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기존 교회에서 장로들이 기도할 때 보면, 남북통일부터 시작해서 온갖 것을 다 구하는데,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에게도 힘을 좀 주세요" 라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힘을 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비언약이라고 이방나라가 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포로로 잡혀갈 수밖에 없는데, 유대나라가 로마에 포로로 잡혀간 것도 바로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언약을 주셔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데, 여기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저의 주장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 내적 할례 !!
그것이 바로 '내적 할례' 라는 것인데, 성경에 나오는 표현대로 하면 "마음의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에 망했다" 라는 것이다. 즉 껍질은 할례를 행했는데 마음의 할례를 행하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게 로마서 2장에 나오는데, 물론 구약성경인 예레미야서에도 나오고 말이다.
(롬 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듣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난처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피부는 칼로 째면 되지만, 도대체 마음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말이다. 그런 칼은 없는데,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조금 있다가 하고, 먼저 이것부터 하겠는데 말이다.
그게 왜 되지 않는고 하니,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은 어디로 향하는고 하니, 자꾸만 신을 향해서 높아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신을 향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부터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그렇게 신이 되는 주인공이 누구인가? 그 주체가 곧 자기 자신인데, 그래서 자기 부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도를 닦고 기도하고 금식을 해도, 그것이 다 누구 좋아라고 한다는 말인가? 자기 좋아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을 두고 '의식세계'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들이 모든 의식세계에 속해 있는데, 그러면 그런 의식세계를 붙잡고 있는 것이 누구인고 하니, 그 의식이 바로 '나'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 Cogito, Ergo Sum !!
그래서 데카르트가 뭐라고 했는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유명한 말을 했는데 말이다. 그러면 돌맹이는 왜 존재하는가? 데카르트에 의하면 돌맹이도 생각해야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은 돌맹이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직 인간에게만, 자기에게만 해당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에게만 해당되니,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세계를 활짝 펼친 것을 두고 현실, 혹은 세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놈의 세상이 왜 뜻대로 안 되노?" 라고 하는데, 그러니 누구의 세상이라는 말인가? 자기 세상이니 자기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이 세상을 만드는데 무슨 일조라도 했느냐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데 왜 이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자기가 주님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기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고 중심이 아니라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생긴다고 하면, 그러면 "아이쿠, 무슨 이런 로또를 다 주십니까?" 라고 하면서 감사해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반대로 생각해서 이 세상이 자기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가? 그것은 바로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이 세상을 자기가 뽑아내는 현실로 따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해석해서, 그런 자기가 원하는 현실을 진짜 현실로 여긴다는 것이다.
◈ 과연 누가 주인인가?
방송에 보면 가끔 사기를 치는 사례가 소개되는데,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원래 땅 주인이 있는데, 그런데 바빠서 제대로 돌보지를 못하니, 사기꾼이 그것을 알고 자기 땅으로 그만 문서를 위조해서 팔아먹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진짜 주인이 오면 어떻게 되는가? 그야말로 웃기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주인이었던 시절을 벗어나서, 즉 이 세상에서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는 그냥 던져진 존재인데, 그게 유전자가 되던 게놈이 되던 말이다. 그래서 도킨스가 기독교를 향해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신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 세상을 신이 만들었다고 하면, 그러면 신은 누가 만들었는가? 기독교인들이여, 답변을 해보아라" 라고 나왔다는 것이다.
◈ 사탄이 하는 짓으로 상처를 입은 분이 곧 진짜 하나님 !!
여러분도 그게 궁금하지 싶은데, 그렇지요? 신은 누가 만들었고 하니까, 사람의 손에 의해서 죽었던 분이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즉 신은 누가 만들었느냐고 따지는 자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그분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킨스가 "신은 누가 만들었는가?" 라고 묻는 것 자체가 헛소리가 아니라, 진짜 하나님을 불러내는 요청의 음성이 되고 질문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이 하는 짓들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데, 그런 모든 사탄의 짓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고 상처를 입은 분, 그분이 바로 나타나신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고 말이다. 그러니 마귀가 설치고 불신자들이 설치면 설칠수록 진짜 하나님의 모습은 점점 더 확실하게 계속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이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보니 주님이 자기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즉 "내가 부르는데 왜 나타나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니가 뭔데 내가 나타나야 하는가?" 라고 하시는데, 즉 자기가 아무리 철야를 하던 무엇을 하던 간에, 주님이 나타나야 될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 인간은, 멈추지 않는 욕망의 기관차 !!
다시 해보겠는데, '의식' 이라는 것은 이미 자기가 주인공인데, 즉 '자기 의식' 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주인공이면 자꾸만 자기가 높아지는데, 어디까지 말인가? 신과 동급이 될 때까지 인간의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이미 그 방향이 정해져있는데, "어떻게 하면 신과 동급이 될 것인가?" 라는 것인데, 즉 모든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으로서, 그 어떤 것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사탄은 바로 종교인들인데, 왜냐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해탈해서 살아가니 말이다. 그러니 그것보다도 더 신다운 것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천주교나 불교, 특히 티벳불교가 그러한데 말이다. 옛날에는 왕이 종교인이었는데, 왕과 제사장이 같은 직능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 그들은 신이 되기 위해서 오늘도 관찰과 실험을 !!
그 모든 것이 바로 자기 의식을 무한대로 확대시키는 것인데, 그러면 종교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그렇게 신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있는가? 물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호킹 박사와 같은 과학자들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이 되기 위해서 오늘도 관찰과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이 자기가 생각한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저 우주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 말이다. 정작 자기가 죽어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저 우주의 끝은 알아서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저는 모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보는데, "아직도 아이들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라고 말이다. 쉽게 말해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비트겐쉬타인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세상의 모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그게 자기 놀이문화이지, 그것은 진리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냥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 비트겐쉬타인 - '진리는 무슨, 그냥 노닥거리는 것이다' !!
바둑을 두고 골프를 치는 것과도 똑같은데, 자기 직업이기에 그냥 노닥거리고 있다는 말이다. 농사를 짓는 부모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자식들이 "어머니, 이미 농사를 그만 지으세요" 라고 하면,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하고 놀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업종이 그냥 노닥거리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자기 의식이 있을 때까지는 "신이 되자, 신이 되자"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라고 포이에르바하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내일 부산강의에서 포이에르바하에 대해서 할 것인데, 즉 인간의 욕구가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 프로이드가 말하는 무의식 !!
그런데 그것이 드디어 한계를 맞이했는데, 프로이드가 나타나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의식이 아닌 무의식을 이야기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의식을 이야기하면서, 의식세계는 10프로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90프로는 무의식의 세계로서, 그게 우리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의식이 말이다.
지금까지 몇 사람이 등장을 했는데, 먼저 도킨스는 유전자가 인간을 지배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양반은 현대사람이고, 그 이전에 초반에는 프로이드는 무의식이 지배한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서 꿈이 그런 경우이고, 또한 무심코 나오는 말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어떻게 되는가? 그 동안 무의식이 주인공이었는데, 그런데 그 무의식은 굉장히 기피하고, 그 가운데서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의식 가운데 만들어서, 그것을 '나' 라고 하면서 인간들이 이 세상에 나와서 설쳐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때?"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인간은, 타인 의존적 !!
그렇게 되니까, 자기 의식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를 생각하는지가 중요하게 되는데, 즉 '타인 의존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면서 '나'의 '나' 됨을 구축하려고, 그렇게 의식적으로 시도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발생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남을 의식한다는 것은 남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인데, 그렇게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곧 자기의 주체성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자살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가치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남편이나 자식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이제 그만 죽을란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의식이 아니고, 그런 무의식에는 관심이 없고, 무의식 중에서 남들이 인정한 것만 골라서 의식화를 시키다가보니, 그런 의식으로 자기를 꾸미다가보니 그게 실패로 끝났을 때, 그만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 어휴, 성질나 !!
예를 들어서, "이런 성질이 난다" 라고 했을 때, 그것이 도킨스에 의하면 게놈인지 그놈인지 몰라도, 유전자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드에 의하면 성질이 나게 한 것은 무엇인가? 자기의 90프로를 차지하는 무의식이, 그게 주인인데 말이다. 즉 괜히 성질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줄을 알면서도 성질이 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의식이란 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데, 왜냐하면 남들과 더불어서 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친놈으로 여겨서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니 말이다.
◈ 교육인가? 사육인가?
그렇게 남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의식이 교육을 받는데, 그래서 교육에는 반드시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즉 "니가 그렇게 살면 남들에게 인정을 받지 받지 못해. 그러니 이렇게 행동을 바꾸면 엄마와 아빠에게 인정을 받고,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고, 나중에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는 거야. 그러니 행동을 똑바로 해" 라고 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말이다. 말이 교육이지, 밥까지 먹여주면서 그렇게 하면 그게 곧 사육이라는 것이다(ㅋㅋ).
그러니 교육은 무엇을 강렬하게 억누른 대가인고 하니, 자기에게 치밀어 오르는 자기의 본래 성질을 평생동안 억누른 것으로서, 그것이 바로 남에게 인정을 받는, 즉 자기다운 것이란 말이다. 즉 자아의 '주체성', 혹은 '정체성(identity)' 이라는 것이다.
◈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 !!
우리 모임이 성경공부를 하는 모임이 아니라 인문학 강의시간이라고 하면, "그러면 각자의 성질대로, 혼자 있을 때는 무슨 짓을 해도 되지만, 바깥에 나가서는 똑바로 합시다" 라고 하면 되겠는데,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서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 우리가 지금 억눌러서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이 모습이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이룰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살고 남에게 들키지 않으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 자기를 억눌러 가면서까지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싫다고 하면, 그러면 지리산에 들어가서 살면 된다는 것이다. 저도 지리산의 대원사 골짜기에 가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혼자 살면 된다는 것이다. 인간극장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종종 나오는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왜 거기서 삽니까?" 라고 하면, "돈도 싫고" 라고 하는데, 달리 말하면 남들 눈이 싫다는 것이다. 기도원에는 왜 들어가는가? 이 세상이 짜증나고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피하면 주님의 말씀은 거기에 없는가? 주님은 가시지 않는 곳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것이 산 속에 홀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인가? 그렇게 하면 주님이 과연 구원을 해주시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지금 우리 자신 속에서 분출하는 무의식을, 그것을 성경공부를 가지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을 제가 계속해서 지금 지적하고 있는데 말이다.
◈ 어떻게 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위선의 기술은 되는데, 하지만 정말 근원적인 문제를, 즉 자기 성질, 자기 유전자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라" 라고 하는 말씀을, 그것을 중보자 앞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시간이 40분이 되도록 성경공부를 했지만 그 해결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있기는 있는데, 제가 아직 제시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 해결책에 앞서서 먼저 우리 자신부터 먼저 알아야 하는데, 그 현실을 말이다. 무의식이 90퍼센트인데, 그런데 우리를 그것을 애써서 누르면서 진짜 자기다운 것을 어디서 찾는고 하니,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라는 것을 가지고서 조립을 한다는 것이다. 조립을 말이다.
◈ 인간은 조립품 !!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은 조립품인데, 그래서 뜯어보면 남들이 평가한 것만 쓰레기처럼 수북하게 들어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부모가, 커서는 친구들이 평가한 것이 말이다. 예를 들어서, 동창회에 가서 "야, 니가 목사라도 한 잔 마셔라, 나도 장로인데 이렇게 먹잖아. 그러니 먹어라" 라고 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시선인가?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내부에서 흥정이 들어가는데, 즉 "지금까지 15년 동안 마시지 않았지만, 동창회에 와서는 한 잔만 마시자. 그것도 독일에서는 음료수라고 하는 맥주인데 말이야" 라고 말이다. 그러면 다른 쪽에서는 "그것도 안 돼" 라고, 그렇게 자기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서로 싸운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속에는 천사와 악마는 없는데, 그렇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인데, 그러니 의식은 현실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요령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라고 해도, 그게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생각한다" 라는 것이다. 어디에서 말인가? 남들이 보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각한다는 말이다.
◈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도록 !!
다시 복습해보면, 그 의식세계는 선과 악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그 의식세계의 마지막은 자기가 신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모든 것에서 뛰어나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고 율법에 흠이 없다고 하던 사울이 추구하던 것이 무엇인가? 율법을 가지고서, 즉 자기의 의식을 가지고 신이 되고자 하는, 그렇게 자기가 선악과를 따먹은 티를 팍팍낸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하는 게 바로 그런 짓거리인데, 즉 말씀을 가지고 신이 되는 것, 남들 보기에 이 정도만 하면 욕을 듣지 않는 것, 그러니 그게 90퍼센트를 잘라버리라는 소리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무의식을 발견하고 난 뒤에, "내가 위선 덩어리구나. 진짜 나를 알려고 하면 무의식의 세계를 가봐야 하겠네" 라고 관심사를 바꾼다고 해도,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의 세계는 모르는데, 아무도 모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 무의식의 세계에 어떻게 들어가는가?
그렇다면 무의식의 세계에 어떻게 들어가는고 하니, 오늘 좋은 것을 배우는데 말이다. 의식세계에서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을 실패했을 때, 그게 바로 무의식의 세계에 접선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그 여자에게 옷도 사주고 나름 최선을 다해서 했는데, 그런데 그 여자가 그만 다른 남자를 만나서 시집을 가고 말았을 때는, 그만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육신의 열매가 무엇인가? 시기와 분노와 질투와 같은 것인데, 의식세계로서는 진짜 정당하게 했는데 말이다. 의식세계가 무엇인고 하니, 인간들이 모여서 살 때 필요한 것인데, 이런 의식세계가 없으면 인간은 개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끔 술을 마시고 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런 의식세계가 헛갈려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무의식 세계에서 이런 의식세계로,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목표가 신이 되는 것인데, 거기에 실패했을 경우에는 그만 분노와 질투가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무의식에 묶여있다는 것이 탄로가 나게 된다는 말이다.
◈ 결국, 인생은 막장 드라마 !!
예를 들어서, 피부에 면도칼이 지나가면 어떻게 되는가? 자칫 잘못하면 피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우리는 의식으로 버텼는데, 윤리적으로 말이다. 그렇게 버티다가 마지막으로 피부가 찢어질 때는 피가 나오는데, 그렇게 무의식이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하는데, "너는 악녀야" 라고 하면서 막장 드라마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생전에 욕도 제대로 할 줄 모르던 사람이 욕이 입에 마구 달리고 말이다. 그런 것이 이미 무의식의 세계에 장착되어 있었는데, 그게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집도 있고 고급 자동차도 있는데, 그런데 사는 것이 허무하다고 하는 것이 곧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 인간은 오뉴월의 개팔자가 되지 못하는가? 개는 배만 부르면 양지 바른 곳에 누워서 자는데 말이다. 왜 그렇게 안 되는고 하니, 그것이 바로 무의식의 세계라고 했는데 말이다.
◈ 인간은 영적 존재 !!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인간을 뭐라고 하는가? 영적 존재라고 하는데, 그래서 개나 돼지와 인간의 차이점은 하나밖에 없는데, 개나 돼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것이 아니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형상이 누구인가? 예수님인데, 그래서 인간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은 영적 존재가 된다는 말이다.
짐승의 경우에 혼은 있지만 영은 없는데, 전도서에 보면 '짐승의 혼'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혼은 짐승의 일부가 아니고 전체를 두고 하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조금 어려운 내용이지만 말이다. 거기에 비해서 인간은 전체가 혼이 아니라 영이 된다는 것이다.
(전 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 언약적 관계성 !!
그러면 여기서 영은 영혼을 말하는가? 그게 아니라, 영은 '언약적 관계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 중요한데, 우리 인간은 본의 아니게 이미 창세 전부터 미움을 받던지 혹은 사랑을 받던지, 그런 관계망 속에 이미 놓여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성경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지만 말이다.
(롬 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러니 "죽으면 그만이지" 라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죽은 자도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하는데, 예수님이 죽은 자를 왜 호출하시는가? 굳이 죽은 공자와 죽은 석가모니를 왜 불러내느냐는 것이다.
(요 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그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그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도 주님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지옥에 가야만 하는데, 한글을 만들었다고 특별하게 천국에 넣어주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언약의 내용에 한글창제가 없기에 말이다.
그러니 판사가 되었다고 해서, 국무총리 후보가 되었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데, 물론 목사나 장로가 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오로지 언약대로 구원을 받는데, 즉 "예수님의 살과 피가 아니면 너희에게 구원은 없느니라" 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아니면 말이다.
◈ 다시, 나아만 장군과 문둥병 !!
그러니까 도대체 우리가 무슨 수로 하나님의 언약을 알겠는가? 우리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아만 장군에게 언약을 알게 하는 기회를 특별히 주셨는데, 그런데 그 출발점이 그리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무엇인고 하니, '문둥병' 이라는 말이다. 나아만 장군이 자기 몸관리를 잘못해서 걸린 것이 아니고 말이다.
(왕하 5:1)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그렇다면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나아만 장군과 연결을 시켜보자는 것이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렸는데, 그러면 남들이 보기에 어떠하겠는가? 상호인정인데, 즉 인간의 자아는 남들이 보는 눈으로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아만 장군의 경우에는 "나 같은 신분이 문둥병에 걸렸으니 하루 빨리 나아야 나답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게 의식적이냐는 것이다. 제가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어서 그렇지, 무의식을 모를 때는 그게 현실 그 자체인데, 굳이 의식과 무의식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자기가 생각하는 자체가 전부라는 말이다. 무의식이 나오니, "그것은 무의식이 아닌 의식의 일부에 불과하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비되는 개념이 없으면 그냥 덜렁덜렁 살면 된다는 말이다.
◈ 공자 - '그런 것은 묻는 게 아니란다' !!
언제 부처나 공자가 의식과 무의식을 구별해서 생각했는가? 그들의 주장은 "바르게 살아라. 그래야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그것이 곧 사랑이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의식적이냐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왜 죽습니까?" 라고 하니, 공자는 "귀신에 관해서는 나에게 묻지 말라. 나는 모른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귀신의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로서 자기는 모른다는 말이다. 즉 "그러한 것을 몰라도 되고,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면 된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공자님, 나라가 잘 되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하면, "그런 것은 묻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데, 역시 그것도 공자는 모른다는 말이다.
* 공자 : 부모에게 효도해라.
* 제자 : 효도를 하면요?
* 공자 : 효자가 되지.
* 제자 : 효자가 되면요?
* 공자 : 칭찬을 받겠지.
* 제자 : 칭찬을 받으면요?
* 공자 : 행복하겠지.
* 제자 : 그러면 몸이 아프고 죽으면 행복합니까?
* 공자 : 그것은 말이야?
* 제자 : 왜 몰라요?
* 공자 : 이놈아, 그런 것은 묻는 게 아냐.
* 제자 : ? ? ?
남들이 보기에 인간답게 살아라 !!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바른 교육을 시킨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한 마디로 말해서 "남들이 보기에 인간답게 살아라" 라는 것인데, 그게 바로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가 그렇게 하다가 지쳐서 "엄마, 나는 이제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지리산에서 살 거야" 라고 한다면, 엄마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 숙제가 이렇게 힘이 들 것 같으면 나는 죽을 거야" 라고 하면, 엄마는 "부모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야" 라고 하는데, "왜 아닌데?" 라고 하면, "니가 앞으로 부모가 되어보면 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게 언제인데? 15년이 지나야 돼?"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당시에는 해답이 곧 바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쉬쉬하지 말고 일일이 다 깨고 부수어 봐야 하는데, 말씀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중보자 앞에서 말이다. 그분 앞에서는 모두 다 아는 문제라는 것이다.
◈ 그분은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어요 !!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은 병을 낫고자 했는데, 적어도 자가는 장군이니 말이다. 그런데 마침 자기 집에 이스라엘 출신인 어떤 여자아이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 주인이 문둥병으로 고민을 하니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선지자가 있는데, 그분은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어요" 라고 말이다.
사람이 몸이 아프게 되면 그것을 낫게 해준다면 체면이고 뭐고 없는데, 윤리고 도덕이고 간에 지금 자기가 죽을 판국인데 말이다. 그런 것은 모두 임시땜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그래, 그 선지자가 어디에 있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리나라에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사람은 모든 병을 다 고칩니다" 라고 하니, "그래, 그분을 만나러 가자" 라고 해서, 선물을 가득 챙겨서 간다는 말이다.
◈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이상 !!
그렇다면 엘리사를 만나려고 갈 때 선물을 가득 챙겨서 간다는 것은 어디서 나온 발상인가? 기존의 의식세계에서 이미 통용이 되던 원리라는 것이다. 즉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면, 그만큼의 혜택을 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합당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첫 번째 순서가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이라는 것인데, 그러면 그것이 중보자 앞에서 죄인가? 죄가 아닌가? 죄인데, 하지만 의식세계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의식세계에의 목적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자기만 잘 되면 모두 다 잘되는 것으로 여기는데, 그게 좋은 세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남을 이용할 만큼 이용하겠다는 것이 의식세계에서의 중심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 하지만, 마중을 나오지 않는 엘리사 !!
그래서 선물을 싸들고 찾아갔는데, 하지만 엘리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짓인데, 보통 의식세계에서는 사람이 방문을 하면 어떻게 하는가? 마중을 나와서 "누구십니까?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라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예, 저는 아람 나라에서 온 누구누구입니다" 라고 하고 말이다.
이 아람 나라가 어디에 있는고 하니, 그게 바로 시리아인데 말이다. 여기 사해바다가 있으면, 그 위에는 요단강을 따라서 갈릴리 호수가 있는데, 워낙 넓어서 디베랴 바다라고도 하는데 말이다. 왜 그런 호수가 생겼는고 하니, 그 위에는 헤르몬 산이 있어서, 거기서 눈이 녹아서 갈릴리 호수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그게 요단강을 통해서 사해로 흘러서 내려간다는 말이다.
이 사해바다는 지표면보다도 약 120미터 정도가 낮다고 하는데, 육지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낫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죽은 바다인데, 소금이 너무 많아서 말이다. 사람이 들어가면 지금도 뜬다고 하는데, 그런데 요즘은 바다가 너무 줄어들어서 요르단에서 걱정이 많다는 것이다.
아람 나라는 여기 위쪽에 있는데, 이스라엘이 B.C. 931년에 나라가 그만 쪼개지고 말았는데, 북쪽은 B.C. 722년에, 그리고 남쪽은 B.C. 586년에 각각 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라가 망하기 전에 북쪽의 여호사밧 왕의 시대이지 싶은데, 그때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을 건너서 왔다는 것이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남쪽나라가 되고, 나머지는 다 북쪽이 되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아만 장군이 직접 엘리사를 만나려고 왔는데, 그런데 엘리사는 마중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기분이 좀 나빴지 싶은데, 의식세계에서는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오기 전에 나아만 장군이 편지를 보내서 엘리사가 어디 있는지 이스라엘 왕에게 먼저 물었는데, 참 이때가 여호사밧이 아니고 여로보암 2세라는 말이다. 그러니 왕이 기겁을 하는데, 왜냐하면 문둥병은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병을 고치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또 쳐들어와서는 뜯어가려고 하는 수작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 우리 나라의 강물보다 깨끗하지 못하다 !!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정말 병을 고치려고 왔다고 하면서, 엘리사가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런데 엘리사는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장군으로 하여금 요단강 강물에 들어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강물을 보니 어떠한가? 그때 나아만 장군이 유명한 말을 하는데, "우리 나라의 강물보다 깨끗하지 못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나아만 장군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 의식세계에서는 깨끗한 물이 더러운 물보다는 병이 나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누적된, 즉 진리에 의한 축적된 상식이고 효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효과를 보았고 말이다.
◈ 과학이 맞는가? 토끼가 맞는가?
제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즉 과학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이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 만약에 발전소가 없으면 전기가 어디서 오느냐는 말이다. 전기가 있어서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힌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이 맞는데, 달에 토끼가 있는가? 가보니까 없다는 것이다. 달에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 살 수가 없는데, 공기가 없어서 말이다. 지구에서 보니 도끼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절구통도 없고 토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학이 맞는가? 토끼가 있다는 주장이 맞는가? 과학이 맞다는 것이다. 그런 "맞다, 맞다, 맞다" 라고 하는 의식세계가 그만 요단강 앞에서, 즉 언약 앞에서 그만 퉁겨 나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고 싶어도, 이미 과학적으로 진리가 된 것을, 즉 "나도 뭔가를 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도 우리 인간의 지혜와 문명의 덕분이다" 라고 우기는 순간, 그만 퉁겨 나오고 만다는 것이다.
◈ 요단강에 예수님의 피와 살이 있기에 !!
요단강에 예수님의 피와 살이 있는데, 그런데 거기서 왜 퉁겨 나오는고 하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가 새언약의 완성인데, 그것만 있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퉁겨서 나오는고 하니, 살과 피를 유발시킨 요인이 어디서 나왔는가? 인간의 의식세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메시야다" 라고 하니, 사람들이 "당신이 메시야인가?" 라고 의식적으로 묻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지 못해서 말이다. 인간은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즉 마음의 할례를 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언약대로 오셨는데, 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언약을 지킬 수 없는 입장에 서있다는 말이다.
언약을 따라서 오신 분에게, 언약에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자들이, 그렇게 서로 '빠방' 하면서 만나게 되었으니, 비언약이 언약을 미워하고 배척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놓여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워했다는 것, 즉 언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무참하게 짓밟혔다는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 즉 십자가라는 것이다.
바로 그 십자가를 도로 들이대었는데, 누가 말인가?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말이다. 그러면 엘리사는 왜 마중을 나가지 않았는가? 엘리사가 등장하게 되면, 엘리사가 고친다고 나아만 장군이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엘리사가 병을 잘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엘리사는 병을 고친 적이 없는데, 엘리사를 통해서 주님이 고쳤다는 것이다.
◈ 엘리사는 라디오 !!
여러분, 라디오만 있으면 방송이 나오나요? 먼저 방송국이 있어야 하는데, 라디오만 가지고서 아무리 주파수를 맞추어도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후 4시에 하는 '조영남과 최유라의 쇼'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ㅋㅋ). 어릴 때는 저는 라디오를 뜯고 싶었는데, 사람이 그 안에 들어있는가 싶어서 말이다. 순진했던 그때가 그리운데, 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 싶은데 말이다.
(녹취 구 - 저는 그 비싼 전축을 실제로 뜯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트랜지스터가 아닌 진공관으로 만들어서 덩치가 꽤 컸는데 말입니다. 그 뒤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ㅋㅋ)
그러니 엘리사는 라디오인데, 왜 그런 라디오를 믿느냐는 것이다. 성전 미문에 있는 베드로와 요한, 즉 라디오가 2대라는 것이다. 그 현장에 누가 있었는가? 라디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즉 주님이 낫게 하셨다는 말이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찾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에게 잘 보이면 고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엘리사의 반대말이 주님이고, 주님의 반대말이 엘리사라는 것이다. 즉 엘리사를 믿으면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그러니 엘리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주님을 믿는다는 말이다.
결국